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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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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명. 나의 사랑하는 폭군 1권

프롤로그 : 나의 사랑하는 폭군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는 습하고도 어두웠다. 나선형 계단을 한 걸음씩 밟고 내려갈 때마다, 텅 빈 발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카인의 손에 들린 흐린 등불은, 암흑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카인은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떼었다. 눅눅한 통로의 끝에는 커다란 철문 하나가 있었다.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도록, 바깥쪽에서 굳게 잠긴 문.

열쇠를 가지고 있는 자도, 문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아는 이도, 오직 카인뿐이었다. 이 지하 감옥은 오롯이 카인의 욕망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카인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문고리에 열쇠를 끼우고서 반 바퀴 돌렸다. 햇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 두텁고 서늘한 쇠문 안쪽. 대역죄인을 가둬놓아야 마땅할 이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

카인의 ‘태양’이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빛이 쏟아졌다. 카인은 방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잘 정돈된 침실이었다. 지하의 음습한 분위기와는 달리, 침실은 넓고도 화사했다. 충분한 수의 마법 조명이 곳곳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카인은 곧장 방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반투명한 휘장이 드리워진 침대 앞으로 나아가, 주저 없이 휘장을 들어 올렸다. 카인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그의 손목은 뒤로 고정되어 단단히 묶여 있고, 오른쪽 발목에는 족갑이 채워져 있었다. 족갑에 연결된 긴 쇠사슬은 벽에 굳건히 박힌 채였다.

그는 천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이었다. 희고 부드러운 나신. 조명을 받아 별처럼 반짝이는, 땀에 젖은 피부. 열 때문에 유독 발갛게 물들어 있는 팔꿈치와 무릎. 뺨의 홍조와 비슷한 그 색감을, 카인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집 잘 지키고 있었어요, 루시엘?”

카인이 퍽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응, 아, 아앗, 흐으, 아…”

루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나오는 것은 달뜬 신음뿐이었다.

맥없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빨간 혓바닥이 언뜻 보였다.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혀끝을 타고 방울져 흘렸다.

눈물 때문에 뭉그러진 눈시울과 열락으로 붉게 상기된 뺨. 땀에 젖어 흐트러진 앞머리와, 온갖 체액으로 얼룩진 허벅지와 엉덩이. 그는 엉망진창으로 녹아버린 모습까지도 아름다웠다.

루시엘의 흐무러진 모습을, 카인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눈에 담았다. 루시엘은 반쯤 정신을 놓은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진동 딜도를 밀어 넣은 후 세 시간을 방치했으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잘 지낸 모양이네요. 기뻐요.”

“히익, 읏, 카인, 나, 더는 못… 하응, 읏!”

카인은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았다. 루시엘의 은발을 뒤로 넘기고서, 드러난 이마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은 이마에서 뺨으로, 뺨에서 목으로 내려갔다. 뜨거운 입술이 희고 창백한 목줄기를 더듬었다. 본디 타고나길 민감한 몸은, 단지 입술이 닿는 것만으로 움츠러들었다.

어느새 입술이 가슴에 와닿았다. 분홍색 작은 유두가 도톰하게 부풀 때까지, 입술을 오므려 가슴을 빨았다. 이로 유두를 가볍게 긁자, 낭창한 허리가 호선을 그리며 휘었다.

손끝으로 가슴팍을 지분대다가, 엄지와 검지로 유두를 잡고서 가볍게 꼬집었다. 보통 이들이라면 통증으로 느낄 자극에도, 루시엘은 허리를 비틀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거, 이거 빼 줘어… 아흣, 윽, 흐읏-”

루시엘이 작게 흐느꼈다. 혼자 방치된 상태에서 몇 번을 절정한 건지, 그의 단단한 복부는 그가 분출해낸 백탁액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딜도가 멋대로 회전하며 전립선을 꾹꾹 짓누를 때마다, 요도구에서 희멀건 정액이 픽픽 새어 나왔다.

카인은 대답 대신 딜도 손잡이를 잡았다. 반쯤 튀어나와 있던 딜도를 완전히 빼내는 대신, 오히려 안쪽 깊숙이 집어넣었다.

“아, 아악, 싫어, 그마, 안, 히긋, 읏, 하응-”

구멍이 한계까지 벌어지며 이물질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카인은 손목에 힘을 주고서, 딜도를 밀어 넣었다가 다시 빼내기를 반복했다.

“크읏, 흐읍, 아앙! 악!”

루시엘의 눈동자가 거의 뒤로 넘어갔다. 그는 흰자를 드러내고서 컥컥거렸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배꼽 아래를 쑤컥거리는 딜도의 감촉만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온몸의 신경이 아래로 몰린 것만 같았다.

“빼 드릴게요. 루시엘이 원하는 대로….”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루시엘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카인은 일부러 느릿하게 딜도를 빼내었다. 돌기가 달린 살기둥이, 잔뜩 혹사당한 내벽을 긁으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오랫동안 기구를 물고 있던 구멍은 퉁퉁 부어 있었다. 딜도의 굵기만큼 벌어진 애널이 옴죽거리며 빠르게 수축했다.

루시엘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뜨겁고 단단한 무언가가 둔부 사이에 문질러졌다. 아까 전의 딜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두꺼웠다. 그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홉뜨였다. 뭉툭한 귀두가 애널을 꾹꾹 건드리고 있었다.

“그만둬라. 카인. 이건 명령이다. 주군의 명을 거역할 셈이냐?”

애써 위엄 있게 말해보려고 해도, 목소리 끝이 달달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명령을 가볍게 무시했다. 오히려 그의 허벅지를 더 넓게 잡아 벌렸다.

애널 가장자리를 둥글게 문지르던 귀두가, 서서히 구멍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루시엘의 전신이 빳빳하게 경직되었다.

“…당신이 한때 제 주군이었고, 이 나라의 황제였던 것은 맞지만…”

루시엘의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서, 카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건 전부 지나간 과거일 뿐. 지금 당신은 폐위된 폭군에 불과합니다.”

카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것은 조소인 것 같기도 했고, 만족감의 표현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인이 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속살을 가르며 꾸역꾸역 파고들던 성기가 단번에 깊은 안쪽까지 처박혔다. 완전히 맞물린 접합부에서 철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액과 애액이 섞여 만들어낸 음란한 물소리였다.

“저항하지만 않는다면 부드럽게 안아드릴게요.”

카인의 목소리는 따스했고, 아랫배를 가만가만 쓰다듬는 손길은 다정했다. 카인은 허리를 굽혀, 루시엘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굳게 다물린 입술을 혀로 부드럽게 핥았다. 꽉 닫힌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듯이, 세례 같은 버드키스를 퍼부었다. 쪽, 쪽. 입술이 나긋하게 떨어졌다가 몇 번이고 다시 붙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루시엘이 살짝 입술을 벌렸다. 아랫입술을 훑던 혀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벌어진 틈새를 파고들었다.

카인의 혀끝이 루시엘의 입천장을 간질였다. 볼 점막을 훑다가 사탕을 핥듯 고른 치열을 어루만졌다.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루시엘의 혀를 제 것으로 얽어, 조금은 거칠게 그의 입속을 탐했다.

루시엘의 입 안은 따스했고 타액은 달았다. 그의 숨결 끝에서는 물크러진 과육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작금의 키스는 꽤나 연인 같다고, 카인이 만족스레 생각하던 그때-

콰득.

루시엘이 보란 듯이 카인의 혀를 깨물었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통증은 확연히 느껴졌다.

카인은 굳은 얼굴로 루시엘을 응시했다. 루시엘의 눈빛은 여전히 차디찼다. 애정이라고는 한 조각도 담겨 있지 않은 서늘한 눈초리. 절대로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외치는 듯한 핏빛 눈동자. 그 시선을 차마 맨정신으로 마주할 수 없어, 카인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화간보다 강간이 취향이시라면… 소원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카인이 낮게 읊조렸다. 사막에 찍힌 낙타의 발자국마냥, 깊고도 메마른 음성이었다. 분명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외로웠다.

아아, 아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 루시엘의 육신은 얻었지만, 그의 마음을 소유하는 데에는 처절히 실패했다. 왠지 모르게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모래바람 한가운데에 갇힌 것처럼 목구멍이 꺼끌꺼끌했다.

카인은 침을 삼켜 마른 목을 적셨다. 답답한 마음도, 사랑받지 못하는 절망도, 침과 함께 저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러자 툭,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결단코 당신에게 사랑받지 못 하리라.

카인은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순수한 애정을 갈구하기에는, 그는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카인은 루시엘의 다리를 잡아, 그의 무릎이 가슴팍에 닿게 만들었다. 접합부가 훤히 보이는 자세에서 거친 추삽질을 이어갔다. 분홍색 애널이 검붉은 살기둥을 꽉꽉 물어대는 모습을, 루시엘이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루시엘의 마음이 어땠든, 그의 몸은 명백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만져주지도 않은 성기가 발기해 쿠퍼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느끼고 계시는군요. 이런 취향이십니까?”

“이런, 흐읏, 걸로, 앗, 느낄 리가… 으읏, 힉!”

루시엘은 아니라며 도리질을 쳤지만 설득력은 없었다. 끝까지 솔직하지 못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인은 손을 뻗어, 침대 위를 굴러다니던 금속 집게를 집어 들었다. 방울이 달린 니플 클램프였다. 심지를 갖고 단단하게 선 유두를 클램프로 꼬집었다. 안 그래도 붉게 부푼 유두가 더욱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아아, 앗, 이거, 싫어어….”

루시엘의 입가에서 새된 신음이 흘렀다. 아래에 깔린 몸이 추삽질에 따라 맥없이 흔들릴 때마다, 방울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개의 목줄에서나 날 법한 소리였다. 루시엘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끝내 뺨을 타고 흘렀다.

그 눈물이 생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수치심으로 인한 것인지, 카인은 알지 못했다. 카인은 루시엘에게 우는 이유를 묻는 대신, 짓무른 눈꼬리를 혀끝으로 핥았다. 그의 눈물에서는 소금 맛이 났는데, 이상하게도 카인은, 그 짠맛이 세상 어떤 것보다 달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섹스라는 이름의 체벌이었다.

카인은 루시엘을 들어 올려 무릎 위에 앉혔다. 그의 단단한 팔이 루시엘의 몸을 휘감았다. 자욱한 생채기가 가득한 팔이었다. 오랜 시간 검을 다룬 기사의 팔뚝이기도 했다.

황제를 지켜야 할 손으로 도리어 황제를 능욕한다. 주군을 보호해야 할 팔이, 주군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끌어안는다. 전 황제를 범하는 전 호위 기사라니. 이 얼마나 비뚤어진 충심이란 말인가. 카인은 자조했다.

“카인, 제발, 하으, 으응-”

루시엘은 온몸으로 싫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카인에게 안긴, 아니, 품속에 갇힌 몸뚱이가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아무리 버둥거려도 포옹이 풀리는 일은 없었다. 젖은 살과 살이 맞부딪혔다. 더운 체온과 체온이 뒤섞였다. 루시엘은 카인의 품 안에서 녹아가고 있었다.

내벽을 헤집어대는 이물감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성기가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속살이 혈관에 긁히며 살기둥에 붙어 딸려 나갔다. 루시엘은 저도 모르게 흡, 하고 아랫배를 조였다. 아랫배에 힘을 준 탓일까, 안쪽에 들어찬 성기의 감촉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카인은 루시엘의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어디를 자극해야 제일 느끼는지는 이미 진작에 파악해두었다. 귀두가 전립선을 몇 번이고 들쑤셨다. 극점이 문질러질 때마다 안구 너머로 푸른 불꽃이 튀었다.

“여기보다 더 안쪽, 좋아하죠?”

카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꿈결처럼 목소리가 아롱졌다. 그리고 그 순간, 쯔걱, 하는 소리가 났다. 안쪽 내벽에 턱, 걸렸던 성기가, 비좁은 결장부를 억지로 열어젖히고 있었다.

쾌감 같기도, 역치를 넘은 폭력 같기도 한 강렬한 감각이 온몸의 신경을 타고 흘렀다. 습기 찬 점막이 수축하며 겨우겨우 이물질을 받아들였다.

“…, …, …!”

루시엘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너무 쾌감이 강하면 신음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좁은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붉은 입술이 소리 없이 뻐끔거렸다.

좌우로 흔들리던 눈동자가 아랫배에 고정되었다. 마른 복부 밑으로, 성기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였다. 무딘 귀두가 여린 결장 점막을 쿡쿡 들쑤시자, 윤곽이 그에 따라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였다.

카인은 루시엘의 배를 손바닥으로 살살 쓸다가, 힘을 주어 살포시 눌렀다. 안과 밖에도 동시에 가해지는 자극에 미칠 것만 같았다. 아아악- 루시엘은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토해내었다.

요도구가 벌름거리더니 이번에는 희멀건 정액 대신 맑은 액체를 뿜어내었다. 냄새도 색깔도 없었다. 루시엘의 상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카인이 안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루시엘이 절정한 후에도, 카인은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성교라기보다는 짐승의 교배에 가까운, 거친 정사였다. 카인에게는 늑대 수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교배’라는 표현을 쓰지 못할 것도 없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목덜미를 크게 베어 물었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흉흉한 좆. 성기가 금방 사정할 것처럼 움찔거리더니 뿌리 부분이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으윽, 욱, 루시엘이 헛구역질을 했다. 타액에서는 신맛이 났다. 이미 한계까지 열렸다고 생각했던 뒷구멍이, 주름 하나 없이 더욱 팽팽히 벌어지고 있었다.

이 뒤에 벌어질 일은 자명했다. 무려 십여 분 동안, 카인은 루시엘의 안에 길게 사정할 것이었다. 제 반려자를 배불리고 싶어 하는, 늑대의 본능대로.

“아, 안 돼, 배가, 흐윽, 욱, 배가 아파아….”

루시엘은 생명줄마냥 침대 헤드를 움켜쥐었다. 카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부풀어 오른 부분이 마개 역할을 한 탓에, 삽입된 성기는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내벽을 짓눌렀다.

루시엘은 헐떡이며 제 아랫배를 부여잡았다. 마른 뱃가죽 아래, 둥근 무엇인가가 점점 부피를 늘리고 있었다.

짐승의 사정은 길었고 양이 많았다. 성기를 담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던 안쪽에, 뜨거운 정액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구멍이 막힌 탓에 밖으로 빼낼 수도 없었다.

아랫배가 볼록 부풀어 올랐다. 언뜻 보면 임신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남성의 몸으로 임신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카인은 늘 루시엘의 가장 깊은 곳에 제 씨물을 흘려보냈다. 이래야만 만족할 수 있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긴, 십 분이 지났다.

몸 안에 빠듯하게 들어차 있던 성기를 빼내자, 뻐끔거리는 애널 사이로 정액이 질질 흘렀다. 두 다리가 마름모꼴로 벌어졌건만, 루시엘은 다리를 닫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체력이 다 한 탓이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허벅지를 더욱 넓게 벌렸다. 훤히 드러난 구멍 속으로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었다. 갈고리 모양으로 손가락을 구부려 안에 남아 있는 백탁액을 긁어내었다.

단지 정액을 빼내기 위한 행동에도 느끼는지, 루시엘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부채꼴 모양으로 펴진 발끝이 움찔움찔 경련했다.

카인은 루시엘의 발목에 채워진 족갑을 풀었다. 그를 씻기기 위해서였다. 오직 목욕할 때만, 루시엘은 그를 얽맨 쇠사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카인은 루시엘을 안아 들고서 욕실로 향했다. 대리석 바닥에 그를 내려놓고, 무너지려는 상반신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욕실에는 따듯한 물이 나오는 마정석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 귀한 마정석을 한낱 폐제의 목욕에 사용한다니. 다른 이들이 알았다면 손사래를 쳤을 터였다.

카인은 루시엘의 나신 위로 여러 번 물을 끼얹었다. 복부와 허벅지에 말라붙어 있던 정액이, 물에 씻겨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카인은 비누 거품을 손바닥에 잔뜩 묻힌 후, 루시엘의 전신을 낱낱이 쓰다듬었다. 비누에서는 인공적인 장미향이 물씬 풍겼다. 앞으로는 향기가 옅은 비누를 사야겠다. 루시엘의 체향이 가려지지 않도록….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인은 루시엘의 허벅지 안쪽을 섬세하게 매만졌다.

반쯤 기절한 와중에도 루시엘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카인이 그의 허리나 아랫배를 쓸어내릴 때마다, 가느다란 몸뚱이가 흠칫흠칫 튀었다. 이것은 더 이상 목욕이 아니었다. 욕실에서 이뤄지는 유사 섹스였다.

진한 거품을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등에 발랐다.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쓰다듬다가 등줄기를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간지러운 걸까. 그의 몸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희고 투명한 피부는 온수 때문에 연한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얀 살결 위로, 벚꽃처럼 드문드문 번져 있는 분홍색. 엷은 분홍색을 띠고 있는 복사뼈, 발그레한 빛깔이 도는 팔꿈치와 무릎, 열기로 발갛게 물든 두 뺨….

자신이 방금 전까지 안은 몸이다. 앞으로도 영원토록 곁에 두고 품을 몸이다. 그의 나신 어디든지, 자신이 손대지 않은 곳은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이 오늘따라 더 기쁘게 여겨졌다.

“하읏, 응, 으응…”

가슴팍에 온통 흰 비누칠을 했다. 거품 묻은 손바닥으로 유두를 살살 둥글렸다. 새빨간 유두 주변에 하얀 거품이 일었다. 백과 적의 대비가 이토록 음란한 것이었나. 손끝으로 유두를 간질이듯 매만지자, 약한 자극에 안달이 나는지 루시엘이 흐읏, 흣, 하는 비음을 흘렸다.

“이러고 있으니 처음 당신을 품었던 때가 생각나네요. 작년 봄이었죠.”

카인이 마치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그때는 가슴을 만져줘도 잘 느끼지 못했는데.”

“아앙, 읏, 흐응! 힉!”

“이제는 가슴을 씻겨주는 것만으로 앞을 세운다니. 이쯤 되니까 슬슬 궁금해지는군요. 작년의 당신이 지금의 당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말입니다. 놀랄까요? 경멸할까요? 이건 내가 아니라며, 안간힘을 다해 부정하려나?”

옆구리와 허벅지를 따라 미끄러진 손길이 애널에 닿았다. 거품에 흠뻑 젖은 손끝이 구멍 가장자리를 꾹꾹 눌렀다. 오랜 삽입으로 흐무러진 구멍을 몇 번이고 덧그리며 거품을 묻혔다. 애널이 뻐끔거리며 손가락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뒤로 잘 느낀다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카인은 루시엘을 욕실 바닥에 눕혔다. 다리를 M자 모양으로 벌려 구멍이 훤히 보이게 했다. 허벅지에 흥건히 묻어있던 거품이, 회음부를 애무하듯 쓸어내리면서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흰 거품이 달라붙은 그 모습은, 언뜻 보면 윤간 후 정액으로 범벅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애널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벌리고서, 화끈거리는 내벽 안쪽으로 물을 퍼부었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 손가락으로 대충 긁어냈다지만, 아직 안쪽에 정액이 남아 있었다. 깨끗하게 씻으려면 역시 물을 사용해야 했다.

적당한 온도의 물이 벌어진 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가위질을 하듯 두 손가락을 양옆으로 벌리자, 구멍에서 희멀건 정액이 물과 함께 주르륵 새어 나왔다.

“흐윽, 읏… 안쪽에, 아, 기분, 이상…”

루시엘은 밭은 신음을 토해내며 허리를 비틀었다. 버둥거리는 그를 짓누르고서 아랫배가 살짝 부풀어 오를 때까지 물을 부어 넣었다. 물은 안쪽으로,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더운물이 혹사당한 내벽을 쓸고 지나갔다. 손바닥으로 배꼽 아래를 꾹꾹 누르자, 말간 물이 뒷구멍에서 분수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그는 앞으로도 뒤로도 투명한 물을 쌌다.

마음 같아서는 질척하게 녹은 애널에, 한 번 더 자신의 욕망을 밀어 넣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번 더 관계를 가진다면, 루시엘의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카인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아랫도리에 몰리는 열기를 애써 무시하고, 순수하게 루시엘을 씻기는 데에만 집중했다.

보드라운 수건으로 꼼꼼히 물기를 닦아준 후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상의를 입혔다. 속옷은 굳이 입히지 않았다. 입혀봤자 얼마 못 가서 정액으로 더러워질 거였으니까.

막 목욕을 마친 루시엘에게는 장미 향과 체향이 뒤섞인 내음이 났다. 달달한 봄을 닮은 향기였다. 카인은 루시엘을 침대에 눕힌 후, 발목에 다시금 족갑을 채웠다. 서늘한 쇠가 가는 발목을 빈틈없이 감쌌다.

“잘 자요. 좋은 꿈 꾸고.”

카인이 밤 인사를 남기고 침실 밖을 나가려는 찰나,

“웃기는 소리. 네가 내 악몽인데 어떻게 좋은 꿈을 꿀 수 있겠어.”

날 선 음성이 그의 발목을 잡아채었다. 그는 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루시엘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증오를 머금은 눈동자가 거기 있었다. 그 핏빛 시선 끝에서, 카인은, 그리고 카인의 연정은 수없이 난도질당했다.

“오늘 밤은 편하게 재워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요.”

카인은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몸을 돌려 루시엘에게로 다가갔다. 한 발짝씩 다가올 때마다, 카인의 모습이 변했다. 매끄러운 인간의 피부 위로 짐승의 털이 자라났고, 가지런한 이는 날카로운 포식자의 것으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완전한 늑대의 모습이 된 그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짐승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침대가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루시엘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창백하게 질린 손마디가 파르르 경련했다.

긴긴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루시엘은, 누구보다 더 이 밤을 즐길 자신이 있었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부드럽게 안아드릴게요.”

이 말은 곧, 저항을 한다면 거칠게 안아버리겠다는 뜻이다. 고로 나는 당연히 저항을 했다. 입속을 휘젓는 카인의 혀를 적당한 힘으로 깨물었다. 이 ‘적당한’이라는 수식어가 중요하다. 너무 세게 씹으면 피가 날 거고,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씹으면 그건 반항이 아니라 앙탈이다.

경멸하는 눈초리로 카인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히 네놈이 나를 감금하고 강간해? 하는 눈빛. 죽어도 너를 사랑할 일은 없을 거라는 시선. 물론 마음속으로는 ‘감금 생활 너무 좋아!’ ‘평생 너의 곁에 감금되고 싶어!’ 같은 말들을 몇 번이고 외쳤다.

“화간보다 강간이 취향이시라면… 소원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카인이 이 말을 했을 때는 조금 찔렸다. 새삼스레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양심은 지난 열두 번의 생을 거치면서 마모된 지 오래였다. 그냥 취향이 들켰나 싶어서 뜨끔했을 뿐이었다. 정작 카인은 별생각 없이, 입강간의 일환으로 한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때는 가슴을 만져줘도 잘 느끼지 못했는데.”

“하읏… 흐긋! 힉!”

“이제는 가슴을 씻겨주는 것만으로 앞을 세운다니…. 이쯤 되니까 슬슬 궁금해지는군요. 작년의 당신이 지금의 당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말입니다. 놀랄까요? 경멸할까요? 이건 내가 아니라며, 안간힘을 다해 부정하려나?”

놀라지도, 경멸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을 거다. 오히려 좋아하겠지. 장장 10년에 걸친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했으니 말이다.

믿었던 기사에게 배신당하고, 폐위당해 평생 감옥에서 썩는다는 계획. 내 식대로 말하자면, 사랑스러운 기사가 준비한 신혼집에서 단둘이 오붓하게 살아간다는 인생 계획 말이다.

순둥이 강아지를 훌륭한 늑대로 키우기 위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던가. 은근슬쩍 유혹하랴,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 차갑게 내치랴….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순애를 꿈꾸던 소년은, 비뚤어진 소유욕을 지닌 어른으로 자랐다.

물론 아직 나를 만족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아까 욕실에서의 태도를 봐도 그렇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내 체력을 걱정한답시고 욕정을 눌러 참다니. 아직 남아 있는 순애의 잔재에 눈물이 다 났다. 물론 아쉬움의 눈물이었다.

“잘 자요. 좋은 꿈 꾸고.”

카인은 나를 눕혀두고 방을 나가려고 했다. 정말 잔인무도한 행위였다. 나는 이 밤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카인이 나를 원하듯, 나 역시 카인을 원했다. 아직 아랫배에 열기가 뭉쳐 있단 말이다. 이 긴긴밤을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이렇게 된 이상 답은 하나뿐이다. 카인의 속을 긁는다. 살살 긁지 말고 아주 벅벅. 그러면 카인이 강압적으로 나를 찍어 눌러주겠지.

“웃기는 소리. 네가 내 악몽인데 어떻게 좋은 꿈을 꿀 수 있겠어.”

…이건 너무 심했나. 나는 슬쩍 카인의 눈치를 살폈다. 볼 안쪽을 피가 날 정도로 짓씹어대는 것으로 보아,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네가 자꾸 순애를 하려고 하잖아. 순애는 죄라고. 단지 내가 강간당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야. 너는 전생의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순애를 하면 네가 죽는다니까?

신이 내린 저주가 그래. 신이 던져준 운명이라는 게 그렇다고. 빌어먹을. 지난 열두 번의 생이 전부 비극으로 끝난 이유는, 네가 순애를 했기 때문이라고. 감금도 강간도 비정상적인 소유욕도 없는, 평범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해서, 그 때문에 네 삶이 그런 엔딩을….

알고 있다. 너는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내가 조금만 여지를 주면, 너는 또 내게 순수한 애정을 퍼부으려고 할 거다. 보통의 사랑을 꿈꾸고야 말 거다. 결국에는 열세 번째의 삶도 처절한 배드엔딩으로 끝나게 될 거다.

그러니까, 이번 생은 달라야만 해.

나는 너를 응시한다. 원망 섞인 눈초리로 너를 노시한다. 마음에도 없는 서러움을 연기한다.

너는 한 걸음씩 내게 다가온다. 한 발짝, 한 발짝을 뗄 때마다, 네 모습이 빠르게 변해간다. 인간의 몸이 허물어지고 대신 늑대의 형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늑대 수인이 늑대로 변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본인이 원해서. 둘째.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후자의 경우, 흘러넘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면 늑대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지금 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애증? 욕망? 집착? 소유욕? 무엇이든 상관없다. 네가 품은 감정이라면, 나는 그게 무엇이든 받아들일 테니까.

어느새 완연한 늑대가 된 네가, 예리한 이빨을 드러낸다. 태양을 닮은 금안이 선득하게 번뜩인다. 포식자 앞의 초식동물처럼 나는 한없이 무력하다. 그리고 그 무력함이, 나는 기껍다.

“오늘 밤은 편하게 재워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요.”

금빛 눈의 늑대가 나를 덮친다.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괴물.

반항할 틈도 없이, 늑대의 거대한 몸뚱이가 루시엘을 내리눌렀다. 맨살에 윤기 흐르는 검은 털이 닿았다.

인간의 것보다 훨씬 거칠고 넓적한 혓바닥이 루시엘의 쇄골을 핥았다. 마치 영역표시라도 하듯 키스 마크 위로 타액을 덧칠했다. 카인은 송곳니를 세워 목뒤를 세게 물었다. 희고 매끄러운 살결 위에 짐승의 잇자국이 새겨졌다.

혀끝에서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문득 갈증이 느껴졌다. 흡혈귀라도 된 양 그의 목에 이를 박아넣고 와인처럼 붉은 피를 들이마시고 싶었다.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 삼킨다면, 이 지겨운 허기와 갈증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 굶주림은 식욕이 아닌, 명백히 성욕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므로.

카인은 루시엘의 몸 곳곳을 깨물고 핥았다. 손마디와 배꼽 밑, 허벅지와 종아리. 그의 몸 모든 곳에 자신의 체취를 묻혔다. 햇볕에 그을려본 적 없는 희고 여린 살결은, 빨아대는 족족 붉은 울혈이 남았다.

성기와 회음부를 할짝거리던 혓바닥이 아래로 내려왔다. 작고 봉긋한 둔부를 잡아 벌리고서 드러난 구멍에 혀를 가져다 대었다.

“아, 안 돼. 싫어, 거기는…!”

2미터가 넘는 늑대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저항은 의미 없는 짓이었다. 카인은 루시엘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서, 혀를 세워 벌름거리는 애널을 꾹꾹 눌렀다. 몸 안쪽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한 감각에, 루시엘은 고개를 내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짐승의 혀가 질펀하게 뒷구멍을 애무했다. 반쯤 서 있던 루시엘의 성기가 아랫배에 닿을 정도로 팽팽히 발기했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황제는, 한낱 짐승에게 아랫구멍을 빨리면서 느끼고 있었다.

"핥지 마아, 흐응, 아, 시러어, 기분, 이상… 아앙-"

길고 축축한 혀가 구멍 가장자리를 깔짝거리다가 끝내 내벽을 파고들었다. 움찔거리는 속살 주름을 낱낱이 핥으며 점막을 타액으로 적셔나갔다. 젖은 살덩이가 내벽에 달라붙는 감촉이 생경했다. 질척한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루시엘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카인은 루시엘의 아래에서 입술을 떼어내었다. 타액과 애액으로 눅진하게 젖어 든 구멍은, 늑대의 흉흉한 좆도 능히 받아들일 수 있을 터였다.

카인은 루시엘의 몸을 반 바퀴 돌렸다. 이마와 가슴팍이 시트에 닿았다. 루시엘은 개처럼 네 발로 엎드린 채로, 고개만 뒤로 돌려 상황을 살폈다. 꺼덕거리며 발기한 늑대의 좆이 허벅지 안쪽에 문질러지고 있었다. 선액이 묻은 살결이 번들거렸다. 그리고 곧, 성기가 구멍을 가르고 푹 처박혔다.

“하으읏-”

루시엘이 으스러진 신음을 토해냈다. 머릿속이 희게 점멸했다. 제 몸을 덮은 늑대의 털은 부드러웠고, 체온은 더웠고, 인간과는 다른 특유의 살내음이 선연했다. 두터운 성기가 마구잡이로 구멍을 헤집어댔다.

늑대 상태의 카인의 성기는 인간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색이 더 짙었고 푸른 핏줄이 흉폭하게 불거져 있었다. 도드라진 핏줄이 내벽을 긁어내렸다. 돌기가 달린 딜도를 삽입 당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카인은 앞발로 루시엘의 어깨를 짓누르고서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가 빠졌다가 밑동까지 단번에 삽입될 때마다, 애액이 찰박거리며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뭉툭한 선단이 전립선을 집요하게 짓이겼다.

“아흣, 읏, 응, 그만, 이러다가, 죽… 아악!”

인간과 짐승의 잇자국이 어지럽게 찍힌 목덜미 위로, 땀방울이 알알이 돋아났다. 카인은 루시엘의 목에 코를 묻었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한 개의 후각은, 인간일 때는 맡을 수 없었던 옅은 살내음을 생생히 잡아내었다. 다디단 체향이 비강에 달라붙었다. 마약을 들이마신 것처럼, 머리가 몽롱했다.

카인은 짐승의 본능대로 계속해서 허리를 쳐올렸다. 인간일 때의 기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짐승의 추삽질은 투박했고 배려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기 위한 거친 추삽질에도, 루시엘은 몸을 발발 떨며 절정을 맞았다.

타고나길 음란한 몸인 걸까. 아니면 지난 반년에 걸친 조교가 성과를 발휘한 걸까. 아마 둘 다 충분한 이유가 될 거라고, 카인은 생각했다.

흐무러진 애널은 익숙하게 성기를 집어삼켰다. 도톰하게 부푼 그곳은 배출구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성기에 가까워 보였다. 성기가 안쪽 깊숙이 삽입될 때면 좆을 잡아 물었고, 느릿하게 빠져나갈 때면 놓치기 싫다는 듯 살기둥에 달라붙었다.

사정이 코앞이었다. 배 안에 삽입된 성기가 단단히 부풀어 올랐다. 사정할 때 반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뿌리 부근을 부풀리는 것은, 늑대의 습성이었다.

짐승 상태의 노팅은 인간일 때보다 더 강렬했다. 단단히 부풀어 오른 부위가 전립선을 직통으로 눌렀다. 폭력적인 쾌감이 루시엘의 전신을 후려쳤다.

벌써 오늘 밤만 두 번이나 노팅을 당했다. 점막이 억지로 벌어지고 마구잡이로 헤집어지는 이 감각은,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허벅지가 경직되며 뒷무릎이 파르르 경련했다. 무너지려는 하체를 카인이 잡아 고정시켰다.

“아! 흐윽, 하으읏…. 하, 하지 마, 싫어, 카인…”

인간 모습일 때도 사정량이 많았지만, 늑대 상태일 때는 더 했다. 뜨거운 백탁액이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이부어졌다. 복부를 가득 채운 정액이 안에서 울렁이며 새로운 쾌감을 만들어내었다. 접합부 너머로 정액이 질금질금 흘러나왔다. 루시엘은 아랫배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늑대의 토정은 정액을 쏟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액을 다 내뱉은 후에는 다른 형태의 사정이 이어졌다.

정액보다 더 묽고 양이 많은 액체가, 정액이 채 닿지 못한 안쪽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정액을 잘 퍼지게 하려고 배출되는, 투명한 삼투액이었다. 야생 늑대의 생식 과정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진짜 짐승에게 범해지고 있다는 착각마저 일었다.

“이거, 당장 빼… 히익, 아읏, 배가, 윽, 터질 것, 같… 하으응, 읏!”

루시엘은 문장 하나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허덕거렸다. 꺾어진 팔이, 창백하게 샌 손톱이 시트 위를 기었다.

늑대의 체액이 루시엘의 안쪽을 질척하게 물들였다. 삼투액이 찰랑거리며 결장 부근까지 밀려 들어왔다. 도무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온몸이 쾌감으로 난자당하는 것 같았다.

아아,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가물거리던 눈꺼풀이 굳게 닫혔다. 감은 눈의 어둠이 의식을 파먹었다.

암전.

차가운 새벽 공기가 맨살에 스며들었다. 얼마나 오래 기절해 있던 걸까. 루시엘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누운 채로 고개만 수그려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땀과 정액으로 엉망이었던 몸뚱이가 깨끗하게 씻기어 있었다. 루시엘이 기절한 사이, 카인이 그를 목욕시킨 것이었다.

루시엘은 고개를 돌려,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카인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은 얼굴은 평온하고도 무구했다.

그는 카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손끝으로 뺨을 간질이다가 색색거리는 입술 위로 쪽 입을 맞추었다. 도둑키스에도 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인은 늑대답지 않게 잠귀가 어두웠다. 간단한 스킨십으로는 카인의 잠을 깨울 수 없었다.

루시엘은 그 점을 맘껏 이용했다. 세상모르고 잠든 카인에게 세례 같은 버드키스를 쏟아 부었다. 혹여 카인이 도중에 깨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간단한 환영 몇 가지를 덮어씌운다면, 그는 자신이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할 터였다.

루시엘은 어젯밤의 정사를 회상했다. 수인의 온도는 인간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카인과 맞닿는 자리마다 열상을 입을 것 같았다.

숨 쉬는 법조차 잊을 정도의 열락이었다. 힘겹게 호흡을 고르는 중에도, 열린 입술 틈새로 단 숨이 튀어 올랐다. 끝내는 반쯤 이성을 잃고, 카인에게 매달렸던 것도 같았다.

‘…오늘 밤도 최고였어.’

한참 동안 카인의 자는 모습을 감상하던 루시엘이, 느긋하게 상반신을 일으켰다. 허리가 바늘로 찔린 것처럼 욱신거렸다. 단지 허리뿐 아니라 온몸이 뻐근했다.

이미 네 번째 생에서 치료술을 완벽하게 학습한 그였다. 이 정도 통증이라면 마법 한 번으로 순식간에 낫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시엘은 제 몸을 치료하지 않았다. 아니, 치료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제 사랑이 남겨놓은 것 아닌가. 루시엘에게 있어 카인이 주는 아픔은, 단순한 고통이 아닌 환희였다. 그 여운을 오래오래 즐기고 싶었다.

그때였다. 카인이 작게 뒤척였다.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루시엘은 순식간에 웃음기를 거두었다. 상냥한 연인의 얼굴을 지우고, 상처 입은 폐제의 가면을 덮어썼다.

다시 연극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어떤 연인들의 환생 일지」

첫 번째 생에서, 나는 타락한 신관이었다. 평생 신만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신보다 수백, 수천 배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칼에 태양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를 가진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쁘게도, 너 역시 나에게 마음을 내주었다. 우리는 곧 연인이 되었다.

순결해야 할 신관의 몸으로 너의 좆을 품었다. 더 거칠게 안아달라며 교태를 부렸다. 네 손목을 잡아끌어 내 목에 가져다 대기도 했다. 너의 그 크고 단단한, 굳은살 박인 손으로 내 목을 졸라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마다 너는 옅게 웃으며 내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다정함이 담뿍 묻어나는 음성으로, 이렇게 속살거렸다.

당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내 사랑.

네가 주는 것이라면 고통마저 환희라고 답하려다가, 나는 묵묵히 입을 닫았다. 내 피학적인 취향을 감당하기에, 너는 지나치게 선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너에게는 정석적인 연애가 어울렸다.

나는 강압적으로 다뤄지고 싶다는 욕망을 내려놓았다. 대신 네가 원하는 대로 보통의 연애를 시작했다.

굿모닝 키스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고, 밤이면 서로를 꼭 끌어안고 단잠에 빠지는 달짝지근한 연애. 자주 포옹하고 종종 몸을 섞는 지극히 평범한 나날들. 너는 그 평범함에 퍽 만족한 듯 보였다.

나? 나 역시 만족했다. 묶여서 엉덩이를 맞고 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기는 했지만, 너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꾹 참았다. 네가 만족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너의 행복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네가 죽었다. 신이 내게 내린 벌이었다. 신관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순결을 버린 죄. 신관의 몸으로 음행을 저지른 죄. 내가 지은 죄로 너는 죽었다, 죽어버렸다.

나는 너의 시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서럽게 울부짖었다. 핏발 선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내 사랑을 앗아간 신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사랑이 죄가 될 수 있냐고, 당신은 너무 잔인하다고, 피를 토해내며 신을 욕했다.

그러자 신이 내게 응답했다.

아직 신벌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첫 번째 생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두 번째 생에서, 나는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를 도와 밭을 갈던 중, 나는 영주의 아들로 환생한 너와 마주쳤다.

두 번째 생에서도 너는 검은 머리와 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전생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 나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너. 기억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렸고 다시금 사랑에 빠졌다.

주위의 눈을 피해 비밀 연애를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또다시 네가 죽었다. 여우 몰이를 하던 중 말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 순하디순한 말이 왜 갑작스레 날뛴 것인지, 아무도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 순간, 전생에서 신이 남겼던 문장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직 신벌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나와 연애하기만 하면, 너는 젊은 나이에 죽어버리게 되는구나.

나는 눈을 감았다. 축축한 기억이 뺨을 적시고 흘렀다. 두 번째로 마주한 너의 죽음 앞에서, 나는 이번에도 하염없이 울었다. 신을 욕하지는 않았다. 대신 너를 살려주라고, 내 목숨을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너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빌어먹을 신이 말했다.

아직 신벌은 끝나지 않았다고.

세 번째 생에서, 나는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도예가였다. 그리고 너는 내 공방 바로 옆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것은 이번에도 나뿐이었다.

너는 매일 같이 내 공방에 들러 접시를 샀다. 설거지하다가 접시를 자주 깨 먹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너의 말이 거짓임을, 나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너는 그저 나를 만날 핑계가 필요할 뿐이었다. 이번 생에도 너는, 내게 마음을 주어버렸으므로.

그러나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너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를 사랑하기에 너와 멀어져야만 했다. 또 너를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네가 설탕으로 만든 장미꽃다발을 내밀며 내게 고백했을 때, 나는 단칼에 너의 고백을 거절했다.

하지만, 왜, 어째서…? 너는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위태로운 표정을 하고서.

마음만 같아서는 너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사실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이전 생에서도 이전보다 더 전의 생에서도 내겐 너밖에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너에게서 몸을 돌렸다.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충동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목을 잡아채는 너의 흐느낌을, 애써 떨쳐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네가 죽었다. 이번에는 신벌이 아니었다. 자살이었다.

네 번째 생에서 나는 치료술을 배웠다. 빈사 상태의 너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희망 때문이었다. 다섯 번째 생에서는 흑마법을 배웠다. 신과 대적하여 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여섯 번째 생에서는 연기하는 법을 익혔다. 미움받아야 마땅한 악인을 연기하면,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엇나갔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했고 결국 죽어버렸다.

일곱, 여덟, 아홉. 나는 모든 생에서 너를 마주했고,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졌으며, 끝내 속절없이 너를 잃었다.

열, 신벌에서 가까스로 너를 구해내도, 예기치 못한 때에 다음 신벌이 쏟아졌다. 내 손이 닿기도 전에 너는 죽었다. 열하나, 부릅뜬 시체의 눈을 감겨주었다. 나는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열둘, 신이시여 저는 죄인입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열셋.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치료술을 연마하고 흑마법을 연구해도, 나는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인간은 신을 이기지 못한다. 신벌은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이제는 접근 방향을 바꿔야만 했다.

지난 열두 번의 생을 거치며, 나는 신벌이 내려지는 조건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연애를 할 때. 연인답게 사랑을 나눌 때, 신은 네 목숨을 앗아간다. 굳이 ‘애인’이라는 명칭으로 서로를 묶지 않아도, 서로의 사랑이 쌍방임을 인지하는 순간, 신벌은 피하지 못할 형벌이 되었다.

그렇다면 만약.

네가 내게 품은 감정이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라면? 집착과 소유욕으로 범벅이 된 무언가라면? 차마 연애라고 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비상식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네가 나를 감금하고 강간한다면. 두 팔을 꺾어 밧줄로 결박하고 발목에 사슬을 채운다면. 싫다고, 그만두라고. 공포에 젖어 벌벌 떠는 나를, 억지로 짓누르고서 좆을 삽입한다면….

행여 신이라도, 이 관계를 연인 사이라고 우기지는 못 하리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내 사랑을 결코 드러내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세 번째 생처럼 네가 자살하게 놔두지도 않을 거다.

나는 너를, 비틀린 어른으로 키울 테다. 연인 간의 부드러운 섹스보다, 가학적인 성교를 즐기는 그런 사람으로.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나를, 강제로 범할 만큼 집착적인 사내로.

그 과정에서 내가 상처 입더라도 상관은 없다. 나는 극도의 피학 성애자니, 결박도 강간도 전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난 열두 번의 생은 전부 최악의 결말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달라야만 한다.

열세 번째 생에서는 기필코, 너를 구해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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