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9/24)

* * *

그날 이후, 노엘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는지 학교에 보내 주었다. 다만, 곱게 보내 주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자, 잠깐만요. 이, 이런, 이건….’

‘내 개새끼가 바깥에 돌아다니는데 이런 거라도 채워야지, 안 그래?’

‘노엘, 제발…….’

‘좆같으면 가지 마. 간단하네.’

노엘은 학교에 갈 때마다 내 성기에 정조대를 채워 주었다. 그 때문에 학교에선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물도 마시지 못했다.

갈증보단 수치심이 앞서 나가,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교수님이나 학생들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함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쟤가 걔 아냐? 그 죽은 애랑…….”

“야, 듣겠다. 총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자고.”

지나갈 때마다 조롱하는 시선과 쑥덕거리는 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고작 학교 안에 있는 마트에 사탕과 초콜릿을 사러 왔을 뿐인데도 이마저도 잘못되었다는 것처럼 화살이 돌아왔다.

노엘의 말이 맞았다. 어디서 소문이 퍼진 건지, 사람들은 내가 예거의 죽음에 얽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재밌는 모양인지 나를 보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학교에 온 지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온갖 추잡한 소문을 다 들었다. 내가 예거와 사귀었다든지, 약을 구하려고 예거에게 들러붙었다든지, 말도 안 되는 소문이 그림자처럼 들러붙었다.

“근데 저 새끼 삐쩍 말라서 못 빨았을 것 같은데.”

또렷하게 들리는 조롱에 온몸이 굳어졌다. 정말 내가 ‘개새끼’가 된 것 같다. 노엘이 남긴 울혈을 숨기려고 목까지 올라오는 티셔츠를 입었고 아래에는 성기를 감싼 무언가가 채워져 있어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소문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고개를 숙인 채 사탕과 초콜릿만 꾹 움켜쥐었다.

“야, 조용히 말해. 다 들린다고!”

“뭐 어때? 절뚝거리는 거 봐, 존나 어디서 한 판 한 것 같지 않냐?”

킥킥거리던 백인 무리 중 하나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여기로 온 내 잘못이다. 파르르 떨며 사탕 몇 알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나는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도망가야 하는 걸까.

“흐…….”

학교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길을 향해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움직일수록 성기를 감싼 정조대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목구멍이 바싹바싹 메말라갔지만,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아무것도 마실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엉성한 걸음으로 서성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위로 올라갔다. 멀리서 보이는 사람들의 인영에 화들짝 놀라 다른 길로 향했다. 사람이 없는 곳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유진, 나는 네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믿어.’

유일하게 믿어주는 사람이, 내게 고통을 준 노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줄줄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을 수도 없어 손에 들고 있던 사탕을 꽉 붙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땅만 보고 걸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대 뒤편 주차장이었다.

“흐…….”

여기라면 안심하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사탕을 입에 물었다.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사탕과 초콜릿으로나마 굶주림을 달래기로 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집에 있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끅끅거리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달콤한 초콜릿과 사탕마저 역겨워 입에 대지 못한 채 헛구역질해 댔다.

“이봐.”

그때, 누군가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어깨 위로 느껴지는 강한 힘에 소름이 돋아나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보다는 아까 나를 따라다니며 킥킥대던 웃음소리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쿵, 쿵쿵. 불안함이 커질수록 심장 소리 역시 커져만 갔다.

“내가 누군지 벌써 잊어버린 건가.”

지난번에 봤던 수사관 제이다. 취조실에서 만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 어깨 위에 올려진 손을 바라봤다. 분명 범인이 잡혔다고 들었는데 왜 나를 찾아온 건지 알 수 없다. 까무잡잡한 손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진?”

누군가가 나를 만졌다는 사실보다는 노엘이 남긴 흔적을 들킬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 나갔다. 어깨를 흠칫 떨면서 고개 숙였다.

“죄송한데 치, 워 주시면 안 될까요?”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실례했군.”

머쓱하게 손을 떼어내는 제이를 봐도 떨림이 멎질 않았다. 누군가의 접촉을 마냥 반가워할 수 없었다. 덜덜 떠는 몸을 웅크리며 구석으로 갔는데 제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예거 넬슨의 기숙사를 살펴보고 나오는 길에 널 본 거야. 따라온 건 맞지만, 불순한 의도는 없었어. 오해하지 마.”

어두운 눈동자를 보자 불안해졌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경찰서로 데려간다든지, 목덜미에 새겨진 붉은 자국이나, 아래를 채운 정조대를 들킬 것 같아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아직 점심시간 아닌가?”

“네, 네?”

“그것만으론 안 될 것 같은데.”

온기 하나 없는 목소리에서 어쩐지 가여워하는 느낌이 묻어났다. 입술을 꾹 짓이기며 주머니 속으로 사탕과 초콜릿을 넣어버렸다.

불쌍하게 여기면서, 왜 그날 노엘에게서 떼어내지 않았냐는 원망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얼 하려고 움직일수록 상황만 나빠졌다. 대답 대신 고개만 숙였다.

“오면서 보니까 한국 음식 파는 곳이 있던데 여기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면 거기 가보는 게 어때?”

나랑 상관없는 얘기다.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내 멋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왜 이런 말을 꺼내는 건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노엘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만 머릿속에 가득 찰 뿐이다. 차라리 강의실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한숨 푹 쉬며 등을 돌렸다.

“유진.”

제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잔디 밟는 소리가 들리자, 두려움이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더는 한계였다. 속이 울렁거리는 메스꺼움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버, 범인 잡혔다고 들, 었는데요.”

“별개로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무슨, 설마 제가 잡아가라고 했던 것 때문에 이러시는 거예요? 그냥 그때는 너무 놀라서,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였고…제가 본 건 예거의 시체, 흐읍…….”

그날 봤던 끔찍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두 눈 부릅뜨고 입 안에 총기가 쑤셔진 모습을 떨쳐낼 수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손이 떨렸다. 더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저 이만 가볼게요. 수업 있어서요.”

오지 말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이에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걸어갔다. 다시 강의실로 돌아가야 했다. 쿵쿵거리는 가슴을 부여잡듯 옷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절뚝거리는 발목이 유난히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기서는 울고 싶지 않아, 입술을 꾹 짓이겼다.

“유진. 더는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 이것만 들어줘.”

제이는 나를 잡지 않았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무뚝뚝한 목소리만 건넬 뿐이었다. 노엘처럼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억지로 고개를 돌리게 하지 않았다.

그래도 무서웠다. 이러한 배려가 적응되지 않았다. 내가 받아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한 편으론 노엘의 존재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예거 넬슨의 사인은 총상이야. 이마에 총알 하나가 관통했고 복부와 양 손목에는 찰과상이 있었어.”

“저, 저는 진짜 안 그랬어요.”

“미리 말해 두지. 난 널 의심하지 않아. 네 형, 그러니까 노엘 웨스틴의 변호사 측에게 충분히 들었거든. 예거 넬슨이 널 끊임 없이 괴롭히고 협박했다는 것을 말이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런 해명을 했던가. 또다시 나 자신이 멍청하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다. 다른 사람이 내 일을 처리한 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갇혀 지내는 꼴은 우습기 짝이 없다.

“이 남자, 본 적 있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제이가 손바닥만 한 사진을 들이밀었다. 사진 속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남자의 얼굴이 어쩐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저으며 제이를 쳐다봤다. 제이의 다른 손에는 음료수 하나가 들려 있었다. 괜히 예거가 생각나서 꺼림칙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제이는 작게 숨을 뱉으며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이름은 코완 루벤, 이 일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남자야. 빈민가 쪽에서 활동하던 놈이고.”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어리둥절한 눈으로 제이를 바라봤다. 제이는 한숨 푹 쉬며 사진을 가져갔다.

“코완 루벤이 갖고 온 총과 시신에 박힌 총알을 대조해봤어. 미등록된 총기인 것도 일치했고. 크기와 강선 모두 똑같았어. 자백도 흠잡을 수 없었지.”

“근데 왜, 저를…….”

제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진을 집어넣었다. 거칠게 숨을 뱉는 걸 봐선 답답함을 숨길 수 없던 모양이다.

“코완 루벤의 딸이 날 찾아왔어. 평생 농사만 짓고 대마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하겠냐고 그러더라고.”

“네?”

“가족이 모르게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꺼림칙하잖아. 수사가 일찍 종결된 것도 그렇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사람처럼 제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망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이의 말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너무 명확하게 범인이 누군지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을 끝으로 제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내 반응을 기다린다는 사람 같았다. 애석하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나를 의심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내가 봤던 예거의 끔찍한 모습을 떠올리자, 손이 떨려왔다.

“전, 진짜 모르겠어요. 정말이에요. 단지, 그냥, 예거가 불러서, 그만, 그만할래요. 그만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옷을 꼭 움켜쥔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손이 차갑다 못해 얼어붙는 기분이다. 제이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정말 이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노엘뿐일까? 머릿속에서 노엘이 나를 믿는다고 했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믿는다는 말이 이토록 끔찍하게 와닿을 줄은 몰랐다. 울고 싶지 않다. 무너져가는 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어느샌가 시야는 눈물로 얼룩져 버렸다. 비참한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그때, 제이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접근하지 않겠다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지만, 누가 이랬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제이가 내 뺨으로 손을 갖다 대려고 하자, 흠칫거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더 이상의 친절을 믿지 않기로 했다. 예거 역시 내게 사람 좋은 미소를 하고 다가왔지만, 끝은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정말 배려심을 베풀려고 접근한 거라고 해도 피해야만 했다. 노엘이 알게 된다면, 노엘에게 들킨다면 어떤 짓을 당할지 예상할 수 없다. 그저 덜덜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실례했어.”

“네. 이만 가, 가볼게요.”

“내 연락처 알려줄게. 혹시 할 말 있거나, 생각나는 게 있다면 연락 줘.”

“아뇨, 없어요.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더는 묻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려요.”

간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제이를 스쳐 지나갔다. 제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뚫어지라 응시하는 시선이 뒤통수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괜히 겁이 나, 발목을 절뚝거리며 제이의 시선에서 멀어지려 발버둥 쳤다.

“유진.”

그때, 한 번 더 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뚝뚝하지만, 마냥 차갑지 않은 음성에 눈물이 떨어졌다. 괜히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 돌리지 않은 채 걸음만 멈춰 세웠다.

“이미 뒤질 대로 뒤졌지만, 다음에도 이 학교에 올 거야.”

“흐, 흐읍…….”

“아마 일주일 뒤에나 올 것 같은데. 혹시 할 말 있으면 이 시간에 여기로 와. 기다리고 있을게.”

“전…….”

“물론 연락해도 상관은 없어.”

제이가 내 손에 음료수를 쥐여 주었다. 손바닥에 들어온 시원한 냉기에 눈물이 찔끔 올라왔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 가버렸다. 물론, 제이의 눈에는 절뚝거리며 겨우 도망치는 꼴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든 도망가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내가 향한 곳은 학교 건물 화장실이었다. 강의실에는 이제 막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 수 없이 화장실에 들어왔다. 개인 칸 속에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입술을 짓이기며 억지로 눈물을 삼켜냈다. 비릿한 피 내음에 또 한 번 헛구역질을 했다.

“흐….”

혹여 나를 따라다니며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릴까 봐 귀를 틀어막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할퀴는 소리만 들을 수밖에 없다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해달라고.

문득, 내 이름의 의미가 떠올랐다. 있을 유(有), 보배 진(珍). 세상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엄마가 지어줬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 이름의 의미를 부정하고 싶어졌다.

내 마음은 온통 검은색이라, 빛 한 줄기 한 번 들어오지 않았다.

* * *

멍한 눈으로 허공만 응시했을 뿐인데 벌써 수업이 끝나있었다. 빈 스케치북만큼이나 내 머릿속엔 든 게 없었다. 벽시계를 쳐다봤다. 수업이 끝난 지 15분이 넘었다. 노엘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서둘러 짐을 챙겼다.

내 시간표를 꿰차고 있던 노엘은 학교에 오갈 때마다 데려다주곤 했다. 수업이 끝난 지 10분 안에 내려가지 않으면 어떤 시선을 받아야 할지 몰랐다. 음료수를 들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이젠 데리러 오라고 시위까지 하네?”

“그, 그게…….”

노엘이었다.

철컥, 강의실 문이 닫혔다. 아무래도 시간표 밑에 적힌 강의실을 보고 찾아온 모양이다. 노엘은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려댔다.

차라리 그냥 걸어오라고 하지 뭐하러 데리러 오는 걸까. 알아서 오라고 하면 서로 얼굴 안 보고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가방만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묵이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이에 일상적인 대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노엘의 눈치만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이익, 의자 끌리는 소리를 끝으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됐어, 그냥 앉아.”

“네?”

“앉아서 너 가방에 뭐 들어있는지 말해 봐.”

“무슨…….”

“씨발, 어떻게 바로 대답하는 법이 없어? ESL 안 들을 정도면 말귀 알아듣는 거 아냐? 뭐 있냐고.”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가방 검사라도 하려는 건가. 눈치를 보며 가방을 열어 재꼈다. 스케치북과 수업에 필요한 재료밖에 나오지 않았다.

“스케치북이랑 물감, 이요. 목탄도 있고….”

“무슨 물감? 수채화?”

“네.”

“……씨발.”

수채화 물감이라서 수채화라고 대답한 것뿐인데 왜 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유화라고 거짓말하라는 뜻인가.

한숨 쉬고 싶지만, 뺨을 맞을 것 같아서 가방만 정리했다. 지퍼를 닫기 전에 들고 왔던 음료수를 집어넣었다. 그때, 노엘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이거 뭔데?”

“아, 아무것도 아, 아니에요.”

“점심때 산 거잖아. 왜 안 마시냐고.”

노엘의 카드를 써서 그런지, 언제 어디서 샀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다행스러운 건 이 음료수를 제이가 줬다는 사실은 모르는 눈치다. 그저 입술만 깨물며 노엘의 시선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노엘이 내 턱을 움켜쥐며 시선을 마주치게 했다.

“아니, 왜 안 마셨냐고 물어보는데 또 왜 그딴 표정 지어? 내가 잘못했어?”

“아, 아니, 에요…….”

금방이라도 뺨을 갈길 것 같은 눈빛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게다가 가까이 다가온 노엘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위압적이었다.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음료수를 가방 속에 밀어 넣으려고 하자, 노엘이 억지로 음료수를 가져가 뚜껑을 따서 내 앞으로 내밀었다.

“마셔.”

“네?”

“마시라고. 직접 입에 갖다 줘?”

“아, 아뇨. 죄송해요.”

여기서 집까지 고작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차를 탔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10분 정도면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노엘의 시선을 감당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결국, 덜덜 떨며 노엘이 내민 음료수를 입에 머금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다 마셔.”

노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호의적인 태도를 내비치는 듯한 뉘앙스라 얼떨떨하기만 했다. 하지만 곧 노엘의 미간이 좁혀졌다.

“전부 다 마시라고. 그러려고 산 거 아냐?”

무리한 요구였지만, 맞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수를 들이켰다. 오렌지 특유의 향이 입 안에 가득 찼다. 손바닥만 한 음료수병을 한꺼번에 비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맞는 것보단 나았다. 입가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것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들이켰다.

음료수를 다 비워냈다. 내 입술은 주스로 번들거렸다. 괜히 느낌이 좋지 않아,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내려고 했다. 그때 노엘이 내 손을 낚아채었다.

“개새끼, 나 봐.”

“왜, 왜 그러세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잘 마셔서.”

노엘의 시선은 어딘가 이상했다.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한 눈빛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잘못한 게 분명했다. 노엘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가운데에 놓은 가방을 바닥 아래로 내려버렸다.

“유진.”

어느샌가 노엘과의 간격이 좁혀져 있었다. 노엘은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며 내 입가를 쓸어 만졌다. 등골 위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려 갔다.

“유진, 집에 가서도 그림 그리고 싶어?”

“무슨, 흣…….”

답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노엘은 내 귓불을 잘근거리면서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커다란 손이 내 살결을 배회하며 유두를 살살 비틀었다. 소름 끼치는 감각에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자 노엘이 턱을 움켜쥐며 눈을 마주치게 했다.

“이렇게 잘 받아먹는데 좆은 왜 못 빨까.”

“무, 무슨…….”

“키스해 봐.”

이곳은 학교 강의실이다. 빈 강의실이지만, 키스할 만한 공간은 아니다. 여기서는 할 수 없다. 노엘과의 키스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강의실에서 이런 행위를 할 수 없었다.

“괜찮아, 아무도 안 들어 와.”

확신하는 눈빛에 입술을 달싹이던 찰나, 노엘의 손이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 하반신을 뭉근하게 자극했다. 정조대가 꾸욱 눌리자, 두려운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곤란했다. 여기서는 할 수 없다. 노엘의 옷깃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좆 빨라고 하진 않았잖아? 키스하라고.”

“여, 여기선 안 되는…….”

“그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된다는 거지?”

“읏…!”

노엘이 내 티셔츠를 어깨까지 올리고는 가슴팍 위로 고개를 묻어, 혀를 굴렸다. 말캉한 살덩이가 유두를 배회하자, 살결 위로 소름이 돋아났다. 쾌락은 그저 미미했다. 누구한테 들킬지 모르는 두려움과 아래를 꾹 누르는 소름 끼치는 감각만 느껴질 뿐이다. 더는 버틸 수 없어, 노엘의 손목을 붙잡았다.

“흐,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지, 집에서 해드릴게요. 여긴 안 돼요, 제발…….”

“그럼, 키스해. 간단한 걸 왜 못하냐고.”

노엘은 뺨을 때리지 않았다. 그저, 하반신 위로 손을 올리고 다른 손에 열쇠를 끼워 흔들거렸다. 정조대의 열쇠였다. 역시나 선택권은 없었다. 입술만 맞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두 눈 질끈 감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곧 내가 하고 싶지 않은 행위가 이어졌다.

“죄송해요, 진짜 못 하겠어요.”

포개었던 입술을 떼어냈다.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집요한 눈빛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틀었다. 다른 행위 역시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숨결을 나누고 시선이 얽히는 그 느낌이 싫었다. 처음으로 몇 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집 가서 할, 흣…!”

“이따위로 입 놀릴 시간에 키스하는 게 더 빠를 텐데.”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옷자락이 어깨까지 걷어져 상체가 훤히 보였다. 가슴팍이 대놓고 드러나는 자세에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노엘의 손이 더 빨랐다.

차가운 손이 내 유두를 지분거리며 비틀어댔다. 간질거리는 느낌이 심장을 옥죄는 것 같아 무릎이 덜덜 떨려왔다. 누군가 볼 것 같은 두려움과 함께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아까 마신 음료수가 화근이었다.

“수업 들을 때 이 자리에 앉았어?”

“네, 네…….”

“매번?”

“흐…….”

“대답해, 유진.”

노엘이 이를 세워 부풀어 오른 유두를 잘근거렸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 끼치는 기운에 흠칫 떨어댔다. 맞을까 봐 밀어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자 노엘은 입술을 떼어내며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여기서 더 해야겠다. 개새끼가 여기 와서도 나한테 박히는 상상할 수 있게.”

“그런 상상 안, 하, 하지, 흐…….”

“소리 내면 정말 누가 올지도 몰라.”

노엘은 유두를 입에 머금고 사탕 먹듯이 혀를 굴렸다. 하반신을 뭉근하게 눌러대는 손길에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갔다. 누가 오면 어쩌나. 누가 이 소릴 들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밀어낼 수 없다면 견딜 수밖에 없다.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흐, 하, 하지 마세요. 집 가서, 할, 아윽…!”

버둥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짜악! 불복종의 대가로 뺨이 돌아갔다. 어쩐지 오늘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끅끅거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씨발, 키스 한 번 하는 게 뭐 이렇게 힘들어?”

노엘은 낮은 목소리로 씹어 뱉듯 얘기했다. 목덜미에 닿은 숨결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얼한 뺨에 울음만 끅끅 삼켜내었다. 맞으니까 속이 편했다. 서럽지만, 더는 건드리지 않아서 괜찮다고 겨우 내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윽!”

노엘이 손찌검을 하고는 내가 입은 옷을 전부 벗겨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억센 손아귀를 막을 힘 같은 건 없었다. 당연하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그러니까 정조대 하나만 걸친, 수치스러운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놀라 울음도 나오지 않는 순간이다.

“마음대로 해, 말 안 듣는 개새끼는 나도 필요 없어.”

“노, 노엘!”

노엘은 나를 밀쳐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손에 들린 옷가지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수치스러운 꼴로 남아 있을 순 없다. 심장이 쿵쿵대며 미친 듯이 뛰어 댔다.

왜 나는, 내 위치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발버둥 치려는 걸까.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노엘보다도 멍청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 할, 게요. 잘, 못했어요. 다 할, 흐으… 테니까…. 이러지, 마세요….”

까만 바짓단을 붙들고 매달렸다. 절박하고 처절하게 애원하라는 그의 명령이 떠올라 자존심도 내팽개친 채 잘못을 빌었다. 울고 싶었다. 아니, 이미 울고 있었다. 그나마 노엘에게서 자유로웠던 곳인데 서서히 침범당하는 것 같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하고 싶지 않은 행위지만, 지금은 별수 없다.

“왜 자꾸 날 못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흐, 제가, 흐윽… 자, 잘못했…….”

“분명히 네가 한다고 했어, 유진.”

“네, 제, 제가 하고 싶어서…그런, 흐으….”

“한 번만 더 싫다는 소리 나오면 씨발 이거 창밖으로 던져 버릴 거야.”

노엘이 뭉친 옷가지를 책상 위에 집어 던졌다. 툭 소리와 함께 볼품없는 천 쪼가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눈물을 삼킬 뿐이다.

“이리 와.”

“흐…….”

노엘이 내가 앉았던 의자를 톡톡 두드렸다.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노엘의 앞에 서 있었다. 노엘은 나를 끌어당겨 가차 없이 의자 위에 앉혀 주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워? 네가 하고 싶어서 온 거잖아.”

커다란 손이 내 뺨을 쓸어내리며 목덜미를, 가슴팍을, 허리를 지분거렸다. 뱀 한 마리가 내 몸 위를 기어 다니는 느낌이다. 언젠간 사귀는 사람이 생긴다면 온 마음을 담아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렇게 여겼던 애정표현을 살기 위한 도구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서러웠다.

“하고 싶다며.”

나른한 목소리에선 미안함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노엘은 여유로운 손길로 내 사타구니를 천천히 쓸어 만졌다. 정조대 위로 드문드문 느껴지는 손길에 배뇨감만 더해졌다.

어떻게든 발버둥 쳐도 모든 흐름은 노엘의 뜻대로 흘러갔다.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노엘에게 입술을 맞대었다. 어떻게든 틈을 주지 않으려고 이를 꽉 깨문 채 입술을 포개었다.

“아흑…!”

하지만, 노엘은 쉽게 놓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단단한 손가락이 내 유두를 비틀자, 저릿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 타액에 젖은 살덩이가 유영하듯 비집어 들어왔다.

정염으로 발갛게 물든 혀는 소름 돋는 감각을 선사하며 내 안을 침식했다. 볼 안쪽 살이 건드려지자, 생경한 느낌에 노엘의 옷깃을 붙잡았다. 기분 좋은 행위가 아니었다. 혓줄기를 빨아들이고 옭아매는 부드러운 감각은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빨려가는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을 안겨 주었다.

“흐…….”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를 탐하려는 서늘한 눈동자만 바라봤다. 노엘은 내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끈덕지게 쳐다보고 있다. 시선만큼이나 집요한 입술에 숨이 막혔다.

이성을 통제할 수 없다. 혓줄기를 빨아들이는 강한 자극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런 모습을 누구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노엘에게 삼켜질 것 같은 무서움이 앞서 나갔다.

“하, 하아…이, 이제 지, 집에 가요. 제발…….”

겁이 나서 입술을 떼어냈다. 츄읍, 하는 물기 젖은 소리와 함께 타액이 늘어졌다. 수치스러운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노엘이 내 입술을 엄지로 살살 쓸어 만지며 나른한 목소리를 흘렸다.

“집은 왜?”

“그거 하면 집에 보내 주신, 다고 했잖아요.”

“그게 뭔데?”

“키, 스요.”

고요한 강의실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노엘은 픽 웃으며 내 허리만 지분거렸다. 쓸어 올리는 손길을 따라 소름이 돋아났고 배뇨감이 아랫배를 꾸욱 눌러댔다. 덜컥 겁이 났다. 수치스러운 실수를 이 자리에서 해버릴 것 같은 기분에 눈물이 부옇게 차올랐다. 반면 노엘은 입꼬리만 올리면서 손에 걸린 열쇠를 빙글빙글 돌릴 뿐이다.

“하면 보내 주신다고 했잖아요.”

“아깐 하고 싶다며.”

“그, 그건, 흐으…….”

귓바퀴부터 귓불을 살살 쓸어 만지는 손길에 어깨를 움츠렸다. 노엘은 만지작거리던 귓불을 입에 물고는 핥아 올렸다. 물기 젖은 소리가 귀속으로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말캉한 혀에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하던 순간, 무릎이 덜덜 떨렸다. 강의실 문을 쳐다보다가 내 앞에 있는 노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엘은 허벅지 안쪽에 찍힌 낙인을 살살 만지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내가 언제 키스만 하라고 했어?”

“그, 그게 무, 무슨 말씀이세요.”

“형편없이 해놓고 바라는 건 많아. 유진,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지.”

노엘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말이야 올려놓은 거지, 펼친 거나 마찬가지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키, 스만 한다고 하셨…… 흐윽!”

“키스는 입술에만 하는 게 아니잖아.”

노엘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책상 위에 앉혀 주었다. 매일 같이 그림 그리던 책상이다. 그 책상에 앉아 수치스러운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파르르 떨수록, 바스락거리는 코트 소리가 귀속으로 파고들었다. 누군가 여길 들어오면 어떡하지? 누가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떡하지? 내 쓸모없는 몸뚱어리는 그저 바르르 떨기만 했다. 떨림이 짙어질수록 아래에 물이 찬 느낌은 강렬해졌다.

“아, 바지만 벗길 걸 그랬나. 그것도 나름대로 꼴리는데.”

“흐, 보내 주세요. 집, 가서 해드릴 테니까.”

“뭘?”

“키스만 한다고 하셨, 아흑…….”

“역시 솔직하질 못하네.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잖아.”

멍청한 사람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게 답답했는지, 입안으로 노엘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에 끅끅거리며 눈물만 터트렸다. 모든 게 고통스러웠다. 거친 손놀림에 컥컥거리며 손가락을 핥을 수밖에 없었다. 목구멍을 툭 건드리는 손길에 헐떡거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곧 노엘의 손이 빠져나갔다.

“유진, 크게 소리 내면 다른 사람들이 금방 알아챌 거야. 널 위해서 문 잠근 게 물거품이 된다고.”

“흐, 윽…….”

“그렇게 울면 안 풀어주고 싶은데.”

“아, 흐…!”

노엘이 내 허벅지를 활짝 벌리고 타액이 묻은 손가락을 내벽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매번 하는 데도 적응되지 않는 고통이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그러자 노엘은 보란 듯이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아니, 두 개가 아닌 세 개가 들어왔다.

“아, 윽…!”

내 안에 침범한 손가락들이 빙글 돌아가며 내벽을 건드렸다. 오돌토돌한 점막이 건드려지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쾌감 때문이 아니다. 더는 노엘을 밀어낼 수 없다는 무력감에 상황을 포기한 것이다.

억지로 밀고 들어온 손가락 때문에 아래가 찢어질 것 같다. 살갗 에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어딜 봐도 고통뿐인 행위다. 입을 틀어막은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집에 갈까?”

“흐읍… 네, 지, 집에 빨리, 흐…….”

“근데 왜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어? 해달라고 해서 해주는 거잖아.”

“제, 제가 다 잘못, 했…….”

내벽 안에 들어간 손가락이 움직였다. 무언가를 건드린 건지, 어쩐지 가슴이 철렁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거부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 발끝을 오므렸다.

노엘의 손길에 맞춰 허리가 움직여졌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저절로 입이 벌어져 타액이 뚝뚝 흘러내렸다. 무서웠다. 내가 느끼지 못한 감정 역시 노엘의 손에 주도되고 있었으니까.

“응, 알아. 너 잘못한 거. 누가 음료수를 그렇게 마시래?”

“흐으. 이거, 싫, 죄송, 아흑…….”

손가락 하나가 연이어 들어왔다. 입술을 짓이기는 힘이 더해졌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은 배로 늘어났다. 그 와중에도 싫다는 소리를 했다고 죽을 것 같아서 욱욱거리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수치스럽게도 노엘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 아래를 꾸욱 누르는 감각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쌓여있는 무언가를 배출하고 싶지만, 이곳은 내가 매일 같이 수업 듣는 강의실이었고 아래가 막혀 있어 멋대로 할 수 없었다.

“흐… 제, 발, 그, 흐윽…….”

머릿속이 바싹바싹 하얗게 타들어 갔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내 안을 쑤셔대는 손가락에 맞춰 엉덩이만 들썩거렸다. 달뜬 열기는 통증으로 돌아왔다. 배뇨감을 견디지 못해 엉엉 울음을 터트린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노엘은 이런 내 모습을 힐끗 보더니 유두를 지분거리며 속삭여 주었다.

“시키는 대로 다 한다고 했지?”

“하, 할 테니까 풀, 어 주세요. 흐으….”

“여기서 내가 좆 빨라고 해도 할 거야? 네가 맨날 앉는 이 자리에서 구멍 쑤셔댄다고 해도?”

“흐어엉… 흐으, 제발…….”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어떤 요구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칠 것 같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져 원초적인 욕구만 쫓아가고 있었다.

인간과 짐승은 이성의 유무로 구분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은 노엘이 주는 수치심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짐승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부정하고 고갤 저어봐도 내보내고 싶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싫어, 무서워, 그만하고 싶어. 제발. 저항할수록 두려운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우리 개새끼, 이런 몸으로 어딜 돌아다니겠다는 건지.”

“흐으….”

노엘의 손가락이 빠져나가면서 정조대 구멍에 열쇠가 꽂혔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묵직했던 하반신이 헐거워졌다. 정조대가 발목까지 내려왔다.

이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체를 헐떡거리며 떨어진 옷가지를 잡으려고 바둥거렸다. 힘겹게 티셔츠를 들어 올리던 그때, 노엘이 내 손목을 움켜쥐고는 억세게 끌어당겼다.

“어디 가, 허락도 안 했는데.”

“하지 마세, 으…….”

끌려간 곳은 노엘의 품이었다. 노엘이 내 손을 잡아 딱딱해진 성기를 감싸 쥐게 했다. 나 스스로 성기를 잡은 꼴이다. 분명 내 몸인데도 손바닥에 감긴 느낌은 소름 끼치기 짝이 없다.

“내 개새끼는 이런 거 모르니까 친절히 알려줄게.”

“아, 흐…그, 그러지…….”

노엘이 내 손을 깍지 끼듯 붙잡고 천천히 흔들었다. 노엘의 손에 놀아나는 내 손과 성기를 눈 뜨고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뱃속에서 돌아다니는 물은 그만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유진, 이거 누구 손으로 움직이고 있어?”

“노, 읏…!”

목덜미에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노엘이 이를 세워 잘근거린 탓에 말을 할 수 없었다. 깍지낀 손이 더더욱 빨라지면서 성기를 움켜쥔 내 손 역시 속도를 높여 움직여야만 했다.

노엘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정답이 아닌 모양이었다. 서러운 눈물 줄기가 뺨을 타고 툭 떨어졌다. 수치스러운 대답을 뱉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 제 손, 아, 흐…….”

“응, 그럼 내 개새끼 여기서 자위하고 있는 거네?”

“아, 아니. 하, 윽…….”

“네 손으로 직접 움직인다면서.”

노엘이 픽 웃으면서 손을 더더욱 흔들어댔다. 깍지낀 손이 움직이자, 그 반동으로 흔들어댈 수밖에 없었다.

절대 느껴서는 안 될,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이 발끝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상해졌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느낌에 덜컥 겁이 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곳에선 배출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참아보려 아랫배에 힘을 주었지만, 이상한 느낌만 짙어질 뿐이다.

“싫, 아윽…….”

“싫다고 하면 그냥 버리고 간다고 했지?”

“죄, 송해요. 흐…….”

노엘이 내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물며 혀로 쓸어올렸다. 여전히 내 손을, 그러니까 성기를 감싸 쥔 손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위아래로 흔들었다. 결국, 나는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는 이상한 기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출했다. 더러운 액체가 내 것에서 줄줄 흘러나오고 책상 위에 깔린 코트가 더럽혀졌다.

“흐어어엉…….”

스스로가 역겨웠다. 역겹다 못해 경멸스러웠다. 내게 이런 행위를 시킨 노엘보다 나 자신이 싫었다. 그저 원색적인 본능에 이끌려 짐승처럼, ‘개새끼’처럼 아무 저항 하지 못하고 천박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에 눈물만 터트렸다. 하지만 노엘은 앞으로 다가와, 내 허벅지를 활짝 벌리고 바지 버클을 풀어 성기를 꺼내었다.

“왜 울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잖아.”

“끄, 흐…….”

“아, 더 해줘야 그만 울려나.”

“아윽!”

노엘은 내 골반을 붙잡고는 성기를 밀어 넣었다.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에도 소리 지를 수 없었다. 팔뚝을 깨물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켜 내려고 했다. 하지만 노엘의 손찌검이 돌아와 더는 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신 기도 같은 거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분명히 한 대만 맞게 해달라고 빌었는데도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히 바라지 말아야 할 걸 원했다는 듯이. 줄줄 새어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한 채 노엘을 받아들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왜. 씨발, 그딴 표정을 짓고 있어?”

삐걱거리는 책상 소리에 눈을 감았다. 짝! 뺨이 돌아갔다. 흉포한 성기가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와, 내 안을 헤집어댔다. 손가락이 들어왔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가만히 눈을 떠서 나를 무너뜨리는 노엘을 바라봤다. 노엘은 나를 망가뜨리기 위해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만 같다.

“이, 러면 안 되잖아, 요.”

“뭐?”

“가족, 흐으…. 형, 이잖, 아요.”

노엘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를 어떤 표정으로 쳐다보는지 알고 싶지 않다. 노엘이 하는 행동은 우리 사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끅끅 울음만 흘려댔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볼품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끅끅거리며 어깨를 떨어대던 그때, 노엘이 내 손을 거칠게 잡아 내리고는 시선을 마주치게 했다.

“가족? 형? 씨발, 개 엿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윽!”

힘없는 반항은 거기까지였다. 포악한 침입이 시작되면서 더는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만해달라는 말 대신에 삐걱거리는 책상을 움켜쥐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너덜거리는 골반은 고통에 이기지 못하고 절규했다. 어느덧 팔과 다리에는 벌건 손자국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노엘은 만족하지 못한 사람처럼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헉, 숨이 막혔다. 내 안을 빠짐 없이 탐하는 움직임에 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노엘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삐걱거리는 소리와 살 부딪치는 소리는 커졌다. 아프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했다.

“이런 거, 하으…….”

“왜? 싫어? 형이랑 동생이, 좆질하는 게 역겨워서 그래?”

“아, 흑…….”

대답하지 못하고 책상만 꽉 붙들었다. 연신 박아 대던 노엘은 내 손을 붙잡아 억지로 시선을 마주치게 했다. 모든 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다. 나를 옭아매는 하얀 손도, 하반신에 고통을 안겨주는 살덩이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린 눈동자가 제일 두려웠다.

“네 이름이 달라진 게 없는데 어떻게 동생이야? 이 개새끼야. 집에 머문다고 해서 다 가족이야?”

“제, 흐…….”

“그리고 형이, 동생 씹어먹지 말라는 거, 누가 정했는데.”

노엘이 제 어깨 위로 내 다리를 걸치고 퍽퍽 박아댔다. 추삽질하는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귀두 끝을 입구까지 빼내었다가 퍽, 박아대는 움직임에 시야가 흔들렸다.

사타구니를 타고 미끄러운 액체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것이 정액인지 피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골반이 휘어 잡혀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제발…….”

발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노엘은 내 허리를 억세게 붙들어 돌려세우고는 집요하게 추삽질을 했다. 책상 위로 가슴팍이 짓눌려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쓰라리다 못해 찢겨 나가는 통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안에서 또 한 번 끔찍한 흔적이 느껴졌다. 허벅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멀건 액에 눈을 감았다. 눈물 줄기가 툭, 힘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어디까지 망가져야 할까. 고통도, 두려움도, 절망도 이제는 느낄 수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가라앉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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