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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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난데없이 희수와 함께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희수가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옷을 입어 봤다. 하지만 평소에 청바지나 티셔츠, 겨울이 되면 스웨터 종류 정도나 입고 다니는 편이라 내 옷장에는 격식 있는 옷들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기본 셔츠도 낡아서 허름한 느낌이 묻어났다.

“안 되겠어. 비상사태야.”

“그 정도야?”

“우리 쇼핑하러 가자.”

희수가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결국, 우리는 예정에 없는 쇼핑을 하게 됐다. 20분 정도 차를 타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울렛에 갔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안에서 바쁘게 득실거리는 사람들이 보여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아, 난 솔직히 쇼핑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승규야, 얼른 와.”

“응, 알았어.”

“바지는 어차피 잘 안 보일 테니까 별로 상관없는데, 단정한 셔츠 하나는 확실히 필요해.”

내가 주춤대는 걸 눈치챘는지, 희수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재촉했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남성복을 판매하는 층으로 올라갔다. 희수는 몹시 익숙한 태도로 매장을 휘저었다. 자신의 눈에 띄는 옷들을 집어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나와 번갈아 보는데, 불가피한 쇼핑이라고 하고 나왔지만 그런 희수는 솔직히 조금 신나 보이기도 했다.

“너 피부가 어두운 편이라서, 그레이 톤이 괜찮을 것 같은데.”

“희수 네가 잘 알겠지.”

분명히 내 옷을 사는 거였는데, 나는 어느 순간 모든 선택권을 희수에게 위임하고 있었다. 희수는 평소에 보면 그냥 얌전하게 입는 것 같으면서도 패션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뭔가 나보다도 나랑 더 잘 어울리는 옷에 대해서 더 훌륭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 같았다.

“어때?”

희수가 시키는 대로 깃이 좀 빳빳한 진회색 셔츠를 입고 나왔다. 이렇게 각 잡힌 셔츠류는 평소에 잘 입지를 않아서 좀 어색했다. 그래도 희수가 골라준 거니까 괜찮겠지? 자신이 완벽하게는 없는 상태에서 희수 쪽을 돌아보았다.

“이거 살까?”

희수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매장을 돌아다니며 다 엇비슷해 보이는 셔츠를 보다 보니 나는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이거 사고 그냥 집에 가서 희수랑 뒹굴뒹굴하고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뜬 희수는 내 전신을 유심하게 스캔했다.

“아냐 아냐. 이건 어깨가 좀 부족하다. 팔도 약간 짧고.”

“아. 그런가?”

“승규 너 이제 보니까 좀 서양인 체형이네. 평소에 옷 살 때 어떻게 골라?”

“그냥…… 대충 눈에 들어오는 거 사지 뭐.”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셔츠는 정답이 아니라는 것 같았다. 나는 얌전히 탈의실로 들어가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진회색의 적당히 각 잡힌 셔츠라고 살 것도 이미 확실하게 정해졌는데, 이곳저곳 헤매야 하는 이유를 나로서는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후로도 네댓 개쯤의 매장을 돌아다니고 희수가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내 손에는 셔츠가 담긴 쇼핑백이 들렸다.

“오늘 힘들었지?”

잠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데, 세면대 근처로 다가온 희수가 나긋하게 웃으며 나에게 팔짱을 껴왔다. 눈앞에 있는 거울을 보니 나란히 서 있는 희수와 나의 얼굴이 보였다. 좀 지루해하는 거 티가 났나? 약간 열없어진 기분으로 나는 씩 웃었다.

“이런 거 많이 안 해봐서.”

희수가 무슨 뜻인지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 팔짱을 낀 내 몸에 살짝 기대더니 눈을 푹 내리감았다. 나는 거울로 비치는 희수의 우아한 얼굴을 거의 입을 헤벌리고 바라보았다.

“미안. 우리 부모님 되게 꼰대라서 은근히 그런 거 의식하셔.”

“그래?”

“응. 막 무조건 비싼 옷을 입으라는 건 아닌데, 어른 앞에서는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이어야 한다고.”

사실 우리가 난데없이 쇼핑하겠다고 야단법석을 피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희수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님께서는 그래도 첫 출근까지 했으면서 어떻게 부모님 한번 찾아뵐 생각을 하지 않겠냐고 꾸지람을 하셨다고 했다.

희수가 생각 못 하면 나라도 챙겼어야 하는 일인데, 나도 정비소 일이 바쁘고 희수도 새 직장 생활을 시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본가를 같이 찾아뵙는 게 좋을까, 솔직히 조금은 머뭇거려지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희수가 뜻밖의 말을 전했다.

아버지께서 지금 만나는 친구를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했다. 다음 주 주말에 서초동의 한정식집에 약속을 잡아 놨으니, 희수네 부모님과 함께 넷이서 식사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늘 희수네 부모님이 나의 존재를 완고한 태도로 거절하고 부정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먼저 내게 손을 뻗어 주셨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희수네 부모님께서 나를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나 역시 근사하고 떳떳한 모습이고 싶었다. 긴장도 많이 됐다. 그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희수 역시 적극적으로 나의 옷장을 뒤지고 결국 쇼핑에 나서기까지 이르렀다. 희수 말대로 아버님께 좋은 인상을 남길 수만 있다면야, 이깟 쇼핑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내 몸을 붙들고 있는 희수의 등을 물기 어린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제 갈까? 빙그르 회전한 희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조명을 반사하는 커다란 눈동자가 투명하게 반짝거렸다.

“근데 승규야, 너 그렇게 입으니까 되게 색다르고 멋있더라.”

풋.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색하고 답답한 차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희수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까치발을 디뎌서 몸을 들어 올린 희수가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왔다.

“빨리 집에 가서 너랑 자고 싶어.”

속삭이듯 도발하는 그 말에는 내 얼굴에 있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

희수가 골라준 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희수네 부모님과의 점심 약속이 기다리고 있는 날이었다. 서초동에 있는 한정식집에 정해진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희수와 함께 종업원에게 안내받은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많이 긴장됐다. 얼굴이 나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희수가 테이블 아래로 내 손을 꼭 잡아 왔다. 꽉 하고 아귀에 힘을 단단하게 주었다. 나는 그런 희수를 돌아보며 슬쩍 웃었다.

“엄마 아버지 오셨어요?”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방문이 열리고 희수의 부모님이 안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들어 올리니 조금은 냉랭한 얼굴을 한 어머님과 겸연쩍은 얼굴을 한 아버님이 보였다.

“자리에 앉게나.”

나는 다시 한번 아버님께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과 물김치, 샐러드가 서빙되었다. 조용한 와중에 숟가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어색하고 뻣뻣한 자리였다. 내가 먼저 나서서 대화를 주도해야 하나 싶다가도, 오히려 그게 예의 없는 행동처럼 보일까 봐 꺼려졌다.

“큼큼.”

와중에 입가에 다기를 가져가 입술을 슬쩍 적신 아버님이 목을 가다듬었다. 느릿한 시선으로 나와 희수를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희수 너 회사는 잘 다니고 있냐?”

“네. 이번 주까지 OT기간이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고.”

“월요일에 정식으로 부서 배정돼 봐야 알아요.”

희수도 평소보다 조금 딱딱한 표정이었다. 희수와 아버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머님은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못하면서도 본인의 아들에 대해 관심을 유심히 기울이고 있었다.

“누상 아버지가 말하지만, 사회생활에 들어가면 가장 중요한 게 인간관계야.”

“네.”

“상사와 동기를 비롯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늘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알았어요, 아버지.”

고개를 작게 끄덕인 희수가 살짝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그동안 희수의 부모님도 희수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많이 궁금하셨을 것 같다. 여전히 어머님은 입을 꼭 다문 채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버님께서는 희수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캐물으셨다.

“어디서 지낸다고 했지?”

“부천에서 신림으로 이사 왔어요.”

“그랬구나.”

“투룸에서 승규랑 둘이 사는데 좋아요. 회사랑도 안 멀고.”

“……회사 부근에 아버지가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얻어줄까?”

“아뇨, 괜찮아요. 아버지.”

희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잡채와 갈비찜, 연포탕 따위를 놓고 나갔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진수성찬이었는데 딱히 입맛이 돌지 않았다. 아버님의 제안을 듣자 솔직히 마음 어딘가가 불편했다. 소담하게 접시에 담긴 음식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그래, 자네.”

아버님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한 발짝 늦게 깨달았다. 나는 움찔 몸을 떨고 느릿하게 아버님을 바라보았다. 오십 대 중후반쯤이 되어 보이는 아버님은 초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녹록지 않은 인상과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예, 아버님.”

“…….”

아버님이 한참 아무 말 없이 나를 살펴보았다. 마치 심판대에라도 올라간 것처럼 심장이 따끔따끔했다.

“그때 자동차 정비 일을 한다고 했었나.”

“네, 그렇습니다.”

“…….”

“지금 봉천동에 있는 수입차 정비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흠흠. 아버님이 다시금 작게 목을 가다듬었다. 아버님의 시선이 흔들림 없이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나와 대화를 시작하자 모른 척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런 말 좀 갑작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네만, 그래도 애비 된 심정으로 궁금해서 말이야.”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님.”

“자네는 앞으로 미래 계획이 어떻게 되나?”

내게 질문을 던지시는 아버님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고개를 돌린 어머님이 내가 앉은 쪽에 힐끔 시선을 던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일단은 기술을 좀 더 배워서 자동차 정비기사 자격증을 따려고 합니다.”

“…….”

“계속 일하면서 자본금을 좀 모은 후에는 수입차 전문 정비소를 창업하고 싶습니다.”

아버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이셨다. 희수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나 스스로도 미래에 대해서 이전보다 훨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희수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최선의 계획을 세울지라도, 큰 사업을 하신다는 희수 아버지의 눈에는 썩 차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를 외면하고 있는 어머님이 인상을 옅게 찌푸리셨다.

“왜 자동차 정비사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예.”

아버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밀려오는 긴장에 나는 도자기잔에 담긴 물에 입술을 적셨다. 내 바로 옆에 앉은 희수가 조마조마해하는 게 보였다. 괜찮다는 듯 희수에게 슬쩍 웃어주고 다시 아버님의 얼굴을 보았다.

“제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고등학생 때 할머니를 여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

“대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제가 가장 잘 알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자동차였습니다.”

“…….”

“아는 형이 일하는 정비소에서 일을 돕다가, 자연스럽게 정비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희수의 집안은 내가 살아온 환경과는 다르게 부족함이라고는 없이 밝아 보였다. 그래서 희수의 부모님들께 내가 가진 어둡고 불우한 과거를 꺼내놓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끄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

“그렇구먼.”

아버님은 약간은 조심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문득 내가 무표정으로 있으면 좀 무서워 보인다는 몇몇 사람들의 말이 생각이 나서, 서글서글한 웃음을 황급히 얼굴에 띠웠다. 조금은 짜증스럽다는 듯 샐쭉하게 토라져 있는 어머님의 시선이 드문드문 내게 닿아오는 게 느껴졌다. 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식사가 이어졌다.

“엄마 아버지.”

“…….”

“저 승규랑 사는 거 너무 좋아요.”

침묵을 깨트린 희수가 툭 하고 끼어들었다. 조금 응석받이 같은 말투였다. 놀라서 희수를 돌아보니 희수는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희수가 지나치리만큼 당당하게 선언하자 나는 얼굴이 살짝 화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눈가를 슬쩍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아버님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님의 눈가는 뾰족하게 좁혀 들었다.

“이번 학기에 논문 마무리 짓고 좋은 회사에 취업한 것도, 다 승규가 옆에서 저에게 용기 주고 응원해 줘서 무사히 할 수 있었어요.”

“…….” 

“승규는 제가 배울 게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

희수가 부모님 앞에서 나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좋게 말해주는 게 고마운데, 동시에 어딘가 후끈후끈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뜨끈해진 얼굴을 아래로 푹 숙였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희수의 부모님께서 동시에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두 분 모두 다소 동요하고 계셨다. 나를 가늠하고 판단하려고 하던 아버님의 시선이 조금은 누그러져 있었다. 여전히 어머님은 못마땅한 것 같다는 눈치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나를 향하는 눈동자가 슬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희수 너 회사 다니는데 입을 옷은 충분하니?”

내게서 고개를 다시금 홱 돌린 어머님이 희수를 향했다. 어머님이 화두를 별안간 전환하며 질문하자 희수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네?”

“월급도 안 받은 애가 무슨 돈으로 옷을 사려고.”

“아, 엄마.”

“이따가 카드 줄 테니까 받아가라.”

“……저 진짜 괜찮은데요.”

“나중에 월급 받으면 갚든가.”

딱 본인 할 말만 깔끔하게 마치신 어머님은 깔끔한 손길로 다시 식사를 계속하셨다. 희수는 얼버무리면서도 어머님의 제안을 완전히 거절하지는 못했다. 이후로도 아버님은 희수의 생활과 관련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셨고, 희수는 얌전히 아버님의 궁금증에 답을 했다.

“파란색 QM3요.”

“여깄습니다, 손님.”

식사를 마친 후 룸 밖으로 나왔다. 발레 파킹해둔 차의 키를 찾고 희수가 있는 쪽을 돌아보는데, 어머님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희수가 어머님을 닮았는지 어머님도 눈이 굉장히 크셨다. 찰랑찰랑 호수 같은 희수의 눈동자와는 다르게, 어딘가 단단하고 딱딱하게 뭉쳐 있는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엄마.”

희수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감지했는지, 그런 어머님의 옆에 다가갔다. 식사하는 내내 내가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아는 척을 조금도 하지 않으셨던 어머님은 여전히 나를 그대로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계셨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말만 조용히 뱉으셨다. 나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 어머님은 그런 나를 내버려 두고 미련 없이 돌아서셨다.

“…….”

“…….”

희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보고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나는 그런 희수의 얼굴을 보면서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희수는 종종 엄마랑 얘기하면 꼭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라고 씩씩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 벽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마냥 견고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휴.”

운전대를 잡자 절로 한숨이 터졌다. 희수와 함께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희수의 부모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싫은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온전히 편할 수는 없었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만찬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오늘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자기야, 오늘 고생했어.”

희수가 운전대 위의 내 오른손을 반지를 낀 왼손으로 겹쳐 잡았다. 희수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우리의 약속을 응시하자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물론 힘들긴 했지만, 희수와 내가 함께 살아간다면 앞으로 계속 마주쳐야 할 분들이었다.

“아니야, 이런 거로 뭘.”

그래도 오늘의 식사는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난하게 흘러간 편이었다. 아버님의 질문은 분명히 부담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나를 희수의 짝으로 완전히 받아들이기 전에 그런 부분들을 궁금해하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저번에 본가를 찾았을 때는 나를 전혀 아는 척하지도 않으시던 어머님께서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신 것이 내심 기뻤다.

“희수야, 그냥 이렇게.”

“응.”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그분들도 문을 열어주시지 않을까?”

그 질문은 사실 나의 바람을 담고 있기도 했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희수의 손에 스르르 손깍지를 끼었다. 보들보들하게 감겨드는 새하얀 손가락의 감촉이 좋았다. 무슨 유치원생 발표하는 것처럼, 부모님 앞에서 나와 사는 게 좋다고 공언했던 희수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서 조금 웃겼다.

“승규야.”

“응.”

희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대신 내 옆에 앉은 희수를 돌아보았다. 단정하게 슈트를 입고 있는 희수는 언제나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를 또렷하게 향하고 있는 눈동자가 나긋하게 찰랑거렸다.

“있지, 너 정말 괜찮은 사람이니까.”

“…….”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으응…….”

“부모님도 결국은 알게 되실 거야. 우리 승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걸.”

말을 마친 희수가 빙그레 웃었다.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심박과 함께 마음이 온통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리는 것도 같았다. 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로 가득한 희수의 눈동자가 마음을 벅차게 했다. 나는 희수가 나를 믿어주는 게 좋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새 매 순간 희수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를 둘러싼 환경적인 부분을 극복하는 것도 있지만, 내면적으로도 더 알차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희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애인 말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해?”

장난기 섞은 질문을 던지자 웃음기가 어린 희수의 눈가가 찡긋거렸다. 희수가 겹쳐진 우리의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로 옮겼다.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는 나의 거친 손등에 말랑한 입술로 쪽 뽀뽀했다.

“몰라, 너한테 예쁘게 말하는 법 옮았나 봐.”

손등에 올려진 희수의 입술이 부드럽게 달싹거렸다. 심장이 간질거렸다. 사랑을 듬뿍 받고 볕을 쪼이며 자라난 희수는 구김살 하나 없이 찬란하게 빛났다. 나는 그런 희수를 언제나 동경하고 사랑했다. 희수가 가진 특유의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태도가 내 가장 깊은 곳의 그늘에도 따스한 빛이 되어 내렸다.

***

잠들기 전에 희수와 침대에 함께 누우면 말이 쉽사리 멈추질 않았다. 어두운 실내에서 우리는 희미하게 빛나는 서로의 눈빛에 의존하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속삭였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했다. 희수의 회사생활이기도 하고, 내가 일하는 정비소의 사정이기도 하며, 침대에 눕기 전에 같이 본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때로 함께했던 과거를 더듬고 있기도 했다.

희수가 언젠가 함께 바다를 보러 갔던 얘기를 꺼냈다. 그 덕택에 나도 먼지가 소복이 쌓인 기억을 쓸어내렸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였던 것 같다. 며칠간 시험을 치르느라 축 늘어져 비실비실하는 희수를 데리고 오이도에 갔었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희수가 원하는 걸 뭐든지 다 이뤄 주고 싶었다. 희수가 스치듯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 얘기를 듣고 곧장 실행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바람이 몰아치는 오이도에서 희수와 손을 잡고 바라보았던 바다는 정말 예뻤다. 평생 이대로만 희수랑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바다 보러 갈까?”

그때 나는 추워서 코끝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어린 희수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었다. 추억에 푹 잠겨있는 나를 깨우듯 희수가 살며시 말을 걸었다.

“바다 보고 싶어?”

“그냥. 너랑 같이 여행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하하. 나도.”

예쁜 입술로 예쁜 소리만 하는 희수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희수의 몸을 푹 껴안았다. 부드러운 몸을 쓸어내리듯 매만지니 간지럽잖아, 얕게 타박하는 장난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근데 진짜로.”

“그래. 못 할 것 없지?”

“금방 새해인데, 우리 바닷가 가서 해돋이 보자.”

아.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희수가 말한 대로, 정말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한창인 겨울이 우리를 지나가는 동안 희수와 나는 여전히 이렇게 함께였다.

미숙하고 불완전해서 모든 게 사실은 자신 없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 우리는 맞잡은 손을 꼭 붙들고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제 안팎으로 성장해 당당하게 현실을 버티고 설 수 있게 된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새롭게 바다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때마침 12월 31일이 일요일이었다. 희수와 나는 아침 일찍 강릉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떠나는 여행이라 마음이 설렜다. 희수도 마찬가지인지, 슬쩍 바라본 얼굴이 평소보다 상기되어 발갰다. 웃음이 슬쩍 나왔다. 희수가 좋아하는 아리아나 그란데 노래를 차 안에 쩌렁쩌렁 틀고 도심을 빠져나갔다.

점심 무렵에 강릉에 도착해서 시내 구경을 했다. 매일 보는 것과 조금은 다른 풍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떠 올랐다. 점심으로 순두부찌개를 먹은 후, 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재래시장 자체로는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희수랑 같이 돌아다니며 구경하니까 퍽 재밌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여기저기 가리키며 종알거리는 희수 덕에 나도 덩달아 온갖 곳에 흥미가 생겼다.

숙소는 신년 일출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정동진에 잡았다. 저녁으로 갈비를 먹고 나서, 또 한참을 운전해서 강릉 시내에서 정동진까지 향했다. 예약해둔 펜션을 찾고, 방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별로 무리 갈 만한 일을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도, 아무래도 종일 돌아다녀서 그런지 몸이 피곤했다.

벌써 창밖은 깜깜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간단하게 몸을 씻고 와서 침대에 풀썩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희수도 욕실에서 나왔다. 눈이 마주치자 희수가 슬쩍 웃었다. 물기에 젖어서 살짝 김이 피어오르는 하얀 피부가 뭐랄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잘 익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눈앞에 비치는 방의 풍경이 낯설어서일까, 나를 바라보며 유혹적으로 눈을 휘는 희수도 어딘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확실히 잠자리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조금 색다른 기분이 드는 것 같다. 희수를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도 곧장 다리 사이가 묵직해졌다. 애써 여행까지 멀리 온 마당에, 솔직히 처음부터 섹스는 당연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승규야.”

희수는 그대로 침대로 걸어오는 대신 중간에 멈춰 섰다. 난데없이 가방을 뒤적거렸다. 굽혔던 몸을 일으킨 희수는 어딘가 못되고…… 좀 음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뭐야?”

“짜잔.”

나는 침대로 다가온 희수가 나에게 넘긴 옷가지를 얼결에 받아들였다. 자세히 살피니 교복이었다.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복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해왔지 싶었다.

“교복?”

“응. 옛날 생각나지?”

“그러네.”

나는 조심스럽게 교복을 만져봤다. 희수가 대충 무슨 생각으로 가지고 왔는지는 눈치챘는데, 뭔가 이런 거 본격적으로 하기엔 좀 쑥스럽다고 해야 하나. 머쓱한 기분이 앞서서 솔직히 막 엄청 반갑지는 않았다.

“오늘 우리 첫 경험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런 나를 의식했는지, 희수가 내 옆구리를 살짝 쓸어내리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말을 마치고는 배시시 웃으며 은근한 눈짓을 보내는데, 그 유혹에는 도무지 넘어가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하. 나는 낮은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성욕이 확 당겨졌다.

이윽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고개를 내려 내 모습을 슥 훑어보는데 아무래도 어색했다. 희수는 첫 경험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지만, 이미 그때에 비해 때도 많이 묻고 여러 가지로 달라져 버린 내가 교복만 입는다고 열여덟 살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어울리지 않은 옷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겸연쩍었다.

“와.”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막상 교복을 입고 있는 희수를 보자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나는 말 그대로 입을 떡 벌리고 희수를 쳐다봤다. 셔츠 위에 넥타이를 매고 조끼까지 말끔하게 걸쳐 입은 희수가 나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내가 지난 7년간 한없이 그리워했던, 미워하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희수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런 희수를 마주하는 나는 단박에 열여덟의 소년으로 되돌아갔다. 오로지 그 애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승규야.”

“……어.”

“나 보고 싶었어?”

희수가 살랑살랑 눈웃음쳤다.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향수로 전신이 뭉클해졌다. 내게 느릿하게 다가온 희수가 나의 목덜미를 꽉 껴안았다. 상체를 단단히 붙이고, 쇄골 근처에 코끝을 파묻고 비벼댔다. 순간 강릉의 낯선 펜션이 고등학생 때 희수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학교의 옥상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

“…….”

“엄청.”

희수에게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는 스며 나오는 감정으로 꾹 눌려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에게 키스했다. 혀가 바쁘게 얽혀들었다. 감겨드는 혀끝과 함께 맞닿은 입술로 타액이 오고 갔다. 나는 간절해진 기분으로 희수의 입술을 빨았다.

“하아, 흐읏.”

입술이 슬쩍슬쩍 떨어질 때마다 희수가 가쁜 숨을 쌕쌕 몰아쉬었다. 희수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가가 촉촉해진 희수는 나의 목이 생명줄이라도 된 것처럼 꼭 껴안고 내게 매달렸다. 키스가 절박했다. 언뜻언뜻 스치는 눈동자가 견딜 수 없이 애틋했다.

“후으…….”

“아흣, 으으…….”

나는 희수의 허리를 감싸듯이 매만졌다. 희수가 입고 있는 교복 셔츠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말랑한 맨살을 쓸어내리자 희수의 얄팍한 허리가 파드득 튀어 올랐다. 손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갈빗대를 차근차근 짚어 올라가며 통통하게 부어오른 희수의 입술을 쪽쪽 빨았다.

계속해서 입술을 맞붙이고 있는데도 키스가 충분하지 못한 듯 아쉽게만 느껴졌다. 동시에 키스 이상으로 희수를 탐하고 싶은 욕망도 강해졌다.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입술이 떨어졌다. 나는 혀끝으로 희수의 입가를 살짝 핥아냈다.

자연스럽게 맞닿은 눈빛이 야릇하게 간질거렸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밭은 숨을 토해내고 희수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갔다. 희수의 살갗은 말캉하고 향긋했다. 혀를 넓게 내어 피부를 적시고 아프지 않게 이로 긁어내렸다.

“아으응…….”

희수는 그런 나의 애무가 견디기 어려운 듯 목을 뒤로 확 젖혔다. 하지만 희고 기다란 목이 곡선을 그리며 크게 휘는 모양이 오히려 더욱 야릇했다. 나는 희수의 목줄기를 짓씹었다.

희수가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내 머리칼을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두피가 바짝 당겨지는 듯한 느낌이 못내 자극적이었다. 나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희수에게 더욱 파고들었다.

희수가 반듯하게 입고 있는 조끼를 서둘러 벗겨냈다. 목에 걸린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다급한 손길로 희수의 셔츠 단추를 풀어 내렸다. 토독 토독 하는 소리와 함께 단추가 떨어질 때마다 희수의 새하얀 살갗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아, 승규야아.”

“…….”

“흑, 으으, 조승규우.”

와르르 쏟아지는 시각적인 자극에 정신이 온통 팔리려는데, 희수가 거의 흐느끼는 것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나를 애타게 불렀다.

“응, 희수야.”

좁쌀처럼 토독 돋아 오른 희수의 유두를 혓바닥 아래로 슥 눌러 본 나는 희수를 올려다봤다. 희수가 손을 내려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대로 쭉 나를 끌어올리는 손길에 순순히 응했다. 우리의 시선이 같은 위치에서 맞닿았다. 희수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가 축축하게 젖어 있어서 무척 야했다.

“있잖아.”

“응.”

“나 이런 거 다 처음이라 너무 떨려.”

첫 경험으로 돌아가자더니, 아무래도 희수는 역할에 무척 몰입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호소력 있게 쳐다보는 얼굴이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 하아. 도톰한 입술을 벌려 작게 숨을 몰아쉰 희수가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가냘프게 떨었다. 정말로 지금껏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것처럼 순진해 보였다.

“괜찮아, 희수야.”

“으응, 흐.”

“내가 있잖아.”

나는 쿡 하고 터지려는 웃음을 꽉 틀어막고 희수에게 동조했다. 새하얗게 드러난 희수의 목덜미를 다시 주르륵 핥아 올렸다. 그러면서 손은 아랫도리에서 바쁘게 움직여 희수의 교복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희수 허리는 날씬한데 교복 바지가 그에 비해 넉넉해서 손쉽게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승규야아.”

그대로 희수의 엉덩이를 만졌다. 몰캉한 살덩이가 손바닥에 닿아오자 나도 모르게 숨결이 거칠어졌다. 희수가 주춤주춤 아랫도리를 뒤로 뺐다. 팔을 아래로 뻗은 희수가 엉덩이를 주무르는 내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애틋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솔직히 그런 식으로 나를 부르면 이대로 그만해 달라는 건지, 아니면 차라리 더 해달라고 부추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있잖아, 많이 아프면 어떡하지?”

“희수야.”

“나 무서워, 승규야, 살살 해줘.”

나와 눈을 마주친 희수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더니 커다란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진짜로 겁에 질린 표정을 한 희수를 보는데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픽 하고 터졌다. 아, 정말 얘 이렇게 귀여워서 어떻게 하지. 나는 여전히 얌전히 눈을 내리감고 있는 희수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윤희수, 너 안 그랬거든?”

“어?”

희수가 눈을 반짝 떠올렸다. 자그마한 얼굴에 의아함이 한가득했다.

“그때부터 나한테 빨리 더 해달라고 보챘잖아.”

그렇게 말하자 희수가 눈을 뾰족하게 뜨고 나를 쏘아보았다. 희수의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팔을 뻗은 희수가 교복 셔츠가 반쯤 풀어헤쳐진 내 가슴팍을 탁 하고 때렸다.

“쓰읍. 조승규. 분위기 깨지 말고.”

“아하하, 알았어.”

희수가 나를 밉지 않게 흘겼다. 이대로 조금 더 놀리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희수가 정말 삐질 수도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정작 열여덟 살에도 안 그랬던 것처럼 순진하고 유약하게 구는 희수가 웃긴 만큼 솔직히 꼴리기도 해서, 나 역시 기꺼이 역할에 몰입하기로 했다.

“희수야.”

“으응.”

나는 희수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대로 부드럽게 타고 내려가며 목덜미를 한 번 느슨하게 주물렀다가 애기 달래듯 등을 토닥였다. 다시 연기를 시작한 희수가 눈을 깜빡깜빡하며 긴장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가도 나를 살며시 외면하며 슬쩍 아랫입술을 깨무는 디테일이 훌륭했다. 나는 그런 희수의 턱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보게 했다.

“오빠 못 믿어?”

희수의 얼굴이 갑자기 종이 구겨지듯 파사삿 일그러졌다. 풋 하고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희수의 반응을 전혀 모르는 척 퍽 진지한 표정을 하고 희수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가 안 아프게 살살 해줄게.”

희수와 그대로 눈을 맞추면서 희수의 가랑이 사이를 손으로 파고들었다. 교복 바지 위로 반쯤 흥분한 살덩이를 꽉 움켜쥐자 희수가 우는 소리를 냈다. 속옷의 면이 성기 위로 문질러지도록 그대로 손바닥을 교복 바지에 누르고 마찰했다.

“다리 벌려 봐.”

“흐으응.”

희수의 교복 바지를 완전히 벗겨 내렸다. 무섭다고 벌벌 떨던 게 언제냐는 듯, 희수는 엉덩이를 슬쩍 들어 내가 손을 움직이는 것을 편하게 해줬다. 하여튼 그때나 지금이나 윤희수 앙큼한 건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털이 거의 없어 매끈하고 길쭉한 다리를 스르륵 쓰다듬었다. 하읏. 희수가 얕은 숨을 뱉어냈다. 위를 슬쩍 올려다보니 희수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른. 말랑하고 도톰한 허벅지 안쪽을 만지작거리며 희수를 재촉했다. 희수의 다리가 느슨하게 벌어졌다.

“벌써 이렇게 섰어?”

“몰라아.”

드러난 사타구니로 희수의 성기가 꼿꼿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진분홍색의 그것이 귀여워서 툭 하고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희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의 상황이 자극적이라고 생각되는 건 나뿐만이 아닌지, 벌써 희수의 성기가 끝에서 쿠퍼액을 질금질금 흘려대고 있었다. 나는 엄지를 희수의 귀두에 누르고 느릿하게 문질렀다.

“아흑, 승규야….”

허리를 그대로 들썩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희수의 목소리를 듣자 나도 슬슬 다급해졌다. 중심이 잔뜩 부풀어 올라 사타구니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일단 바지 버클을 서둘러 풀어내고, 다시금 희수의 다리에 손을 뻗었다. 양손으로 희수의 허벅지 안쪽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통통하게 발기한 진분홍색의 성기와 음모가 옅게 돋아있는 회음부, 그리고 조밀한 주름이 모여든 입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반사적으로 입안에 침이 고여 들었다. 희수의 은밀한 부분은 언제나 나를 머리끝까지 흥분시켰다. 완전히 내 것이라는 낙인이라도 이 위에다가 찍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슥 핥아내자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희수가 못 견디겠다는 듯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보면, 흐읏, 아, 보지 마아.”

“보고만 있을 거 아닌데?”

나는 대뜸 희수의 입구에 입술을 가져갔다. 부르르 떨리는 희수의 다리를 꼭 고정하고, 꺼떡거리는 성기 바로 아래의 말캉한 회음부를 입술에 물고 쪽 빨아 당겼다. 혀끝을 뾰족하게 내어 콕콕 찌르면서 살살 핥아 내리자 희수가 소스라쳤다. 작은 자극에도 지나치리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는 민감한 몸뚱이가 좋았다.

희수의 벌려진 가랑이 사이를 입술로 훑어 내렸다. 허벅지를 매만지던 손을 위로 옮겨 엉덩이를 둥그렇게 매만졌다. 골이 드러나도록 쩍 옆으로 벌린 뒤, 혀를 희수의 입구로 가져갔다. 긴장으로 바짝 주름이 오므라드는 입구가 귀엽고 음탕했다.

입술로 쪽쪽 빨며 입구를 침으로 흥건하게 적셨다. 오돌토돌한 혀끝으로 사라락 핥아 내리고, 그대로 삼켜버리기라도 할 듯 힘을 주어 거세게 흡입하기도 했다. 질척질척하게 젖은 입구에서 춥춥 소리가 났다.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희수가 으흑흑 흐느꼈다.

“승규야, 흑, 나 기분이 너무 이상해애.”

고집을 부리듯 앙다물려 있던 입구가 점차 흐물흐물하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희수의 양다리는 힘이 풀린 채 느슨하게 벌어져 얌전히 나를 받아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골을 문지르며 쓸어내리자 희수가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나긋하게 풀어진 구멍은 손가락 하나쯤은 손쉽게 집어삼켰다. 찰싹이며 손가락에 달라붙는 구멍의 조임을 느끼며 그대로 내벽을 한 번 슥 휘저었다.

손가락을 구멍 안에 삽입한 채, 몸을 숙여 다시금 희수의 엉덩이 사이에 입술을 가져갔다. 찌걱찌걱 손가락을 안으로 쑤시며 구멍 안에 침을 흘려 넣었다. 손가락으로 내벽을 잡아당겨 구멍을 쫙 벌리니 주름이 부르르 떨면서 빠끔거렸다.

계속해서 안을 휘적거리면서,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움찔거리는 희수의 입구를 빨아 삼켰다. 벌려진 틈을 파고들어 좁혀진 혀끝으로 속살을 쭉쭉 흡입하기도 했고, 흥건하게 젖은 안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주는 동안 조밀하게 움츠러든 구멍 위를 핥기도 했다.

“아, 승규야아.”

지나친 자극이 버거운지, 날씬하고 길쭉한 희수의 다리가 허공을 힘없이 휘저었다. 일부러 희수 들으라는 듯 쪽쪽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꽉 물고 있는 구멍에 입 맞췄다. 살짝 벌리고 나서, 깊이 파인 동굴 안에 바람을 훅 불어넣자 붉은 내벽이 꽉 수축했다.

“여기에다가 내 거 넣을 거야.”

“흑, 아흣.”

승규야아. 희수가 애달픈 목소리로 속삭였다. 뽁 하는 소리와 함께 희수의 안에 밀어 넣은 손가락을 뽑아냈다. 잔뜩 젖은 아래를 손바닥으로 슥 문지르며 위를 올려다보는데, 흥분으로 달아오른 희수의 얼굴이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그렁그렁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불그스름한 눈동자를 바라보자 순간 입안이 바짝 말랐다.

“진짜, 흐읏, 다 들어갈 수 있을까?”

“후으…….”

희수가 겁먹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기묘한 방식으로 나를 자극하는 희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당장에라도 희수의 안을 파고들고 싶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동시에 지금의 흥분을 더욱 끌어올리고 싶은 어두운 욕망 역시 들끓었다. 뒤가 빨리는 사이 아까보다 뻣뻣하게 솟아오른 희수의 성기가 보였다.

쿠퍼액을 질금질금 흘려내는 귀두부가 투명하고 미끌미끌했다. 팔을 뻗어 희수의 손을 잡았다. 그대로 희수의 다리 사이로 이동시켰다. 희수는 내가 떠미는 대로 얼떨결에 손으로 자신의 기둥을 말아 쥐었다. 나는 희수에게 은근하게 눈짓했다.

“만져 봐.”

“아, 으응.”

스윽 스윽, 살덩이를 맞비비는 소리와 함께 희수는 내가 시키는 대로 수음했다. 자신의 성기를 매만지고 흥분시키면서도, 희수의 얼굴은 나만을 간절하게 향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농밀하게 가라앉아 있는 희수의 눈동자가 음탕한 기운을 풍겼다.

달뜬 얼굴이 점차 다급해졌다. 희고 가는 손가락이 손아귀에 쥔 살덩이를 매만지며 철퍽철퍽 소리와 함께 쳐올렸다. 흐으응, 으응. 희수의 젖은 신음이 공기 중에 축축하게 울려 퍼졌다. 밭은 숨을 몰아쉬며 희수의 손놀림을 바라보는 나 역시 다리 사이가 욱신거렸다.

“우리 희수 처음인데 야하네.”

희수의 엉덩이를 매만지며, 음모 위쪽 배꼽 근처에 쪽 하고 입 맞췄다. 살짝 희롱을 섞은 말이었는데, 그에 반응하기조차 힘들 만큼 희수는 이미 흥분에 겨워 있는 상태인 듯했다. 고개를 살래살래 가로저으며 숨을 헐떡이는 희수가 탱탱해진 기둥을 빠르게 쳐올렸다.

“승규야, 흑, 그냥 네가 만져주면, 흣, 안 돼?”

“하…….”

“아, 나 진짜 이제…….”

희수는 사정이 임박한 듯했다. 하얀 손가락이 거머쥔 성기에 나의 손을 겹쳐 쥐었다. 그대로 엄지를 움직여 귀두부를 문질렀다. 하아아악. 거의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액이 터져 나오려는 요도구를 손톱으로 꽉 눌렀다. 희수의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흐으윽……”

하, 밭은 숨을 몰아쉬고 손가락을 놓아주자 희수가 정액을 질질 흘렸다. 쾌락으로 눈이 게게 풀려 있는 희수의 얼굴이 못 견디게 자극적이었다. 복근이 흐릿하게 잡힌 희수의 뱃가죽 위로 희뿌연 정액이 번져 나갔다.

“하, 으윽, 승규야아.”

“어, 희수야.”

“나 이제, 하아, 다 준비된, 흑, 것 같아.”

“하…….”

조곤조곤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나를 보챘다. 후으. 거친 숨을 뱉어낸 나는 곧장 희수의 허벅지를 위로 잡아 올렸다. 희수가 고분고분하게 발목을 내 어깨에 얹었다. 녹진하게 풀린 구멍으로 곧장 성기를 삽입했다. 고조된 성감 때문인지 내벽이 평소보다 쫀득하게 성기를 물었다.

“하.”

단박에 뿌리 끝까지 희수의 안에 삽입한 나는 숨을 가파르게 몰아쉬었다. 희수의 말캉한 속살이 안으로 파고든 기둥 표면에 빈틈없이 달라붙었다. 나는 꽉 조여 무는 듯한 압박감을 만끽했다. 성기가 꽉 들어찬 희수의 아랫배가 야트막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후우, 후…….”

“아읏, 흐으윽…….”

그대로 희수에게서 성기를 느릿하게 쑥 뽑아내는데, 내벽이 마치 그를 붙잡으려는 듯 찐득하게 달라붙어 와서 순간 뒷목이 오싹해졌다. 이를 악물고 성기를 뒤로 빼내자 어깨에 얹혀 있는 희수의 다리가 마치 조르는 것처럼 버둥거렸다.

다시 한번 쾅 하고 성기를 안으로 쑤셔 박았다. 희수는 한껏 뒤로 젖힌 길쭉한 목을 파르르 떨었다. 속눈썹이 촘촘한 눈을 꼭 내리감고 고통을 참는 희수의 얼굴을 바라보자 긴장과 흥분으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단단한 성기를 희수의 내벽에 느릿하게 문질렀다.

“희수야, 나 안에 있는 거 느껴져?”

“아, 흐윽.”

안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빠르지 않은 속도로 희수에게 박았다. 퍽퍽 성기가 안으로 밀려갈 때마다 희수가 허리와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거렸다. 흐읏, 아앗, 아응. 희수가 흘리는 음란한 신음이 귓가를 어지럽게 간질였다. 살살 치받다가 쾅 하고 세게 밀어 넣자 희수가 팔을 뻗어 자신의 아랫배로 가져갔다.

“너무 커, 승규야.” 

“하, 희수야.”

“나 진짜 여기까지 다 찬 것 같아.”

희수가 어딘가 나사가 풀린 것처럼 느껴지는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을 반쯤 나른하게 내리감은 희수는 스스로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느릿하게 문질렀다. 지독하게 야했다. 희수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로서도 고양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희수의 안에서 내 성기가 불끈 크기를 부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희수야.”

“아, 흐응, 으읏.”

나는 조금 더 힘을 주어 희수를 몰아붙였다. 퍽퍽 성기를 구멍에 박아 넣을 때마다 고환이 희수의 볼기에 철썩철썩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뿌리 끝까지 희수의 안에 집어넣으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내벽이 성기에 찰지게 달라붙었다. 저릿한 쾌감이 머릿속을 온통 휘저었다.

“대답, 후으, 해야지.”

“아, 흐윽.”

“윤희수.” 

“어, 흐윽, 승규야, 흣, 으응.”

희수에게 거칠게 추삽질할 때마다 어깨 위로 얹어진 희수의 발목이 달랑거렸다. 얼굴이 달아오른 희수가 얕게 훌쩍였다. 나의 성기를 꽉 조여 물고 있는 말랑한 몸뚱이를 내려다봤다. 말끔하고 깨끗한 희수가 나로 인해 흐트러지는 것이 좋았다.

“너도 지금 완전 뜨거워.”

“흑, 으윽.”

쇄도하는 흥분이 넘치지 않도록 꾹 잡아 누르며 나는 희수의 안을 문질렀다. 스팟을 건드리면 희수는 자지러질 듯 높은 신음을 내뱉었다. 동시에 내벽이 쫙 오그라들면 그대로 내 성기가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생각되는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아.”

훅 하고 더운 숨을 토해내고 희수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끄트머리가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귀를 빨아 삼키면서 아래에서는 계속 성기를 올려쳤다. 나와 맞닿는 희수의 몸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래에서는 말캉말캉한 살점이 오물거리며 기둥에 달라붙었다.

“하아…….”

어느새 첫 경험으로 돌아간다는 처음의 목적도 아득하게 흐려졌다. 희수와 한번 몸이 붙으면 모든 것이 마냥 무분별했다. 그저 지독한 흥분감만이 안개처럼 눈앞을 뒤덮었다. 다만 나는 희수를 이렇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내 것으로 해 두고 싶었다.

그대로 성기를 뽑아내자 희수가 퍼드득 전신을 떨었다. 나는 희수의 얄따란 허리를 붙잡았다. 매끈한 피부에는 땀이 촉촉하게 배어나 있었다. 희수의 몸을 뒤집고, 그대로 전신을 덮쳤다. 피부가 맞닿는 곳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아읏, 으응, 승규야…….”

희수가 울먹이며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나는 그대로 희게 드러난 희수의 뒷목을 꽉 베어 물었다. 오른손으로는 희수의 엉덩이를 꽉 쥐어짜듯 매만지다 슬쩍 옆으로 벌렸다. 한참 동안 성기가 드나들었던 구멍이 완전히 닫히지 못하고 뻐끔거리고 있었다.

희수가 엉덩이를 높게 쳐들게 한 뒤, 아래에서 위로 성기를 내리꽂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좀처럼 자제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자비하게 희수의 구멍을 들쑤셨다. 내벽을 빻아대며 희수의 스팟을 짓누르듯 문질렀다. 나를 꽉 조여 문 희수의 희고 둥그런 엉덩이가 부들거리며 떨렸다.

“하아…….”

“으읏, 흐으응.”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는 기분과 함께 나는 희수의 안에 사정했다. 따뜻한 내벽에 울컥울컥 정액을 쏟아냈다. 마지막까지 희수는 성기를 쥐어짜는 것처럼 나를 꽉 조였다. 사정을 마친 나는 얕게 들썩거리는 희수의 상반신을 꼭 껴안았다.

“하아…….”

희수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 쥐고, 목덜미에 더운 숨을 내뱉었다. 희수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살짝 엉켜 든 젖은 앞머리 아래로 커다란 눈동자가 그렁그렁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정사의 여운으로 울긋불긋해진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희수야, 사랑해.”

나는 그런 희수를 곧이곧대로 바라보았다. 지금 나를 온통 뻐근하게 뒤흔드는 모든 감정을 담아,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고백했다.

“나도 사랑해, 승규야.”

눈을 가늘게 휘며 웃는 희수가 내게 대답했다.

***

섹스를 하느라 결국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잠깐 겨우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니 어느새 일출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눈꺼풀을 느릿하게 끔뻑이는 희수는 아직도 잠이 덜 깬 것 같았다. 평소보다 볼이 살짝 도톰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추울 것 같다며 퉁퉁한 롱패딩을 꾸역꾸역 껴입은 희수가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희수와 함께 해변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드러난 넓게 펼쳐진 백사장을 보고 탄성이 절로 터졌다. 해변에 가까이 접근하자 철썩거리며 파도치는 소리가 싱그럽게 들렸다. 짭짜름한 바다 냄새가 코끝에 사르륵 번져나갔다.

정동진의 전망대는 새해의 해돋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각자 나름의 바람과 다짐을 품고 있을 얼굴들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일출이 잘 보일 만한 곳에 자리를 잡은 나와 희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슬쩍 돌아본 희수의 눈가가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가늘어져 있었다. 얼굴이 어딘가 오묘했다.

“승규야.”

“응.”

그런 희수를 바라보며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 끝도 살짝 떨렸다. 왜 긴장되고 그러지. 머쓱한 기분에 휩싸여 괜히 희수를 향해 웃기만 했다.

“너랑 같이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응.”

“기분이 되게 이상해.”

바람이 쌩쌩 휘몰아치는 날씨는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그 때문인지, 희수의 코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촉촉하게 젖어 든 희수의 눈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안쓰러워 보여서 마음이 애틋해졌다. 그러면서도 내게 나긋하게 속살거리는 희수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도 그래.”

나직한 목소리로 희수에게 답했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까마득한 새벽 공기를 물들였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바다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래를 짙게 적셨다. 가득하게 밀려오다가, 하염없이 물러난다. 위태롭게 일렁거리는 검푸른 물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평선을 넘어서 하염없이 펼쳐지는 바다가 아득하고 장엄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연을 맞닥뜨리며 나는 영원에 대해 생각했다. 희수와 내가 같이하는 시간도,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끝없이 드넓은 바다처럼 그렇게 영원에 가까워지기를.

“…….”

“…….”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자 아득한 연남색의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을 연주홍색 띠가 고요하게 아롱지며 가로지르고 있었다. 연보라색 안개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하늘의 빛깔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했다. 불그스름한 해의 기운이 물감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번져나가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어, 이제 해 뜬다!”

“그러게.”

오묘한 색깔의 띠들로 희부옇게 물든 하늘에서, 또렷하고 붉은 구체가 서서히 떠올랐다. 떠오르는 태양은 희망을 닮아 있었다.

“와, 승규야 저거 봐봐, 신기해!”

“응, 진짜.”

나는 이윽고 구름을 비집고 비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을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바라보았다. 불그스름한 기운이 어린 환한 빛무리가 삽시간에 구름이 드문드문한 하늘을 점령해 나갔다. 마침내 1월 1일이 밝았다.

삶이 어둠만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찐득하게 나에게 달라붙은 채, 깊숙하게 스며든 지긋지긋한 어둠은 나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위는 어느새 부쩍 밝아져 있었다. 내 옆에 있는 희수의 손을 한번 꼭 쥐어보았다. 희수가 옆에 있기에, 나는 더 이상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승규야, 해피 뉴 이어.”

나를 돌아보는 희수가 태양 같은 웃음과 함께 인사했다.

“응, 해피 뉴 이어.”

나 역시 희수를 바라보며 눈을 부드럽게 휘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희수에게 답인사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하루하루에 희수가 언제나 지금처럼 내 곁에 머무르리라는 것을 알았다.

잔혹했던 추위의 기억 위로 소생의 겨울이 새롭게 덧그려졌다. 희수가 스며든 나의 삶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부쩍 따뜻하고 온화해져 있었다. 절대로 내 안에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을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의연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처음으로 찾아올 봄날을 기다리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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