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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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희수를 당장에라도 안고 싶어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말갛게 웃는 희수의 얼굴을 보며 나는 금방이라도 그 애가 내게서 멀어질까 두려워 언제나 심장이 아프도록 빠듯하게 뛰어올랐던 열여덟 살 때로 단숨에 돌아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거칠어진 숨만 간헐적으로 내뱉으며 핸들을 잡고 운전에 집중했다. 희수는 처음에는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며 재잘거리더니, 나의 반응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혼자 시무룩해졌다. 나는 다만 핸들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

“아, 흐읏.”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희수에게 달려들어 키스했다. 촉촉하고 보드라운 입술을 단박에 베어 물었다. 주춤주춤 물러나는 희수의 등이 벽에 쿵 하고 닿았다. 희수는 당황한 것 같으면서도 내게 순순히 입을 열어 주었다. 말캉한 입 안쪽 살을 파고들었다.

희수의 혀를 나의 혀로 크게 휘감았다가 풀어 내렸다. 말랑하고 까슬까슬한 희수의 혀가 견딜 수 없이 달콤했다. 하지만 나는 혀끝으로 서로를 간질이며 장난치는 정도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부드럽게 나의 혀를 빨며 키스에 유순하게 응해 오는 희수를 통째로 잡아 삼키고 싶은 기분이었다.

“흑, 으윽.”

희수의 몸을 계속해서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허겁지겁 입술을 삼키면서 혀뿌리까지 희수의 입안으로 길게 밀어 넣었다. 혀끝으로 입천장을 스륵 훑어 내리자 희수가 목을 움츠리고 자지러졌다. 잠시 입술을 뗀 나는 타액에 젖어 든 희수의 입가에 촉촉 입 맞췄다.

“으음, 승규야아.”

“하아…….”

혀로 입가를 살살 핥아내자 나에게 거의 몸이 눌리다시피 한 희수가 어깨를 조금씩 뒤틀었다. 나는 그런 희수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희수의 몸을 고정했다. 그대로 희수의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었다.

혀끝에 닿아오는 보드랍고 말랑한 살점을 그대로 터뜨려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희수를 향해 잔뜩 몸이 달아있었다. 입술을 촉촉 부딪치고 살점을 쪽쪽 빨아 당겨도 좀처럼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희수의 살갗을 계속해서 잘근잘근 집요하게 씹었다. 희수는 몸이 어쩜 이렇게 새하얗고 피부 결이 좋은지 스킨십을 할 때마다 항상 신기했다. 손끝에 만져지는 감촉부터가 내 피부와는 전혀 달라서, 가끔은 희수는 나랑은 아예 종이 다른 것 같다고도 느껴졌다.

그렇게 희수의 목줄기를 다급하게 훑어 내려간 입술이 쇄골에 이르렀다. 나는 뼈가 곧고 예쁜 희수의 쇄골을 꽉 하고 세게 물었다. 깜짝 놀랐는지 균형을 잃은 희수의 몸이 풀썩 아래로 무너지려고 했다. 나는 희수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 쇄골에 다시 한번 이를 세웠다. 

“으으응.”

내 머리칼에 손가락을 끼워 넣은 희수가 우는 소리를 내는 게 못 견디게 좋았다. 나는 희수가 입은 까슬까슬한 스웨터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손가락 끝에서 그대로 녹아내릴 것처럼 보드라운 살결이 만져졌다. 허리를 스르륵 쓸어내리고 갈빗대를 매만졌다. 그러면서도 꽉 하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하반신을 희수에게 바짝 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아, 승규야.”

“후, 어어.”

“갑자기, 흣, 왜 이렇게, 하아, 급해?”

슬쩍 올려다본 희수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당황해하는 표정마저도 못 견디게 귀엽고 예뻤다. 나는 다시 위로 올라가 희수의 입술을 살살 빨았다. 달래는 것처럼 혀끝을 내어 슬쩍슬쩍 쓸어 올렸다.

“희수야.”

“아, 으응.”

“나 지금 너 안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내가 지나치게 벅차오른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솔직히 조절이 잘 안 됐다. 희수가 내 거라는 걸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몇 번이고 확인해도 좀처럼 실감 나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희수도 지난 세월 나를 간직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늘만은 다를 것 같았다. 나는 이대로 희수를 안고 싶었다.

“아읏.”

지익. 나는 희수의 바지 지퍼를 끌어 내렸다. 바지를 다급하게 아래로 잡아당겼다. 희수가 입고 있는 얇은 드로즈 위로 아직 말랑하게 형체를 갖추지 않은 희수의 성기를 꽉 감싸 쥐었다. 희수가 흐느끼듯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희수의 성기를 손아귀에 거세게 틀어쥐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흐으, 으으.”

희수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두 눈을 꼭 내리감고 있어 예쁜 속눈썹이 눈 밑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내가 성기를 살짝 아프게 틀어쥘 때마다 가지런하고 흰 이가 분홍빛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은 지나치리만큼 거침없이 움직이는 나의 손길마저도 얌전히 받아들이는 희수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뜨겁게 벅차올랐다.

나는 중심의 색이 살짝 짙어진 희수의 검은색 드로즈를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내려다봤다. 어느새 새어 나오기 시작한 쿠퍼액으로 드로즈 중앙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손에서 힘을 조금 빼고 희수의 살덩이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얇고 보드라운 천과 성기의 거친 표피가 마찰할 때마다 희수가 깨문 입술 사이로 달콤한 신음을 내뱉었다.

직접적인 자극으로 인해 완전히 일어선 희수의 성기가 고개를 들고 거세게 꺼떡거리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서 내 손 아래에서 펄떡거렸다. 나는 희수의 드로즈를 끌어 내렸다. 퉁 하고 불그스름한 성기가 튀어 올랐다.

그대로 무릎을 희수의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어 양옆으로 힘을 주어 밀었다. 희수의 날씬한 다리가 느슨하게 벌어졌다. 희수의 아랫도리는 벗겨 놓았는데, 다급한 마음 때문인지 막상 내가 입고 있는 바지가 잘 내려가지 않아서 인상을 썼다. 겨우 지퍼를 내리고 청바지를 끌어 내리려는 내 손을 희수가 꼭 잡아 왔다.

“자기야.”

“어?” 

나를 부르는 희수의 목소리는 한없이 보드랍고 말캉했지만, 막상 나의 대답은 조바심으로 가득 차 거칠게 헐떡이고 있었다.

“여기서 넣을 거야?”

“왜, 싫어?”

“아니이.”

나를 바라보는 희수가 살살 눈웃음을 쳤다. 살래살래 고개를 젓는 자그마한 얼굴을 나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우리 이제 침대 새로 샀잖아.”

희수의 분홍색 입술이 느릿하게 오물거렸다. 살짝 빠져나온 진홍색 혀가 아랫입술을 스르륵 스치고 지나갔다.

“나 거기에서 안아줘.” 

순간적으로 중심에 힘이 아프도록 들어갔다. 하. 나는 거칠게 턱 차오르는 숨을 겨우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희수가 유혹해 오면 정말이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마냥 애기처럼 보들보들한 것 같은 희수는 잠자리에서는 정말 타고난 것처럼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다. 나는 흥분에 겨워 희수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

솔직히 당장에라도 희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다급한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오늘은 오히려 희수가 느릿하고 은근하게 섹스를 리드했다. 자신의 셔츠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벗어낸 희수는, 그대로 내게 다가와 어설프게 걸쳐져 있는 나의 옷도 사뿐한 손길로 직접 벗겨 내렸다.

순간 당황한 내가 손쓸 새도 없이 희수가 내 몸 위로 올라타서 생글생글 웃었다. 그대로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자기가 온몸을 핥고 빨며 애무해 주겠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걸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아, 윤희수.”

예쁜 입술 사이로 선홍색 혀를 빼꼼하게 뺀 희수가 내 목덜미를 할짝할짝 핥았다. 간질간질했다. 촉촉한 타액이 살짝살짝 피부를 적시며 그대로 가슴까지 내려왔다. 나를 슬쩍 위로 올려다본 희수가 내 유두를 쏙 하고 입에 물었다. 나는 헉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가지런한 이 끝으로 유두를 물고 갉작갉작 긁어내리는 느낌이 견딜 수 없이 자극적이었다. 그대로 쪽쪽 빨아 당기더니 혀를 넓게 내어 유륜 근처를 둥그렇게 문지르기도 했다. 가슴을 핥은 희수가 피부 위로 따뜻한 숨결을 부드럽게 불어넣으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희수의 손은 내 허리와 골반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쓸어내리고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조심스럽게 희수의 머리칼을 감싸 쥐었다.

“희수야, 나 오늘 무슨 날이야?”

희수에게 묻는 목소리가 내가 듣기에도 흥분으로 푹 가라앉아 있었다. 가슴팍에서 바지런히 머리통을 움직이던 희수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희수의 커다란 눈동자도 평소보다 훨씬 나른하고 축축해진 채였다.

“그냥, 내가 해주고 싶어.”

가슴을 어지럽게 훑어 내리던 입술의 움직임은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서 부쩍 농밀해졌다. 근육으로 움푹 파여 있는 뱃골 사이로 희수의 혀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오돌토돌한 혀끝이 질긴 피부를 스르륵 문지르는데 순간적으로 오싹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좀 뒤틀었던 모양이다. 내 골반을 꽉 붙잡은 희수가 마치 그런 나의 섣부른 움직임을 타박하는 듯 단단한 허벅지 위를 찰싹 때렸다. 아프진 않았는데, 좀 아찔했다. 살짝 긴장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곧이어 희수는 내 배꼽에다가 혀를 넣고 쪽 빨아 당겼다.

“허억.”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입안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계속해서 희수가 몸을 할짝대자 나의 성기 역시 기대감으로 뻣뻣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희수는 단박에 성기를 입에 물지는 않았다. 나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가늘고 가지런한 흰 손가락들이 내 허벅지 안쪽에 사락사락 닿아왔다. 살살 쓸어내리다가 별안간 거칠게 마찰시키기도 하며 성감을 고조시켰다. 어느새 희수의 입술은 음모가 돋아나기 시작한 뱃골 아랫부분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축축하게 적셨다.

“아, 희수야.”

마침내 희수가 양손을 공손하게 모아 나의 발기한 성기를 움켜쥐었을 땐 입술을 비집고 탄성이 새어 나왔다. 사타구니에서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희수가 간헐적으로 할딱할딱 밭은 숨을 내뱉었다. 음란하게 흐트러진 얼굴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희수가 뇌쇄적이었다.

희수의 부드럽고 하늘하늘한 손가락은 여전히 내 성기를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말랑한 손바닥이 기둥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희수의 손안에서 나의 성기가 펄떡거렸다. 슬슬 성기 끝에서 쿠퍼액이 배어 나오기 시작하자, 희수가 엄지로 요도를 아프지 않게 문질렀다.

희수가 내 귀두와 기둥이 만나는 예민한 지점을 손가락 끝으로 은근하게 문질렀다. 강렬한 쾌감이 머릿속을 치달렸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잔뜩 집중하고 있는 희수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입술을 살짝 깨문 채였다. 이대로 희수의 외설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물론 매력적인 선택지였지만, 아, 나도 이제는 정말이지 한계였다.

“희수야, 이제 그만해도 돼.”

“…….”

“나 너 안에 들어갈래, 응?”

희수의 목덜미를 느릿하게 주물렀다. 솔직히 당장에라도 이대로 희수의 목덜미를 잡아채 침대에 내팽개치고 뒤에서 엉망으로 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희수에게 옮긴다면 희수 몸이 제대로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성기는 여전히 엄청난 기세로 꺼떡거렸다. 억지로 욕정을 참아 누르느라 목구멍에서 끓는 듯한 소리가 났다.

“승규야.”

“어.”

“나 오늘은 위에서 먹고 싶어요.”

속삭이듯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한 희수가 눈을 부드럽게 휘고 웃었다. 거절하기에는 지나치리만큼 달콤한 유혹이었다. 몸의 어느 곳이 묶여 있는 것도 아닌데도, 희수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진 나는 어쩐지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는, 희수의 요망한 제안을 듣자 구미가 퍽 당겼다. 나는 턱 끝을 살짝 까딱였다.

침대맡의 서랍을 뒤진 희수가 젤을 꺼냈다. 사과향이 산뜻하게 퍼지는 젤을 흠뻑 떠올려 내 성기에 묻혔다. 끈덕끈덕한 액체가 꼼꼼하게 성기에 질척하게 발리는 동안 손바닥과 마찰이 생기며 치덕치덕한 소리가 났다. 내 성기는 더 이상 커질 수 없겠다고 느낄 정도로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창해 있었다.

“으음…….”

살짝 아래로 내리깔린 희수의 눈이 예뻤다. 나는 또 한 번 희수의 얼굴에 정신이 팔렸다. 이렇게 음란하게 움직이는 순간에도 희수는 티 하나 묻지 않은 것처럼 깨끗해 보일 때가 있었다. 사실 그래서 더 흥분됐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희수가 슬쩍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별안간 내게서 뒤를 돌았다.

“하.”

나를 등진 희수가 내 사타구니에 내려앉으며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희수의 매끄럽고 희디흰 등과 잘록하고 날씬한 허리, 그 아래로 둥그렇게 부푼 엉덩이가 보였다. 새삼스럽도록 자극적인 광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희수의 허리를 붙잡았다. 희수는 그런 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내렸다. 오늘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건가. 흥분감에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와중에도 픽 웃음이 터졌다.

솔직히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다. 안 그래도 희수랑 섹스하는 생각을 하면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이런 식으로 희수는 계속해서 섹스에 예상치 못한 요소를 더했다. 가끔은 얘가 나 일부러 홀리려고 작정해서 이러나 싶기도 했다.

엉덩이를 슬쩍 들어 올린 희수가 내 사타구니에 바짝 붙여 움직였다. 오랫동안 삽입을 기다려온 내 성기는 이제 거의 게걸스러운 수준으로 꺼떡거렸다. 꼿꼿하게 솟아오른 귀두가 마구잡이로 퉁겨졌다. 하지만 희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곧바로 내어주지 않았다.

희수의 은밀한 엉덩이골이 젤로 잔뜩 적셔져 있는 내 기둥 위를 주르륵 미끄러졌다. 희수가 앞뒤로 스르륵 움직일 때마다 살이 적당히 오른 엉덩이가 내 눈앞에서 둥그렇게 오갔다. 감질나는 자극이었다. 희수가 그네를 타듯 느릿하게 오가며 내 성기 위를 엉덩이로 문질렀다. 희수의 허리와 등줄기에는 땀이 촉촉하게 배어나기 시작했다.

“하, 자기야.”

“…….”

“나 언제까지, 하, 기다려야 돼?”

고개를 푹 숙이느라 새하얗게 드러난 희수의 뒷목이 마음속 깊은 충동을 부추겼다. 이제는 정말로 견디기가 힘들어진 내가 헐떡이며 질문했다. 희수가 희미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팔을 뻗은 희수가 부드러운 손으로 내 성기를 매만졌다.

“조승규우, 참을성 없어.”

슬쩍 웃으며 나를 타박한 희수가 내 성기를 위로 들어 올리며 각도를 맞춰 자신의 입구에 직접 조준했다. 내 성기에 바짝 맞닿은 희수의 입구가 양옆으로 벌어졌다. 희수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앉았다. 귀두가 주름진 구멍을 넓히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꽉 하고 물어 오는 입구의 뻑뻑한 감촉에 순간 머리가 핑 하고 어지러웠다.

희수의 등허리가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왔다. 신축성 있는 구멍은 이미 젤로 충분히 적셔져 있는 성기를 무리 없이 삼켰다. 안쪽의 살이 기둥에 밀착하듯 달라붙으며 성기를 꽉 조여 왔다. 머릿가죽을 쫙 잡아당기는 것만 같이 지독한 쾌감이 들었다. 흡, 희수가 겨우 숨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성기를 전부 다 삼킨 엉덩이가 내 사타구니에 바짝 닿아 문질러졌다.

“하, 으읏.”

“후으, 흐으.”

나는 그대로 참지 못하고 골반을 살짝 뒤로 뺐다가 한번 크게 쳐올렸다. 희수의 구멍이 쫙 오므라들며 나의 성기를 꽉꽉 물었다. 희수도 함께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희수의 새하얀 엉덩이가 검붉은 성기를 집어삼켰다 뱉어냈다 하는 모습이 눈앞에 바로 적나라하게 보였다.

흑, 으윽, 흐읏. 우는 듯한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는 희수의 얼굴을 나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뭔가 상상력이 자극되는 것 같기도 했다. 표정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희수의 쌔끈하게 빠진 뒷모습을 감상하는 것 역시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새삼 이렇게 생겼었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게 돋아난 날개뼈며 안으로 홀쭉하게 패여 있는 등줄기가 예뻤다.

솔직히 제일 좋은 건 내 성기를 삼키기 위해 열심히 위아래로 움직이는 둥그런 엉덩이였다. 희수는 다른 데는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말랐으면서, 엉덩이에는 적당히 보기 좋을 정도로 말랑한 살이 쫀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만지면 기분 좋은 새하얀 살덩이 두 개가 내 눈앞에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성기를 삼키다가 스스로 어딘가 달아올랐는지 엉덩이를 급격하게 들썩거리는 희수의 움직임에서 다급함이 묻어났다. 처음에는 앞뒤로만 왕복 운동을 하던 엉덩이가 어느 순간에는 좌우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내게 착 달라 붙어오는 구멍의 조임도 물론 좋았지만, 오늘은 시각적인 자극 역시 엄청났다. 희수의 희디흰 엉덩이는 어느새 조금 발갛게 달아올라 땀에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게 막 이리저리 사방으로 움직이며 눈앞에서 둥실거리는데, 속된 말로 존나 꼴렸다.

“하, 윤희수.”

솔직히 이 정도면 오늘은 희수 하고 싶은 대로 많이 내버려 둔 것 같다. 나는 그대로 상반신을 일으켜서 희수의 등을 껴안았다. 덩달아 성기를 몸 깊숙한 안으로 밀어 넣자 희수가 하악 높은 소리로 신음을 뱉었다. 나는 그대로 쾅쾅 희수의 안을 치받았다. 사타구니와 엉덩이가 거세게 부딪히며 철퍽철퍽하는 소리가 났다.

“아, 승규야.”

나는 손을 뻗어 희수의 성기를 감싸 쥐었다. 뒤에서 박히는 것만으로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는 방법을 깨우친 되바라진 성기의 요도를 꼭 틀어쥐었다. 흑, 으윽. 희수가 우는 소리를 냈다. 나는 허벅지 근육에 힘을 꽉 주고 그런 희수의 안을 조금 더 난폭하게 헤집었다.

“아, 승규, 흑, 아앗.”

“후, 어어.”

“거기, 나, 으응.”

차마 성기를 놓아달라고 말을 못 하는 희수의 뒷덜미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희수의 뒷목에 고개를 파묻고 혀를 길게 내어 슬쩍 핥아 올렸다. 희수의 몸이 파들파들 떨리자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도 마찬가지로 부들부들 진동했다. 지나친 성감에 눈을 슬쩍 내리까는데 순간 침대 근처에 이번에 이사를 하며 새로 들인 전신거울이 보였다.

희수의 허리를 감아서 단단하게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뒤뚱하고 겹쳐진 몸이 기울자 희수가 놀란 듯 양팔을 허공에 파닥거렸다. 나는 그대로 희수에게 삽입한 채 거울을 향해 걸어갔다. 거울에 가까워지자 그동안 내내 궁금해했던 희수의 얼굴이 보였다.

“하.”

절로 혀끝을 차게 됐다. 윤희수 이렇게까지 야하게 생겨 먹었나 싶었다. 잔뜩 상기된 희수의 얼굴이 건드리면 톡 하고 터질 듯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커다란 눈의 끝머리가 가련하게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눈물이 핑 매달린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몹시 색정적이었다.

불그죽죽하게 물든 눈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헤벌려져 있는 입술 사이로는 선홍색 혀가 보였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희수도 확인했는지, 흥분으로 탁하게 가라앉은 희수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이렇게 야하래, 응?”

나는 거울 앞에서 희수를 들어 올린 채 아래에서 위로 쾅 하고 박았다. 성기를 뿌리 끝까지 집어삼킨 희수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거울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비쳤다. 음탕한 모습을 하는 것은 비단 희수의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잘 익은 것처럼 바짝 솟아 있는 조그마한 유두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가져가 그대로 확 쥐어 틀자, 희수의 내벽이 꽉 조여들었다.

“아, 승규야, 흑, 나, 하악.”

희수가 차마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려 하길래 뒷목을 거세게 물었다. 어쩔 수 없이 희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다. 나는 거울에 하반신을 가까이 가져갔다. 주름이 한계까지 팽팽하게 벌어진 구멍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집어삼키고 있는 모습이 거울에 투명하게 비쳤다.

“지금 물고 있는 거 보여?”

희수의 귓가에 더운 숨을 불어 넣으며 속삭였다. 말하는 대로 반응하는 희수의 구멍이 성기를 물고 오물오물댔다. 흑. 희수가 눈을 꽉 감았다. 눈 떠 봐, 나는 다시 한번 희수에게 말했다.

“너 엄청 꽉 조여.”

“아, 조승규우.”

“구멍도 되게 움찔거려.”

흐윽, 으윽. 희수가 흐느끼는 듯한 신음을 냈다. 어느새 거울로 보이는 희수는 가슴팍까지 산딸기색으로 잔뜩 달아오른 채였다. 평소 같으면 그런 희수가 안쓰러워서 이 정도에서 그만하고 놓아줄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희수 역시 뭐 나를 충분히 곤란하게 했으니 나도 희수를 몰아붙이는 데 거침없었다.

“허리 돌려 봐.”

희수에게 명령했다.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길래 다시 한번 유두로 손을 뻗어 꼬집었다. 빨리. 귓가에다 대고 또 한 번 속삭였다. 나는 희수에게 삽입만 한 채 아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희수의 스팟에서 어설프게 빗나간 곳에 나의 성기가 걸쳐진 채였다.

잠시 망설이는 듯한 희수가 기어코 허리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욕망에 솔직한 희수가 못내 사랑스러웠다. 처음에는 무척 소심하게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놓던 게, 스팟에 한 번 귀두가 미끄러지자 스스로 흥분에 겨웠는지 보다 적극적으로 구멍으로 성기를 집어삼켰다. 나는 나른한 얼굴로 거울에 비치는 희수의 움직임을 감상했다.

“승규야, 으응.”

“어, 희수야.”

“나, 흑, 으윽, 너무 힘들어어.”

한참을 그렇게 허리를 움직이던 희수가 버거운 듯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으로 토로했다. 희수를 너무 오래 들고 있었더니 조금 버거운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대로 희수의 유연한 몸을 들어 바닥에 눕혔다.

버둥거리는 희수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아직 느슨하게 벌려진 구멍으로 쑥 하고 성기가 들어갔다. 나는 막판 스퍼트를 올리며 희수의 엉덩이에 마구 처박았다. 오물대는 구멍 안으로 성기를 박아 넣을 때마다 체액과 섞여 든 젤이 철퍽철퍽 솟아올랐다. 아응, 으응, 흐응. 이제는 거의 아무 데나 찔러도 스팟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는 희수는 내가 한 번씩 안쪽을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고양이 같은 신음을 흘렸다.

마침내 희수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나의 귀두를 밀어 넣었다. 희수의 부드러운 엉덩이에 나의 음모가 문질러졌다. 전신을 내달리는 듯한 깊은 정복감에 나른한 기분으로 푸드득 몸을 떨었다. 나는 그대로 희수의 내벽에 사정했다. 꿀떡꿀떡 액체를 토해내는 성기를 희수가 마지막까지 빠듯하게 조여 왔다.

***

새로 이사한 집은 이전의 원룸보다 욕실이 커서 섹스한 후에도 좀 더 편하게 같이 샤워할 수 있는 게 좋았다. 평소보다 집요하게 상대를 몰아붙였던 섹스 때문에 희수도 나도 온통 진이 빠졌다. 온몸이 노곤노곤하게 풀어져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피부를 샤워볼로 문지르고 따뜻한 물로 닦아내며 젖은 몸을 끌어안고 후희를 즐겼다.

샤워를 끝난 후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대에 달려가 풀썩 앉았다. 솔직히 희수와 같이 사는 동안 내 좁고 낡은 싱글 침대에 희수를 매일 재워야 했던 게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이 쓰기에 충분한 침대에 이렇게 희수와 함께 누울 수 있게 되니 그것만으로 좋았다.

아직 짐 정리가 마저 끝나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솔직히 옷조차 다시 입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는 희수와 이렇게 헐벗은 몸을 맞대고 있는 것이 좋았다.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나는 희수의 몸은 만지고 만져도 계속해서 손이 갈 만큼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승규야.”

한동안 얌전히 내 품에 안겨서 허리께를 매만지고 있던 희수가 고개를 빼꼼하게 들어 올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응?”

이렇게 아래에서 위로 나를 올려다볼 때 희수의 얼굴은 정말 너무 귀엽다.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나는 희수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었다.

“내가 프라모델 가지고 있어서 놀랐어?”

내게 묻는 희수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높낮이가 없었다. 나는 살짝 눈을 내리깐 희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너 약간, 그때부터 눈빛이 좀 다르더라고.”

“그래?”

“응. 그런 거 다 티 난다.”

희수가 입꼬리를 쓱 끌어올렸다. 우리가 꼭 붙어 시간을 보낸 지도 이제는 제법 꽤 되었다. 희수가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읽어냈던 것처럼, 나 역시 지금 희수의 웃음이 마냥 행복한 종류의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살짝 타박하듯 말꼬리를 올렸던 희수는 한동안 입술을 꼭 다물고만 있었다.

“무슨 생각해?”

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희수에게 질문했다. 희수가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딘가 처연하게까지 느껴지는 희수를 내 품에 꼭 끌어당겼다. 희수는 얌전히 내게로 안겨들었다. 희수의 심장이 느릿하게 쿵쿵 뛰어오르는 소리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그냥, 그게 너한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었나 싶어서.”

“…….”

“좀 속상해서.”

희수가 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린 희수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 뺨을 슥 쓰다듬었다. 어딘가 울상인 듯한 희수의 얼굴을 보니까 마음이 푹 안쓰러웠는데, 희수가 무엇을 속상해하는지는 솔직히 감이 잘 안 잡혔다.

“조승규우…….”

희수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내 품에 파고들었다. 희수의 동글동글한 코끝이 가슴팍 위로 문질러졌다. 나는 희수의 허리께를 쓰다듬으며 머릿속으로 천천히 말을 골랐다.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서라도 이 얘기를 짚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희수가 내가 준 선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어서 정말 기뻤는데, 그것 때문에 희수가 울적해한다면 사실 좀 이상하기도 하다.

“희수야.”

“으응?”

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희수를 가만히 지켜보며 숨을 깊이 들이켰다.

“…….”

“…….”

하지만 막상 이야기하려니까 기분이 아득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좀처럼 표현해 본 적이 없는 마음이라 어색하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네가 지금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것도 너무 신기해서.”

“…….”

“가끔은 그냥. 얼떨떨하고, 안 믿기고 그러거든.”

“…….”

희수는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희수의 표정에 생겨나는 자그마한 동요가 내 마음에 역시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바짝 말라오는 입안을 침으로 적셨다.

“그때 네가 가버려서, 사실 그냥 나 같은 건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어.”

오랫동안 품어 와서 어느 정도는 무덤덤해진 생각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새삼 희수의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자 마음 깊숙한 곳이 욱신거렸다.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지독하게 추웠던 한겨울의 그 날이 떠올랐다. 나는 슬쩍 눈을 내리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

“…….”

희수에게서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조금 아득해진 기분으로 정적을 가만히 곱씹었다. 한참이 지나 내가 눈을 다시 떴을 때, 희수는 고요하게 울고 있었다. 희수의 왼쪽 뺨 위로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도로록 굴러떨어졌다.

“희수야!”

나는 당황했다. 아, 희수 울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울고 있는 희수를 보면 나는 언제나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냥 옛날부터 나는 쭉 그랬다. 희수가 예쁘고 애처롭기만 한 모습으로 울고 있으면, 사건의 인과관계와는 관계없이 모든 게 그저 다 내 잘못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흐윽…….”

“그래서 나는 네가, 프라모델 계속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고, 희수야.”

울지 마. 나는 희수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내 손을 부드럽게 뿌리친 희수가 자신의 손등을 뺨에 가져갔다. 스스로 슥슥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고는 나를 또렷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여전히 코끝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고 눈동자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채였다.

“……그런 거, 흠, 아니야.”

목을 가다듬은 희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를 향하는 희수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승규야.”

“응.”

“나 그때 너 진짜 좋아했어.”

“…….”

그 말을 들은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온몸이 조금 딱딱하게 굳었던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가슴이 뛰어오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희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희수가 그런 나에게 손을 뻗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나는……. 내가, 너만큼 사랑했던 사람 내 인생에 단 한 명도 없어.”

지금 이렇게 희수를 다시 만나면서도, 나는 열여덟의 희수가 나에게 가졌던 감정에 대해서는 완전한 확신이 없었다. 희수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비록 짧더라도 진심으로 충만했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그렇게 잔혹하고 매몰차게 내게서 돌아섰던 희수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내 감정을 가지고 놀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넘어서, 열여덟의 희수가 내게 털어놓는 사랑이 새삼스러울 정도의 묵직함과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그때 내가 비겁해서 미안해.”

“…….”

“너 두고 그렇게 가버린 거, 내가 정말 잘못했어.”

희수는 조금 불안한 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찬찬히 희수의 얼굴을 살폈다. 내가 사랑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

“…….”

그때 우리가 가졌던 진심의 무게는 분명히 달랐던 것 같다. 그 비대칭의 비극적인 결과로 나는 상처투성이가 됐다. 애써 지탱해오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폐허에서 남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희수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 만큼이나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희수가 내게 보였던 감정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씁쓸한 자조였다.

“희수야, 괜찮아.”

“…….”

나를 사랑하는 지금의 희수가, 그때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진심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고 직접 표현했다. 희수가 언제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희수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말해줬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희수는 마음 한쪽에 그때의 나를 간직해오고 있었다. 희수를 애틋하게 바라본 나는 희수의 마른 몸을 꽉 당겨 안았다.

“지금 네가 내 옆에 있잖아.”

눈물이 번져 있는 얼굴에 애써 다시 웃음을 띠워 보이는 희수를 보자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희수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희수의 안락한 체향을 들이마셨다.

그동안 나는 그때의 겨울이 남기고 간 상처가 아마도 영영 아물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왔다. 칼날이 너무 깊숙하게 마음을 파헤쳐서 나의 본질적인 부분을 영구적으로 베어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이렇게 나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는 희수를 끌어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이대로 희수와 계속해서 함께한다면 그러한 상처마저도 세월과 함께 서서히 치유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

신림으로 이사를 하고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것은 생각보다는 어려웠다. 희수가 앞으로 일을 시작하면 시간이 주로 주말에 날 거니까, 나도 쉬는 날을 주말에 맞추고 싶었다. 형들 소개를 받은 수입차 정비소 몇 군데에 면접 비슷하게 다녀왔는데, 일요일은 그렇다 치고 토요일까지 통째로 쉬고 싶다는 조건부터 먼저 들이미니 협상이 순탄치 않았다.

매주 희수와 함께 주말을 쉬는 것은 아무래도 내 욕심이었나 보다. 결국, 이 주에 한 번씩 토요일을 포함한 주말 휴식을 보장해주는 정비소에 새롭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최종 조건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동안 일하던 정비소에서 퇴직금을 받았다고 해도 일을 쉬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이번 주부터 봉천동의 수입차 정비소에 출근하게 되었다. 나는 제대한 후 부천의 정비소 한 곳에서만 자리를 잡고 쭉 일해 왔다. 아무래도 그동안 그곳의 스타일에 손놀림이 익었는데, 새로운 정비소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을 다시 익히려니 솔직히 조금은 벅차기도 했다.

그렇지만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희수를 볼 수 있었다. 항상 희수는 내 퇴근 시간보다 이르게 집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관까지 금세 달려온 희수가 눈을 사르르 접으며 내게 인사했다. 희수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나의 지친 몸을 끌어안아 줬다. 그렇게 희수를 품에 안고 있으면,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압박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평화롭고 규칙적이었다. 일을 나가지 않는 토요일에는 평소보다 조금 느지막하게 눈을 뜬다는 것 정도만 좀 달랐다. 뻑뻑한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내 가슴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희수가 보여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어제 밤늦게까지 논문 작업을 한다고 작은방에서 공부하더니, 내가 잠든 사이 어느새 침대를 파고들었나 보다. 곤히 잠들어 있는 희수의 통통하게 부푼 볼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쪽 뽀뽀를 했다.

“으음, 승규야.”

깨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잠이 옅게 들었는지 몇 번 속눈썹을 깜빡인 희수가 그대로 눈을 떴다. 이제 매일 아침을 함께하는데도, 잠에서 깨어나는 희수가 커다랗고 맑은 눈을 서서히 들어 올리는 순간은 여전히 내게 감격스럽다. 나는 조금 신기한 눈치로 희수의 얼굴 곳곳을 살폈다.

“일어났어?”

“응.”

“몇 시야?”

그러다가 또 어딘가 견딜 수 없어져서, 희수의 양 볼을 껴안고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약간은 세게 볼을 붙들었는데도, 조금도 싫다는 기색 없이 유순하게 눈을 깜빡이다 부스스 웃어버리는 희수가 너무 귀여웠다.

“더 자도 되는데.”

나는 이렇게 희수랑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면 물론 좋은데, 괜히 나 때문에 늦게 잔 애 깨운 걸까 봐 뒤늦게 아차 싶었다.

희수가 취직했을 때 우리는 함께 뛸 듯이 기뻐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마냥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다닐 회사가 정해진 후에도 희수는 졸업 논문 막바지 작업을 하느라 한참을 바빴다. 얼굴이 반쪽이 돼서는 매일같이 학교를 오가는데, 최종 심사다 뭐다 해서 교수님들께도 많이 시달리는 모양이었다.

희수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내가 희수 일을 대신해줄 수 없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런 와중에도 내 얼굴 보고 싶다고, 저녁 시간이 되면 학교의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대신 집으로 돌아와 논문 작업을 하는 희수가 예쁘고 고마웠다.

“자기야, 나 할 말 있다?”

“뭔데?”

내가 잠깐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 언제 푹 잠들어 있었냐는 듯 희수의 얼굴에서는 졸음이 싹 달아나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희수가 반짝반짝하게 나를 올려다봤다. 우리 애인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나는 희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코끝을 슬쩍 문지르듯 부딪히자 희수가 히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 새벽에 논문 최종 제출 끝냈어.”

희수가 당당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희수는 꼭 주인을 위해 생쥐 물어다 온 고양이처럼 뿌듯한 얼굴을 했다. 희수가 전하는 좋은 소식도 소식인데,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 희수의 얼굴이 귀여워서 킥킥 터지려는 웃음을 나는 겨우 참았다.

“이제 그럼 완전 끝난 거야?”

“응, 제본 만들어서 도서관에 제출하는 거 남았는데. 그건 회사 다니면서 해도 되고.”

“우와, 우리 애인 완전 대단한데?”

희수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서 번쩍 끌어올렸다. 상체가 허공에 붕 떠오른 희수가 눈을 접고 웃었다. 윤희수 이제 석사님이네?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로 붕 띄워줬더니, 희수가 뽐내는 듯한 얼굴을 하고 턱 끝을 슬쩍 들어 올렸다.

“희수야, 너무 잘했어.”

그동안 희수가 취업 준비와 논문 작성을 병행하느라 굉장히 빡빡한 생활을 해왔던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의 밤에 희수는 혹시라도 이대로 졸업을 못 하게 되는 걸까 봐 벼랑 끝에 선 기분이라고 두려움을 토로해 오기도 했었다.

“고마워, 승규야.”

취업이라는 하나의 산을 넘고, 논문이라는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희수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또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랬기에, 나도 희수가 이룬 성취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오늘 우리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뭘 하긴. 그냥 승규 너랑 있으면 되지.”

“그래도.”

“마트나 가자. 냉장고에 먹을 거 하나도 없더라.”

뭔가 특별하게 축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곡을 찌르는 희수의 지적에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중에는 나도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고 희수도 논문에 전념하느라 바빠서, 집안에 먹을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건 그러네.”

“그럼 이제 슬슬 일어날까?”

“음. 좀만 더 안고 있다가.”

해가 중천인데? 희수는 나를 타박하는 듯 눈을 슬쩍 흘기면서도, 다시금 자신의 몸을 끌어안는 나의 가슴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희수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언제나 나를 안정시키는 희수의 체향을 들이마셨다. 그렇게 한참 동안 희수의 몸에 입술을 쪽쪽대고 간질이고 나서도, 아쉬움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채 침대에서 겨우 일어났다.

***

희수와 함께 집 근처의 마트로 향한 것은 오후 서너 시쯤이 되어서였다. 희수도 나도 목록을 정해 놓고 체계적으로 구매하는 성격은 못 됐다. 그냥 눈에 들어오면 필요한 것이 생각이 나 일단 사고 보는 식이었다. 내가 매대 사이로 카트를 끄는 동안, 희수가 길고 얇은 팔을 팔랑거리며 갖가지 생필품들을 챙겼다.

“어제 니가 우유 다 먹었지?”

“응.”

내가 짧게 대답하자 희수가 1.5L짜리 우유를 냉장 판매대에서 집어왔다. 반쯤 차 있는 카트 위에 우유가 얹혔다.

“떠먹는 요구르트 살까? 세일하는데.”

“희수 너 좋아해?”

“아니. 별로.”

여러 개들이 묶음을 세일해 파는 요구르트에 희수가 눈독을 들이는 것 같았다. 좋아하냐는 나의 질문에 배시시 웃은 희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떠먹는 요구르트는 사실 별로인데. 그래도 혹시 섹스할 때 좀 쓸모가 있으려나?

생각이 좀 엉뚱한 곳으로 빠지려는 찰나, 희수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순간 떠오른 위험한 상상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내려고 애쓰며, 희수를 따라갔다. 최근 몇 달 동안, 사실은 지난 이 년 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증명인 논문을 끝내서인지, 희수가 걷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하고 발랄해 보였다. 휘적거리며 걷던 희수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아, 맞다. 달걀도 사야 하지?”

“아니야, 저번에 산 거 좀 남았어.”

“그런가?”

“응.”

살짝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희수에게 대답하는데, 새삼 희수와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좋았다. 오랫동안 자취를 하면서 마트에서 장을 보는 데는 사실 익숙했지만, 그러는 동안 거의 모든 순간에 나는 혼자였다. 지금처럼 희수와 둘이서 우리가 먹고 우리가 사용할 물건들에 대해서 고민하자, 희수가 내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실감 나서 벅차고 기뻤다.

그렇게 하나하나 필요한 물건들을 카트에 담다 보니까 정육코너에 이르렀다. LA갈비 한 조각을 권하는 시식 코너의 직원을 희수가 곰곰 들여다보았다. 저건 분명히 먹고 싶은데 참고 있는 표정이다. 희수는 입은 짧으면서 은근히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깔끔 떠느라고 마트 시식 코너에 있는 음식은 조금도 입에 대질 않았다.

귀엽네.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며, 나는 냉동고에 있는 돼지 앞다릿살 팩에 손을 뻗었다. 종종대며 내게 걸어온 희수가 살짝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앞다릿살은 갑자기 왜?”

“오늘 먹을 거야.”

“오늘?”

“희수 너 오늘 논문 제출했잖아.”

희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속눈썹을 깜빡였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쓱 끌어올려 웃었다.

“내가 너 맛있는 거 해주려고.”

“진짜?”

“응.”

아닌 척 새침하게 입을 꼭 다물면서도, 희수의 얼굴이 흐물흐물하게 풀리는 게 보였다. 오늘 논문까지 끝냈는데 이렇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나가는 건, 희수도 실은 아쉬웠을 거다. 나는 입꼬리를 쓱 끌어올려 웃었다.

“맛있는 거 뭐?”

“비밀.”

뭐야. 나 말해줘. 궁금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내게 차마 달라붙지는 못하고, 희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 근처에서 종종거렸다.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런 희수의 반응을 보니까 재미있어서 뭔가 더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조승규 나빴다.”

“이따 집에 가면 알 건데 뭘.”

희수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살짝 시무룩해진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모른 척 슥 희수의 머리통에 손을 얹고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정육 코너를 지나고 신선식품 판매대에서 두부와 야채 종류를 골라 담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대충 다 산 것 같았다. 예전에는 마트에서 쇼핑하는 기계적인 행동이 정말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생각했는데,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희수와 같이 있어서인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 희수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그랬다.

“어, 잠깐만.”

그렇게 쭉 계산대로 향하려는데, 행사 상품 매대에 컵라면 골라 담기 할인 행사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컵라면은 참 오묘한 음식이다. 처음 막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거의 하루걸러 컵라면 먹으면서는 토할 것처럼 질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안 먹게 되면 저런 자극적인 맛이 못내 그리웠다.

나는 희수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매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육개장, 튀김우동, 김치, 짜파게티.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슥 고여 들었다. 모른 척 카트에 컵라면 몇 개를 담으려는데, 순간 손등이 따끔했다.

“자기 자꾸 이런 거 먹지 말랬지.”

컵라면을 만지작거리는 내 손등을 찰싹 친 희수가 눈을 뾰족하게 뜨고 나를 흘겨보았다.

“아니 그냥, 세일하니까.”

나는 조금 머쓱해진 채로 대답했다. 여전히 컵라면은 먹고 싶었다.

“내가 밥 해주잖아. 그거 먹어.”

“아. 그래도.”

“너 몸에 안 좋단 말야.”

뾰로통하게 말하고는 예쁜 눈이 아래로 축 처진다. 희수가 밥을 하는 건 사실인데, 솔직히 희수는 밥솥에다가 밥하는 거 빼면 요리는 거의 못한다. 나랑 같이 살면서 겨우 배우기 시작한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누가 보면 꼭 매끼 밥상 차려주는 것처럼 얘기를 해서, 그런 희수가 조금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좀처럼 희수를 당해낼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컵라면에 대한 미련을 떨구어 냈다.

“인스턴트 먹지 마, 알았지?”

“응. 알았어.”

나를 향하는 희수의 타박이 듣기 싫지만은 않았다. 컵라면을 제외하더라도, 희수와 같이 살게 되면서 나는 담배를 포함해 원래의 내가 익숙해져 있는 습관들 몇 개에 전보다 뜸하게 되었다. 때로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희수가 이런 식으로 내 인생에 간섭하는 게 좋았다.

언제나 결국은 혼자라고 생각되는 삶을 살아오면서도, 나는 내심 누군가가 나의 곁에 머무르며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고 신경을 써 주길 바랐다. 한때 삶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살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욕구의 비뚤어진 표현이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희수가 내게 세심한 애정을 퍼부어주어서 참 행복했다.

***

희수가 궁금해하던 오늘 저녁의 메뉴는 돼지김치찜이었다. 사실 나도 요리에 크게 자신이 있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자취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익숙한 요리가 몇 가지 정도는 있었다. 한꺼번에 사놓은 김치가 좀 지나치게 익었다 싶으면 돼지 앞다릿살을 하다가 찜을 했는데, 몇 번 반복해서 하다 보니 내가 느끼기에도 썩 맛이 좋았다.

외식을 하면서 기분을 내며 논문 완성을 축하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내가 직접 만든 특식을 희수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평소 희수는 자기도 요리를 못 하지만 은근히 나 역시도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그런 희수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트려줄 생각이었다.

앞치마를 매고 조리대 앞에서 도마에 올려진 김치를 썰었다. 희수한테는 거실에 앉아서 쉬라고 했는데, 어차피 같은 집인데도 희수는 나와 떨어져 있기가 싫다고 했다. 좀처럼 부엌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종종거려서, 대파랑 양파, 고추 따위를 주며 좀 씻어달라고 했더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채소를 물에다가 헹구었다.

돼지김치찜은 다 좋은데 조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흠이었다. 마트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집에 와서도 요리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떠느라 나와 희수는 배가 무척 고팠다. 고기가 익으면서 고소하고 새큼한 냄새가 집안에 사르륵 퍼지자 입맛이 더욱 돋아졌다.

희수도 나와 마찬가지로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괜히 부엌에 가서 냄비 뚜껑을 열고 앞다릿살을 젓가락으로 푹푹 찔러 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요리가 냉큼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괜히 입맛만 한 번 쩝 다시고 다시 희수가 앉아 있는 거실로 돌아왔다.

막상 완성된 요리는 우리의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근사했다. 나는 김이 소복하게 솟아오르는 돼지김치찜이 소담하게 담긴 그릇을 식탁에 옮겼다. 푹 익힌 김치와 앞다릿살이 버무려진 요리를 보는 희수의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뿌듯한 마음에 벌써부터 어깨가 으쓱했다.

“어때, 맛있어?”

배가 눌어붙도록 고프다고 생각했던 게 방금인데, 막상 요리를 앞에 두고 있는 희수를 보자 이상하게 긴장이 돼서 음식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희수를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젓가락으로 김치를 죽 찢은 희수가 적당한 크기로 잘린 돼지고기에 둘둘 말았다. 앙 하고 벌린 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렸다. 잊지 않고 고슬고슬한 쌀밥도 야무지게 입에 넣었다.

“어, 엄청 맛있다!”

입에 넣은 음식을 얌얌거리더니 꿀꺽 삼킨 희수가 환하게 웃는데, 마음 한구석이 뻐근했다.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이렇게 조금 아픈 기분까지 드나 싶었다. 희수는 다시 한번 김치에다가 돼지고기를 말았다. 그제야 한숨을 돌린 나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논문 마친 거 축하해.”

“응, 다 너 덕분이야 승규야.”

희수는 몸이 진짜 말랐는데 먹기도 정말 조금 먹었다. 내가 이제 막 먹기 시작한다 싶으면 희수는 이미 다 먹었다고 밥그릇에서 손을 뗐다. 같이 살면서 그게 늘 내심 신경 쓰였다. 그런데 오늘은 희수가 평소보다 음식을 좀 더 많이 먹는 것 같아서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요리를 먹는 거라 흐뭇함이 더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창 돼지김치찜을 먹고 있는데, 뒤늦게 뭔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걸 빠트리다니. 돼지김치찜을 하염없이 기다리느라 너무 배가 고파서 순간 머리가 뻣뻣해졌나 보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냉장고에서 캔맥주 두 개를 꺼내왔다.

“오, 조승규 센스 있어.”

희수도 알코올이 당겼던 듯, 내 손에 들린 캔맥주를 보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픽 웃고 희수에게 캔을 하나 건넸다. 짠 하고 부딪쳤다. 꼴깍꼴깍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기분이 적당히 좋게 들떠 올랐다. 접시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돼지김치찜도 어느새 절반 이상을 먹어치운 채였다. 나와 희수는 먹는 속도를 늦추고 조금은 나른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눴다.

“희수 너 출근은 언제부터라고 했지?”

“다다음주 월요일.”

“떨리겠네, 우리 희수.”

대학원도 나름의 사회생활이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에 처음으로 출근하면서 희수도 정식으로 사회에 발걸음을 내딛는 거였다. 희수가 출근하는 얘기를 하자 괜히 내가 좀 떨리는 것만 같았다. 내 첫 출근은 어땠더라? 괜히 한번 떠올려 보게도 됐다. 사실 나는 정식으로 출근이랄 것도 없이, 아는 형 정비소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어, 사실 조금 그래.”

“가면 분명히 잘할 거야.”

나는 희수에게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희수가 잘 해내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고, 김지운의 아웃팅으로 인해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수는 취직과 논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원래부터 똑똑한 애인 건 알고 있었지만, 희수가 정말 대단하고 멋졌다.

아무래도 아끼고 사랑하는 애인이니까,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되는 마음도 솔직히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근본적으로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인생에 놓인 장애물을 희수가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리라고 굳게 믿었다.

“승규 너는 일 어때?”

“응?”

“너도 이번 주에 첫 출근 했잖아, 정비소 옮기고.”

희수가 나에게 질문했다. 솔직히 매일 크게 별다를 게 없는 일상이라 나조차도 무덤덤한데, 희수는 항상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세심한 관심을 보였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입고된 차에는 어떤 고장이 있었고 손님들은 내게 어떻게 대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차를 만지는 일 자체는 손에 많이 익었지만,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 주는 확실히 좀 빡세긴 했다. 이번에 일하게 된 곳은 예전에 있던 정비소와 고객 응대 매뉴얼이 상당히 달랐는데,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계적인 부분보다도 사람 대하는 일이었다.

“손님들 오면 대하는 방식이, 정비소마다 조금씩 다르고 그런 것 같더라고.”

“아. 그렇겠다.”

“정비소 사람들이랑도 친해지려면 좀 시간 걸릴 것 같아.”

솔직히 희수한테 아무 일 없는 듯 괜찮은 척하고 싶기도 했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먼저 털어놓으라고 희수에게 말했던 것은 내가 먼저였다. 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같이할 거니까, 사소한 일상의 부침 정도는 부담 없이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역시 말하고 보니까 조금 머쓱해진 기분이라 나는 쑥스럽게 웃었다. 내 말을 들은 희수는 곰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혹시, 누가 너 구박하고 그러진 않지?”

희수가 별안간 던진 질문이 너무 엉뚱해서 나는 웃음이 풋 하고 터졌다.

“다 큰 어른끼리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나는 그냥 걱정돼서.”

“그런 거 없어 희수야, 걱정하지 마.”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희수가 남아 있는 맥주를 꼴딱꼴딱 들이켰다. 나는 희수의 도톰한 입술에 슬쩍 묻어나는 하얀 거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냥, 너 나때매 오래 일하던 데 옮겨가지구…….”

“…….”

“너 친한 사람들도 원래 일하던 데 다 있잖아.”

나는 희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희수가 나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늘 마음이 뭉클해졌다. 언젠가 희수가 이제는 승규 너도 아무 생각 없이 사랑을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지만, 희수가 정말로 온전히 사랑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내게 가르쳐 주려고 하나 보다.

“그런 생각 하지 마, 희수야.”

“…….”

“난 여기 이사 와서 너무 좋아.”

사실이었다. 제대한 뒤 제법 오랫동안 터를 잡아 온 부천을 떠나면서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부천에서도 훌쩍 외진 동네에서 살면서 희수가 매일 출퇴근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봤다면 내가 너무 속상했을 것 같다. 당연히 희수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우리가 이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 나도 거기 가서 음료수나 돌릴까 봐.”

나를 떠보는 것처럼 슬쩍 흘겨본 희수가 조금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순간 예전에 일하던 정비소에 윤정이가 와서 비슷한 행동을 했던 게 생각나서 흠칫했다. 하지만 희수가 그에 대해서 알 리는 없겠지. 그렇게 나는 불쑥 떠오른 생각을 쉽게 털어버렸다.

“에이, 안 그래도 돼.”

혹시나 희수가 부담 가질까 봐 단박에 거절하면서도, 나는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나를 잘 부탁한다고 동료들에게 말하는 희수를 한 번쯤 상상해 봤다. 어디 내놔도 절대 빠지지는 않는 애인이라 무척 자랑스러울 텐데, 그래서인지 사실 또 그렇게 남들에게 함부로 보여주기는 조금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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