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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잃은 김지운이 들것에 실려 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카페는 온통 난장판이었다. 나는 핏물로 질척질척한 바닥 위를 걸어서 승규에게로 다가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승규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었다. 그대로 그를 꼭 안아주었다.
“승규야, 고마워.”
내가 이기적이라서, 내가 용기가 없어서. 그래서 나는 그렇게 열여덟의 승규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뒤늦게 했다.
“응?”
“나 대신 저 새끼 패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때와 똑같이, 내가 모독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던 승규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사람이 저 지경이 되도록 무자비하게 패는 건 도덕적으로는 옳지 않은 행동이다. 하지만 김지운이 나에게 안겼던 모멸감을 되새기면, 떡이 되어 너덜거리던 그 처량한 모습은 차라리 마땅한 일이었다. 솔직히 속이 다 후련했다.
나와 승규는 카페 주인에게 사과하고 청소비를 물어주고 나왔다. 우리는 함께 거리를 걸었다. 승규는 착잡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뒷감당할 걱정 때문인 것 같았다.
“승규야.”
“으응.”
“너 근데 그 카페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나 너 있는지도 몰랐어.”
나는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승규에게 물었다. 나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쉰 승규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사정 대충 설명하고…….”
“응.”
“조금만 부엌에 있으면서 얘기 듣게 해달라고 부탁하니까, 그렇게 해주시던데.”
승규는 망설이며 내게 답했다. 나는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래서 카운터 쪽에서 나왔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카페 사장이 들어주었다면, 그건 순전히 승규의 얼굴 탓일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결국엔 피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는 마당에 사장님께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꼴이 되었지만.
“희수야.”
승규가 심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으응. 나는 승규에게 대답했다. 그대로 손을 잡아주고 싶은데, 아직 밖이라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속상했다.
“미안해. 순간 내가 이성을 잃어서…….”
승규가 말끝을 흐렸다.
“사람 때리는 거 이제 진짜 그만하려고 했는데.”
“…….”
“후… 김지운 그 새끼 분명히 법적으로 물고 늘어질 것 같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승규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승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이 짙게 어린 승규의 눈동자를 빤히 응시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참담하고 처참한 상황이 맞았다. 당장 때릴 때는 속 시원해도, 결국에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은 맞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나는 이번 일을 승규와 함께 잘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승규야 걱정하지 마.”
“희수야.”
“나도 생각이 있어.”
나는 승규를 바라보고 생긋 웃었다.
***
김지운이 센 척하지만, 솔직히 아웃팅 당하면 곤란한 위치인 것은 그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그랬다. 일개 대학원생인 나보다야, 병원을 꾸리고 있는 그가 잃을 것이 더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목줄을 틀어쥐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핸드폰을 뒤지니 그와 한창 좋았던 시절을 증명하는 사진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사실 김지운은 사진 남기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는데, 연애 초기에 마음이 마냥 들떴던 내가 잠든 그의 얼굴에 뽀뽀하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찍었던 적이 있었다. 외에도 다정하게 손을 잡은 사진 정도는 갤러리에서 몇 장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승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랬다.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보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대한의사협회와 이비인후과협회의 메일링 리스트를 찾았다. 메일 내용에 그의 병원 이름과 주소를 입력하고, 나와 스킨십하고 있는 사진을 첨부해 단체 메일을 발송했다.
메일을 보낸 후,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나는 병원에 입원한 김지운을 찾았다. 전치 6주라고 했던가. 뭐 알 바 아니었다. 나는 승규가 차라리 김지운을 죽기 직전까지 패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과일 바구니 들고 올 처지는 아닌 것 같아서 빈손으로 왔어.”
나는 그에게 인사했다. 온몸을 붕대로 둘둘 감고 다리에는 깁스를 매달고 있는 김지운은 내가 본 이래 가장 초라하고 어리숙했다. 그렇게 망가진 모양새를 하고서도 김지운의 형형한 눈빛은 아직 영 죽지 않았다. 김지운이 나를 보고 가소롭다는 듯 픽 웃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분노로 번들거렸다.
“그 정비공 새끼 폭행죄로 이미 고소했다.”
“…….”
“법적 공방까지 가면 아주 재밌겠어.”
“…….”
“뭣도 없는 새끼가 이제 빨간 줄까지 그이게 생겼네.”
나는 입을 다물고 냉랭한 표정으로 나를 협박하려 드는 김지운의 개소리를 얌전히 들어주었다.
“그러면 윤희수 너는 이제 어떻게 하냐.”
“…….”
“나도 좀 입맛이 떨어져서, 너 거두기도 이제 안 내키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와중에도 나의 정신을 교묘하게 조종하며 그와 함께 있는 것이, 그의 빌어먹을 섹스 토이로 지내는 것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사상을 주입하려 드는 김지운이 몹시 역겨웠다.
“정말?”
“…….”
“너 그렇게 못 할걸.”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김지운의 입가가 재미있다는 듯 뒤틀렸다.
“글쎄. 뭘 믿고 이러지, 우리 희수가?”
“너 나보고 너나 나나 똑같은 종자라고 했지.”
“그랬지?”
“그래서 그런가 봐. 잘 생각해보니까 네 약점이 나도 훤히 보이더라고.”
나는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김지운에게 내던졌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한 김지운이 봉투를 열어 안에 담겨 있는 나와 그의 사진들을 확인했다. 김지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무슨 속셈이냐는 듯, 나를 올려다봤다.
“대한의사협회랑 이비인후과 협회 이메일로 사진 다 돌렸어.”
“허.”
“네 병원 이름, 주소랑 같이.”
김지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기이한 목소리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하하, 이번 건 예측 못 했다. 그래 인정할게.”
“…….”
“근데 니가 이런다고 내가 눈 하나 꿈쩍할 것 같아?”
“하.”
나는 여전히 허세로 둘러싸인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내 앞에서 그의 저열한 바닥까지 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서일까, 이제는 어느 정도 그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난 누구랑 다르게 타인 시선 그렇게 의식하지 않거든.”
“…….”
“어차피 개원의는 갠플이야 희수야.”
“…….”
“겨우 이 정도로 네가 내 삶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줄 알았어?”
나도 그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고압적인 태도로 그는 나를 찍어 누르려 들었지만, 나는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나 역시 이렇게 될 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김지운 너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뭐?”
“이건 단순히 경고야.”
나의 말을 들은 김지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 이상 김지운 생각처럼 인형이 되어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살지는 않을 거였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지금은 동료 의사들이지.”
“…….”
“다음번에는 네 병원 환자들이 될 거야.”
김지운이 동요했다. 나는 내가 스트라이크 존을 때린 것을 확신했다.
“야, 윤희수.”
나를 부르는 김지운의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사실 나는 그 안에 숨어 있는 불안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왜, 니가 먼저 시작한 게임이잖아?”
“…….”
“우리 학교에서 경영대 게이 하면 다 난 줄 알아서, 난 이제 잃을 게 없거든.”
“윤희수.”
나는 김지운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그래서 뭐, 이 사진으로 피켓이라도 하나 만들까 해.”
“…….”
“요새 1인 시위가 유행이라며, 잘나가는 병원 한 번에 맛 가게 하는 데에는.”
“…….”
“네가 맨날 나보고 병원은 동네 장사라고 했잖아.”
“…….”
“네 돈줄 되시는 주민들이 의사가 게이라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나의 질문을 곱씹는 김지운은 아무 말도 없었다.
“왜 울려고 그래 형. 아직 난 시작도 안 했는데.”
내가 도발하자 김지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몸을 홱 일으키려는 김지운은 아직 여전한 통증 때문인지 허리를 곧추세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침대 위로 볼썽사납게 푹 고꾸라졌다.
“…….”
“…….”
침대 시트 위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동성애자임을 결코 숨길 수 없는 사진들을 내려다보던 김지운이 이를 꽉 깨물었다.
“윤희수.”
“…….”
“알았으니까 멈춰.”
나는 나의 승리를 직감했다.
“네가 방금 했던 말, 절대 실행으로 옮길 생각도 하지 마.”
“네가 경찰서 가서 승규 처벌할 의사 없다고 밝히는 게 먼저지.”
김지운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나는 병원에서 들어오는 돈을 목숨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그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나는 씩 웃으며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들을 다시금 주워 담았다.
“아, 미안한데 우리가 형편이 마땅치 않아서 합의금은 못 주겠고.”
“…….”
“병원비는 돈 썩어 나는 네가 알아서 충당해, 알겠지?”
그가 언젠가 참 좋아했던 산뜻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는 김지운에게서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이제야 정말 끝이었다.
“윤희수!”
그때 그가 나의 이름을 외쳤다. 거의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수준이었다. 나는 병실 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이 썅년아,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투자한 돈이 얼만데 이렇게 먹튀야?”
“…….”
“씨발, 그래도 그동안 너같이 반반한 년이랑 꼴릴 때마다 떡칠 수 있는 거 하나는 좋았다?”
“…….”
“비싼 씹값 치렀다고 생각할게, 창녀야.”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나에게 또 한 번 모멸스러운 말을 던졌지만, 내 마음 한편은 이상하리만큼 후련했다. 마지막까지 추악한 모습을 보이는 김지운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가식적인 삶의 실체가 낱낱이 까발려진 느낌이 들었다.
승규가 아니었으면 나는 저 삶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그대로 매몰되어 버렸을 수도 있었다. 고작 저런 남자랑 만나면서 나는 모든 게 알맞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솔직히 내가 저 정도로 쓰레기였나 싶어서,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되돌아보면 무척 부끄러웠다.
그래서 승규는 나에게 일종의 구원이었다. 나는 결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희생적이고 시혜적으로 승규를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진창에 처박혀 있으면서도 그곳이 지저분한지도 모르고 흡족해 있던 나를, 승규가 정결한 손길로 끌어올려 구원했다.
***
김지운이 있는 병실을 빠져나오자 탁하고 맥이 풀려서 그대로 복도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안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굴었지만, 사실은 심장이 쿵쿵 아슬아슬하게 뛰고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했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꼿꼿하게 버텨 섰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곳이니, 정말로 괜찮았다.
병원에서 나가는 길에 승규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승규의 목소리는 마치 안정제 같았다. 나를 걱정하는 승규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자 아직 전신에 저릿하게 남아 있던 불안감과 초조함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승규가 있으면 그렇게 모든 게 다 괜찮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승규는 그러한 나의 기대를 언제나 현실로 만들어 주는 남자였다.
내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반차를 낸 승규는 내 오피스텔로 왔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긴 소파에 모로 누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도어락이 풀리는 소음에 몸을 일으켰다. 숨을 헐떡이는 승규가 내게로 단박에 달려왔다.
“희수야!”
내게로 다가온 승규가 토해내듯 내 이름을 외쳤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소파에서 완전히 일어선 나는 승규와 눈을 맞췄다. 그대로 승규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나한테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럼 너 걱정할 거잖아.”
“그래도.”
내가 전한 좋은 소식에도 승규는 사실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승규는 영 석연찮고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가 김지운과 단둘이 있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승규를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나 역시 또 한 번 승규를 불필요하게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봐. 못 참고 이렇게 바로 달려왔으면서.”
나는 가볍게 승규를 타박하며 눈을 예쁘게 흘겼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는 승규가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나를 꽉 껴안았다. 승규와 나는 조금의 빈틈도 없이 착 달라붙었다.
“너무 다행이다.”
승규가 귓가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별말 아닌 것 같았는데 그동안 김지운 때문에 마음고생 했던 일이 생각나서인가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껴안은 커다란 승규의 몸이 따뜻했다. 나는 내 허리를 생명줄처럼 절실하게 붙잡고 있는 승규의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살짝 몸을 떼어낸 승규가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입술에 쪽 하고 뽀뽀했다.
“희수 너 진짜 대단해.”
“아냐, 승규야.”
승규는 사건의 공을 나에게 돌렸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아니었으면 나 절대 그렇게 못 했을 거야.”
“희수야.”
“승규야, 솔직히 나 그 사람 많이 무서웠어.”
나는 또렷한 시선으로 승규를 응시했다. 김지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평소보다 거칠해 보이는 잘생긴 뺨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근데 네가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
“나는… 이번엔 내가 너 지켜주고 싶었어, 승규야.”
나는 승규에게 조심스럽게 나의 진심을 꺼냈다. 이제는 나도 더 이상 전처럼 뒤로 숨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전면에 나서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 나의 절실함이 느껴졌을까. 나를 바라보는 승규의 눈동자가 찰랑 흔들렸다. 다시 한번 내 허리를 끌어당긴 승규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가만히 숨을 내쉬며 나의 체취를 들이키는 승규를 달래듯 나는 승규의 허리춤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희수야, 미안해.”
여전히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승규가 웅얼거리며 사과했다. 나는 작게 웃었다.
“네가 뭐가 미안해.”
승규는 나에게 미안할 일을 한 적이 애초에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승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사람이었다. 근데 얘는 뭐가 자꾸 미안하다고 이래.
나는 승규의 목덜미를 살살 쓸어내렸다. 다시금 승규가 고개를 들고 나의 얼굴을 보게 했다. 우리의 시선이 반듯하게 맞닿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승규가, 치미는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이를 꽉 깨물었다.
“저런 새끼인 줄 알았으면, 나 애초에 너 안 보냈어.”
그렇게 말하는 승규는 무척이나 단호했다. 순간 할 말을 잃은 나는 승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새끼가 너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뺏어 왔을 거야.”
나의 입술 근처를 엄지로 느릿하게 문지르는 승규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승규에게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느릿하게 꿀렁이는 승규의 두툼한 목울대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쉽사리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나는 김지운 사건이 나뿐만 아니라 나를 그에게 보내주려고 했던 승규에게도 굉장히 큰 상처와 후회였겠구나 생각했다. 김지운의 끔찍한 실체를 모르고 있던 것은 우리 둘 모두였다. 자칫하면 그의 간교한 계책으로 인해 우리는 그대로 멀어질 뻔도 했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묵직한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살짝 털어냈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우리에게는 행복해질 일만이 남아있다. 고작 이런 일로 사랑하는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은 싫었다.
“오. 조승규.”
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승규의 이름을 부르며 승규의 남자다운 얼굴선을 스륵 훑어 내렸다.
“왜.”
“너 그렇게 말하니까 좀 섹시해서.”
내가 지금까지 이런 식의 칭찬을 승규에게 한 적이 잘 없었던가. 내 말을 들은 승규의 귓불이 붉어졌다. 승규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리고는 내가 귀엽다는 듯 내 앞머리를 슥슥 매만지다 작게 흐트러트렸다.
“희수야, 그 새끼가 했던 말.”
“으응.”
“맘에 담아두지 마. 알았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섹스 토이. 예쁜 장난감. 고급 창녀. 김지운이 내게 던졌던 모욕적인 말들이 솔직히 아직 생생하게 살아남아 머릿속을 어지럽게 울렸다. 나의 자존감을 정확히 겨냥하고 총알을 쉴 틈 없이 쏟아냈던 김지운의 언어폭력은 내게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다.
개 같은 인간이 한 말이니, 단순히 개소리일 뿐이라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성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아니라고 해도 솔직히 나는 깊이 내상을 입었다.
내가 적어도 호감을 전제로 만나오고 있던 누군가가 나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정말 다리나 벌릴 줄 아는 인형처럼 대해 왔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김지운이 그동안 내게 제공해왔던, 그리고 내가 기꺼이 누려 왔던 사치와 안락이 그 인간식 표현대로 하면 화대였다는 게 몸서리쳐졌다.
“응, 당연하지.”
나는 승규의 앞에서 씩 웃었다. 애써 괜찮은 척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표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승규가 안쓰럽다는 듯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희수야.”
“…….”
“나는 네가…. 그냥 너 자체가 나한테 너무 소중해.”
“…….”
“대가로 뭐 바라는 것도 없어. 그냥 너 아끼고 사랑만 할 거야.”
김지운이 던지고 간 날카로운 파편들이 긁어낸 마음의 상처 위로 승규가 따스하고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승규가 내게 보여주는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당장은 조금 아프더라도, 이 자리에는 곧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꿀꺽. 침을 삼켜낸 나는 승규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림처럼 잘생긴,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그리고 언제나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는 승규의 얼굴을 떨리는 눈동자로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승규야.”
나는 발을 뻗어서 승규의 바지 끝을 건드렸다. 그대로 바짓단을 끌어올리고 드러난 승규의 발목을 살살 쓸어내렸다.
“근데…….”
여전히 아래에서 발목을 매만지는 내가 말끝을 흐리자 승규의 얼굴에 조금 긴장한 기색이 비쳤다.
“나는 지금.”
“응.”
“우리 섹시한 애인이랑, 섹시한 짓 좀 하고 싶은데.”
주르륵, 매만지던 발목을 그대로 쭉 쓸어내리며 나는 승규에게 은근하게 눈짓했다. 하. 승규가 밭은 숨을 내뱉었다. 온순하던 시선이 순간 날카롭게 번쩍였다. 승규가 그대로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폭우 같은 키스가 쏟아지듯 내리부었다.
***
알몸이 된 우리는 침대에 풍덩 뛰어들었다. 서로의 벗은 몸을 꽉 껴안고 뒹굴었다. 간간이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간질이기도 하면서 상대의 몸을 매만졌다. 공기 중에 은은하게 풍기는 승규의 맨살 냄새가 좋았다.
“아, 아퍼어.”
허리춤을 매만지던 승규가 내 엉덩이를 꽉 쥐었다가 놓았다. 솔직히 그렇게 아프게 만진 건 아니었는데 괜히 한번 엄살을 부려 봤다. 그걸 승규도 눈치챘는지, 내 쇄골께에 얼굴을 푹 파묻고 푸시시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꼭 새털 같았다. 나는 눈을 부드럽게 휘며 승규의 가슴팍을 매만지던 손으로 승규의 유두를 살짝 꼬집었다.
“어쭈.”
인상을 일부러 팍 쓴 승규가 침대에 모로 누워 사지를 아무렇게나 펼치고 있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내 얼굴이 정면을 향하도록 발라당 뒤집어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 푹신한 침대가 풍덩 잠겼다가 다시 쑤욱 올라왔다. 내 몸 위로 표범처럼 날래게 올라탄 승규가 나의 하반신을 묵직하게 내리눌렀다.
“으음.”
“흐으응.”
여기서부터는 장난이 아니라는 게 확 느껴졌다. 승규가 내게 거칠게 키스했다. 승규가 내 입술을 베어 문 바로 그 순간 나는 다리를 승규의 허리에 확 감고 승규에게 매달렸다. 촉촉 소리가 나며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타액이 입술 새로 흘러내렸다.
위로는 키스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동안 아래에서는 슬슬 일어서기 시작한 성기가 서로 문질러졌다. 맞닿은 살덩이가 불에 델 것처럼 뜨거워 등줄기에 소름이 쭈뼛 솟았다. 몸이 예민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내 목덜미를 느른하게 눌렀다가 놓는 승규의 사소한 손길에도 온몸에 솜털이 바짝 솟아올랐다.
“아응, 흐으으…….”
마침내 입술이 떼어지자 나는 조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승규를 올려다봤다. 밀려드는 쾌감에 눈가가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크게 동요하지 않은 승규가 슬쩍 웃으며 나의 젖은 입가를 엄지로 문질렀다. 나는 눈을 감고 승규의 손가락이 나를 매만지는 감촉에 매달렸다.
“아, 희수야…….”
내 이름을 부른 승규가 마치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내 온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승규의 입술이 나의 입술을 떠나 내 상반신 전체로 뻗어 나가며 유영했다. 까슬까슬한 입술이 민감한 목선을 주르륵 타고 흘러내릴 때는 나도 모르게 허리가 둥그렇게 굽었다.
이내 두툼한 입술은 흡착력 있게 쇄골을 빨아댔다. 목덜미와 가슴팍 중간 즈음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승규의 얼굴이 간질거렸다. 아야. 쪽쪽 힘 있게 빨아대던 승규가 예고 없이 조금 아플 정도로 내 살갗을 깨물어 입술 새로 작게 신음이 터졌다.
“윤희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떼어낸 승규가 나를 나른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승규가 손등으로 자신의 입술을 거칠게 슥 닦아냈다.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섹시해 나는 그대로 홀려버릴 것 같았다. 움찔 몸을 떨었다. 이내 내 쇄골로 손가락을 가져온 승규가 피부를 짓누르듯 매만졌다. 내려다본 나의 쇄골은 어느새 새빨갛게 달아올라 부풀어 있었다.
“너 피부 신기해.”
“으응?”
“하얗고 보들보들한데, 조금만 빨면 빨갛게 올라오고.”
승규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금 내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유두를 빨았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돌기를 입술로 쭉 잡아당겨 잘근잘근 씹더니, 유륜까지 한 번에 깨물기도 했다. 그러더니 가슴 전반을 갉작갉작 이로 긁어내렸다. 승규를 채 말릴 틈도 없이, 내 가슴팍에는 울긋불긋한 자국이 온통 번져나갔다.
“아, 흣, 승규야, 나 괜찮은데.”
“…….”
“보이는 데에는 하지, 흣, 마.”
나는 어느새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 내 복근을 빨아대는 승규의 머리통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승규가 혀를 길게 내어 음모 바로 위에서부터 배꼽까지를 끈적하게 핥아 올렸다. 적나라한 유혹에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꽉 조여들었다.
“솔직히 가끔은 보이는 데에도 하고 싶어.”
그러더니 내 배 위에다가 대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승규의 목소리가 부들부들한 피부 위로 웅웅 울렸다.
“아무도 절대 너 못 건드리게.”
“…….”
“윤희수 내 거라고 사방에 광고하고 싶어.”
흥분으로 달아오른 승규의 목소리가 그릉거렸다. 나는 승규가 드물게 내비치는 나를 향한 소유욕이 사랑스러웠다. 승규의 머리칼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살살 쓸어내렸다. 여전히 내 배를 할짝할짝 핥아내는 승규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바보야, 누가 나 건드린다고 그래.”
“…….”
“나 완전히 니 껀데.”
그 말을 들은 승규가 고개를 들어 다시금 위로 올라왔다. 견딜 수 없다는 듯 내게 다시 키스했다. 나는 승규의 목을 꼭 껴안았다. 입안을 파고드는 혀가 뜨겁고 열렬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서로를 이토록 원하고 있는 게 견딜 수 없이 좋았다.
“이렇게 예쁜데 내가 걱정을 안 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승규가 예쁘다고 해주면 그 자체만으로 뭔가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애정이 흥건하게 어린 승규의 다정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승규가 웃으며 살짝 이를 드러내는 내 입가에 자꾸만 쪽쪽 뽀뽀를 했다. 간지럽고, 감질났다.
“아아.”
“왜.”
“나 너무 흥분될라 그래, 승규야.”
나는 뭔가 애타는 기분에 휩싸여 말했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근사하게 웃은 승규가 엉덩이 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승규의 검지가 엉덩이골을 죽 훑어 내렸다. 배어난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는 곳이 꽉 움츠러들었다.
“하아, 으으.”
승규가 내 입에 자신의 손가락을 물려 빨게 시켰다. 나는 입을 벌리고 승규의 길고 두꺼운 손가락을 잔뜩 삼켜 쭉쭉 빨았다. 이내 타액으로 흥건해진 그것을 승규가 나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충분한 애무로 긴장이 풀리고 부드럽게 이완된 몸은 별다른 무리 없이 승규의 손가락을 삼켰다.
“희수야, 다리 올려봐.”
“이렇게?”
“어, 더 위로.”
나는 승규가 시키는 대로 다리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길쭉한 다리가 쭉 머리 위까지 올라가면서 몸이 거의 반으로 접혔다. 승규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무방비하게 드러난 구멍을 쏘아봤다. 방금까지 승규의 손가락이 드나들던 그곳이 뻐끔거렸다. 그 모양이 내 눈에도 적나라하게 보여 나는 차마 견디지 못하고 눈을 꽉 감았다.
무언가가 또 내 안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할딱할딱 숨을 몰아쉰 나는 젖어 든 속눈썹을 겨우 올려 떴다. 승규는 내 입구에 양 엄지를 하나씩 집어넣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승규가 못된 얼굴로 씩 웃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양옆으로 쫙 잡아당기자 구멍이 쩍 벌어졌다.
“희수야, 여기 봐봐.”
나는 다시금 꼭 감았던 눈을 힐끔 떴다. 승규가 손가락으로 억지로 잡아 벌리고 있는 구멍이 얼얼하고 간지러웠다. 승규가 내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흥미 어린 시선이 찬 공기에 닿아 벌름거리는 구멍을 훑었다.
“안이 엄청 빨개.”
“아, 어딜 보는 거야. 부끄럽게.”
여전히 승규의 얼굴에는 슬쩍 비틀린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승규가 엄지를 집어넣은 구멍을 쭉쭉 옆으로 잡아당겼다. 승규가 움직이는 대로 주름이 바쁘게 오물거렸다. 구멍이 동그랗게 벌어졌다가 다시금 신축성 있게 오므라들기를 반복했다.
“엄청 잘 늘어난다.”
“아아, 승규야, 너 진짜아…….”
“하. 지금 넣으면 완전 꽉 조일 텐데.”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아래에서 움직이는 구멍이 부끄러워서 나는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승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짓궂게 굴었다. 양 엄지가 쫙 벌려 동굴이 까맣게 드러난 속살 위로 입술을 가까이 가져와 훅 하고 바람을 불었다. 나는 거의 까무러치며 비명을 질렀다.
“조승규우, 간지럽잖아.”
킥킥 웃은 승규가 손가락을 집어넣은 채 내 아래를 빨기 시작했다. 까끌까끌한 혀가 예민한 속살에 들러붙고 축축한 침이 엉덩이골을 흥건하게 적셨다. 뾰족하게 모인 혀끝이 내벽을 파고들어 와 콕콕 찔렀다. 승규는 안쪽의 살점을 빼내기라도 할 기세로 거세게 흡착하며 내 구멍을 빨아 삼켰다.
“맛있어.”
“아, 그런 말 하지 마아.”
결국, 나는 견디질 못하고 얌전히 들어 올리고 있던 다리를 마구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승규는 나를 놓아줬다. 나는 가쁜 숨을 쌕쌕 몰아쉬었다.
“희수 너 여기까지 다 빨개졌다.”
불쑥, 끈적대는 승규의 손이 내 가슴 정중앙을 짚어 왔다. 승규의 말대로, 목덜미부터 가슴팍까지가 온통 산딸기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굴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안 봐도 훤했다.
승규의 손길에 다리가 넓게 벌어졌다. 싫다고 투정 부리면서도 꼿꼿이 솟은 내 성기를 승규가 한 번 슥 훑어 내렸다. 자르르 몸이 떨렸다. 엉덩이 사이의 구멍을 한 번 가늠하듯 만진 승규가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제 귀두를 가져왔다. 나는 구멍에 뜨끈하게 닿는 승규를 느끼면서 얕게 전율했다.
이런 데서 경쟁심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오늘 섹스를 하면서 나 너무 승규에게 휘말리기만 한 것 같다. 서로 좋자고 하는 일이지만, 너무 나만 애타고 미칠 것 같은 건 불공평하지 않은가. 문득 나도 승규를 도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팔을 뻗어 승규의 턱 끝을 매만졌다. 막 안으로 들어오려던 승규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나를 올려다봤다.
“승규야, 나 뒤에서 박아줘.”
“어?”
“그러면, 네가 더 깊이 들어와서, 흐, 좋아.”
승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성기를 쥐고 구멍에 겨냥하고 있던 승규의 손이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내 허리를 당겨 안은 승규가 갑작스럽게 내 몸을 뒤집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네 발로 엉금엉금 기는 꼴이 됐다. 고꾸라지려는 몸을 팔을 뻗어 겨우 지탱했다.
“윤희수, 엉덩이 위로 들어.”
나는 무릎 꿇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었다. 하. 나직하게 뱉어진 숨소리가 마치 경고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승규의 성기가 내 안을 단박에 파고들었다. 두툼한 부피에 엉덩이가 둘로 쫙 갈라지는 것만 같아 나는 고양이처럼 갸릉대며 울었다.
“아아, 흐으응, 승규야아.”
승규의 사타구니와 음낭이 내 엉덩이에 부딪히며 철썩철썩 요란한 소리가 났다. 확실히 승규는 평소보다 좀 흥분한 상태였다. 내 상태를 배려하면서 느긋하게 움직인다기보다는, 자신의 욕정을 주체하지 못해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존나 꽉 물어, 후.”
그릉거리는 목소리로 중얼댄 승규가 팔을 뻗어 내 머리채를 꽉 잡았다. 평소보다 조금 난폭하게 흘러가는 섹스가 짜릿해서 나는 더 높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쾅, 쾅, 승규가 비대한 성기를 내 안에 박을 때마다 몸서리쳐지는 흥분으로 침대를 버텨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아, 승규야, 거기 잠깐만!”
몇 번 안을 찌르던 승규는 금세 내가 가장 흥분하는 곳을 알아챘다. 승규의 두툼하고 매끈한 귀두가 전립선을 문지르자 그대로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흥분에 겨운 몸이 아래로 무너지려고 하자 승규가 내 허리를 바짝 잡아당겼다.
“다리 똑바로 해야지.”
그리고 오히려 더욱 집요하게 내가 느끼는 부분을 성기로 문질렀다. 어찌나 깊숙이 박아 넣었는지 승규의 까슬까슬한 음모가 여린 엉덩이에 거칠게 비벼졌다. 거의 짓이겨지는 듯한 느낌에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내가 훌쩍훌쩍 흐느끼는 동안 승규는 퍽퍽 계속해서 내 안을 찧어댔다. 너무 힘든데, 너무 좋았다. 정말이지 버거울 정도의 쾌감이었다.
“아, 나 어떡해, 흐으.”
견디지 못한 나는 스스로 성기를 쥐고 매만지기 시작했다. 내벽에 가해지는 자극으로 잔뜩 달아올라 있던 성기는 몇 번 훑어내리기만 했는데도 금세 말간 정액을 후두둑 토해냈다. 사정의 여파로 경련하듯 내벽을 조이자 승규가 낮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너무 좋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승규가 좋다고 하자 마음 어딘가가 뭉클해졌다. 더, 더 많이 승규를 좋게 해주고 싶었다. 침대에 엎드린 나는 승규가 내 안에 들어오는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흔들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점차 승규의 움직임이 고조되었다. 무자비하게 내벽을 찍어대는 단단한 성기를 느끼며 나는 사정을 예감했다.
“하아, 하아.”
“후으으…….”
내 안에 싸지른 승규가 쑥 하고 성기를 빼냈다.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세를 팽팽하게 유지했다. 승규를 가득 품고 있던 구멍이 뻐끔거렸다. 승규가 토해낸 정액이 질금질금 벌어진 틈새로 흘러나왔다. 허벅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아. 귓가에 거칠게 몰아쉬는 승규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짝 긴장해 엎드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승규의 엄지가 엉덩이 사이에 닿아왔다. 손가락이 구멍 위를 지긋이 짓눌렀다.
마치 다시 집어넣을 것처럼 안쪽을 살짝 파고들었지만, 엄지는 더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만 질질 새는 정액을 꼭 마개처럼 꽉 틀어막았다. 나는 승규의 손가락을 문 채 구멍을 움찔거렸다. 승규는 자신을 양껏 담고 있는 나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씻고 싶어?”
“아니요.”
“응?”
승규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빳빳하게 당기는 고개를 돌려 승규를 바라보았다. 유혹적으로 눈을 휘었다.
“이번엔 앞으로 할래.”
씩 웃은 승규가 어느새 오므라들었던 내 다리를 쫙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