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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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영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등교했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지나친 긴장으로 머리가 어질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학교의 풍경은 어제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는 것만 같았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바뀌자 군중이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순간 겁에 질려 발걸음을 내디디지 못했다. 길을 건너는 수많은 사람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모두 나를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성적으로는 내 생각이, 아니 망상이 조금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문이 멀리 퍼진다 한들 경영대학원의 연구실에서 바로 전날 일어난 일을 전교생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겁이 났다. 나는 앞으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두려웠다.

그렇게 멍하게 그 자리에 서서 신호를 여러 번 흘려보낸 후에야 나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안녕.”

“어, 안녕.”

남자 동기가 나를 흘긋 바라보며 인사했다. 쟤는 원래도 건조한 부류의 인간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인사가 더 성의 없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인 걸까. 하지만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게끔, 학교에서 마주치는 남자 동기들은 나에게 유난히 뻣뻣하게 굴었다. 좋게 말하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고, 나쁘게 말하면 나를 무척 껄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입학한 이래 쭉 공동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던 박사님의 반응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사님은 기혼자로 보수적인 성향의 소유자였다. 언제나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의욕을 북돋워 주던 분이, 오늘 나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다만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피했다.

솔직히 상처였다. 모든 사람이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아껴주던 사람이 단순히 나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나를 외면하는 것을 확인하자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앞으로 단순히 박사님 한 분뿐만이 아닐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연구실에서 데이터를 돌리는데 온몸이 따끔거렸다. 모두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건 어쩌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연구실의 사람들이 나누는 스몰 토크에도 좀처럼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통계 프로그램만 돌렸다.

원래도 흡연자가 아니라서 남자 동기들이 담배를 피울 때 조금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다. 박사님을 포함해 남자들 한 무리가 담배를 피우겠다고 밖으로 나가자 신경이 섬찟 곤두섰다. 보나 마나 담배를 태우는 동안 내가 그들의 대화 주제에 오를 게 뻔했다.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호모포비아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걱정됐다.

“희수야, 어제 데이트는 잘했어?”

여자 동기들은 나의 애인의 존재에 대해 쿨하게 반응하는 게 자신의 관용적인 태도를 증명하는 훌륭한 방법인 양 내게 친근하게 굴었다. 내가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 역시 나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서 썩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애인 너무 멋지더라. 완전 훈남!”

“그렇게 꽃다발만 받고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진 않은데~”

“까르르.”

남자들이 연구실을 빠져나가자 여자 동기들이 삽시간에 나를 둘러쌌다. 호들갑을 떨며 어제 연구실을 방문했던 김지운에 관한 이야기를 재생산했다. 얘들이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앞으로 빼도 박도 못 하게 완전히 도장이라도 찍으려고 이러나 싶었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수야, 왜 아무 말도 없어.”

“그래, 이제 다 아는 사이인데 연애 얘기 좀 해도 돼.”

호기심 가득한 시선들이 나를 에워쌌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분노 때문일까, 나는 생각했던 것처럼 움츠러들지는 않았다.

“나 그 사람이랑 헤어졌어.”

나는 담백한 태도로 사실을 말했다. 나를 둘러싼 동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의 말을 전혀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어제 일을 봤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몰랐다. 

“에이, 희수 너 설마 우리가 편견 가질까 봐 발 빼려는 거야?”

“야, 안 그래도 돼. 요새는 교수님들도 얼마나 열려 있는데.”

“그래, 요즘 세상에 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내가 나의 성적 정체성을 감추려고 헤어짐을 가장한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 솔직히 아직 나도 내가 게이라는 사실에 대해 모든 사람의 앞에서 떳떳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나의 약점인 양 치부하는 태도는 용인하기 싫었다.

“아니 그냥, 내 마음이 다 해서 헤어졌다고.”

나는 헤어짐을 반복해 선언하고 랩탑을 탁 덮었다.

“너네야말로 남의 사생활에 쓸데없이 너무 관심 가지는 것 같지 않아?”

그리고 나를 둘러싼 동기들을 날카롭게 쏘아봤다. 그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놀란 듯 의뭉스러운 시선을 주고받았다.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다시 연구실에 돌아온 이후로는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나는 내가 무슨 병균이라도 된 줄 알았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주위가 묘하게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명백하게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를 조심스럽게 힐긋거리는 시선 뒤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라서 참을 수 없이 답답했다.

솔직히 논문에 전혀 집중되지 않았는데 이대로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들어 억지로 저녁 즈음까지 자리를 지켰다. 지도 교수님이 해외 세미나에 참석하셔서 오늘 얼굴을 뵙지 못했다. 이제 교수님들도 다 알고 계시려나. 걱정됐다.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는 일도 결국은 시간문제일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솔직히 너무 두려웠다. 아직 스스로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 아주 편하지 못한데, 그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예고 없이 까발려지자 너무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견뎌야 했다. 여기서 내가 무너져서는 안 됐다. 내게는 승규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의 어딘가를 더듬었다. 솔직히 그때 그렇게 전학을 훌쩍 떠나며 나는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볼 수 없다고 해서 학교에 떠돌던 소문이 그대로 사라졌을 리는 없다. 내가 증발한 자리에 승규가 혼자 남아 나의 몫까지 더불어 두 배, 혹은 그 이상으로 상황을 감당했을 것이다.

어린 날의 승규가 받았던 고통에 비하면 지금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때 승규는 믿었던 나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마저 혼자 이겨내야 했다. 적어도 지금 나는 승규와 함께였다.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먹었다. 우리가 같이 있으려면 앞으로 더 큰 어려움도 이겨내야 할 텐데, 고작 이런 일로 좌절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승규가 학교가 마칠 시간에 맞춰 신촌으로 오겠다고 했다. 승규에게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는 승규의 말에는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말문이 턱 막혔다. 승규는 매번 경기도까지 멀리 운전해오는 내가 항상 걱정됐었다고 뒤늦게 털어놓았다. 평소보다 퇴근을 일찍 한 승규에게서 출발했다는 카톡이 왔다.

학교 정문에서 승규와 만났다. 낮에 학교에 올 때 느꼈던 두려움이 승규를 마주하자 용기로 거듭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를 발견하고 무너질 듯 환하게 웃는 승규에게 달려갔다.

“너무 보고 싶었어.”

“아침에 봤잖아.”

“그래두.”

학교에 있는 동안 나를 어지럽혔던 난잡한 생각들이 승규를 바라보자 단박에 달아났다. 대신 벅참과 설렘이 솟아올랐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속삭이자 승규가 나를 부드러운 눈길로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냥 좋았다.

학교가 있는 곳이라 거의 매일 오지만 사실 신촌은 어린 애들로 너무 붐벼서 썩 내키지 않았다. 승규에게 근처로 이동해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조금 걸어 승규가 차를 주차해놓은 골목으로 이동했다.

“너 내 차 처음 보나?”

승규가 낡은 소형 SUV 앞에 멈춰 섰다. 멈칫하고 나를 돌아본 승규가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마음이 절로 내려앉았다. 나는 승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승규가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 속상했다.

“너 지금 이상한 생각 하지.”

나는 일부러 발랄한 목소리를 가장하고 승규를 타박했다.

“나 하나도 상관없어, 승규야.”

“…….”

“그냥 오늘 네가 나 데리러 와줘서 너무 행복해.”

나는 진심이었다. 내 말을 듣고서야 승규는 조금 안심한 얼굴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연남동에 가서 간단하게 태국 음식을 먹었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선 승규가 계산하려고 하길래 그대로 내버려 뒀다. 밥을 먹은 우리는 함께 번화가에 비해 비교적 한적한 골목길을 걸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를 향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평범한 데이트를 했다. 남의 눈을 피해 숨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새삼스레 마음이 벅찼다.

골목을 걷다 눈에 띈 모던한 카페로 들어갔다. 나의 맞은편에 앉은 승규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둥그런 머그잔을 들고 있는 승규의 얼굴이 너무 근사해서 순간 나는 넋을 뺐다. 쟨 뭐 저렇게 잘생기고 그러나.

“희수야.”

“응?”

이제야 비로소 찬찬히 승규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 놓고 승규에 대해 감탄하느라 나는 순간 멍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를 부르는 승규의 목소리에 조금 얼떨떨하게 반응했다. 나는 승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승규가 씩 웃었다. 나도 배시시 웃었다.

“너는 그럼 지금 대학교 다니는 거야?”

그리고 승규가 내게 건넨 질문은 사실 뜬금없었다. 이런 것도 몰랐나 싶어서 조금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승규가 내게 질문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승규에게 제대로 얘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만난 후에 몇 번이고 몸을 섞었으면서도 아직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알아 가면 된다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나는 승규를 보고 생긋 웃었다.

“아니, 대학원.”

“몇 학년이야?”

“2학년. 이제 곧 졸업하면 석사 돼.”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승규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나는 커피에 살짝 젖어 든 승규의 입술을 빤히 바라봤다. 나를 마주 보는 승규가 조금 뜸을 들였다.

“졸업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돼?”

나의 계획을 묻는 승규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과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승규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동안 이어지는 침묵을 깨트린 것은 승규였다.

“그냥.”

“…….”

“네가 앞으로 뭐 하고 살지, 나도 알고, 생각하고…….”

입을 꼭 다문 나를 두고 승규가 말을 이어 나갔다. 말끝을 흐린 승규가 긴장한 듯 숨을 조금 들이켰다.

“그러면 좋을 것 같아서.”

변명처럼 말을 마치고 쓱 웃어버리는 승규는 아무래도 나를 조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승규의 질문에 여전히 적합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 잘 모르겠어.”

결국,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자 승규의 얼굴이 맥이 탁 풀린 것처럼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 그런 거 진짜 아닌데. 주변을 흘긋 둘러본 나는 팔을 뻗어 승규의 손을 한 번 꽉 잡았다 놨다.

“아니, 승규야.”

“…….”

“너랑 있을 거는 당연하지.”

승규가 미심쩍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겉으로는 부족한 것 없었지만, 속으로는 마냥 흐지부지했던 내 인생. 거기다 이제 김지운 새끼까지 못된 장난질을 뿌려놔서 앞길을 생각하면 막막했다. 솔직히 승규의 앞에서 나의 이런 초라한 면모를 꺼내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나는 슬쩍 승규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승규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응?”

“내 생각에 너는… 맘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승규가 조금 망설이다 입을 뗐다. 어느새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승규의 눈동자에는 추호의 의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잖아. 너 엄청 똑똑하고 잘났으니까.”

아마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었더라면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비웃었을 것 같다. 실제로 승규가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아는 것 역시 피상적인 인상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승규가 지내온 지난 7년을 모르는 만큼, 승규도 내가 살아온 7년에 대해서 잘 몰랐다.

“…….”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를 우직하게 바라보는 승규의 올곧은 눈동자가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없이도, 승규는 내가 잘할 거라는 사실에 대해 완전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향한 승규의 애정은 늘 이런 식으로 맹목적이었다.

“승규야.”

그런 승규의 믿음이 햇빛이 되어 나의 가장 그늘진 곳, 숨기고 싶었던 별 볼 일 없는 나의 모습에마저도 환하게 내리쬐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겨우 삼켰다.

“응.”

“…….”

그냥 막연하게, 나는 앞으로 승규가 얘기하는 만큼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지금의 상황은 조금도 달라진 면이 없었다. 뭐라고 털어놓는다고 해서 변화할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승규와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냥 내가……. 계속해 오던 게 공부고, 잘하는 것도 그거뿐이라서.”

“응.”

내게 고개를 살짝 기울인 승규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진중한 눈빛에 북받치려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졸업하면 막연히 계속 더 공부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박사 하려고.”

김지운을 만나면서 그런 마음마저 흐려지고 그냥 편하게 그에게 묻어갈까 생각도 했다는 얘기는 차마 승규 앞에서 할 수 없었다.

“근데 사실 어제 학교에 와서 김지운이 나를 아웃팅 시켜서, 소문이…….”

“…….”

“박사 따고 교수하려고 생각하면 이쪽 사회 너무 좁으니까 너무 힘들어질까 봐. 걱정돼서.”

“…….”

“또 막상 공부 말고 다른 길은 딱히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불안하고.”

승규는 가만히 내게 귀를 기울였다. 그 뒤로는 말을 뭐라 더 잇기가 힘들어서 멈췄다. 누구에게도 말 꺼내본 적 없는 날것의 생각이었다. 승규가 나를 골똘히 바라봤다. 승규는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치미는 듯, 인상을 확 찌푸렸다. 승규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나는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거 아주 개새끼네.”

승규가 거칠게 욕설을 읊조렸다. 그 서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다시 들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승규가 눈을 무시무시하게 뜨고 있었다. 꽉 쥔 승규의 주먹에는 핏줄이 투둑 튀어 오른 채였다.

“희수 너 가만있을 거야?”

승규가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따지듯 물었다. 무척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 새끼 완전 작정하고 너 인생 망치려 드는 거잖아.”

아마 이곳이 카페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을 것 같다. 나는 한동안 험악한 얼굴의 승규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울지는 못하고, 대신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애초에 김지운을 두고 내가 바람을 피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안 좋게 헤어진 사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밟아 뭉개며 보복할 이유까지는 없었다. 그가 나에게 저지른 짓이 너무 무서웠고, 끔찍했다.

그러나 속사정이 너무 적나라하게 치졸해서 감히 누구한테 내 편 들어주라고 먼저 들이밀 수도 없었던 얘기였다. 어제 그렇게 학교에서 일이 터지고 오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감당하면서 나는 치미는 마음을 혼자서만 꾹꾹 눌러 참아야 했다. 혼자서만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심정을 승규가 알아주고 나를 대신해 김지운에게 분노해 주자 서러움이 북받쳤다.

“진짜로,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보통 승규는 내가 얘기하길 주로 기다려 주는 편인데, 지금은 내가 별말이 없는데도 나를 계속 몰아붙이듯 말을 이었다. 벌컥 토해지는 승규의 숨결이 씨근씨근 거칠었다. 승규는 상당히 흥분해 있는 상태인 듯싶었다. 나를 위해서 화를 내는 승규의 마음이 나는 너무 고맙고 벅찼다. 하지만 승규가 거듭해서 묻는 말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근데 솔직히…….”

“어. 말해.”

“여기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하면, 그 사람 더 자극할까 봐 무서워.”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 인생을 망치려 드는 김지운에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지만, 분노보다도 더욱 큰 것이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를 어지간해서는 피하고 싶었다. 그의 연락을 받고 내게 전화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불현듯 떠올랐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약점을 틀어쥐고 있었다.

“그 사람 열 받으면 또 무슨 짓 할지 몰라서…….”

그래서 나는 적극적으로 그를 엿 먹일 방법을 모색하는 것보다도, 그가 나의 부모님을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잡음 없이 넘어가고 싶었다. 이미 아무 일이 아닐 수 없게 됐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헤어진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도…….”

승규는 영 탐탁지 않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너 힘들게 하는 사람이잖아.” 

승규의 단단한 눈동자는 여전히 나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 없었다. 볼이 불퉁해진 승규를 바라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쓱 끌어 올렸다.

“우리 다른 얘기 할래?”

하. 승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결국은 내 말을 들어줬다.

***

승규가 나를 오피스텔 주차장까지 데려다줬다. 주차장 내부는 어두컴컴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승규의 차가 멈췄고, 내가 내릴 차례였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승규와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벗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멍한 얼굴로 승규를 바라보았다. 조금 갈구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하아…….”

눈이 마주치자 승규가 그대로 내게 몸을 기울였다. 승규의 커다란 상반신이 나의 몸에 드리웠다. 코끝이 닿을 정도로 우리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승규가 내뱉는 숨결이 입술을 아슬아슬하게 간질였다. 속눈썹을 얌전히 깜빡였다. 이대로 곧 입술이 닿을 것 같았는데, 눈을 똑바로 뜬 승규는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아, 너 진짜…….”

결국, 내가 먼저 승규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승규가 작게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승규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살살 아랫입술을 빨다가 톡 놓았다. 이윽고 승규의 혀가 능숙하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부드럽게 서로의 입안을 핥아냈다. 얽혀드는 혀끝의 감각이 감미로웠다.

“하아…….”

“으음…….”

점점 키스가 짙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애무가 동반했다. 나는 승규의 목덜미를 살살 쓸어내렸고, 승규는 내 허리춤을 느른하게 매만졌다. 차 안은 어둡고, 좁았고, 습했고, 또 승규의 체취로 가득했다. 처음부터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입술을 맞대고 있다 보니 분위기가 오묘하게 흘러갔다.

“흐읏…….”

나도 모르게 중심에 힘이 들어가려고 해 다리를 꽉 움츠렸다. 새벽이 이르고 아침이 되어서도 서로를 하염없이 탐했는데, 승규를 원하는 일은 나에게 좀처럼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승규는 그 자체로 내 안의 욕망을 벗겨진 알맹이처럼 매만지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재빠르게 굴러갔다. 여기서 이대로 한 번 빼고 갈까. 아 근데 카섹스하면 몸 자꾸 부딪혀서 싫은데.

“아, 승규야.”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젖은 입술이 떨어졌다. 눈가가 축축해진 나는 벅찬 목소리로 승규의 이름을 불렀다. 승규가 내 입가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나 벌써 이러면 좀 없어 보이나. 말하고 나서야 뒤늦게 고민했다. 솔직히 간밤에 내도록 혹사당한 몸이 아직도 욱신거리고 쑤셨다. 그래도 나는 승규와 다시 한번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승규를 꼭 껴안고 잘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승규에게서 생각했던 만큼 빨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괜히 승규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승규가 작게 웃었다.

“내일 나 아침에 출근해야지.”

“아…….”

“나 오늘 엄청 지각하고, 또 일찍 퇴근해서.”

솔직히 당연한 얘기였는데 뭐랄까, 승규가 그렇게 말하자 뭔가 힘이 쭉 빠졌다. 이렇게까지 안달 나 있는 건 나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얘는 나한테 그렇게까지 안 흥분되나 싶고.

“그래두.”

그냥 여기서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면 되지 않나. 아 하긴, 그러면 내일 하루 종일 피곤하겠지. 맞아, 밤에도 이미 많이 무리했는데. 자다가 깨서 내 술주정도 받고. 오늘도 또 서울까지 운전해 오고. 그리고 이미 지금 벌써 열한 시 반이라 지금 당장 집으로 가도 늦게 자기는 한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러가는 와중 내 이마에 승규가 짧게 뽀뽀했다. 다음에. 승규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럼, 내일은 내가 부천으로 갈까?”

“그럼 나야 좋지.”

“그래, 내일 너 일 끝날 때쯤에.”

“근데 희수 너 무리하는 거 아니야?”

나는 승규의 질문에 입을 꼭 다물었다. 솔직히 승규 말이 맞았다. 내일 지도교수님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분명 뒤치다꺼리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 거였다. 교수님 아래 있는 연구진들 다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회식까지 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내가 학교에서 게이라고 까발려진 상황이지만, 여전히 경영대학원의 소속인 이상 사회생활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희수야.”

“응.”

승규가 달래는 것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내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나는 너 공부하는 거 얼마나 바쁜지 모르지만.”

“…….”

“솔직히 너 계속 정비소 들락거릴 때 그 생각부터 들더라. 얘 이래도 괜찮나.”

할 말이 없었다. 그날 그렇게 승규를 우연히 재회한 후, 승규에게 매달리는 일에 정신이 쏙 팔려 저번 학기는 아주 엉망으로 흘러갔다. 학점도 평소보다 좋지 않았고, 맨날 입으로만 매달리는 논문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사실 이래도 괜찮지는 않았다. 그냥 승규랑 같이 있으면 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희수야, 나도 당연히 매일매일 너 보고 싶은데.”

“응, 승규야.”

“너랑 나랑 이제 오래 볼 사이잖아.”

나는 승규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조금씩 천천히 아껴서 보자.”

그리고 승규가 씩 웃었다. 순간 할 말을 잃은 나는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얘는 말도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할까. 그런 승규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래도 단 십 분 만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승규의 입술을 베어 무는 것뿐이었다.

***

“그렇게 됐어.”

말을 마친 나는 소주를 들이켰다. 불판에서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났다. 쉭쉭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어둡게 가라앉은 진호의 얼굴이 어스름하게 보였다.

“어쩌다 그런 악질을 만났냐.”

어차피 학교 사람들이 다 알게 된 얘기였다. 인제 와서 덮는다고 해서 숨겨질 것도 아니었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진호에게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승규와 김지운을 두고 저울질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읊을 수는 없었고, 그냥 김지운이 나를 아웃팅 시킨 일에 관해서만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거지.”

“그것치고는 대가가 너무 혹독한데.”

하아. 한숨을 내쉰 진호가 소주를 들이켰다. 진호는 감정 표현이 호들갑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늘 묵묵하게 나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내가 잘못할 때에는 나의 행동을 꼬집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렇게 담담하게 내 편에 서주었다. 나는 그런 진호를 보고 생긋 웃으며 그와 잔을 부딪쳤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내게 질문한 진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게.”

나는 소주잔에 손을 가져가지도 못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런 나를 보며 진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차라리 미국으로 빨리 유학 가라.”

“…….”

“대한민국에 있으면 어디든 소문나지 않겠냐. 그쪽은 편견도 덜할 거고.”

전부가 맞는 말이라서 뭐라고 말대꾸를 못 했다.

“GRE 점수도 1학년 때 다 해놨다며. 이제 원서만 넣으면 되겠네.”

“그치만, 미국으로 유학 가봤자 다시 한국 돌아오면 질기게 소문 따라 다닐 텐데.”

“야. 뭐하러 들어 와. 나라면 그냥 거기 가서 살겠다.”

아웃팅을 당한 상황에서는 사실 진호가 얘기하는 선택지가 가장 이상적인지도 몰랐다.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커리어를 쌓는다면, 내가 게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얻는 일은 한국보다 훨씬 덜할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야 좀 있겠지만, 영어를 편하게 써서 내게는 언어적인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순간 진호의 말대로 미국에서 생활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근데 진호야. 나 이제 미국 못 가.”

나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단호했다. 나는 또렷하게 진호를 바라보았다. 취기로 얼굴이 벌게진 진호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나 사실.”

“…….”

“승규 다시 만나거든.”

그 말에는 진호가 입을 쩍 벌렸다. 진호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승규랑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솔직히 오늘 진호를 만난 이유였다. 따지자면 진호는 아직 학부생이고 나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진호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냉철한 편이었다. 승규의 말로 용기를 얻었지만, 아직 나의 시야는 부옜다. 나는 진호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너 진심이냐?”

“어.”

진호의 짧은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진호가 착잡한 얼굴을 했다.

“장난질할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

“진호야, 이번엔 나 진짜야.”

하아아. 진호가 길게 내쉬는 한숨 소리가 우리 사이의 적막을 갈랐다. 솔직히 내 친구이면서도 승규 얘기만 나오면 꼭 승규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진호가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적나라한 현실이기도 했다. 평생 후회해도 모자랄 만큼, 나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승규에게 혹독하게 굴어왔으니까. 인제 와서 달라지겠다고 선언해도, 쉽사리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

“…….”

나는 괜히 젓가락을 들고 별로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삼겹살을 깨작깨작 찔렀다.

“희수야. 나는 가끔 네가 동생 같은 거 아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가만 보면 늘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것 같은데 실속 하나 못 챙기고.”

내가 그랬던가. 솔직히 듣기 좋기만 한 소리는 아니어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진짜 좋아하는 거면 망설일 게 어디 있어.”

“…….”

“희수야. 너 팔다리 잘린 거 아니잖아.”

“…….”

“찾아보면 할 일은 많다.”

나는 진호의 말을 곱씹었다. 사실 석사를 졸업한 후에 모든 학생이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나는 경영대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공부는 더 하고 싶은데 박사가 부담스러우면 연구소로 빠지거나, 전공 분야 살려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외국계 기업으로 빠지는 선배들도 종종 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그러한 다양한 선택지를 충분하게 탐색하지 못했던 이유는, 시키는 대로 관성처럼 해오던 공부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나갈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도 있었다.

“희수야, 나는 네 친구로서.”

“…….”

“이번에는 누구한테 기대지 말고 스스로 뭔가를 좀 해보면 좋겠다.”

진호는 담백하게 이야기했지만, 그가 내게 전하는 마음은 따뜻했다. 아웃팅을 당하고 나는 이미 내 인생이 끝난 것처럼 좌절했다. 하지만 승규를 만난 이상 내 인생은 차라리 새로운 시작이었다.

진호의 말대로, 이제는 정말 다른 사람에게 나를 기대고 전가하려는 마음을 접어야 했다. 지금에야말로 내 주변에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나와 승규를 위한 최고의 길을 택해 결론지을 때였다.

“진호야, 고맙다.”

“그런 말 말아, 쑥스럽게.”

진호는 고개를 슬쩍 돌리며 소주를 홀짝였다. 승규를 다시 만나고 나서 나는 지금까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였던 내 모습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됐다. 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런 걸 다 알면서도 지금까지 내 옆에서 친구로 있어 준 진호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

주말, 나는 승규의 침대에서 뒹굴뒹굴했다. 섹스를 거하게 하고 깨어난 아침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승규는 허리 아플 테니 좀 더 쉬라고 말하며 나를 억지로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부엌에서 요리하기 시작했다.

어쩜 승규는 저렇게 등짝도 완벽하게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섹시하게 맨몸에 앞치마 하나만 입고 요리를 하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나 꼴리라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싶었다. 아무런 자각도 없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사실은 더 치명적이었다. 나는 턱에 손을 괴고 건장하게 벌어진 승규의 아름다운 등 근육을 하염없이 감상했다.

“조승규 등 잘생겼어.”

이불을 덮어쓴 채 삐죽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라이팬을 잡고 흔들다 나를 힐금 돌아본 승규가 씩 웃었다.

“얼굴도 너무 잘생겼어.”

“그래?”

“알면서 왜 모른 척해?”

“하하.”

그대로 침대를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승규의 잘빠진 뒤태를 보고 있는 것도 좋았는데,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또 승규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내가 헤실헤실한 소리를 할 때마다 그대로 나를 돌아보는 승규의 옆모습이 못 견디게 좋아서 나는 계속해서 승규에게 말을 걸었다.

승규가 침대로 가져온 쟁반에는 계란프라이와 베이컨이 올려진 접시가 있었다. 나는 침대 맡에 서 있는 승규를 바라보며 내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씩 웃은 승규가 앞치마를 슥 벗어냈다. 이윽고 드러난 조각 같은 알몸이 내 옆자리를 파고들었다.

쟁반 위에 놓인 아점을 느릿하게 먹으며 우리는 게으른 얼굴을 했다. 승규의 집에 난 좁은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드문드문 집안을 비추었다. 별 알맹이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기분이 들떠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무척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나 너네 집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문득 그렇게 말했다. 작게 웃은 승규가 내 벗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래? 너무 좁지 않나.”

“근데 침대에 누우면 너 냄새 나서 좋아.”

“하하.”

“계속 베개 막 끌어안고 싶어.”

이 정도면 여기 살고 싶은 이유로는 너무 빈약한가? 하지만 잠잘 때 눕는 침대에 언제나 승규 냄새가 배어 있다면 그 이상으로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열심히 돈 벌게.”

“…….”

“나중에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면, 그때 와.”

승규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프러포즈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걸 받은 기분이라 심장이 쿵쿵쿵 뛰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나는 승규의 품 안에 안겨들었다. 벗은 가슴팍에 코끝을 문질렀다. 쿵쿵쿵, 승규의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렸다.

승규와 함께 있으니까 정말 침대를 벗어나는 일이 절대 쉽지가 않았다. 우리는 좁은 침대에 몸을 붙이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모로 눕힌 나는 승규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콧등을 쓸어내리고, 뺨을 매만지고, 턱선을 슥 스쳐보고.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승규야 여기 턱에 상처, 왜 생긴 거야?”

“아 그거. 군대에서 상관한테 개기다가 좀 맞았어.”

“세상에, 흉터가 남을 만큼 사람을 패냐.”

“그럴 수도 있지 뭐.”

군대를 다녀온 적은 없지만 역시 말만 들어도 몹시 흉악무도한 장소인 것 같다. 생활할 때는 간혹 불편하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부러져준 십자인대에 새삼스럽게 감사 인사를 표하게 됐다.

“희수 너는 군대 어디로 갔어?”

“아, 나는 면제.”

“헐.”

“왜, 배신감 느껴?”

“아니, 근데 너 군대 가는 거 진짜 안 어울리긴 한다.”

무엇을 상상했는지 낄낄 웃은 승규가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머리에 손을 얹고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우리는 사실 평범한 연애의 전철을 밟아오지 않았다. 어디를 만지면 가장 느끼는지 서로의 몸에 대해서는 차라리 속속들이 알고 있어도, 아직 서로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것들보다 모르는 일들이 더 많았다. 말이 흐르다 보니까 꼭 질문 타임처럼 됐다. 이런 기회에 또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는 거로 생각하면서, 나는 승규에게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승규 너 일할 땐 뭐가 제일 힘들어?”

“음, 손님이 진상 부릴 때?”

역시. 서비스업의 고충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고의 진상 손님은 누구야?”

“진짜로 말해도 돼?”

“그럼, 말을 왜 안 해?”

“김지운.”

내 입이 쩍 벌어졌다. 김지운 이 새끼 대체 승규한테 가서 어떤 짓을 했던 거야.

“개새끼네.”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캐물어 승규가 안 좋은 기억을 되새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휴, 한숨을 내쉰 나는 승규의 가슴을 느릿하게 매만질 뿐이었다. 승규가 그런 나를 빤히 내려다봤다.

“희수 너는 학교에서 뭐가 제일 힘들어?”

“나? 나는 그냥 내가 공부에 진짜 재능이 있나 헷갈릴 때.”

“음.”

“그냥저냥 하는 거 말고, 엄청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나 생각하면 땅 파게 돼.”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승규가 내 등을 쓸어내렸다.

“승규 너는 연애는 몇 번 해봤어?”

“연애?”

“응.”

이 분위기를 틈타 나는 사실 아주아주 궁금했지만 먼저 꺼내기 어려웠던 질문을 승규에게 슬쩍 건넸다.

“거의 뭐, 안 했는데.”

“진짜?”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솔직히 나는 승규와 헤어진 후에도, 승규처럼 열렬하게 좋아한 상대는 물론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남자들을 계속 만나오고 있었다.

“너 그럼 그동안 섹스 안 하고 살았어?”

솔직히 그게 제일 놀라웠다. 승규 한 번 섹스하면 집요하게 몰아붙이는 거 정말 장난 아닌데, 그걸 지금까지 참고 살았다고? 게다가 솔직히 툴 자체도 워낙 훌륭해서 칠 년간이나 묵혀 놓았다면 그건 지나친 자원 낭비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승규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승규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조승규 사귀지도 않으면서 섹스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얘 의외로 도발적인 면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나의 연인의 볼에 쪽 입 맞췄다.

“조승규 까졌네.”

나의 타박에 승규가 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이런저런 질문을 조곤조곤 서로 주고받았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까 뭔가 나른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눈가를 비비며 승규에게 말했다.

“졸리다, 그치.”

“이대로 또 잘까?”

“몰라, 자 버리자.”

승규 역시 나와 마찬가지인 기분이었던 모양이었다. 말을 마친 우리는 다시금 서로를 바라보며 꽉 껴안았다. 얇은 이불이 끌어안은 우리의 몸을 푹 덮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어버렸던 일상을 차차 채워 나갔다. 꼬여 든 인연에서 일반적인 연인이 되기 위해 점차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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