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RIVACY OF THE PARENT (27/27)

“죄송하지만 그 가격엔 못 해 드립니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허리에 손을 짚은 채로 인상을 썼다. 작업복에 목장갑을 낀 공방의 운영자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20분째 씨름 중이었다.

“바가지를 씌우려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웰치 씨, 잡지에 나온 그 의자는 저희 공방에서 자선 경매를 위해 내놓은 기부 물품입니다. 도대체 왜 이해를 못 하시는 겁니까!”

검은 머리의 남자가 장갑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가구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는 상대 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도 처음엔 예의를 갖춰 웰치 씨를 이해시키려 했다. 하지만 시의원이란 작자는 도통 말이 통하질 않았다.

“제이드, 또 그 진상이야?”

스타벅스 커피를 양손에 든 금발 남자가 공방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이드가 웰치 씨와 통화하는 소리를 밖에서 들었는지 그는 쯧쯧 혀를 찼다.

“그 진상이 맞아요, 해리.”

공방의 공동 운영자 중의 하나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이사벨이 동업자의 손에서 커피를 빼앗으며 말했다. 빨간 뿔테 안경에 에스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벤티 사이즈 커피를 물처럼 들이켰다. 요 며칠 영화사에서 주문한 소품의 디자인 초안을 잡느라 그녀의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제이드, 굴드에게 말해서 시의원 자식 좀 어떻게 해 봐. 부창부수라고, 시의원 부인도 끝내주는 진상이더라. 크리스 가게에 지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 런치를 공짜로 달라는 거야. 미친 거 같지 않아? 거지 근성이 뼛속까지 배어 있다니까.”

해리가 제 애인이 시의원 부인에게 봉변당했던 일을 언급하며 투덜댔다. 크리스는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로, 수더분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화려한 외양을 선호하는 해리가 크리스에게 고백받았을 땐 다들 두 사람이 잘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리도 나이를 먹어 사람 보는 눈이 생겼는지, 결국 그에게 지극정성인 크리스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고백은 크리스가 먼저 했지만 이젠 해리도 제 연인에게 푹 빠졌다. 제이드는 친구가 안정된 연애를 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지만.

“굴드에게 뭘 이야기를 해.”

제이드가 바닥에 내던진 목장갑을 집어 들고서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는 태연하게 해리의 말을 받아쳤지만 사실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해리가 혀를 잘못 놀려 이 일이 굴드의 귀에 들어갈까 봐 걱정이 됐다.

굴드가 웰치 씨의 패악에 대해 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굴드는 전에도 몇 차례 제이드에게 시비를 걸거나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을 조용히 처리해 버렸다. 문제는 제이드가 이러한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된다는 점이었다.

제이드의 신경을 긁던 인간들을 주변에서 치워 버리는 굴드의 솜씨는 국가 방첩 기관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치밀했다.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제이드의 귀에 그들의 이야기가 들어오는 법도 없었다.

제이드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 ‘왜 요새 그 몰상식한 작자들이 안 보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굴드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했다는 증거도 없어서 굴드에게 말을 꺼내 봤자,

“그렇게 오랫동안 안 보였습니까? 정말 이상하군요.”

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왜? 굴드에게 이야기하면 안 돼?”

소파에 앉은 해리가 탁자에 발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커피를 비운 이사벨은 타닥, 타닥 소리가 나도록 키보드를 두드리며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봤다. 마감에 치인 그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오라를 뿜어냈다. 그녀 발치에는 출력하고 버려진 도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마.”

제이드가 발이나 내리라는 뜻으로 해리의 다리를 장갑으로 툭툭 쳤다. 그는 공방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문제들을 굴드에게 은밀히 귀띔을 하는 사람이 해리라고 확신했다. 알게 된 지 육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굴드를 무서워하는 해리가 밀정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 좀 의아하긴 했지만, 해리 말고는 달리 의심할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공방 사정을 왜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거지?’

제이드는 굴드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공방에서의 일을 굴드에게 꽁꽁 숨기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제이드는 굴드와 함께 TV를 보거나 식사를 하면서, 공방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굴드에게 털어 놓는 걸 좋아했다. 제이드가 굴드와 공유하지 않는 것은 공방의 재정 현황이나 고객과의 트러블처럼 남에게 말해 봤자 걱정만 전염시키는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한가?’

제이드는 가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속이 불편해졌다. 물론 공방이 안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았는데….

“참나, 왜 굴드 도움을 안 받으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금수저 출신인 해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리는 제이드와 달리,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주변의 도움을 악착같이 받아 내자는 주의였다.

“도움 받을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 부분에선 늘 해리와 의견이 갈렸다. 제이드는 이사벨의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전투적으로 키보드만 두드리는 이사벨을 보니, 감히 질문을 던질 수가 없었다. 컴퓨터로 도안을 만드는 중인 그녀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어 낼 땐 마우스로 달칵, 달칵하는 소리를 낼 때뿐이었다.

“이야, 벌써 점심시간이네. 크리스 얼굴이나 볼 겸 거기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해리가 벌써 밖으로 나돌 준비를 했다. 그는 공방의 영업과 홍보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딱히 제대로 일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예 쓸모가 없지도 않았다. 인맥이 두터워서 가끔씩 잡지 인터뷰를 따오거나 유명 인사를 손님으로 유치하는 능력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정말 가끔이지만.

“제이드, 넌 집에 가서 먹을 거지?”

해리가 거울 앞에서 부산을 떨었다. 애인을 보러 가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 거였다.

“어.”

제이드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일정을 손가락으로 수정하며 대꾸했다. 공방에서 집까지 거리는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가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었다.

“이사벨은 어떻게 할 거야. 나랑 같이 크리스 가게에 갈래?”

해리가 머리를 다듬고 또 다듬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영업 담당 이사님, 지금 내가 한가해 보이세요?”

눈이 충혈된 이사벨이 홱, 뒤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아, 아니. 난 그냥 맛있는 걸 먹으면서 기분 전환 좀 하라고 그런 건데.”

“됐으니까 올 때 샌드위치나 사다 주세요. 페리 베이커리에서 복숭아 타르트랑 티라미수도 사 오시고요.”

“…으응. 그럴게.”

졸지에 심부름꾼이 됐지만 해리는 찍소리도 못했다. 제이드는 침울하게 어깨를 늘어트린 친구의 모습을 보고는 얼른 뒤돌아 킥킥 웃었다. 해리가 노상 빈둥대며 한량 짓만 해서 그런 걸까? 이사벨에게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광경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는 생각보다 쌤통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톱밥과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을 벗은 제이드가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그는 출퇴근을 할 때마다 버스를 이용했다.

굴드는 제이드가 버스를 타는 게 못마땅한지 몇 번이나 차 키를 내밀었다. 더불어 차고엔 SUV부터 중형 세단, 지프, 스포츠카까지 다양한 차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이드는 차를 타고 다니라는 굴드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스를 탔다. 운전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버스를 타는 게 몸에 익은데다가, 바깥 풍경을 편히 구경할 수 있어서 버스를 이용하는 게 더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담쟁이덩굴이 드리워진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쇠창살 사이로 파릇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정원사가 오전에 잔디를 깎았는지 아릿한 풀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잔디 너머엔 새하얀 저택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건축물이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이런 고급 저택에서 으레 설치되어 있는 방범 카메라와 시큐리티 센서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숨겨 둔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 이 집 주인이 CCTV나 감지 센서 따위를 굳이 설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택 주변엔 경비 회사의 최신 장비보다 더 유능하고 섬뜩한 존재들이 배회했다. 평소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침입자가 나타나면 바로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침입자가 나타났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새카만 괴물의 정체는 바로 굴드가 부리는 심연의 파수꾼들이었다.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연달아 났다. 공방에서 간식을 잔뜩 먹었는데 허기가 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시의원과 통화할 때 소리를 너무 질렀나?

제이드는 위산이 격렬하게 분비되어 쓰라린 배를 문지르며 저택의 입구를 바라봤다. 쨍한 햇살에 반짝이는 대문의 쇠창살이 아득하리만치 멀었다.

이럴 땐 차로 출퇴근을 하고 싶어졌다. 버스를 이용하는 건 다 좋은데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멀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공방에서 출발한 버스가 집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버스정류장에서 현관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오늘 따라 해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기분 탓인가?’

사막 위를 걸을 때처럼 땅에서 아지랑이가 피었다. 더위 때문에 지열이 올라오는 일이야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온이 그리 높지 않은 날이었다. 게다가 하늘에 구름까지 잔뜩 꼈는데 제이드는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몸에 오한이 일었다.

“…설마, 태양 때문인가?”

제이드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 같았으면 눈만 부시고 말 텐데, 전신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납품 기일을 맞추느라 밤샘을 하긴 했지만 딱히 무리를 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굴드의 피를 받아들이고 나서 딱 한 가지 나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처럼 컨디션이 저조하거나 하면 햇살이 괴롭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사실 고통 자체는 견딜 만했다. 그럼에도 제이드의 기분이 가라앉는 이유는 굴드에게 드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굴드는 매일 이런 불편과 고통을 매일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모자 쓰기 싫은데. 엄청 성가시네.”

제이드가 툴툴대며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둔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냈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굴드가 꼭 챙겨 주는 물건이었다. 제이드는 필요 없다고 질색하던 것을 반성했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껴도 햇살 때문에 이는 현기증은 피할 수 없었다. 제이드는 보도블록을 비틀비틀 밟으며 이 집에 이사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는 눈앞의 대저택이 굴드가 계약했다는 그들의 집인 줄 모르고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앞을 기웃거렸다. 뱀파이어와 사니까 이제 햇빛은 포기해야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쪽이 아니라 여기입니다. 설마 당신과 아이들을 지하실에서 살게 할 줄 알았습니까?”

굴드는 지하 계단의 자물쇠에 맞지도 않는 열쇠를 욱여넣는 제이드를 지상으로 끌고 올라왔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서 저택의 대문을 밀어 열던 굴드를 떠올리면 제이드는 아직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 순간의 민망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일까? 제이드는 저택에 한동안 정을 붙이지 못했다.

사실 첫인상은 핑계고, 저택이 지나치게 크고 호화스러운 게 문제였다. 꼭 남의 집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굴드는 함께 살려고 마련한 집이니까 편히 지내라고 말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제이드는 평범한 2층짜리 주택에서 가정을 꾸리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던 터라, 화보에 나올법한 대저택을 ‘집’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몇 년을 살다 보니 제이드도 이젠 나름 저택에 정을 붙이게 됐다. 가족 수에 비해 집이 지나치게 광활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사 가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가 너르게 펼쳐진 마당을 지나 현관문 앞에 당도했다. 그늘로 들어오니까 좀 살 것 같았다. 제이드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현관문을 밀었다.

“다녀왔….”

“으아아아앙! 대디.”

볼살이 통통한 여섯 살짜리 꼬맹이가 복도 저편에서 뛰어왔다. 검은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사내아이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베니딕트,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어?”

둘째가 울면서 제게 안기자, 제이드는 황급히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게 아니라, 훌쩍. 아버지가, 흐어어엉. 아버지 물건을 만졌다고, 으엉엉.”

베네딕트가 제이드의 셔츠에 뺨을 비볐다. 제이드의 품에 대롱대롱 매달린 둘째 아들이 울먹거리며 말한 아버지는 바로 굴드였다.

사 남매는 굴드를 어려워했다. 제이드와 달리 아이들에게 엄격한 편인 탓이었다. 특히 베네딕트는 사 남매 중에서 가장 장난기가 심해 굴드에게 혼나는 일이 잦았다.

“굴드의 물건을 만졌다고 혼났어?”

제이드는 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제법 묵직해진 둘째 아들의 등을 토닥이는 그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평소처럼 비디오 게임을 하겠다고 억지를 부려 굴드에게 혼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혹시 날카로운 물건이라도 만진 거야?”

“아니에요. 흐윽, 힉! 그냥, 다락방에, 흑! 올라간 것뿐인데.”

베네딕트가 제이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도리질을 쳤다. 제이드는 둘째의 입에서 다락방 소리가 나오자 쓴웃음을 지었다. 굴드가 왜 화를 냈는지 이해가 가면서도 꼭 애를 울릴 정도로 혼을 냈어야 했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베니딕트, 착하지? 이제 그만 울어.”

제이드가 둘째 아들을 번쩍 들어 올려 제 어깨에 앉히려는 찰나였다.

“무등 태워 주지 마십시오.”

베네딕트가 뛰어왔던 방향에서 굴드가 걸어나오더니, 엄한 눈빛으로 둘째를 바라봤다.

“너무 혼내지 말아요. 다락방 같은 곳에 한창 호기심을 가질 나이잖습니까.”

베네딕트를 제 어깨에 태운 제이드가 멋쩍은 듯 뺨을 긁었다. 그도 어렸을 땐 베네딕트와 마찬가지로 망아지처럼 혼날 짓만 골라서 하고 다녔다.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베네딕트가 에리카의 글러브에 낙서를 했어요.”

첫째라서 그런지 제일 의젓한 매튜가 굴드의 말을 거들었다. 매튜는 가장 몸이 약한 로렌스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성자의 관 사건 때 제이드가 유산할 뻔했던 막내가 바로 로렌스였다.

이런.

제이드는 속으로 혀를 차며 제 어깨에 무등을 태운 베네딕트를 올려다봤다.

“정말 그랬니?”

“매튜, 이 고자질쟁이!”

차마 아니라고 거짓말은 못하겠는지 베네딕트가 입술을 툭 내밀었다.

“왜 매튜를 물고 늘어져. 다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셋째인 에리카가 냉랭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형제 중 유일한 여자아이인 에리카는 성격 면에서 굴드를 제일 많이 닮았다.

“베네딕트, 에리카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해. 할 수 있지?”

제이드가 베네딕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둘째와 눈을 맞추는 그의 눈빛은 굴드 이상으로 엄격했다.

“에리카, 미안….”

제이드에게 혼났다는 사실로 인해 풀이 죽었는지 베네딕트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사과했다. 제이드는 의기소침해진 베네딕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베네딕트가 쭈뼛쭈뼛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제이드는 둘째와 눈을 마주치며 씩 웃어 줬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던 베네딕트의 표정이 금세 배시시 풀렸다.

식사를 마친 제이드가 애들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곧 낮잠을 재울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뱀파이어인 굴드의 피를 물려받은 탓에, 네쌍둥이는 낮 시간에는 쉽게 지치곤 했다. 나이를 좀 더 먹으면 괜찮아진다고는 하지만 제이드는 정오만 되면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아이들 방으로 들어간 제이드가 막내부터 한 명씩 침대에 눕혔다. 잘 자라고 이마에 키스를 해 주자 막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제이드의 뺨에 쪽, 하고 뽀뽀했다.

제이드는 막내의 행동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아빠가 일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 올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린 제이드는 조심조심 방문을 닫았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이 거의 다 지나 있었다. 제이드는 서둘러 공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굴드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고 주방에 들렀다. 그런데 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찾아 나섰다.

응접실과 거실을 빠른 걸음으로 둘러봤다. 애들을 키우려면 집이 좁은 것보다 넓은 게 좋긴 하지만 바쁠 땐 집의 면적이 넓다는 사실이 굉장히 불편했다.

제이드는 서재로 향했다. 나무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아아, 그런 일이 있었군. 의원직… 다시는… 공방에… 조치하지.”

전화를 받는 중인지 안에서 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서 대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굴드?”

제이드가 누구랑 통화하느냐는 얼굴을 하고서 서재 안으로 발을 들였다. 막 통화를 끝낸 굴드가 싱긋 웃으며 공방의 디자이너 이사벨이라고 대답했다.

“어? 이사벨이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했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거라고 생각한 제이드가 허둥거렸다. 문제가 생겨도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생기다니, 골치가 아팠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단축 번호를 잘못 눌렀다고 하더군요. 왠지 정신이 없는 거 같던데, 이사벨이 많이 바쁜 겁니까?”

굴드가 제이드를 품으로 끌어당겨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제이드는 근심을 사라지게 만드는 약이라도 삼킨 것처럼 나른한 기분에 휩싸였다.

‘한 번으로는 아쉬운데….’

제이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굴드의 입술이 자석처럼 다시 그에게 다가와 달라붙었다. 제이드는 허겁지겁 굴드의 목에 팔을 감고서 입술을 열었다. 혀가 과격하게 엉키고, 제이드의 허벅지 사이로 굴드의 무릎이 찌르듯 들어왔다. 사타구니를 묵직하게 자극하는 허벅지 때문에 제이드는 목구멍으로 신음을 흘렸다.

“하아, 하아. 굴드.”

제이드는 굴드의 목을 꽉 끌어안은 채로, 빠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각을 자극하는 굴드의 살 냄새와 셔츠에 은은하게 밴 향수 냄새에 현기증이 일었다. 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허기가 졌다. 뿐만이 아니라 셔츠 사이로 드러난 굴드의 피부를 혀로 핥아 올리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굴드가 제이드의 허리를 더듬으며 속삭였다.

“제이드, 지금 유혹하는 겁니까?”

어, 유혹한 건가…?

본인의 행동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제이드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 사이 굴드의 손이 셔츠 안으로 파고들어 제이드의 약한 부위, 그러니까 옆구리와 복부 부근의 경계선을 건드렸다.

“흣!”

무너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책상을 등 뒤로 짚었다. 제이드는 점점 위로 올라오는 굴드의 손을 내려다보며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의 피부를 야하게 더듬는 굴드의 손을 저지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끝난 지 오래였고, 당장 공방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오후 스케줄이 꼬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몸이 굴드를 원하고 있었다. 대낮에 정사를 벌이길 갈망하며 은근슬쩍 굴드의 하반신을 자극하는 행동을, 그의 의지로는 저지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여기서 더 늦으면 무책임한 해리 녀석이랑 다를 바가 없어진다고.’

제이드는 공방 운영자로서의 책임감을 상기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었고, 청바지의 앞섶도 굴드의 손길을 갈구하고 있음을 광고라도 하듯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제이드, 당신 여기에서 달짝지근하고 음탕한 냄새가 나.”

굴드의 간지러운 귀엣말에 짜르르, 전기가 올랐다. 제이드는 책상에 반쯤 눕다시피 한 상태로 책상을 더듬다가 돌연 펄쩍 뛰어올랐다. 커튼 사이로 흘러드는 햇빛을 손끝으로 건드린 것이다.

“윽!”

“제이드? 어디 다쳤습니까?”

“별거 아니에요. 뭐에 찔렸나 봐요.”

제이드가 이제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빨갛게 달아오른 제이드의 손가락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아, 이사벨. 어지간하면 실수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 이사벨인데, 어쩐 일이지? 요새 그렇게 일이 많았나? 일거리를 좀 쳐 낼 걸.”

입으로는 이사벨에 대해 떠들어 댔지만 제이드의 신경은 온통 딴 데 가 있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욕정이 치미는 거지?’

굴드와 한 공간에 단 둘이 있으면 성적으로 자극받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은 정도가 심했다. 흡사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굴드와 뒹굴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목이 말라.’

마른침을 삼키는 제이드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점막이 갈라지는 듯한 갈증이 목구멍에서 일었다. 그렇다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또 들지 않았다.

물 말고 다른 걸 입에 머금고 싶었다.

제이드는 혼탁한 눈을 하고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굴드의 바지 퍼스너에 눈길을 붙박은 제이드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굴드의 페니스를 뒤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욕망이 제이드를 거세게 충동질하고 있었다.

“내일은 공방에 나가지 마십시오.”

굴드가 불쑥 손을 뻗어 제이드의 이마와 목의 체온을 재더니 저렇게 말했다.

“아니, 오늘도 해가 지기 전엔 외출 금지입니다. 이사벨에게 내가 연락하겠습니다.”

“외출 금지라니, 그걸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제이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굴드의 손을 쳐내고서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데 그는 바닥에 금처럼 길게 비낀 햇빛을 건너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머뭇거렸다. 아까 햇빛에 손이 닿았을 때의 통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공방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한 겁니다.”

굴드가 한숨을 쉬며 제이드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내일은 애들도 리틀 야구단 캠프에 보낼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알아들었다. 제이드는 민망하고 멋쩍은 얼굴을 하고서 뺨을 긁적였다. 단순히 컨디션이 떨어져서 햇빛에 과민 반응을 보인 게 아니었다.

“…어, 벌써 그 주기가 찾아온 거군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이드는 주기적으로 굴드의 피를 공급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방금 전에 햇빛에 화상을 입을 뻔했던 것도 굴드의 피가 제이드의 몸에 얼마 남지 않은 탓이었다.

굴드가 제이드의 목덜미를 코끝으로 간질이며 속삭였다.

“싫습니까?”

“시, 싫은 게 아니라, 읏.”

굴드가 입술이 좀 더 아래로 내려오는 바람에 아랫배가 짜르르 울렸다. ‘그 행위’ 자체는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섹스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걸 하고 난 다음 찾아오는 후유증이 문제였다. 굴드의 피를 마시고 나면 제이드는 약에 취해 깨어날 수 없는 것처럼 침대에 드러누워 이틀 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공방의 스케줄이 엉망진창이 된다는 뜻이었다.

“공방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사벨이 정신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란 말을 아주 작게 속삭이고서 굴드가 제이드의 유두를 잡아당기듯 비틀었다.

“하읏!”

목덜미에 닿는 굴드의 숨결과 유두를 희롱하는 자극적인 손길 때문에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굴드를 밀어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제이드의 몸이 쾌락을 갈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익.

청바지의 퍼스너를 내리는 소리에 제이드의 등이 움찔거렸다. 굴드가 그의 피부를 갉아먹듯 깨물면서 제이드의 페니스를 그러쥐었다.

“으….”

페니스에 자극이 가해지자 제이드가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굴드의 손이 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고, 제이드는 거친 숨을 내쉬며 급하게 책상을 짚었다. 굴드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침입하자, 깊은 곳이 경련을 일으키며 뜨거운 것을 왈칵 쏟아냈다.

“아, 으…. 응.”

책상에 엎드려 굴드의 손가락을 받아들이는 제이드의 입술 사이로 타액과 신음이 같이 흘러나왔다. 굴드의 손가락이 깊은 곳을 후빌 때마다 안쪽이 찌릿찌릿하고 유두가 욱신거렸다. 제이드는 매끈한 책상에 손톱을 세우며 허리를 뒤틀 듯 몸을 들썩였다. 몸은 굴드의 물건을 생으로 받아들여도 될 정도로 한껏 달아올랐는데 그곳이 채워지질 않으니 감질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젠장, 언제까지 애만 태울 겁니까.”

참다못한 제이드가 몸을 비틀어 굴드를 올려다봤다. 사납게 으르렁거렸지만 제이드의 눈동자는 열락으로 탁하게 흐려져 있었다. 셔츠가 말려 올라가 바깥으로 드러난 제이드의 유두는 짙은 색깔로 변했을 뿐만이 아니라 뾰족하고 단단하게 부풀어 있었다.

“급해 보이는군요.”

굴드가 입가에 야비한 미소를 걸고서 제이드의 유두를 손끝으로 튕겼다.

“하윽!”

제이드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붉게 달아오른 페니스가 위아래로 크게 꺼덕이며 음액을 흘려 댔고, 엉덩이 근육도 경련을 일으키듯 빠르게 움찔거리며 쾌락을 갈구했다.

“하아, 하아. …제길, 지금 안 급하게 생겼습니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제이드는 이를 악물고서 굴드의 멱살을 잡았다. 바지에서 페니스를 당장 꺼내지 않으면 한동안 그에게 손도 못 댈 줄 알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협박이군요.”

굴드가 제이드를 번쩍 안아 올려 책상에 뉘였다.

‘…괜히 자극했나?’

제이드는 음욕으로 번들거리는 굴드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흘끗 내렸다. 마음이 급해서 굴드를 닦달하긴 했는데 막상 저 커다란 걸 받아들일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됐다. 바지 버클을 푸는 소리가 제이드의 청각을 자극했다. 흡사 간수가 쇠창살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 같았다.

“당신 몸에서 나는 향이 날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 줄 알아?”

굴드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제이드의 다리를 안아 올렸다. 제이드는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굴드의 귀두가 회음부와 입구 사이를 슬슬 간질이듯 문지르는데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제이드.”

굴드가 쉰 목소리로 제이드의 이름을 속삭이며 그곳을 귀두로 꾹 눌렀다.

입구가 벌어지는 느낌에 제이드는 몸서리를 치며 굴드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한데 바로 그때, 복도에서 아이가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무도 없어요? 대디, 흑흑. 아버지. 흐윽.”

막내 로렌스의 목소리였다. 악몽을 꾸다 깨어난 건지 목소리에 서러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굴드와 제이드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후다닥 떨어져 옷을 꿰어 입었다.

“제이드, 여기 속옷이랑 신발!”

“윽! 고마워요.”

굴드가 속옷을 던졌다. 하지만 제이드는 이미 바지의 지퍼까지 올린 상태였다. 제이드는 속옷을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서 뒤를 돌았다.

끼이익.

“…대디, 여기 있어요? 훌쩍.”

로렌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래, 아빠 여기 있어.”

“제이드, 난 위에 올라가서 나머지 아이들 상태를 보고 오겠습니다.”

굴드가 비장한 얼굴을 하고서 제이드에게 귀엣말했다. 로렌스를 안아올린 제이드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로렌스가 1층으로 내려왔으니 곧 맏이인 매튜가 곧 막내의 부재를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베네딕트에 에리카까지 덩달아 잠에서 깨어날 것이고, 2층은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세 명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리는 상황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제이드는 로렌스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고서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갔다. 다행히 2층이 고요했다. 굴드가 늦지 않게 아이들 방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하아. 정말 위험했어.”

2층 정찰을 마친 제이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굴드가 육아의 프로라 정말 다행이었다. 제이드는 아이들과 놀아 주는 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지만, 달래고 재우는 일에는 잼병이었다.

“…근데, 이 녀석은 어떡한담.”

제이드의 옷깃을 꽉 부여잡고 잠든 로렌스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리 주십시오.”

어느새 방에서 나온 굴드가 로렌스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웠다. 그러나 제이드의 품에서 떼어 내기 무섭게 로렌스가 잠투정을 시작했다.

“히잉.”

“쉬이, 로렌스. 괜찮아. 아빠 어디 안 가.”

로렌스가 제이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로렌스는 다른 아이들보다 제이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제이드는 난감하단 얼굴로 굴드를 바라봤다. 그러나 굴드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지 이마를 짚고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러게요. 어쩔 수가 없네요….”

굴드와 제이드는 눈빛을 주고받고서 아이들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최대한 기척을 죽였는데도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다가와 두 사람에게 답삭 안겼다.

“다 같이 자는 거예요?”

“그래, 매튜.”

제이드가 둘, 굴드가 둘을 양옆에 끼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들은 행복해했고, 두 어른은 고행이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자세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해소되지 못한 욕망 때문이었다. 차라리 눈에 안 보이기라도 하면 빨리 열을 식힐 수 있을 텐데, 같은 공간에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으니 그야말로 고문이 따로 없었다.

다음 날, 네쌍둥이는 전부 헬기에 실려 리틀 야구단 캠프로 보내졌다. 베네딕트는 캠핑을 가기 싫다고 빼액 울어 댔지만 굴드는 흔들림이 없었다. 어제 아이들에게 훼방을 받아서 아이들을 멀리 보내는 게 아니었다. 제이드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 아무리 아이들이 애원하고 울어 대도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지나치게 조용하네요.”

매튜, 베네딕트, 에리카, 로렌스까지 떠나고 나니 새하얀 저택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해 질 녘까지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싫습니까?”

뒤에서 제이드를 끌어안은 굴드가 낮게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래간만에 단둘이 있으니 설레고 흥분이 되었다. 제이드는 굴드의 손에 이끌려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보통 다락방이란 존재는 잘 쓰지 않는 물건이나 오래된 사진첩 따위를 쌓아 두는 곳이었다. 그러나 굴드와 제이드가 함께 들어온 다락방은 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물건이 눈에 띄지 않았다.

다락방에 있는 건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와 안개꽃 한 줌뿐이었다. 어제 베네딕트가 다락방에서 건드린 물건이 바로 저 안개꽃이었다.

“기분 이상하네….”

제이드가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제이드, 첫 섹스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 압니까?”

굴드가 제이드의 뺨과 목에 입을 맞추며 짓궂게 놀려 댔다.

“그건 당신도 그렇거든요?”

제이드가 인상을 찌푸린 순간, 굴드가 그의 손목을 날카로운 나이프로 내리그었다.

‘…으.’

피를 본 제이드는 저도 모르게 홱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강렬한 피 냄새에 이끌려 도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굴드는 붉은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손목을 제이드의 입가에 가져갔다. 제이드는 눈치라도 보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굴드의 손목에 혀를 가져다 댔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제이드는 어느새 굴드의 손목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피를 빨아들였다.

“천천히, 진정해요. 시간은 많으니까.”

굴드가 제이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대에 뉘였다. 안방의 침대와 다르게 좁은 싱글 매트리스지만 지금 상황에는 오히려 이 크기가 딱 알맞았다.

“맛있습니까?”

굴드가 묻자 제이드가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로 매트리스에 널브러진 제이드는 배부른 아이 같기도 하고, 음탕한 창부 같기도 했다.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당신은 온전히 내 것입니다.”

굴드가 시계를 엎어 버리고서 제이드의 손등이며 뺨에 키스를 퍼부었다. 사위가 고요했다. 제이드가 느낄 수 있는 건 굴드의 숨소리와 채취, 그리고 제 뺨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뿐이었다. 그 무엇도 이 시간을 방해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다락방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행위는 오직 두 사람만의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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