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NE MONTH (26/27)

꽃다발을 옆구리에 낀 제이드가 똑똑 문을 두드리며 소피의 방에 들어갔다.

“미안해요, 제이드.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팔에 링겔을 꽂은 노부인이 제이드를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며칠 전, 소피는 본인 입으로 제이드를 모함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침대에 등을 기댄 그녀는 보기 안쓰러울 만큼 얼굴이 핼쑥했다.

“소피. 괜찮으니까, 울지 말아요. 자책할 거 없어요.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제이드가 소피의 가녀린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노부인이 안쓰러웠다. 그녀는 바니가 부리는 벌레에게 조종당한 것뿐이지, 제 의지로 형사들에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제이드는 소피가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당신은 어떤 망할 자식이 건 최면에 걸린 것뿐입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소피를 달래고 집으로 돌아온 제이드가 낡은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대성당 일대를 휩쓴 의문의 폭발 사고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제이드는 저도 모르게 꼴깍 생침을 삼키며 자세를 고쳤다.

TV 화면에 정부의 고위 관료가 거드름을 피우며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하는 모습이 잡혔다. 안경잡이 대변인은 원인 불명의 대규모 폭발이 국외 테러리스트들이 자행한 폭탄 테러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분명 굴드가 손을 쓴 거겠지?”

제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될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뭐라고 형언하기 힘들 만큼 기분이 묘했다. 뱀파이어의 존재를 비롯해 크롤리들이 일으킨 사건들을 입 밖으로 꺼냈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게 틀림없었다.

머리를 긁적거린 제이드가 맥주를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연 그는 유령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맥주로 채워져 있어야 할 중고 냉장고가 텅 비었다.

“뭐야, 왜 맥주가 하나도 없는 거지?”

당황한 제이드가 냉장고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아무리 선반을 더듬어 봐도 냉장고의 냉기만 그의 뺨을 쏘아 댈 뿐, 사라진 맥주는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젠장, 도둑이라도 든 건가.”

상상력이 빈곤한 제이드가 허리를 펴고서 주변을 둘러봤다. 어차피 그의 낡은 아파트엔 훔쳐갈 만한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집 안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불쑥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힘으로 찌그러트린 맥주 캔이 그 안에 쌓여 있었다.

제이드가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납작하게 빈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싱크대에서 희미하게 알코올 냄새가 났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 제이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헝클였다. 도둑이 든 게 아니라, 그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는 굴드가 냉장고에 든 맥주를 전부 버린 거였다.

“제길.”

쓰레기통 앞에 쪼그려 앉은 제이드가 알루미늄 캔을 힘없이 던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굴드에게 왜 이런 짓을 한 거냐고 따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신 맥주를 버려 줘서 고맙다고 말해야 할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제이드의 배 속엔 맥주를 섭취하면 안 되는 녀석들이 꼬물꼬물 뭉쳐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이드는 단골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맥주를 입에 댈 순 없었다. 문제는 그가 맥주를 밥보다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음주는 자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이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울적해졌다.

맥주에 대한 미련을 비우기 위해 굴드가 찌그러트린 알루미늄 캔들을 밖에 내다 버리고 돌아왔다.

별 생각 없이 틀어 둔 TV에서 연쇄 살인마 매드 버쳐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던 제이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한 때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적이 있는 제이드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TV앞에 앉았다. 머리가 벗겨진 전직 사진작가 장 폴 앙티오슈의 사진이 화면에 떠오르자 제이드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경찰서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기자가 ‘바니’라는 공범의 존재를 언급했다. 그러나 경찰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공범의 존재에 대해 딱 잘라 부정했다. 매드 버쳐가 주장한 ‘바니’라는 남창은 가공의 인물이라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아직 범행 장소와 무기는 찾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를 취조 중이긴 하지만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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