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그림자를 나눠 주며 타나토스가 속삭였다. 네가 뭘 잃게 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배교의 잔을 붙잡은 남자는 비웃음을 흘렸다. 형태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망령이 지껄이는 말 따위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독이 혈관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그는 심장을 대가로 현묘한 진리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배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건 찰나에 가까운 순간뿐이었다. 남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녹슨 잔을 내려놓고 나서야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활한 타나토스가 그에게 내놓은 그림자는 반쪽짜리였다.
한 조각이 부족했다. 하지만 완성되지 못한 직소 퍼즐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남자는 파편을 채우기 위해 본능적으로 성배를 찾아 헤맸다. 타나토스의 그림자가 성배의 피로 빈자리를 채우라고 그를 끊임없이 부추겼다.
성배를 갈구하는 건 배교자들의 무거운 숙명이었다. 순례가 언제 끝날지는 타나토스조차 알지 못했다. 영겁의 세월을 홀로 방황한다 해도 성배를 만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가끔은 성배가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삭아 없어지기 직전인 고대의 문헌을 뒤져도 배교자가 성배를 찾는 데 성공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예언자 가문 놈들은 타나토스 못지않게 음흉했다. 성배의 출현을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 남자는 오서독스인 자신을 염탐하고, 뒤에서 은근히 조종하려 드는 루테니아의 핏줄들이 불쾌했다.
어차피 교만한 루테니아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주종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래를 내다보는 그들의 능력은 모호했고 또한 보잘것없었다. 놈들의 엉터리 예언에 허탕을 친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남자는 루테니아의 궤변과 불확실한 확률 놀음에 깊은 염증을 느꼈다.
성배를 찾아야 한다는 그림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갈증보다 견디기 힘든 건 자신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남자는 타나토스의 자리를 원했다. 적의 서를 읽지 않아도 성배를 찾아야만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차원 높은 지고한 위치를 염원하는 건 모든 배교자들의 본능이었다.
마차가 빠르게 굴러갔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창녀들과 머리카락을 범선으로 장식한 귀부인들이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야심한 시각 살롱에 모인 지식인들은 볼테르를 찬미하고 펠릭스 노가레의 시를 낭독했다.
『사랑을 느낀 ㅈ에게 너그러운 구멍이여.
합시다, 그래요 곧바로 합시다.
ㅆ은 자연의 염원일지니.
ㅂ와 ㅈ가 함께 할 때 그들의 관계는 아름답다.
ㅈ는 교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