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은 아파트 단지에서 나름대로 유명인이었다.
그를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쪽은 할 말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지 멀쩡한 다 젊은 남자가 일은 하지 않고 매일 저 같은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를 어슬렁거렸기 때문이다.
한 몇 달, 그가 다리를 절기에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도 있었으나 다 나은 후에도 남자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빈둥빈둥 놀기만 했다. 방앗간 집 장남처럼 10년간 고시 공부를 하다가 살짝 돈 것도 아니요, 길 건너 럭키 약국 바깥양반처럼 사업을 하다 말아먹어서 어쩔 수 없이 노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건실한 사촌 동생(백두산을 말한다) 등을 처먹고 살아도 유분수지, 어찌나 사치하는지 차는 그 비싸다는 그랜저를 끌었고 시계도 로렉스를 차고 다녔다.
무엇보다 단지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건 남자의 잘난 얼굴이었다. 누구 집 여편네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했나, 여자들만 보면 살랑거리는 서울 말씨로 꼬리를 쳤다. 데리고 다니는 개새끼마저 주인을 닮아 젊은 여자들 뒤꽁무니만 쫓았다.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
반면,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돌게 되었는지 그 시작은 아무도 몰랐다.
서울에서 태어난 남자는 조실부모하고 고아원을 전전하며 갖은 고생을 하다 자수성가하였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쫄딱 망했다. 망한 것도 억울한데 동업자를 대신해 감방살이까지 했다. 출소하고 보니 방 한 칸 구할 돈은커녕 밥 한 끼 사 먹을 돈도 없었다. 결국 을지로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고, 험한 길거리 생활로 중병까지 얻어 죽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그때 건실한 사촌 동생(역시나 백두산을 말한다)이 극적으로 남자를 발견하여 부산으로 데려왔다.
남자는 혹독한 세월을 보냈음에도 그늘이 없었다. 말씨는 늘 상냥했고 성품은 어찌나 인자한지 큰 소리 내는 법이 없었다.
같이 다니는 강아지도 보통 강아지가 아니었다. 폭풍우 치는 밤, 어미에게 버림받아 광안리 똥물에서 허우적대던 것을, 남자가 목숨 걸고 구조해 제 새끼처럼 먹이고 돌보아 살렸다고 한다. 강아지 처지가 꼭 부산 오기 전 자기 같았다나 뭐라나.
부처가 따로 있나, 바로 저 청년이 부처지. 다들 입 모아 칭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윤수일은 오늘도 해피와 함께 자전거에 올랐다.
“해피야, 꽉 잡아!”
가슴께로 바짝 당겨 멘 검정 나일론 백 안에서 목만 내민 해피가 ‘앙!’ 하고 답했다.
수일은 자전거 페달을 부지런히 밟았다. 바람에 바다 냄새가 흠씬 묻어났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