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난 두산은 샤워부터 했다. 거의 일주일째 새벽 3, 4시까지 놀았더니 하품이 끊이질 않았다. 마가린을 두른 프라이팬에 식빵을 올리고 양재기에 계란도 다섯 개를 깼다. 토스트 여섯 장을 다 굽고 이제 막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는데 전화가 울렸다.
“씨발, 아침부터 먼 전화고.”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가 시끄러워 하는 수 없이 받았다.
“여보세요?”
- 두사이 니 버스터미날에 쫌 나가라.
재수 없게 박정배 사장이었고, 재수 없게 다짜고짜 일을 시켰다.
“씨발, 좆같네.”
수화기를 가릴 생각도 않고 두산은 툭 욕을 뱉었다. 수화기 너머 박정배가 지랄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산은 귀를 후비며 물었다.
“터미날은 와요?”
- 오늘 서울서 가수 온다 아이가. 삼락이 그 새끼가 마중 나가기로 했는데, 해운대 싸모가 몬 가게 한다꼬 저나가 왔다.
하다 하다 제비 새끼까지 제게 일을 시키고 지랄이었다.
“우찌 생긴 줄도 모르는데 내가 가서 머 합니까?”
- 잘 생깄다. 딱 봐도 절마겠구나 싶게 잘생깄다 안 카나?
“지랄하고 자빠짔다.”
- 야이 새끼야, 다 들린다! 니는 사장한테 말뽄새가 그기 머꼬? 몬 배운 새끼….
지랄병이 있나, 박정배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저러다 뒤로 넘어가면 참 고마울 것 같았다. 불행하게도 박정배는 건강했다.
- 그 머꼬, 쫌 있어 보이게 스케치북에 이름도 딱 쓰고. 윤수일이다 윤수일. 12시까지 꼭 가라. 글마 그거는 숙소 2층 뺀드들 있는 데다가 넣어주면 된다. 알았나?
알았냐고 물어 놓고 대답은 듣지도 않은 박정배가 전화를 끊었다.
두산은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씨발롬이, 별거를 다 시키네. 좆 까라 새꺄.”
두산은 미간을 찌푸리며 식탁으로 향했다. 털썩 자리에 앉아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세 장째를 먹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욱하긴 했지만, 약속은 잘 지키는 성격이라 욕을 하면서도 터미널로 나갈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11시 20분. 1시까지 미팅 장소로 나가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했다. 그 좆같은 셔츠를 입고 나가야 하나. 씨발.
“안 풀린다 안 풀리.”
두산은 남은 토스트 석 장을 단숨에 해치우고 이를 닦았다. 짧은 스포츠머리에도 무스를 발라 잘 정리하고, 면도도 다시 했다. 챱챱, 코오롱을 얼굴에 발랐다.
“참, 잘생깄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였다. 이런 날은 열이면 열, 미팅한 가시나와 1시간도 안 되어 떡을 쳤다. 두산은 튼실한 제 아들놈을 한번 쓸어 주고 씨익 웃었다.
문제는 셔츠였다. 미팅 상대가 정한 옷이라 잔말 않고 샀는데 영 별로였다.
“씨발, 양아치가 따로 읍네.”
베르사첸지 나발인지 하여간 눈이 어지러운 싸구려 짝퉁 셔츠를 입자 동네 양야치가 따로 없었다. 마음에 안 들어서 미칠 것 같았다. 몇 번을 입었다 벗었다 하다, 알몸인 여자가 이 셔츠를 입으면 죽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자는 두산이 선택한 노란 원피스를 입고 온다고 했으니 그 차림으로 한 번, 이 셔츠를 입힌 채 한 번. 두 번 정도 옷을 입고 섹스해야지. 두산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까만 일수 가방을 들었다.
비가 오려나. 날이 찌뿌둥했다.
주말 터미널 근처는 교통 지옥이었다. 운전을 쓰레기로 배운 새끼들이 천지였다.
“야이 씨발롬아, 차 안 빼나? 아저씨요! 그따 차를 세우면 우짜노? 차 빼라꼬!”
두산은 차창을 연 채 큰 소리로 욕을 해 대며 겨우 주차를 했다.
“아! 스케치북!”
하여간 미친놈. 욕을 할 땐 언제고 시키는 건 잘도 따랐다. 두산은 헛웃음을 웃으며 백화점 문구점으로 가서 스케치북과 매직을 샀다. 윤수일이라고 휘갈겨 썼다. 제가 봐도 잘 쓴 글씨에 감탄하며 터미널에 나가 섰다.
날도 더운데 선풍기라도 좀 돌릴 것이지, 터미널 안은 찜통이었다. 12시가 넘어도 남자가 나타나질 않자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백화점과 터미널을 오가는 미니스커트와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많아서 그나마 눈요기가 되었다.
평소라면 이 정도로 시선을 받지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이놈의 셔츠가 문제였다. 검은색과 흰색의 단정한 옷을 좋아하는 두산에겐 영 짜증 나는 일이었다. 특히, 평소 키 크고 덩치 좋은 제게 호감을 표시하던 여자들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옷 하나에 달라지는 표정이 재밌어서 두산은 혼자 키득댔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휘파람을 불었고, 그러면 대개 겁을 먹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씨발년.”
두산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뭐든 재밌었다. 윤수일인가 하는 좆같은 새끼만 오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점점 참을성이 바닥이 났다. 스케치북을 던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인상까지 쓰고 서 있자 사람들이 두산의 주변을 피해 다녔다.
“씨발, 오는 기가 마는 기가.”
두산은 미간을 좁히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볼이 움푹 패도록 빨아들였다. 후, 연기를 내뿜자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때 제 주위로 남자 하나가 서성였다. 단출한 짐에 단정한 옷을 입고 서 있는 남자는 당장 두산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윤수일. 본능적으로 저 남자가 윤수일이라 확신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윤수일도 제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두산은 담배를 피우며 남자를 훑었다. 창백한 피부에 큰 키. 잘생겼다. 아니 예뻤다. 저렇게 생기고도 타인의 시선을 끌지 않는 게 신기했다. 붐비는 터미널에서는 두산에게 머무는 시선이 저 잘생긴 남자에게 머무는 시선보다 많았다.
남자는 깨끗하긴 해도 누가 봐도 낡은 옷에 낡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조금은 맹해 보이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불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곤 했다. 행동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씨발. 좆같네.”
글래머를 좋아하는 두산에겐 마른 몸이 좀 걸리긴 했지만, 딱히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두산은 피식 웃었다.
“미친놈.”
두산은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담배를 비벼 껐다. 남자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남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저를 경계하며 올려다보았다. 씨발, 좆나 예뻤다.
두산은 입꼬리를 올려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행님. 윤수일 행님 맞으시지예?”
그게 윤수일과의 첫 만남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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