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81)

백영호는 불 꺼진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담당 의료진에게 아들의 생명 연장 포기를 선언하고 두산에게도 마지막으로 할 말 없냐고 물었었다. 그렇게 두산의 마지막 말을 태섭에게 전하고 병실로 며느리를 불러 얘기를 끝낸 지 6시간이 지났지만, 기계는 아직도 일정한 소리를 내며 잘 돌아가고 있었다.

마음이 바뀌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몇 시간만 더 아들의 숨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랬다. 마지막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무리 미워도 태섭인 백영호에게 하나뿐인 아들이자 이 집안의 장남이었다. 저 아이가 태어났을 때 겨우 열여덟 살이었던 백영호는 흰 천에 싸인 핏덩이가 제 팔에 안겼을 때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도 실감 나지 않아서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했었다. 그래도 좋다고 함박웃음을 지었었는데, 이렇게 어긋날 줄은 몰랐다.

남들처럼 낳아서 기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자식의 죽음이야 하늘에 맡기면 되는 줄 알았다. 제 손으로 아들의 죽음까지 책임져야 할 줄은 백영호 본인도 몰랐다.

고요히 잠들어 있는 아들은 겨우 50대 초반임에도 자신만큼 늙어 보였다.

“태섭아, 이래 말 붙이는 기 참 오랜만이다. 그쟈?”

여러 번 병문안을 오긴 했지만, 백영호는 고집스레 말 한번 붙이지 않았었다. 생일날 찾지 않은 것도 햇수로 5년째였다. 대신 태희의 재를 뿌렸던 바다로 가서 술을 한잔했다. 아들의 생일날 누구보다 아꼈으나 너무 일찍 가 버린 딸과 대화를 나눴다. 느그 오빠 미워하지 마라. 하고 딸의 영혼을 달랬다. 그 하루조차 아들과 함께 있는 것이 버거워 백영호는 도망쳤다.

해결사가 잘만 처리했다면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을 텐데, 며느리도 그 긴 세월 고통받지 않았을 텐데 참 일이 얄궂게도 돌아갔다. 무엇보다 노망이 났는지, 제가 지은 죄를 무고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기까지 했다.

“태섭아, 잘 가라. 다음에는 좋은 부모 만나서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라.”

마지막 가는 길인데도 아들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제 자식인데, 죽음 앞에서까지 남처럼 구는 자신이 아비로서 자격이 없다 생각했다.

시계가 새벽 1시를 알렸다. 백영호는 마침내 기계 전원을 뽑았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병실 안엔 정적이 감돌았다. 정적 사이로 아들이 힘겹게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을 긁듯 숨소리에 가래가 끓었다. 태섭은 고통스러운지 끙끙대고 컥컥댔다.

백영호는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오랜만에 아들의 손을 잡았다. 절대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것도 핏줄이라고 눈물이 흘렀다. 아들의 숨이 멎을 때까지 백영호는 흐느껴 울었다.

***

수일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커다란 전화벨 소리가 아니었다면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분명 두산에게 펠라티오를 해 주었는데, 이후 어떻게 집에 왔는지 옷을 갈아입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은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몇 시간 웃고 떠들 체력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벨 소리에 깬 건 수일과 두산만이 아니었다. 해피도 ‘앙! 앙!’ 하고 따르릉 소리에 맞춰 짖어 댔다.

“씨발, 이 시간에 누고?”

팬티 차림으로 두산이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행님아. 어… 알았다. 내 바로 가께.”

전화를 끊은 것 같은데 두산은 한참을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낌새가 이상해서 수일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두산아. 두산아! 안 들어와?”

열린 방문 사이로 두산 대신 해피가 뛰어 들어왔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는 줄 아는지, 경쾌한 발소리를 내며 문턱이 닳도록 왔다 갔다 했다.

“저리 가라.”

늘 하던 대로 해피를 발로 밀치고 두산은 침대에 걸터앉아 수일을 마주 보았다. 어둠이 짙어 표정이 보이질 않았다.

“무슨 전화야?”

수일은 눈을 비비며 물었다.

“둘째 행님.”

“왜? 무슨 일 있으시대?”

혹여 두산의 가족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스러웠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싰단다.”

두산은 덤덤하게 말했다.

수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팔을 뻗어 두산을 안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두산이 아무리 미워해도 아버지였고, 아무리 부자간에 정이 없어도 아버지였다. 누구보다 충격받았을 두산을 수일은 꼭 끌어 안아 주고 등을 쓸어 주었다. 토닥토닥, 다독여 주었다.

“내 지금 병원 가 봐야 한다. 니 혼자 개안켔나?”

“응.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가 봐.”

“빈소 설치되면 데리러 오께.”

데리러 온다는 말에 수일은 두산에게서 몸을 뗐다.

거긴 자신이 갈 곳이 아니었다. 가면 안 되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백태섭은 수일이 한순간 살의를 품었던 남자였고, 어르신도 어머니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못 할 짓을 했다. 수일도 그렇지만 두 사람도 수일을 보는 게 괴로울 터였다. 안 그래도 사랑하는 자식이자 남편이 죽어 가슴 아플 사람들 앞에 나타나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가고 싶은 거 아는데, 그래도 니는 내 식구니까 가야지.”

식구라는 말에 힘을 주며 두산은 완강하게 말했다. 수일의 대답 같은 건 기다리지 않았다.

검은색 정장에 검은 코트를 차려입고 두산이 집을 나섰다. 수일은 목발을 짚은 채 두산을 배웅했다. 두산은 몇 번이고 수일을 안아 주고 뽀뽀해 주었다. 슬픈 건 두산일 텐데 수일을 더 위로해 주었다.

“개안타. 이제 다 끝났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수일에게 하는 말이었다.

두산을 보내고 수일은 온 집 안의 불을 모두 밝힌 채 거실에 나가 앉았다. 으슬으슬 추워서 두툼한 스웨터를 껴입었다. 해피는 두산이 나가자 몇 번 현관문을 긁다 제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을 달기로 했는데. 거실 한편을 가득 채운 커다란 트리를 보며 수일은 한심한 생각을 했다. 제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트리 생각을 했다는 걸 알면 두산도 많이 서운해하겠지 싶어서 고개를 저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10년 전 자신을 심하게 때리고 모욕했던 크고 위압적인 남자가 아닌, 기계에 의존해 겨우 숨을 쉬던 백태섭이 떠올랐다. 병색이 역력한 그 시커멓고 누렇게 뜬 얼굴이 생각났다. 그 남자가 죽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제 감정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그렇다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수일은 멍했다. 이토록 무감한 기분이 들 줄 몰라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아침이었다. 오늘부터 온다던 가정부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부지런히 아침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수일이 목발을 짚고 다가가자 ‘깼습니까?’ 무뚝뚝하게 한마디 건넸다. 전 영부인과 동명이인인 중년의 가정부는 영도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였다. 다들 영도댁이라 부른다고 했지만 수일은 그녀를 이 여사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해피는 갑자기 등장한 이 여사를 경계하며 수일의 발밑에 붙었다. 그래도 며칠 함께 지냈다고 이 여사보다 저를 더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귀여워 품에 안아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여전히 해피는 수일의 손이 어색한지 또 고개를 홱 돌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였다.

“강새이 밥은 우찌할까예?”

“사료 있어요. 제가 알아서 줄게요.”

수일은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 해피 밥그릇에 사료를 부었다. 어제 먹다 남은 물은 버리고 새로 떠서 주었더니 해피는 물부터 마셨다. 그 작은 혀로 할짝거리는 게 귀여워 수일은 아예 바닥에 앉아 해피가 물 마시는 걸 지켜보았다. 밥 먹는 것도 보고 싶었는데 자꾸 곁눈질하며 등을 돌리길래 그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 여사는 말이 없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아침을 다 차리고 ‘밥 드이소’ 하더니 수일이 의자에 앉자마자 빨래를 하겠다고 알렸다.

“근데 여사님 식사는요?”

“저는 제가 알아서 먹습니다. 신경 쓰지 마이소.”

“네. 잘 먹겠습니다.”

수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여사는 잔걸음으로 세탁실 앞 바구니를 손에 들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갈치구이와 소고기미역국이었다. 반찬은 깍둑썰기한 감자조림에 나물 반찬이 여럿 있었다. 하나씩 맛을 보았더니, 의외로 싱겁게 간을 해서 입맛에 딱 맞았다. 수일은 고봉밥을 떠서 그 위에 갈치를 발라 올렸다. 갈치가 어찌나 통통하고 고소한지, 꿀맛이었다. 다른 반찬에는 아예 손댈 생각도 않고 갈치구이만 먹었다. 밥을 반쯤 먹고 허기가 가시자 그제야 두산은 뭐라도 먹었는지 궁금해졌다.

수일은 제가 생각해도 참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집도 편안한 잠자리도 모두 두산이 제게 준 것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병원에 간 사람은 잊고 밥 먹기에 급급한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죽은 사람이 백태섭이라 그런 걸까.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져 숟가락을 놓았다.

약을 먹고 도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두산이 데리러 와도 장례식장은 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차임벨이 울렸다. 이 여사가 ‘누구세요?’ 하고 물었고, 곧 익숙한 음성이 인터폰을 통해 들려왔다.

수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발을 짚고 거실로 나갔다. 현관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 차림의 현수가 들어섰다.

“행님, 오랜만입니다.”

현수는 늘 하던 대로 입꼬리 한쪽을 올려 웃었다.

“네. 오랜만이에요.”

“머리를 와 그래 짧게 짤랐습니까?”

“그렇게 됐어요.”

수일은 어색하게 웃으며 짧은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해피가 인기척에 달려 나와 누가 왔나 간을 보았다. 현수는 당장 쪼그리고 앉아서 해피를 안아 들었다.

“니 누고? 이름이 머꼬?”

“해피요.”

수일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야는 말티습니까?”

“어… 잘 모르겠어요. 생긴 걸 보면 말티스 같기도 하구.”

그러고 보니 수일은 한 번도 해피가 무슨 종인지 물은 적이 없었다.

해피는 꼬리를 마구 흔들며 현수를 반겼다.

“억수로 쪼매나네. 몇 개월입니까?”

“그게, 3개월인가?”

“거참, 행님도 참 무심하다. 우째 키우는 강새이 나이도 모르고 종도 모릅니까?”

현수는 이렇게 말하며 해피를 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게요. 수일은 들릴 듯 말 듯 작게 답하며 나중에 두산에게 자세히 물어봐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퍼뜩 준비하고 나오이소.”

수일은 머뭇거리다가 하는 수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두산이 왔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 보기라도 했을 텐데, 현수가 와서 그러지도 못했다.

바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거울 속 남자는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어서 어색했다. 얼굴이 모두 드러나서 그런지 전보다 더 볼품없어 보였다. 수일은 한숨을 쉬며 연고를 잘 펴 발랐다. 연고 덕에 그나마 피부에 광택이 돌았다.

옷방으로 들어가 검은 목폴라에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었다. 추리닝 바지를 입고 갈 수는 없어서 아깝지만 깁스한 발이 들어가도록 가위로 바지 옆 단을 터서 입었다. 살이 빠져 양복이 조금 헐거웠지만, 나름대로 몸에 맞춰 산 거라 그리 보기 흉하진 않았다. 준비를 모두 끝내고 나가자 현수가 휠체어에 수일을 앉혔다. 한쪽 발에만 구두를 신기고 목발도 챙겼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푹 쉬었다.

“행님도 참, 만다꼬 서울을 갔습니까? 얼굴만 상했네.”

현수는 수일이 여윈 게 안타까워 제가 아는 살찌는 방법을 모두 털어놓았다.

“행님, 마요네즈 있지예? 빵이고 밥이고 국이고, 일단 머를 먹을 때마다 마요네즈하고 써꺼 먹으면 금방 살이 찝니다. 4, 5키로 찌는 거는 일도 아이다. 그라고, 스팸 있지예? 그것도 매끼 같이 먹으면 살이 그래 찐다. 양키들 살찌는 기 다 스팸 때문 아입니까.”

딱히 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수일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두산이는 어때요?”

“개안튼데예.”

“다른 가족분들은요?”

“하도 오래 누 있어서 그른가 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솔찌키 적막강산이다.”

하도 말투가 가벼워 장례식장이 아니라 어디 병문안이라도 가는 느낌이었다.

“아, 맞다! 두성이 행님이 깽판 한번 칬다.”

수일이 돌아보자 ‘셋째 행님’ 하고 덧붙였다.

“빵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거든예, 그 행님.”

“아….”

전에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째 행님하고 둘째 행님은 만나기만 하면 싸와서 두사이가 말린다꼬 고생 쫌 했습니다.”

“그래요? …저기, 손님들은 많이 오셨죠?”

“으데예. 의원님이 가족장 치른다꼬 친척들 아이믄 조문 안 받는다 켔습니다. 원체 식구가 많아서 복작복작하긴 해도 많지는 않아예.”

수다스러운 현수 덕에 긴장으로 굳었던 몸이 풀리고 마음도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백태섭이 머물던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태섭의 빈소가 어딘지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들이 복도에 2열로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두 명이 입구 앞을 막고 서서 사람들 신원부터 확인하고 안으로 들여보냈다. 가족장이라더니 제법 많은 손님이 들락날락했다.

현수는 덩치들과 알은체를 하고 눈인사를 나누었다.

“손님들은 쫌 왔나?”

“어. 정신읍따.”

“육개장이가?”

“씨락국. 편육하고 떡하고 찌짐도 나오는데 맛이 좋다. 술은 종류별로 다 있고.”

“알았다.”

적막강산이라더니 현수 말과 반대로 장례식장은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조문객들은 큰 소리로 떠들었다. 국화꽃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넓고 고급스러운 내부에 수일은 조금 당황했다. 아무리 어르신이 직접 죽이려 들었던 아들이라도 당연히 좋은 곳에서 장례를 치를 텐데, 작고 소박한 곳을 상상한 자신이 우스웠다.

서빙하는 직원들도 덩치들이었다. 그중에 덕규도 보였다. 대부분 덕규처럼 직급이 낮은 어린 친구들인 것 같았다. 어리둥절한 수일을 내버려 두고 현수가 신발을 벗고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현수와 함께 두산이 나타났다.

“왔나?”

새벽에 급하게 나간 두산의 얼굴은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다행이었다.

“일단 절부터 하자.”

“…응.”

장례식장에 왔으니 당연히 절을 해야겠지만, 어머니를 어찌 봐야 할지 수일은 걱정부터 앞섰다. 현수가 눈치도 없이 챙겨 온 목발을 수일에게 냉큼 들려 주었다.

“종국이는?”

현수의 물음에 두산이 두리번거리며 나름 한적한 공간을 가리켰다.

“저짝에 있었는데 어데 갔지?”

“내가 알아서 찾으께. 니는 밥은 쫌 뭇나?”

“어. 내는 묵었다. 행님도 밥부터 무라.”

“오야.”

현수는 수일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 어딘가 있을 종국을 찾으러 갔다.

“밥은?”

“여사님이 해주셔서 먹었어. 너 괜찮아?”

“당연히 갠찮치.”

두산이 수일을 향해 씨익 웃었다. 수일의 등을 팔로 감싸 안고 목발을 잘 디디도록 곁에서 도와주었다.

영정 사진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어머니가 자신을 닮은 아들과 함께 있었다. 저 남자가 두산의 첫째 형인가 보았다. 백태섭이 수일과는 근본이 다르다고 했던 그 아들. 수일은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수일이 다가가자 첫째 아들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일도 맞절을 했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긴 했지만 수일을 보고 알은체하지 않았다. 수일은 국화꽃을 받아 헌화하고 두산의 도움으로 절을 했다.

영정 사진 속 백태섭은 언젠가 조모의 앨범에서 본, 첫째가 성년이 되던 해 찍었다던 그 사진과 같았다. 젊은 시절보다는 못해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서 그 어떤 악의도 엿볼 수가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사진 속 저 남자가 정말로 10년 전 자신에게 매몰차게 굴었던 사람이 맞을까, 수일은 제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절을 다하고 나자, 두산이 제 형에게 수일을 소개했다.

“여는 윤수일이 행님. 여는 우리 집 장남.”

“반갑습니다. 백두협이라꼬 합니다. 저짝에 가족들 앉아 있거든예. 글로 가서 머 쫌 드시고 계십시오.”

첫째 형님은 덩치나 키로 보면 두산과 형제 같아 보였지만, 잘생긴 얼굴에 말투까지 다정해서 전혀 이 집 식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두산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친형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끝내 수일을 외면했다.

두산은 제 가족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수일을 안내했다. 거기엔 지난번 오성관에서 본 남자가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 둘과 함께 앉아 있었다. 가끔 그 테이블로 아이들이 오고 갔다. 남자는 수일을 보자 알은체를 했다.

“우리 둘째 행님, 전에 본 적 있제?”

“안녕하십니까. 백두열이라꼬 합니다. 지난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너무 정중하게 말을 해서 수일은 당황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겨우 ‘아닙니다’ 했다.

“행수님들, 인사하이소. 여는 윤수일이 행님. 이짝은 첫째 행수님, 저짝은 둘째 행수님.”

두산의 형수들은 모두 미인이었다. 첫째 형수는 웃는 인상에 목소리가 고왔다. 둘째 형수는 표정도 말투도 조금 무뚝뚝했지만, 수일이 먹을 만한 음식들을 바로 챙겨 주었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괜찮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기어이 떡이라도 먹으라며 집어 주었다. 수일은 송편 하나를 입에 넣었다.

“참, 해피는 잘 있어예?”

둘째 형수의 입에서 나온 해피 이름에 수일이 눈을 크게 떴다.

“해피 누나를 우리 집에서 키우거든예. 우리 집 아들이 하도 개 키우자꼬 쫄라가지고. 도련님한테 해피 얘기 마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일 씨를 잘 따른다면서예?”

“아… 네.”

전혀 아니었지만, 일단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 집 개 이름은 메리. 해피는 사료 잘 묵습니까?”

“네. 잘 먹어요.”

“우리 메리는 밥은 묵는데 사료를 안 먹어예.”

“아… 저희 해피는 사료도 잘 먹구요, 밥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거 같아요.”

“엄마야, 목소리가 억수로 좋다.”

가만 대화를 듣고 있던 첫째 형수가 수일의 목소리를 칭찬했다. 둘째 형수도 고개를 끄덕끄덕해 보였다.

“목소리만 좋나. 얼굴도 잘생깄지.”

두산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앞에 앉은 두열이 못 볼 걸 본 양 눈살을 찌푸렸다. 수일은 괜히 쑥스러워 떡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누고?”

수일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 몸을 돌려 올려 보자 두산과 많이 닮았으나 더 사나운 얼굴의 남자가 버티고 서서 수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어나야 하나 고민하는데 앞에 앉은 두열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개새끼야, 니는 깽판을 치고 나갔으면 수습을 해야 할 꺼 아이가. 으데 맨날 도망칠 궁리만 하노?”

“내가 머?”

목청이 어찌나 크던지 영정 앞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다시 수일과 눈이 마주쳤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머? 행님 니가 먼저 내를 건드맀다 아이가?”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둘째 형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첫째 형수도 뒤따라 나섰다.

커다란 남자는 형수들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당장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의외로 두열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편육을 집어 먹었다. 남자는 평생 웃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일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꾸벅했고, 남자도 대충 까딱해 보이며 민망할 정도로 수일을 훑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두사이 셋째 행님 백두성입니다.”

두산만큼 낮은 목소리가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수일입니다.”

“술 한잔하실랍니까?”

“안 된다. 몸 안 좋다.”

두산이 바로 막아섰다. 두성의 눈썹이 꿈틀댔다.

“쌔끼, 지랄한다.”

단번에 두산을 무시하고 수일에게 소주잔을 내밀었다. 안 받을 수도 없어서 손을 올리는데, 두산이 중간에서 잔을 가로챘다.

“씨발, 안 된다. 몸 애빈 거 안 보이나?”

이번엔 두산이 고함쳤다. 두열이 그런 두산을 거들었다.

“하여간 이 씨발롬은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두성이 니는 그기 문제야.”

“하, 씨끄럽네.”

언제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수일은 침을 꼴깍 삼켰다. 눈알을 굴리며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부근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피곤했다. 얼른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행님들. 방해해서 죄송한데예, 의원님께서 수일이 행님 좀 보자십니다.”

현수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르신을 만나는 건 껄끄럽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예. 갔다 와서 한잔하입시다.”

두성은 두산이 화를 내든 말든 수일을 향해 손으로 잔을 꺾는 시늉을 했다.

“으이그, 씨발. 안 된다꼬 몇 번을 말하노? 술 몬 묵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두산이 으르렁대며 제 형에게 성을 내자 여태 굳은 표정이던 두성이 피식 웃었다. 입가가 웃음을 참느라 미세하게 떨렸다.

“개새끼야, 농담도 몬 하나? 하여간 저 새끼 저것도 어지간하다.”

“말도 마라. 골 때린다.”

앙숙같이 굴던 두열이 웬일로 두성의 편을 들며 따라 웃었다. 두산만 씩씩대며 제 형들을 노려보았다. 도저히 적응 안 되는 분위기였다.

“가자, 얼른.”

수일은 두산에게 속삭이며 팔을 잡아끌었다.

“씨발, 행님들 난중에 보자.”

끝까지 한마디를 더하고서야 두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발 짚는 게 영 불안해 보였던지 두산은 아예 제 옆구리에 수일을 끼고 걸었다. 멀쩡한 발로 대충 디뎠지만, 두산에게 들려 가는 거나 다름없었다.

장례식장을 벗어나자 수일은 좀 살 것 같았다. 두산은 얌전히 휠체어를 밀 뿐 말이 없었다.

“너 괜찮아?”

“어. 갠찮치. 니는?”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수일의 말에 두산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손을 타고 오는 따뜻한 온기에 수일은 미소 지었다.

휠체어를 타고 간 곳은 백태섭이 머물던 병실이었다. 문을 열자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어르신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할배. 데꼬 왔다.”

“오야. 니는 나가 바라.”

사전에 서로 얘기가 된 모양인지 두산은 수일을 안으로 들이고 방을 나갔다. 자리를 비켜 주기 전에 수일의 어깨를 살짝 쥐었다. 다 괜찮다고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어르신은 창가에 기댄 채 수일을 바라보았다.

“얼굴 마이 상했네.”

어르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평온했던 수일의 마음에 폭풍이 일었다.

이젠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제 앞에 있는 노인이 제게 한 말이 떠올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악연이라고 말했었다. 두산과의 인연도 악연이니 여기서 그만 끊자고 했었다. 그게 다 자신의 죄를 수일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한 말인 줄도 모르고 수일은 그러겠다고 수긍했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눈 수술 하나 해 달라는 부탁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두산이 제일 좋아하는 눈이었고 죽기 전에 두산의 결혼사진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어서 염치 불고하고 용기를 내 말했었다. 수술 후 혼자 전신 마취에서 깨서 겨우 벽을 짚어 가며 약을 타던 그때도 고마운 마음밖에 없었다.

병원에서의 일이 떠오르자 수일은 울컥했다. 저를 마주 보는 저 노인이 너무도 얄미웠다. 문홍길의 사과 이후 모조리 사라진 줄 알았던 분노가 수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수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를 악물었다.

어르신은 의자를 가져와 수일의 앞에 앉았다. 얼굴이 상한 건 수일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정정하던 어르신도 그새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쌤통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놀라워서 수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제 속에 이토록 비틀어진 분노가 남아 있는 줄 몰라서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니한테 다 변명으로 들리는 거 안다. 제 자식 귀한 줄만 알고 넘의 자식 귀한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 했드만은 그게 내였다.”

“…….”

“태섭이가 누굴 닮아서 그래 모질고 비겁한가 했드만은 다 내를 닮아서 그랬다. 10년 전에 태섭이가 그래 한 거를 보고도 내가 니한테 똑같이 험한 짓을 했다.”

담담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던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늘 차분하고 성미가 대쪽같던 어르신의 눈가가 붉었다. 잠깐의 침묵 후, 고집스럽게 닫혀 있던 입술이 다시 열렸다.

“미안하다. 참말로 미안하다.”

예상치 못한 사과에 수일은 눈을 크게 떴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앞에 앉은 노인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수일을 바라보았다. 얼굴엔 후회가 가득했다. 이미 충혈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노인은 절대 수일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들어 잠깐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노망이 났었는갑다. 니를 볼 면목이 읍따…. 미안하다, 수일아.”

수일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욕을 하고 나한테 왜 그랬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아니, 그랬었다. 그런데 고작 미안하단 말 한마디를 들었다고 불과 1초 전까지도 자신을 괴롭혔던 화가 눈 녹듯 사라졌다.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분노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바보같이. 미안하다는 그 말이 뭐라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수일도 어르신처럼 울지 않으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르신은 수일의 손을 잠깐 잡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방을 나갔다.

수일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두 손을 맞잡고 손톱이 살에 박힐 때까지 꽉 쥐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문홍길이 사과를 해 왔을 때는 환하게 웃었건만, 이번엔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수일은 손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았다.

“흐… 흑, 바보… 등신.”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흐윽… 감사합니다. 어르, 신.”

사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수일은 꺼이꺼이 울었다. 서럽게 흐느꼈다.

두산의 말대로 이젠 모든 게 괜찮았으면 했다. 더는 제 가슴에 분노도 원망도 남아 있지 않기를 빌었다. 멀쩡하다가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쳐 미치는 일도, 정신을 잃고 방황하는 일도 이젠 없었으면 했다. 지금 흘리는 이 눈물이 지난 10년간 저를 괴롭혔던 사고로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되기를 바랐다.

“두산… 아, 두산아! 흑… 두산아!!”

수일은 휠체어를 돌리며 있는 힘껏 두산을 불렀다. 눈물에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문을 열겠다고 난리를 쳤다. 놀란 두산이 급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와 수일을 안았다.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닦아 주며 ‘내 여 있다. 울지 마라’ 해 주었다.

“개안타. 이제 다 끝났다.”

커다란 손이 수일을 토닥였다. 드넓은 가슴이 수일을 보듬었다.

“흐윽… 두산, 흑, 아… 다 끝난 거 맞지?”

“어. 다 끝났다. 다 개안타.”

이제 정말 끝났다고 수일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실컷 울었다. 아이고, 아이고. 더는 원망이 남지 않도록 통곡했다. 아이고, 아이고. 지난 일들이 두산과 자신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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