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쪼매 삐뚤다. 아니아니 왼쪽으로. 어! 딱 됐네!”
두산은 커다란 목소리로 트리의 위치를 지적했고 사장님이란 남자는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나무를 옮겼다. 두산이 말을 할 때마다 해피도 ‘앙! 앙!’ 하고 짖어서 수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다가 강제로 소파에 옮겨진 수일은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집채만 한 트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옆 커다란 종이 상자 안에는 트리를 장식할 소품들과 전구가 가득했다.
“아니 무슨 트리를 이렇게 큰 걸 샀니?”
구시렁대긴 했지만 수일은 가슴이 설렜다. 저렇게 큰 트리는 나이트에서 일할 때 종종 봤지만, 자신의 집 안에서 보게 되리라곤 상상한 적도 없었다.
수일은 아파트에 와 본 것도 사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왜 비싼 돈을 들여 가며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에 두산과 살던 그 집도 넓고 해가 잘 들었지만, 아파트는 주변 풍경 자체가 달랐다. 정말 사람 사는 동네였다. 밤새 번쩍거리는 간판도 취객도 호객 행위를 하는 삐끼도 없었다.
대단지 아파트는 입구부터 수일이 사는 동까지 매끈한 아스팔트 길이 잘 닦였고 실내도 네모반듯하게 오밀조밀 잘 짜여 있었다. 거실뿐 아니라 모든 방에 해가 잘 들었고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는데 실내가 후끈했다.
집 안 어디에도 연탄 아궁이나 보일러실이 없는데 어디서 열기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산의 말론 관리실이 따로 있다고 했지만, 그 관리실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열기를 전달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집 안에서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는 거였다. 낮엔 온종일 바다만 바라봐도 시간이 절로 갈 것 같았다.
둘이 살기에 지나치게 큰 집이었지만 두산이 이것저것 잘 꾸며 놓아서 휑한 느낌은 없었다.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를 방도 하나 만들어 두었다. 방음 시설까지 갖춘 방 안엔 가라오케 기계가 들어 있었고, 나이트를 방으로 옮겨 온 듯한 미러볼도 설치해 두었다.
며칠 전까지 살았던 달세방과 180도 다른 곳이라 수일은 얼떨떨했다. 어젠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어서 실감하지 못했던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너무 좋아서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들다가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하늘거리는 커튼 사이로 보이는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도 눈 돌아가게 아름답다고 느낀 한순간 갑자기 시들해졌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커다란 트리도 마찬가지였다. 설렜지만 불길했다. 좋은 날, 좋은 곳에 있으면서 이러는 자신이 수일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아직은 잘 안 됐다.
두산이 다가와 수일의 볼에 쪽 뽀뽀했다.
“잘 잤나?”
“응.”
“이제는 안 어지럽고?”
커다란 손이 수일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응. 괜찮아. 해피랑 같이 나갔다 왔어?”
“어. 야도 갔다 왔지.”
그러고 보니 해피 발이 새까맸다.
“아니, 어딜 갔다 왔길래 애 발이 저래?”
해피가 흘린 게 분명한 흙들이 거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아직 새끼라 안고 다녀도 모자랄 판인데 두산은 해피를 걷게 한 모양이었다. 천지도 모르는 해피는 흥분한 상태로 거실을 뛰어다니며 흙을 뿌렸다.
“치우면 된다.”
“그래두. 봐, 새 카페트에도 묻었네.”
아이보리색 밝은 카펫에도 검은 흙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수일은 괜히 속상했다.
“별거 아이다. 치우면 된다.”
두산은 이렇게 말하면서 대충 발로 치우는 시늉을 하다가 수일이 흘겨보자 그제야 청소기를 가져와 전원을 꽂고 돌렸다. 청소기 소음에 멀쩡하던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이마를 짚고 소파 헤드에 몸을 기대자, 손을 멈춘 두산이 수일을 안아서 안방 침대로 옮겨 주었다.
“내 청소하고 퍼뜩 오께.”
“응.”
두산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위이잉, 청소기가 연신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저리 가라. 청소기에 빨리 드간다.”
“앙! 앙!”
“저리 가라꼬! 니 죽고 싶나?”
어린 강아지한테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수일은 혹시 다칠까 봐 해피를 불렀지만, 청소기 소리에 강아지도 두산도 수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수일은 가만 누워서 현기증을 달랬다.
지난 3일 동안, 수일은 서울에서 약물 치료를 받고 정밀 검사를 했다. 자살 시도가 남긴 후유증보다 오랜 기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몸이 문제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던 몸에 영양실조가 불을 끼얹은 셈이었다.
의사는 주요 장기들이 제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고, 특히 폐와 신장이 나쁘다고 했다. 술을 많이 마신 간은 괜찮은데 왜 신장이 나쁜지 알 수가 없었다. 폐는 몇 년 동안 폐렴으로 고생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예상하는 것과 의사의 입을 통해 심각하단 소리를 듣는 건 아주 달랐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장 필요한 수술은 없었다. 다만 지금부터 꾸준히 병원에 다니면서 약물 치료를 받고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고 수일의 담당 의사가 신신당부했다. 매일 최소 30분씩 걷기, 술 담배 멀리하기,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 피하기, 균형 잡힌 식사하기, 스트레스받지 않기 등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수칙들도 한 페이지나 적어 주었다. 의사들을 만날 때마다 수일이 먹어야 할 약의 개수가 늘어났다.
수일이 영양제를 맞으며 누워 있는 동안, 두산은 열심히 수일을 돌보다가 삐삐가 울리면 병실 안 전화기로 통화를 했다. 상대는 주로 회사였고, 가끔은 거래처 사람이기도 했다. 못 본 사이에 두산은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아직은 일이 서툴러서 같은 말을 두세 번씩 묻기도 하고, 상대의 말을 받아 적으며 연신 사과하기도 했다. 그래도 수일이 잠든 사이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공책 가득 영어를 빼곡히 써 내려갔고,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책을 펼쳐 놓고 그 위에서 엎드려 잠들기도 했다. 저런 모습은 처음이라 낯설면서도 보기 좋았다.
그렇게 수일은 어제 오후에 겨우 퇴원하고 두산과 해피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으나 흥분은 잠시뿐이었다. 수일은 멀미를 심하게 했고 멀미는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구역질을 하다가 겨우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두산이 청소를 끝내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침대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수일의 곁에 누웠다. 쪽쪽, 소리 나게 입 맞추고 이마에도 콧등에도 연신 뽀뽀를 했다. 청소 좀 했다고 두산은 땀을 흘렸다.
“내 목욕하고 오께.”
“응.”
“니도 할래?”
“다리가 이런데 어떻게 하니? 또 물 들어가면 어쩌려구?”
“내가 조심해서 씻기 주께.”
“아냐. 기운 없어. 너 혼자 해.”
두산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수일의 엉망인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만지작거리며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왜?”
“아니, 내 혼자 목욕하면 심심하다 아이가.”
“심심하긴…. 아! 하는 김에 해피랑 같이 하면 되겠네.”
“거참. 내가 개새끼하고 목욕할 군번이가?”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군대 얘기에 두산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바람에 침대가 출렁거려 수일은 또 어지러웠다.
“에헤이, 내가 안 간기 아이고 몬 간기지? 지금이라도 검정고시 따서 갔다 오까?”
“누가 뭐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구 해피 씻기는 거랑 군번이랑 무슨 상관이니?”
“상관있지! 내는 해피 말고 니하고 목욕하고 싶다.”
수일은 피식 웃음이 났다.
“물 안 들어가게 잘 씻길 자신 있어?”
“어!”
“그럼 가서 준비해 봐.”
“어!”
같이 목욕하는 게 뭐라고 두산은 신이 나서 안방 욕실 문을 벌컥 열었다. 안방에 욕조 딸린 욕실이 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그것 말고도 놀랄 일은 많았다. 돈이 없어서 여태 누리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들이 세상에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 격차가 얼마나 벌어질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집값만 해도 억 소리가 나는데, 그래도 다들 집을 샀다. 아무리 은행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그렇지, 가진 돈이 적어도 몇 천은 있다는 소리였다. 아버지가 졌던 빚 몇 천을 갚기 위해 15년 가까이 못 먹고 못 입어 가며 일만 했던 수일에겐 별나라 이야기였다.
다들 이렇게 살았구나. 새삼스러웠다.
타다닥. 하얀 것이 방 문턱을 왔다 갔다 하며 안을 살폈지만, 절대 방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해피는 두산을 찾는 모양이었다.
“해피야, 아빠 찾니?”
“앙!”
“나두 니 아빤데 일루 와 봐.”
타다닥, 해피가 사라졌다. 어린 강아지들은 아무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았다. 그렇게 구박하고 발로 툭툭 차는데도 뭐가 좋다고 두산만 따랐다. 그새 주인을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일은 한 번도 해피를 만져 주지 않았다. 처음엔 저 어린것에게 제 불운이 옮겨 갈까 봐 만지지 못했고, 나중엔 혹시 병이라도 옮길까 봐 만질 수가 없었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은 아파서 놀아 줄 수도 없었다.
수일은 자신이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아직은 두산밖에 모르는 하얀 덩어리가 조금 서운했다.
어느새 준비를 마친 두산이 알몸으로 수일의 앞에 섰다. 자지를 잔뜩 세우고서.
대낮에, 그것도 커튼도 열어젖힌 채 알몸으로 서 있다니 누가 보면 어쩌려고 저러나 몰랐다. 아무리 앞이 바다라 해도 배도 다녔다. 물론 여기까지 보일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누가 망원경을 쓰기라도 하면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너 변태니?”
“어! 씻자.”
두산은 씨익 웃으며 수일을 안아 들었다. 욕조 안에 어울리지 않게 빨간색 양동이 두 개가 뒤집혀 있었다. 두산은 그 위에 수건을 깔아 수일을 앉히고 다른 양동이 위에 깁스한 다리를 올려 주었다. 멀쩡한 발 아래로 따뜻한 물이 닿아서 기분이 좋았다.
수일의 셔츠를 벗기는 손이 조금 떨렸다. 수일은 피식 웃으며 시야를 가로막는 두산의 자지를 애써 외면했다.
안 본 사이 두산은 몸이 더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살이 쪘나? 수일은 세심하게 두산의 몸을 살폈다. 역시나 근육도 더 붙었고, 살도 마지막 볼 때보다 더 오른 것 같았다. 처음 만났던 때 유도 선수 같던 그 몸이 떠올랐다.
“너 살쪘니? 우리 헤어졌을 때보다 몸이 더 커진 거 같애.”
“살찌기는? 부은 기다!”
“아닌데? 여기 팔에 있던 상처 위치두 달라졌는데?”
수일은 두산의 왼쪽 팔뚝에 있는 오래된 상처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부었으니까 글치.”
“먹은 것두 없으면서 자꾸 부었대.”
“어제 니 잘 때 라면 끓이 무따. 됐나?”
두산은 끝까지 부었다고 우겼다.
안 그래도 수일의 다리보다 두껍던 팔은 더 두꺼워졌다. 두산은 제 팔뚝을 수일의 팔뚝 옆에 갖다 붙이고 자신이 살찌지 않았음을 항변했다.
“이 바라. 니가 억수로 말랐으니까 내가 살찐 거처럼 보인다 아이가.”
이번엔 수일의 탓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수일이 보기엔 빠졌던 살이 도로 붙은 것 같았다. 다행이란 안도와 함께 이상한 서운함이 들었다. 저와 함께 살 땐 살이 빠졌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었고 조모도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 도로 살도 붙고 근육도 원래대로 커졌다. 얼굴빛도 더 좋아 보였다.
수일은 시무룩해졌다. 다시 저와 살면 또 살이 빠지려나? 그러면 무슨 낯으로 남들을 보나, 걱정이 앞섰다. 수일의 심경 변화를 눈치채 두산이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내 얼마 전까지 하도 술 처먹고 댕기서 배 나오고 보도 몬 했다. 니 우리 행님 본 적 있제, 오성관에서? 그 행님처럼 살찠다 아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두산이 제 형처럼 살이 쪘었다는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비죽 입을 내밀고 고개를 돌렸다. 두산은 돌아간 수일의 고개를 잡아 제 얼굴에 바짝 붙였다.
“에헤이, 진짜다. 내 니 만날라꼬 2주 전부터 억수로 운동했다. 이기 다 노력의 결과 아이가.”
두산은 벌떡 서서 두 팔을 들고 보디빌더 흉내를 냈다.
“아냐, 됐어. 살찌면 좋지 뭐.”
“복근. 빨래판이다 빨래판.”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 나도록 배를 두드리다 수일의 손을 배에 갖다 댄 채 아래위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뱃가죽도 전보다 훨씬 탄탄해졌다.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두산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와, 다 니한테 잘 보일라꼬 계란만 먹어가면서 운동한 긴데 반응이 이라믄 우짜노? 섭섭하그로”
섭섭하다는 말에 제가 더 섭섭해진 수일은 두산의 두툼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배에 얼굴을 묻으려다가 방해꾼 자지때문에 고개를 도로 물렸다.
“나하구 살아도 살은 빠지지 마.”
“당연하지. 내도 살 찌고 니도 살찌울 끼다. 이번엔 꼭 10키로 찌우 끼다.”
“내가 돼지니? 10키로나 찌우게?”
“돼지 좋아하네. 10키로 찌아도 니는 정상 체중 아이그든?”
“그 정돈 아니거든?”
“맞거든?”
두산은 허리를 숙여 수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눈앞에서 발딱 서다 못해 질질 울고 있는 두산의 성기를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수일은 손으로 잡았다.
“헉!”
그저 잡기만 했는데도 두산은 몸을 튕겼다.
“발기 부전이라더니, 거짓말쟁이.”
수일이 구시렁대자 두산이 웃으며 진짠데, 했다. 자세가 영 불편했지만 두산이 알아서 양동이를 피해 적당한 위치에 섰다. 두산은 한 손은 뻗어 벽을 짚고 다른 손으로 수일의 머리카락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하다가 어지러우면 말하고.”
“응.”
오랜만이라 그런지 더 크게 느껴져서 입 안에 넣기보다 혀를 내밀어 귀두부터 핥았다.
“흐읍! 아으… 씨발.”
수일이 혀를 움직일 때마다 두산의 입에선 깊은 신음이 흘렀고, 탄탄한 근육들은 아우성을 쳤다. 곧 사정이라도 할 듯 투명한 액이 쏟아졌다.
머리카락을 어지럽히던 두산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두산은 수일의 고개를 위로 잡아 올린 뒤 최대한 몸을 숙여 수일의 입 안을 침범했다. 두껍고 힘 좋은 혀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입 안을 헤엄쳐 다녔다. 점막이란 점막은 모두 훑었다.
수일의 마른 입 안은 두산의 키스로 물기 가득해졌다. 쭙쭙, 소리 내 가며 서로의 혀를 희롱하고 입술을 탐했다. 옅은 숨소리는 키스가 반복될수록 점점 크기를 키웠다. 침과 침이 얽히고설켜 누구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간신히 입술을 뗀 두산은 흥분한 목소리로 수일을 재촉했다.
“하으, 수일아, 빨아 도.”
수일은 열기로 들뜬 두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려 거대한 것을 삼켰다. 원래 자기 것이었던 짐승을 입 안에 가뒀다. 두산의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그저 빨 뿐인데도, 흥분과 쾌락으로 알 수 없는 신음을 뱉었다. 숨을 헐떡이며 연신 수일의 이름을 불렀다.
이 목소리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랐다. 저만 보면 흥분하는 이 커다란 남자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랐다. 수일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입 안에 넣고 있어도 실감 나지 않았다. 두산과 다시 만났다는 사실도, 자신이 백태섭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 꿈만 같았다.
꿈에서 깨면 다시 저는 차가운 골방 침낭에 있을 것만 같았다. 수일은 두산의 것을 넣은 채 엉엉 울었다. 두산이 놀라서 제 성기를 급히 빼냈다.
“수일아 와? 마이 힘드나?”
두산은 욕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 수일과 눈을 마주 보았다. 두 손으로 수일의 얼굴을 붙들고 마구 입을 맞췄다. 눈물을 닦아 주며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씨발, 내가 미칬다. 니 아픈데 이거를 몬 참아서.”
“…아, 냐… 힘들어서 그런 거 아냐.”
“아니기는. 미안하다.”
“그게 아니구, 좋아서 그랬어. 좋아서… 흑, 너 만나서 너무 좋아서 우는 거야.”
수일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두산에게 입을 맞추고 목을 꼭 끌어안자 두산이 있는 힘껏 수일을 안아 주었다.
“하이고, 우리 행님. 좋으면 웃어야지 울면 우짜노?”
두산이 수일의 등을 토닥여 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마를 맞대고 코를 비볐다.
“이거 꿈 아니지?”
“어. 꿈 아이다.”
“어떻게 알아? 꿈인지 아닌지.”
“에헤이, 내 몬 믿나?”
이러더니, 두산이 이로 귓불을 깨물었다. 아픈 걸 보니 정말 꿈이 아닌가 보았다. 이번엔 혀를 세워 방금 깨문 귓불을 살살 달랬다. 수일은 움찔하며 웃었다. 하지 마, 하면 두산이 ‘하지 마’ 하고 수일의 말투를 따라 했다. 둘은 키득대며 뽀뽀도 하고 키스도 했다.
수일은 뱃속이 간질간질했다.
“하고 싶어.”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두산은 눈이 안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그래. 하자.”
“니가 나 씻겨 줘.”
“어. 내가 다 해주께.”
수일도 두산을 향해 웃었다. 둘은 다시 입을 맞췄다. 입을 벌려 서로를 물었고, 빈틈없이 맞물린 입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더 크게 입을 벌려 헐떡이며 서로를 욕망했다.
첫 키스인 양 가슴이 두근거렸다. 둘이서 하는 섹스가 처음인 양 수일은 그 어느 때보다 떨렸다. 최고로 볼품없는 몸을 하고도 두산의 앞에서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두산이 저를 얼마나 원하는지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어서 수일은 자신이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니 억수로 예쁘다.”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낮게 속삭였다.
“너두 억수로 예뻐. 세상에서 제일 예뻐.”
“지랄.”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두산은 수일을 씻기고 꼼꼼히 물기를 닦은 다음 조심히 안아 침대로 데려갔다. 정작 두산은 닦지 않아서 수일의 몸에 다시 물이 묻었다. 몇 걸음 되지 않는 짧은 길에도 둘은 서로 입술을 붙이고 쪽쪽 댔다.
“춥제? 퍼뜩 이불 안에 드가자.”
“넌 왜 물을 안 닦니?”
수일의 잔소리는 귓등으로 흘려 버린 두산은 서둘러 하얀색 이불을 덮어 주고 저도 안으로 쏙 들어왔다. 이불이 가볍고 따뜻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꼭 호텔 침구 같아서 수일은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뜨거운 두산의 알몸이 닿아서 그런지 금세 달아올랐다. 둘은 계속 입을 맞추고 키스하며 혀를 얽었다가 빨았다. 젖은 점막과 혀가 닿아 음란한 접촉음을 만들어 냈다. 점점 숨이 가빠 와도 수일은 키스를 멈출 수가 없었다. 두산의 목을 끌어안고 최대한 하체를 붙이고, 입술은 떼지 않았다.
혀와 입술이 얼얼해질 때까지 서로를 실컷 탐한 두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내내 광대를 실룩댔다.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수일아, 내 억수로 좋다.”
“나두.”
“진짜로 좋다.”
“나두 좋아.”
두산은 수일의 뒤통수가 베개에 처박힐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부닥쳐 왔다. 좋아 죽겠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두산의 힘에 눌려 입술도 몸도 아팠지만, 수일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렇게 좋은데 죽을 생각을 한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수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두산은 입술을 내려 턱 바로 아래 남은 자살 흔적을 핥았다. 상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흔적도 조금씩 옅어졌다. 검푸른 멍 주위가 노래지고 있었다. 수건에 심하게 긁힌 자리에 앉은 딱지도 하나둘 사라져 갔다.
두산의 입술은 목을 지나쳐 어깨로 내려앉았다. 쪽쪽, 어깨를 따라 입을 맞추고 해골처럼 뼈가 다 드러난 몸에 정성스레 입을 맞췄다. 수일을 예쁘다 하면서도 마른 몸이 안타까운지 두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는 쇄골. 쪽. 여는 갑빠. 쪽. 이거는 복장뼈? 쪽. 여는 늑골 일. 쪽. 이. 쪽.”
두산은 중얼중얼 뼈 이름을 읊으며 뼈 하나당 뽀뽀 한 번을 했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흥분으로 움찔거리던 수일은 갈비뼈에 숫자를 붙이는 두산이 웃겨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너 지금 뭐 하니?”
“내? 뼈 센다. 내 없는 동안 도망간 뼈가 있나 없나 잘 살피야지.”
“싱겁기는.”
“어! 읍따.”
“뭐가?”
“으데 갔지?”
두산은 수일의 물음에 대꾸도 없이 없다,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구석구석 수일의 상체를 훑던 혀가 배 한가운데를 갈랐다. 수일은 웃다가 갑자기 닿은 혀에 그대로 허리를 튕겼다.
“윽! 장난치지 말구.”
“찾았다. 배꼽.”
하더니, 두산은 얼굴을 수일의 배꼽에 묻고 마구 비벼 댔다. 수염이 살에 닿으며 주는 자극에 소름이 돋았다. 혀를 바짝 세운 두산이 배꼽 주위에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읏!”
몸이 제멋대로 반응했다. 발가락과 손가락이 절로 오므라들었다.
두산은 최대한 느리게 수일을 애무했다. 혀와 입술이 배꼽에서부터 아랫배를 타고 음모까지 내려갔다. 수일은 바르르 떨다 참을 수 없어서 전신을 비틀었다. 손을 뻗어 두산의 어깨를 꼭 쥐었지만 물에 젖은 커다란 어깨가 손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이불은 어느새 침대를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두산은 그런 것도 모르고 수일의 다리를 벌려 부지런히 물고 빨았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두산아, 흐으… 나 추워.”
간신히 말을 뱉자마자 두산이 수일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춥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있는 힘껏 빨아올리는 쭙쭙 소리가 유난히도 컸다.
“하아… 으읏! 윽… 아….”
아무렇게나 벌어진 다리가 어찌나 말랐던지, 보기 흉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수일은 전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일은 최대한 두산을 느끼려 애썼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발기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츄릅, 침을 잔뜩 머금은 입으로 두산은 반응 없는 성기를 세워 보려고 애썼다. 너무 세게 물고 빨아올리니 이젠 아프기까지 했다.
“아! 아… 퍼. 흐으, 진짜 아퍼.”
수일이 아프다고 한 열 번쯤 말하고 나서야 두산이 성기를 뱉어 냈다. 손등으로 침이 잔뜩 묻은 입 주변을 닦으며 그대로 수일을 뒤집었다. 평소라면 고개를 갸웃하던가 아니면 놀렸을 두산은 이번엔 그냥 넘어갔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괜히 미안해서 엎드려 물었다.
“몸이 약해서 그런 거를 우짜긋노. 내가 봐 주야지.”
“두산아.”
“어?”
“나 앞으로 안 서면 어쩌지?”
“지랄. 안 설 리가 읍따. 내가 일주일 안에 세울 끼다.”
두산은 큰소리로 장담했다. 수일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두산이 하도 빨아서 아릿한 성기에 손을 갖다 대고 조물조물해 보았지만, 따갑기만 했다. 시무룩해져 있는데 순간 엉덩이가 위로 들렸다. 무릎이 침대에 닿자마자 두산의 혀가 엉덩이 골을 파고들었다. 거침없는 혀는 회음과 구멍을 침으로 가득 적시며 왕복했다.
“흐응… 읏! 아아, 하.”
맛있는 거라도 먹는 양 두산은 쩝쩝대며 수일의 엉덩이를 희롱했다. 입 안에 머금을 살이 없는지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를 이로 긁다가 온 엉덩이와 엉덩이 골이 침으로 축축해질 때쯤 두산이 벌떡 일어나 오일을 챙겼다. 장미향이 코를 찔렀고 이내 엉덩이에 차가운 오일이 떨어졌다.
한 방울 한 방울 느리게 떨어지는 오일 탓에 수일은 움찔움찔 엉덩이를 꿈틀댔다. 고개를 돌려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얼굴을 붉히고 혀로 아랫입술을 적시며 흥분으로 가득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두산은 수일과 눈이 마주치자 제 몸으로 수일의 등 뒤를 덮었다.
손가락이 구멍 주름을 펴는 동안 입술은 목덜미를 따라 입술로 다가왔다. 수일은 입을 열어 두산의 혀를 받았다. 손을 뒤로 돌리고 짧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두산은 미소를 짓더니 쪽쪽, 입을 맞추었다.
“내 억수로 떨린다. 죽겠다.”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정말 떨렸다. 긴장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두산의 상체 근육이 불규칙적으로 움찔댔다. 처음도 아니면서 붉게 상기된 얼굴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던 수일은 고개를 들어 마구잡이로 뽀뽀를 해 주었다.
두산도 참지 못하고 입술을 들이밀었다. 이가 부딪혀 딱 소리가 났지만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그사이 구멍이 풀렸고 두산은 몸을 세워 구멍에 제 성기를 맞췄다.
두산의 애무가 무색하게, 구멍은 오랜만에 들어오는 커다란 침입자를 거부했다. 몇 번이고 귀두가 미끄러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두산의 입에선 탄식이 흘렀다. 씨발, 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겨우 귀두를 구멍에 물린 두산은 다시 상체를 내려 수일의 등을 덮었다. 수일은 등 뒤에서 헐떡이는 소리를 들었다. 두산의 가슴팍이 등에 닿을 때쯤 성기가 급하게 밀려 들어왔다.
“아아!”
“으흡, 씨발.”
몸 안의 내장이 자리를 비켜 주며 고통으로 아우성쳤다. 수일은 질끈 눈을 감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수일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던지, 커다란 손이 가슴께로 쑥 들어왔다. 상체를 조금 들어 올리자 숨쉬기가 수월했다.
수일은 두 손으로 침대를 짚어 몸을 지탱하려 애쓰면서 최대한 크게 다리를 벌려 두산을 받았다.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뒤로 느껴지는 두께와 길이가 새삼스러웠다.
“하아, 하… 윽! 아으… 앗.”
“씨발, 수일아. 내 억수로, 흐윽, 좋다.”
아프기만 하던 두산의 자지가 점점 익숙해졌다. 깊이를 더해 오는 두산에 그곳이 자극당하자 수일은 히익 소리를 내며 몸을 파닥거렸다. 침대를 짚고 있던 팔에서 힘이 빠져 그대로 베개에 얼굴이 처박혔다. 두산은 그런 수일에게 더 가까이 가슴을 붙여 내리눌렀다.
귓가에 뜨거운 입김이 닿았다. 두산이 입 안 가득 수일의 귀를 넣고 맛있게 빨아 당겼다. 성감대가 연이어 자극당하자 아픔 대신 녹아내릴 듯 달콤한 흥분과 쾌락이 온몸을 감쌌다. 수일은 숨을 헐떡이며 두산을 찾았다.
“두산아, 아읏! 좋아… 너무, 좋아”
“으읍, 내도! 수일아, 내도 억수로 좋다!”
자지가 드나드는 구멍에선 질척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들렸다. 수일은 고개를 최대한 비틀어 두산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억수로 좋다’고 말하는 두산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수일은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왜 그래?”
“좋아서….”
두산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끝내 눈물이 떨어졌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수일은 몇 번이고 뽀뽀를 하고 혀로 눈물을 핥아 주었다. 수일도 온갖 감정이 북받쳐 참지 못하고 울었다. 몇 년이나 헤어져 있었던 사람들처럼 둘은 애틋해서 함께 울고 웃었다.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두산이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찰싹 소리가 났다. 수일의 몸이 하염없이 흔들렸다. 두산의 성기가 그곳을 자극할 때마다 수일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침대에 얼굴을 짓누른 채 알 수 없는 신음을 토해 내며 침을 질질 흘렸다. 두산은 짐승처럼 낮은 소리로 목을 긁어 그르렁댔다.
두 팔 사이에 수일을 가두고 팔 굽혀 펴기 자세로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두산의 근육들은 땀으로 번들거려 음란했다. 수일은 이성의 끈을 놓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과 동시에 두산의 이름을 불렀다. 손톱으로 두산의 팔을 긁었다. 충격적일 만큼 짜릿한 감각이 척추뼈를 타고 흘러들었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수일은 사정했다. 이어 두산도 ‘씨발!’ 하더니 몸을 떨었다. 뜨거운 것이 수일의 안을 가득 채웠다. 바들바들 전신을 떨었다. 수일은 눈물과 콧물, 침까지 흘릴 수 있는 모든 액체를 쏟아 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산을 찾았다.
두산은 미친 듯이 움찔대는 구멍 안에 마지막 남은 정액을 짜내며 혀로 수일의 얼굴을 핥았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뽀뽀하고 키스했다.
혀를 물고 빨고 입술을 물고 빨았다. 입에 닿는 건 코든 볼이든 손가락이든 다 입 안에 넣었다. 두 사람은 짐승처럼 붙어 서로를 깨물고 핥으며 헉헉대는 신음을 서로의 입 안에 쏟아 냈다.
그러다 수일이 나가떨어졌다. 기절이라도 한 줄 알고 두산이 깜짝 놀라 수일을 흔들었다.
“수일아! 개안나?”
“으응. 나 기운… 없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수일은 몸을 늘어트리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
“깜짝이야. 진짜로 개안나? 물 쫌 주까?”
“응.”
두산이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저리 가라!”
여태 문 앞에 서 있었던지 해피가 두산의 호통에 깜짝 놀라 깨갱 소리를 냈다. 겨우 고개를 든 수일은 해피가 안쓰러웠다. 성격 더러운 아빠를 만나 저 어린 게 벌써 고생이었다. 달래 주고 싶은데 수일은 ‘해피야’ 하고 부를 힘조차 없었다. 미안했다.
두산은 쿵쿵 소리를 내며 보리차를 가져왔다. 수일을 똑바로 눕히고 상체를 세워 물을 마시게 했다. 세 모금쯤 마시자 정신이 들었다. 흐릿하던 시야도 맑아졌다. 눈을 끔뻑끔뻑하며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두산의 근심 가득한 얼굴에 수일이 힘없이 웃었다.
그러자 두산이 뽀뽀를 했다. 쪽쪽, 몇 번이고 괜찮은지 물었다. 수일을 끌어안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두산아, 내가 많이 부족해두 니가 이해해 줘.”
“바보야. 니가 부족한 기 머가 있노? 내한테는 니가 체고다.”
“그래두.”
“니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아프지만 마라.”
“…응.”
“건강해야 내하고 천년만년 같이 살지.”
“응.”
두산은 땀에 흠뻑 젖은 수일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올려 주었다.
“아프지만 마라. 나머지는 다 내가 알아서 하께.”
다정하게 속삭였다.
천년만년이란 말에 수일은 자신에게 남은 생명은 얼마나 될지 가늠해 보았다. 스물셋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마흔셋에 돌아가신 아버지. 그나마 할머니만 환갑을 겨우 넘기셨었다.
다들 할머니더러 오래 살았다고 했지만, 수일은 너무 빨리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어 돈 많이 벌어서 맛난 것도 사 주고 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조차 없어서 서운했었다.
수일이 할머니 나이만큼 산다고 하면 아직 23년 가까이 남았다. 얼마 전까지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았던 수일에겐 23이란 숫자가 참 크게 다가왔다.
“근데 니 머리 이라니까 진짜 광녀이 같네.”
가만 수일을 바라보던 두산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니, 뭐. 괜찮은데….”
“쯧. 그래. 이라고 댕기는데 누가 연애하자꼬 덤비기나 했겠나? 내야 고맙지.”
“뭐래. 나 잘생겼단 소리 만날 듣고 다녔거든?”
수일은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두산은 좋다고 혼자 웃으며 수일의 머리를 헝클었다.
“알았다. 얼굴이 먼 죄겠노? 가위가 죄지. 말 나온 김에 이발이나 하러 가자.”
여전히 키득대며 ‘광녀이’ 했다. 수일은 입을 실룩거렸다.
“여기 주변에 이발소 있어?”
“당연히 있지. 아! 맞다. 니 정애 누야 기억하제?”
“응.”
“이번에 미용실 취직했다 카던대 거 함 가 볼래?”
정애 씨 얘기에 수일은 눈을 반짝였다.
“응. 거기 가자. 현철 씨는 잘 지내지?”
“어. 부지런히 도배 따라댕기는 갑드라. 가끔 삐삐 온다.”
“그럼, 미용실 문 닫을 때쯤 가서 머리 하구 다 같이 저녁 먹을까?”
“알았다. 니가 그라고 싶으면 그라자.”
“응.”
둘은 침대에서 조금 더 미적거리다 나갈 채비를 했다.
두산은 미지근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수일의 몸을 닦고 뒤처리까지 해 주었다. 그다음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 수일에게 입힐 옷들을 가져왔다. 제대로 된 겨울옷이 없는 수일은 일단 두산의 옷을 입었다. 바지 품은 깁스한 다리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목폴라도 마찬가지였다. 목에 남은 상처를 가리기는커녕 목 부분이 커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씨발, 와 이라지? 내한테는 쫄리는데.”
두산은 몇 번을 끌어 올리다가 이내 포기했다. 누렇게 변한 멍들과 쓸린 상처가 영 거슬리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수일은 겨울 외투도 없어서 두산의 외투 하나를 빌려 입었다. 코트는 남아돌다 못해 담요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산책 나갈 기 아이고 백화점 가서 옷부터 사야겠네.”
“두산아, 나 피곤한데 우리 산책만 하면 안 될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섹스를 했더니 수일은 정말 피곤했다. 사실 산책할 힘도 없었지만, 아파트 주위를 너무 둘러보고 싶어서 무리하는 중이었다.
“알았다. 그라믄 산책 갔다 와서 내 혼자서 옷도 사고 시장도 봐 오께.”
“응.”
두산은 휠체어에 수일을 앉히고 해피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작은 장바구니 같은 곳에 넣었다. 익숙한지 해피는 얌전히 들어가 고개만 삐죽 내밀었다. 손목에 해피를 담은 장바구니를 걸고 두 손으로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바닷바람이 불어 차갑다는 두산의 말이 무색할 만큼 부산은 봄처럼 따뜻했다. 아파트 단지를 빙 둘러보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해피를 귀엽다고 해 주었다. 아이들은 새끼강아지를 만지고 싶어 안달이었다. 두산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피를 내 주었지만, 수일은 걱정이 되었다.
“자꾸 그러지 마. 해피 힘들어.”
“힘들기는. 지도 좋다꼬 꼬리 흔든다 아이가.”
“좋긴 하겠지만 그래두 애들은 힘 조절할 줄 몰라서 세게 만진단 말야. 해피 몸살 나면 어떡하니?”
“개가 무신 몸살이고. 그라고, 세게 만지 봤자 얼라들이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니도 좋제?’ 하고 해피에게 물었다. 해피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앙! 앙!’ 하며 발랄하게 짖었다.
“바라. 해피도 좋다 안 카나?”
“어우, 알았어.”
두산은 천천히 휠체어를 밀며 수일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최대한 몸을 구부렸다. 지금이야 휠체어 신세지만,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 몸이 회복되면 매일 30분씩 걷기는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일요일 낮에 아무 걱정 없이 동네를 산책하는 게 수일은 너무 어색했다.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평생 섰던 밤무대 얘기도 그와 얽힌 사람들 얘기도 없이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낯설었다. 아직도 꿈을 꾸는 듯 실감 나지 않았다.
해피는 장바구니에서 내려 달라고 낑낑댔다. 두산은 당장 내려 주고 싶은 듯했으나 수일이 눈치를 주자 마지못해 들고 있었다.
“느그 엄마가 안 된단다. 니가 설득해 보든가.”
이러면서 장바구니에서 해피를 꺼내 수일의 눈앞에 내밀었다. 해피는 짧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혀를 낼름거렸다. 헥헥 소리를 냈다.
“안 돼. 휠체어에 낄 수도 있으니까 이번엔 참아.”
“앙!”
수일의 말에 해피는 반항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일은 허락하지 않았다. 정말로 휠체어에 발이라도 끼이면 큰일이었다. 두산은 해피를 얼른 치우고,
“쌤통이다.”
하며 해피를 놀렸다.
“참, 어머님은 어떻게 지내셔?”
경황이 없어서 여태 생각 못 했는데 내려 달라고 낑낑대는 해피를 보자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잘 지내겠지.”
“무슨 말이 그러니? 해피두 주셨는데.”
“해피는 내가 그 아줌마한테 직접 가서 받아 왔다.”
“그랬어? 난 또 어머님이 전해 주신 줄 알았지.”
두산은 어머니 얘기를 더 하지 않았다. 늘 엄마 엄마 하며 친근하게 말하던 두산의 입에서는 엄마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두산아, 난 어르신이 어머님껜 그 말씀 안 했음 좋겠는데….”
망설이다 수일이 먼저 운을 뗐다. 지난번에 어르신이 알아서 어머니께 말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마음이 영 좋질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평생 모신 시아버지가 자기 남편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머니가 받으실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터였다. 아니,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나 있을까.
생판 남인 수일도 처음 두산에게 그 얘길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랐다. 사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고 사람을 고용한단 말인가?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게 부모였고, 살인을 저질러도 피해자를 욕하는 게 부모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자 장남을 그렇게 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게 사실이면 제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불쌍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두산은 확신에 차 있었고 수일은 그 길로 목을 맸다.
자기가 이럴진대 하물며 어머니는 오죽할까 싶었다. 설령 어르신에게 사과받는다고 한들, 어머니나 저나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수일은 마음이라도 편해졌지만.
입원한 다음 날, 문홍길이란 남자가 수일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왔을 땐 제 눈을 의심했다. 초로의 신사는 문일준의 아버지였다. 언뜻 문일준이 떠오르긴 했지만 인상 자체가 달랐다. 세상 누구보다 어질고 온화해 보이는 남자는 수일의 곁에 앉아 역시나 부드러운 음성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덤덤히 털어놓았다.
왜 자기들이 소중한 자식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수일이 너는 잘 알지 않냐며 회한의 눈물을 보였다.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저승에 가서 만나더라도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도 했다.
다만, 문홍길도 어르신이 수일에게 그 일을 뒤집어씌우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사고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만 알았다고 했다. 수일이 일로 부산에 내려간 줄도, 어르신네 나이트에서 일하게 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두산이가 찾아왔을 때 나두 놀랬어요. 일이 그렇게 된 줄도 몰랐구. 영호야 며느리한테 당연히 말 못 하지, 손주들한테는 으찌 말할까. 나두 내 마누라 눈감는 날까지 속였는데, 안 그래요? 그래두 누명을 씌우면 안 되지 싶었어요. 그렇게 하면 일준이나 태섭이하고 다를 게 뭐야? 그 애들 악행 막겠다구 우리 손으루 자식새끼 숨통 끊어 놨는데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딴 사람은 몰라두 우린 그러면 안 돼. 영호 그 자식이 나이가 들더니 미련해졌어요. 참한 며느리 수발 받구 손자들에 둘러싸여 편하게 사니까 머리가 이상해졌나 봐. 내가 대신 사과하리다. 이 못난 늙은이들을 용서해 주세요.’
그의 말은 이제껏 들은 어떤 말보다 수일에게 위로가 되었다. 문홍길은 어르신을 대신해서 수일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문일준과 백태섭을 대신해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했다.
자신의 아들 때문에 사고가 났는데 백영호만 믿고 모른 척한 것도 미안해했다. 그땐 그저 자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미련하긴 저도 마찬가지였다고 고백했다.
두산을 제외하고 그 일에 연루된 사람에게 수일이 직접 사과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때 수일은 울지 않았다.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었다. 정말 고마웠다. 수일을 사람 취급해 줘서 감사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우리 엄마도 알아야 할 일이고, 할배도 편하게 죽고 싶으면 털어놔야지.”
두산은 매정하게 말했다.
뒤돌아보았지만, 해가 눈부셔 두산의 표정이 보이질 않았다. 다만, 느낌으로 두산이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일이 없던 석 달 사이 두산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진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어르신과도 사이가 나빠졌을까 봐 제가 다 불안했다.
수일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앞으로 둘이서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두산아.”
이름을 부르자, 두산은 몸을 구부려 수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언제 화가 났냐는 듯 누구보다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와? 들어가까?”
“아니. 우리 한 바퀴만 더 돌자. 해피도 걸으라구 해.”
“어. 알았다.”
두산은 시장바구니에서 해피를 꺼내 땅에 내려놓았다. 해피가 좋다고 저만치 앞서갔다.
“해피 목에 방울 달아 주자.”
“에이, 머할라꼬? 방울 달면 억수로 시끄러울 낀데.”
“그래두. 어딨는지 알고 싶어서. 걱정되잖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는 해피를 보며 수일은 말했다. 걱정된다는 수일의 말을 듣자마자 두산이 큰소리로 해피를 불렀다.
“해피! 일로 온나. 느그 엄마가 걱정한다 아이가.”
“나 아빤데.”
“지랄. 해피, 퍼뜩 안 오나?”
해피는 두 번째 부름에 쪼르륵 달려왔다. 헥헥대면서 주위를 뱅그르르 돌았다. 재롱을 부렸다. 수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살랑, 바람이 불었다. 봄바람 같은 따스한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혹독하기만 했던 겨울바람이 아니어서 기분이 묘했다. 수일은 손을 들어 눈부신 해를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반짝이는 해와 살랑이는 바람이 드나들었다. 제게도 이런 날이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몰래 허벅지를 꼬집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수일은 두산이 밀어 주는 휠체어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