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81)

수일은 가끔, 그 뜨겁던 8월 사직 야구장 꿈을 꿨다.

‘아니, 뭘 이렇게 빨리 가니?’

‘빨리는. 늦었다.’

‘5시 경기라며?’

‘퍼뜩 가자.’

두산은 수일의 팔을 잡아끌었다. 숙소 앞에 현수의 검은색 자가용이 대기하고 있었다.

‘머 이래 늦게 나오노?’

‘미안 미안. 출발!’

두산은 수일을 짐짝처럼 뒷좌석에 던지고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다. 문도 채 닫기 전에 차가 출발했다. 운전석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는 덕규였다.

경기는 다섯 시부터 시작인데 3시 반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짜증을 냈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수일은 입을 다물었다. 벌써 경기장은 반 이상이 차 있었다. 빙그레 원정 팀 구역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야구에 미쳐 있었다. 주말 3연전 중 어제 그제 경기를 모두 진 롯데 팬들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뭘 벼르는지 몰랐지만, 어쨌든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어느새 술이 올라 얼굴이 벌건 아저씨들이 여럿 보였고 혼자 소주병 나발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며칠 전 비가 온 뒤로 한여름 무더위가 찾아왔다. 낮 기온도 30도를 웃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햇빛을 받은 의자는 엉덩이를 델 정도로 뜨거웠다.

덕규가 수일과 두산, 현수가 앉을 자리에 신문지를 깔아 주었다. 나란히 앉지 않고 바로 뒷좌석에 자리를 잡은 덕규는 부지런히 형님들을 보필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준비해 온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착착 꺼내 배급했다.

‘박동희 잘하지?’

선발 투수가 박동희라는 말에 수일이 물었다. 잘은 모르지만 선동렬 선수만큼 높은 계약금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었다.

‘잘하지. 잘하는데 마가 낐는지 올해는 출전도 을마 몬 했다.’

‘슬럼프 왔나 부다.’

‘행님, 그기 아이고예, 강뱅처리가 괘씸하다꼬 안 써줐다 아입니까. 그라믄 병 걸맀는데 병 고치야지 야구하게 생깄나?’

뒤에 앉은 덕규가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 네.’

수일은 두산과 자기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얘기하는 덕규를 피해 몸을 옆으로 뺐다. 그 바람에 옆에 앉은 현수와 몸이 닿아 흠칫 놀랐다.

‘진짜로 안타까바서 그랍니다. 물론 박동희 없이도 3등을 하고 있지만, 병 낫고 나서부터 썼으면 2등도 했을 끼라예.’

‘그 새끼, 드럽게 시끄럽네.’

두산은 손바닥으로 덕규의 얼굴을 뒤로 밀어 버렸다.

‘어우, 왜 그래?’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말을 하는데 저러는 건 너무 하다 싶어 팔을 꼬집었더니 두산이 뚱한 표정으로 수일을 돌아보았다. 자기 잘못은 생각도 못 하고 덕규 편을 들었다고 삐졌다. 하여간 애가 왜 저러나 몰랐다.

두산과 현수 사이에 껴 있는 것도 모자라 뒤에 앉은 덕규까지 이야기에 가세하는 바람에 수일은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물론 주위에 앉은 모두가 그랬다. 노래도 응원도 뭐든 소리가 크고 행동이 컸다.

수일은 두산이 만들어 준 신문지 모자를 쓰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오징어를 뜯었다. 두산은 1분에 한 번씩 고개를 숙여 수일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씨익 웃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하는 짓이 싱겁기 그지없었다.

‘양귀비.’

‘뭐래.’

‘광녀이.’

‘하지 마.’

‘미친개이.’

‘어우, 그만 좀 해.’

수일은 두산이 덕규에게 했던 것처럼 손바닥으로 두산의 얼굴을 밀어 버렸다. 두산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큰 소리로 웃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수일의 볼에 쪽 하고 뽀뽀했다. 그러자 현수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행님! 사람 많은 데서 애정행각 하다 걸리면 감옥 갑니다, 감옥.’

현수가 큰 소리로 놀렸다. 뽀뽀 한 번에 풍기문란죄까지 들먹이는 통에 안 그래도 더위에 달아오른 얼굴이 불에 타는 듯 화끈거렸다.

그렇게 떠들고 웃다가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롯데자이언츠는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1회에 2점을 냈다. 사람들은 사직 구장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지르고 환호했다. 말 그대로 땅이 울렸다. 그날 처음 봤음이 분명한 아저씨들이 서로 껴안고 뽀뽀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수일은 얼결에 일어나 박수를 쳤고 두산은 수일의 몸이 으스러지도록 힘차게 껴안았다. 수일을 겨드랑이에 낀 채 현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덕규와도 하이파이브를 했다. 수일도 두산의 강요에 못 이겨 하이파이브를 했다.

넷은 새 맥주 캔을 따서 건배를 했다. 마치 우승이라도 한 양 기쁨에 젖었다. 수일은 사람들이 이토록 야구에 열정적인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래도 맥주는 시원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 야구장의 열기와 한여름의 열기가 수일을 녹일 듯 뜨거웠다.

***

수일은 하필 발목을 접질렸다.

공사판에서 일한 지 한 달 하고도 딱 2주가 되던 어제, 자재를 나르다가 바닥에 놓인 장애물을 보지 못했다. 올해 들어 최고로 추운 날이었다. 안 그래도 꽁꽁 언 손과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아서 힘들었는데 짊어진 자재까지 무거웠다. 이대로 엎어지면 정말 어떻게 될 것 같아 더 큰 사고를 막으려고 뒤늦게 장애물을 피하다 발목이 나가 버렸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공사장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인부들의 갈등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일요일부터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한 한파가 절정에 이르렀다. 추위에 곱은 손을 후후 불며 수일은 보온병에 담아 온 보리차를 한 잔 마셨다. 그 옆, 부 씨는 홀로 키운 딸이 타 줬다는 꿀물을 아껴 마시고 있었다.

“윤 씨는 요새도 여관에서 지내? 돈 아깝게 그러지 말구 더 추워지기 전에 방 구해.”

“안 그래두 지난주에 방 구했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전에 살았다던 대림동?”

“아뇨. 신월동이요.”

수일은 눈 수술 후 대림동에 방을 구했었다. 부산에 내려가기 전에 살았던 곳은 몇 달 사이에 가격을 올려받고 있어서 다른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눈이 다 나을 때까지 쉬었다. 라면이나 빵을 사러 나갈 때면 동네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것들을 주워 왔다.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10월 말, 공사장 일자리는 충분한지 알아보기 위해 인력 사무소에 들렀다 집에 온 수일은 대문 앞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어찌 알고 경식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경식이라 차마 쫓아낼 수가 없었다. 둘은 근처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셨다.

‘수일아, 우린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째 달라진 게 하나두 없냐구. 씨팔. 인생 존나 불공평해. 그지?’

술이 된 경식이 허망한 눈빛으로 말했다. 번듯한 외모에 양복을 차려입은 경식은 싸구려 양복만큼이나 싸구려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바지를 입고 있던 수일도 함께 웃었다. 자신에게 인생이 한 번이라도 공평했었던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다, 수일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일주일 뒤 공사장을 다니느라 힘들어하던 수일에게 황 씨가 찾아왔다. 쌀 20kg 한 포대와 라면 두 박스를 방으로 넣어 주었다. 싫다고 거절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가 버렸다. 이번엔 괘씸했다. 황 씨가 준 건 두산이 준 거나 다름없었다. 경식에게 집을 알려 준 것도 황 씨겠지 싶어 화가 났다. 제발 내버려 두라고 그렇게 애원했건만, 수일의 말은 말 같지도 않은가 보았다.

수일은 황 씨에게 받은 걸 주인집에 줘 버리고 그길로 거처를 옮겼다. 공사장 근처에 여관을 잡고 이틀에 한 번씩 옮겨 다녔다. 여관은 따뜻하고 편하긴 했지만 계속 생활하기엔 돈이 빠듯했다. 하루 일당이 하루 여관비였고, 오랜만에 하는 노가다가 힘들어 매일 약을 달고 살았더니 약값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지난 주말 대림동보다 저렴한 신월동에 방을 구했다. 같은 모양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새벽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는 수일은 자주 집을 헷갈렸다.

“신월동? 거긴 비행기 소음이 심하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괜찮아요. 그렇게 비행기가 많이 다니지두 않구요.”

“그럼 다행이구. 뭐 솔직헌 말루 우리야 베개만 닿으면 꼬꾸라지니까, 비행기가 아니라 땡끄가 지나가도 못 들을걸. 안 그래?”

부 씨는 남은 꿀물을 한입에 털어 넣고 그만 일어나자 했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수일은 마시다 만 보리차를 도로 보온병에 붓고 안전모를 챙겨 들었다. 높은 곳에 있으니 더 추웠다. 사방이 뚫린 아파트 공사장을 겨울바람이 험한 소리를 내며 휘감았다.

그나마 경기가 좋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뉴스에선 아파트값이 하락하네 마네 난리였지만 비수기인 겨울임에도 공사장에는 일거리가 넘쳐 났다. 도로 공사도 많았지만 그건 지방으로 가야 해서 수일은 아파트나 빌딩 공사장에서 주로 일했다.

몸이 많이 약해진 탓에 첫 일 주일은 너무 힘들어서 토하기까지 했었다. 어떻게든 버티다 보니 이젠 할 만했다.

부 씨는 노가다 판에서 일한 지 30년이나 된 베테랑이었다. 여기 오기 전 제법 규모가 큰 공사장 작업반장이었으나, 사고로 사람이 여럿 죽는 바람에 쫓겨났다고 들었다.

기술이 없는 수일은 현장에서 자재 운반과 청소를 도맡아 했다. 힘을 많이 써야 하는 데다 무거운 자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기술 없는 건 부 씨도 마찬가지라 둘은 어느새 한 조를 이뤄 움직였다. 그렇다고 애써 친한 척하거나 일부러 붙어 다니진 않았다.

이곳에 일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즈음, 현장에는 수일이 살인자란 소문이 돌았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두산의 어머니가 사람을 붙이는 대신 아예 나쁜 소문을 내 버렸던 모양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누군 개의치 않았고 누군 대놓고 욕을 했으며 누군 무섭다고 아예 말도 붙이지 않았다.

동질감을 느낀 전과자들이 다가오는 건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것만 빼면 여러모로 편했다. 억지로 혼자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혼자 지낼 수 있었다.

부 씨는 수일의 소문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상하게 이런 사람들이 더 불편했다. 그들 대부분 수일을 측은하게 여겼고 절이나 교회를 권했다. 그도 아니면 사이비 종교를 전파했다.

다행히 부 씨는 그런 남자는 아니었다. 그저 몇 마디 툭툭 던지고 밥 먹을 때나 쉬는 시간에 챙겨 줄 뿐 이래라저래라하지 않았다. 가끔 딸이 싸 준 거라며 간식거리를 나눠 주기도 했고.

“근데 윤 씨, 거 손하구 얼굴 튼 데 바세린이라도 좀 바르지? 잘생긴 사람이 왜 그렇게 얼굴을 막 쓰나, 그래.”

웬만해선 잔소리하지 않는 부 씨가 세 번째 같은 소릴 했다. 수일은 다 터서 쩍쩍 갈라지고 피가 엉겨 붙은 손등을 보며 목장갑을 꼈다.

“괜찮아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손등만큼이나 트고 갈라진 창백한 얼굴엔 실핏줄까지 터져 엉망이었다.

수일은 자기 자신에게 돈 한 푼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 로션도 아까워서 아예 사지 않았다. 비누도 제일 싸구려를 썼고, 속옷을 제외하면 모두 남들이 버린 옷들을 주워 입었다. 지금 입고 있는 스웨터도 불우 이웃 돕기 바자회에서 공짜로 얻은 거였다. 머리카락도 직접 잘랐다. 삐뚤빼뚤 길이도 모양도 엉망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냄새나지 않게 깨끗하게 씻고 다녔는데, 최근 노숙자로 자주 오해받는 걸 보면 남들 눈엔 행색이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밤무대에서 반짝이던 수일은 석 달 만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으, 염병. 뭐가 이리 추워?”

부 씨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두툼한 옷을 입고 장갑을 껴도 한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온몸이 아플 정도로 추웠다.

골조 작업이 끝난 7층은 바라시가 한창이었다. 수일과 부 씨는 다른 인부들과 함께 해체된 유로폼을 날라 한곳에 쌓아 두는 일을 했다. 추위에 인부들의 움직임은 굼떴고 여기저기서 욕을 뱉고 신음했다. 그 와중에 누가 손을 다쳐서 피가 흘렀다.

“재수 없게. 씹할.”

누군 침을 뱉으며 다친 사람을 욕했다. 수일은 그들 틈에 섞여 묵묵히 제 몫의 일을 했다.

수일은 새벽 5시면 인력 사무소 앞에서 출발하는 트럭에 몸을 싣고 공사장으로 향했다. 아침 운동 및 조회를 마치고 7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저녁 7시, 일과가 끝나면 줄을 서서 일당을 받았고 다시 트럭에 몸을 싣고 인력 사무소로 돌아갔다.

그 앞에서 신월동 달세방까지 걸어서 15분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밤 9시 반이 조금 넘었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했다. 잡생각 할 시간이 없었다.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 저녁은 고사하고 씻고 자기도 바빴다. 부 씨 말대로 베개만 대면 잠이 들었다. 비행기가 다닐 시간엔 대부분 공사장에 있어서 한 번도 비행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외로울 틈도 없었다. 아니, 없다고 믿었다.

“거 뭐 무겁다고 둘이서 날라? 얼른 끝내게 하나씩 해, 하나씩.”

작업반장의 호령이 떨어졌다. 둘씩 셋씩 짝을 이뤄 자재를 나르던 인부들이 투덜대며 떨어졌다. 수일도 어쩔 수 없이 부 씨와 헤어졌다. 등에 짊어지는 방법이 제일 수월해서 허리를 잔뜩 수그리고 유로폼 하나를 짊어졌다. 세 번인가 네 번째 나르던 때에 수일은 장애물을 피하려다 발목을 접질렸다.

수일이 자빠지자마자 부 씨가 달려왔다.

“어이! 윤 씨! 괜찮아?”

수일은 아픈 발목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너무 아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야! 내가 치우라고 몇 번을 말했어?”

“…죄송합니다.”

어제 들어온 어린 친구 하나가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 사달을 냈다.

“청소 중요하다고 내가 말 했어, 안 했어? 그렇게 하기 싫음 때려치워!”

잔소리로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작업반장은 장애물을 치우는 청년을 발로 걷어찼다. 청년과 반장이 싸움이 붙었다.

씨발. 수일은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속으로 욕을 했다. 정말 아팠다.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3시간만 더 일하면 하루 일당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 가 버리면 반밖에 받지 못했다. 수일은 아프지 않은 척하며 억지로 일어났다.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고통을 참았다.

그렇게 저녁 7시 마감까지 겨우 버틴 수일은 일당 3만 원을 받았다. 인력 사무소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 어찌나 힘들던지 평소 15분 걸리던 거리를 1시간 만에 도착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방은 냉골이었다. 이대로 자고 싶었지만 공사장에서 먹었던 점심이 유일한 끼니여서 배가 너무 고팠다. 수일은 담요를 둘둘 말고 가스버너에 냄비를 올려 물을 끓였다. 마지막 남은 라면 1/4 조각에 라면 수프를 모두 털어 넣고 면이 익어 갈 때쯤 식은 보리밥 한 숟가락을 넣었다. 라면 죽, 수일의 주식이었다. 평생 질릴 만큼 먹어서 라면의 ‘ㄹ’자도 보기 싫었는데 다시 이 생활로 돌아왔다. 자업자득이었다.

라면 죽을 먹으며 라디오를 들었다. 크리스마스 얘기가 한창이었다. 수일은 나이트에서 일하던 때가 떠올랐다. 손님을 끌기 위해 연말이면 으레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 두었고, 꼬마전구에 불을 환하게 밝혔었다.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귀여운 캐롤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자신도 매년 크리스마스 때 무대 위에서 캐롤을 불렀었는데. 수일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고 나니 맛없던 밥이 그나마 먹을 만했고, 시큰거리는 발목도 괜찮은 것 같았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할머니, 이 노래 아버지는 영어로 불렀었는데, 그지? 왜 가사가 기억이 안 나지?”

수일은 혼잣말을 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방에서 두 사람과 함께 있다고 상상했다. 이런 냉골의 손바닥만 한 방이 아니라 두산과 함께 지냈던 해가 잘 드는 넓은 거실에 있다고 상상했다.

부잣집 사모님처럼 차려입은 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수일을 위해 과일을 깎아 주고, 아버지는 답지 않게 신문을 펼쳐 든 채 혀를 차며 기사를 읽고 있었다.

상상만으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진짜로 있었던 일이면 좋았을 텐데…근데 할머니, 우린 왜 그렇게 가난했을까? 할머니하구 아버지하구 둘이서 돈을 벌었는데두 우린 가난했잖아. 나 지금 혼자 벌어도 먹고살 만한데. 나 때문인가? 아… 나 때문이네.”

마지막 밥을 입에 떠넣으며 수일은 힘없이 웃었다.

먹은 그릇들을 치우는 중에도 발이 시큰거렸다. 그래도 아까보단 통증이 조금 가신 것 같아서 크게 다친 건 아닌가 보다 하고 안도했다. 밥도 먹었겠다, 기운 난 김에 씻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수일은 비명을 질렀다. 말도 못 하게 아팠다. 그대로 주저앉아 일단 부어오른 발목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마이신과 진통제를 먹었다.

이런 때일수록 뜨끈한 방에 누워야 하는데, 도저히 연탄을 때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수일은 낡은 침낭에 머리끝까지 몸을 밀어 넣고 그 위에 얇은 담요를 덮었다.

밤새 끙끙 앓았다. 겨우 잠이 들었을 무렵 자명종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수일은 일을 나가려고 힘겹게 일어났지만, 일은커녕 당장 병원에 가야 할 판이었다. 발목은 평소보다 두 배는 부풀어 있었고 손만 대도 아팠다. 몸에 열도 올랐다. 수일은 다시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식은땀에 흠뻑 젖어 눈을 떴을 땐 한낮이었다. 발목은 여전히 퉁퉁 부었지만 그래도 약을 먹었다고 고통은 덜했다. 빈속에 독한 약을 또 먹으려니 구역질이 났다. 뭐든 먹으려고 집 안을 뒤졌지만 보리밥 한 숟갈이 다였다. 하필 라면이 떨어졌다.

수일은 대충 옷을 껴입고 한쪽 발로 껑충껑충 뛰어서 집에서 조금 떨어진 슈퍼로 갔다. 어제만큼이나 추웠다. 볼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찼다. 수일은 슈퍼에서 라면 세 개를 집고 크림빵 하나를 몇 번이나 집었다 놓았다 했다. 이 다리라면 못해도 일주일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크림빵을 내려놓았다.

올 때는 몰랐는데, 약발이 떨어졌는지 지독하게 아팠다. 어제부터 이를 악물어서 이젠 턱까지 아려 왔다. 다들 먹고살기 바쁜 동네라 골목엔 인적이 없었다.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청할 수 없어서 수일은 굼벵이처럼 기어갔다.

겨우 다다른 달세방 대문이 오늘처럼 반가운 적이 없었다. 수일은 담벼락에 기대고 일어나 라면 세 개가 든 검은 봉지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수일의 방 연탄 아궁이 근처에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누구세요? 할머니세요?”

이 시간엔 주인 할머니 말곤 대부분 일을 나가서 집에 사람이 없었다. 있어도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때 흰색으로 변한 연탄이 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산산조각이 났다.

“씨발, 이거 우짜는 기고?”

“누구세요?”

수일은 다시 물었다.

설마,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었다. 또 시작이었다. 이제 겨우 두산의 부재에 익숙해지나 했는데 몸이 조금 아프다고 어김없이 헛것을 보고 듣는 나약한 자신이 싫었다. 무슨 미련이 남아 이러는 걸까.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 목소리도 바닥에 널브러진 연탄재도 자신이 불러들인 환영이라 생각하자 짜증이 일었다.

공연히 바닥을 노려보다가 수일은 다리를 끌고 아궁이 쪽으로 향했다. 검은 코트를 입은 커다란 남자가 어색한 손놀림으로 연탄집게에 연탄을 꽂고 있었다.

“너 거기서 뭐 하니?”

“왔나? 이거 우짜는 기고? 내는 영 안 된다.”

두산은 연탄집게를 까딱까딱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수일은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야. 환영도 환청도 아니었다. 진짜 두산이었다. 모질게 끊어 냈던 남자가 수일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꼬박 석 달만이었다. 

두산의 얼굴을 보자 조금 전까지 일었던 짜증이 가시고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한 수일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두산이 반갑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정말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다면 잊고 살고 싶었고 그러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죽도록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타나서 잘 사는 사람을 흔들고 지랄인지 몰랐다.

수일은 마음에도 없는 욕을 하며 멍하니 두산을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뭘 어째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제 몸이 성했다면 반응이 달랐을까? 헤어질 때 그랬던 것처럼 매정하게 쳐냈을까? 하지만 지금 수일에겐 예전처럼 두산을 밀어낼 기운도 열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귀찮고 피곤했다. 다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았고 험한 바닥을 기어 오느라 온몸이 욱신거렸다. 차가운 골방이라도 좋으니 얼른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누이고 싶었다. 그래도 두산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잘 차려입은 두산을 보자, 수일은 자신의 몰골이 부끄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 더러워진 옷을 털며 두산에게 다가갔다. 두산의 시선이 수일에게 잠깐 머물렀다. 눈썹을 꿈틀대긴 했지만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걸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빨랑 내려놔. 멀쩡한 연탄 부수지 말구.”

일부러 툴툴대며 두산의 손에서 연탄집게를 뺏어 들었다. 하필 제일 초라하고 아플 때 두산이 찾아와서 싫었다. 수일은 두산을 외면하며 아궁이를 살폈다.

“언제 왔어?”

“방금. 이거 억수로 어렵네.”

“니가 안 해 봐서 그렇지, 뭐.”

어제 종일 불을 때지 않아 아궁이는 차게 식어 있었다. 새로 불을 붙여야 했다. 구차한 살림살이를 두산에게 내보이는 게 창피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느끼는 창피함은 발목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삽으루 연탄재 좀 넣어 봐.”

“어. 알았다.”

두산은 산산이 조각난 연탄재를 삽으로 퍼서 아궁이 안에 넣었다. 흰 연탄재가 바람에 날리면서 검은색 코트에 붙었다. 비싸 보이는데 괜히 옷 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수일은 두산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됐어.”

돌로 눌러둔 신문지 여러 장을 구겨서 성냥불을 붙인 다음 아궁이에 던져 넣고 번개탄을 올렸다. 번개탄 비닐이 타면서 벌겋게 불을 뿜어냈다. 연기가 심하게 피어올라 몸을 뒤로 빼다가 그만 다리가 아파서 주저앉을 뻔했다. 휘청거리는 수일을 두산이 재빨리 뒤에서 안았다.

잠깐이지만 어찌나 따뜻하고 포근한지 수일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마음 약해지고 싶지 않아서 얼른 두산을 물리치고 잘 타오르는 번개탄 위에 새 연탄을 올렸다. 구멍을 잘 맞추자 새 연탄에도 서서히 빨간 불이 올라왔다. 연탄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에헤이, 이라다가 까스중독으로 다 죽겠네.”

두산은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연탄이 어떻게 타는지 구경했다.

“옷 버려. 뒤루 가 있어.”

“개안타.”

수일은 새 연탄 하나를 더 올린 다음 구멍을 맞췄다. 이제 된 것 같아서 아궁이 뚜껑을 닫았다.

“다 됐나?”

“응.”

응, 이란 말에 두산이 코트를 벗어 수일의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치워. 괜히 옷 버리지 말구.”

수일은 짜증을 냈다. 순간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두산이 수일을 들쳐 멨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당황했지만 반항할 기운조차 없어서 몇 번 발버둥 치다 말았다. 사실 발버둥 치다가 발목의 통증에 기절할 뻔했다. 만사가 귀찮았다. 수일은 그저 입을 꼭 다물고 꼼짝하지 않았다.

“거기 아냐. 저쪽으루 가야지.”

“이쪽?”

“아니, 왼쪽.”

“씨발, 먼 길이 이래 복잡하노.”

입 다물고 있던 수일은 길을 헤매는 게 하도 답답해서 두산의 어깨에 매달린 채 방향을 알려 주었다. 두산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도로로 나갔다. 은색 그랜저 한 대가 서 있었다. 운전석에서 황 씨가 내려서 뒷문을 열었다. 두산은 수일을 운전석 바로 뒤에 내려 주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재빨리 뛰어 반대편 문으로 차에 올라탔다.

“오랜만입니다.”

황 씨는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수일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수일은 그냥 고개만 까딱할 뿐이었다.

“발목이 말이 아이다. 큰 데로 가입시다”

“걱정도 팔짜다. 내 알아서 가께.”

차 안은 히터 열기로 따뜻했다. 한파에 얼어붙은 몸이 조금씩 녹았다. 두산은 수일의 손과 얼굴을 살피며 씨발, 하고 낮게 신음했다.

수일은 두산이 그러거나 말거나 창밖만 쳐다보았다. 밤새 끙끙 앓느라 잠을 뒤척인 몸이 온기에 나른해졌다.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병원 안이었고 수일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엑스레이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석 달 전, 눈 수술을 받을 때 홀로 앉았던 휠체어 생각이 나서 수일은 울컥 설움이 솟구쳤다. 갑자기 화가 났다.

두산을 따라 나온 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왜 깨달음은 늘 한 발자국 늦나 몰랐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수일이 바로 그 짝이었다.

두산이야 이러고 가면 마음이라도 편하겠지만, 수일은 감정의 후폭풍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너무 힘들었다. 평생 사람을 그리워했던 수일은 경식을 만난 이후에도 3일을 내내 울었다. 차라리 아무도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나름 잘 버티고 있었는데 두산이 나타나는 바람에 수일은 다시 혹독한 외로움을 골방에서 이겨 내야 했다. 참혹한 감정을 견뎌야 했다.

수일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픈 다리까지 짚고서 성큼성큼 걸었다.

“씨발, 니 미칬나?”

두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수일을 뒤에서 안아 들어 올렸다.

“하지 마, 개새끼야!”

수일은 미친놈처럼 고함을 치며 반항했다. 이젠 발목이 아픈 줄도 몰랐다. 몸의 고통은 수일이 느끼는 외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디찬 골방에서 죽은 할머니나 아버지의 환영을 불러들이고 마주하는 그 심정을 두산은 알까. 아마 평생 모를 터였다.

“다리 쫌 고치고 나서 얘기하자!”

“싫어! 씨발 새꺄!”

병원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삐쩍 애빈기 목청은 좋네.”

“넌 뭐든 쉽지? 다 장난 같지?”

“씨발, 니 맘때로 생각해라.”

두산은 수일을 안아 든 채 휠체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황 씨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우 이웃 돕고 싶으면 딴 사람 찾아, 제발!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넌 왜 내 말은 안 듣니, 왜? 왜, 너까지 나 무시하냐구!!”

수일이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두산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휠체어에 앉았다. 황 씨가 휠체어를 뒤에서 잡고 섰고, 두산이 수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일은 두산도 황 씨도 꼴 보기 싫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발악했다.

“내가 죽을까? 너 보는 앞에서 죽어야 속이 편하겠니?”

“하이고, 씨발. 드럽게 말 많네.”

두산은 피식 웃었다.

“어이, 윤수일이. 행님! 내 쫌 바라.”

“싫다고 개새끼야! 싫어, 너 꼴도… 보기, 흑….”

두산의 커다란 손이 수일의 얼굴로 다가왔다. 수일은 고개를 피했다. 정말 싫었다. 손을 피하자 두산이 인상을 썼다.

“씨발, 니가 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하, 그새 욕만 늘었네.”

“윤수일 씨, 들어오세요.”

엑스레이실에서 방사선사가 나와 수일을 호명했다. 두산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 휠체어를 끌고 엑스레이실로 들어갔다.

“흐으윽.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수일은 울면서 방사선사가 시키는 대로 촬영용 침대에 올라갔다. 두산이 수일이 올라가도록 도와주었다. 방사선사는 다 큰 성인 남자가 울고 있으니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 차례 엑스레이를 촬영했다.

발끝을 위로 올리는 자세로 찍고,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씩 눕혀서 찍었다. 촬영이 끝나고 수일은 다시 휠체어에 앉았다. 더럽고 낡은 스웨터 팔등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두산은 그런 수일을 데리고 정형외과 대기실로 향했다. 평일 낮 시간대라 노인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깁스를 하고 있었다. 깁스 부위는 다양했다.

황 씨가 언제 샀는지 수일에게 따뜻한 베지밀 병을 내밀었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내 주소.”

두산이 수일의 몫으로 나온 병을 받아 뚜껑을 땄다. 목이 탔는지 그걸 반이나 들이켰다. 그러더니 수일의 입에 갖다 대 주었다. 울어서 목이 마른 수일도 한 모금 마셨다.

두산은 손수건을 꺼내 수일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 주었다.

“한 모금 더.”

수일은 얌전히 베지밀을 받아 마셨다. 이러고 가야 두산의 마음이 편하다면 시키는 대로 해 주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야 늘 하던 대로 또 혼자 견디면 되었다.

“자, 딱 한 모금만 더 마시자.”

두산은 남은 베지밀을 모두 수일에게 마시게 했다. 다 마시고 나자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일은 멀리 빈 의자에 시선을 맞추었다.

“수일아. 이제 우리 안 헤어지도 된다.”

달래듯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수일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제 안 헤어지도 된다. 다리 검사만 하고 같이 부산 내리 가자.”

이번에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얼른 검사를 마치고 집에 갔으면 했다. 지금쯤이면 연탄불이 방 안을 덥히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피곤했다. 가서 푹 자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라면을 그대로 마당에 두고 온 게 생각이 났다. 누군가 오다가다 그 안에 든 걸 보고 그대로 가져갔을 확률이 높았다.

다들 사는 게 어려웠다. 그러니 마당에서 발견한 라면 세 개가 웬 떡인가 싶을 터였다. 수일은 그게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적어도 열흘은 넘게 먹을 수 있는 건데. 애가 탔다.

두산의 손이 수일의 턱을 잡고 제 쪽을 보게 했다.

“내 말 들었나?”

수일은 멍하니 두산을 바라보았다.

두산은 얼굴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보기 좋았다. 추운 겨울임에도 태양을 잘 받은 얼굴은 건강한 갈색빛을 띠었고 면도를 해서 멀끔했다. 눈빛은 그때나 지금이나 날카로웠다. 날카롭다가도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 소년처럼 인상이 변했다. 두산이 뭐가 좋다고 웃었다.

“내 말 들었나?”

“응.”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응.”

수일은 무슨 뜻인지 몰랐다. 피곤해서 그냥 ‘응’이라고 답하고 다시 시선을 먼 의자에 두었다. 두산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수일은 싫었다.

“나 한심한 거 아니까 내 앞에서 한숨 쉬지 마.”

“쯧. 성질머리하고는.”

노인네처럼 혀를 찬 두산은 수일의 휠체어를 잡고 대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침묵으로 시간을 때웠다. 황 씨는 어느새 옆에 앉은 할머니와 친해져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눈물이 마르자 수일은 얼굴이 따가워졌다. 손도 댈 수가 없었다.

두산은 커다란 등을 둥글게 말고 앉아 가끔 수일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씨발, 씨발. 어떤 때는 조금 크게, 어떤 때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욕을 했다.

간호사의 호명에 두산이 수일의 휠체어를 밀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수일을 침대에 앉게 하고 발목 상태를 확인했다. 심각하다는 말이 바로 나왔다.

“언제 다치셨어요?”

“…어제요.”

“어우, 엄청 부었다. 엑스레이상으로 뼈에는 이상이 없는데요, 이 정도로 부은 걸 봐선 인대 파열이 의심되니까 초음파 검사를 해 보죠.”

간호사는 기다렸다는 듯 수일의 발목에 차가운 젤을 발랐다. 의사가 재빨리 초음파 기계로 발목을 살폈다.

“아유, 3도 염좌는 되겠는데?”

수일은 이름도 모르는 발목 인대 두 개가 파열되었다. 재수가 오지게도 없었다.

“수술해야 합니까? 이 사람 얼마 전에 전신마취했는데.”

두산이 걱정스러운 투로 수일을 대신해 물었다.

“경비 인대가 끊어진 게 아니어서 수술까진 할 필요 없을 것 같구요. 음, 한 달에서 길게는 6주 정도 깁스하고 재활하면서 보존 치료 하는 걸 권해 드립니다.”

수술을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수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라믄 당장 깁스 해주이소.”

두산의 말에 의사가 웃었다.

“성격도 급하시네.”

푸근한 인상의 의사는 부은 발목에 얼음찜질과 염증 주사 처치를 먼저 하고 나서 깁스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수일은 발바닥과 종아리 부근까지 통깁스를 했다. 두산은 뭐가 신나는지 매직을 빌려 와 깁스 위에 낙서를 했다. 두산♡수일. 웃기지도 않았다. 황 씨도 어이없어했다.

“밥 묵자. 배고프다.”

“맘대루 해.”

두산은 병원 주차장까지 휠체어로 이동하고 수일을 안아 그랜저에 태웠다.

몸보신하자며 황 씨는 삼계탕집으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경식과 삼겹살을 먹은 뒤로 처음 먹는 고기였다. 수일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체면을 차릴 새도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팠고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끼니에 눈이 멀었다.

두산이나 황 씨가 저를 보는 줄도 모르고 그 뜨거운 닭을 손으로 잡아 다리를 뜯었다. 고기고 밥이고 일단 입 안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위가 쪼그라들어 금세 배가 불렀다.

예전엔 한 마리도 거뜬했는데. 음식이 아까워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수일은 두 사람이 먹는 걸 흘끔거리며 어떻게든 더 배에 넣어 보려고 애썼다. 그러다 이러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해서 죽을 것 같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저 이제 보내 주세요. 치료도 받았고 깁스도 했으니까 나을 때까지 약도 잘 먹겠습니다.”

수일은 대상을 정하지 않고 말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두 사람 앞에서 못 볼 꼴을 다 보였으니 수일에게도 집에 갈 권리가 있었다. 동정심이든 뭐든 좋으니까 그만 보내 줬으면 했다.

“짐도 챙기야 되고 하니까 그만 가입시다.”

“내 반도 몬 묵었는데.”

“난중에 사 드이소.”

두산은 아쉬워하는 황 씨에게 핀잔을 주었다. 수일은 남은 삼계탕을 싸 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자기가 먹다 남긴 것만 챙겨도 최소 이틀은 먹을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그랜저에 몸을 실었다.

두산은 수일을 업고 골목을 돌아 돌아 달세방으로 향했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운 냄새가 났다. 두산의 등에 업혔던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고 보면 두산도 참 성격이 좋았다. 나이도 많고 볼 것도 없는 미친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살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예전에는 가끔 화라도 냈는데 두산은 이제 화도 내지 않았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수일은 알 수가 없었다.

“두산아.”

“어?”

“제발 부탁인데, 나 이제 찾아오지 마.”

“어. 알았다.”

두산은 쉽게 그러겠다고 답했다.

“고마워.”

수일은 두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고마워. 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수일을 업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간 두산은 ‘아, 씨발!’ 했다. 타다닥, 뭐가 빠른 발걸음으로 장판을 뛰는 소리가 났다. 쥔가? 수일은 깜짝 놀라 두산의 등에서 내려왔다.

희고 작은 덩어리가 천지도 모르고 방 안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하, 씨발. 이거를 까뭇네. 내 미칬는 갑다.”

두산은 머리를 긁적였다.

수일은 멍하니 흰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덩어리는 수일의 발목에 붙어서 놀다가 또 두산의 발목에 붙었다. 꼬리를 마구 흔들며 좁디좁은 방을 돌아다녔다. 수일은 너무 놀라 온몸이 굳어 버렸다. 두산을 올려다보자 ‘해피’ 했다.

“해피?”

“어. 해피. 내가 델꼬 왔다.”

수일은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해피가 뛰어다니고 있는 노란 장판은 여기저기 뜯기고 낡아서 형편이 없었다. 곰팡이가 핀 벽은 절반 이상이 새카맸다. 공기에서조차 곰팡내가 날 정도였다.

“왜 해피를 이런 데 데려와? 왜??”

수일은 울었다. 하고 많은 곳 중에 하필 이런 누추한 곳에 해피를 데려와서 화가 났다. 연탄불이 있어 냉골은 면했지만, 그래도 방은 춥고 가난했다. 저 어린 강아지가 지내기엔 한없이 열악한 곳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두산은 몇 시간 동안 해피를 이곳에 버려두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니가 여 있으니까 데려왔지.”

“미쳤어?”

“씨발, 내가 키우자꼬 했나? 니가 이름 지아주고 키우고 싶다 케서 델꼬 온 거 아이가!”

두산이 되레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해피는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고 연신 짧은 다리로 방 안을 빙빙 돌았다.

“해피하구 부산으로 돌아가. 꼴도 보기 싫어!”

“그래? 내도 꼴 보기 싫다. 안 그래도 개새끼 귀찮았는데 잘됐네. 버리자.”

“왜 버려? 니가 데려왔으니까 니가 키워야지.”

“씨발, 내가 와 키우노? 니가 키아야지!”

수일은 서러웠다. 등을 구부려 방바닥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왜 버려? 왜? 니가 키워야지…. 니가 데려왔으니까 니가 키워야지.”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두산은 무슨 정신으로 해피를 이곳에 데려왔을까? 두산만 다녀가도 수일은 뒷감당이 되질 않는데, 해피를 본 순간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제가 꿈꿨던 행복한 미래 속 해피는 이런 누추한 곳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두산이 제 꿈을 망가트려 버려서 수일은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하이고, 씨발.”

두산이 수일의 앞에 주저앉더니 수일의 마른 등 위에 제 얼굴을 묻었다.

“수일아, 내말 몬 들었나? 같이 부산 가자.”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수일을 달랬다.

“…자꾸 나한테 왜 그런 말 해? 나 못 가는 거 다 알면서.”

“갈 수 있다. 내 니 데리러 온기다.”

“…싫어…. 흑.”

“싫기는. 가야지. 니가 우리 아버지 그래 만든 거 아이다. 그라니까 이제 돌아가자.”

두산은 커다란 손으로 수일의 등을 쓸어 주었다.

수일은 두산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번에 사고였다고 말해 주었던 것처럼 지금도 같은 뜻으로 하는 말이라 여겼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두산이 수일을 일으켜 품에 안았다. 커다랗고 따뜻한 품속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두 팔로 두산의 허리를 두르고 얼굴을 묻었다. 할 수 있는 한 크게 숨을 쉬며 두산의 냄새를 맡았다.

“해피 버리지 마. 니가 나 대신 키워 줘.”

“머라카노? 같이 키아야지.”

두산은 있는 힘껏 수일을 끌어안았다.

“니가 우리 아버지 그래 만든 거 아이다. 우리 할배가 그랬다. 할배가 그랬고, 그거를 니한테 뒤집어씌운 기다.”

수일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니가 그란 거 아이고 우리 할배가 그랬다꼬.”

두산을 밀치고 고개를 들었다. 눈물 때문에 따가운 얼굴을 아무렇게나 닦으며 두산을 바라보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수일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냐.”

“할배가 그랬고, 그거를 들키면 우리 식구들 볼 낯짝이 읍따고 생각해서 여태 숨기고 있었다.”

“아냐. 내가 그랬어.”

“할배가 사람을 시키서 우리 아버지 그래 만들었다. 원래는 직일라꼬 했는데, 일이 꼬이가 저리 대삤다. 근데 니는 크게 다치서 뒤에 우찌 됐는가 기억도 몬 하제, 사람들도 다 니가 그랬다꼬 생각하제. 그라이까 고마 니한테 다 뒤집어 씌았다 카드라.”

수일은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만 달싹이다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쉴 뿐이었다.

“미안타, 수일아. 내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참말로 미안타.”

“하아, 하….”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지난 몇 달간 겪었던 그 지옥 같은 하루하루가 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 때문이었다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수일은 두산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들 제게 거짓말만 했다. 애초에 상엽이 그랬고, 두산이 그랬고, 두산의 어머니가 그랬으며 어르신이 그랬다. 모두 제게 거짓말만 했다. 그래도 되는 사람인 양 너무도 쉽게 수일을 속였다.

두산은 손을 뻗었지만 수일은 차마 그 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앙! 앙!”

작고 앙증맞은 목소리로 해피가 짖었다. 해피는 누추한 이 방도 심각한 이 상황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수일을 올려다보았다. 저 천진한 눈을 보자 수일은 저도 모르게 툭 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두산이 무릎으로 기어왔다. 가까이 다가와 수일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쪽쪽, 몇 번이고 뽀뽀를 했다. 입을 맞추고 입술을 비볐다. 뜨거운 숨결이 다 터서 갈라지고 실핏줄이 터진 볼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내하고 살자, 수일아. 우리 해피하고 셋이서 행복하게 살자.”

수일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말이 이 상황에 어울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두산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일부러 속이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두산의 가족에게 천치 취급을 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구도 윤수일이란 남자를 존중해 주지 않았다. 10년 전 그때처럼, 그 사람들처럼 수일을 싸구려 일회용 취급했다. 이번에도 쓰고 버려졌고, 두산이 그런 저를 주우러 왔다.

수일은 헛웃음을 웃었다. 이 모든 일이 코미디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