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81)

수일은 어둑한 새벽길을 걸어서 병원으로 향했다. 어지러웠다. 어제도 점심 한 끼 말곤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게다가 터진 입술이 보기 싫게 부어올랐고 멍까지 들었다. 울기도 많이 울어서 눈도 뻑뻑했다. 하필 왜 수술 전날 울고 지랄인지 몰랐다. 중요한 수술을 쓸모없는 감정 때문에 망쳐 버렸을까 봐 병원 가는 내내 수일은 마음을 졸였다.

수술 담당 간호사가 수일의 상태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어쩌다가….”

“그게, 넘어져서요.”

수일은 덤덤하게 변명했다.

간호사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상관없었다. 지시에 따라 귀중품은 사물함에 보관하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안압이 조금 높긴 했지만 수술을 못 할 정돈 아니라고 했다.

돌봐 줄 사람 없는 수일은 혼자 이동식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았다. 링거가 몸에 도는 동안 10분마다 한 번씩 총 세 번 산동제를 넣어 주어야 했다. 그사이 간호사는 수일의 체온과 혈압을 체크했다. 점점 앞이 뿌예졌고, 속이 울렁거렸다. 시야가 또렷하지 못하니 울렁거림은 갈수록 심해졌다. 추위마저 느껴졌다.

새벽의 병원은 한산했다. 앞도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산동제 때문에 더욱 어지러워서 수일은 간호사가 준비해 준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침대에 올라가 눕자 팔에 꽂은 관을 통해 다른 약이 들어왔다. 잠깐의 메스꺼움과 함께 잠이 쏟아졌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주위가 시끄러웠다. 눈이 가려진 채라 소리가 더 예민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윤수일 씨. 주무시면 안 돼요. 최대한 깨어 있으세요.”

“…으….”

입에 추라도 달았나. 수일은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수술은 잘 되었는지, 혹여 부작용은 없는지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머리도 무거웠다. 게다가 수술한 눈이 소름 끼치게 시리고 아팠다. 절로 눈물이 흘렀다.

까무룩 정신이 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했다. 뜨거운 것이 이마에 닿았다.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은 수일의 이마 어딘가를 쓸더니 옅은 한숨을 쉬었다.

“간호사님, 이 사람 이마에 실밥 좀 풀어 주이소.”

익숙한 목소리. 두산이었다. 수일은 자신이 불러낸 환각에 아주 잠깐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 있는 것보단 환청이라도 두산의 목소리를 듣는 게 훨씬 나았다. 커다란 손이 수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두산이 늘 하던 대로 수일에게 수고했다고 토닥였다. 눈이 시려서 자꾸 눈물이 났다.

그만 보내 줘야지. 제 욕심에 멀쩡한 사람의 환영을 붙잡고 있는 건 못 할 짓이었다. 외로움 같은 사소한 감정은 이겨 내야 했다.

“…가… 그만, 가… 너 안 보구, 싶어.”

수일은 간신히 입을 떼고 말을 했다. 다행히 목소리는 어제처럼 크지 않았다. 마취제에 취해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자신에게만 겨우 들릴 정도였다. 아무도 미친놈으론 보지 않을 터였다.

가라고, 수일은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잠시 후 따끔거리는 느낌이 났다. 주사를 놓은 건가. 정신이 없어서 어디가 따끔거리는지도 수일은 알 수가 없었다. 사람 소리가 자꾸 들렸다. 귀가 웅웅 울렸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깼을 때 또 두산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안 가니? …제발, 가. 니가 가야 내가… 살아. 나 좀 살자, 두산아.”

수일은 애원했다. 제발 정신이 멀쩡해졌으면 했다.

두산을 보내 주지 못하는 제가 미련스럽고 한심했다. 버리고 온 주제에, 매달리는 걸 떼 놓고 온 주제에 무슨 욕심이 이리 많은지 몰랐다. 두산이 자기 같은 건 잊고 잘 먹고 잘 살기를 빌어 줘도 모자랄 판에 구질구질하게 허상이나 불러내고 있었다. 자기 같은 사람이 이러는 건 천벌 받을 짓이었다. 이미 받았지만. 수일은 속으로 웃었다.

“하이고, 씨발.”

두산이 드디어 포기하려나 보았다.

“…우리 다신 보지 말자.”

수일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잠이 들었다.

“윤수일 환자, 그만 일어나세요. 앉아서 정신 좀 차리셔야죠. 곧 선생님 회진 돌러 오실 거예요.”

수일이 있는 곳은 회복실이었다. 입원이 필요 없는 환자들이나 병실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주로 머물렀다. 다들 가족이 있었지만 수일만 혼자였다. 수술하지 않은 왼쪽 눈만 뜨고 억지로 주변을 살폈다. 두산의 허깨비 따위 이젠 없었다. 다행이었다.

오른쪽 눈에선 자꾸 피눈물이 흘렀다. 간호사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여분의 거즈를 수일의 손에 들려 주었다.

“눈은 절대 누르지 마시구요, 이렇게 흐르는 것만 닦아 주세요.”

수일은 거즈를 손에 쥐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등 밑에 무언가가 배겨서 손을 뻗으니 투명 비닐에 들어 있는 통장과 도장이 손에 잡혔다. 아까 사물함에 넣었는데 아니었나? 수일은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급히 허리춤에 통장을 숨겼다. 제 귀중한 재산이었다.

거울을 볼 수 없으니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느낌상 맞아서 부은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팠고 눈알이 빠질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어느새 꾸벅꾸벅 졸았다.

회진은 짧았다. 의사는 수술 부위에 붙어 있던 거즈를 떼 버렸다. 수술은 잘 되었고,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한 달 정도 지나면 시력이 회복될 거라 말했다.

간병인이 있냐고 물어서 수일은 그렇다고 거짓말했다.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가까이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으니 되도록 외부로 나가지 말고 화기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뿐이었다.

간호사 하나가 수일에게 주의 사항이 적힌 종이와 처방전을 안겼다. 일주일 뒤 수술 경과를 봐야 하니 오전 9시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약은 지하 1층, 병원 약국에서 받아 가라고 알렸다. 돈 걱정은 안 해도 되어서 정말 좋았다.

“저기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지금 너무 어지럽고 앞도 잘 안 보여서요.”

수일은 당장 나가라는 줄 알고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두어 시간 정돈 더 계셔도 괜찮아요. 물은 30분 후에 드시구요, 아까도 들으셨겠지만 일 주일가량 어지럽고 앞이 잘 안 보이실 거예요. 주의 사항 꼭 지켜주시구요, 그리구 세안이랑 목욕은 저희가 하라고 할 때까지 하시면 안 돼요. 가시기 전에 약 받는 거 잊지 마시구요.”

간호사는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말을 했다.

“네. 감사합니다.”

머리를 꾸벅 숙이자 어지러워 앞이 핑핑 돌았다. 토할 것 같았다. 수일은 침대에 기대 현기증을 잠재우려고 애썼다. 피가 눈물처럼 흘렀다. 아니, 눈물이 피가 되어 흘렀다. 오른쪽 눈이 너무 시려서 자꾸 눈물이 났다. 수일은 두 눈을 감고 있다가 꼭 뜨고 싶으면 왼쪽 눈만 떴다. 확인차 가끔 오른쪽 눈도 떠보았는데 의사 말대로 아예 보이지 않았다. 언제쯤 뚜렷한 형상을 볼 수 있을까. 수일은 조바심이 일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는데도 평생 이럴까 봐 두려웠다.

수일은 딱 한 시간 뒤에 일어나서 사물함으로 갔다. 옷을 갈아입고 통장도 잘 챙겼다. 이상했다. 통장이 두 개였다. 수일은 제 것이 확실한 것과 처음 보는 통장을 번갈아 보았다. 남의 걸 가져왔나 싶어 통장을 열어 보니 윤수일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생각을 깊게 하기엔 수일의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다. 그 잠깐 글씨를 보았다고 토할 것 같았다. 수일은 일단 모두 챙겼다. 벽을 짚어 가며 약국을 들러 병원 밖으로 나가는 동안 아무도 수일을 도와주지 않았다. 서럽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수일은 늘 혼자였으니까 이런 일쯤 익숙했다.

택시 승강장에 택시가 여러 대 서 있었다. 뒤에 있던 택시 기사 하나가 문을 열고 수일에게 다가왔다.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어디 가세요?”

서글서글한 말씨의 남자는 젊었다. 수일은 줄 선 순서와 상관없이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에 올랐다. 택시 안에서 깜빡 졸았다. 원래 기본 요금만큼만 타고 내리려고 했는데, 요금이 500원이나 더 나온 걸 봐선 골목까지 들어온 모양이었다.

자신이 여관 이름을 말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수일은 일단 택시 기사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올라갔다. 기사는 참 친절했다. 방 안까지 들어와 요와 이불을 펴 주고 수일을 눕혔다. 수일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자 딱 기본 요금만 받았다.

“제가 맘대로 골목으로 들어온 거라서요.”

“감사합니다, 기사님.”

방문이 닫히는 걸 보고 수일은 일어나 앉아 양은 주전자에서 물을 따랐다. 빈속이지만 약부터 먹었다. 자는 동안 여관 방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자기 방인지 옆 방인지 알 길이 없었다. 수일은 자고 또 잤다.

두산이 꿈에 나타났다. 외롭고 아픈 수일을 꼭 안고 보듬어 주었다.

“니는 와 이리 고집불통이고?”

투덜거리는 소리마저 정겨웠다. 두산은 수일의 이마와 머리에 뽀뽀를 해 주었다. 다 터지고 부어오른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너무 달콤한 꿈이었다.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수일은 또 두산을 밀어냈다. 그만 가라고, 나는 괜찮다고 일렀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도 한 것 같았다. 꿈에도 나타나지 말고, 환영으로도 환청으로도 제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꿈속에서도 모질게 밀어냈다. 수일은 울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두산을 보냈다.

***

두산은 이 고집스러운 남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는 대충 알지만, 수일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적당히 넘어가고 적당히 속아 줄 줄 몰랐다. 남에겐 누구보다 너그러우면서 자신에겐 지나치게 엄격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였다.

사랑의 크기가 달라서일까. 그 음성처럼 수일은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그저 정에 고파서 잘해 주니 마음을 열었다가 아버지 때문에 마음을 닫은 걸까. 수일이 저를 사랑하건 말건 두산은 상관없었다. 그냥 곁에 있어만 주면 되는데, 수일은 그걸 못 견뎌 했다.

두산은 수술 후 덩그러니 혼자 누워 있는 수일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수술 때문에 부은 얼굴은 그렇다 치고 입술은 어쩌다 저 지경이 된 건지 욕이 절로 났다. 그래도 제 몸 하나 간수할 줄도 모르면서 큰 수술을 기어코 혼자 받았다.

예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올려 주다 꿰맨 자국을 발견했다. 언제 적 상천데 아직도 실밥을 풀지 않았다. 씨발, 이대로 두면 흉이 질 텐데.

“간호사님, 이 사람 이마에 실밥 좀 풀어 주이소.”

“그런 건 저희가 안 해요.”

대학 병원 간호사는 쌀쌀맞았다. 두산은 물어물어 실밥을 뽑아 줄 수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찾았다. 다행히 나이 지긋한 간호사가 친절하게 실밥을 뽑고 빨간약을 발라 주었다.

“이래 두면 흉 안 지겠습니까?”

실밥 자국이 희미하게 보이는 이마가 신경 쓰여 묻자, 간호사는 괜찮다고만 했다.

“씨발, 개안키는.”

두산은 구시렁대며 수일의 곁에 앉았다.

“윤수일 씨, 환자분! 이렇게 주무시면 안 돼요. 눈 뜨고 계셔야죠.”

간호사가 잠이 든 수일을 흔들었다. 수일은 으으, 하고 알 수 없는 신음을 뱉기만 할 뿐이었다. 잠깐 정신이 들었나 보았다. 힘겹게 왼쪽 눈을 뜨고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마취제에 취한 와중에도 수일은 두산에게 가라고 했다.

“…가… 그만, 가…. 너 안 보구, 싶어.”

모기만 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뱉었다.

“왜 이렇게 안 가니? …제발, 가. 니가 가야 내가… 살아. 나 좀 살자, 두산아.”

“하이고, 씨발.”

수일은 부탁했다. 피눈물까지 흘려 가며 두산에게 부탁했다.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자기가 없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이 그렇게 가슴 아팠다. 언제는 둘이서 죽고 못 살았는데 이젠 꼴도 보기 싫다고 말했다.

“씨발. 죽겠네.”

“…우리 다신 보지 말자.”

잔인한 말을 하는 수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두산은 망부석처럼 앉아서 수일을 보고 또 봤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저만 보면 피어나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새 더 마른 것 같았다. 두산은 뼈가 불거진 앙상한 수일의 손을 잡았다. 이제 겨우 9월인데도 잡은 손이 얼음장 같았다.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안 보고 싶단 말은 차라리 나았다. 수일의 입에서 나온 ‘나 좀 살자’라는 말엔 두산도 속수무책이었다. 오죽하면 저런 말을 할까 싶어서 더는 곁에 머물 수가 없었다.

두산은 양복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통장과 도장이 든 비닐 커버를 하나 꺼냈다. 돈 한 푼 안 주고 보낸 할배가 야속해서 직접 받아 낸 돈이었다. 수일의 등 아래에 가져온 통장과 도장을 밀어 넣었다. 지금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경제적인 것 말곤 없었다.

지독하게 저를 떼어 놓으려는 수일이 못내 서운했지만, 돈이라도 주고 싶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다름 아닌 백태섭이자 할배였고 어머니였다. 모두 두산의 가족이었다. 그런데도 고통은 온전히 수일의 몫이었다. 두산이라도 수일을 책임지고 싶었다. 적어도 경제적으로 안락하게 살게 하고 싶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움이 북받쳤다.

“내 갑니다, 수일이 행님. 돈 이자뿌지 말고 실컷 쓰면서 사십시오.”

두산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매정하게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황 씨에게 택시를 하나 부탁했다. 혼자 벽을 짚고 약국을 돌아다니는 수일을 보는 게 가슴 아팠다. 가서 잡아 주고 싶었지만, 수일이 경기라도 할까 봐 참았다.

의사 말이 최대한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안압이 오르는 건 수술 경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 안 되었고, 무거운 걸 들거나 눈에 힘을 줄 만한 일도 만들지 말아야 했다.

잘못되는 경우 재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두산은 피가 나도록 입 안 점막을 잘근잘근 씹었다. 저 마른 남자가 힘겹게 병원을 오가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칼에 찔리는 것보다 더 아팠다. 씨발, 차라리 누가 저를 찔러 주었으면 했다.

“씨발, 개새끼야. 니가 하는 일이 머꼬?”

자책했다. 개새끼, 씹새끼, 두산은 온갖 새끼들을 붙여 가며 자기를 욕했다.

두산은 수일이 택시에 오르는 걸 보았다. 바로 뒤에 황 씨 차가 섰다. 황 씨가 택시를 따라갔다.

“알아서 잘 하겠지예?”

“걱정하지 마라. 내 밑에서 일한 지는 2년뿌이 안 됐는데 5, 6년 일한 아들보다 낫다.”

두산은 인상을 쓰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임상엽이는 우짜고 있습니까?”

“우짜기는. 수술비 댄다꼬 즈그 부모가 고생이지. 병원에서는 최소 서너 달은 입원하라꼬 하는데 돈 때문에 최대한 빨리 나갈라꼬 기를 쓴다 카드라. 돈은 벌어야 되니까 부모들 일하러 간 사이에 여동생이 간간이 들리서 밥 챙기주고 하는 갑대.”

택시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병원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이나 떨어진 곳이었고 골목은 더 깊었다. 속이 터졌다. 그 새벽 여길 걸어서 병원으로 갔을 생각에 화가 났다.

“강제로라도 차에 태아서 병원 델따주든가 하지 그걸 걸어가게 둤습니까?”

엄한 황 씨에게 두산은 화를 냈다.

“제발 쫌 내비두라 카는데 내가 우짜노? 니가 몰라서 그란다.”

“머를?”

“됐다 마.”

“먼 말을 하다 맙니까?”

“하다 말기는. 됐다꼬. 내도 자꾸 보이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양반이다. 저 양반이. 니도 안다 아이가.”

황 씨는 애매하게 말을 끊었다. 어제 다른 걸 본 것 같은데 말을 안 했다. 입이 저 모양 저 꼴이 된 이유가 분명 있을텐데. 두산은 인상만 썼다.

“그 씨발 새끼는 더 생각나는 거 없답니까?”

“헛소리만 찍찍 해싸트라. 내가 녹음한 거 차에 있으니까 내리 가는 길에 함 들어바라.”

“예. 계속 압박 쫌 해주이소.”

“오야. 여는 걱정 말고 니는 니 앞가림이나 해라.”

여관 앞에 택시가 섰다. 황 씨 밑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가 수일을 부축해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관에서 나온 남자는 두산이 탄 차 쪽으로 걸어왔다. 황 씨가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상태는 우떻노?”

“차 안에선 내내 주무셨구요, 지금도 거의 비몽사몽이에요.”

“고마 방에만 놓고 나온 거는 아이제?”

“저를 뭘루 보세요? 이불 깔아 드렸고 눕는 것까지 보고 나왔어요.”

“그래 잘 했다. 방 안에 묵을 꺼는 쫌 있드나?”

“아뇨. 아무것두 없든데요?”

“가서 죽 하나 사고, 오렌지 주스에 주전부리 쫌 사온나.”

황 씨는 남자에게 돈을 쥐여 주었다. 두산은 차에서 내렸다.

“어어. 니 어데 가노?”

두산은 황씨의 부름은 무시하고 성큼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카운터 앞에 서자 작은 창문이 열렸다. 여관 주인인 남자가 TV를 보면서 ‘대실이요? 숙박이요?’ 하고 물었다.

“저 201호에 묵고 있는 남자 있지예.”

“그런데요?”

“수술을 해 가지고 몸이 쪼매 안 좋습니다. 밖에 나돌아 댕기지도 몬 하고예.”

여관 주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두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시선은 여전히 TV를 향해 있었다. 두산은 지갑에서 10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 내밀었다.

“10만 원은 사장님 하시고예, 나머지 돈으로 저 양반 우짜는가 들러 주시고, 밥하고 청소 좀 알아서 잘 챙기주이소.”

순간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돈을 받아 든 입꼬리가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손님을 쳐다보지 않는 건 습관 같았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두산은 카운터를 손바닥으로 두 번 쳤다. 허리를 굽혀 여관 주인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여 감시하는 사람 있을 깁니다. 돈만 빼 묵고 아무것도 안 해주면 아시지예? 우찌 되는지.”

낮게 깔린 목소리로 협박했다. 여관 주인은 그제야 두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예….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받은 게 있는데 당연히 해 드려야죠.”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두산은 씨익 웃어 보이고 2층으로 올랐다. 수일의 방은 계단 바로 앞이었다.

“씨발롬이, 하고 많은 방 중에 계단 앞이 머꼬?”

도로 내려가 따지려다가 눈이 불편한 수일에겐 차라리 나은 방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두산은 답지 않게 문 앞에서 서성였다. 잠시 후, 황 씨가 부리는 남자가 검은 봉지를 양손에 들고 나타났다. 두산이 눈짓하자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으로 쉽게 방을 들락거렸다. 씨발, 서울이 얼마나 무서운 덴데 문도 안 잠그고 있었다. 하여간 몸조심할 줄을 몰랐다.

“지금 주무시는데요?”

남자는 두산의 눈치를 살피며 작게 속삭였다. 까딱 고개를 숙이고 이번엔 두산이 들어갔다. 윤수일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사이 약을 먹었는지 빈 약봉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빈속에 약을 먹은 수일이 처량해서 두산은 짜증이 치밀었다.

수일은 수술한 오른쪽 눈을 다칠세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왼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고개를 삐뚜름히 한 채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옅은 피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두산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수일이 움찔거렸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두산은 수일의 옆에 모로 누웠다. 내려다보던 얼굴과 사뭇 달랐다. 아무리 얼굴이 상해도 제 눈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두산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수일을 품 안에 안았다.

“니는 와 이리 고집불통이고?”

한숨 섞인 투정을 했다. 저는 이렇게 좋은데, 좋아 죽겠는데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산은 속이 문드러졌다. 제정신에는 이러지 못할 사이가 된 게 환장할 정도로 싫었다. 두산은 수일의 이마에 머리에 뽀뽀를 했다. 다 터져서 볼품없는 입술에도 입을 맞췄다. 볼에도 눈두덩에도 예쁜 콧날에도 입술을 비볐다. 꽃같이 예쁜 윤수일에게 입을 맞췄다.

“수일아, 니 억수로 예쁘다.”

평온하던 수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 두산아. 나 이제 괜찮으니까 그만 가….”

“씨발. 니는 와 자꾸 가라고만 하노?”

“니가 가야 내가 살아….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수일의 눈에서 또 피눈물이 흘렀다. 두산을 대신해서 울어 주는 것 같았다.

“니 목소리두 듣고 싶지 않아. 니 얼굴두… 보고 싶지 않아.”

끝끝내 모진 말로 두산을 밀어냈다.

두산은 울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이 서러워서 울었다. 그래도 수일이 밉지 않았다. 절대 미워할 수 없었다. 두산은 수일을 사랑했다. 수일은 두산에게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이었다.

마지막으로 수일을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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