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81)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수일은 다섯 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덩치들도 덩달아 일찍 깼다. 미안했다. 택시를 타고 가도 되지만, 수일이 중간에 마음을 바꿀까 봐 그러는지 끝까지 함께했다. 덩치들은 차표를 사 주고 서울행 버스를 같이 기다려 주었다.

평일 새벽 터미널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부산에 내려왔을 때 보다 수일의 짐은 무거웠다. 거기엔 값비싼 양복과 구두도 있었고 새로 산 무대복과 앨범도 들어 있었다. 짐이 조금 추가되었지만 수일의 인생에 추가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몰라서 수일은 출입구 쪽을 계속 흘끔거렸다. 두산이 나타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염치없이 기다렸다. 설령 얼굴을 본다 한들 고작 건강하란 소리밖에 안 할 거면서 그 말이라도 전해 주고 싶었다. 참 이기적이란 생각에 수일은 씁쓸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덩치 하나가 다가와 수일의 곁에 있던 덩치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행님, 의원님이 잠깐 보자십니다.”

수일은 세 명의 덩치에 둘러싸여 주차장으로 향했다. 광택이 도는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덩치 하나가 뒷문을 열어 주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문이 닫혔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내 다른 중요한 일 처리하느라꼬 니를 쫌 잡아둤다.”

그랬었구나. 수일은 어르신이 왜 자신을 잡아 두는지 몰라서 답답했었는데, 그냥 뒤로 밀린 거였다. 어르신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수일은 비싼 콘도에 머물게 하고 감시자를 둘이나 붙여 주길래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착각했었다. 피식 웃음이 샜다.

“서울 도착하면 바로 병원 가서 검사 맡아라.”

“네, 어르신. 감사합니다.”

“돈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고. 병원 오라는 날 꼬박꼬박 찾아가서 치료받고 약도 잘 챙기 묵으라.”

어르신은 곁에 앉은 수일을 쳐다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말했다.

“네.”

“다 잊고 새 출발 해라.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여기까지 말한 어르신은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시선은 앞을 향했다.

“내만 받는 전화다. 아침 7시엔 무조건 받을 수 있으이까 필요한 거 있으면 그 시간에 여기로 전화해라.”

“…감사합니다만, 필요할 일 없을 거 같습니다.”

수일은 명함을 사양했다.

“사람 일 아무도 모린다. 받아두라.”

“그래도 받지 않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악연은 끝내자고 하셨으니 이대로 끝내고 싶어요.”

“쯧. 고집하고는.”

어르신은 혀를 찼다. 혹여라도 받을까 싶어 기다리던 손을 잠시 후 거두었다.

“저기, 사모님께도 말씀 잘 전해 주세요. 저 약속 잘 지키면서 살겠다고 꼭 전해 주세요.”

“그래.”

“안녕히 계십시오.”

어르신의 시선이 처음으로 수일에게 잠깐 머물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을 달싹였지만 끝내 ‘잘 가라’는 흔한 말 한마디 뱉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뒷문이 열렸다. 수일은 쫓기듯 고급 세단에서 내려 다시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덩치에게 맡겨 둔 짐 가방을 받았다.

“행님, 조심히 올라가이소. 건강하시고예.”

잘해 준 것도 없는데 일주일가량 함께 지냈던 덩치가 서운한 얼굴을 했다.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수일은 허리를 숙여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서울행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섰다. 수일은 다시 한번 덩치들에게 고개를 까닥해 보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좀 전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앞에 그토록 기다리던 두산이 서 있었다. 처음엔 환영이라도 보는 건가 했다. 수일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정말 두산이었다.

멀끔하게 면도한 얼굴은 전보다 생기 넘쳐 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두산은 수일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덩치들은 가만 지켜보고만 있었다.

팔 하나 거리에 선 두산은 뚫어질 듯 수일을 쳐다보았다.

“가나?”

툭 던지듯 물었다.

“응.”

“하이고, 씨발.”

두산이 짧게 웃었다.

수일은 두산의 씨발이란 말이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듣고 있는데 벌써 그리웠다. 바보같이 웃었다.

“왜 왔어?”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다. 와 줘서 고마워. 속마음은 이럴진대 괜히 미련을 남길까 봐 말하진 못했다.

“니 우리 엄마한테 먼 말 들어서 이라나?”

“무슨 말?”

“모르니까 묻는다 아이가. 우리 엄마가 니한테 이상한 말 했나?”

확신하듯 묻는 표정이 날카로웠다.

“그런 거 아냐. 어머님 때문이 아니구, 내가 여기 있는 게 힘들어서 그래.”

“내 때문이가?”

“아니. 느네 아버지 때문이야.”

수일은 덤덤하게 답했다. 아버지란 말에 두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간을 구기며 ‘씨발’ 했다.

“어제 그 음성 그거는? 우리 엄마가 시킨 거 맞제?”

“아냐. 내가 남긴 거야. 니가 하도 나한테 미련 가지니까 그러지 말라구 남긴 거야.”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예전 같으면 바로 들켰을 텐데 지금 수일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너무 평온했다. 눈앞에 두산이 서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두산의 낮고 무심하다 못해 퉁명스럽기까지 한 말투를 듣고 갈 수 있어서 기뻤다.

“씨발! 그걸 내보고 믿으라꼬?”

“믿고 말고가 어딨어. 생각해 봐. 어머님이 연화를 어떻게 아시겠니? 당연히 내가 했지.”

두산은 헛웃음을 웃었다. 고개를 삐뚜름히 하고 사나운 눈으로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이틀 전, 연화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했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 수일에게 제일 아픈 이름이 거기 적혀 있었다. 수일이 뭐라고 어머니는 뒷조사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두산에게서 그를 떼 놓고 싶어 했다. 연화 이름을 보고도 수일은 두산을 만나게 해 달라고 무릎을 꿇었었다.

밸도 없는 새끼.

이제 와 원망하면 무엇하랴. 떠나는 마당이니 수일은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면 저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그러니 두산도 진실은 몰랐으면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

흔하디흔한 인사를 했다.

“어이, 윤수일이. 내 한 가지만 묻자.”

묻자 해 놓고, 두산은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일자로 꽉 다문 입술로 고집스레 수일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간신히 입을 뗐다.

“니 내 사랑하기는 했나? 내는 니 진짜로 사랑하는데 니는 우땠는데?”

수일은 웃었다. 드디어 두산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 삐삐 속 숫자가 아니라 두산의 입을 통해 퉁명한 말투로 직접 들었다. 물론 낭만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다. 두산이 제게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말하고도 쪽팔리는지 두산은 짧은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며 얼굴을 붉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늘이 무심하진 않구나. 제게만 가혹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숨 쉴 구멍은 만들어 주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두산은 간절한 눈빛으로 수일을 바라보았다.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이 아직까진 흔들림 없이 단단해 보였다. 곧 흐트러지겠지만.

“미안해, 두산아.”

수일은 두산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답했다. 두산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씨발!”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내한테 쪼끔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나? 개미 똥구멍만치라도 그런 마음이 없었냐꼬?”

묻는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일까 원망일까. 수일은 두산의 감정을 가늠해 보았다. 스물다섯. 누군 그 나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지만, 그래도 세상을 알기엔 여전히 어린 나이였다. 두산은 어렸다.

“니가 좋은 사람인 건 알아. 나한테도 잘해….”

“씨발!! 내가 그딴 거 물었나? 내 사랑한 적 있나 읍나??”

두산은 수일의 말을 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좀 전까지 사랑 고백으로 붉어진 얼굴은 다른 이유로 벌게졌다.

“미안해.”

수일은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이 흔들리면 두산은 더 흔들릴 테고 미련이 수일의 발목을 붙잡을 터였다. 끊어 내는 건 어른인 자신이 해야 했다. 두산에게 그런 일까지 맡기고 싶지 않았다.

“하이고, 씨발.”

두산은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수일을 보았다. 다시 땅을 한번 쳐다보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고개 숙인 저 모습이 마지막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차라리 뺨이라도 때리지. 주먹으로 얼굴이라도 치지. 이젠 무대에 설 일도 없어서 아무래도 괜찮은데. 수일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두산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멀쩡한 바닥을 운동화로 툭툭 쳐 댔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복잡해 보이던 얼굴이 다시 차분하고 평온해졌다. 아, 드디어 끊어 냈구나. 수일은 두산의 표정을 보고 단번에 알아챘다.

버스를 돌아보는 척하며 안도하는 동시에 슬픔을 삼켰다.

“나 가 봐야 해.”

“…….”

“잘 살아요. 두산 씨.”

수일은 장난스레 마지막 말을 뱉었다. ‘두산 씨’라고 했던 게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냉정해 보일 정도로 차분했던 표정이 ‘두산 씨’란 말에 다시 일그러졌다.

“내가 그래 싫나?”

평온했던 얼굴에 파도가 일었다. 차갑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고마 모른 척하고 살아줄 만치 좋은 기 한 개도 읍나? 누구는 돈만 보고도 살고, 누구는 밤일만 잘해도 사는데, 니는 내한테 그런 기 하나도 없드나?”

두산은 떨어지는 눈물을 대충 손등으로 닦아 냈다. 이제 보니 백두산은 울보였다. 수일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두산아, 너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냥 나하고 안 맞았을 뿐이지.”

잔인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라믄 전처럼 내하고 살자. 살다 보면 정도 들고 그라겠지. 여서 살기 싫으면 서울에 방 얻어서 거서 같이 살고.”

두산은 고집을 피웠다. 어린아이처럼 졸랐다. 두산의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상대가 하필 저였다. 수일은 그런 일이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벽창호였다.

“두산아, 이건 널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라믄 머가 문젠데??”

두산은 답답한지 발로 바닥을 굴렀다. 저 큰 남자가 수일을 어쩌지 못해서 안달을 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평생 어렵게 살았어. 남들 손가락질하는 직업으로 밥 벌어 먹구 살았구, 남들 밑에 엎드려서 짐승보다 못한 취급도 받았어.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두 내가 느네 할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게 있거든. 바보 같은 말로 들리겠지만 나 누구보다 착해. 진짜로 착하게 살았어. 그런 내가 딱 한 번 나쁜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니 아빠한테야. 근데, 그걸 무시하고 너하구 살면 내 인생은 뭐가 되니? 일생을 구질구질하게 살면서도 떳떳했던 이유가 그거 하나뿐이었는데, 너하구 내가 어떻게 살아.”

수일은 조곤조곤 말했다.

“우찌 살기는. 남들처럼 고마 살면 되지! 누군 죄 안 짓나?”

“두산아, 내 말뜻 정말 모르겠니? 나 널 보면 자꾸 니 아버지가 생각나. 사고 당시가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미칠 것 같애. 난 착한 사람인데, 그러지 않았던 그 한순간이 너 때문에 자꾸 떠올라서 괴로워. 괴로워서 죽을 것 같다구! 그런데도 나 데리고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 평생 고문하고 싶으면 데리구 살아. 죄책감으로 벌주고 싶은 거면 니 맘대로 해 봐, 어디.”

결국, 참다못한 수일이 소리쳤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산을 떨쳐 내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머니 말대로 악역은 수일 하나로 족했다. 마음에도 없는 협박을 했다.

“내가 말라 죽는 꼴 보고 싶으면, 그게 니 소원이면 그렇게 하라구!”

두산은 입을 닫았다. 더는 발을 구르지도 안달하지도 않았다.

“씨발!! 니 맘때로 해라. 근데 니는 와 그래 어럽게 사노? 내 돈 많은 거 알았고 우리 할배도 돈 많은 거 알았으면 돈이라도 받아내야지. 와 빈털터리로 떠나는데?”

“나 빈털터리로 떠나는 거 아냐. 어르신께 눈 수술 비용 전부 대 달라구 했어. 다 나을 때까지 치료비, 약값 모두 어르신이 내주실 거야. 그것만 해도 얼마니? 나 그렇게 순진하지 않아. 바보 아니라구.”

수일은 정색했다. 두산은 수일의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헛웃음을 웃다가 끝내 울었다. 씨발, 씨발.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욕이었다. 수일에게 다른 욕은 하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씨발’만 외쳤다.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우뚝 서서 팔등에 얼굴을 묻었다. 위로 올라가야 더 예쁜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뭐가 그리 슬퍼서 두산은 우는 걸까.

차마 달래 주지 못하고 수일은 뒤돌아서서 버스에 올랐다.

두산이 바닥에 주저앉는 게 보였다. 커다란 덩치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가여워 보였다. 수일은 두산이 보이지 않는 뒷좌석으로 가서 몸을 묻었다.

세 명의 승객과 수일이 탄 버스는 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그곳으로 수일은 올 때처럼 혼자 떠났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다. 수일은 울지 않았다.

두산은 수일을 태우고 떠나는 버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정하게 떠나는 수일이 야속했다. 잡지도 못하는 제가 한심했다.

“씨발롬아, 니가 그라고도 남자가? 좆 떼라.”

두산은 미친놈처럼 혼잣말을 하고 웃었다.

씨발, 첫사랑이 허무하게 끝났다. 미련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구질구질하게 떠난 사람을 물고 늘어지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윤수일에게 욕이나 하고 겁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수일을 보는 순간 두산은 한없이 나약해졌다. 연민이나 동정 따위가 아니었다. 맞고 산 과거를 알아서 못 때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산은 수일을 사랑했다. 진심으로 사랑해서 만지는 것조차 아까웠다. 하물며 어떻게 손찌검을 할까. 자기와 사는 게 고문이라는 남자를 어떻게 강제할까.

“씨발, 씨발. 씨발.”

마지막까지 수일은 착해 빠지기만 했다. 고작 눈 수술 비용을 받았다고 정색하는 윤수일 때문에 아팠다. 자긴 순진하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윤수일이 천치 같아 보였다. 착하게 사는 게 뭐라고 그게 유일한 자랑이자 삶의 버팀목이었다는 수일에게 두산은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 믿음을 박살 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음성이라도 진심이었으면 했다. 어머니가 써 준 게 아니라 수일의 진심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 터였다.

수일에게 연화라는 여자가 유일한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고, 두산을 그저 이용하기만 했었다는 말이 진심이길 빌었다. 두산은 그저 돈이 좋아 붙어 있었을 뿐이라는 말만 없었다면 믿었을지도 몰랐다. 속아 줄 수도 있었다.

두산은 속이 뒤틀렸다. 분명 수일에겐 아픈 과거일 그 이름마저 어머니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이 저를 괴롭혔다. 그런 짓을 저지른 어머니가 역겨웠다.

쪽팔린 줄도 모르고 주저앉아 울었다.

“씨발년. 착한 게 먼 대수라꼬. 바보 천치 같은 기. 어흑. 씨발.”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쭈그려 앉아 엉엉 소리 내 우니 구경거리라도 난 양 사람들이 수군댔다. 할배가 부리는 덩치들도 보고 있을 텐데, 두산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대가리는 하는 일도 없으면서 왜 제 목에 붙어 있나 몰랐다.

두산은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그다음 숫자는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나 쳤던지 살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보고만 있던 덩치들이 달려와 두산을 말렸다. 덩치들을 밀어내려고 올린 주먹은 허공만 돌았다. 등신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끌려갔다. 실연 하나로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다.

할배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갔다. 집, 씨발. 좆같았다. 두산은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이 집에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마산댁과 함께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집에 온 형님들은 할배가 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산이 들어가자 두열이 눈을 크게 떴다.

“니 얼굴이 와 그라노? 맞았나?”

“쟈가 맞을 일이 있나. 어데 부닥쳤겠지.”

“아. 건 글타.”

맞았냐는 말을 듣고 어머니가 돌아보았다.

“엄마야! 두사이 니 와 이라노? 여 다 찢어짔네. 약 어데 갔노, 약.”

어머니가 호들갑을 떨자 마산댁이 하던 일을 멈추고 허둥대며 구급약 통을 찾으러 갔다. 어머니는 음식이 묻은 손으로 두산을 만지려다 아차 하며 손을 씻었다. 그사이 할배가 자리에 앉았다.

“아버님! 두사이 와 저랍니까?”

어머니는 할배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가증스러웠다.

“지가 저란 기다. 밥이나 묵자. 두사이 니도 서 있지 말고 퍼뜩 앉아라.”

“하여간 새끼. 성질머리하고는.”

어머니는 두산을 살짝 흘겨보며 식탁 위로 음식을 마저 날랐다.

두산이 방금 어디서 뭘 하다 온 줄 알면서도 할배나 어머니는 윤수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누구 때문에 자해했는지 뻔한데도 모른 척했다. 둘 다 속이 후련해 보였다.

형님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다 하다 자해까지 하냐며 잔소리를 했다. 뒤늦게 구급상자를 가져온 마산댁은 아무도 약에 관심이 없자 싱크대 위에 올려 두고 어머니를 도왔다. 식구 수대로 밥을 펐다.

아침상 준비가 모두 끝나자 어머니도 자리에 앉았다.

“두사나, 머하노? 퍼뜩 앉아라. 밥이나 묵자.”

두협이 정승처럼 서 있는 두산을 달랬다. 두산은 형님의 말은 무시하고 어머니를 향해 섰다. “김주옥 여사님.”

울어서 잠긴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졌다.

엄마가 아니라 김주옥 여사님이라 불린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두산을 쳐다보았다. 저 곱고 온화한 얼굴 뒤에 숨은 비열함을 알아 버려서 두산은 제 어머니가 그렇게 추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어머니 배 속에서 나고 자란 두산도 추하긴 매한가지였다. 이 추한 얼굴을 윤수일더러 보고 살라고 했으니 얼마나 끔찍했을까. 수일이 도망가는 것도 당연했다.

“내 지금부터 여사님 아들 안 할랍니다. 저 낳아 주시고 보듬어 주신 거 감사했는데예, 지금은 억수로 원망스럽습니다. 백태섭이, 그 산송장 끌어안고 천년만년 행복하게 사십시오. 그 새끼가 다 죽어 가는 윤수일이한테 침 뱉고 욕하고 그대로 토낀 거는 잊으신 거 같으니까 내 더 말 안 할랍니다. 고마 우아한 여사님한테 어울리게 공갈치면서 그렇게 사십시오. 건강 하이소.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산송장하고 백년해로 하지예. 안 그렇습니까? 그라고, 다음 생에는 모자의 인연으로는 만나지 맙시다. 내가 싫습니다.”

두산은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할배도 어머니도 형님들마저 한마디 하지 못했다.

두산은 저를 속이고 윤수일을 우롱한 할배에게도 복수할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은 쥐뿔도 없으니 한동안 빌붙어 살아야 하겠지만, 최대한 빨리 위로 올라가 할배를 끌어 내리리라 결심했다. 할배가 누려 온 모든 것들을 모조리 앗아 가리라 다짐했다. 오래 살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 두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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