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81)

어젠 그렇게 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화창하게 갰다. 수일은 여전히 갇혀 있었다. 4일째였다.

수일은 자신이 갇힌 이유를 몰랐다. 밖에서 감시하던 덩치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남의 눈에 띄면 들킬 위험이 있어서라고 했다. 누구에게 들키는 건지 얘기하지 않아도 뻔했다. 어르신은 두산이 수일을 찾는 걸 막고 있었다. 수일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덩치들이 알아서 밥을 챙겨 주었다. 배달 음식이었지만 절대 같은 식당에서 두 번 이상 주문하지 않았다. 이런 곳은 1층 로비에서 음식을 받아 와야 한다고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매번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었다. 성별도 연령도 다양해서 콘도에 묵고 있는 손님에게 부탁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수일은 덩치 둘과 함께 밥을 먹고 야식으로 통닭이나 족발도 먹었다. 이들은 제집인 양 편하게 생활했다. 출출하다며 라면도 자주 끓여 먹었는데, 수일은 라면이라면 질색이라 입에 대지 않았다.

둘 다 적당히 과묵하고 적당히 수다스러웠다. 어젠 셋이서 고스톱도 쳤다. 일부러 져 준 건지 수일이 세 번이나 이겨서 천오백 원을 땄다. 그 돈에 제 돈을 보태서 통닭을 한 마리씩 뜯었다. 겉으론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걱정도 없이 등 따시고 배가 불렀지만 수일은 불편했다. 덩치들과 함께 생활해서 불편한 게 아니라 자신이 아직도 여기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떠나도 진즉에 떠났어야 했는데 어르신은 왜 자기를 붙잡고 있나 몰랐다.

그냥 서울에 보내 주지. 그냥 두산을 만나게 해 주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게 해 주지. 수일은 굳이 계약 기간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두산을 하루라도 더 보려고 오성관에 출근하는 꾀를 쓴 건데 이렇게 갇혔으니 다 소용없게 되어 버렸다. 두산이 위약금까지 물어 준 마당에 박 사장이 수일을 찾을 리도 없었다. 답답했다.

그래도 수일은 떠나기 전 은아 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사 주고 싶었다. 삼락 형님의 안부도 물을 겸 변호사 사무실에 들러 영치금도 전달해야 했다. 어르신에게 전화 좀 걸어 달라고 부탁한 지 하루가 지났는데 영 대답이 시원찮았다.

아침을 먹고 깜빡깜빡 졸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일은 눈을 번쩍 뜨고 거실로 달려 나갔다. 덩치 하나가 통화 중이었다. 수일을 보자마자,

“으데 으데 간다꼬예?”

하고 물었다.

“어 그게, 자갈치 시장하구요, 변호사 사무실인데 위치는 여기예요.”

사무실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가 적힌 편지 봉투를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내밀었다. 지난번 탄원서를 부탁받았을 때 온 그 편지였다.

“그리고 저 남포동에도 가려구요. 무대복 만들어서 파는 곳이요.”

덩치는 상대방에게 수일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어르신은 아닌지 말투가 그리 깍듯하진 않았다.

“더 갈 데는 없지예?”

“네. 거기만 가면 돼요.”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다.

덩치들을 대동해야 했지만 오랜만의 외출이라 수일은 기뻤다. 바깥 기온이 얼마나 높은지 낮은지는 몰랐지만 일단 아직은 여름옷을 입어도 될 것 같았다. 두산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 단정한 여름 셔츠와 바지를 꺼내 입었다. 구두도 새 구두를 신었다. 길이 들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명색이 은아 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날인데 잘 보이고 싶어서 참았다.

코앞에 있는 해변은 거닐어 보지도 못하고 지나쳐 갔다. 수일은 제일 먼저 은행에 가서 50만 원을 뽑았다. 통장 잔고가 100만 원으로 줄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리고 남포동으로 달렸다. 파출소 뒷골목에서 무대복을 파는 의상실을 찾아 헤맸다. 형님이 입었던 비싼 무대복이 다 그곳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거라고 했었다.

골목은 왜 이리도 복잡하고 많은지, 덩치들이 아니었다면 수일은 온종일 걸려도 찾지 못했을 데에 의상실이 있었다.

수일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반짝이 의상을 사기로 했다. 딱 한 번밖에 못 입을 옷이었지만 마지막 무대에서 입어 보고 싶었다.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맞춤복은 너무 비싸서 기성복을 수선해서 입는 쪽을 택했다. 부자재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고, 반짝이는 정도도 달랐다. 의상실 사장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에서 제일 괜찮은 상품이라며 하나를 권했다. 붉은색이라 너무 화려해 보였다.

수일은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사장이 옷을 한번 흔들 때마다 붉은 보석이 쏟아지는 걸 눈앞에 보고 있으려니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우예 이래 키도 크고 잘생깄노? 누구 소개로 왔어예?”

여사장은 수일의 어깨너비와 팔 길이를 줄자로 재며 물었다.

“같이 일했던 형님이요.”

“행님 누구? 단골이면 내가 이름 싹 다 기억하는데. 함 말해 보이소.”

삼락 형님의 이름을 대려다 자기 고객이 살인자인 걸 누가 좋아할까 싶어서 말았다.

“사장님, 이거 오늘 중으로 되나요? 꼭 가지고 가야 해서요.”

수일은 말을 돌렸다.

“어디 보자. 한 서너 시간? 뭐 그 정도면 대충 될 거는 같은데, 꼼꼼하게는 몬 한다. 그래도 갖고 가실랍니까?”

“괜찮아요. 가져갈게요.”

“그라믄, 다음에 시간 날 때 다시 가져오이소. 내가 손 잘 봐 드리께예.”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일이 기뻐하자 여사장도 덩달아 기뻐했다.

25만인데 2만을 깎아 주었다. 그래도 비쌌다. 수일이 자신을 위해 쓴 돈 중에 제일 큰돈이었다.

“와, 이기 23만 원이나 한다꼬예? 이런 싸구려는 국제시장에서 만 원 안짝으로 살 수 있는데. ”

함께 가게로 들어왔던 덩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 아깝다는 소릴 열 번도 더 한 것 같았다.

덩치 눈엔 만 원짜리 싸구려로 보이겠지만 수일에겐 소중한 옷이었다. 무대에 올라가면 진가를 발휘할 화려한 무대복이었다. 평생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빚도 갚고 입에 풀칠도 했는데, 이제야 밤무대 모창 가수 윤수일을 위해 비싼 옷을 사 주었다.

수일은 뿌듯했다. 더없이 훌륭한 생일 선물이라 자화자찬했다.

남포동은 두산과의 추억이 제일 많은 곳이었다. 길거리를 함께 거닐고 싸우고 울고 웃었던 곳이었다. 저기로 올라가면 용두산 공원도 있었다. 수일은 계단을 한번 올려다보고 앞서가는 덩치들을 쫓았다.

점심시간 끝 무렵이라 자갈치 시장에는 밥을 먹고 나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은아 씨가 일하는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아 씨는 제법 익숙한 손길로 상을 치웠다.

“누님!”

은아 씨는 수일을 보자마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이내 반갑게 웃었다.

“수일이 니가 여 먼 일이고? 퍼뜩 앉아라. 밥 무러 왔나?”

덩치들을 번갈아 보며 수일에게 물었다.

“누님 보려구요.”

“내 보러?”

“네. 저기 식사 안 하셨으면 저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잠깐만. 이것만 쫌 치우고.”

은아 씨는 서둘러 상을 치우고 뒷정리를 했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수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탁하는 것처럼 보였다. 떨떠름한 표정의 사장은 가게를 휘 둘러보았다. 손님도 다 나갔고 상도 모두 치웠던지라 반대할 명분이 부족했다. 어차피 은아 씨도 밥은 먹어야 하니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내는 비린내가 지겨버 죽겄다. 우리 양곱창 무러 가자.”

“그래요 그럼.”

전에 두산과 함께 가서 맛도 모르고 먹었던 그 가게가 있던 골목으로 은아 씨가 수일을 안내했다.

두산이 생각나서 수일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해를 가리는 척하며 차가운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눌렀다.

그때 왜 그렇게 속 좁게 굴었을까? 수일은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두산이야 서운한 일 따위 다른 좋은 추억들로 덮으면 그만이었지만, 수일은 이 모든 걸 평생 가슴에 담아 둬야 했다. 자꾸 못나게 굴었던 일들만 생각이 나서 두산에게 정말 미안했다.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수일은 땅만 보고 걸었다.

은아 씨 단골인지 식당 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덩치들은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수일은 은아 씨와 오랜만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새 얼굴이 많이 상했다. 여전히 고왔지만, 화장으로 고단함까지 가릴 순 없었다. 그래도 지난번 그때처럼 조급해 보이지도 수일의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원래의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 마이 늙었제?”

“아니에요. 여전히 예쁘세요.”

“예쁘기는. 뭐 내 자랑은 아인데 옛날만치는 몬 해도 여서도 예쁘단 소리 종종 듣기는 한다.”

은아 씨는 이렇게 말하고 소리 내 웃었다.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대낮부터 둘은 소주를 마셨다. 곱창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몰랐다. 특히 소주와 궁합이 잘 맞았다. 주거니 받거니 한 병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일은 안 힘드세요?”

“당연히 힘들지. 힘들어 죽겄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에 그늘이 졌다.

“쯧, 이기 다 내 잘못인데 우짜긋노. 받아들이야지.”

은아 씨는 한숨을 쉬었다. 새벽 일이 무척 힘들다고 했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지만, 안 하던 육체노동을 해야 해서 한동안 약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굳이 수일의 앞에선 하지 않아도 될 말인데도 말끝마다 이게 다 자기 잘못이라 덧붙였다. 

“참, 두사이 하고는 잘 지내나? 니 관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우울한 소리만 하는 게 미안하다며 은아 씨는 화제를 바꿨다.

“그게, 잘 안됐어요. 계약 끝나면 서울로 가려구요.”

수일은 덤덤하게 답했다. 은아 씨는 놀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 되었다든가 잘 헤어졌다든가 하는 부차적인 말은 없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일상인 직업이라 은아 씨도 두산과 수일의 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나 보았다.

건배 한 번으로 두산의 얘기는 끝을 맺었다.

“혹시 삼락 형님 소식은 들으셨어요?”

“니 뉴스 몬 봤는갑네? 며칠 전에 재판이 있었는데 35년 받았다. 무기 징역은 받아야 할 놈한테 고작 35년 줐다꼬 난리 났었다 아이가.”

“아….”

“내 깜짝 놀랬다. 삼락 오빠야 머리가 하얗게 셌드라. 살도 쪽 빠지서 육십 먹은 노인이라케도 믿겠데. 내 뉴스 보다가 울었다 아이가.”

은아 씨는 여기까지 말하고 눈물을 훔쳤다. 형님은 항소도 포기하고 그대로 35년 형을 받아들였다. 괜히 항소했다간 괘씸죄로 더 무거운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따랐다. 그나마 유능한 변호사 덕에 무기 징역을 피했다고 했다.

수일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했다. 저처럼 모르고 살다가 10년을 허송세월하고 다시 10년을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보단 나았다. 게다가 형님이 그 형벌을 받아들였다는 얘기는 진짜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삼락 형님이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다음에 우리 시간 내서 면회 한번 갈래?”

“네.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해요.”

‘다음’이란 말은 기약이 없었다. 은아 씨도 수일도 잘 알았다. 그냥 해 보는 소리였다.

“그, 니한테 빌린 돈 말인데….”

“신경 쓰지 마세요, 누님. 갚으라고 빌려드린 돈 아니에요.”

“말이라도 그래 해주니 고맙다. 내가 언제가 되었든 그 돈 꼭 갚을 끼다. 다른 사람 돈은 몰라도 니 돈은 꼭 갚으께.”

소주 한 병은 거뜬히 마시던 은아 씨는 겨우 반병에 혀가 꼬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 얘기는 쏙 빼놓고 오성관 박 사장과 함께 일했던 밴드, 가수들 얘기에 열을 올렸다. 별것도 아닌 과거의 일화에 소리 내 웃고 박수를 쳤다.

가게에 들어온 지 30분이나 되었을까, 수일과 얘기하는 중에 은아 씨는 자꾸 시계를 보았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바쁜 사람을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수일은 계산부터 했다. 은아 씨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다 가게 주인에게 종이와 메모지를 빌려서 자기 집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일하고 있는 가게 연락처도 함께 적었다.

“이거 우리 집에서 평생 쓰던 번호다. 엔간하면 바뀔 일 없으니까 가끔 안부나 전해라. 니도 일하는 데 정해지면 연락처 알리주고. 알았제?”

“네. 그럴게요.”

“서울은 은제 가노?”

“17일이나 18일쯤이요. 새벽 버스로 갈 거예요.”

“오야. 잘 있다가 조심히 가라. 연락 꼭 하고.”

“네, 누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수일은 은아 씨의 손을 꼭 붙잡고 인사했다. 은아 씨는 뭐가 그리 슬픈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울지 마세요, 누님. 그러면 제가 발길이 안 떨어지잖아요.”

“내도 늙었는 갑다. 청승맞게 울고 지랄이고 지랄이. 그쟈?”

은아 씨는 울다가 웃었다. 가만 수일을 올려다보았다.

“수일아, 잘 살아라. 니는 니밖에 없으니까 넘한테 휘둘리지 말고 니만 생각하면서 살아라. 알겠제?”

“네. 그럴게요.”

“돈 빌리달라 한다꼬 내한테 하듯 덥석 주지 말고.”

“네.”

수일은 웃었다.

“건강하세요, 누님.”

“오야. 니도 건강해라.”

은아 씨는 울먹거리다 또 눈물을 쏟았다. 얼른 가게로 돌아가야 해서 수일에게 기대 울지도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종종걸음으로 바삐 걸어서 시장 쪽으로 달리듯 사라졌다. 마지막에 손을 한 번 흔드는 게 다였다. 수일도 손을 흔들었다.

수일은 곱창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숨을 골랐다. 눈물을 꾹 참으며 바닥을 노려보았다. 지금은 저와 헤어지는 게 슬퍼서 우는 거지 은아 씨 인생이 힘들어서 우는 건 아니라고 애써 저를 위로했다. 전보다 훨씬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슬펐다.

제 생애 삼락 형님이나 은아 씨처럼 다정하게 대해 준 동료가 없었는데, 하나는 감옥에 갇혔고 하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인과응보인 줄은 알지만 가혹하단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커다란 그림자가 그늘을 만들었다. 수일은 덩치 중 하나라 생각했다.

“그만 가요. 이제 변호사 사무실 가야죠.”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손이 불쑥 다가왔다. 낯익은 손이었다. 크고 투박하고 뜨거운 손. 수일은 고개를 들었다.

“두산아.”

환영을 보는 건가 싶어 수일은 두산의 이름을 불렀다. 두산이 씨익 웃었다.

“여서 머하고 있노? 가자.”

“그래.”

수일은 두산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내민 손을 잡았다.

델 듯, 잡은 손이 뜨거웠다.

***

두산은 상을 엎고 방으로 돌아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할배고 어머니고 말이 통하지 않았다. 차례상까지 엎었는데 다들 두산을 무시했다.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떼쓰는 어린애 보듯 했다. 좆같았다.

피로까지 쌓여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일단 체력을 보충해야 했다. 두산은 속없는 사람처럼 밥을 먹고 고기도 먹었지만, 형수들과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든 명절 음식엔 손도 대지도 않았다. 수일이 이런 걸 못 먹는데 제 입에 어떻게 차례 음식을 처넣는단 말인가.

대신 좋아하는 고기만 조졌다. 삼 일 밤을 꼬박 새워도 끄떡없을 정도로 먹고 자고 또 먹고 잤다.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사이 현수와 종국에게 연락도 해 두었다. 부산 토박이인 현수야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수 있었지만, 정작 필요한 종국은 고향인 경북 영주에 가 있었다. 그는 거기서 태어나기만 했지 부산에서 자랐는데 선친의 친인척들이 모두 거기에 살고 있었다. 묘소들도 그곳 선산에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러 매년 다녀왔다. 밥만 먹고 와도 빨라야 저녁이었다. 그때만 해도 하루면 될 줄 알았다.

“씨발, 내 손으로 꼭 찾을 끼다.”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조카들이 놀아 달라고 방을 들락거리며 졸랐지만 다 쫓아내 버렸다. 어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누웠고 형님들은 눈치만 살피다가 제 가족을 데리고 돌아갔다.

수일의 행방을 모른 채 하루가 지났다. 하루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이틀이 되고 삼 일이 되었다. 할배가 본격적으로 나서자 두산은 속수무책이었다. 능력은 개뿔. 할배에 비한다면 그저 애송이에 불과했다. 떼쓰는 어린애가 맞았다.

씨발. 좆같네.

두산은 자신이 이렇게 힘없고 무능한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황 씨를 제외하면 현수도 종국도 다 할배 사람이었다. 물론 하고많은 조직 사람 중에 두 사람을 선택한 건 두산의 안목이었지만 그 이전에 두 사람을 발탁하고 키운 사람이 할배였다.

추석이 지나자 할배는 기다렸다는 듯 현수와 종국에게 조직 일을 시켰다. 둘 다 조직이 우선이라 수일을 찾는 데만 매달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두산은 아직 밀레니엄 정식 이사도 아니었고, 조직에선 자리조차 없었다.

그나마 황 씨가 도움을 주었다. 할배 소유의 호텔과 콘도, 별장, 집 등을 조사해 주었는데 부산에 있는 것만 해도 수십 채였다. 차명으로 된 것까지 포함하면 더 많았고 전국 팔도로 장소를 넓히면 1년 내내 돌아쳐도 수일을 찾을 확률이 낮았다. 할배 말대로 지금 수일을 빼돌리면 두산은 찾을 길이 없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종국이 자기 밑에서 일하는 애들을 풀어 수일을 찾는 데 힘을 쏟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두산도 가만있진 않았다. 오성관 호텔 방을 뒤지고, 할배가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콘도에 무작정 찾아가 손님 명단을 보여 달라고 지랄을 했다. 방방마다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그들 눈에 두산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뻔했다.

제복을 입은 순경까지 출동하고서야 두산은 콘도를 나왔다. 혹시 몰라 다시 오성관 숙소와 집에 들렀지만, 수일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두산은 할배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할배는 두산이 따라다니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할배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을 만났다. 그제는 신문사 간부들을 만나 회식을 했고, 어제는 경찰 간부와 검찰 간부를 만났다. 밤늦은 시각까지 요정에서 그들에게 술과 여자를 접대했다.

두산은 당연히 강재욱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분명 불도저가 자수한다고 말했었는데 세상이 너무 잠잠했다. 혹시 몰라 조인환 형사에게 슬쩍 최삼락 사건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전과 달라진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불도저는 자수하지 않았고 할배도 강재욱을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최삼락은 35년 형을 받았다.

“할배! 불도저 언제 자수하는데?”

가만있으니 가마니로 보이나. 두산은 의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다짜고짜 소리쳤다. 고 비서가 안절부절못하며 두산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씨발, 강재욱이 그 개새끼는 와 아직도 즈그 집에 있는데? 이것도 내한테 공갈 칬나?”

안 그래도 수일의 일로 열 받아 죽겠는데, 강재욱마저 할배는 제게 한 약속과 다르게 처리하고 있었다. 할배가 앉으라며 소파를 가리켰다.

“두사나, 시원한 거 한 잔 주까?”

고 비서가 살살 달랬다. 두산은 알짱거리는 고 비서를 밖으로 쫓아내고 방문을 닫았다.

“할배가 내한테 한 말들, 한 약속들 다 머꼬?”

장승처럼 버티고 선 두산을 지나쳐 할배가 소파에 앉았다. 두산도 하는 수 없이 따라갔다.

털썩, 맞은편에 주저앉아 할배를 노려보았다.

“두사이 니, 아직도 모리겠나?”

“머를?”

“내는 사람 함부로 안 쓰고 함부로 안 버린다. 니도 내 같은 줄 알았는데 그기 이해가 안 가드나?”

“씨발! 그기 먼 소리고?”

“불도저는 외국으로 보냈고, 재욱이는 지 잘못 인정하고 자숙하기로 했다.”

자숙이란 말에 두산은 헛웃음을 웃었다. 머리가 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할배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다.

“얌전히 건설사 사무실 댕기면서 내한테 지은 죄 다 보상하기로 했다꼬. 조만간 주옥이한테 찾아가서 지가 한 짓 사죄도 할 끼다.”

“와아. 얘기가 이래 돌아가나?”

두산은 웃음밖에 나질 않았다. 그러니까 할배는 애초부터 강재욱을 넘길 생각이 없었다. 다 불도저와 짜고 쳤던 고스톱이었다. 불도저 같은 해결사가 경찰에 자수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럴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할배가 조직의 해결사로 고용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것도 모르고, 자신들의 심한 고문을 견딘 것 때문에 두산이 속았고 종국도 속았다.

강재욱은 말해 무엇하랴. 할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코를 풀었다. 강재욱을 겁주었고 두산도 손쉽게 잡아들였다. 그사이 수일도 빼돌렸다. 불도저 카드에 홀라당 넘어간 자신이 미친놈이었다. 할배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잽도 안 되는데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와 여태 칼 한 번 안 맞은 줄 아나? 내 새끼다 싶으면 끝까지 지킨다. 싹이 안 보이면 미리 짤라삐고 키운 거는 어떻게든 책임지고 내 손에서 처리한다 이 말이다. 그라고 재욱이 같이 큰 놈은 함부로 쳐내면 우환을 부르기 십상이다. 잘 다스리서 내 발밑에 엎드리게 해야지. 감옥에 처 넣는다꼬 다 해결될 일이 아이다. 알긋나?”

두산은 키득키득 웃었다. 허무했다. 처음엔 속은 게 분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딱히 분할 일은 아니었다.

두산도 강재욱을 납치해서 물고기 밥이나 만들려고 했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건 할배와 다를 바 없는 생각이었다. 강재욱이 죽어 버리면 최삼락은 누구도 구제해 줄 수가 없었다. 수일이 최삼락과 같아질 수 있었다는 생각도 못 하고, 누명으로 감옥에서 썩든 말든 관심조차 없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깡패 새끼였다. 야비하고 이기적인 새끼. 핏줄이 그랬다. 백태섭을 그렇게 욕했는데, 저나 백태섭이나 할배나 똑같은 놈이었다.

씨발, 그 나물에 그 밥이었네.

“내 갈란다.”

“그래 가라. 가서 주제 파악 실컷 하고 댕기라.”

할배가 비꼬듯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영감님.”

두산은 실실 웃었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그런가, 날씨는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두산은 길바닥을 툭툭 운동화로 찼다. 성냥도 라이터도 없어서 담배를 입에 물고만 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 웃음이 삐져나왔다.

쥐뿔도 없는 새끼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이나 잡고 있었다. 허깨비라 생각했던 강재욱조차 지금의 저보다 백배는 나은 존재였다.

두산은 강재욱처럼 할배를 협박할 수 있는 건더기 하나 없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하파리2) 순경은커녕 삼류 신문사 기자조차 알지 못했다. 과거 수일이 진주로 튀었을 때도 강재욱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치열하게 노력한 것도 없으면서 고작 나이트 출근이나 열심히 했다고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할배가 앉혀 준 자리에 올라 거드름을 피웠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영향력을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두산은 깨달았다.

그래도 지금은 할배에게 항복할 수 없었다. 항복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일을 찾고야 말리라. 강재욱 그 새끼를 감옥에 처넣고 말리라. 다짐은 굳건했건만, 고작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는 것 말곤 두산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수일을 찾아야 하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욕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두산에게 도움을 준 건 뜻하지 않게 둘째 형님 두열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식당에서 혼자 돼지국밥을 먹고 있는 두산의 앞에 나타났다.

“아지매, 여 꼽배기 하나 주이소.”

두산은 흘끔 제 형을 쳐다보고 먹는 데만 열중했다. 국밥을 한입 떠넣고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었다.

“쌔끼, 얼굴은 좋네.”

“와?”

“와긴? 동생하고 밥도 몬 묵나?”

“지랄하네.”

두열이 웃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지고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두산은 미간을 구기며 눈짓으로 머냐고 물었다. 두열이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오늘 윤수일이가 갈 곳.”

두산은 숟가락을 던지듯 내려놓고 종이를 집었다. 거기엔 알아보지도 못할 글자들이 세 줄 적혀 있었다.

“씨발, 이 머라꼬 써놨노?”

“새끼, 니 글도 읽을 줄 모리나?”

“이기 글이가? 개새끼가 발로 써도 이것보다 잘 쓰겠다.”

“치아라 마. 다 니 생각해서 줐드만은.”

두열이 화를 내며 두산의 손에서 종이를 뺏으려 했다. 두산은 ‘에헤이’ 하며 손을 위로 올렸다. 크기도 큰 성인 남자 둘이 식탁을 마주 보고 앉아 종이를 뺏네 마네 하며 소란을 떨었다.

두산은 다시 종이를 자세히 읽었다.

남포동 황제의상실

자갈치 시장

김수찬 변호사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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