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81)

백태섭을 다시 만난 건 6일 뒤였다. 남자에게 맞아 얼굴에 든 멍이 옅어질 즈음이었다. 원래 경식의 차례였는데 경식인 대낮부터 무슨 일로 술을 마셔 운전할 상태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수일이 운전을 했다.

수일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허리를 반 접어 깍듯하게 인사했다. 고개를 드는 순간 백태섭의 주먹이 수일의 머리를 강타했다. 불시에 당한 폭력에 눈물이 핑 돌고 어지러웠다.

“니 그때 운 좋은 줄 알아라. 일주이 아니었으면 그 코트 값 꼭 받아 냈다.”

“어우, 새끼. 너 또 그 얘기야? 지겹다 지겨워.”

기둥서방은 백태섭을 노려보며 먼저 차에 올랐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수일은 연신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주먹이 날아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이대로 차에 오르는가 싶었는데, 백태섭은 끝내 수일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아픔을 삼켰다. 생리적으로 흐른 눈물을 급히 닦고 운전석에 올랐다.

기둥서방과 백태섭은 어디를 다녀오는지 흥분한 상태였다. 둘은 희희낙락 웃고 떠들었다. 사업 얘기를 하는 것도 같았다. 기둥서방이 20억이 모이면 태평양 어디쯤 섬 하나를 살 거라고 하자, 백태섭은 웃기는 소리 말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 돈이 다 니 돈이냐, 반은 내 돈이다 하며 티격태격했다.

“솔직히 넌 새꺄, 나한테 감사해야지. 니가 뭘 했냐? 내가 다 물어다 놓은 거 그냥 얻어먹는 주제에.”

“개새끼야, 내 경찰서 가서 다 불어삐면 니하고 그년하고 둘 다 콩밥 묵는다. 어데서 큰소리고?”

“지랄. 너한테 들킨 내가 병신이다.”

둘은 계속 말다툼을 했고, 기둥서방은 말끝마다 ‘내가 미쳤지, 병신이지’를 반복했다. 그러다 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야, 근데 니가 알려 준 거 있잖아. 그거 진짜 신통방통하드라.”

무언가 갑자기 생각난 듯 기둥서방은 수일을 흘끔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머가?”

“그 왜 산으로 몰고 가는 거! 기가 맥히드만. 빨개벗겨서 산 밑에 세우고 도망가라니까 냅다 위로 튀어가는 거야. 크큭. 그 추운 날 산에 가면 죽지, 사냐? 씨팔, 멍청한 새끼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수일의 손이 덜덜 떨렸다.

기둥서방은 최 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수일은 여태까지 최 군이 숙소 근처 창고나 폐가에서 얻어맞다가 도망친 줄로만 알았다. 도망치다 다다른 곳이 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애초에 산 초입에서 최 군을 벌거벗기고 때렸던 거였다. 짐승 몰이 하듯 겁에 질린 최 군을 산으로 몰았다. 백태섭의 아이디어로 기둥서방이 계획한 일이었다.

사람 하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둘은 낄낄대며 웃었다. 수일은 속이 울렁거렸다. 구역질이 올라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알았나? 그거 직빵이다. 정신 몬 차리게 때리 놓고 산으로 몰면 오줌 싸고 똥 싸면서 올라간다 아이가. 사람이 겁을 먹으면 대가리가 안 돌아가요. 산으로 드가는 순간 죽는 긴데, 짐승이고 사람이고 하는 짓이 똑같다. 내가 그거 우리 조직 아들한테도 갈킸드만은 가들이 내한테 행님은 천잽니다 이라드라.”

기둥서방의 칭찬에 백태섭은 신이 나서 목소리를 키웠다.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활짝 펴고 거드름을 피웠다. 애초에 말을 꺼냈던 기둥서방은 백태섭의 자랑이 고까운지 입매를 비틀었다.

“하여간 또 입만 살아서는. 그렇게 잘 아는 새끼가 공기훈 때는 왜 안 왔냐?”

“내가 일이 있어서 그랬지.”

“지랄하네. 니가 무슨 일이 있어? 아는 사람도 없어서 만날 나한테 빌붙는 주제에.”

“니 말 다 했나?”

“그래 새꺄. 대범한 척할 땐 언제고, 치사하게 혼자 빠져? 나 혼자 처리한다고 얼마나 고생한 줄이나 알아? 씨팔, 너한테 들킨 내가 병신이지. 근데, 넌 뭐 할라구 서울에 온 거니? 어?”

기둥서방은 백태섭을 물고 늘어지며 다다다 쏘아붙였다.

공기훈이 누군지 수일은 몰랐다. 다만 두 사람의 대화로 유추하건대 공기훈이란 남자도 최 군과 비슷하게 해치운 모양이었다. 이들은 수일을 앞에 두고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에게 해를 가한 얘기를 했다. 수일이 어디다 말하지 못할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 그런 것 같았다.

수일은 앞만 보고 운전에 몰두하는 척했다. 백미러도 쳐다보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공포로 굳어 갔다.

“병신 육갑 떨고 앉았네. 니가 일을 그만치 허술하게 하니까 서울 온 지 한 달도 안 된 내한테 들킸지. 누구 탓을 하노? 내 아이었으면 공기훈이한테도 니가 당했다.”

“뭐래는 거야. 너 때문에 일 틀어질 뻔한 건 생각도 안 해?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니까 니가 그 후진 중학교에서 선생질이나 하는 거야.”

“이 씨발놈이! 니 말 다 했나?”

백태섭이 기둥서방의 멱살을 잡았다. 체구가 작은 기둥서방은 컥컥대면서도 기죽지 않고 백태섭을 노려보았다.

“그래, 새꺄. 내가 없는 말 지어냈니?”

“내 다 뜻이 있어서 거서 일하는 기다. 요새 누가 대놓고 나 조폭이요 하고 댕기대? 삼청교육대에 끌리 갈 일 있나. 우리 조직은 은밀하게 뒤에서 움직인다.”

“지랄, 그게 니 조직이야? 종숙 꺼지?”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면 다 내끼지.”

“종숙이 잘도 너한테 넘겨주겠다. 그럴 거였으면 벌써 한자리 줬겠지. 서울에 올 때마다 너 빼놓고 오시잖아. 하여간 머리도 나쁜 게 눈치도 없어요. 겁도 많은 새끼가 허풍만 세 가지구.”

기둥서방은 백태섭의 신경을 계속 긁어 댔다. 수일은 안절부절못했다. 백미러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순간 수일과 남자의 눈이 마주쳤고, 기둥서방을 향하고 있던 주먹이 수일에게 날아들었다.

얼마나 세게 때렸던지 수일은 운전석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그 충격에 핸들이 꺾이면서 차가 돌았지만,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겨우 차를 세웠다. 끼이이익,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타이어 타는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야이 개새끼야! 너 미쳤어? 운전하는 애를 왜 때려??”

놀란 기둥서방이 버럭 소리를 쳤다.

“이 씨발놈이 내 쳐다본다 아이가.”

“하, 진짜 돌겠다. 니가 이러니까 종숙이 너를 싫어하는 거야. 모자란 새끼가 힘만 세 가지구. 어흐, 진짜 돌아 버리겠네. 내가 미쳤지!”

기둥서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태섭이 기둥서방의 몸에 올라탔다. 퍽퍽 때리는 소리가 났고, 이어 피가 튀었다. 기둥서방은 억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남자에게 맞았다. 남자는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눈이 돌아갔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입에선 침이 흘렀다. 수일은 말리고 싶지 않아서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개새끼들. 싸우다 죽어 버려라. 속으로 고작 이런 생각이나 하며 창문에 박아 혹이 난 머리를 만졌다.

“커억, 억… 씨팔! 너 이 새끼. 당장 내려! 씹새끼야, 안 내려??”

백태섭이 주먹을 멈추는 틈을 타서 이번엔 기둥서방이 마구 발길질을 했다. 백태섭은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차 문에 몸이 처박히면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기둥서방은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고, 차는 미친 듯이 흔들렸다. 어지러웠다.

“빨랑 내리라구 씹새끼야! 개 호로새끼, 내가 이거 다 종숙한테 이를 거야!”

기둥서방의 발에 맞은 남자는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다가 길 한복판에서 내렸다. 남자가 내리자마자 수일은 차를 움직였다.

“씨발 새끼 죽여 버릴 거야. 내 손으로 꼭 죽여 버릴 거라구.”

누워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둥서방의 말투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

수일은 차를 몰고 에덴동산으로 갔다. 기둥서방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여사장을 불러 달라고만 했다. 가게로 들어가 여사장에게 말을 전하고 모른 척 손님을 받았다.

기둥서방과 백태섭이 나누던 얘기가 자꾸 떠올라 수일은 괴로웠다. 이가 빠진 채 무섭다고 울던 최 군이 생각나서 미칠 것 같았다. 둘 다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새끼가 아니라 악마들이었다. 그리고 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이 싫었다.

평소 잘 들어가지 않던 양주가 물처럼 들어갔다. 여자 손님은 쉴 새 없이 수일의 몸을 만지고 뽀뽀를 하고 키스했다. 바지 속으로 손이 들어왔다. 발기가 되지 않아 손님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수일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손님을 보내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데 여사장이 수일을 방으로 불렀다.

여사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수일에게도 한 대 내밀었다. 수일은 여사장과 마주 앉아 담배를 피웠다. 사람을 불러 놓고 말이 없었다. 담배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여사장은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손가락에 걸린 담배 필터에 붉은색 립스틱이 묻었다.

테이블 위에 뒤집힌 사진이 한 장 있었다. 행복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인가 보았다. 사진관 사장의 필체였다. 그 남자는 이상하게 제가 찍은 사진 뒤에 꼭 저렇게 사진관 이름을 써 두었다. 여사장이 항의를 해 봤지만, 미안하다고 말한 뒤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여사장이 사진을 뒤집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수일에게 내밀며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니가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 임 군이 어디 있는지 알아. 가서 물어봐.”

사진 속 남자는 백태섭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수일은 눈알을 굴리며 여사장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연화 죽인 남자야. 이 새끼가.”

수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여사장이 자기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화 죽인 사람 누군지 모르신다면서요?”

수일의 대답에 여사장은 기분 나쁜지 인상을 구겼다. 담배를 비벼 끄고 팔짱을 꼈다.

“넌 웃음이 나오니?”

“아니, 그게 그렇잖아요.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면.”

“하여간, 니가 이래서 안 되는 거야.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알아야지. 그게 뭐니?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데 넌 지렁이만도 못하니?”

그녀가 왜 제게 화를 내는지 몰랐다. 왜 갑자기 분노하지 못한다며 여사장에게 야단을 들어야 하는지 수일은 그저 한숨만 났다.

최 군이 실종되고 한 달을 두려움과 죄책감에 숨죽여 살았고, 연화가 죽고 나서 이 주간 미친놈처럼 울부짖었었다. 그때 입을 싹 닫고 있던 사람이 누군데, 이제 와 수일에게 꿈틀대지 않는다고 닦달을 해 댔다.

수일은 동네북이 된 것 같았다. 허구한 날 쥐어박히고 얻어터지는 것도 모자라 이젠 화내지 않는다고도 욕을 들어먹었다. 정작 화를 내면 바로 뺨을 올려붙일 여자에게.

“모른다고 하셨으면서….”

너무 지쳤다. 수일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게, 의원님 친척이라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입 다물고 있었던 거야. 근데, 너한테 하는 짓 보니까 열불이 나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

“…….”

“수일아, 나도 사람 죽인 새끼 무서워. 이 얘기두 내 목숨 걸구 해 주는 거야. 이 새끼가 연화 때려죽였어. 너두 맞아 봐서 알잖아. 그지? 연화가 이 새끼한테 맞아 죽었다고 생각해 봐. 화 안 나니? 막 소름 끼치지 않아? 봐봐, 말하는 중에도 이렇게 소름이 돋았잖아. 응?”

여사장은 팔까지 내밀어 가며 수일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했다. 백태섭이 어떤 새낀지 수일도 잘 알았다. 6일 전 그때 일이 아니어도, 오늘 차 안에서 했던 말과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 남자였다. 연화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때려죽이고도 남을 남자였다.

하지만 백태섭은 아니었다. 수일은 연화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간 집요하게 전화를 걸고 집 앞으로 찾아갔었다. 무릎을 꿇고 돌아와 달라고 빌었었다. 전봇대나 담벼락에 숨어 연화와 그 남자를 멀리서 지켜보기도 했었다. 남자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그는 키가 작고 체격도 볼품없었다. 백태섭과는 딴판인 남자였다.

여사장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수일을 설득했다. 수일은 여사장이 왜 이러는지 그 의도가 뭔지 궁금했다. 굳이 사진을 주지 않아도 될 텐데 백태섭의 증명사진까지 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 기둥서방이 백태섭에게 맞아서 저러는구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차 안에 드러누워 백태섭을 죽여 버릴 거라고 하더니만, 그 일을 수일이 대신해 주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연화를 핑계로 더러운 짓은 수일에게 시키고 저들은 득만 보려는 속셈이었다.

비겁한 새끼.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수일이 바보는 아니었다. 여사장과 기둥서방이 저를 취급하는 방식에 환멸이 났다.

“임 군이 어디 있는지 알아. 가서 물어봐.”

벌써 상엽이까지 끌어들인 모양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준비를 한 걸까. 수일은 여사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죽이진 말구. 알았지?”

여사장이 싱긋 웃어 보였다.

“네. 사장님.”

수일은 힘없이 일어섰다. 수일이 사진을 놓고 가려고 하자 여사장은 직접 손에 쥐여 주며 3만 원까지 건넸다. 헛웃음이 났다. 고작 돈 3만 원에 백태섭을 죽이라는 소린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일단 나가라고 하니 수일은 옷을 갈아입고 무작정 걸었다. 가다가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오는 경식을 만났다. 출근할 생각이 아예 없는지 경식은 떡 진 머리를 하고 목이 다 늘어난 내복 위에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수일아, 너 어디 가?”

“너야말루 출근 안 해?”

“안 할 거야, 인마. 어디 가냐니까?”

“상엽이 만나러. 근데 너 무슨 일 있어?”

수일은 경식이 걱정되었다. 나름 성실하다면 성실한 애가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것도 모자라 이유도 없이 가게를 빠졌다.

“지금?”

경식인 자기 얘기를 하기 싫은지 수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수일도 더는 묻지 않았다.

“응. 사장님이 만나고 오래.”

“미친년. 너한테도 그 사진 줬구나? 그 씨발 새끼 사진 말야.”

경식의 말에 수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

“나한테도 그 새끼 사진 주면서 어디 묵는지 알려 주더라구. 감시 좀 하라구. 도대체 저년 의도가 뭐냐?”

수일이야말로 묻고 싶었다, 여사장의 진짜 의도가 뭔지. 수일의 분노를 이용해 백태섭을 어떻게든 해 보려는 줄 알았는데, 경식도 알고 상엽도 알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넌 얼마나 받았냐?”

“무슨 소리야?”

“돈 안 줬어? 나한테 50만 원이나 주더라구. 일단 받아 두긴 했는데 영 찜찜하네.”

경식인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백태섭을 감시하는 데 거금 50만 원을 주고, 저한텐 고작 3만 원을 건넸다. 누굴 거지로 아나. 수일은 화가 났다. 와중에 상엽은 얼마를 받았을지 궁금했다.

“나 갔다 올게. 상엽이한텐 또 뭐라고 했는지 들어 봐야지.”

“그래. 근데 수일아.”

경식이 그만 가 보려는 수일의 팔을 잡았다.

“상엽이 그 새끼 난 영 맘에 안 든다. 여사장하고 별로 다를 바 없는 새끼야.”

“걔가 말을 좀 험하게 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괜찮은 애야.”

“뭐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건데, 아무튼 걔 말 다 믿지 말라구.”

“안 믿어. 걔 말은 반 이상이 다 거짓말이야. 나두 그건 알어.”

“그렇담 다행이구. 조심히 가라.”

“응. 너두 조금만 마시구.”

“그래.”

경식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게 근처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상엽을 만나러 가다 말고, 수일은 아무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국수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경식인 50만 원이나 줘 놓고 자기에게는 겨우 3만 원을 주었다. 여사장의 의도는 뻔했지만, 수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돈부터 생각했다. 왜 저한테는 큰돈을 안 주는 건지. 그렇게 제가 쉬워 보였나 싶어 수일은 괜히 기분이 상했다.

술이 들어가자 수일은 화가 나는 대신 슬퍼졌다. 언제가 되면 사람 취급을 받고 살까. 주머니에 든 3만 원 때문에 서글펐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적어도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을 텐데,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혼자 남을 수일을 걱정했던 아버지. 우는 수일에게 천국에서 밴드 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라고 농담을 했던 아버지가 떠올라 수일은 소주를 두 잔 더 들이켰다.

근본이 다르고 핏줄이 다르다고, 감히 자기 아들과 수일을 비교한 기둥서방에게 분노하던 백태섭이 떠올라 또 한 잔을 마셨다. 그도 누군가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저들에겐 3만 원만 주면 뭐든 다 하는 싸구려 일회용품이었다.

“씨발.”

백태섭이고 의원이고 여사장이고 다 좆까라 그래.

수일은 마지막 잔을 비우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날이 다시 추워지려는지 바람이 세찼다. 수일은 팔짱을 끼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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