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81)

“하아, 앗… 으으, 윽!”

수일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사정하고도 성기를 빼지 않은 두산은 수일의 안에서 다시 크기를 키워 갔다. 슬쩍 허리를 움직이다가 수일이 몸을 떨면 멈췄다. 느낄수록 구멍은 사정없이 두산의 자지를 물었다.

“흐읍, 씨발.”

두산은 수일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고 달래 주면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툼한 허리를 안고 있던 수일의 다리가 맥없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아무렇게나 벌어져 있는 다리 하나를 두산이 다시 잡아 제 허리에 올렸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입을 맞추고 키스했다. 짐승처럼 헐떡이며 혀를 얽고 빨았다. 두산은 뭘 기다리는지 수일의 안에서 가만있었다. 그러다 슬쩍 허리를 움직였고, 그럴 때마다 수일은 목을 뒤로 젖히며 울었다. 힘 풀린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또다시 침대 위로 풀썩 떨어졌다.

“흐윽… 두산아, 나, 힘들어.”

“쪼매만 더 기다리자. 옳지. 잘하고 있다.”

두산은 다정하게 속삭이며 키스했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인 얼굴을 혀로 쓱쓱 핥아 주었다.

“으응.”

수일은 두산이 움직여도 힘들었고, 가만있으면 더 힘들었다. 어쩔 줄 몰라서 엉덩이를 비틀고 몸을 버둥거려도 보았지만 그럴수록 두산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수일의 반응을 즐겼다. 수일은 안달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정욕으로 들뜬 눈이 집요하게 수일을 좇았다. 수일은 가쁜 숨 사이로 신음을 흘렸다. 두산은 수일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역시나 숨을 몰아쉬었다. 구멍이 물어 대면 미간을 좁혀 헙,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커다란 손이 연신 수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흑, 두산아, 해… 줘.”

이런 적은 또 처음이라 수일은 당황스러웠다. 결국 제 입으로 해 달라고 먼저 말을 했다. 수일의 말에 두산의 눈이 뱀처럼 번들거렸다.

“씨발, 그 소리 은제 나오나 했다.”

두산은 거칠게 입술을 부닥쳐 오더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익,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수일은 인상을 쓰며 두산을 끌어안았다.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가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두산의 입술을 찾아 쭙쭙 빨았다.

두산이 속도를 높였다. 성기를 거침없이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깊이를 가늠했다. 한번 두산을 받아 냈던 구멍은 전보다 쉽게 열렸다. 어느새 두산은 수일이 느끼는 그곳에 자리를 잡더니, 얕게 또는 깊게 찔렀다. 수일은 자지러졌다.

“흐으으. 읏! 아흐흐. 아. 아흑.”

“윽, 씨발!”

두산이 커다란 몸을 세우는 바람에 수일의 하체가 위로 들렸다. 두산은 그대로 체중을 실어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가슴끼리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수일의 두 다리는 허공에서 대롱댔다. 유연성이 없는 수일은 무릎을 구부려야 했다. 무릎이 수일의 가슴에 닿을 때까지 두산은 수일의 몸을 더 눌렀다.

“아아. 나, 아픈데.”

뻣뻣한 두 다리가 땅겨서 아팠고, 자세는 불편했다.

“개안타. 내가 안 아프게 해주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산이 허리를 쳐올렸다. 수일은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흣! 아… 아으, 아흐흐.”

입에선 연신 신음이 터졌다. 목이 뒤로 넘어가면 두산이 머리채를 잡아 자기를 보게 되돌렸다. 아프고 좋아서 눈물이 흘렀다. 감전된 듯 몸이 떨렸고, 몸이 떨리면 구멍은 마구 두산의 자지를 조였다. 그러면 두산이 좋아서 낮은 비명을 질렀다.

근육들이 꿈틀대며 더 조여 달라고 수일을 재촉했다. 꽉 들어차다 못해 찢어질 듯 구멍을 압박하는 성기에 수일은 끙끙 앓았다.

발기한 건 두산만이 아니었다. 수일의 자지도 벌써 두 번의 사정을 하고 다시 반쯤 서 있었다. 귀두에서 끊임없이 맑은 액이 흘러나왔다. 기분이 좋아 미칠 것 같았다. 고통조차 자극적이었고, 아찔한 흥분에 모든 근심이 날아가 버렸다.

수일은 오로지 두산만 보고 두산만 느꼈다. 커다란 자지가 안으로 파고들 때마다 수일은 흐느꼈다. 온몸이 마비된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다가 갑자기 충격적일 정도로 강한 자극이 들이닥쳤다. 꼴딱꼴딱 숨이 넘어갔다. 쾌락에 마구 몸을 비틀고 바르르 떨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너무 울어서 목이 다 쉬었지만 두산은 멈추지 않았다. 수일을 꼭 끌어안고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엉덩이를 쳐올렸다. 성기를 꽂아 댔다. 이렇게 깊이 들어왔던 적이 있었나 싶게 두산은 수일의 안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수일은 두산의 코끝에 맺힌 땀을 혀로 핥았다. 달콤했다. 두산이 그런 수일에게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입술이 어그러지고 이가 부닥쳤지만 상관없었다. 수일도 두산도 서로에게 미쳐서 물고 빨았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수일은 사정 대신 물 같은 오줌을 쌌고, 두산은 수일의 오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정했다.

사정 후에도 두산은 한참을 수일의 안에 머물다 나갔다. 자지가 빠져나가자 정액이 엉덩이 골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수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숨을 고르는 두산의 얼굴에서 찡그린 미간과 올라간 입꼬리가 부조화를 이뤘다.

침대 시트가 수일의 오줌으로 축축이 젖었다.

“하아, 아… 어, 뜨… 케.”

수일은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데 두산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쪽쪽쪽 입술이 닿는 모든 곳에 입을 맞췄다.

“잘했다. 씨발, 억수로, 잘했다.”

두산은 몇 번이고 잘했다고 수일을 칭찬했다. 땀에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이마에 뽀뽀했다.

“하… 하아.”

숨이 차서 수일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두산의 목을 꼭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창피해서 귀까지 달아올랐다. 두산에게 푹 안겨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개안타. 내 억수로 좋았는데, 내 쫌 보자. 어?”

제 어깨에서 절대 고개를 들지 않는 수일이 안타까운지 두산은 어떻게든 수일과 눈을 마주 보려고 그를 어르고 달랬다. 수일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어 두산을 보았다. 다정한 눈이 수일을 향해 미소 지었다. 입맞춤은 길고 부드러웠다.

열기로 벌겋게 달아오른 근육질의 몸이 수일에게서 떨어졌다. 두산은 갓 목욕하고 나온 사람처럼 전신이 젖어 있었다. 특히 배꼽 아래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물기의 팔 할이 수일의 오줌이었지만, 두산은 좋다고 웃었다. 좋아 죽었다. 수일도 젖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몸을 일으킨 두산은 수일의 젖은 아랫배와 회음부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혀를 내밀어 물기를 핥았다.

“읏!”

혀가 닿자마자 아랫배가 미친 듯이 꿈틀대고 몸이 튀어 올랐다.

“더러워.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애원해 봤자 두산이 말을 들어 먹을 리 없었다. 두산은 수일의 음부와 아랫배, 허벅지를 따라 꿀을 빨 듯 오줌을 핥아 먹었다. 수일은 혀와 입술의 자극에 신음을 뱉고 파르르 몸을 떨기만 할 뿐 더는 말리지 않았다. 수일에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소리칠 목청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두산은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가서 물을 받았다. 수일을 안아 따뜻한 물에 앉혀 준 다음, 혼자 안방으로 돌아가 침대 시트와 이불을 갈았다. 침실 정리를 끝낸 뒤에야 욕조에 들어온 두산은 수일을 제 무릎 위에 앉히고 구멍 안에 손가락을 넣어 정액을 빼내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입술이 닿는 곳엔 쪽쪽 입을 맞추고 뽀뽀했다.

“오줌 쌀 만큼 그래 좋았나?”

“…뭐래.”

수일은 눈을 굴리며 딴청을 부렸다. 다시 열이 올랐다. 두산이 짧게 웃었다. 입꼬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환하게 웃으며 수일에게 또 입을 맞추고 키스했다.

침대에 누웠을 땐 어느새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두산아, 버스 터미널에서 나 처음 봤을 때 진짜루 어땠어?”

“예뻤지.”

“농담하지 말구. 많이 가난해 보였니?”

수일은 두산의 눈썹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물었다.

나름 깨끗하게 입고 나간다고 했지만 6시간 넘게 버스에서 시달린 탓에 얼굴은 누렇게 떴을 게 분명했다. 옷도 다 구겨졌을 테고, 거기다 땀 냄새도 났겠지. 수일은 당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저 배가 고팠고, 마중 나온 사람과 엇갈리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으데. 저 멀리서부터 광채가 비치는데, 솔찌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니밖에 안 보이드라.”

“내가 부처야, 광채가 비치게?”

“진짠데?”

“어우, 됐어.”

“뭔 말만 하면 됐다 카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들어주지.”

“에헤이, 니 서방님 말 이래 무시해도 되나?”

“서방님은 무슨 서방님이야.”

수일은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대며 두산의 가슴에 안겼다.

“아인데, 억수로 예뻤는데.”

두산이 억울하다는 듯, 곧 죽어도 예뻤다고 우겼다. 수일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웠다. 처음부터 꼴렸다고 우겨 줘서 수일은 내심 기뻤다.

그날 자신은 분명 가난해 보였을 터였다. 남대문 시장에서 산 그 셔츠는 칼라 끝이 닳아 있었고, 바지는 커서 혁대를 졸라매야 했다. 아무리 다림질을 하고 깨끗이 빨아 입어도 가난을 숨길 수는 없었다. 배고픔도 숨길 수가 없었다.

“가난해 보였으면 또 어떻노? 내가 있었는데.”

그날 두산은 참 깡패 같았다. 창피할 정도로 여자를 훑고 있었고, 창피할 정도로 욕을 하고 목청을 키웠다. 수일이 자신의 가난 따위 신경 쓸 겨를 없이, 두산은 제 존재감을 맘껏 드러내며 수일에게 다가왔었다. 처음 수일이 두산에게 느꼈던 감정은 비호감에 가까웠다. 두산이 알면 서운해할 것 같아서 수일은 혼자 웃었다.

문득, 오늘이 두산의 첫 출근 날이란 게 떠올랐다. 두산이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바보같이 그걸 깜빡하고 있었다니. 잠잠했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피곤한데도 너무 긴장돼서 수일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누워서 뒤척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6시 조금 지나 먼저 눈을 떴다. 아침상을 차려야 하나, 어쩌나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살짝 몸을 돌렸는데 두산이 깼다.

“화장실?”

“어? 아니, 어….”

하여간 애가 귀도 밝았다. 화장실 다녀오는 척하며 욕실에서 나오니 그새 두산이 부엌에 나와 있었다.

“왜 더 안 자구?”

“밤새 꼼지락대는데 잠이 오나?”

표정도 말투도 퉁명스러웠다. 지 잠귀가 밝아서 못 잔 걸로 누구한테 잔소린지 몰랐다. 수일은 입을 실룩대며 두산의 주변을 알짱거렸다.

“드가서 더 자라. 내 아침상 차리께.”

“아냐, 너야말루 더 자. 나는 너 가고 다시 자면 되지.”

“다시 자기는. 니 병원 가는 날이다.”

“아. 그럼 너 출근하면 병원 다녀올게.”

“내 오늘 휴간데?”

“뭐?”

수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출근도 안 했는데 무슨 휴가를 받니?”

“받았다.”

“너 미쳤어?”

미쳤냐는 말에 두산은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내한테 할 소린 아인데.”

중얼거리며 냉동실에서 얼린 곰국 봉지 두 개를 꺼내려다 도로 넣었다.

“맞다. 니 금식이제?”

수일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 왜 그래?”

“와 그라긴? 휴가 주니까 받았지.”

수일은 긴장으로 밤새 한숨도 못 잔 저를 두고 말 한마디 없이 휴가부터 받은 두산이 너무 얄미웠다.

괜히 심통이 나서 수일은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오성관이 문을 닫을지도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 판국에 두산은 세상 편하게 첫 출근 날 휴가를 냈다. 고작 나이트 가수인 자신과 비교하면 안 되는 걸 너무 잘 아는데도 왜 자꾸 심술이 나는지 몰랐다.

침대가 출렁댔다. 이불을 잡고 꽉 잡고 있었지만, 두산이 확 잡아당기자 몸까지 딸려 갔다.

“병가 냈다.”

“병가는 무슨. 내가 아프지 니가 아퍼?”

“어. 내도 아프다. 내 살이 마이 빠지서 의사한테 함 물어볼라꼬.”

두산은 시무룩한 얼굴로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몸이 안 좋아서 살이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던 수일은 금세 미안해졌다.

“많이 빠졌어?”

“어. 7, 8키로.”

지난번 호텔 커피숍에선 6, 7킬로 정도라고 했으니, 그새 1킬로가 더 빠진 모양이었다. 아무리 봐도 얼굴색도 몸도 더 좋아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살이 그만큼 빠지는 게 정상은 아닌 듯했다.

수일은 슬그머니 일어나 앉았다. 두산이 쪽 뽀뽀를 했다.

“간 김에 이발도 하면 되겠네.”

“거긴 미용실이라 비싼데.”

“을마 차이 안 난다. 내는 니 거서 머리한 기 제일 예쁘다.”

수일은 딱히 차이를 모르지만 그러자고 했다.

일찍 일어난 덕에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9시까지 병원에 갔다. 수일이 여러 가지를 하는 동안 두산도 따라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예약한 것도 아닌데 마침 자리가 났다고 했다.

검사 후에 수일은 진료를 받았던 모든 과를 한 바퀴 돌았다. 결과가 나온 곳은 바로 의사를 만났고 아닌 경우엔 대기실에서 30분에서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의사를 만났다.

갈비뼈도 이제 거의 다 나았고, 코도 예쁘게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파열된 장 수술 부위 또한 잘 아물어서 기름진 음식만 조금 피해 주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했다. 이어 두산은 수일을 내보내고 또 의사와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뭘 물어볼지 너무 뻔해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수일은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을 했다.

수일의 진료를 모두 끝내고 두산은 내과에 들렀다. 수일은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은 것처럼 배가 고팠지만, 두산의 검사 결과도 기다려야 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두산의 어깨에 기댔다. 시간이 참 안 갔다.

“어디가 안 좋으시다고예?”

“살이 마이 빠짔습니다.”

“아….”

드디어 만난 의사는 이렇게만 묻고 반응했다. 정밀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오지만, 오늘 결과가 나온 것들을 종합해 보면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엑스레이를 살폈다. 흑백 사진 속 뼈는 참 튼튼해 보였다. 따로 할 말이 생각이 안 나는지 의사는 억수로 건강하시네예, 한마디 하고 다음 환자를 불렀다.

“괜찮아서 다행이다.”

“그라이. 내 억수로 걱정했다 아이가.”

두산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왠지 속는 기분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어서 수일은 속으로 의심만 했다.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두산이 피 뽑은 자리에 아직도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덩치도 산만 한 게 그러고 있으니 제가 다 창피해서 수일은 반창고를 확 떼 버렸다. 털까지 같이 뽑혀서 두산이 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쌤통이었다.

“니 일부러 그랬제?”

“그냥 가 좀. 나 배고파.”

수일은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니 일부러 그란 거 내 다 안다. 난중에 복수 할 끼다.”

국민학교 남자애들이나 할 만한 말을 하며 두산이 수일을 뒤따랐다.

근처 백반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정리했다. 두산은 미용실 원장과 절친한 사이처럼 수다를 떨며 이발하는 데 훈수를 뒀다. 원장은 머리 자를 때 훈수 두는 남자는 생전 또 첨이라며 깔깔 웃었다. 성격이 참 좋았다.

그렇게 이발까지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두산이 치대기 시작했다. 신호 대기만 걸리면 손을 잡고 제 얼굴을 만져 보라고 했다. 열이 나는 것 같다고 거짓말도 하고, 가슴이 좀 아프다고 헛소리도 했다. 어제 은아 씨 눈물 한번 닦아 주고 손목을 잡혔다는 이유로 밤새 괴롭혀 놓고도 성에 안 찼는지 두산은 수일의 손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라디오에선 어제의 충격적인 0:10 패배에 대한 분석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롯데 잘하는 건 맞아?”

“어. 잘하지. 지금도 3위다 3위.”

“근데 왜 저래? 우리 경기 보러 갔는데 저렇게 지면 재미없잖아.”

“에헤이, 내가 직접 보러 간 경기는 한 번도 진 적이 읍따. 내만 믿으라.”

“그게 뭐야.”

3위니까 잘하는 팀은 맞는 것 같았지만, 두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띠, 띠, 띠, 띠이이이.

라디오가 오후 4시 정각을 알렸다. 아나운서는 부산 사투리를 최대한 죽인 표준어로 뉴스를 진행했다. 제일 먼저 정치 뉴스를 내보냈고 경제 뉴스와 사회 뉴스가 연달아 나왔다. 수일은 지겨워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두산이 라디오 채널을 돌리려는 순간 귀에 익은 이름이 들렸다.

[오늘 현장 검증은 범인 최삼락 씨가 대주상사 김대순의 전 아내 정춘자와 짜고 김 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최 씨는 먼저 김 씨를 손쉽게 죽이고 김 씨의 아내 정 씨와 축하주까지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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