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다. 밥 묵자.”
몸을 흔드는 느낌에 수일은 눈을 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서울 갈 채비를 했다. 물론 준비는 두산이 다 했고 수일은 침대에서 뒹굴다 두산이 가자고 할 때 차에 탔을 뿐이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수일은 쉽게 피곤을 느꼈다. 어제 대낮부터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그놈의 란제리가 뭐라고 두산은 지칠 줄 모르고 발기했다. 다음에 또 입어 주겠다는 각서에 지장까지 찍고서야 수일은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옆에 앉아서 빵과 우유를 먹여 주고 먹으면서 왔는데, 어느새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 2시간 가까이 달려 들른 휴게소는 평일 아침이라 한산했다.
“나 화장실부터.”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다. 수일은 차 문을 열고 화장실로 뛰었다. 두산이 큰 보폭으로 수일의 뒤를 쫓았다. 수일이 소변기에 서서 바지 지퍼를 내리려는 순간 두산의 손에 잡혀 화장실 칸으로 넘겨졌다.
“어데서 오줌을 싸노? 문 닫고 싸라.”
“아니 왜?”
“남들 보는 데서 꼬치 까고 그라는 거 아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따지기엔 너무 급해서 변기 커버를 올렸다. 정말 쌀 뻔했다. 우유를 두 개나 마시지 말걸. 수일은 후회를 하며 하염없이 흐르는 제 소변을 내려다보았다.
볼일을 다 보고 나오자 두산은 모르는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 제 물건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들 보는 데서 꼬치 까는 거 아니라더니. 수일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
“와, 내 본 것 중에 제일로 크다. 이기 사람 끼가?”
“생긴 것도 잘생깄는데, 물건도 참말로 잘생깄네. 일마 이거, 여자깨나 울리겄다.”
두산은 ‘제 자랑은 아인데예, 그런 소리 마이 듣습니다’ 하며 전혀 겸손하지 않은 대답을 했다.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수일이 다 창피했다.
잘생기긴 뭐가 잘생겨.
투덜대며 화장실에 먼저 나와 두산을 기다렸다. 신이 난 두산은 아주 화장실에서 살 모양인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참다못한 수일이 소리쳤다.
“야, 백두산! 빨리 안 나와?”
“알았다, 내 간다. 행님들 안전 운전 하이소.”
두산은 저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에게 인사를 하며 급히 뛰어나왔다.
“내 나올라 켔는데 자꾸 붙잡아서 몬 나왔다. 솔찌기 저 행님들이 이런 물건을 또 은제 보겠노? 오늘 선심 좀 썼다.”
두산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길게 변명했다.
“배고파.”
“알았다. 드가서 기다리라. 내 도시락 갖고 오께.”
한동안 선선했는데 오늘따라 후덥지근했다. 끈적끈적 습도도 높았다.
휴게소에는 커다란 선풍기가 파란 망사 커버를 입은 채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휴가철이라 무척 바빴을 휴게소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수일은 두산과 함께 서울로 가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꿈인가. 몰래 허벅지를 꼬집어 보기까지 했다. 혼자 들렀던 휴게소와 두산과 함께 오는 휴게소는 분위기마저 달랐다.
두산은 빨간색 보온병과 약봉지, 그리고 연분홍색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통을 양손에 들고 씩씩하게 들어왔다. 대장균이 득실대는 물과 위생 불량 휴게소 음식 어쩌고 하는 뉴스를 본 두산은 새벽같이 일어나 보리차를 끓이고 언제 부탁해 뒀는지 어머니 집에 들러 도시락을 가져왔다.
목이 말랐던 수일은 보온병을 열어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보리차를 따라 마시고 한 잔을 두산에게 주었다.
“오늘 억수로 덥네.”
물을 다 마신 두산은 셔츠를 펄럭이며 선풍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두산이 더위를 식히는 동안 수일은 보자기를 풀고 3단 도시락을 펼쳤다. 한 통엔 김밥이, 다른 한 통엔 갈비찜이, 그리고 마지막 통엔 신선한 과일이 들어 있었다. 수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걸 언제 다 하셨대?”
“갈비찜만 어제 했고, 김밥이랑 과일은 새벽에 싼 기다.”
“뭐 하러 이런 걸 부탁해, 어머님 힘드시게.”
“안 힘들다.”
“힘드셔. 새벽에 일어나서 요리하는 게 어디 쉽니?”
“안 힘들다. 그라고 우리 엄마 아침 잠 읍따. 요리하는 거도 억수로 좋아하고.”
두산은 박박 우기며 수일의 손에 젓가락을 쥐여 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신세를 많이 졌는데, 도시락까지 받았다. 만나서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게 더 염치없게 느껴져 수일은 인사하겠단 말도 못 꺼냈다.
두 사람이 먹을 음식인데 족히 4명은 먹을 분량의 김밥이 들어 있었다. 수일은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김밥도 종류가 달랐다. 어떤 건 소고기가 들어 있고, 어떤 건 참치가 들어 있었다.
김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수일은 감탄하며 하나하나 천천히 씹어 먹었다. 예전처럼 허겁지겁 먹으면 바로 배가 아파서 되도록 천천히 먹으려 애썼다. 두산은 김밥 하나를 집어 먹더니 국물이 없다며 우동 두 그릇을 시켰다.
“갈비찜 마이 무라. 니 먹기 좋으라꼬 살만 발랐다.”
“응. 무지 맛있어.”
“천천히 무라.”
“응. 너두 많이 먹어.”
“어.”
즉석 우동은 시킨 지 3분도 안 돼 나왔다. 두산이 우동을 받아다가 하나를 수일의 앞에 놓아주고 하나는 제 앞에 놓았다. 수일은 김밥 하나 갈비찜 하나를 차례대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우동 국물을 떠먹었다. 꼭 소풍을 나온 기분이었다.
양이 많아서 충분히 먹고도 남는데도 두산은 수일의 젓가락이 느려질 즈음에야 갈비찜에 손을 댔다. 수일은 우동 면은 거의 다 남겼고, 두산은 우동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내가 운전할까? 너 좀 자게?”
“아이다. 내가 하께.”
“그게, 나도 저 차 한번 몰아 보고 싶기도 하구.”
“고속도로 위험하다. 내가 하께. 난중에 서울 가면 그때 하든가.”
“약속했다. 서울 가면 나한테 핸들 넘겨.”
“알았다. 어차피 서울 지리는 니가 더 잘 알까 아이가. 한 번 정도는 넘기주께.”
“응. 꼭이야.”
수일은 두산이 저한테 한 것처럼 각서에 지장을 받을까 하다가 말았다. 어차피 종이도 없고 인주도 없었다. 혼자 피식 웃고는 도시락을 정리하는 두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분홍색 보자기를 묶는 손이 어색해 보였다.
“와? 내가 그래 잘생깄나?”
“뭐래. 그것 좀 제대로 묶어. 그러다 풀려.”
“다 알아서 한다.”
“알아서 하기는.”
수일은 보자기를 뺏어서 도시락통을 다시 정리했다. 두산은 수일이 보자기로 리본을 만드는 걸 보고 뭐가 좋다고 헤헤거리며 웃었다. 정리를 모두 끝내자마자 두산은 약봉지를 뜯었다.
배부른데. 약 먹을 생각은 못 하고 배 터지도록 식사를 한 저의 무식함에 한숨을 쉬며 수일은 억지로 약을 받아먹었다. 물이 들어가자 목구멍까지 음식이 찬 기분이었다. 조금 걷다 가면 좋으련만 근처엔 산책할 곳도 돌아다닐 장소도 마땅치 않아 그냥 차에 올랐다. 부른 배 때문에 답답했는데 에어컨 바람을 쐬자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수일은 두꺼운 지도책을 펼쳐 막 지나온 휴게소 부근을 눈으로 훑었다. 일이 아닌 목적으로 어디를 가는 건 88올림픽 때 서해로 피서를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가고 싶은데 있나?”
“아냐. 그냥 보는 거야.”
“그 어데더라? 강원도 6번인가 7번 국도 그기 단풍이 그래 예쁘다카대. 이번 가을에 놀러 가자.”
“응.”
가을이라. 불과 두 달 뒤면 가을이었다. 두산과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을 함께 보낼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수일은 가을이란 말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두산을 보았다. 이 남자와 풍요로운 가을을 보내고 추운 겨울을 함께 날 수 있을까. 이상하게 그 모습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가을과 겨울을 떠올리는 순간, 수일은 혼자 있는 자신만이 보였다. 홀로 서울의 골방에 누워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제 얼굴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가을과 겨울은 다를 것이다.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라디오 수신율이 높지 않았다. 수일은 라디오를 끄고 대신 트로트 메들리 테이프를 넣었다. 삼락 형님이 아끼는 거라며 직접 복사를 떠 준 테이프였다. 한 사람이 부르는 메들리가 아니라 곡마다 오리지널 가수의 노랫소리가 나왔다.
죄다 신나는 곡들이라 졸음이 달아났다. 두산은 음정 박자가 맞지 않는 목소리로 열심히 따라 부르며 운전했다. 수일은 두산이 음치라는 걸 깜빡 잊고 있다가 새삼 정말 노래를 못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두산의 삐삐가 세 번 울렸다.
1시간여를 더 달려 다시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수일도 몇 번 와 본 곳으로 주변이 푸른 산과 강에 둘러싸여 있어 산책하기 좋은 장소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여긴 비가 떨어졌다. 아쉽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기로 했다.
서울까지 안 쉬고 갈 거란 소리에 수일은 화장실로 향했고, 그사이 두산은 매점에서 호두과자와 뻥튀기를 샀다. 사이다도 잊지 않았다.
“너 다른 애인들한테도 이렇게 잘했니?”
“으데. 니니까 이라지, 딴 가시나들한테는 어림도 읍따.”
“알 게 뭐야.”
“에헤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수일의 놀림에 두산은 인상을 팍 구겼다. 콩, 하고 이마를 들이박았다. 수일은 아프다 엄살을 부리며 흐리게 웃었다.
두산이 삐삐 음성을 확인하는 동안 수일은 따뜻한 호두과자 하나를 입에 넣었다. 공중전화 박스에 꽉 들어찬 두산은 그 잠시를 참지 못하고 수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일도 두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3시간을 더 달려 서울에 진입했다. 수일은 그중 절반가량을 잠으로 보냈고, 서울에 진입한 줄도 모르고 자다가 클락션 소리에 잠이 깼다. 운전석이 비어 있었다. 반쯤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낯선 곳이었다. 맞은편에 서울 남부 터미널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와 본 건 처음이었다.
두산은 차를 인도에 바짝 붙여 세우고 역시나 같은 방식으로 차를 세운 택시 기사와 밖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도 사투리를 썼다. 얼마나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두산의 얼굴이 벌겋게 익은 거로 봐선 제법 오래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수일이 차창을 내리자 두산과 남자가 동시에 돌아봤다.
“오랜만에 동향 만나서 노가리 잘 깠다. 그만 놀고 돈 벌러 가야쓰겄네.”
“벌쌔로 시간이 이래 됐나? 일하시는데 방해한 거 아입니까?”
“방해는 무신. 어차피 손님도 없을 시간이다. 그라믄 살피들 가라.”
남자는 친척 조카라도 만난 양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두산에게 명함까지 건넸다. 수일이 계속 쳐다보자 장난스레 경례를 붙이고 택시에 올랐다. 두산은 택시 문까지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역시나 처음 만난 사이였다. 어쩜 저렇게 넉살이 좋은지 몰랐다.
“나 깨우지.”
“머할라꼬. 길 다 알아 났다. 이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두.”
계속 잠만 잔 게 미안했던 수일은 작게 하품을 하고, 차 뒷좌석으로 몸을 들이밀어 빨간 보냉병을 가져왔다. 보리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두산에게도 건네자 두산은 목이 말랐는지 벌컥벌컥 들이켰다.
“밖에 오래 있었니?”
“한 10분? 을마 안 있었는데 밖이 억수로 덥다.”
서울은 잔뜩 흐리기만 할 뿐 비는 오지 않았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창문에서 더운 기운이 들어왔다. 수일은 차창을 올리며 그러네, 했다.
“서울 공기 바라. 이기 사람이 살 데가?”
두산은 혀를 찼다.
“라디오는 잘 잡히서 좋네.”
내내 지직거렸던 라디오가 선명하게 들렸다. 점심시간이라 라디오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주로 소개하고 내용에 맞춰 수다를 떨었다. 청취자와 통화도 하며 그들의 신청곡을 전해 주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수일은 가만 라디오를 들었다. 차는 시내를 씽씽 달렸다. 괜히 가슴이 몽글몽글했다. 그저 자가용을 타고 서울로 왔을 뿐인데도 큰 호사를 누린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제 인생도 참으로 궁핍했었구나. 수일은 씁쓸하게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지금 어디루 가?”
“남산.”
“남산 타워 가게?”
“일단 호텔에 짐 풀고 움직이야지. 내가 서울역하고 남산뿌이 몬 가봐서 그짝으로 호텔 잡았다. 개안체?”
“응. 너 편할 대루 해.”
수일은 어디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퇴원했다는 사실이 기뻤고 두산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다 좋았다.
신호 대기에 걸릴 때마다 두산은 손을 뻗어 수일의 볼을 쓰다듬었다. 수일은 그 손을 잡아 두툼한 손등에 쪽 뽀뽀했다. 그럴 때면 두산의 광대가 한껏 치솟았고, 이번엔 두산이 수일의 손을 제 쪽으로 당겨 입을 맞췄다.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앞 잘 보구.”
“보고 있다.”
수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두산은 보고 있다고 말만 했다.
수일은 운전에 방해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매연 때문인지 아니면 열기 때문인지 서울 시내는 이상하리만치 뿌옜다. 이렇게 공기가 나빴던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수일은 또 깜빡 잠이 들었다.
***
‘자기야, 정신 좀 차려 봐. 어우, 진짜 무거워 죽겠구만. 얘, 최 군아, 거기 서 있지만 말구 나와서 좀 거들어.’
비틀거리긴 했어도 가게에서 멀쩡히 걸어 나왔던 여사장의 기둥서방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일은 앞유리창을 통해 세 사람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최 군은 싫은 티를 팍팍 내며 기둥서방의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지갑을 놓구 왔네. 차에 먼저 태워 놓구 있어.’
여사장이 가게 입구로 사라지자 기둥서방이 몸을 세웠다. 남자는 최 군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볼에 입 맞췄다.
‘하지 마세요, 의원님!’
최 군이 정색하며 남자를 밀쳤다.
‘엉덩이가 토실토실한 게 웬만한 기집애들보다 낫다. 어이쿠, 왜 이렇게 어지럽지?’
남자는 음탕한 말을 뱉으며 최 군에게 철썩 들러붙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최 군은 저를 희롱하는 남자의 말과 행동에 진저리를 냈다. 그렇다고 패대기칠 수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언제 나왔는지 여사장의 구두 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다시 정신을 잃은 척했다. 온몸에 힘을 빼고 최 군에게 의지했다. 최 군의 도움을 받아 뒷좌석에 오른 남자는 저를 놓고 가게 안으로 급히 사라지는 최 군이 아쉬운지 입맛을 쩝쩝 다셨다.
덜컥. 운전석을 발로 차는 느낌에 수일은 돌아보았다.
‘야이 개새끼야, 출발 안 해? 사람이 탔으면 알아서 출발해야 될 꺼 아냐.’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장님? 아우 씨발 새끼가, 내가 사장님이야? 의원님이지! 하여간 돌대가리 새끼. 어리바리한 게 영 맘에 안 든단 말야.’
‘죄송합니다. 의원님.’
‘왜 애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수일아, 얼른 출발해.’
남자는 수일을 싫어했다. 눈치가 없고 행동이 빠릿빠릿하지 못하다는 이유였지만 정작 수일은 누구보다 행동 하나는 빨랐다. 역시 눈치가 없어서 싫어하나 보았다. 수일은 서둘러 차를 움직였다.
낮에 내린 눈 때문에 길이 유난히 미끄러웠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수일은 조심히 차를 몰았다. 히터에 꽁꽁 언 손이 녹을 즈음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여사장에게 일렀다.
‘부산에서 큰 손님들 오시니까 조 마담한테 잘 얘기해 두구.’
‘아유, 알았어요. 그분들 접대한 게 한두 번이야?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셔.’
‘사내새끼들도 준비했지?’
‘응. 최 군하구 두어 명 준비해 뒀어요.’
‘괜찮은 애들로 준비시켜. 지난번처럼 말 나오게 하지 말구. 설마 저 새끼도 가는 건 아니지?’
남자가 턱짓으로 수일을 가리켰다. 저 새끼라는 말에 짜증이 그득했다. 수일은 룸미러로 남자를 흘끔거렸다.
‘자기두 참. 내가 바보두 아니구 할 줄도 모르는 애를 어뜨케 큰 손님한테 소개시키니? 수일이 쟨 얼굴만 반반했지, 여즉 우리 손님도 제대루 못 받아서 항의가 들어와요.’
여사장은 한심하단 눈길로 수일을 쳐다보았다. 1년째 데리고 있어도 늘지 않는 섹스 실력에 여사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두 빨아 주는 건 늘었어, 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때, 차가 미끄러졌다. 당황한 나머지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하마터면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갈 뻔했다. 겨우 차를 멈춘 수일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휴, 깜짝이야! 야이 호로새꺄, 운전 똑바로 못 해?’
남자는 운전석을 발로 마구 찼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뒤에서 손이 날아들었다. 퍽퍽, 사정없이 내리치는 주먹에 수일은 머리를 맞았다.
‘아니 왜 애를 때려? 길이 미끄러워서 그런 걸. 그만 좀 해!’
여사장이 남자에게 화를 냈다. 여사장은 누가 됐든 자기 종업원들에게 함부로 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여사장의 짜증에 남자는 손을 거뒀다.
‘하 씹할, 누구 저승 보낼 일 있나.’
‘죄송합니다. 의원님.’
‘개새끼가 재수가 없을라니까.’
남자는 씩씩대며 욕을 퍼부었다. 맞은 머리가 아팠다. 맞는데 이골이 난 수일이지만 이상하게 저 남자에게 맞는 건 싫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며 클러치와 액셀을 이용해 조심스레 차를 움직였다.
두 사람은 다시 부산에서 오는 큰 손님 얘기를 이어 갔다. 이번엔 워낙 목소리가 작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조 마담이란 단어만 귀에 박혔다. 조 마담은 연화가 일하는 가게 사장이었다.
연화도 손님 접대에 나가야 하는 걸까?
그녀와 연인이 된 지 석 달째인 수일은 나중에 연화에게 물어봐야 하나 속으로 고민했다. 간다고 한들 말릴 수도 없으면서 등신같이 고민은 왜 하나 몰랐다.
눈발이 약하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
정은아는 범퍼가 구겨진 엑셀을 몰고 보건소로 향했다. 벌써 보건증을 갱신할 때가 왔다.
전남편이 진 빚을 갚느라 돈이 다 털렸지만, 대중교통이 많지 않은 읍면이나 시골에서 열리는 행사를 뛰려면 어쩔 수 없이 차가 필요했다. 낡아 빠진 포니를 몰다가 올해 초 중고로 산 엑셀은 은아의 주요 재산이었다.
출시된 지 3년밖에 안 된 차라 중고가도 제법 비쌌다. 그래도 한번 사면 못해도 10년은 탈 텐데 하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샀었다. 나름 애지중지했는데 남동생 새끼가 타고 나갔다가 사고를 내서 이렇게 구겨졌다.
차에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어서 딱 필요한 수리만 하고 외관은 포기했다. 다 지난 일이래도 볼 때마다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은아는 아직도 그날 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나, 한 사나흘 몸살로 앓아누운 것만 빼고 지금까지 멀쩡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별일이 없었나 보았다. 최음제 정도만 먹인 듯했다. 쪽바리 새끼들. 여럿이 덤빌 때부터 알아봤다.
그녀는 맨정신보다야 차라리 약의 힘을 빌려 기억 못 하는 것이 낫지 않냐고 자기 합리화했다. 최음제를 먹은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서 신분증을 내밀었다. 보건증을 재발급받으러 왔다는 말에 직원이 검사실로 안내했다. 면봉으로 대변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은 다음 피를 뽑았다. 장티푸스 예방 주사는 작년에 맞아 이번엔 그냥 넘어갔다.
나이트에선 경찰과 척을 지지 않는 한, 기한이 지난 보건증이어도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각종 행사를 도는 은아에겐 행사를 알선해 주는 협회에 제출할 보건증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노인과 아이를 위한 행사가 많다 보니 협회는 보건증에 예민한 편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돈만 찔러 주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넘어가 주곤 했는데, 요즘 들어 단속이 심해서 봐주지를 않았다.
짧은 검사를 마친 후 열흘 뒤에 찾으러 오라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흐린 가운데 해가 났다 말았다 했다. 무덥고 습해서 그런지 영 컨디션이 별로였다. 은아는 눈살을 찡그리며 차로 돌아갔다. 보건증을 발급받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여태 문제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갱신되리라 믿었다.
***
호텔에 짐을 풀고 수일은 바로 낮잠을 잤다. 올 때도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아 놓고, 체크인하자마자 피곤해서 쓰러졌다. 두산은 수일이 잠들 때쯤 한 바퀴 돌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깬 수일은 안락한 침구에 고개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비싼 호텔이었다.
얼마 전 삼락 형님은 수일을 때린 남자가 제법 많은 위로금을 주고 갔다고 일렀다. 그 돈을 백사파에서 가로챘고, 수일의 몫은 두산이 먹었다고 했다. 몇 백이나 되는 돈이니 꼭 두산에게서 받아 내라고 형님은 힘주어 말했다. 수일은 형님을 좋아했지만, 두산이 제 돈을 가로챘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강재욱에게서 수일의 지갑과 팁 70만 원을 대신 받아 건네주었을 때도 삼락 형님은 거짓말을 했었다. 형님은 강재욱은 바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고 간호사에게서 지갑과 돈만 받았다고 전했다. 아마도 간호사가 착각한 것 같다며, 허허거렸다. 그때만 해도 수일은 형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다.
하지만 실제로 수일의 바지는 실려 왔을 당시 응급실 의사가 가위로 찢어서 버렸다. 정신이 없었던 응급실 간호사는 바지에서 빼 둔 수일의 지갑과 소지품을 같은 시간에 실려 온 다른 환자의 피에 젖은 바지와 함께 넣어 두는 실수를 저질렀다.
간호사는 뒤늦게 자기 바지의 행방을 찾던 다른 환자 때문에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바지는 강재욱 손에 넘어간 뒤였다.
그 간호사가 강재욱에게 바지를 건넸다는 걸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강재욱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잘생긴 남자는 텔레비전에만 있는 줄 알았다던 응급실 간호사는 굳이 수일의 병실까지 올라와 자신의 실수를 전했고, 은근슬쩍 강재욱의 신상에 관해 물었다.
강재욱은 설마하니 응급실 간호사가 수일의 병실까지 찾아가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수일이라도 그랬겠지 싶었다.
수일은 강재욱이 바지를 어디다 쓰려고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거기에 관심도 없었다. 다만, 삼락 형님이 강재욱에게 놀아나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게 서운할 뿐이었다. 두산과 관련된 거짓말은 더 서운했다.
돈이 좋긴 좋구나. 이렇게 비싼 호텔에 손님으로 묵어도 보고. 수일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갈비뼈에 약한 통증이 일었다.
어디로 간 걸까.
두산을 기다리는 동안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짐 가방에 든 옷을 옷장에 걸어 두려고 열었다가 수영복을 발견했다. 뭐 하러 챙겨 왔나 몰랐다.
전에 산 촌스러운 꽃무늬 바지는 일부러 가방 안쪽으로 밀어 넣고 두산의 것을 들었다. 화려한 색의 숏 팬츠가 여간 멋져 보이지 않았다. 수일은 그걸 제 앞에 대고 거울을 보았다. 이 정도는 돼야 수영장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좀 짧나. 저한테 짧으면 두산에겐 얼마나 짧으려나 싶어서 입술을 실룩거렸다. 두 겹이든 세 겹이든 백 프로 티가 날 게 뻔했다. 하여간 물건 자랑하는 거는 오죽이나 좋아했다. 수일은 구시렁대며 그 수영복도 구석에 밀어 넣었다.
두산의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 폴로셔츠에 청바지를 옷걸이에 먼저 걸어 두었다. 손으로 몇 번을 매만져 구겨진 주름을 펴고, 제 것은 대충 걸었다.
수일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강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남산도 지척에 있었다. 아래로 이태원이 있었지만, 거긴 예전에 가죽점퍼를 사러 한 번 가 본 적 말곤 없었다. 비싸서 그냥 돌아오긴 했지만, 그때 한 벌 사 둘 걸 그랬다고 나중에 후회한 기억이 났다.
참, 상엽이한테 전화해야지. 서울에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해 놓고 깜빡했다. 호텔 방 수화기를 들어 상엽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이면 대체로 집에 있었다. 미싱 공장에 다니시는 부모님 대신 상엽이 밥을 하고 집안일을 했다. 원래 집안일을 도맡았던 막냇동생이 시집을 가는 바람에 상엽의 몫이 된 지 몇 년이 되었다.
- 여보세요.
자다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여보세요? 상엽이니?”
- 어, 형. 어디야?
“나 서울.”
- 벌써? 아니, 이렇게 막 멀리까지 와도 괜찮은 거야?
“응. 괜찮으니까 퇴원했지.”
- 눈 검사는 어쩌구?
“검사는 내일이야.”
- 어휴, 정말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다. 나도 맞아 봤지만,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사람을 때릴 일이야 그게? 자다가도 열불이 나서 벌떡벌떡 깨요, 내가.
상엽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어서 수일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다 지난 일인데 뭐. 별일 없지?”
- 어. 나야 늘 그렇지. 근데, 우리 언제 만나?
“오늘이나 내일 밤에 너 일하는 데루 갈까? 간 김에 사장님께 인사도 좀 드리구.”
- 나야 좋지. 형 얘긴 사장님한테 미리 해 둬서 얼굴 보면 좋아할 거야. 근데 그 같이 온다는 친구는 괜찮겠어? 많이 어리다며? 우리 나이트 분위기 영 구린데.
“뭐, 싫다고 하면 우리 둘이서만 보구.”
- 그래. 솔직히 나도 그게 편할 것 같애. 걔 부산 애라며?
“응.”
상엽은 친구는커녕 지인 하나 만들지 못하는 수일이 어떻게 열한 살이나 어린 부산 남자와 친해졌는지 의아해했다.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수일도 종종 어쩌다 두산과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신기했으니까.
“나중에 시간 정해지면 또 전화할게. 참, 넌 몇 시부터 나이트에 있니?”
- 7시부터. 6시 반까지 출근이라 내가 전에 알려 준 그 번호로 전화하고 나 찾으면 돼.
“응. 이따가 전화할게.”
수일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두산을 기다리다 지친 수일은 용기를 내 호텔 방을 나섰다. 물론 나가기 전에 옷매무새를 여러 번 고치고 두산이 가져온 무스를 찍 짜서 앞머리를 올렸다. 이만하면 초라해 보이지 않겠지, 입꼬리를 올려 웃는 연습까지 했다. 그러다 금세 풀이 죽어 다시 침대에 앉기를 반복했다.
30분을 고민하다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 카페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시야가 탁 트였다. 가까이는 호텔에서 가꾼 정원이 보이고 멀리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는데, 수일이 자리에 앉자마자 피아니스트가 자리를 떠났다. 연주가 끝난 모양이었다. 30분 동안 고민하지 않았으면 연주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수일은 아쉬워하며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평일 낮이라도 제법 사람이 있었다. 재킷까지 차려입은 중년의 사업가와 외국인도 보였고, 보라색 투피스를 차려입은 여사님도 있었다. 그들은 익숙한 모습으로 호텔 웨이터를 부리고, 우아하게 음료수를 마셨다.
고급 호텔에 한번 가 봤다고, 수일도 전보단 자신이 덜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땐 얼굴에 멍도 들고 옷도 후줄근했지만, 지금은 여기 앉은 누구에 뒤지지 않을 만큼 멀끔하게 차려입었다. 수일은 부러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레모네이드를 들이켰다. 생각보다 엄청 셨다. 다신 시키지 말아야지. 밥값보다 비싼 음료값을 계산하며 수일은 다짐했다.
한 바퀴 돌다 오겠다던 두산은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어디에 갔다 왔는지 땀 범벅이었다. 두산은 허물을 벗듯 옷을 벗고 샤워하러 들어갔다. 수일은 두산이 벗어 둔 옷을 정리하려고 집어 들었다.
툭 하고 열쇠 하나가 떨어졌다. 정교하지 않은 열쇠는 지하철 사물함이나 책상 서랍 같은데 사용할 만한 모양이었다. 호텔 사물함인가? 수일은 고개를 갸웃하고 열쇠를 도로 바지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두산은 물기도 제대로 닦지 않고 샤워 가운만 걸친 채 수일에게 다가와 입을 맞췄다. 치약 맛이 났다.
“마이 기다맀나?”
“조금.”
차가운 물로 샤워했는지 닿은 몸이 서늘했다.
“어디 다녀온 거야?”
“남산.”
“여태?”
“어. 그냥 한 바퀴 돌다보이 시간이 이래 돼삤네.”
“더운데 왜 그랬어?”
“힘이 남아돌아서 그란다 와?”
두산은 장난스레 대답하고 다시 입을 맞췄다. 쪽쪽, 소리를 내다가 수일의 입술을 갈라 혀를 밀어 넣었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끌어안았다. 두산은 수일을 그대로 침대 뒤로 밀어 눕히고 수일의 몸에 올라탔다. 허리만 세워 샤워 가운을 묶었던 끈을 풀었다.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드러났다.
발정 난 멍멍이도 아니고, 어제부터 밤도 아닌데 왜 이러나 몰랐다. 벗은 몸을 바짝 밀착시킨 두산은 수일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새 옷이 다 구겨지겠네. 속으로 불평하다 못 이기는 척 두산의 키스를 받았다.
손을 내려 벗은 복근을 쓰다듬었다. 서늘했던 피부에 열이 오르고 질척한 키스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두산의 손이 수일의 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수일은 손을 더 내려 두산의 발기한 성기를 잡았다. 입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쭙쭙 소리를 내며 서로의 입술과 혀를 빨아 댔다.
두산의 커다란 손이 수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퇴원하기 전 병원 근처 미용실에 가서 자른 머리 모양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두산은 미용실 명함까지 받아 왔었다.
수일의 손에 가득 담긴 성기가 뜨거웠다. 수일은 고개를 숙인 뒤 손에서 울어 대는 걸 살살 잡아당겼다. 두산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쪽쪽, 가볍게 입맞춤하고 두산이 몸을 세웠다. 무릎을 꿇은 채로 수일의 얼굴까지 기어왔다.
“빨아도.”
수일의 머리 뒤로 베개 두 개를 넣어 주고, 입 가까이에 커다란 것을 들이밀었다. 수일이 입술을 다물자, 제 손으로 발기한 것을 잡아 귀두로 입가를 눌렀다. 쉴 새 없이 액을 쏟아 내는 귀두가 붉었다. 수일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와? 빨기 싫나?”
흥분으로 거칠어진 숨을 겨우 다잡고 두산이 물었다.
“빨아 주세요, 서방님. 이렇게 말하면 빨아 줄게.”
수일의 말에 두산이 낮게 웃었다.
“하이고, 아 앞에서 먼 말을 몬 하겠네.”
“누구더러 애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수일도 따라 웃었다.
“윤수일 씨! 우리 말은 바로 합시다. 내가 서방이지 니가 서방이가?”
따지고 들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냅다 수일에게 입술을 부닥쳐 왔다. 잡아먹을 듯 수일의 입술을 제 입에 가두고 온 힘을 다해 빨아올렸다. 아아,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벌어진 입술 틈새로 두산의 두툼하고 힘센 혀가 들어와 휘저었다. 숨이 찼다.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이 입가로 흘렀다. 질척이는 키스 소리가 마치 구멍에 삽입이라도 한 양 요란했다.
“으흠. 하아….”
잠시 입술이 떨어진 새 수일은 겨우 한 번 숨을 쉬었다. 두산이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더 세게 맞물었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끌어안았고 두산은 서둘러 수일의 바지를 벗겼다. 두산은 몸을 둥글게 말고 수일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두 다리가 허공으로 들리고 엉덩이도 들렸다. 순간 몸이 뒤로 돌아갔다. 수일은 벗은 엉덩이를 두산의 얼굴에 들이민,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곧 축축하고 따뜻한 혀가 엉덩이 골을 타고 구멍을 지났다.
“흣!”
수일은 몸을 떨었다.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집요하게 구멍 주름을 핥던 혀가 안으로 들어오자 신음이 터졌다.
“아! 거기… 넣지 말라… 흐으, 그랬는데….”
“꼬치 넣지 말라 켔지 다른 건 개안타.”
두산은 수일의 엉덩이에 입을 대고 답했다. 엉덩이에 느껴지는 숨결에 수일은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다.
“거기서 말하지 말구.”
“니가 말 시킸다 아이가.”
“아우, 말하지 마.”
수일이 손을 뒤로 뻗어 엉덩이를 가리려 하자 두산이 키득댔다.
다시 혀가 진득하게 엉덩이 골에 붙었다. 수일은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쏟아 냈다.
“하… 흣, 으음… 거기… 좋아.”
수일이 좋다고 한 구멍 주름을 집요하게 핥더니, 혀를 세워 안으로 다시 침범했다. 허리가 튕겨 올랐다. 몸을 비틀었다. 두산은 수일의 양 발목을 한 손으로 꼭 쥐어 내리누르고 구멍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간지러움과 아찔한 쾌감에 수일의 허벅지가 사정없이 떨렸다. 수일은 머리를 베개에 비벼 대며 파닥거렸다.
혀로 구멍을 애무하는 동시에 두산의 손이 성기를 조몰락대자 수일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두산의 손 안에 사정했다.
“흐으… 하….”
여운이 제법 오래갔다. 그 여운만큼 숨이 찼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고통보다 쾌락이 더 컸기 때문에 수일은 내색하지 않았다. 수일이 한껏 느낄 때까지 애무를 멈추지 않던 두산의 혀가 떨어져 나갔다. 수일은 다리를 달달 떨며 몸을 돌렸다. 상체를 반쯤 세우고, 침으로 번들거리는 입을 크게 벌렸다.
두산은 기다렸다는 듯 큰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자지를 꼭 쥔 채 이번에도 귀두로 수일의 입술을 눌렀다. 영역 표시를 하는 짐승처럼 흘러나오는 액을 수일의 얼굴과 입술에 잔뜩 묻혔다.
성기가 수일의 입술과 볼에 닿을 때마다 두산은 낮고 깊은 신음을 흘렸다. 미간을 살짝 구기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수일은 두산이 인상을 쓰는 게 좋았다. 흥분 때문에 육감적인 아랫입술을 혀로 적시는 것도 좋았다. 두산의 표정 하나하나를 눈으로 지켜보았다. 입 안으로 단단하면서도 뭉클한 살덩이가 들어왔다.
구강에 가득 들어찬 것은 천천히 수일의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수일은 이가 닿지 않도록 입술을 오므려 보았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최대한 입을 벌려야만 받을 수 있는 크기라 늘 이가 닿았다. 성기가 조금씩 깊이 들어오자, 생리적으로 눈물이 고였다. 침을 삼키지 못해 두산의 성기에도 수일의 타액이 잔뜩 묻었다.
“흐읍… 씨발, 윽!”
두산의 커다란 손이 수일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허리 짓이 조금씩 빨라졌다. 한 달 만이라 그랬는지 호흡하는 법을 까먹은 수일은 숨이 막혔다. 한번 호흡이 어긋나자 아찔할 정도로 빠르게 공기가 부족해졌고, 공기가 부족해지자 구토증이 몰려왔다. 성기를 입 안에 넣은 채 수일은 헛구역질을 했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평소라면, 아니 최근의 두산이라면 지금쯤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두산은 멈추지 않았다. 수일이 괴로워 눈물을 흘리고 손등을 긁어 대는 대도 두 손으로 수일의 머리를 단단히 거머쥐고 사정하기 전까지 입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수일은 몇 번이고 저항하다가 겨우 호흡을 되찾았다. 눈물, 콧물에 침까지 질질 흘려 가며 겨우 두산의 움직임과 호흡을 맞춰 갔다.
갑자기 서운함이 몰려와서 수일은 울었다. 원망이 담긴 눈으로 올려다본 두산은 저를 보면서 아픈 표정을 지었다. 이로 긁어서 그런가 보았다. 더 아프게 해야지. 수일은 이를 세우고 제 입 안을 마구 드나드는 것을 억지로 받았다. 눈물이 가득 고여 그런지 두산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니 서운함도 심술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호들갑스럽던 사정은 웬일로 얌전했다. 씨발, 이를 악물고 낮게 중얼거린 두산은 수일의 입 안에서 성기를 빼내고 들썩이는 숨을 골랐다. 커다란 손이 수일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콧물도 닦아 주고 침도 닦아 주었다.
등을 구부려 쪽 키스를 해 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고했다.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아픈 듯했다. 수일이 서운해서 그렇게 들렸던 건지도 몰랐다. 두산은 평소와 다름없는데, 좀 전의 서운함과 원망이 아직도 남아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몰랐다.
두산은 커다란 가슴에 수일을 안고 토닥였다.
“배고프제?”
“응.”
“밥 묵고 우리 술 한잔하까?”
“응.”
두산은 수일과 마주 보았다. 다정한 눈으로 오래도록 수일을 바라보다가, 오른쪽 눈에 한 번 왼쪽 눈에 한 번, 입을 맞추었다. 두산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웃지 않으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수일도 웃고 말았다. 수일은 두산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수일은 이기는 법을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더욱 그랬다. 자존심을 세워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수일은 늘 두산에게 졌다. 이번에도 졌고, 앞으로 계속 지는 일만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수일이 아는 유일한 사랑 방법이니까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