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규가 복숭아를 내왔다. 이제 끝물인가. 복숭아가 달지 않고 싱거웠다. 그전까지 다 맛있었는데 괜히 서운했다.
수일은 복숭아를 먹으며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우리나라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일은 손기정 선수 이후 두 번째였고, 태극기를 달고 금메달은 딴 건 황영조 선수가 처음이라고 했다.
TV에선 같은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보여 주었지만 봐도 봐도 좋았다. 마라톤이라지만 웬만한 육상 경기만큼 속도감이 있었다. 저렇게 빨리 뛰는 줄은 몰랐었다.
“이야, 황영조 이제 돈방석에 앉겠다. 그지예, 행님?”
“저렇게 고생했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근데 태극기 달고는 첫 마라톤 금메달이라는데 기네스북 같은데 오르고 그러나?”
“아! 그랄지도 모르겠다. 기네스북에 밸의 밸기 다 오르던데 황영조도 당연히 올라야지예.”
덕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과자를 씹었다.
퇴원 수속을 하러 간 두산은 한참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다. 금요일 마지막 진료를 다 끝냈음에도 나가기 전에 수일을 진료한 의사들을 모두 만나고 오겠다고 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복숭아 더 남았어요?”
“예. 하나 남았는데 깎아 드리까예?”
“네. 남기고 가면 아까우니까.”
단맛이 덜해도 복숭아는 복숭아였다. 덕규는 수일의 말에 벌떡 일어나 하나 남은 복숭아를 과도로 예쁘게 깎아 접시에 담아 주었다.
이른 아침부터 두산은 담당 간호사들에게 케이크와 양산을 하나씩 선물했고, 같은 층 병실마다 백설기도 돌렸다. 잔치도 아닌데 왜 저러나 싶었지만, 수일도 29일간의 병원 생활이 끝나서 기쁜 마음에 두산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다.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애도 아니고.
점심때는 회식도 잡혀 있었다. 수일의 퇴원 기념으로 두산이 마련한 자리였다. 고깃집에 미리 예약을 해 두고 숙소 동생들부터 삼락 형님, 은아 씨, 밴드들까지 모두 불렀다. 현철과 정애 씨도 오면 좋으련만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가 있었다. 내일인가 모레 돌아온다고 했으니 나중에 따로 저녁이라도 먹어야지 했다.
“가자. 볼일 다 끝났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두산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덕규는 수일의 손에서 일회용 접시를 받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먼저 떠났다. 수일은 TV를 끄고, 한 달을 지냈던 병실을 휘 둘러보았다. 시원했다. 섭섭하진 않았다.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간호사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두산이 선물을 돌리긴 했어도, 간호사들이 두산에게 여간 시달린 게 아니었던지라 얼굴 보기가 조금은 민망했다. 제일 연장자인 간호사가 ‘다시는 아프지 마이소’ 했다. 농담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진심 어린 충고였다.
“참, 두산아. 복숭아 말야 안 달아.”
“그래? 내 맨날 사던 데서 샀는데?”
“끝물인가 봐. 싱겁더라.”
“아이다. 그 사장님이 억수로 달다 케서 샀다. 씨발, 가기 전에 한마디 해야겠네.”
“어우, 됐어. 그냥 해 본 소리야.”
수일은 이러면서 두산의 팔짱을 꼈다. 두산이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퇴원하니까 좋제?”
“응.”
“내도 억수로 좋다.”
씨익 웃으며 수일의 볼을 툭툭 쳤다.
아픈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일의 안색이 밝았다. 몸은 입원 전보다 마르긴 했으나 잘 챙겨 먹이는 두산 덕에 회복이 빨랐다. 물론 퇴원 후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진료를 받으러 와야 하지만, 간호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두산은 수일에게 지극정성이었다. 고맙고 기특했다.
덕규가 차 시동을 걸어 두고 에어컨까지 켜 두었다. 수일은 뒷좌석에 앉았고, 두산이 덕규 옆에 앉았다.
“고깃집으로 바로 모시겠습니다.”
덕규는 이렇게 말하며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수일은 창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올여름은 태풍다운 태풍 한번 지나가지 않았다. 어젠가 그제 태풍이 온다는 소린 들었는데 바람만 좀 불었을 뿐 비도 약간 오다 말았다. 수일은 한창 더운 7월을 병실에 누워만 있어서, 더위 한번 겪지 않고 여름을 무사히 났다.
창밖으로 손을 조금 내밀었다. 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간질간질했다. 수일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가로수를 눈으로 음미했다.
덕규는 운전만 해 주고 일이 있다며 바로 갔다. 아니 두산이 보냈다. 오성관 식구가 아니라 같이 있으면 번거롭다고 했다. 밥 한번 같이 먹는 게 뭐가 그리 번거로운 일이라고 저러나 몰랐다. 수일은 덕규를 부려 먹기만 하고 점심도 못 먹여 보내 미안했다.
고깃집에서 잡아 준 방에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일이 들어가자마자 동생들이 박수 치고 환호했다. 괜히 민망해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막내 영수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행님, 퇴원 축하드립니다. 만수무강 하십시오.”
“고마워요.”
“수일아, 퍼뜩 앉아라. 고기나 묵자.”
삼락 형님이 엉거주춤 일어나 수일의 손을 잡아당겼다.
“두사이 니도 앉아라.”
은아 씨가 두산을 챙겼다. 곧, 붉고 윤기가 나는 고기가 나왔다.
“소고깁니다. 눈치 보지 말고 마이들 잡수이소.”
두산의 말에 환호가 터졌다. 비쌀 텐데. 수일은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할 뿐, 고기가 익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맛있었다. 옆에 앉은 삼락 형님이 수일에게 맥주를 따라 주었다.
“수일이 니 술 마시도 되제?”
“당연히 되지. 내는 맹장 수술하고 일주일 만에 술 마싰다.”
마스터의 말에 수일은 삼락 형님이 건넨 맥주잔을 받았지만, 금방 두산에게 뺏겼다.
“되기는 뭘 돼? 맹장하고 같습니까? 앞으로 한두 달은 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말라 켔습니다.”
“아니, 그기, 의사들 하는 말 다 안 들어도 되는데….”
기가 죽은 마스터는 구시렁대며 제 잔에 든 맥주를 마셨다.
수일은 소심한 마스터를 보며 웃었다. 변한 게 없었다. 삼락 형님도 은아 씨도 그리고 마스터도. 키보드 웅이는 여전히 불만이 많았고, 영수는 여전히 막내였다. 현철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마치 부산에 내려와 처음 고기를 구워 먹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연기가 가득한 거실을 오가며 서로 술을 따라 주고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눴다. 그때 웅이가 수일의 옆에서 울었던가.
그러고 보니 댄서 아가씨들과 정수가 없었다. 다른 약속이 있는 건지도 몰랐다. 수일과 친하게 지낸 사이도 아닌데, 퇴원했다고 다른 일을 취소해 가며 올 리가 없었다. 그래도 고긴데, 나라면 왔을 텐데 하며 수일은 부지런히 먹었다.
두산은 수일의 대각선에 앉아 수일에게 고기를 챙겨 주고 테이블에 쌈이나 밑반찬이 떨어지면 바로 종업원을 불러 채웠다. 수일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이고, 여 입이 수일이밖에 읍나? 두사이 니도 으지간히 한다 으지간히 해.”
보다 못한 은아 씨가 핀잔을 주었다.
“내가 또 뭘 했다고 그라노? 아나, 누야도 마이 드이소.”
이러면서 소고기 세 점을 은아 씨 접시에 올려 주었다. 은아 씨는 그런 두산의 팔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리고 고기를 먹었다.
“수일이 니는 16일 날 복귀 한다매?”
“네. 계약이 한 달 더 남았으니 복귀해야죠.”
“그래, 잘 생각했다. 돈은 벌어야 안 되겠나.”
수일의 복귀를 반기는 건 은아 씨였다. 돈이 없어서 늘 고생하는 은아 씨가 수일의 주머니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사장이 와서 계약이 한 달 더 남았으니 무대로 복귀하라 얘기했을 때 수일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말은 안 했지만, 잘릴까 봐 전전긍긍했었다. 두산은 미리 들어 알고 있었는지 시큰둥하게 반응했었다. 인상을 썼던가. 수일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회식은 두 시간 만에 끝이 났고, 모두 대낮부터 술이 올라 벌게진 얼굴로 식당을 나섰다. 누구는 택시를 타고 누구는 버스를 타러 갔다. 은아 씨는 삼락 형님의 차를, 마스터와 밴드는 영수가 모는 빨간색 프라이드를 타고 사라졌다.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은 두산은 밀레니엄으로 돌아간 덕규 대신 차를 몰았다.
“어디 아픈 데는 없나?”
“응. 괜찮아.”
“쪼매만 아파도 내한테 말해야 된다. 알겠제?”
“응.”
수일은 두산을 돌아보며 웃었다. 운전 중이라 앞을 향하고 있던 두산이 수일의 시선에 슬쩍 돌아보며 웃어 주었다.
밀레니엄 간판이 보이고 커다란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찌나 반갑던지 수일은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마치 정든 고향을 떠나 살다 몇십 년 만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차는 막힘없이 숙소로 향했다.
두산은 먼저 수일을 올려 보내고 짐들을 챙겨 왔다. 집 안은 전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꽃을 꽂아 둔 화병이 안방과 거실 장에 놓여 있었다. 안방의 침구가 모두 바뀌었고, 방마다 하얀색 레이스 커튼이 달려 있었다. 거실에도 기다란 레이스 커튼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신혼집 같았다.
“맘에 드나?”
“응.”
수일은 두산에게 달려가 목을 끌어안았다. 두산이 수일을 꼭 안아 주었다.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이제 아프지 않기로 약속했고, 누구에게 맞지 않기로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무조건 두산에게 말하기로 약속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헌신적으로 저를 돌봐 주는 두산에게 수일은 그러겠다고 다짐을 했다.
수일은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두산과 눈을 마주하고 웃었다. 두산도 수일을 보며 웃었다. 쪽, 입술을 맞댔다. 쪽쪽쪽, 두산은 장난을 하듯 빠르게 입을 맞추었다. 수일이 키득댔다.
“의사 선생님이 뭐래?”
은근히 물었다.
“아직은 안 된다 카드라. 그거 빼고는 다 해도 되고.”
“그거 빼곤 다 하고 있었으면서. 새삼.”
“다 하기는.”
“다 했어.”
“뻥 치시네. 내 일기를 썼다, 일기를. 수첩 꺼내 보까?”
두산은 정말 꺼낼 수첩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진짜로 썼나. 수일은 눈알을 잠깐 굴리다가, 거짓말이라고 확신하고 두산을 흘겨보았다.
“뭘 그런 걸 일기로 쓰니?”
“쓸 수도 있지. 맞다. 니 퇴원하면 선물 준다 켔다 아이가. 뭐 주끼고?”
두산은 슬쩍 수일의 엉덩이를 움켜쥐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닿은 아래가 벌써 딱딱해진 거로 봐선, 오늘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수일은 피식 웃었다.
“니가 전에 말한 거.”
전에 말한 게 어디 한두 개냐만, 그래도 그중 두산이 노래를 불렀던 게 있었다. 말하고 나니 귀까지 열이 올랐다. 수일의 말에 두산의 입꼬리가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진짜로?”
“응. 진짜로.”
“참말로?”
“응. 참말로.”
수일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두산은 거칠게 입술을 밀어붙였다. 박치기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아주 탁탁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진짜제?”
“아우, 아퍼.”
수일은 흥분한 두산의 몸에 밀려 거의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내 준비하까?”
“응. 먼저 씻고 와.”
“알았다. 내 퍼뜩 씻고 오께.”
두산은 몸을 돌렸다가도 다시 수일을 보고 진짜가? 재차 물었다.
“빨랑 안 씻으러 가면 도로 물릴 거야.”
“알았다 알았다. 간다.”
두산은 욕실로 걸어가면서 허물을 벗듯 훌러덩 옷을 벗었다. 그걸 보니 두산이 저런 사람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수일은 헛웃음을 웃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모두 닫고 선풍기를 미리 틀어 두었다.
화장대 위 화병에 꽂힌 꽃 냄새를 맡으며 거울을 보았다. 두산은 수일의 코가 전보다 더 예뻐졌다고 매번 감탄했지만, 클레오파트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코가 바뀌진 않았다. 그냥 예전 그대로였다. 매부리코가 되거나 콧대가 휠까 봐 걱정했는데 정말 멀끔하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수일은 오른손을 쫙 펴서 오른쪽 눈을 가렸다. 다친 왼쪽 눈은 아직 괜찮았다. 안압도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고, 안구 운동 장애도 사라졌다. 시야도 시력도 나쁘지 않았다. 당장은 수술해야 할 정도의 이상은 없었다.
다만, 이러다가 갑자기 시력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의사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서울로 가서 큰 병원에서 검사받아 보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다. 소견서를 받아 든 순간, 수일은 자기 눈이 진짜로 괜찮은 건 아니구나 하고 짐작했다.
두산은 의사가 알려 준 병원에 당장 전화를 걸었다. 유명한 의사라 들었는데 두산의 말에 따르면 예약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진료받을 줄은 몰랐는데, 수요일로 예약이 잡혔다. 그래서 내일 그라나다를 타고 서울에 가기로 했다.
계약이 끝이 나야 서울로 돌아갈 줄 알았던 수일은 눈 때문에 두산과 함께 서울로 가게 되었다.
솔직히 불안하기보다는 설렜다. 수일은 두산과 함께 제가 나고 자란 곳에 갈 예정이었다. 두산과 손을 잡고 명동과 강남 거리를 거닐 생각에 들떴다. 삶에 찌들어 정작 수일도 즐겨 본 적 없던 거리였지만, 두산 덕에, 아니 눈 덕에 그럴 수 있게 되었다.
두산은 수일도 가 본 적 없는 63빌딩을 가 보자고 했고, 남산 타워에도 오르자 했다. 두산이 서울을 여기 부산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는데.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막연히 기대했다.
그리고 상엽도 만날 예정이었다. 부산에 놀러 오라고 했던 수일이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을 뚝 끊었다고 얼마나 걱정을 하던지. 지난주에야 상엽에게까지 생각이 미친 수일은 상엽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었다.
당장 병문안을 오겠다는 걸 겨우 말리고, 안과 예약에 대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렇게 약속을 잡았고 두산도 흔쾌히 허락했다. 저보다 한참 형님들과도 잘 지내는 두산인지라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고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언제 입원한 적이 있기라도 했나 싶을 만큼 아득하게 느껴졌다. 수일은 천천히 오른손을 내렸다.
쿵쿵, 소리와 함께 두산이 젖은 몸으로 나왔다. 단단히 발기한 거대한 성기가 수일에게 얼른 만져 달라고 고갯짓을 했다.
“좀 닦고 나오지.”
핀잔을 주자 두산이 웃었다.
“어차피 젖을 낀데 머 하러 닦노? 니도 퍼뜩 씻고 온나.”
“그건 어딨어?”
“지금 주까?”
“응. 입고 나오게.”
“그랄래?”
“그럼, 여기서 입어?”
“아니, 입고 나오면 내야 고맙지.”
두산은 이렇게 말하며 젖은 몸을 움직여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 손바닥만 한 쇼핑백을 꺼내 수일에게 슬쩍 건넸다. 다 벗고 있으면서 뭐가 부끄러운지 검지로 쓱 코를 문질렀다.
“니한테 크지는 않을 낀데, 그 꼬치는 다 안 들어간다.”
“나두 알아.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해?”
수일은 쇼핑백을 빠르게 낚아채고 화장대에서 일어섰다. 두산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뽀뽀 대신 손가락으로 입술을 꼬집어 주었다. 아아, 엄살을 부리는 두산은 아까부터 광대를 실룩이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좋니?”
“어. 내 억수로 좋다.”
“못 말려 정말.”
바보같이 웃는 두산이 밉지 않았다. 한창때면서 저를 위해 한 달을 참았다. 제 말로는 소년원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오래 안 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 말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수일은 뒤꿈치를 들어 두산에게 쪽 뽀뽀를 해 주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다 못해 배꼽을 향해 달려드는 성기를 슬쩍 건드렸다.
“이거 간수 잘한 선물이야. 앞으로도 잘해.”
“예. 앞으로도 꼬치 간수 잘하겠습니다.”
꾸뻑 고개까지 숙여 가며 대꾸하는 목소리가 야무졌다.
둘은 키득키득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퍼뜩 갔다 온나, 수일의 등을 미는 두산은 안달을 냈다. 부러 천천히 욕실로 걸어가는 수일의 뒤에서 두산이 침대 위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일은 슬쩍 쇼핑백을 열어 보았다. 속이 훤히 비칠 것 같은 흰색의 레이스 란제리가 얌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게 나한테 들어나 가려나. 여자 속옷이라면 모르는 게 없어서 더 궁금해졌다.
“빨리 온나!”
커다란 소리가 수일을 재촉했다. 수일은 짧게 웃으며 욕실 문을 열었다.
얼마 만의 제대로 된 샤워인지 몰랐다. 수일은 이를 닦고 꼼꼼히 몸을 씻었다. 희멀건 배에 붉은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흉이 오래가려나.
수일은 손끝으로 꿰맨 자리를 살짝 건드렸다. 아프진 않았다. 갈비뼈 금도 거의 붙어 숨을 쉬거나 웃어도 괜찮았다. 달리기나 격렬한 운동을 제외하고 산책이나 등산 같은 가벼운 운동은 괜찮다고 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쇼핑백을 열었다. 여성용 속옷. 브래지어와 팬티 말곤 이름도 몰랐던 것들을 호스트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2차를 가지 않아도 룸 안에서 별의별 짓을 다 했었기에 브래지어 후크를 열고 잠그는 건 눈 감고도 할 수 있었다.
수일은 조심스레 안에 든 것을 살폈다. 부피가 작아 몰랐는데 가터벨트에 망사 스타킹까지 있었다. 하늘하늘 어찌나 약해 보이는지 잘못하다간 레이스가 찢어지겠다 싶었다.
“변태.”
수일은 피식 웃으며 브래지어를 먼저 들었다. 비싼 재질이었다. 싸구려는 살에 쓸리는 부위가 따가운데 이건 달랐다. 부들부들 살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직접 수를 놓은 듯 조잡함이라곤 없는 가녀리고 우아한 레이스였다. 손을 갖다 대 보자 생각보다 많이 비쳐 무척 야했다. 두산은 어디서 이런 걸 샀나 몰랐다.
나풀거리는 작은 레이스가 달린 어깨끈에 팔을 하나씩 걸치고 후크를 잠갔다. 예쁘고 뽀얀 브래지어는 젖가슴 부위만 얇은 망사로 되어 있어 민망했다. 유두가 망사 위로 볼록 솟아 제 존재를 드러냈다.
수일은 괜히 귀까지 벌게져서 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 거울에 상체를 비춰 보았다. 말라비틀어진 초라한 남자를 애써 외면하며 속옷에만 집중했다. 납작한 가슴이 입체적인 레이스와 망사 덕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나쁘진 않네.”
일부러 괜찮은 척, 거울에서 시선을 뗀 수일은 가터벨트를 들었다. 어깨끈과 같은 스타일의 레이스로 된 가터벨트에는 스타킹을 고정하기 위해 각각 세 개의 서스펜더가 매달려 있었다.
수일은 코르셋처럼 끈으로 된 연결 부위를 풀어 골반에 반쯤 걸치고 손을 뒤로 돌려 리본을 만들어 잘 묶었다. 남거나 부족함 없이 딱 맞았다. 여자 속옷인데 어떻게 제 몸에 꼭 맞는지 몰랐다. 나중에 두산을 쥐 잡듯 잡아야겠다 생각했다.
이어 흰색의 망사 스타킹을 신었다. 스타킹 밴드 부분에도 한 뼘 크기의 화려한 자수가 수놓아져 있었다. 어차피 살이 다 비쳐서 입은 거나 안 입은 거나 똑같은데 귀찮게 왜 스타킹까지 신으라고 하나 몰랐다. 세면대에 몸을 기대고 스타킹을 당겨 올렸다. 반들반들한 망사가 다리를 감싸는 느낌이 은밀하고 자극적이었다.
수일은 서스펜더 클립으로 스타킹을 하나하나 고정했다. 앙증맞은 실크 리본이 클립을 감춰 주었다.
마지막으로 팬티를 집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했다. 이게 들어가려나,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한 발씩 다리를 넣었다. 이것 역시 잘 맞았다.
아직 발기하지 않은 상태라 성기는 어떻게든 팬티 안에 들어갔고, 아슬아슬하게 음모를 가릴 만큼 올라왔다. 레이스라 어차피 다 비쳤지만 그래도 민망해서 좀 더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고환이 삐져나왔다. 이왕이면 좀 큰 팬티로 사다 줄 것이지. 여자 란제리를 입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수일은 삐져나온 고환을 보자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런 걸 입어 달라고 조른 두산이나 그걸 입어 주겠다고 한 저나 똑같았다. 누가 누굴 욕하겠는가. 수일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다가 샤워 가운을 집어 들었다.
욕실을 나가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했다. 괜히 긴장됐다. 두산이 실망하면 어쩌나, 생각보다 별로라고 하면 어쩌나 수일은 그 생각을 하며 욕실 문을 열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두산과 딱 마주쳤다. 란제리를 입는데 집중한 나머지 두산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던 수일은 인기척에 화들짝 놀랐다.
“어우, 깜짝이야. 너 왜 여기 있니?”
“하도 안 나와서 자빠짔나 걱정돼서 와봤지.”
되레 두산이 큰소리를 쳤다.
“걱정은 무슨. 빨랑 가.”
수일은 두산을 툭 밀치고 씩씩하게 안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가운 안에 란제리를 입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한 순간 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고, 섣불리 그러겠다고 한 걸 후회했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어째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게 선 채로 가운을 벗어야 하나 아니면 침대 위로 올라가야 하나 망설이는데 뒤에서 두산이 수일을 끌어안았다. 샤워 가운 안으로 손을 들이밀고 망설임 없이 가운을 끌어 내리는 동안 수일의 목뼈를 따라 입을 맞췄다. 쪽쪽 젖은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
구름에 가려졌던 해가 고개를 내밀어 방 안이 더 밝아졌다. 하늘하늘 레이스 커튼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뜨거웠다. 아니면 두산의 축축하고 뜨거운 숨결이 닿아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입맞춤에 수일의 입에선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샤워 가운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전히 란제리 차림인 수일을 뒤에서 알몸으로 끌어안은 두산은 두꺼운 팔 하나로 수일의 허리에 감았다. 입술과 혀가 척추뼈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수일은 혀가 닿을 때마다 몸을 움찔댔다. 절로 발가락이 오므라들고 허리가 앞으로 굽었다. 등에 닿은 두산의 성기가 젖어 팔딱거렸다.
“흐음.”
수일은 제 허리를 안고 있는 두산의 팔을 움켜쥐었다. 날개뼈 위를 맴돌던 혀가 브래지어 끈을 따라 어깨로 올라왔다. 쪽쪽, 어깨선을 따라 입을 맞춘 두산은 수일을 돌려세웠다. 선풍기 바람이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열기로 온몸이 뜨거운데 바람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음미하듯 수일의 몸을 내려다보는 눈은 끈적한 정욕으로 번들거렸다. 키스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두산은 손을 뻗어 수일을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었다.
“우째 이래 잘 어울리지?”
두산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수일은 안아 달라는 표시로 두 팔을 들었다. 두산은 망설임 없이 다가와 수일을 당겨 안고 키스했다. 입을 크게 벌려 서로의 혀를 머금고 빈틈없이 입술을 맞물었다. 동시에 크고 두툼한 손이 수일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움켜쥐는 힘에 팬티가 힘없이 딸려 올라갔다.
아플 정도로 엉덩이를 움켜쥐던 손이 팬티 안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발기한 것이 이번엔 수일의 배에 닿았다. 액에 젖은 자지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물기를 머금은 채 꿈틀댔다.
사정없이 혀를 빨아 당기는 아릿한 감각에 수일은 몸을 비틀었다. 두산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입 안에 담았다가 놓았다. 하아,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아쉬워서 수일은 입을 더 크게 벌리고 키스를 요구했다. 수일의 행동에 흥분한 두산은 입술을 짓이기듯 겹쳐 뭉갰다. 벌어진 입 새로 제 혀를 급히 밀어 넣고 입 안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방 안은 거친 숨소리와 깊은 신음 그리고 젖은 접촉음만 가득했다. 키스만 할 뿐인데도 서로 안달이나 끙끙 앓았다. 한참을 입술을 탐하던 두산은 키스를 멈추고 혀를 길게 빼 수일의 목덜미를 쭉 핥아 내렸다. 목선을 따라 입술을 내리더니, 수일에게서 몸을 뗐다.
“씨발, 이래 예쁠 줄 내 진짜로 몰랐다.”
두산은 탄성을 뱉으며 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 끈을 검지로 훑었다. 간지러워 수일이 상체를 움츠리자, 얇은 끈이 위팔로 흘러내렸다. 그 끈을 다시 수일의 어깨 위에 올려 주고, 말라서 뼈가 불거진 어깨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아까 수일은 거울에 비친 형편없는 몸을 애써 외면하며 괜찮다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변태같이 여자 속옷을 입은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 수일은 차마 거울을 직시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두산이 저를 예쁘다고 해 주니 수일은 안심이 되었다.
두산의 손가락이 가슴 주위를 맴돌다 얇은 망사로만 덮인 유두를 툭 건드렸다. 자극에 수일의 몸이 흔들렸다. 수일은 어깨를 안으로 다시 말았고, 두산은 그러지 말라는 듯 커다란 손으로 품을 파고들었다.
겨드랑이를 네 손가락으로 지지하고 엄지로 유두를 훑고 지나갔다. 망사의 작은 구멍들이 엄지를 따라 유두를 자극했다. 수일이 전율과 쾌감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열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전신이 뜨거웠다.
수일은 손을 뻗어 두산의 성기를 쥐었다. 이번엔 두산이 신음을 뱉으며 몸을 움찔댔다. 액이 가득한 자지에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집요한 시선은 서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서로를 갈망했다.
손으로 만지는 것을 멈춘 두산은 커다란 몸을 구부려 망사 위로 솟은 유두를 입에 물었다. 브라와 함께 빨려 들어온 유두를 혀로 꾹꾹 눌렀다가 원을 그리며 희롱했다.
“흐으. 읏.”
츄룹, 가슴이 빨리자마자 몸이 튕겨 올랐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수일은 두산의 어깨를 꼭 붙잡았다. 다리가 달달 떨렸다. 소변이 마려운 것처럼 무릎이 절로 모였다. 다리를 비비 꼬며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두산아, 으흐… 나 힘들어.”
수일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두산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수일의 골반을 단단히 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 자세로 혀를 길게 빼 팬티 위를 핥았다. 여린 레이스 위로 느껴지는 혀는 맨살에 닿는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흣!”
죽어 있던 성기가 두 번의 애무에 부피를 키웠다. 작은 레이스 팬티는 발기한 성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 아래로 내려갔고, 그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던 음모가 드러났다. 두산의 시선이 발기한 성기로 향했다. 입으로 해 주려나 잔뜩 기대하고 내려다보았는데, 두산은 성기 대신 아랫배 살을 입 안에 머금고 쭈웁쭈웁 빨았다.
“흐응… 해 줘. 빨아… 줘.”
참지 못하고 수일이 먼저 말했다. 수일의 애원에도 두산은 느긋하게 혀로 음모를 빙빙 돌려 가며 장난을 치고, 여린 배의 살들을 핥아 올렸다. 두산의 입술이 지나간 배엔 붉은 자국이 남았다.
“얼른, 하윽! 해 줘… 두산아.”
수일은 간신히 버티고 서서 몸을 배배 꼬았다.
“빨아주세요, 서방님. 이래 말하면 해 주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는 낮고 은밀했다. 너무 얄미워서 두산의 어깨만 꽉 쥐었다.
“아니… 그냥 해. 빨랑.”
“니가 알아서 해라. 내는 안 급하다.”
두산이 흥분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괜히 여유 있는 척했다. 수일도 오기가 생겼다.
“됐어. 그럼 나 자위할 거야.”
수일은 두산의 어깨를 밀어냈다. 밀려날 애가 아닌데 수일을 쉽게 놓아주었다. 수일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침대에 앉았다.
“나 자위할 거니까, 너도 내 앞에서 해.”
자위 정도야 지난 한 달 병원에 있으면서 숱하게 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수일은 말을 끝내자마자 팔을 등 뒤로 짚고, 두 다리를 침대 위로 끌어 올렸다. 두산이 보지 못하게 일부러 무릎을 세워 오므렸다.
“하, 씨발! 내 하께. 당장 하께!”
좀 전까지 맘대로 하라던 두산은 스프링처럼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수일의 앞으로 와 섰다. 보란 듯 제 성기를 오른손으로 꽉 쥐었다.
“내 한다.”
뜨거운 햇살을 받은 두산의 몸에 근사하게 그늘이 졌다. 어쩌면 저리도 몸이 좋을까. 수일은 경외의 눈으로 두산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무릎을 벌렸다. 이미 발기한 성기는 물을 머금어 팬티를 흠뻑 적셨다. 두산의 침과 제 성기에서 흘러나온 액이 묻어 음모에는 윤기가 흘렀다.
수일은 뒤로 짚고 있던 손을 앞으로 가져와 팬티 속에 넣었다. 그 동작에 브래지어 끈 한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툭, 스타킹을 물었던 클립 하나도 풀렸다.
모든 소리가 너무도 적나라했다. 두산이 제 성기를 아래위로 흔들 때 나는 질꺽이는 소리, 수일이 제 성기를 조몰락대는 쯔물거리는 소리까지.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온갖 음란한 소음들이 방 안에 가득했다.
수일은 흥분으로 눈이 절로 감겼다. 목이 뒤로 넘어갔다.
“씨발, 수일아, 내 보고… 흐읍!”
제 성기를 쳐 대며 두산이 애원했다. 수일은 간신히 눈을 떴다. 짐승 같은 몸을 한 남자가 거대한 자지를 손에 쥐고 수일을 향해 음란한 몸짓을 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갈색 피부, 꿈틀거리는 근육들. 수일에겐 두산이 포르노였다.
흥분으로 손짓이 빨리지는 두산과 달리 수일은 나른했다. 손이 점점 더 느려졌다. 두산을 눈에 담고 싶었다.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두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작은 팬티 속에 발기한 성기를 담아 두기 힘들었다. 수일은 걸리적거리는 레이스 팬티를 벗으려 엉덩이를 들었다. 허벅지까지 잡아 내린 다음 다리 하나를 들어 발을 빼냈다. 툭, 스타킹을 지지하던 클립 하나가 또 풀어졌다. 레이스 팬티는 돌돌 말린 채, 수일의 발목에서 빠져나갔다.
수일의 행위를 지켜보던 두산은 팬티를 벗어 던지는 순간 달려들었다. 먹이를 발견한 육식 동물처럼 잽싸게 움직여 수일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투둑, 스타킹을 물고 있던 클립이 또 하나 떨어져 나갔다. 수일의 다리는 한껏 벌어졌고 두산은 커다란 어깨를 허벅지 사이에 전부 밀어 넣은 채 수일의 성기를 입에 머금었다.
“아흣!! 두산아, 하으으, 살사… 해. 흐으, 살살.”
쭙쭙, 흡입하듯 빨아올리는 자극에 전신이 오그라들다 못해 흐물거렸다. 전율로 몸을 파닥거리며 수일은 뒤로 쓰러졌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발가락 끝에 잔뜩 힘을 주고 두 손으로 두산의 머리를 거머쥐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빠져나갔지만, 수일은 잡힐 때까지 몇 번이고 시도했다.
“아흐흐흐, 너… 무, 좋아. 두산아… 하으!”
흥분할 대로 흥분한 수일은 몇 번의 애무에 쉽게 무너졌다. 정액을 토해 냈다. 배 속에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아랫배가 요동치고 온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두산은 입에 문 성기를 쪽쪽 빨아 정액을 모두 삼켰다. 서서히 시들어 가는 것을 입에서 뱉어 내고, 끈적이는 혀를 쭉 빼내어 떨리는 허벅지를 핥았다. 수일의 몸이 튕겨 올랐다.
“하아, 하으… 하.”
두산의 혀가 주는 자극에 몸이 자꾸 반응했다. 혀는 허벅지를 타고 스타킹의 레이스 밴드를 거쳐 오금으로 내려갔다. 흰색의 망사가 주는 자극이 묘했다. 두산도 그리 느꼈는지 흥분으로 그르렁대며 혀를 내렸다. 수일은 끙끙 앓았다.
침대 위로 올라온 두산은 무릎을 꿇고 앉아 수일의 발목을 쥐었다. 수일은 뒤로 물러나 달달 떨리는 팔꿈치를 괴어 겨우 상체를 세웠다. 스타킹으로 감싸인 마른 발목이 두산의 입에 물렸다.
쪽쪽 발목 주위에 입을 맞추고 툭 불거져 나온 복숭아뼈를 입 안에 머금었다 뺐다. 몇 번의 키스와 애무에 발목 주위 망사가 젖어 들었다. 수일은 숨이 가빴다. 숨이 가빠 오자, 갈비뼈에 약한 통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만두란 말은 하지 않았다.
두산은 숨을 헐떡이며 보란 듯, 수일의 발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쪽쪽 소리가 나도록 발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흐… 더러… 워.”
“더럽기는. 한 개도 안 더럽다.”
두산은 입꼬리를 올렸다. 처음도 아닌데도 이렇게 스타킹을 신은 채 발가락을 빨리니 생소하고 부끄러웠다. 하여간 비위도 좋았다. 수일은 기분 좋은 신음을 뱉으며 두산이 제 발가락으로 장난치는 걸 지켜보았다.
잡힌 발이 두산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아직 풀지 못한 욕정을 해결할 시간이었다. 수일은 상체를 더 일으켰다. 엉덩이를 뒤로 빼서 두산이 좀 더 제 쪽으로 오도록 했다. 두산은 무릎을 꿇은 채로 다가왔다. 거대한 자지는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앞뒤로 빠르게 왔다 갔다 했다. 저를 구제해 달라고 울고 있었다.
“손 뒤루.”
수일의 말에 두산은 무릎을 꿇은 채 뒷짐을 졌다. 이제 수일의 차례였다. 흰 망사로 감싸인 발가락으로 뿌리부터 귀두까지 지그시 누르며 올라갔다. 스타킹 때문인지 움직임이 매끈했다. 촘촘하고 여린 망사가 기둥을 훑어 나가자 두산은 크게 신음했다.
“으읍!”
두산의 몸이 튀었다. 상체 근육이 보기 좋게 움찔댔다. 수일은 이번엔 발바닥으로 성기를 눌러 복부에 바짝 붙였다. 성기에서 흘러내린 액으로 망사가 금세 축축하게 젖었다.
“하으. 씨발!”
수일은 발에 힘을 주어 더 세게 성기를 밀었다. 밀려날 리 없는 두산은 단단히 버티고 앉아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잔뜩 구겼다. 수일은 눈을 내리깔고 제 발에 놀아나는 생명체를 음미하고 희롱했다. 마구 비비고, 아래위로 발을 놀리며 압력을 가했다.
“헙! 수일아… 씨발!! 내 죽겠다.”
두산은 숨을 헐떡이다 못해 괴로워하며 어깨를 앞으로 말았다.
수일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 전에 사정을 시키고 싶었다. 있는 힘껏 부풀어 오른 것을 발로 밀고 애무했다. 또르르 땀이 흘렀다.
“빨리… 좀 해.”
“윽. 내 맘대로, 씨발, 그기 되, 나.”
“나 힘들어.”
“내는, 뭐… 흐으! 안… 힘들어서. 씨발.”
수일은 아주 작정하고 발바닥으로 밀어붙여 사정없이 성기를 비벼 댔다. 다리가 아파서 이제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때쯤 두산이 상체를 활짝 펼치더니, 씨발! 하고 정액을 뿜어냈다. 끈적하고 뽀얀 정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힘이 모조리 빠진 수일은 뒤로 발라당 누웠다. 사정한 건 두산이건만 수일은 제가 사정이라도 한 양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씨발, 내 억수로 좋았다.”
두산은 다시 수일의 발목을 잡고 사정한 제 자지로 당겨 몇 번 더 문질렀다. 투둑, 클립 하나가 또 떨어졌다. 오른쪽 스타킹을 지지하던 클립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두산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짜낸 뒤 수일의 발목을 놓아주었다. 수일은 발목을 쥐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등을 대고 누워 숨을 골랐다. 힘없이 벌어진 다리 사이로 두산이 들어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흘러내린 브래지어 끈을 올려 주었다. 상체를 구부려 쪽,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쪽, 입맞춤은 키스가 되었다. 짙고 농염한 키스에 다시 아래로 피가 몰렸다. 서로의 혀와 입술을 탐하고 점막을 훑었다.
수일은 두산의 혀를 뿌리부터 물어 쪽 빨았다. 펠라티오를 하듯 길고 두툼한 혀를 입술로 문 채 고개를 아래위로 움직였다. 침이 흐르자 두산이 냉큼 제 입술로 츄릅, 하고 삼켰다. 두산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하아….”
키스는 언제나 달콤했고, 입술이 떨어져 나가면 늘 아쉬웠다.
두산은 제 아래에 누워 있는 수일의 몸을 눈으로 훑었다. 수술 자국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가터벨트의 레이스를 손등으로 쓸었다. 상처를 따라 손가락이 움직였다.
“의사쌤이 외과가 아이고 성형외과가 전문인 갑다. 우째 수술 자국도 이래 예쁘지?”
“거짓말.”
“진짠데. 이 바라. 각도가 예술이다.”
수일은 피식 웃었다. 헛소리지만 듣기 싫진 않았다.
상처를 훑던 손가락이 떨어지고 이번엔 아랫배와 음부를 손바닥으로 더듬었다. 가터벨트 레이스 안쪽으로도 손이 들어왔다 나가며 엄지로 음모를 간지럽혔다. 손이 지나갈 때마다 몸이 즉각 반응했다.
“흐음.”
옅은 신음이 터졌다. 두산의 손등이 배꼽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침대 위에 늘어져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수일은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꿈틀대다 속옷 사이즈에 생각이 미쳤다.
“근데 너 내 사이즈 어떻게 알았니?”
“우찌 알긴? 니 자고 있을 때 다 재 갔지.”
“내가 미쳐.”
두산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아니 진짜 그랬을 것 같았다.
“이기 웨딩 콜렉숀? 뭐, 그런 기라 켔다. 마음에 드나?”
“뭐래. 내가 변태도 아니구.”
“밴태 맞지.”
두산은 씨익 웃으며 수일의 브래지어 안으로 자연스레 손을 집어넣었다. 커다란 손이 들어오자, 힘없는 브래지어가 젖가슴을 훤히 드러내며 위로 올라갔다.
“딴 거는 손 안 댔는데, 밑에 입고 있는 그거 머시라 카노? 가트벨터? 그거는 그 누님이 직접 수선도 해줐다. 그 누님 말이 니는 골반이 쫍아서 아 낳을 때 고생 쫌 할 끼라 카드라.”
납작한 가슴을 조몰락대며 헛소리를 했다. 수일은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서 우리는 제왕절개 할 끼라 켔지.”
두산도 이 말을 하며 바보같이 웃었다. 뭐가 쑥스러운지 두산은 답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수일은 그 모습이 귀엽고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힘없이 따라 웃었다.
“왜? 가슴 작은 건 암말 안 하셔?”
“에이, 빨통 짝은 거는 흠도 아이다.”
“언제는 큰 게 좋다더니?”
“좋기야 좋지. 근데 니가 이래 납짝한 걸 우야겠노? 내가 참고 살아야지.”
선심 쓰듯 말을 뱉고도 아쉬운지 근데 짝기는 마이 짝네, 했다.
두산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짚은 채 엄지로 유두를 슬슬 문질렀다. 가슴이 뭐라고 이렇게 작은 접촉에도 찌릿한지 몰랐다. 엄지가 또 한 번 지나가자 허리가 튕겨 올랐다. 수일은 몸을 비틀었다.
“나 피곤해.”
기분은 좋은데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머시 피곤하노? 니는 가만 있으라. 내 다 알아서 하께.”
“갈비뼈 아파.”
“엄살은. 내가 니를 들기를 했나, 엎드리게 했나. 이래 가만 눕히 놨는데 갈비뼈가 와 아프노?”
두산은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엄살 아냐. 정말로 아픈 걸 어떡하니?”
미미하던 통증은 한 것도 없는데 아까보다 묵직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아팠다. 무리한 운동도 안 했는데 왜 이러나 몰랐다.
“하이고, 이기 무슨 상이고? 주다 뺏는 것도 아이고.”
두산은 구시렁대면서도 가슴에서 손을 떼지 않고 유두를 자극했다. 그럴 때마다 수일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아픈데 좋았다.
좋아하는 게 눈에 다 드러났는지 두산이 상체를 구부리더니 가슴에 입술을 가져갔다. 축축하고 뜨거운 혀가 유두를 건드리자 히익, 신음이 터졌다. 두산은 납작한 가슴의 살을 그러모아 입 안에 넣고 온 압력을 다해 빨아올렸다. 쭈웁쭈웁, 젖을 빨 듯 빨았다. 자극에 수일의 허리가 들려 바르르 떨었다.
“흐응. 좋… 아.”
두 손으로 두산의 머리를 안았다. 등을 구부리고 양쪽 가슴을 번갈아 가며 희롱하던 두산은 수일의 등 뒤로 손을 넣고 브래지어 후크를 풀었다. 힘없이 풀린 브래지어가 쇄골까지 올라왔다.
두산은 수일의 두 팔을 잡아 위로 올리고, 방금 벗긴 브래지어로 손목을 묶었다. 결박당한 손목을 한 손으로 잡은 채 벌써 발기한 제 성기를 수일의 성기에 맞댔다. 수일은 두 다리를 두산의 허리에 감았다. 투둑, 이번엔 다른 발의 스타킹을 고정하던 클립이 모두 떨어졌다.
“니 억수로 야하다.”
두산의 눈에 다시 욕망이 그득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저를 원하는 저 눈이 좋았다. 지치지 않고 자기만을 원했다. 얼굴이 다 터지고 부어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일 때도 두산은 수일을 보고 발기했다. 수일을 예쁘다 했다. 뜨거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산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수일은 두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 채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키스해 줘.”
두산의 거대한 몸이 수일의 마른 몸을 덮쳤다. 빈틈없이 아래를 맞붙이고 벌어진 입에 제 입술을 문질렀다. 수일의 두 팔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이제 시작이다.”
선언하듯 말했다. 응. 수일의 대답은 두산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삽입도 없는 한낮의 정사는 여느 때보다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