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81)

흑백의 엑스레이 사진 몇 장을 앞에 두고 의사는 수일을 불렀다. 두산이 따라 들어가자 의사도 간호사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나가 있으라고 할까 하다가 아직은 말하는 게 편치 않아서 곁에 두었다.

의사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수술 부위에 유착 등 이상 소견이 없고 상처도 잘 아물고 있었다.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했더니, 갈비뼈에 금이 가서 그렇다고 했다. 부러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예전에도 갈비뼈 뿔라진 적 있습니까? 여 보이지예? 이거? 이거는 이번에 금이 간 기 아이거든예. 지금은 잘 붙어 있지만, 이래 흔적이 남습니다.”

하도 여기저기 맞고 다녀서 언제 부러졌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의사의 말에 두산이 인상을 팍 구겼다. 씨발, 혼잣말에 의사가 깜짝 놀라 꿀꺽 침을 삼켰다.

“그라고 코뼈 같은 경우는 처음 도착했을 당시에도 골절이 보였지만, 워낙 심하게 부어서 일단 붓기부터 가라앉히고 수술 날짜를 정하자케서 그러자꼬 했습니다. 저하고 얘기 끝나시면 바로 이비인후과로 가셔서 코 수술 날짜 잡으시고예. 뭐 다른데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수일은 턱을 가리켰다. 의사가 아, 하고 깜빡한 티를 냈다. 두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턱은 붓기만 있고 골절은 안 보였습니다. 그래도 마이 부었으니까 이비인후과에서 수술 날짜 먼저 잡고 그다음에 치과 한번 가보십시오.”

“무… 울요?”

“무울? 아, 물은예 지금부터 한 모금씩 한 모금씩 이래 마시시고, 내일부터는 뭐 평상시대로 마시도 될 것 같습니다.”

수일은 한 모금씩이라도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뛸 듯이 기뻤다. 물론 진짜로 뛰기는커녕 웃지도 못했지만, 정말 좋았다. 어찌나 목이 마른지, 입 안은 가뭄 맞은 논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밥은 우짭니까?”

두산의 물음에 의사가 움찔했다.

“아. 밥. 참 중요하지예. 방구는 나왔습니까?”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호… 시, 자다가 나오느….”

“그랄수도 있는데, 학실한 기 좋으니까 방구 끼면 그때 미음부터 시작하입시다. 걷다 보면 오늘 중으로 뿡뿡 잘 나올 낍니다.”

결론은 걸으란 소리였다. 두산은 수일을 내보내고 따로 의사와 상담을 했다. 혼자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주위 환자들이 흘끔거렸다. 수일만큼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굴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어서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흉측했다.

“하이고, 총각, 교통사고 당했나? 억수로 마이 다칬네. 그래도 이래 살아난 기 으데고? 천우이다 천운.”

할머니 한 분이 수일을 위로해 주었다.

천운. 그래,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어딘가.

상담을 끝낸 두산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와 수일을 조심히 일으켜 세웠다.

“휠체어 태아 주까?”

“아니… 거어야지.”

“그래, 힘들면 말하고.”

다리는 긁히고 찍힌 상처만 있지 딱히 아프지 않았다. 수일은 두산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슬리퍼를 끌며 걸었다.

“거 아저씨요, 비키소. 사람 지나간다. 에헤이, 할매, 여 전세 냈습니까? 그래 딱 막고 서 있으면 우짜노? 벽이라도 짚고 계시소.”

두산은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수일의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지목했다. 사실 그들은 복도를 오고 가는 중이었을 뿐, 딱히 방해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두산은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바로 지적했다.

“아지매. 아지매! 여 사람 지나간다. 앞을 보고 다니야지 으데를 보노? 거참, 사람 이상하네.”

“그으마해.”

하도 창피해서 말려도 보았지만, 두산은 수일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한숨이 절로 났다. 이렇게 얼굴에 멍이 들고 부어 있는 것도 지금 상황에선 나쁘지만은 않구나 싶었다. 두산은 알아보아도 수일은 못 알아볼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여곡절 끝에 이비인후과에 도착해 내일 아침 수술하기로 했고, 치과로 가서 턱 골절은 아니라는 확정 소견을 들었다. 치과 의사는 수일의 턱이나 치아보다 눈에 더 관심이 많았다. 직접 안과 쪽으로 전화를 걸어 수일의 상태를 이르고 담당의와 당장 예약을 잡아 주었다. 수일은 그게 고마워서 몇 번을 꾸벅 인사하고 나왔다.

치과에서 멍이 들고 상처 난 턱 치료를 받고, 잔뜩 부어오른 턱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까지 빙 둘러놓은 붕대를 새것으로 갈았다. 떡 진 머리가 신경 쓰여 자꾸 만지작거리다가 간호사에게 물은 닿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주의만 받았다.

안과로 가자마자 시력과 안압 검사를 하고, 눈에 무언갈 넣은 채 차례를 기다렸다. 수일은 피곤해서 두산에게 머리를 기댔다. 두산은 수일이 아플까 봐 안지는 못하고 살살 팔을 토닥였다.

“피곤하제?”

“으.”

“마이 힘들면 말해라.”

“으.”

턱 때문에 말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 수일은 침을 삼키고 입을 다무는 것도 평소보다 느렸다. 숨만 쉬어도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두산은 손에 쥔 손수건으로 수일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너 여기 이써두… 갠차나? …추근… 아 해?”

“어. 내도 병가 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씨익 웃었다. 수일은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따라 웃었다. 좋았다. 이렇게 검사를 함께 받으러 다니는 것도, 의사를 함께 만나는 것도. 그게 두산이라서 더 좋았지만, 아플 때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게 너무도 오랜만이라 그냥 좋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수일이 아플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수일이 아픈 걸 싫어했었다. 아픈 부모님과 동생을 수발하기 위해 몸까지 팔아야 했던 그녀는 수일이 기침 소리만 내도 짜증을 냈다.

그러고 보니 연화는 그랬었다. 수일이 아프다 하면 집을 나가서 들어오질 않았다.

안과 의사는 실핏줄이 다 터져 흰자가 시뻘건 수일의 눈을 보고 혀를 찼다. 무섭게 생긴 기계로 검사를 하는 동안 의사는 한숨을 쉬었다. 왜 첫날부터 오지 않았냐 물었다가 수일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보호자인 두산을 부른 의사는 다소 경직된 표정이었다.

“정밀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일단 외상으로 인한 좌안 안와골절이 의심됩니다.”

“그기 먼 소립니까?”

“왼쪽 눈을 둘러싼 뼈에 상처를 입었다 이 말입니다. 일단 맞아서 생긴 외상의 경우 일시적으로 이래 핏줄이 다 터지고 눈이 붓다가 저절로 멀쩡해지기도 하지만, 최악의 경우엔 실명이 되기도 합니다. 뭐 시력 저하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예.”

“씨발! 실명? 장난하나?”

두산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열을 냈다. 의사가 깜짝 놀라 몸을 떨었지만, 이내 본래의 무심한 얼굴로 돌아왔다.

“보호자분, 이기 화를 낸다꼬 될 일이 아입니다. 아직 정밀 검사 결과도 안 나왔고예, 다행히 복시도 없고 안구운동장애 말고는 다른 증세도 없어서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안압이 억수로 높아서 안압부터 낮추는 기 급선뭅니다. 먹는 약하고 안약 드릴 테이까 하루 세 번 꼭 잡수시고, 안약은 자주 눈에 넣어주십시오. 내일 정밀 검사 결과 나오면 그때 또 얘기 하입시다. 아, 동공 확장제 때문에 한 서너 시간은 앞이 쫌 뿌열 낍니다. 오래 가는 사람은 12시간도 가니까 안 보인다꼬 걱정하지 마시고예.”

의사는 수일의 눈을 마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앞이 흐려서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약 때문이라니 다행이었다. 내일 아침 코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는 말에 늦은 오후로 진료를 잡은 의사는 수술 담당의 이름을 묻고 곧장 전화를 들었다.

나가도 좋다는 말에 수일은 밖으로 나왔지만, 두산은 또 수일을 내보내고 따로 의사와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고함을 쳤다. 문밖으로 두산이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이번엔 수일도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니 말도 안 됐다. 지금보다 더 심하게 맞았어도 아무 이상 없었는데, 이번엔 어지간히 잘못 맞았나 보았다. 오른쪽 눈이 멀쩡하니 한쪽 눈으로 살아도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무섭긴 했다. 눈이 안 보일지도 모른단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안과를 나오고부터 두산은 입을 꾹 다물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씨발, 개새끼들. 좆같은 새끼들. 두산은 낮게 으르렁댔다. 수일은 그런 두산의 손을 꼭 잡았다.

힘들었지만, 억지로 20분을 걷고 병실로 들어가 몸져누웠다. 방귀는 나오지 않았다. 자다 뀐 게 분명한 거 같은데,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시무룩해 있는 수일에게 두산이 물을 가져다주었다.

“자, 물 마시자.”

두산은 혹시라도 수일이 물을 많이 마실까 봐 컵에 정말 딱 한 모금 분량만 따라왔다. 수일은 그걸 단숨에 들이켜고 남은 한 방울을 마시겠다고 컵을 탈탈 털다가 코를 부딪혔다. 정말 아팠다. 으으으, 수일이 소리를 내며 온 얼굴을 다 찌푸리자 빨대를 손에 든 두산이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 빨대.

“으이그. 마이 아프나?”

터지고 부은 얼굴을 만지지도 못하고 두산은 커다란 손을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다. 얼굴을 들이밀고 가만 보다가 수일의 귓바퀴에 입을 맞추었다. 거긴 안 다쳐서 뽀뽀해도 괜찮았다. 두산은 귓불을 타고 목까지 쪽쪽 입을 맞췄다.

“이래 가꼬 은제 하겠노?”

“머… 르을.”

“머긴 머야.”

두산은 한숨을 푹 쉬고, 수일의 다른 쪽 귀와 목덜미에도 입맞춤했다. 간지러웠다. 슬쩍 몸을 피하며 웃자, 두산이 입꼬리를 올렸다.

“니는 우째 이래도 예쁘노?”

“거지마… 아ㄹ.”

“진짠데. 내일 의사쌤한테 몬 생기게 코수술 해달라꼬 해야지 안 되겠다. 내 불안해서 살긋나?”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실실 웃었다. 수일은 두산의 그런 말이 고맙고 기특해서, 퍼렇게 수염이 올라온 두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바압… 머그러 가.”

“내 아직 배 안 고프다.”

두산이 밥 먹으러 가면 간호사에게 제 바지를 얻다 두었는지 물으려 했는데 눈치도 없이 옆에 붙어 꼼짝을 안 했다. 아침엔 줄곧 자느라 기회를 엿볼 새가 없었던 수일은 이러다 또 자신이 잠든 사이 두산이 밥을 먹으러 갈까 봐 영 마음이 쓰였다.

오늘은 하필 월급날이었다. 수일은 벽에 붙은 커다란 달력을 곁눈질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장이 돈을 갖다줄 리가 만무했다. 일을 빠진 날도 많아서 50만 원보다 더 깎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수일에겐 팁으로 받은 70만 원이 꼭 필요했다.

조금 전까지 장난을 치던 두산은 옆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대뜸 내 나갔다 오께, 했다.

“바압?”

“어. 내 밥도 묵고 좀 씻고 오께. 배고파도 쪼매 참아라.”

“으.”

병실을 나가기 전 두산은 수일의 붕대 감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시멘트 바닥보다 더 까끌까끌하고 거친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 입 안까지 다 터지고 부어 그런지 두산의 입술이 닿자 소름 끼치게 아팠다. 수일은 으으 소리를 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3일도 넘게 이를 못 닦아서 냄새가 날 텐데 두산은 싫은 내색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멀쩡한 귀에도 뽀뽀를 해 주고 내 퍼뜩 갔다오께, 했다.

동공 확장제 때문에 앞이 뿌예서 두산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입꼬리가 일자여서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수일은 병실을 나가는 커다란 등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두산이 나가고 딱 5분 뒤에 간호사에게 제 바지를 어디 두었는지 물었다. 간호사 말에 따르면 잘생긴 중년의 남자가 피가 묻은 옷가지와 소지품을 가져갔다고 했다. 수일은 삼락 형님이려니 하고 안심했다. 다시 병실로 가려는 수일을 간호사가 잡았다.

“그래 자꾸 누우시면 안 되예. 나온 김에 한 이십 분 더 걷다 들어가이소.”

“저 거언는데여.”

“그거 가꼬 안됩니다. 더 걸으이소.”

수일은 하는 수 없이 링거대를 질질 끌며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아파서 인상을 썼고, 인상을 쓰면 턱이랑 코가 아파서 또 인상을 썼다. 배는 실시간으로 누가 복싱 연습 상대로 쓰는 것처럼 툭툭 짧은 통증이 일었다.

아이고아이고 하며 수일은 복도를 걸었다. 아까는 이렇게까지 안 아팠는데 두산이 옆에 있을 때 없을 때의 차이가 컸다. 분명 마음의 문제였다. 수일은 나약한 자신을 꾸짖으며 느린 발을 재촉했다. 질질 슬리퍼를 끌어 휠체어에 탄 할아버지를 구경하고, 바삐 왔다 갔다 하는 간호사들을 쫓았다.

맞아서 병원에 입원하면 돈 걱정은 안 해도 되어서 좋았다. 조폭에게 맞으면 조폭 두목이 병원비를 댔고 위로금은 나이트 사장이 가로챘다. 손님에게 맞으면 손님이 병원비를 댔고 합의금은 조폭이 가로챘다. 수일이 받는 거라곤 병원비와 약값이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입원하는 동안은 일을 안 해도 약간의 돈을 받았고, 잘리는 경우도 드물었다.

반면 아파서 병원에 가면 병원비도 약값도 모두 수일의 몫이었다. 일을 못 해서 돈도 못 벌었다. 아픈 가수를 기다려 주는 나이트는 없었다. 그래서 수일은 맞는 것보다 아픈 게 더 무서웠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한쪽 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자 싱숭생숭했다. 맞는 거 하난 자신 있었는데 이제 조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병원엔 유독 소독약 냄새와 꿉꿉한 콘크리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멍하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복도를 세 번 더 왕복했다. 복도를 반쯤 통과했을 무렵 픽,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엉덩이에서 들렸다.

방구다!

수일은 분명 느꼈다. 방귀였다. 드디어 방귀가 나왔다. 이제 미음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복부 통증은 통증이었고, 배가 고픈 건 고픈 거였다. 같은 밴데 마치 주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복통이 허기를 앗아 가진 못했다. 방귀를 뀌자마자 귀신같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수일은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빨리 복도를 가로질러 간호사에게 방귀를 뀌었다고 알렸다.

기쁜 수일과 달리 간호사는 시계를 흘끔 보고 귀찮은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옆에 서서 빤히 쳐다보자 간호사가 등을 돌리고 수일의 미음을 주문했다.

“가사하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병실로 돌아왔다. 두산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있었다면 그 큰 목소리로 동네방네 다 들리도록 ‘방구’ 소리를 했을 게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부끄러웠다.

수일은 침대에 기어 올라가 비가 떨어지는 창밖을 보았다. 그렇게 을씨년스러워 보이던 풍경이 참 운치 있어 보였다. 미음, 미음. 죽이면 좋겠지만 미음도 나쁘진 않지. 수일은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두산이 오면 곧장 자랑해야지. 너 없을 때 방귀가 나왔다고, 뽕 소리는 안 나고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고. 수일은 싱거운 생각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냈다. 두산이 없는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딱 12시에 첫 끼가 나왔다. 수일은 침대에 붙어 있는 테이블을 올려 경건한 마음으로 미음을 받았다. 숟가락으로 떠 먹으려 해 보았지만, 물이나 다름없어서 입에서 술술 빠져나갔다. 하는 수 없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빨대로 빨아 먹었다. 그래도 먹을 게 좀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목도 말랐는데 미음이 꼭 숭늉 같아서 갈증도 해결되었다.

두산이 나간 지 두 시간이 지났다. 수일이 기억하는 3일간 두산은 병실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욕을 하러 나갔을 때를 제외하고. 그러니 옷도 갈아입고 목욕도 하고 면도도 해야 했다. 안 그래도 사납게 생겼는데 수염까지 올라오니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런 얼굴로 욕도 막 하고 목소리까지 컸다.

얼른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싶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안 무서워하지. 수일은 지금쯤 두산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있겠지, 고기라도 먹으려나 생각하다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배에선 끊임없이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약을 핑계로 물을 조금 더 마셨지만 여전히 배가 고팠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주사를 놔주러 왔다가 수일을 보고 ‘걸으세요’ 했다. 모른 척 뻗대 보았으나 간호사는 수일이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또 복도로 나갔다. 이번엔 느릿느릿 세상에서 제일 느린 거북이나 달팽이처럼 걸었다. 배고파. 수일은 내내 배고프단 말만 되풀이했다.

“수일아! 이제 걷나?”

어제의 초췌한 모습과 달리 삼락 형님은 비싼 양복 차림에 훤한 얼굴로 돌아왔다. 구두가 반짝반짝 윤이 났다. 비도 오는데 하나도 젖지 않은 걸 보니 택시를 타고 온 모양이었다.

“혀어니임.”

“하이고, 이래 걸으이 을매나 좋노?”

삼락 형님은 제 일인 양 기뻐하며 달려왔다. 손에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사 온 수박이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수박은 먹어도 되려나? 간호사에게 물어봐야지 하는데, 사장이 나타났다. 떨떠름한 표정은 수일을 보자마자 경악으로 바뀌었다.

“수일이 니 얼굴이… 아니, 그기 머꼬. 아이고… 사람 얼굴이가.”

사장은 짙게 쌍까풀 진 눈을 크게 뜨고 겨우 말을 이었다. 전에 그 조폭에게 맞았을 때보다야 심각하긴 했지만, 저렇게 놀랄 정돈 아닌데 싶었다. 수일은 고개를 숙여 꾸뻑 인사하고 삼락 형님의 도움을 받아 병실로 돌아갔다.

“여 억수로 비쌀 낀데 백사파에서 병원비 준다카드나? 아이다. 주겠지. 주야지.”

사장은 2인실을 휘 둘러보며 수일의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얼굴을 영 못 보겠는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난중에 과일도 쫌 깎아 묵고 해라.”

그러면서 삼락 형님의 손에 들린 과일 바구니를 눈짓했다. 형님은 바구니를 창틀에 올려 두고 자기도 의자를 끌어 수일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래 쫌 우떻노? 갠딜 만하나?”

“네. 개엔… 차나여.”

“그래. 그래. 코는?”

“내이… 수수우… 해여.”

“오야. 알았다. 힘든데 말하지 말고. 사장님, 퍼뜩 주이소.”

수일이 침을 닦는 동안 삼락 형님이 사장을 돌아보았다. 으흠, 사장이 헛기침을 했다.

“이거는 우리 오성관 직원들이 윤수일의 빠른 쾌차를 바라는 마음에 한 푼 두 푼 모은 기다. 큰돈은 아이지만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라. 내도 3만 원 넣었다.”

사장은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고 봉투만 쓱 내밀었다. 그게 영 마뜩잖은지 삼락 형님은 쯧 혀를 차고, 봉투를 뺏어서 수일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 아니…에요.”

“아이긴 머가 아이고. 그래 안 많다. 밥 한 끼 사물 돈 밖에 안된다. 오성관 직원들 성의니까 받아라.”

“아니… 인데… 개엔차는… 데.”

“에헤이. 손 부끄럽고로 퍼뜩 받아라.”

수일은 냉큼 봉투를 받았다. 형님이 손톱이 빠진 손가락을 꽉 쥐어 아팠기 때문이었다. 안 받으면 계속 쥐고 있을까 봐 얼른 받았더니 형님의 손이 떨어졌다.

“그라고, 이거는 니 월급. 얘기 들어 알겠지만, 뭐 우리 오성관 사정도 그렇고, 니도 이래저래 마이 빠짔다 아이가. 그래서 돈을 쫌 깠다.”

여기까지 말하는데 벌컥 문이 열리고 두산이 들어왔다. 한 손에 짐 가방도 들었다. 두산은 수일의 예상대로 수염도 깎고 옷도 갈아입었다. 말끔해진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사장의 손에 시선을 둔 두산이 성큼 다가와 봉투를 뺏어 들었다. 후, 바람을 넣고 봉투 입구를 벌리더니 돈을 꺼내 셌다.

“이기 뭡니까?”

“아… 그기….”

사장은 당황했다.

“100만 원이라. 월급은 아이고, 위로금입니까?”

“그 100만 원밖에 안 들었나? 하이고, 김 양 이 가시나. 내가 돈 단디 찾으라 켔드만은. 이래서 내가 이 양을 좋아했던기다. 가는 돈 실수한 적이 한 번도 읍었다 아이가.”

이러면서 양복 안주머니에서 급히 지갑을 찾아 수표 세 장을 꺼냈다. 원래 수일이 받기로 했던 월급 180만 원에서 50만 원만 깐 금액이었다.

“수일이 니도 아다시파 싹다 50만 원씩 월급이 까있다. 자, 받아라.”

눈치가 없는 수일도 사장이 130이 아니라 100만 원을 주려고 했던 건 알아챘다. 때마침 두산이 오지 않았다면 군말 없이 100만 원을 받고 말았을 터였다. 돈이야 많이 받으면 좋았지만, 사장 말대로 빠지기도 많이 빠졌는데 다 받자니 괜히 미안했다.

“씨발. 누구 맘대로 월급을 깝니까?”

가만있으면 두산이 아니었다.

“하, 이 새끼. 그기 으데 내 맘이가? 강 이사가 그만치 주라 켔다. 물어 바라.”

사장도 이번만은 할 말이 있어 세게 나왔다. 감봉이 사장의 아이디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아, 씨발. 지 멋대로네.”

“두사이 니 말이 쫌 심한 거 아이가? 니보다 한참 으른이고 웃사람인데 앞에 읍따고 그라지 마라.”

삼락 형님이 강재욱의 편을 들었다.

“수일이 아플 때 뱅문안도 제일 먼저 온 양바이다. 니는 그때 어디서 머 했노?”

형님의 말에 두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부터 내내 두산을 보았기에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줄로만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수일은 대충 짐작이 갔다. 당연히 끌려가서 혼쭐이 났을 터였다. 삼락 형님은 그때 그 자리에 없었으니 저리 쉽게 말을 했다. 두산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수일이 다 서운하고 억울했다.

수일은 두산의 부재보다 강재욱이 자기를 면회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웃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재미난 구경이 난 것처럼 수일과 두산을 보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맞아서 정신을 잃은 저를 방문했다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기억에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만들 가보이소. 행님 쉬야 된다.”

두산은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사장은 안 그래도 자리가 불편한지 바로 일어났지만, 삼락 형님은 나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아재도 그만 가소. 수일이 행님 쉬야 된다.”

“내 더 있다가 갈 끼다. 수일이 정신도 들었는데, 같이 과일도 쫌 묵고.”

“고마 내일 오소.”

“두사나… 그냐앙… 더.”

수일이 말리자 두산은 인상만 구길 뿐 더는 그를 쫓아내지 않았다.

“그라믄 내 먼저 가께. 수일이 니 몸조리 잘하고.”

끝내 수일과 눈을 맞추지 않은 사장은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바삐 나갔다.

“수일아, 머 묵고 싶노? 복숭아? 참외?”

삼락 형님이 경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머 묵으면 안 됩니다.”

“아냐. 두사나… 나… 바앙구… 껴써. 미으음도… 머거써.”

수일의 말에 두산은 이내 사나운 표정을 풀었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고생했다’ 칭찬을 했다.

말을 많이 했더니 침이 좀 나왔다. 두산은 성큼 다가와 아이에게 하듯 수일의 침을 꼼꼼히 닦아 주고, 건조한 입술에 바세린을 살살 펴 발랐다. 처음엔 손을 벌벌 떨며 제대로 만지지도 못했는데, 이젠 제법 능숙하게 수일의 병간호를 했다.

“행님 머 묵고 싶노?”

눈을 맞추며 다정히 물었다. 여전히 뿌연 시야에도 두산이 웃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까보다 훨씬 얼굴이 밝아 보였다.

“수바악.”

“알았다. 무도 되는지 함 물어 보께.”

수일은 잔뜩 기대하며 두산이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두산이 큰 소리로 간호사에게 물었고, 곧장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대에 찼던 얼굴에 실망이 내려앉았다. 물도 마시고 미음도 먹었는데 왜 수박은 안 되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스하고 우유는 된다 카는데 사다주까?”

문 앞에서 빼꼼 고개만 들이민 두산이 물었다. 그늘졌던 얼굴은 주스와 우유란 말에 금방 환해졌다.

“으.”

“오렌지 주스?”

“으. 우… 유도.”

“알았다. 쪼매 기다리라. 내 퍼뜩 갔다오께.”

두산은 뭐가 재밌는지 어깨가 들썩이도록 웃었다.

삼락 형님은 먹지도 못하는 과일 얘길 꺼낸 것이 미안했던지 바구니를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웠다.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한 이틀 미음 먹고 바로 죽 묵제?”

“네. 차암, 제 바지… 혀엉님이.”

“무슨 바지?”

“수수 저에… 이꼬… 이떤… 바… 지여.”

말을 하느라 숨을 몰아쉬니 갈비뼈가 아팠다. 갈비뼈가 아프니 가슴 전체가 다 아픈 것 같았다. 뱃가죽은 또 왜 이리 땅기는지 몰랐다. 온몸이 아프다 아우성을 쳤다. 수일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삼락 형님은 금시초문이란 얼굴이었다.

“내는 안 갖고 갔는데. 내가 갖고 갔다 카드나?”

“네.”

“이상타. 내 간호사한테 함 물어보께.”

형님은 벌떡 일어나 병실을 나갔다가 금방 들어왔다.

“수일아, 내 아이고 강 이산갑다. 그 양바이 와 갖고 갔지? 내 줄라꼬 그랬나?”

강재욱이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수일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왜 가져갔을까? 강재욱이 수일의 팁을 탐내 가져갔을 리가 없었다.

팁 말고도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이 들어 있긴 했지만, 두산이 준 돈과 수일의 신분증이 다였다. 계약할 때 신분증 사본과 주민 등록 초본까지 떼서 냈기에 수일의 신분증이 필요하면 사장에게 말만 하면 되었다. 삼락 형님에게 주려고 굳이 귀찮은 일을 했다고 믿기도 어려웠다. 수일은 강재욱이 자신의 바지를 가져간 이유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받아 주께.”

수일의 근심 어린 표정에 삼락 형님은 선뜻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 강 이사하고 저녁 묵는다. 내 니 바지하고 소지품 다 받아오께.”

“고마쓰이다.”

“쯧. 밸소리 다한다. 어려운 일도 아인데. 니는 퍼뜩 낫기나 해라.”

형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다 수일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한숨을 쉬었다. 얼굴이 저기 머꼬,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잠시 후 두산은 커다란 유리병에 든 오렌지 주스와 우유를 사 들고 왔다. 유리병을 따서 수일에겐 딱 두 모금 분량의 주스를 따라 주고 형님에겐 한 잔을 주었다. 이번엔 빨대를 먼저 꽂아서 가져왔다. 단 음료가 들어가자 살 것 같았다. 없어지는 게 아까워, 수일은 조금씩 조금씩 빨아 먹었다. 그러다 은아 씨 생각이 났다.

“으나… 누니임….”

“은아? 감기가 들었는지 어제부터 영 비리비리 하드만은 연락이 읍따.”

“아… 네….”

역시 아픈가 보았다. 수일은 어제 유독 아파 보였던 은아 씨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삼락 형님은 두산을 아예 간병인 취급하며, 수일과 단둘이 얘기를 나눴다. 어차피 두산도 형님의 얘기엔 관심이 없었다. 형님의 얘기는 항상 재밌었다. 수일은 아픈 와중에도 몸을 비틀어 가며 웃었다.

두산은 그런 수일의 곁에 앉아 입에서 침이 흐르면 손수건으로 닦아 주고, 건조한 입술에 바세린을 발랐다. 시간 맞춰 눈에 안약을 넣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일은 은아 씨도 내일까지만 쉬고 모레는 꼭 병문안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레쯤이면 이제 죽도 과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은아 씨까지 넷이서 수박도 먹고 웃으며 수다를 떨고 싶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을 텐데, 수일은 그러기를 바랐다.

두산도 내내 같이 있고, 삼락 형님도 매일 오니 기분이 좋았다. 혼자가 되고 난 후 아프단 이유로 이렇게 관심을 받긴 또 처음이었다. 앓으면서 서러워하지 않은 것도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다. 가슴이 간질거리고 따스한 분위기에 괜히 들떴다. 수일은 이런 관심이 못내 기뻐서 속으로 웃었다.

종일 검사를 하고 걸었더니 수일은 피곤해졌다. 앉아서 꾸벅꾸벅 졸자 삼락 형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일아, 내 내일도 오께. 몸조리 잘하고.”

“네.”

“그만 드가이소.”

“어. 두사이 니가 고생 쫌 해라.”

“수일이 행님이 고생이지, 내는 고생도 아이다.”

“그래. 그래 생각해 주이 내가 다 고맙다.”

형님이 자리를 뜨자마자 두산은 수일의 침대 레버를 돌려 편히 눕게 만들었다. 베개를 손봐 주고 수일이 괜찮은지 물었다.

“간호사가 그라는데, 물수건으로 몸 닦아 주도 된다 카드라. 닦아 주까?”

“나 조리인데….”

“그라믄 자고 있으라. 내가 알아서 닦아 주께.”

“…으… 커트….”

“안 그래도 치고 할라 그랬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두산이 병실 안 화장실 세면대에서 수건을 적셔 오는 동안 수일은 깜빡 잠이 들었다. 미지근하고 축축한 것이 닿는 느낌에 눈을 뜨자 아랫도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두산은 수일의 사타구니와 성기부터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야릇했다. 이 와중에도 성욕이 일다니, 제 몸인데도 웃겼다. 그래도 자꾸 만져 주니 기분이 좋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두산은 수일의 음부를 집중적으로 닦았다. 거기에 얼굴까지 들이밀고 닦고 있어서 혼자 조금 부끄러웠지만, 두산도 흥분한 모양인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런 때 간호사라도 들어오면 어쩌나. 무슨 창피인가. 커튼이 처져 있긴 해도 다 알 텐데. 혼자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그만하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점점 숨이 가빠졌다.

“으으….”

발기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흥분으로 숨이 가빠 오자 갈비뼈가 아팠다. 이어서 가슴과 복부에 통증이 일었다. 턱은 왜 아픈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잠깐 발기할 뻔한 성기가 고통에 시들어 버렸다.

“…아… 아… 파….”

“으데?”

“가비뻐… 하구… 다….”

오한 들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두산은 한숨을 푹 쉬더니, 심통 난 얼굴로 수일의 다리와 발을 닦는 둥 마는 둥 하고 옷을 입혔다. 그리고 상의를 열어 겨드랑이와 팔도 대충 닦았다. 겨드랑이에 수건이 닿자 수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성감대라 손에 반응했지만, 또 아파서 바들거렸다.

“하이고, 내 팔자야.”

두산은 팔자타령을 하며, 마지막으로 수일의 귀를 닦아 주었다. 입이 한 발이나 나와 있었다. 누군 안 하고 싶어서 이러나. 괜히 얄밉고 서운했다. 수일도 입을 한 발 내밀었지만, 어차피 부어 있어서 두산은 눈치를 못 채는 듯했다.

어른인 내가 지고 들어가야지, 별수 있나.

“두사… 나, 가치… 자자.”

침대가 좁아터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둘이서 끼어 눕지도 못할 정돈 아니었다. 수일의 말에 두산이 슬쩍 웃었다. 방금 썼던 수건은 의자에 던져 버리고 곧장 수일의 침대로 기어 올라왔다. 수일이 몸을 조금 돌렸다. 아파서 기절할 것 같았다. 아프다고 낑낑대면 두산이 도로 내려갈까 봐 입술을 말아 물었다. 으으,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신음을 삼켰다.

두산이 자리를 잡고 수일의 몸을 어떻게든 안아 보려 했다. 씨발, 씨발, 두산이 이리저리 아무리 몸을 움직여 보아도 마땅히 자리가 나질 않았다. 마주 보고 꼭 끌어안으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지금 수일은 갈비뼈와 복부 수술 부위 때문에 상체를 누르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코도 어디 닿으면 안 되었다.

삐걱삐걱 침대가 미친 듯이 울어 댔다. 그 소리가 참으로 음란했다. 누가 들으면 섹스라도 하는 줄 알겠지만, 실상은 다 큰 남자 둘이서 침대에서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 지렁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한참을 침대와 씨름하던 두 사람은 키득키득 웃으며 마지막 발악을 했다.

“하이고, 이래 가꼬 되겠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다정했다. 겨우 수일을 피해 누웠다. 수일은 두산이 시키는 대로 가슴으로 기어 올라갔다. 조금 불편하고 아파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산은 늘 그렇듯 뜨거웠다.

수일은 침대 밖으로 몸이 반 가까이 밀려난 두산의 가슴에 제 머리를 뉘었다. 두산은 자세 때문에 힘이 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수일을 토닥이고 안아 주었다. 몸을 세워 귀에 쪽쪽 입을 맞추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아프지 마라. 맞지도 말고. 앞으로는 내가 다 막아 주께.”

꼭 막아 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말만으로도 기뻤다. 수일은 기분이 좋아서 으으 소리를 내며 두산의 온기를 느꼈다. 두산은 또 상체를 세웠다. 더운 입김이 귀에 닿자마자 수일은 귓불을 물렸다. 움찔 몸을 떨었다.

하아, 숨을 뱉고 아래로 슬쩍 손을 갖다 댔더니 아니나 다를까 두산은 벌써 발기한 채였다. 수일의 어디를 보고 발기를 하는지 거참 애가 건강해도 참 건강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너… 느은… 여기서두… 서네.”

“그라믄 당연히 서야지. 내를 전쟁통에 갖다 놔바라. 니하고 있으면 거서도 선다.”

당당하게 말하며 수일의 손을 끌어 그 위에 놓았다. 손으로라도 해결해 주고 싶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손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질 않아서 그냥 올려만 두었다. 두산은 수일을 재촉하지 않았다. 두산의 입술이 또 귀에 닿았다.

“내가 다 막아 주께.”

다짐하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몇 번을 들어도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손톱이 빠진 손가락으로 두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함께 있는 게 기뻐서 더 가까이 다가갔더니 두산이 늘 사용하는 코오롱 향기가 났다. 익숙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진 수일은 두산의 곁에 최대한 가까이 붙었다.

킁킁, 코로 숨을 들이쉬는데 아주 희미하게 휘발유 냄새가 났다. 아니, 연기 냄새인가. 조금은 이질적이라 수일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곧 잠이 들었다.

“수일아, 니는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 다 알아서 처리했다.”

두산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것도 같았다. 꿈속이려나. 무얼 처리했는지 몰라도 그 말을 하는 두산의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들떠 있었다. 수일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마워, 하고 말해 주었다. 커다란 손이 수일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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