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81)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지 몇 분 만에 수일은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흐리고 을씨년스러웠다. 비가 오려나. 눈을 뜨고 있는 게 힘들어 다시 눈을 감았다.

“씨발, 그걸 지금 말이라꼬 하나? 그라믄 와 여즉 눈을 몬 뜨는데? 이거 쑨 돌팔이 아이가?”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온 병실의 환자를 깨울 듯한 커다란 목소리에 수일은 픽 웃었다. 아. 아프다. 너무 아파서 소름이 돋았다.

두산에게 자신이 눈을 떴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언제 들어오려나 힘겹게 문을 바라보았지만, 두산은 밖에서 장장 10분 동안 고함을 질렀다. 누군지 몰라도 두산에게 당하는 사람이 가여웠다. 그리고 시끄러웠다.

그만 좀 하지 싶을 즈음 벌컥 문이 열리더니 두산이 몸을 반만 넣고 또 소리를 질렀다.

“야 눈 안 뜨기만 해 바라. 내 싹 다 감옥에 쳐 넣으삐 끼다.”

창피했다. 수일은 옅은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불쌍한 의사와 간호사를 위해서라도 눈을 뜨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두산은 수일이 눈을 뜬지도 모르고 씩씩대며 걸어 들어왔다. 쾅 소리를 내며 병실 문을 닫고, 옆 침대에 커다란 몸을 던졌다.

“두… 사나.”

다 갈라진 목소리가 꼭 남의 것처럼 낯설었다. 목소리가 작았나 보았다.

“…두… 사….”

“씨발롬들, 으데서 뻥을 치노. 삼 일째 눈도 몬 뜨는데. 와, 씨발, 내 성질 마이 죽었다.”

혼잣말도 참으로 떠들썩하게 했다. 어찌나 열을 내던지, 수일이 겨우 뱉은 말을 덮어 버렸다.

“무… 울.”

“어! 물?”

지 이름은 못 알아들었으면서 물이란 말은 한 번에 알아들었다. 호들갑스레 몸을 일으킨 두산은 좀 전까지 화를 낸 사람이 맞나 싶게 콧노래를 부르며 거즈에 물을 적셨다. 어깨를 들썩이며 춤까지 췄다.

“수일아, 이거 먹는 거 아이다. 내 물만 적시주는 기다. 물떼지 마라.”

건들거리며 다가와 입술에 거즈를 대 주었다. 수일이 눈을 들어 두산을 보았다. 두산은 수일의 입을 보느라 수일이 눈 뜬 줄을 몰랐다. 아니면 겨우 바늘구멍만큼 눈이 벌어져 있어서 몰라보는 건지도 몰랐다. 입에 물기가 닿자 따가웠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따가워 인상을 쓰자 두산도 따라서 인상을 썼다.

“마이 따갑제? 우짜겠노, 참아야지.”

이러며 한숨을 푹 쉬었다.

“개쌔끼들. 다 직이삐는긴데.”

물론, 욕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사… 나….”

“어? 내? 내??”

두산은 제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라며 수일을 보았다. 뒤늦게 수일의 눈이 조금 벌어진 걸 알아보았다. 바보처럼 입을 쩍 벌리더니 몸을 수그려 눈이 정말로 떠진 건지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 가며 확인했다. 그러다 정말 수일이 눈을 떴다는 걸 확인하자 시원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내 보이나? …….”

이리 묻는 목소리가 떨렸다. 귀가 따갑게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던 두산은 되레 차분해졌다. 연고와 눈곱 때문에 시야가 흐려서 잘못 본 걸 수도 있지만, 두산의 눈가가 벌겠다. 두산은 커다란 손을 들어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하, 씨발.”

그렇게 가만 서서 손등으로 눈을 비비다, 수일의 시선이 닿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잠깐, 그… 머시고… 하이고.”

횡설수설하던 두산은 이번엔 눈가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우는 걸까.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런 것 같았다. 아니어도 수일은 상관없었다. 제가 죽은 것도 아니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우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무… 울.”

입 안이 바짝 말라 괴로웠다. 입을 적셔 주다 말아서 더 감질났다. 물이란 말에 이번에도 두산은 바로 반응했다.

“어! 물!”

그 뭐더라, 학교에서 배웠던. 맞다. 파블로프의 개. 꼭 그 강아지처럼 두산은 물이란 말에 즉각 반응했다. 수일은 그게 재밌어서 속으로 웃었다.

거즈를 수일의 입에 다시 대 주는 두산의 처진 입꼬리가 슬퍼 보였다. 두산은 입을 꾹 다물고 울음을 참는 중이었다. 왜 울고 그래. 나 괜찮은데. 수일은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다른 손으로 제 입술을 적시는 두산의 손을 툭툭 건드렸다.

울지 마. 두산아. 나 괜찮아.

마음속으로 달래 주었다.

두산은 수일의 토닥임에 금세 예쁜 입꼬리를 올리고 씨익 웃었다. 쑥스러운지 코를 쓱 닦고 눈가를 훔쳤다.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수일은 웃었다. 얼굴 근육을 움직이자 순식간에 아픔이 몰려왔다. 저도 모르게 으으 소리를 냈지만, 두산은 수일이 웃은 걸 알아보았다.

“에헤이, 그래 웃지 마라. 내 운 거 아이다.”

하여간 우기는 덴 도가 텄다. 수일은 괜히 얄미워 입을 비죽 내밀었다.

거즈에서 나오는 알량한 물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수일은 쩍쩍 갈라진 입술을 달싹이며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려 애썼다. 조금 더 주지. 제 입에서 거즈가 떨어져 나가자 아쉬웠다. 맘 같아선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싶은데, 두산은 그러지 못하게 했다.

눈을 뜨고 있는 게 이다지도 힘든 줄 몰랐다. 눈꺼풀이 어찌나 무거운지 수일은 또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은 뜻나?”

“예. 이제 뭐 떴다 감았다 자유자재로 합니다.”

겨우 한번 떴을 뿐인데, 두산은 신이 나서 오버했다. 자유자재라는 단어를 말할 땐 리듬까지 실었다.

“하이고, 참말로 다행이다.”

“수박은 아직 못 묵제?”

익숙한 목소리였다. 은아 씨와 삼락 형님은 소곤소곤하며 의자를 끌어 수일의 침대 옆에 앉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본 은아 씨는 어딘가 아픈 기색이었고, 삼락 형님도 초췌하긴 마찬가지였다. 사모님 만나려면 잘 가꾸어야 하는데, 형님은 며칠 수염도 안 깎은 것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은아 씨는 어디가 아픈 걸까.

제 몸이 제일 성치 못하면서도 수일은 은아 씨와 삼락 형님을 걱정했다. 아무도 없는 수일에겐 두산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설령 두 사람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지 않더라도, 수일에겐 그랬다. 좋은 사람들, 다 잘됐으면 좋겠는 사람들이었다.

밖은 종일 흐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아직 밤은 아니었다. 수일이 눈을 뜬 줄 모르는 두 사람은 수일을 흘끔거리며 얘기를 나눴다.

“혜서이 그년은 일본 간다카데? 이번에 온 쪽바리가 김연자처럼 만들어 줄끼라 켔다는데 믿어도 되는 기가? 내 보고 같이 가자꼬 그래 꼬신다.”

“내야 모르지. 와? 누야도 관심 있나?”

두산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인데, 혜서이 말로는 여보다 돈도 마이 준다 카고 대우가 훨 좋다 카니까 솔깃하지.”

“에헤이, 은아 니 아들은 우짤라꼬 그라노?”

“오빠도 참. 아들을 생각하이까 내 이라지. 쌔빠지게 돈 벌어봐야 빚 갚고 나면 남는 기 한 개도 읍따. 우리 딸래미 학원비 한번 준 적이 읍따. 혜서이 말마따나 이번에 가면 몬 해도 계약금만 몇천이라는데.”

“쯧.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말이 좋아 일본이지, 거 가믄 쑨 요정에 보낸다 카드라. 술집 가시나들 중에 그래 속아가는 아들 천지라 카든데, 니는 그런 소문은 몬 들었나?”

삼락 형님은 평소답지 않게 화를 버럭 냈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건지, 다 헛소리라며 은아 씨를 말렸다. 혜선이야 아주 작정하고 갈 모양이라 말린다고 해도 듣지 않겠지만, 적어도 은아 너는 그러면 안 된다며 삼락 형님은 길길이 날뛰었다.

반면, 두산은 두 사람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상하게도 늘 그랬다. 함께 술을 마시고 떠들고 놀아도 정작 그들의 안위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었다.

하라 하지 마라 말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삼락 형님에게 지금 만나는 사모를 조심하라 했을 뿐,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경향이 있었다. 수일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는 두산의 태도가 내심 서운했다.

벌컥 문이 열리고 슬리퍼 끄는 소리와 함께 바퀴 소리가 났다. 간호사였다.

“잠시만예.”

간호사는 침대를 둘러싼 두산과 일행들을 비키게 하고 침대 주위로 촥촥 커튼을 쳤다. 수일이 깼는지 어쨌는지 확인도 없이 훌러덩 환자복을 벗겼다. 망설임 없이 배에 붙여 둔 반창고를 떼 내고 차가운 알코올 솜을 문질렀다.

“으으.”

요즘 수일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수일의 신음을 듣고 두산이 커튼 밖에서 잔소리했다.

“거, 간호사님, 살살 쫌 하이소. 아프다 안 카나?”

간호사는 대꾸도 하지 않고, 이번엔 빨간색 솜을 문질렀다. 약이 마르는 동안 간호사는 수일의 두 손과 손톱에 난 상처, 이마와 눈가에 난 상처를 하나하나 소독했다. 눈두덩에 연고를 바르다가 눈을 뜬 수일을 보고 흠칫 놀랐다. 놀라지 않은 척 상처에 반창고를 새로 붙이며 수일의 몸을 흔들었다.

“환자분, 이래 계속 누 있으면 안 됩니다. 장기가 유착되면 클납니다. 깼으면 가족분 도움받아서 복도도 걷고 하이소. 그라고, 방구는 낐습니까?”

수일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방귀 소리에 멈칫했다. 방귀를 뀌었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커튼 밖에서 두산이 말했다.

“아직 방구 안 낐습니다. 여즉 뽕 소리 한번 안 났습니다. 냄새도 안 났고예.”

두산의 말에 간호사는 입술을 실룩했다. 트레이 위에 다 쓴 가위를 던지듯 올리고, 소독약과 연고가 담긴 스테인리스 통을 거칠게 정리했다. 그리고 촥촥 커튼을 열고 나가기 전에 ‘쫌 걸으이소’ 했다.

“수일아! 니 개안나?”

간호사의 말을 듣고 수일이 눈을 뜬 걸 확인한 삼락 형님이 침대로 바짝 다가와 물었다.

“…에….”

수일은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저거 웃는 깁니다. 찡그린 거 아이고예.”

형님 곁에 서서 수일을 내려다보던 두산이 수일의 표정을 해석해 주었다. 뿌듯한지 팔짱까지 끼고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다.

“하이고 수일아, 내가 니 볼 맨목이 읍따.”

갑자기 형님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조금은 과장스레 억지 울음을 짜내긴 했어도, 형님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수일은 삼락 형님이 왜 미안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일을 때린 건 족제비와 꼬봉들이었다. 만약 형님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그들을 말렸으리라.

“개차나여… 혀니이 왜 미안… 하요.”

“그래, 오빠야, 이라지 마라. 수일이도 개안타 안 카나?”

은아 씨가 삼락 형님의 등을 토닥이며 수일을 향해 미소 지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많이 피곤한지 입술까지 텄다. 안색마저 나빠서 진분홍색 추리닝이 아니었다면, 여기 환자로 보일 지경이었다. 돈이 아무리 궁해도 은아 씨가 일본은 가지 말았으면 했다. 형님이 한 말이 수일도 영 마음에 걸렸다. 입을 달싹이는 것도 힘든 수일은 제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두산은 침대 옆 레버를 돌려 헤드를 높였다. 수일이 편하게 두 사람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조금 몸이 굽어졌다고 배가 아팠다. 수일이 끙끙대자 두산이 반대로 레버를 돌리려 했다. 수일이 손을 들어 말렸다.

“내리지 말라꼬?”

고개를 끄덕이자 알았다, 했다.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삼락 형님과 은아 씨는 병실이 사랑방이라도 되는 양 30분을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었다. 은아 씨가 형님이 사 온 수박을 잘라 주는 걸 수일은 구경만 했다. 목이 말라 입맛을 다시던 수일을 본 두산은 수박을 줘도 되는지 물으러 갔다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방구를 끼야 물 수 있단다. 간호사 말로는 걸으면 빨리 방구가 나온다 카니까 내하고 걷자. 알았제?”

수박을 한입 베어 물며 두산은 말했다. 수박을 다 먹고 수일에겐 거즈를 적신 물을 주었다. 수일은 입이 한 발 나왔다. 그렇게 수일을 잘 읽는다고 자부하는 두산도 수일의 삐죽거림은 읽지 못했다.

정신은 아직 깜빡깜빡했다. 삼락 형님과 은아 씨가 나가는 걸 보지도 못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수일은 무대 위에 있었다. <오동잎>을 부르면서 두산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두산은 거침없이 중년의 여자 손님이 앉은 테이블로 가 앉았다. 여자 손님은 두산의 볼을 잡고 뽀뽀까지 했다. 립스틱이 묻은 왼쪽 볼을 엄지로 쓸어 주며 수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자가 말했다.

‘니 백두산이 눈지 아나? 알면 여 이래 몬 누 있으 낀데?’

수일은 눈을 번쩍 떴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악몽도 아닌데 수일의 손에 땀이 흥건히 뱄다. 조금 전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두산도 삼락 형님도 은아 씨도 아무도 없었다.

“으으으.”

누구라도 하나 와 줬으면 싶었다. 무서웠다. 수일은 몸을 비틀어 버튼을 찾았다. 빨간색 버튼을 누르자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이어 간호사가 문을 열었다. 아까는 분명 형광등이 켜져 있었는데, 불이 꺼진 채 슬리퍼 소리만 들렸다.

“으으.”

치-익, 치익, 칙. 수일은 벌벌 떨었다. 눈을 감고 싶은데 이상하게 눈이 감기질 않았다. 누가 억지로 벌리기라도 하듯 오히려 더 크게 떠졌다. 흰 간호사복을 입은 검은 그림자가 수일에게 바짝 다가와 고개를 들이밀었다.

붉은 립스틱을 바른 간호사는 이내 호스트 여사장으로 바뀌었다. 여사장은 붉은 루주가 번진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낄낄 웃었다. 순간 온몸이 차가워지고 머리끝이 쭈뼛댔다.

몸을 흔드는 느낌에 수일은 눈을 번쩍 떴다. 헉헉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온몸이 아팠다. 오한이 나서 이가 딱딱 부닥쳤다. 수일은 짐승 소리를 내며 저를 흔든 사람을 찾았다.

“수일아, 와? 어데 아프나?”

자다 깼는지 두산은 목이 잠겨 있었다. 수일은 두산의 목소리만으로도 안심했다. 두산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옆에 있어 달라 표시했다.

“같이 있으까?”

“…으….”

함께 눕기엔 비좁은 침대라 두산은 침대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의자를 끌어다가 옆에 바짝 붙어 앉고 수일의 손을 잡았다. 두툼하고 뜨거운 손이 살짝 닿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의 악몽이 뭘 의미하는지 수일은 몰랐다. 몰라도 상관없었다. 수일은 자주 이상한 꿈을 꾸지 않았던가. 아무 의미 없는 꿈이려니 했다. 너무 아파서 헛소리하고 헛것을 보듯 이 꿈도 그중 하나라 생각했다. 지금 수일에겐 두산이 곁에 있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저를 위해 싸워 주고 곁에 있어 주는 남자. 두산만 있으면 되었다. 두산만 무사하다면 저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아도 괜찮았다. 열 번도 더 맞을 수 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장이 파열되는 게 뭐 별거냐 싶었다. 수일은 맞는 거 하난 자신 있었고, 늘 금세 회복했다.

마음이 안정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두산은 수일의 손에 제 얼굴을 갖다 대고 곤히 잠이 들었다. 두산이 숨을 들이켜고 내쉴 때마다 축축하고 뜨거운 입김이 닿았다. 수일은 그 감촉이 너무 좋아 미소 지었다.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제야 돈 생각이 났다. 내 돈. 팁으로 받은 수표 일곱 장은 누가 갖고 있을까. 입고 있던 옷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상엽이 오면 쓸 돈인데. 혹시 잃어버렸을까 봐, 누가 나쁜 마음을 품고 훔쳐 갔을까 봐 수일은 불안했다.

두산에겐 물어볼 수가 없었다. 화를 낼 게 뻔했다. 나중에 두산이 출근하고 나면 간호사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수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두산이 곁에 있으니 악몽은 꾸지 않겠지 싶어 마음 놓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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