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81)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아! 아프다!

뚜뚜뚜, 일정한 기계음이 들렸다. 교통사고. 그래 교통사고가 났었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았구나. 수일은 괴로워 미칠 것 같았다. 당연히 죽을 줄 알았다. 그래야 옳았다.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머니를 만나고 저를 키워 주신 할머니도 만나고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도 만날 줄 알았다. 이번 일로 수일은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스물다섯 해를 마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수일은 직감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수일은 생각해 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기이하게도 한번 잠들었다 깨고 나면 저가 누운 곳이 어딘지 잊어버렸고, 다시 잠이 들었다 깨면 저가 누군지도 잊어버렸다. 이상했다. 분명 기억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딜까? 왜 누워 있는 걸까? 이 극심한 고통은 무엇 때문일까? 머리가 고장 난 게 분명했다.

뚜뚜뚜뚜. 반복되는 기계음에 정신을 집중했다. 스물다섯. 다행히 나이는 기억에 남았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나는 누굴까?

뚜뚜뚜뚜뚜. 급작스레 통증이 찾아들었다.

“흐으… 으. 아… 파… 요.”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소리를 내었다.

“수일아! 정신이 쫌 드나?”

그래. 윤수일. 수일은 이제야 자기 이름을 떠올렸다. 윤수일. 처음 듣는 경상도 여자의 목소리에 수일은 어리둥절했다. 제가 아는 지인 중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자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를 만한 여자가 하나도 없었다. 눈을 뜨고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본드라도 발라 놓았는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오빠야, 빨리 간호사 쫌 불러온나. 간호사! 아이다 내가 가께. 내가.”

“어어. 일났나? 눈뜻나?”

이번에도 모르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피곤했다. 아팠다. 아프고 졸렸다. 수일은 또 정신을 잃었다.

***

개새끼들. 약을 처먹였는지, 정은아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알몸으로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 천장이 빙빙 돌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샤워하고 화장을 지웠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겨우 추스르고 방에서 기어 나왔다.

그래도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몰랐다.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은아는 제 수중에 들어온 수표를 세며 미소 지었다.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룻밤에 벌었으니, 이 정도 고통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은아는 이를 악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이트로 향했다. 새벽의 나이트는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불도 다 꺼 놓아 하마터면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거추장스러운 힐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간신히 대기실로 들어간 은아는 찢어진 원피스를 벗고 핑크색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콧노래가 절로 났다. 몸이 아픈데도 좋아 죽을 것 같았다. 자기에게도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 꿈에도 몰랐다. 은아는 자꾸 터지는 웃음을 참다가 소리 내 웃었다. 정은아, 살아 있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니 찜찜했다. 으스스한 기운에 몸을 떨던 은아는 대기실을 휘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이 없었다. 기분 탓인가? 은아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상아색 무대복을 발견했다. 소지품 가방도 그대로였다.

“이상타. 수일이가 저거를 놓고 갈 아가 아인데.”

혼잣말을 하며 은아는 물을 한 잔 마셨다. 수일의 짐은 어쩌나 고민하다 결국 제 소지품과 무대복만 챙겨 들었다. 중간에 정신을 잃어 기억은 없지만 제대로 시달린 모양인지 아랫도리가 말도 못 하게 욱신거렸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토끼 같은 제 새끼들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푹 자고 싶었다. 이제 막 벽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같은 시각, 최삼락은 오성관 호텔 스위트룸에서 심란한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일본 노래를 두 곡이나 부른 탓에 팁이 쏠쏠했다. 물론 이번은 삼락을 불러 주는 사모가 없어서 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샤워하고 막 나오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나가 보니 호텔 방 문 앞에 노란 봉투 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삼락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봉투에는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을 찍은 사진 여러 장이 들어 있었다. 삼락은 누군지 몰라도 방을 착각한 모양이라 생각하며 사진을 도로 넣어 탁자 위에 던져두었다. 양쪽 스위트룸에서 나는 온갖 소음이 귀를 괴롭혔다.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자정 뉴스가 나올 때쯤 깜빡 잠이 들었다.

전화벨이 울린 건 그때였다. 강재욱의 소개로 만나고 있는 사모님의 전화였다.

“어. 춘자 씨! 이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내 춘자 씨 생각하고 있는 줄은 또 우찌 알고? 으하하하하. 내도 사랑합니데이. 말씀만 하이소. 춘자 씨 소원이라면 하늘에 별도 따다 드리겠습니다. 예. 예. 예….”

삼락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다녔지만, 그는 예의 능청스러운 말솜씨로 상대편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전화를 끊었다. 탁자 위에 놓인 노란 봉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 쌔끼가 으데 남의 밥상에 초를 칠라 그라노?”

재혼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대인 정춘자, 정 여사의 전남편이 재결합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정 여사는 삼락을 선택했다. 대신 전남편이 자꾸 귀찮게 구니 협박이라도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거야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협박 방법이었다.

정해진 시각, 정해진 장소에 정 여사가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벨을 누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누군가 문을 열어 줄 테니 안으로 들어가 딱 1시간만 앉아 있다 나오면 끝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협박이란 말인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영 앞뒤가 안 맞았다.

“에이, 씨발, 뭐가 우째 돌아가는 기고?”

삼락은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웠다. 잠이 오질 않았다. 담배를 두어 대 피우고 술을 몇 잔 마셔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또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 4시였다.

“여보세요!”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안 그래도 심란한 삼락은 전화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니 누고? 어떤 새끼가 이 새벽에 전화질이고??”

고함은 상대의 다급한 요청에 금세 사그라들었고, 전화를 끊자마자 삼락은 황급히 옷을 주워 입었다. 싸움이 있었다더니 그게 수일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니 왜 수일이 손님들과 싸움이 붙었단 말인가? 정 여사에게 선물 받은 자동차 키를 거머쥐고 삼락은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대로변으로 나가려는데 은아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아야, 니 지금 바쁘나?”

“아이씨, 깜짝이야!”

“니 안 바쁘면 내하고 병원 쫌 가자. 수일이가 중환자실에 있다 카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다 케서 내 지금 가는 길이다.”

“중환자실? 수일이가? 아니 그기 뭔 소리고?”

“갈 끼믄 퍼뜩 타라.”

은아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삼락의 차에 바로 올랐다. 멀쩡히 노래 잘 부르고 팁을 챙기는 것까지 봤는데 중환자실이라니, 은아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집에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났나?”

“그기 아이고, 내도 잘은 모르는데 손님들하고 쌈이 났다 카드라.”

“아니, 그기 말이 되나? 수일이가 쌈을 할 아가?”

“내 말이. 일단 가보자.”

“하이고, 이 무슨 일이고?”

둘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던 은아는 뻐근한 눈을 두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안락한 시트에 몸을 기댔다.

“선물 받았다 카드마는 이 차가?”

“어. 좋제?”

“이래 비싼 걸 선물로 다 주고, 그 싸모 억수로 돈이 많은가베?”

“돈만 많나? 사람도 착하다.”

“엄마야. 그 사모랑 진짜로 재혼 하끼가?”

“내야 하고 싶지. 춘자 씨도 하고 싶어 하는 눈치고. 뭐 올해 안에 좋은 소식 안 있겠나? 으하하하하.”

삼락은 호탕하게 웃었다. 진심이었다. 그래, 좋은 소식이 있으려고 그런 부탁을 받은 걸 테다. 사람을 패라는 것도 아니고 죽이란 것도 아닌데 까짓것 그거 하나 못 해 줄까 보냐. 삼락은 속으로 이리 생각하며 액셀을 밟았다.

환자의 이름을 대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딱 봐도 스무 살은 될까 말까 한 어린놈의 새끼가 수일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삼락과 은아를 알아본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녕하십니까. 김덕규라고 합니다.”

“니 누고?”

“저예? 두사이 행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 근데 두사이는?”

“그기 쫌 복잡하게 돼서예, 두사이 행님 대신 제가 여 있는 긴데….”

덕규는 횡설수설 말을 잇지 못했다.

“두사이고 머시고 간에 이 우찌된 일이고? 수일은 개안나?”

은아는 수일을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얼굴은 찢어지고 멍이 들어 형편이 없었다. 얼마나 맞았길래 저리 부었을까?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얼굴에는 턱까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손톱은 부러지고 손등에는 긁힌 자국이 그득했다.

“코뼈가 뿌사지고, 장도 파열 되가꼬 수술했거든예. 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꼬 의사쌤이 걱정하지 말라꼬 했습니다. 깨기만 하면 일반 뱅실로 바로 옮긴다고도 했고예.”

진정하고 혈색이 돌아온 덕규는 차분히 설명했다. 장 파열이라니. 삼락과 은아는 놀란 눈으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알았다. 일단 니는 그만 드가 바라.”

“예. 그라믄 난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수고들 하십시오.”

둘러보니 환자들 모두 기계를 꽂고 있었다. 수일도 산소마스크와 기계를 꽂고 있긴 매한가지였다. 뚜뚜뚜. 일정한 기계음이 소름 끼쳤다.

은아는 마르고 앙상한 수일의 손을 꼭 쥐었다.

“하이고, 수일아. 니는 우째 이래 복도 없노?”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제 동생뻘인 윤수일은 박복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은아가 봐도 참 운이 없었다.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와 앉은 삼락은 수일을 부른 걸 후회했다. 그냥 서울에 둘걸. 그랬으면 적어도 장까지 파열될 정도로 맞진 않았을 텐데.

지난번에 맞았을 때도 그랬지만 삼락은 오지랖이 넓은 자기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아끼는 동생이라 제 딴엔 신경 쓴다고 한 일이 화를 불렀다.

그나저나 이놈의 백두산은 어디를 간 걸까. 좋다고 쫓아다닐 땐 언제고 사람이 아파서 다 죽어 가는 마당에 코빼기도 안 보였다. 은아는 두산이 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었다.

고단했던 두 사람은 그 불편한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동이 트고 간호사들이 바삐 중환자실을 오고 갔다. 누가 죽었는지, 통곡하는 소리에 은아는 정신이 들었다. 하품을 크게 하고 기지개를 폈다. 삼락은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화장실로 가 소변을 보고 대충 세수를 했다.

자식들에게 연락하는 걸 깜빡한 은아는 공중전화를 찾아 집에 전화를 걸었다. 미리 못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말을 해 두어서 걱정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딸과 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은아의 유일한 삶의 낙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한층 밝아진 얼굴로 커피 두 잔을 뽑아 수일의 곁으로 갔다. 삼락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해서 한 잔은 탁자 위에 올려 두고 은아만 마셨다. 달고 쌉싸름한 커피가 들어가자 눈이 밝아졌다. 캬아, 하는데, 수일의 입술이 달싹였다.

“흐으… 으. 아… 파… 요.”

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일아! 정신이 쫌 드나?”

“으으으… 아… 파… 요.”

눈물까지 흘리며 아프다고만 할 뿐,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모습에 은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빠야, 빨리 간호사 쫌 불러 온나. 간호사! 아이다 내가 가께. 내가.”

“어어. 일났나? 눈뜻나?”

야단을 피우는 은아와 달리 간호사는 심드렁했다. 수일에게 다가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억지로 눈을 벌렸다. 조그만 플래시를 켜 동공 반응을 확인했다.

“환자분, 정신이 드십니까? 제 말 들리세요?”

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떻습니까? 개안습니까?”

삼락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한 간호사는 링거병을 확인하고 기다리시예, 한마디를 남긴 채 사라졌다.

“저 싸가지!”

“다 들린다, 조용히 쫌 해라.”

삼락을 팔꿈치로 치며 은아가 눈치를 주었다. 간호사가 나간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의사가 왔다. 자다 왔는지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긁적이며 성의 없게 상태를 확인했다. 아픈 사람을 흔들기도 했다.

“윤수일 씨, 정신이 드십니까? 제 말 들리세요?”

“흐으… 으… 아파… 요.”

“정신 들었네.”

의사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 자국을 확인하고 모니터에 뜬 그래프를 흘끔거렸다.

“보호자 되십니까?”

방금까지 투명 인간 보듯 그들을 무시하던 의사가 삼락을 향해 물었다.

“예. 상태는 쫌 어떻습니까?”

“수술 경과도 좋고 의식도 빨리 찾았네예. 일단 일반 병실로 옮기셔도 될 거 같습니다. 한 3일은 물도 마시면 안 되고예, 정 목마르다 하면 수건으로 입술만 살짝 적셔 주십시오. 에, 또, 그 다음은 뭐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낍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이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삼락은 의사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간호사는 곧장 수일의 입에서 호흡기를 빼고 기계에 달린 줄도 모두 뺐다. 옆에서 구경만 하던 삼락과 은아의 도움을 받아 이동식 침대 위로 수일을 옮겼다. 수일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온몸에 붕대를 감은 수일을 일반 병실로 옮겼다.

이리 빨리 옮겨도 되나 싶었는데 간호사는 된다고 했다. 의사도 된다고 했으니 믿으라고만 했다. 도떼기시장 같은 10인실 병동엔 수일처럼 팔이나 다리, 얼굴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로 복작거렸다.

수일이 깨어난 걸 보자 안심이 되어 그랬는지, 갑자기 은아는 밑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인상을 썼다. 아까 화장실 갔을 때 보니 피도 비쳤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오빠야 내 먼저 드가서 쉬다 오께.”

“어, 그래. 가서 쉬라. 여는 내가 잘 살피고 있으께.”

“밥 잘 챙기 묵고 있으라.”

“걱정도 팔자다. 니 걱정이나 해라.”

“오야. 수고 쫌 해라.”

“퍼뜩 가라. 정신 사납다.”

삼락은 은아를 밀어내며 웃었다. 은아는 가기 전 수일의 손을 꼭 잡고 귀에 속삭였다.

“수일아, 내 쫌 있다 오께. 힘들어도 잘 버티고 있으라.”

말을 끝낸 뒤, 수일의 터지고 부어오른 얼굴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 잘생긴 얼굴이 온데간데없었다. 이게 사람 얼굴인가.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청승맞기는. 은아는 손끝으로 찔끔 나온 눈물을 닦고 병실을 나섰다.

삼락도 마음이 아프긴 매한가지였다.

“하이고, 수일아. 내가 니 볼 맨목이 읍따. 내가 니하고 인연인 줄 알았드만은 지금 보이 악연인 갑다. 으이? 이게 머꼬? 수일아.”

한탄하며 소란스러운 병실을 둘러보았다. 돈이 좀 있었더라면 10인실이 아니라 6인실로라도 옮기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삼락은 돈이 없었다. 해운대 사모 남편에게 협박을 받아 천만 원을 뜯겼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렸다. 정 여사가 아니었다면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할 뻔했다.

수일은 잠이 들었는지 끙끙대지 않았다. 삼락은 휴게실로 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빵도 하나 사서 입에 물었다. 팥빵에 단 커피를 마시자 기운이 돌았다.

“역씨, 빵은 팥이 체고다.”

한입 가득 빵을 베어 물고 수일이 있는 병실로 향하는데 앞에 잘 차려입은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딱 봐도 누군지 알았다. 강재욱. 강 이사.

삼락은 먹다 만 빵을 봉지에 넣고 ‘강 이사, 동생’ 하고 부르며 달려갔다. 덩치 셋이 그런 삼락을 막아섰다. 강 이사가 그들을 말렸다. 삼락은 입술을 실룩이며 덩치들을 노려본 다음 강 이사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강 이사가 여 웬일이고?”

“직원이 다칬다 카는데 함 와바야지예.”

역시 의리를 아는 남자였다. 그렇게 수일을 ‘행님, 행님’ 하고 쫓아다니던 백두산 개새끼는 보이지 않는데, 이사라는 높은 직책임에도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니 삼락이 다 고마울 지경이었다. 자기가 사람 하난 잘 본다 생각하며 삼락은 병실로 강재욱을 안내했다.

덩치들을 문밖에 세워 두고 강 이사만 삼락을 따라 들어갔다. 강 이사보다 먼저 들어간 삼락은 의자를 준비해 주었다.

“강 이사, 그래 서 있지 말고 여 앉아라.”

강재욱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선 채로 쓰레기 같은 병실을 휘 둘러본 다음, 수일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사람이란 게 이렇게 별 볼 일이 없었다. 아무리 잘나 봤자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누가 지금의 윤수일에게서 미남이란 단어를 떠올릴까. 수일은 재욱이 미친 듯이 팼던 여느 사람들의 얼굴처럼 살이 다 터지고 피멍이 들어 커다랗게 부어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버려진 시체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첫 만남 때도 윤수일은 이런 모습이었다. 재욱이 박 사장 노모의 팔순 잔치 때 수일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설마 그때 그 병상에 누웠던 새끼가 제 나이트에 있는 새끼와 같은 인물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아마 영감도 몰랐을 것이다. 변두리 나이트엔 관심도 없는 양반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갓 서른이었던 재욱은 겨우 영감의 눈에 들어 생전 처음으로 나들이에 포함되었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서울까지 가서 한 일이라곤 고작 운전사 노릇과 심부름꾼 행세였지만, 그때 이후로 재욱의 인생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으므로 그 나들이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재욱은 영감이 윤수일을 어디다 어떻게 썼는지 자세히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영감이 쓰고 버린 수많은 ‘졸(卒)’ 중 하나라는 것만 알았다. 죽기를 바랐던 졸(卒)이었다. 왜 살려 두었을까?

“으쩌다가 쌈이 났는지 강 이사는 아는 기 쫌 있나?”

삼락이 눈치 없이 물었다.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저야 당연히 모르지예.”

“그제? 강 이사가 알 턱이 없제?”

삼락은 등신같이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재욱의 말을 믿었다.

이만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이만했으니 두산이 미쳐서 날뛰었다. 이래저래 수일은 재욱에겐 굴러 들어온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다. 최삼락이야말로 복덩이였다. 수일을 불러들인 것도 결국 삼락이 아니던가. 아둔하고 돈에 눈이 먼 늙은 제비 새끼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 몰랐던 재욱은 그를 구슬려 두길 잘했다고 저의 안목을 칭찬했다.

“행님, 고생 좀 해주이소. 참! 정 여사님한테서 연락 받았지예?”

“어? 어. 그래. 안 그래도 내가 동생한테 의논을 쫌 할라꼬….”

정 여사 얘길 물어보자마자 삼락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의논? 그기 의논 할 끼 있습니까?”

재욱은 웃음기를 거두고 삼락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어디를 빠져나가려고.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삼락은 그새 꼬리를 내리고 깨갱댔다.

“그쟈? 의논 할 끼 읍제? 어려운 일도 아이고, 우리 정 여사가 턱별히 부탁한 긴데 당연히 내가 해야지.”

“예. 그래야지예. 정 여사님이 을매나 행님을 신뢰하면 그런 걸 다 부탁하겠습니까?”

“하모. 내 말고 또 누가 있겠노? 으하하하하.”

개돼지만도 못한 새끼. 번지르르하게 기름이 도는 얼굴로 저를 향해 웃는 삼락을 보고 재욱은 기분이 팍 상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 늘 하던 대로 입꼬리를 올리고 눈도 휘었다.

“으으으… 무… 울….”

삼락의 웃음소리에 깬 건지 아니면 목이 말라 깬 건지 수일이 입을 열었다. 퉁퉁 부어 떠지지도 않는 시뻘건 눈두덩이를 들어 보려 애를 썼지만, 이내 포기하고 ‘물’ 하고 다 쉰 목소리로 겨우 말을 뱉었다.

“수일아! 물? 물? 아, 그기 의사 쌤이 물은 안 된다 켔는데.”

“흐으… 으. 무… ㄹ.”

“하이고 안 되는데…. 목말라도 쪼매 참아라. 으이?”

수일의 얼굴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던 삼락이 급히 바지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찾았지만, 나온 건 빵이 든 봉지 하나와 지갑뿐이었다. 삼락이 재욱을 돌아보았다.

“강 이사, 손수건 있나? 물은 마시면 안 되고 입술은 적시도 된다 케서. 내 손수건을 깜빡했네.”

“아, 예. 뭐 제꺼 쓰이소.”

재욱은 선뜻 손수건을 건넸다. 삼락은 멍청한 건지 약은 건지 알다가도 모를 남자였다. 지금은 수일을 위해 뭐라도 하나 더 해 주려 애썼다. 눈물겨운 우애였다. 진동하는 소독약 냄새에 재욱은 단정한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았다.

삼락이 손수건에 물을 적시러 간 사이 병실을 나섰던 재욱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아!’ 하고 외쳤다. 다시 수일의 병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으으으, 여전히 짐승 같은 신음을 뱉는 수일의 귀에 입술을 바짝 갖다 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어이, 윤수일이. 니 백두산이 눈지 아나? 알면 여 이래 몬 누 있으 낀데?”

낄낄. 하여간 재밌는 인연이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재욱은 언제 왔는지 의아한 눈으로 저를 보는 삼락을 향해 미소 지었다. 꼭두각시. 자신의 계획대로 춤을 춰 줄 남자는 허리를 굽혀 가며 손수건으로 수일의 입술을 적셨다.

이제 다 잡은 짐승만 처리하면 되는 건가? 건드리기 여간 까다롭지 않은 새끼였으나, 이번 만은 영감도 어쩌지 못하리라.

백두산.

재욱은 두산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짓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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