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81)

현수가 데리러 왔다. 예의 그 검은 승용차를 몰고.

“어! 행님은 멀쩡하네? 두사이는 입술이 엉망징차이든데. 사랑싸움했습니까?”

현수는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그는 습관처럼 입꼬리 한쪽을 올렸다.

“글마 그거 승질 마이 죽었다. 그래 입술이 주 터질 때까지 맞아 주고.”

“아니, 그게….”

수일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두산에겐 미안하지만, 현수가 자신이 때려서 두산의 입술이 그 모양이라 생각하는 편이 듣기가 좋았다. 힘으론 절대 이기지 못하니까 소문이라도 그렇게 나는 건 나쁠 건 없겠지 싶었다. 수일은 괜히 기분이 좋아 속으로 웃었다.

두산이 하던 것처럼 현수가 수일의 짐들을 뒷좌석에 실어 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성관도 문 닫지예?”

“네.”

“그 손님들 때메 우리 가게도 문 닫는다. 개새끼들이 으찌나 요구하는 기 많은지. 가시나 머시마 할 거 없이 싹 다 대기시키라 카대예. 대가리는 여덟밖에 안 되는데 대가리마다 꼬봉들이 네댓 명씩이라 호텔도 잡고 차도 빌리고 정신이 없습니다. 꼬봉들은 오늘 먼저 안 들어왔습니까? 안전점검 한다꼬 밸 지랄을 다 떨었다. 여는 아까 행님 회식할 때 한번 싹 둘러보고 갔습니다.”

현수는 열이 받은 건지 아니면 신이 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떠들어 댔다. 그렇게 바쁜데 두산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와 수일과 영화를 보고 밥까지 먹었다. 하여간 애가 요령만 피우고 놀기 바빴다. 아마 지금은 그 꼬봉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겠지.

“내는 뽕재이들은 죽어도 이해를 몬 하겠드마는, 손님 중에 마약상이 둘이나 있어예. 눈깔이 동태눈깔 맨키로 흐리멍텅한 기 딱 보면 티가 난다.”

이리 말하며 현수는 진저리를 쳤다. 현수는 지난번 이후로 수일에게 스스럼없이 대했다. 수일도 이제 현수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첫인상과 달리 말이 많았고 두산에게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을 마구 해 주었다. 물론 이게 저한테 좋은 건지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현수 씨랑 두산이두 그 손님들하고 같이 다녀요?”

“예. 다 동원됐다 봐야지예. 억수로 큰 손님들이라서 뺄 수도 없습니다.”

수일은 두산이 조금 걱정되었다. 사업가들이라더니 야쿠자고 마약상이었다. 말도 안 통할 텐데 두산이 그들에게 밉보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래도 손님들인데 아무리 두산이라도 웬만하면 참겠지. 강재욱이 저리 나서서 챙기는 걸 보면 별일이야 있겠나 싶기도 했다. 수일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근데 왜 오성관에서 해요? 큰 손님들이면 더 좋은 데로 모셔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귀한 손님들을 모시기엔 오성관은 너무 초라했다. 수일의 물음에 현수가 웃었다.

“에이, 행님이 뭘 모르시네. 시작하기는 오성관이 딱이지예. 눈에도 안 띠제 문을 닫아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제 호텔도 딸맀제. 거서는 밸 추잡한 짓거리를 다 해도 걸릴 리가 없다 아입니까. 그라고 어차피 사업차 온기라 억수로 바쁠 낍니다. 밀레니엄은 내일이나 모레 들릴 끼고예. 솔찌기 밀레니엄 먼저 봤는데 오성관 데꼬 가면 성에 차겠습니까? 접대 순서도 대가리를 억수로 굴린기라예.”

“아….”

수일은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현수의 말에 수긍했다. 오성관은 경찰이 단속조차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최근에서야 스트립쇼가 화끈하다는 소문이 돌아 손님이 좀 들었지만, 아직도 11시 전까진 테이블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라디오에선 광고가 흘렀다. 불현듯 이 대화에 기시감이 들었다. 손님들이 누군지 삼락 형님에게 들어서 그랬던 걸까. 비슷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누구와 대화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호스트로 일할 때 들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땐 돈깨나 쓰는 손님들은 모두 큰 손님이라 불렀고 서로 그 방으로 들어가려 했었으니 말이다.

머리에 안개가 낀 느낌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수일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현수는 특별한 손님들에 대해 아는 만큼 떠들었다. 중요한 얘긴 없어서 수일은 어떤 건 대답해 주고 어떤 건 흘려들었다. 얼마 후 밀레니엄 호텔 간판이 보였다. 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려나 했더니 현수는 밀레니엄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어, 저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두산이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강재욱에게 사고 쳤다는 소릴 들은 마당이라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는데 들르기가 뭣했다. 두산을 보기도 미안했고.

“두사이가 일루 델꼬 오라케서예. 둘이 잘 얘기해 보이소. 내는 모르겠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라 밀레니엄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들어와도 되나 겁이 날 정도였다. 조명은 더 화려했고, 음악은 아예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 컸다.

룸에도 어찌나 많은 사람이 드나들던지 복도는 오고 가며 웃고 떠드는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하룻밤에 수일의 몇 달 치 월급을 번다는 비싼 방에 수일을 넣어 주고 현수는 가 버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전에 양주를 내왔던 앳된 종업원이 칵테일 한 잔과 새우 과자를 내려놓았다.

“두사이 행님이 술은 넣지 말라케서예, 칵테일 한 잔 해왔습니다. 이기 알콜이 쪼매만 들어가서 마시도 아무 이상 없는 깁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기 인터폰 있지예? 저걸로 연락 주십시오. 지는 78번 아랑드롱이고예, 혹시 없을 시 3번 방이라꼬 방 번호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행님, 좋은 밤 되십시오.”

영화배우 아랑드롱을 하나도 닮지 않은 78번은 이번에도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수일은 몸이 좋지 않아서 앉은 채로 고개만 숙였다.

칵테일은 색깔이 예뻤다. 78번의 말처럼 술이 조금 들어가서 적당히 달고 적당히 알딸딸했다. 수일은 술을 아껴 마시며 칵테일과 어울리지 않는 새우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기다란 소파에 팔을 걸치고 앉았다가, 옆으로 스르르 몸이 넘어갔다. 붉은색 벨벳 소파는 포근했다.

손님.

귀한 손님이 온다고 했었다. 큰 손님이 아니라 귀한 손님. 현수가 한 얘기가 아니었다. 누구였더라. 수일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귀한 손님이라 전하는 목소리가 침울했다. 그게 여자가 한 말인지 아니면 남자가 한 말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수일은 다시 몸을 일으켜 앉아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다. 쿵쿵.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방이 울렸다. 그 진동에 칵테일을 담은 잔이 테이블 위에서 찌르르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일은 손을 뻗어 잔을 들었다.

“니 와 여 있노?”

문이 벌컥 열리고 두산이 들어왔다. 팔을 걷어붙인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화들짝 놀란 수일은 아까운 술을 조금 쏟았다.

“어? 그게 현수 씨가.”

“하이고, 그 행님. 사무실로 델꼬 오라카니까는.”

두산이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인상을 썼다. 수일은 칵테일을 든 채 엉거주춤 일어났다.

“가자.”

“어디루?”

“사무실.”

“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되니? 피곤한데.”

수일의 말에 두산이 수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수일의 안색이 별로였는지 그래, 했다.

“그라믄 여서 5분만 기다리라. 내 말 쫌 하고 오께.”

“바쁘면 나 혼자 가도 되구. 얼마 안 걸리잖아.”

“혼자 으델 간단 말이고? 기다리라.”

이러고 문이 쾅, 하고 닫혔다. 물론 음악에 묻혀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느낌상 세게 닫은 것 같았다. 수일은 다시 자리에 앉아 남은 칵테일을 모두 마셨다. 맛있는 걸 남기기 미안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물수건으로 술에 젖은 손을 닦고 과자도 마저 먹었다.

짧은 거리지만 두산은 차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두산은 수일을 제 몸 쪽으로 당겨 안았다.

“회식은 잘했고?”

“응. 뭐 그냥.”

“회식인데 삼겹살이 머꼬 삼겹살이.”

두산은 회식 메뉴까지 꿰고 있었다. 회식이 비밀도 아니고 강재욱이 왔다 갔으니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었겠지 싶었다.

“삼겹살이 뭐 어때서? 원래는 사장님이 5만 원밖에 안 주셔서 그것도 못 먹을 뻔했어.”

수일의 말에 두산이 혀를 찼다.

“에이, 그 씨발롬. 돈 아낄 데를 아끼야지. 그래서 니는 쫌 뭇나?”

“응. 조금. 배불러서 많이는 못 먹겠드라.”

“잘했다. 이따가 출출하면 내한테 삐삐치라. 사다 주께.”

“응.”

수일은 두산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내밀었다. 두산이 소리 내 웃었다.

“내 요새 니때메 살맛 난다.”

영감 같은 소리를 하면서 다가와 쪽 입을 맞췄다. 아직 딱지도 앉지 않은 입술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정말 맞아서 터진 것처럼 보였다. 아까 영화 볼 때만 해도 저 정도로 흉하진 않았었는데. 손을 뻗어 입술을 만지작거리자, 두산이 입술에 닿은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

“다 내가 니한테 맞은 줄 안다.”

“알아.”

“어데 가서 맞고 올 아가 아인데 억수로 이상타, 이라믄서 내를 쳐다본다 아이가.”

두산은 동료들의 반응이 재밌는지 실실 웃었다.

“내 애인이 이래 성질이 드럽다꼬 말도 몬 하고. 우찌 하까?”

“뭘 어째. 그냥 나한테 맞았다 그래.”

“그라까?”

“응. 나 좀 세 보이게.”

“지랄.”

두산은 제 이마로 수일의 머리를 콩, 하고 찧고 웃었다. 수일도 따라 웃으며 입을 맞췄다.

“내 하루 이틀은 억수로 바쁠 끼다. 잘하면 집에도 몬 들어올 수도 있고.”

“응. 현수 씨한테서 들었어. 손님들 때문에 정신없다며?”

“어. 니는 노래만 부르고, 집에 얌전히 있으라. 핸수 행님도 바빠서 덕구가 데릴러 가끼다. 아랑드롱 알제? 가 이름이 덕구다.”

“아. 덕구 씨.”

“덕구 아이고 덕구.”

“그래 덕구.”

“어헤이, 구 아이고 규라꼬.”

두산은 입술을 쭉 내밀고 힘들게 규라고 발음했다. 제가 계속 ‘구’라고 했으면서 괜히 언성을 높였다.

“알았어. 덕규.”

아랑드롱이라는 별명보다 본명이 잘 어울리는 덕규는 숙소 막내 영수보다 두 살이 많았다. 행동도 빠릿빠릿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서 두산이 아끼는 후배라고 했다. 믿어도 된다는 그의 말에 수일은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현철이나 영수는 오성관 소속인 데다 새로 온 보안 팀장 병태 때문에 맘대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고 했다. 반면에 덕규는 밀레니엄 소속이라 두산이 부리기 자유로운 모양이었다.

연신 삐삐가 울렸다. 두산의 입에서도 씨발이 터져 나왔다. 수일을 집에 넣어 주자마자 두산은 밀레니엄으로 돌아갔다. 대문 밖에서 체인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하면서 혹시 몰라 뒷물까지 꼼꼼히 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 생겨도 사나흘은 이 구멍을 영 못쓰겠다 싶었다. 손을 대기만 해도 쓰라려서 씻는 동안 앓는 소리를 냈다.

선풍기를 켜 두고 침대에 혼자 누웠다. 곱씹을수록 강 이사의 말에 속상하기만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우리도 다 알고 있는데 일 절만 하지.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은 포근한 침구 덕에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랜만에 단잠에 빠졌다. 악몽도 불안도 없었다.

새벽 늦게 두산이 들어왔다. 수일은 인기척에 몸을 돌려 두산을 꼭 끌어안고 다시 잠들었다.

두산은 아침 8시도 못 돼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잠에 취한 수일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난중에 보자, 했다. 비몽사몽 눈도 뜨지 못한 수일은 그저 두산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뜨겁고 단단한 몸이 조금 더 제 옆에 누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기운도 없으면서 팔을 둘렀다.

두산이 나지막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귓불에 입술이 닿았다. 쪽쪽, 두산의 입술이 귓가를 간지럽히다 이내 사라졌다.

***

정신이 들었을 때는 오전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어쩌고 잤는지 머리가 산발이었다. 겨우 일어나 눈곱을 떼고 물 한 잔을 마셨다. 멍하니 소파에 앉았다가 지금은 특별한 손님들을 모시고 있을 두산이 생각났다. 새벽 늦게까지 일한 사람을 잠도 못 자게 아침 댓바람부터 부르다니 너무했다 싶었다.

하품을 하고 엉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머리 길이를 보니 이발할 때가 되었다. 다음 주에 동생들도 볼 겸 겸사겸사 숙소 근처 이발소에서 머리를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

원래 친구도 없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쓸쓸했다. 부산에 내려와선 거의 매일 두산과 함께 있거나 숙소 동생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가 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론 혼자 지내는 날들이 더 많았는데 고작 한 달 만에 사람의 손을 탔다. 짐승도 아닌데 사람 손을 좀 탔다고 이렇게 외로워하다니 나이를 헛먹었나 보았다. 수일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으챠 소리를 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뭐를 좀 먹고 기운을 내야지. 식탁 위에 메모지와 열쇠가 놓여 있었다. 수일은 두산이 영영 안 줄 같던 열쇠부터 얼른 챙기고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개발새발 두산의 메모를 보는 순간 수일은 두산이 몹시 보고 싶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등신. 곧바로 별거 아닌 일로 이러는 자신을 야단쳤다.

점심 저녁은 어데 기 나가지 말고 시키무라. 보약은 밥통 안에 너어나쓰니까 꼭 챙기묵고. 그래야 밤에 힘도 쓰고 할꺼 아이가. 서방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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