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물 아래에 나체로 서서 서로의 몸을 쓰다듬었다. 수일의 손에 감긴 붕대도 두산의 복부에 감긴 것도 모두 풀었다. 물이 닿자 두산의 상처는 벌겋고 시커먼 실밥이 도드라져 보였다. 수일이 손을 뻗어 찔린 곳을 쓰다듬었다.
“안 아팠어?”
“아팠지.”
“이제 칼 안 맞을 거지?”
“어. 안 맞을 끼다.”
“약속.”
수일은 두산의 입술에 제 입술을 비비고, 도장을 찍듯 눌렀다. 벌어진 두산의 입에 혀를 밀어 넣고 입 안 점막을 핥았다. 두산의 입술이 성급하게 수일의 혀를 물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과 침이 섞여 키스 소리는 더없이 자극적이었다. 몸을 쓰다듬고 혀를 빨 때마다 철벅거렸다. 두산은 터진 입술을 빨리면서도 흥분으로 숨을 헐떡였다.
“내가 할게. 넌 가만 있어.”
수일은 자꾸 저를 만지려 드는 두산에게 경고하듯 낮게 속삭였다. 두산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성기를 발딱 세운 채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수일은 두산의 턱선을 따라 입을 맞추면서 손으론 쇄골부터 천천히 쓰다듬어 갔다.
두산은 턱에 입 맞추는 수일을 빨고 싶어 몇 번이나 고개를 비틀고 다가왔지만, 그럴 때마다 수일은 두산의 몸에서 입술과 손을 뗐다. 경고하듯 가만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두산이 물러섰다.
두산의 숨소리는 거칠고, 눈빛은 욕정으로 번들거리다 못해 타는 듯 뜨거웠다. 수일은 다시 마른 손을 들어 잘 그을린 갈색의 살을 쓰다듬었다. 탄탄한 근육은 수일의 손이 닿으면 미친 듯이 움찔댔고, 그때마다 두산의 입에선 깊은 한숨이 터졌다.
두산이 다시 손을 뻗었고 수일이 뒤로 물러났다. 강제로 잡아당길 수도 있지만, 두산은 안달이 났으면서도 수일의 도발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힘을 쓰지 않았다.
“씨발, 내도 만지게 해도.”
“안 돼. 조금만 더 참아요.”
수일은 아이에게 하듯 부드러운 말로 달래며 다시 손을 뻗었다.
섹스할 때면 자기만족보다 남을 위해 애를 썼던 수일은 지금은 온전히 제 만족을 위해 몸을 움직이고 말을 했다. 두산이 그리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첫 섹스부터 두산은 한 번도 수일에게 강압적으로 굴지 않았었다. 만약 두산이 강제로 하거나 윽박질렀다면 수일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안달이 나게 하지 못했을 터였다. 제가 먼저 하자고 덤비지도 않았을 터였다.
수일 자신도 놀랐다. 자기가 이런 식으로 남을 도발할 수 있다는 데. 이런 자신이 어색한 한편 흥분도 됐다.
상처 난 복부를 지나 아랫배에 손을 갖다 대자 발기한 것이 수일의 손등을 때렸다. 잔뜩 성난 거대한 자지는 핏줄이 불거진 채 빠르게 손길을 재촉했다.
“흐읍. 씨발.”
두산은 손을 어쩌지 못하고 수일의 마른 어깨를 꽉 쥐었다. 뜨거운 숨결이 어깨를 타고 수일의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수일이 손을 대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쏟아 낼 것 같았다. 수일은 제 어깨를 붙들고 목덜미를 핥아 대는 두산을 살짝 떨어트린 다음 무릎을 꿇었다. 허리를 바짝 세우고 고개를 들어 입을 벌렸다.
몸을 타고 흩어지는 물줄기가 입 안을 적시고 턱을 타고 내려갔다. 두산은 기다렸다는 듯, 수일의 입 앞에서 제 성기를 무식하게 흔들어 댔다. 탁탁 소리가 나도록 쳐 대며 짐승 같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발기한 것을 잡고 수일의 입술을 따라 빙 둘렀다. 수일은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입 안에 넣지도 못하면서 두산은 수일의 입술에 귀두를 문질렀다.
“허으. 하아… 아윽! 수일아!”
두산은 수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손으로 빠르게 자지를 쳐 댔다. 수일은 두산의 탄탄한 허벅지를 두 손으로 짚고서 허리를 더 세웠다. 몇 번이고 수일의 입술을 때리고 볼에 비벼 대던 성기는 성이 나다 못해 터질 듯했다.
수일이 입을 벌려 성기 바로 앞에 갖다 대자마자, 두산은 탁한 신음을 뱉었다. 곧 뿌옇고 끈적한 정액이 수일의 얼굴을 강타했다. 정액은 물을 타고 입 안으로 턱으로 흘러내렸다.
“허억, 아흐… 씨발, 내. 환장, 하겠다.”
두산은 쿨쩍 소리가 나도록 성기를 몇 번이고 짜냈고, 마지막 남은 정액까지 모두 수일의 얼굴에 쏟아 냈다. 수일은 입을 벌린 채 눈을 감았다. 두산의 허벅지가 감전된 듯 떨리고 있었다.
맞닿은 손에 느껴지는 진동에 수일은 눈을 감은 채로 허벅지에 입술을 갖다 댔다. 쪽쪽 근육질의 굵은 허벅지를 따라 입을 맞추자 두산은 목이라도 졸린 사람처럼 그르렁대며 끙끙 앓았다. 수일의 위에서 신음을 흩뿌렸다.
커다란 손이 내려와 수일의 턱을 잡아 올렸다. 곧 얼굴에 묻은 정액을 손으로 깨끗이 닦아 내고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수일의 반듯하고 둥근 이마에 내려앉은 입술은 미간을 지나 콧대를 타고 내려갔다. 저를 핥는 입술과 혀가 수일을 간지럽혔다. 수일이 미소 지었다. 두산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두산은 수일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둘은 마주 보고 입을 맞췄다. 비누를 비벼 잔뜩 거품을 낸 두산의 손이 수일의 몸을 천천히 씻겼다. 가슴과 겨드랑이를 집중적으로 애무하는 손에 수일은 허리를 들썩이고 몸을 비틀었다.
“으응. 간지러워.”
비누칠하는 두산의 손을 떼 내려 하자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에헤이, 가만있으라. 내가 알아서 하께.”
방금 당한 걸 고대로 돌려주려고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산은 심술궂은 표정을 하고 다시 손을 뻗었다. 일부러 손가락을 쫙 펴서 가슴을 쓸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가슴을 스치며 수일의 젖꼭지를 건드렸다. 수일은 몸을 비틀고 다리를 꼬았다.
“아흣!”
가슴을 쓸던 손이 겨드랑이로 들어가 긁는 순간 몸이 튀어 올랐다. 수일은 두산의 팔을 잡았다.
“두사… 아.”
허리가 절로 굽어 들고 다리가 달달 떨렸다. 굵은 손가락들이 겨드랑이 안쪽을 집중적으로 긁기 시작하자, 수일은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았다. 두산은 수일의 몸을 한 팔로 잡고 일으켜 세웠다. 간신히 발끝으로 서 있는 수일에게 두산이 덤벼들었다. 수일보다 더 참을성이 없었다.
미끄덩거리는 가슴팍에 수일의 가슴을 바짝 붙이고 하체를 비비면서 입술을 찾았다. 수일은 고개를 바로 하고 두산의 입술이 닿도록 턱을 들었다. 입을 채 벌리기도 전에 두산의 혀가 침입했다. 말 그대로 침입했다. 수일은 입을 크게 벌렸고, 두산은 닥치는 대로 혀로 핥고 입술로 빨아 대며 수일의 입 안을 제 것인 양 휘젓고 다녔다.
두산은 수일의 다리 사이에 왼 다리를 끼우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두꺼운 허벅지가 들어오자 다리가 절로 크게 벌어졌고, 기다렸다는 듯 두산의 허벅지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마치 성기라도 삽입당하는 듯한 느낌에 수일은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탄탄한 근육이 수일의 마른 다리의 여린 살들을 비비고 문질렀다. 가랑이 사이에 빈틈없이 닿아 비볐다. 숨이 턱턱 막혔다.
신음은 모두 두산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수일은 구멍이 근질거리고 흥분으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두산은 제 허벅지를 문지르기만 할 뿐 손으로 수일의 성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수일은 안달이 나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만져 주지 않는 두산이 야속했다. 입천장을 긁는 혀에 간지러움은 극에 달했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떼 내고 몸을 비틀어 두산의 허벅다리에 제 성기를 비볐다.
두산은 그런 수일의 허리 짓을 내려다보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수일은 아주 끙끙 앓았다. 비누가 씻겨 나간 몸은 여전히 미끄러웠다. 잘 그을린 두툼한 허벅다리가 그렇게 음란할 수가 없었다.
수일은 발기한 성기를 비비려 허리를 비틀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두산의 팔을 잡았지만 자꾸 미끄러져 아예 두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두산의 손이 아랫배로 들어왔다. 수일은 커다란 손에 움찔 몸을 떨면서도 허리 짓을 멈추지는 않았다.
“두산아… 아으… 만져 줘.”
수일은 이리 말하면서 목까지 벌게졌다. 정말로 만져 주길 바랐다. 두산은 손가락을 세워 아랫배에 원을 그렸고 손톱에 살이 살짝 긁히는 자극에 수일은 또 다리가 풀렸다.
“침대로 가까?”
“으… 으. 응.”
두산은 물기도 닦지 않고 그대로 수일을 안아 들었다. 침대 위에 수일을 던지듯 내려놓고 급하게 달려들었다. 그러다가 오일이 생각났는지, 벌떡 일어나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물에 젖은 손 때문에 오일 뚜껑이 안 열리자 씨발, 하고 기어이 이빨로 뚜껑을 열었다.
가만 누워서 그걸 보던 수일은 여전히 발딱 선 자기 걸 보고 기분이 상했다. 저는 무릎까지 꿇어 가며 사정을 도왔건만 두산은 손도 안 대고 수일만 혼자 비비적대게 두었다. 그리고 침대로 직행이라니. 억울했다.
“두산아, 근데 왜 나는 사정 안 시켜 주니?”
기쁜 얼굴로 오일 병을 들고 침대로 다가오는 두산에게 물었다.
“안 된다.”
“왜?”
“니 한 번 싸고 나면 기운 없다 아이가. 넣고 싸야지.”
“그런 게 어딨어? 나 두 번은 가능한데?”
“두 번뿌이 안 되니까 그라지.”
두산은 오일 병을 곁 탁자 위에 올리면서, ‘두 번’이란 단어에 강세를 두었다. 두 번이면 충분하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따지는 수일의 몸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엉겁결에 두산에게 엉덩이를 내보인 수일이 어어 하는 사이 물기도 닦지 않은 그곳에 혀가 닿았다. 수일은 펄쩍 몸을 튕겼다.
개처럼 엎드린 수일의 뒤에 똑같이 바짝 엎드린 두산은 물기 가득한 엉덩이를 혀로 길게 쓰윽쓰윽 핥기 시작했다.
“흐응… 아… 아윽….”
두산의 혀와 입술이 주는 자극에 절로 낑낑대는 소리가 나왔다. 쭙쭙, 츄릅, 혀는 점점 엉덩이 골로 다가오더니 항문과 고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진득하게 핥아 댔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자꾸 엉덩이를 흔들고 몸을 움찔댔다. 침대를 짚고 선 팔이 달달 떨렸다. 혀가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일아, 허으 씨발, 더 흔들어 바라.”
수일의 구멍을 쭙쭙 빨아 대던 두산이 입술을 떼고 급하게 말했다.
“나, 하아…. 안 흔들었어.”
“에헤이, 지금도, 이래 흔든다 아이가.”
두산의 말에 수일은 침을 꼴딱 삼키며 슬쩍 뒤로 돌아보았다. 두산은 제 할 말만 하고 수일의 고환 밑에 얼굴을 들이민 채 빠르게 얼굴을 비벼 댔다. 코와 입술이 구멍을 압박하며 엉덩이를 애무하자, 수일의 팔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수일은 침대 시트에 얼굴을 처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살에 닿는 수염이 처음엔 따가웠는데 이젠 그것마저 자극이 되었다. 수일은 침을 질질 흘렸다. 사람 소린지 짐승 소린지 알 수 없는 신음이 입에서 흘러나와 침대 시트를 입에 물었다.
두산은 끈질기게 수일의 고환부터 구멍을 왔다 갔다 하며, 입술로 살을 머금어 빨아올렸다가 혀로 핥았다가 했다. 애무만으로도 갈 듯했다. 혀를 세워 집중적으로 구멍 안을 들락거리자 수일은 정말로 쌀 것 같았다.
“하으으흐…. 하으… 두산아… 나 갈 것….”
수일은 참지 못하고 발기해서 물을 질질 흘리는 자지를 잡으려 배 밑으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그 손은 두산의 손에 제지당했다. 두산은 몸을 일으켜 수일의 뒤에 바짝 하체를 붙이더니, 수일의 두 팔을 뒤쪽으로 잡아당기고 한 손으로 결박했다. 졸지에 고개를 처박고 엉덩이는 치켜세운 채 팔을 결박당한 수일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쪼매만 참아라.”
두산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순간 구멍에 차가운 액체가 흐르고 꽃향기가 방 안 가득 퍼졌다. 크고 투박한 손이 오일이 흘러내리지 못하게 치대며 손가락으로 구멍 주위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왜 이리 굵은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크게 느껴졌다.
뒤로 손이 잡혀 저절로 상체가 들렸지만, 그 상태로 뒤돌아보기엔 유연성이 없어 어림도 없었다. 수일은 숨만 꼴딱꼴딱 넘어갔다.
“니는 우째 여도 이래 예쁘노.”
남은 급해 죽겠는데, 두산은 혼자 감탄하며 수일의 구멍을 어루만졌다. 손가락이 하나, 둘 자리를 넓히는 동안 엉덩이에 혀가 닿았다. 자신의 두 팔을 잡은 채로 몸을 숙이고 엉덩이를 핥는 바람에 수일은 팔이 뽑히는 것 같았다.
“아아! 아파… 빨리.”
“알았다. 내도 급하다. 급한데, 씨발, 여도 예쁘니까 그라지.”
두산은 엉덩이에 입술을 대고 이리 속삭였다. 수일이 또 엉덩이를 흔들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다. 두산이 수일이 절로 그러는 게 좋아 죽겠는지 웃음을 지었다. 엉덩이에 닿은 입술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다 느껴졌다.
“와 이래 흔들어쌌노?”
“안, 흐응… 흔들었어.”
바득바득 우겨 보았지만 솔직히 수일도 제 엉덩이가 흔들리는 걸 알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괜히 억울하고 민망해 온몸에 열이 올랐다. 웃음기 가득한 두산의 목소리에 흥분이 묻어났다. 곧 구멍에 축축하고 말캉한 것이 닿았다. 혀인가 했더니, 이번엔 귀두였다.
두산은 물이 잔뜩 흘러나오는 자지를 꼭 쥐고, 구멍 주위를 살살 돌리다가 툭툭 엉덩이를 때렸다. 제가 때려 놓고 그 자극에 허억, 하고 숨이 넘어갔다. 툭툭 또 엉덩이를 때리다가, 구멍에 귀두를 바짝 대더니 그대로 밀어 넣었다. 역시나 컸다.
크고 불쾌한 덩어리가 점점 수일의 장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장기들이 아우성을 치며 도망가듯 밀려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아!”
“허흡. 하으. 힘, 쫌, 씨발, 빼라.”
“으읏…. 천천히.”
팔이 잡혀 불편해 죽겠는데 두산은 도무지 손을 놓아줄 생각을 안 했다. 대신 한 손으로 잡았던 두 손목을 풀어 하나씩 잡아 뒤로 당겼다. 수일의 상체가 그대로 들렸다.
“아… 파.”
“내 살살, 흡, 땡기는데?”
“아파!”
“알았다.”
두산은 급히 팔을 놓고 대신 수일의 상체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등 뒤로 두산의 탄탄한 가슴이 닿았다. 자세 때문인지 두산의 성기가 순간 더 깊이 들어왔다.
수일은 너무 아파서 헉 소리만 낼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일의 다리 두께만 한 팔이 수일의 상체를 단단히 끌어안아 숨이 막혔다. 숨은 막히고 구멍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두산의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와 귀에 닿았다.
“아아… 흑, 으흐….”
수일은 앓는 소리만 냈다. 아직은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두산이 서서히 침범했다 나가기를 반복하며 길을 닦았다. 불쾌감이 조금씩 줄어드는가 싶으니 허리 짓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깊게 박으면 수일은 히익 소리를 냈고 빠져나가면 으으, 앓았다. 두산에게 붙잡힌 채 하염없이 침입당하던 수일은 침을 질질 흘리다가 자극과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하으으으으. 아흐으… 아흑.”
“어흐, 씨발, 수일아, 내 억수로, 씨발!”
좋다. 하자마자 퍽 하고 성기가 박혀 들어왔다. 수일은 소리 높여 비명을 질렀지만, 아파서가 아니라 좋아서 그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온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수일은 입을 벌리고 두산을 부르짖었다.
“하으! 아악, 흐… 흐읏! …으응… 흑”
끝까지 밀어 넣었는지 고환이 닿는 느낌이 났다. 두산은 몸을 구부리고 수일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수일은 정말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잘게 퍽퍽퍽 박아 댈 때마다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눈물과 침이 질질 흘렀고, 끄윽끄윽 목을 긁어 대며 울었다.
결박된 상체와 두산이 찔러 넣은 엉덩이가 이젠 남의 것 같았다. 제 몸이라고 인지조차 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그곳을 찔리자 쾌락과 전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일이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몸이 미친 듯이 떨렸다. 구멍이 쪼그라들다 못해 바짝 물어 대자 두산이 움직임을 멈췄다. 두산의 자지를 문 채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이 다 좋다고 아우성쳤다.
“하으, 하아… 아아… 흐…. 흐으… 좋아.”
좋다는 말론 부족했지만 그 말 말곤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흐읍! 내도, 환! 장하겠다.”
“두산아… 좋아.”
수일은 울었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두산이 혀를 길게 빼고 수일의 얼굴을 핥았다. 흐르는 눈물을 몇 번이고 빨아올리고 몸을 더 숙여 수일의 입술을 찾았다. 눈물을 닦던 혀를 수일이 물었다. 다시 성기가 움직였다. 수일은 울면서 제가 물어 너덜거리는 두산의 입술을 또 세게 물었다가 놀래서 놓았다.
“개안타, 씨발, 개안타. 물어라.”
“입술 말구. 읏, 딴… 거.”
수일은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두산이 팔 하나를 풀더니 입에 검지와 중지를 물려 주었다. 엄지로는 수일의 턱을 잡아 고정했다. 안 그래도 두꺼운 걸 두 개나 물려 주는 통에 수일은 전보다 더 침을 흘렸다. 아예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두산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수일은 이젠 침이고 뭐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손을 쓸 새도 없이 수일은 사정했다. 성기에서 빠져나온 정액이 시트와 수일의 배를 적시는 걸 뒤에서 지켜보면서도 두산은 멈추질 않았다. 두산의 말대로 사정 후 수일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일은 두산에게 잡혀 종잇장처럼 흔들리다가 다시 밀어닥치는 자극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자극에 반응은 하면서도 기운이 없어 머리가 자꾸 아래로 떨어졌다. 두산이 치고 들어올 때마다 수일의 입에선 허억, 어흑 신음만 터졌다. 아래로 떨어진 고개에 자연스레 제 음부로 시선이 향했다.
사정한 성기는 반쯤 발기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희멀겋고 마른 아랫배는 외계 생명체를 품기라도 한 듯, 불뚝 튀어나왔다가 납작해졌다. 배가 부를 때마다 수일은 미칠 듯한 쾌감과 전율에 온몸을 비틀고 바르작거렸다. 그 생명체가 두산의 성기란 걸 알아챘을 때쯤, 수일은 심한 요의를 느꼈다.
“우아나…. 오으….”
입에 물린 손가락 때문에 발음조차 되지 않았다. 오줌이 누고 싶다고 의사를 전달하려 했지만, 귓가에 느껴지는 두산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두산은 수일의 옆얼굴에 제 얼굴을 갖다 대고 발정 난 짐승처럼 목을 그르렁대고 숨을 헐떡였다. 정말 사람 소리가 아니라 짐승 소리가 났다. 그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호랑이나 표범이 낼 법한 소리였다.
수일은 오줌이 급했다. 입에 물린 손가락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물었지만 두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극에 숨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수일아, 씨발! 더 세게 물떼라.”
수일은 미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몸을 비틀어 보았으나 흥분한 두산은 퍽퍽 소리가 나도록 수일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제 아랫배로 파고든 생명체가 미친 듯이 꿈틀댔다.
두산뿐 아니라 수일의 입에서도 짐승 소리가 났다. 수일은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두산은 수일의 얼굴에 제 얼굴을 맞대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드나들 때마다 볼록 튀어나오는 아랫배를 보며 신음을 토해 냈다.
수일을 고개를 젓다가 결국 오줌을 쌌다. 투두둑, 성기에서 물이 튀어나오는 순간 반쯤 죽었던 성기가 발기했다. 발기한 성기에서 투명한 오줌이 쏟아졌다. 어찌나 물이 많이 나오던지 무릎으로 딛고 선 시트가 젖어 갔다.
두산은 오롯이 그 장면을 내려다보며 목을 긁는 신음을 뱉었다. 숨을 쉬는 건지 아니면 으르렁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탈진한 수일은 간신히 버티던 무릎마저 무너져 내렸다. 그 바람에 자기가 싼 오줌으로 축축해진 시트가 배에 닿았다. 수일은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 온몸이 불타는 듯 열이 올랐다.
하지만 부끄러워할 새도 없었다. 두산이 돌아 버렸는지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퍽퍽 쳐올리다 못해 비비고 돌리고. 수일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발기한 성기에서 물이 또 떨어졌다. 더 쌀 것도 없는데 자꾸 물이 나왔다. 물이 터짐과 동시에 수일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온몸을 들쑤시는 고통과 쾌락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악!”
“씨발!!!”
마지막 깊은 삽입과 동시에 두산이 사정했고, 수일은 또 오줌을 쌌다. 제 성기에서 하얀색 물이 쏟아졌다. 오줌이 시트뿐 아니라 수일의 배를 타고 허벅지와 가랑이를 적셨다. 수일은 사정없이 몸을 떨었다. 오한이 든 것처럼 오들오들 떨어 댔다. 수일의 입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아흐흑, 하으… 하….”
“허으. 하아… 수일아, 내, 씨발, 좋아 죽겠다.”
두산은 그 큰 손으로 오줌으로 젖은 수일의 배와 허벅지를 쓸었다. 축축하고 더러울 텐데 뭐가 그리 좋다고 귓가에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수일은 분명히 저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뭐라 하지도 못하고 숨만 몰아쉬었다. 떨림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몸을 두산이 단단히 잡아 안았다. 그만 눕고 싶은데 두산은 그 자세로 수일의 귀를 입 안에 넣고 빨아 댔다. 쭙쭙 귓불을 빨고 귀 전체를 빨아 젖히더니 곧 낮게 속삭였다.
“그래 좋았나?”
“어뜩해? 하아… 하으, 나 오줌 쌌어.”
“오줌 아이다. 냄새 안 난다 아이가.”
“오줌이야.”
두산은 키득대며 웃기 바빴다. 다시 쪽쪽 귓불을 타고 목에 입을 맞췄다. 누런 기가 없긴 했지만 분명 오줌이었다. 아니면 뭐란 말인가. 창피했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이 나이에 오줌을 싸다니.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젖은 시트와 매트리스는 또 어쩌나. 수일은 이 와중에도 빨래 걱정을 했다.
“수고했다.”
다정한 말과 함께 수일의 어깨에 입술이 닿았다. 땀과 물에 젖은 어깨선을 따라 뽀뽀를 하던 입술이 팔을 타고 내려왔다.
“나 힘들어.”
자세도 힘들었고, 사정도 하고 오줌도 싸서 수일은 기절할 만큼 피곤했다.
“엄살은.”
두산은 이리 말하고 웃었다. 손은 멈추지 않고 젖은 성기와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더러워.”
“안 더럽다.”
두산은 수일의 어깨에 턱을 괴고 고개를 쭉 내밀었다. 축축이 젖은 시트를 한번 보고 쪽 뽀뽀를 했다.
“수고했다.”
두산은 또 한 번 다정하게 속삭였다. 수일의 몸을 제게 완전히 기대게 한 두산은 침대 한 귀퉁이에 수일을 똑바로 눕혔다. 수일의 몸 위로 상체를 구부려 입을 맞추고 키스했다. 올라간 입꼬리와 광대가 괜히 얄미웠다.
섹스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수일의 의사와 상관없이 몸은 여전히 움찔거렸고, 숨도 찼다. 흐리게 숨을 몰아쉬며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두산은 언제 사정했냐는 듯 성난 성기를 흔들었다. 짐승도 아니고 어쩜 저리도 잘 서나 몰랐다. 굵은 손가락이 다가와 수일의 이마에 들러붙은 젖은 머리카락을 하나씩 떼 주고 수고했다, 고생했다 하며 뽀뽀했다.
두산은 몸을 밑으로 내리더니, 수일의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 힘없어.”
절로 한숨이 났다. 두산이 수일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오줌으로 젖은 허벅지를 쭙쭙 빨기 시작했다. 입에서 정체불명의 신음이 터졌다. 놀라서 두산의 머리를 밀어냈다.
“너 뭐 하니? 아으… 흣!”
두툼하고 힘 좋은 혀로 날름날름 핥아 대자, 수일의 몸이 바로 반응했다. 좀 전까지 강한 자극을 받았던 몸은 고작 혀 하나에도 난리를 쳐 댔다. 수일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눈이 절로 감기고 목이 뒤로 젖혀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다리를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두산의 커다란 어깨가 파고들었다. 다리가 들리고, 허벅지 깊은 곳에 뜨거운 입김이 닿았다. 수일은 다시 헐떡이기 시작했다.
자기 체력을 생각지 못한 수일은 정말 덤비기만 했다. 함께 샤워할 때만 해도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수일은 두산에게 매달려 울부짖다가 까무러치기까지 했다. 섹스한 건지 얻어터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뜸과 동시에 아이고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시트에 고개를 처박고 아이고 했다. 눈을 껌벅이다가 아이고, 몸을 뒤척이다가 아이고.
수일은 손가락 끝으로 시트를 쥐락펴락하며 기운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음부턴 절대 먼저 덤비지 말아야지, 먼저 하자고 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일나라.”
쿵쿵 소리와 함께 들이닥친 두산이 외쳤다. 이어 수일의 몸이 붕 떴다가 툭 하고 떨어졌다. 두산이 침대 위로 몸을 던진 탓이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골이 다 흔들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수일의 손등 위로 키스가 쏟아졌다.
“그만 일나라.”
“으으. 진짜 못 일어나겠어.”
“영화 보러 가자.”
“지금?”
“어. 지금.”
두산이 기어이 수일의 손을 떼고 얼굴을 보았다. 제 이마를 맞대고 쪽 뽀뽀하고 벗은 등을 손바닥으로 척척 쓸어 주었다.
“나 꼼짝도 못 하겠어.”
“할 수 있다.”
두산은 수일의 등에 올라타더니 무거운 몸으로 누르고 흔들며 장난을 쳤다. 제 무게를 모르는 건지 두산에겐 장난이었으나 그에게 깔린 수일의 뼈에서는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이대로 뼈가 부러질지도 몰랐다. 억억 신음이 터졌다. 그래도 두산은 저 혼자 신이 나서 수일의 위에서 몸을 흔들고 뽀뽀했다.
“니 이래 누 있으면 내 또 선다 아이가.”
선다는 말에 수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러니?”
“안 죽는다.”
“농담 아냐. 정말 죽을 것 같애.”
“엄살은. 조타꼬 엉댕이 흔들 때는 언제고.”
“누가 엉덩이를 흔들었대?”
수일은 버럭 고함을 지르고 다시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귀까지 열이 올랐다. 두산이 그런 수일의 목덜미에 쪽쪽 입을 맞추고 귓불도 살짝 깨물었다 놓았다.
“억수로 좋았으면서.”
“몰라.”
“내 니 싼 이불도 있는데, 갖고 오까?”
“어우, 하지 마.”
“내 꺼 넣고 쌌나 안 쌌나? 말해 바라.”
두산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수일을 보챘다. 억지로 수일의 얼굴을 돌려 저를 보게 하고 입맞춤을 했다.
“내도 억수로 좋았다. 니가 체고다 체고.”
니가 최고라는 말을 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또 골이 흔들렸다.
“영화 내일 보면 안 되니?”
“안 된다. 개봉한 날 봐야지.”
“나 진짜로 힘든데.”
“엄살은. 일단 보약부터 묵자.”
두산은 수일의 몸을 타고 침대를 벗어났다. 힘들다는 말을 엄살로 치부해 버리는 두산이 미웠다. 등을 노려보려다가 아이고 하고 다시 시트에 고개를 처박았다.
두산은 곧 하얀 사발을 들고 와서는 수일의 몸을 잡아당겼다. 수일은 겨우 앉아 그릇을 받아 들었다. 언제 데웠는지 먹기 좋게 미지근해진 시커먼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독약이 이런 맛일까? 너무 써서 온 얼굴의 근육을 다 찌푸린 수일은 두산이 까 주는 자두 맛 사탕을 날름 받아먹었다.
“원래는 딴 걸로 지아달라꼬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데? 그래서 약 바깠다 아이가. 원장 쌤이 우리 할배 먹는 거랑 똑같은 거로 해주드라.”
“왜?”
“니 증상 말하니까 딱 답이 나온다 카든데.”
“느네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시니?”
“몰라. 육십 얼마?”
수일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자기가 60대 노인만큼이나 허약한가 싶어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수일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고 두산이 열변을 토했다.
“원장님 말로는 이거를 할배가 마흔부터 묵었다 카드라. 그래 묵고 첩을 셋을 두고 자식만 일곱을 낳았다. 지금도 애인이 둘이나 있다 아이가.”
“그렇게 좋대?”
한숨을 푹푹 쉬었지만, 솔깃했다. 뭐가 들었는지 몰라도 이걸 먹고 건강하시니 자식을 일곱이나 두셨겠지 싶었다.
“어. 딴 걸 떠나서 한 사나흘만 묵어도 밤일이 수월하다카대.”
“내건 쓸데도 없는데 밤일은 무슨.”
수일은 구시렁대며 사탕을 쪽쪽 빨았다. 서는 건 아직 문제없이 잘 섰다. 그걸 쓸데라곤 두산의 입과 손밖에 없어서 그렇지. 수일은 도로 침대에 누웠다. 두산이 그런 수일을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퍼뜩 일 나라. 영화 보고 밥도 묵고 해야지.”
정말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 보채는데 어쩌겠는가. 두산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니까 일어나기로 했다. 두산이 섹스 후 잘 씻겨 준 덕분에 구멍으로 새는 정액은 없었지만, 바닥에 닿은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해서 구부정하게 있자 두산이 혀를 찼다.
“우리 할배보다 니가 더 문제네.”
두산의 부축을 받고 욕실로 가서 이를 닦고 눈에 겨우 물을 묻혔다. 혼자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두산에게 안겨서 옷도 입었다. 원인 제공자인 두산은 수일을 한심하단 눈으로 내려다보고 ‘문제다 문제’ 했다.
“너도 한번 너 같은 거랑 해 봐. 나처럼 안 되나.”
참다못해 수일이 빽 소리를 지르자 두산은 인상을 팍 썼다.
“에헤이, 서방님한테 몬 하는 소리가 읍네.”
“누가 서방님이래?”
“내가.”
투덜거리는 수일을 향해 두산이 씨익 웃었다.
부축하기도 귀찮은지 두산은 아예 수일을 둘러메고 차에 실었다. 시동을 켜자마자 두산의 삐삐가 울렸다. 삐삐 액정을 확인하더니 급한 일이라며 음성을 확인하러 갔다. 요즘 들어 두산의 삐삐가 자주 울렸다. 혹시 조직에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가 싶어 수일은 불안해졌다. 며칠 전 높으신 분들이 다 모였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대시보드 위에 자동차 전단이 보였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 보려 수일은 손을 뻗어 전단을 가져왔다. 두산은 정말로 차를 살 모양인지 전단이 여러 장 있었다. 그중 코란도 훼밀리 전단지에 동그라미까지 쳐지고 숫자도 많이 적혀 있었다. 군용 지프 모양의 자동차는 크고 무식해 보였다. 디자인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붉은색이라 그건 좀 예뻤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두산은 운전석에 앉자마자 수일의 손에 들린 전단을 흘끔 쳐다보았다.
“정말 살 거야?”
“어. 니 지금 들고 있는 거 그걸로 살라꼬.”
“산에 갈 것도 아닌데 이런 건 뭐 하러 사?”
“그기 산에 갈라꼬 사는 기 아이고 도시에서도 쓰고 겸사겸사 쓸라꼬 그라는 기지. 여 근처만 나가도 흙더미 자갈 천지다.”
수일은 줄어들지도 모르는 월급 걱정을 하기 바쁘건만, 두산은 돈을 못 써서 안달이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돈 걱정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두산이 안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기회 봐서 돈 얘기를 꺼내 봐야지 했다.
“나는 이 차 좋은데.”
작게 중얼거리자 두산이 잠깐 돌아보았다. 악몽을 선사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리게 했어도 수일은 그라나다가 좋았다. 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반짝였던 수일의 청춘을 장식한 차였다. 나중에 두산에게 허락을 얻어 직접 운전도 해 보고 싶었다.
주말의 남포동은 사람들로 넘쳐 났다. 두산은 극장 매표소에 줄을 서서 영화 티켓을 사고 수일에게 팝콘과 콜라를 들려 주었다.
수일은 영화관에 와 본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두산이 들려 준 고소한 팝콘을 와작와작 씹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이 어린 연인들과 친구들로 보이는 무리가 많았다. 수일은 저 나이 때 하루에 18시간에서 20시간 가까이 일을 했었다. 세월이 참 무상했다.
수일도 두산처럼 늦게 태어났다면, 저들처럼 몇 년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맛있는 팝콘을 씹으면서 우울한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못나 보여 고개를 저었다. 수일은 팝콘 한 주먹을 입 안에 욱여넣었다.
두산은 옆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영화 팜플렛을 보았다. 수일은 <배트맨> 1편을 보다 말고 포르노를 틀어 둔 채 두산에게 첫 펠라티오를 받은 것만 기억났다. 제 생각이 남에게 보이는 것도 아닌데, 민망해서 얼굴을 붉히며 콜라를 빨았다.
영화를 기다리는 국민학생들과 성인 남자 대부분이 개그맨이 했던 유행어를 따라 했다. 손가락으로 안경인지 가면인지 모를 모양을 만들어 눈에 갖다 댄 뒤 ‘배뜨매애애앤’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수일의 바로 눈앞에 왠지 모를 어색함이 풍기는 커플이 서 있었는데, 싸웠거나 미팅을 해서 이제 만나기 시작한 사이로 보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배뜨매애애앤’을 외쳤다. 그 남자를 보며 수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멋지게 보여도 모자랄 판에 뭐 하는 짓인지 몰랐다. 여자도 남자의 개그에 수일처럼 인상을 썼다.
“넌 저런 거 하지 마.”
“안 한다. 저거를 내가 와 하노?”
“난 저거 웃긴 줄도 모르겠드라.”
한창 유행할 때도 수일은 뭐가 웃긴지 알 수가 없었다. 팝콘을 씹으며 주위를 두리번대다 다시 두산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두산이 손가락으로 예의 그 안경 모양을 만들어 눈에 대고 큰 소리로 ‘배뜨매애애앤’을 외쳤다.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팝콘을 쏟을 뻔했다.
두산은 그런 수일을 보고 소리 내 웃었다. 코웃음조차 나지 않는 상황에 수일은 두산의 팔뚝을 후려갈겼다.
“아야, 재밌다 아이가.”
“바보 같애. 하지 마.”
“재밌는데….”
“재밌으면 너 혼자 하든가. 창피하게.”
두산이 했던 짓을 영화관에 들어가서까지 좌우 앞뒤에 앉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하는 걸 보고 수일은 아주 학을 뗐다.
수일은 도통 영화 내용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영화는 어둡고 뭔가 유치한 것도 같았다. 갈수록 기괴하다는 느낌만 받았다. 외국이라곤 가 본 적 없었지만 설령 기회가 되어도 뉴욕은 가지 말아야지, 이 생각만 했다. 두산이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수일은 팝콘만 축냈다. 오랜만에 본 영화가 <배트맨2>라는 게 좀 아쉬웠다.
로맨스나 드라마 같은 거면 좋았을걸.
서운함을 달래며 남은 팝콘을 탈탈 털었다. 그래도 캣우먼이 정말 미인이라 그녀만 나오면 눈이 밝아졌다. 배우 이름이 뭔지 나중에 확인하자 했다.
장장 2시간이나 되는 영화가 겨우 끝이 났다. 극장을 벗어나서 기분 좋은 수일과 달리 영화 때문에 상기된 두산은 계속 끝내준다고 말했다.
“와, 끝내준다. 니도 재밌었제?”
“아니. 그냥… 난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
“1편 다시 빌리 보까?”
“아냐. 그러지 마.”
“재미없었나?”
“그런 건 아니구… 팝콘은 맛있더라.”
수일의 대답에 두산이 짧게 웃었다. 저만 재밌어서 미안했던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재미없었나?”
“그냥, 뭐. 근데 그 고양이 옷 입은 여자 참 예뻤어.”
“와, 내도 그 생각 했는데. 몸매가 직이제?”
수일은 몸매가 아니라 여자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담에는 니 좋아하는 거 보러 가자.”
“응. 참, 혹시 지금 숙소 근처에도 책 대여점 있니? 나 만화책 빌려 보고 싶은데.”
“있을 끼다. 내 함 알아보께.”
“응.”
두산은 수일의 어깨를 끌어안고 번잡한 남포동 거리를 걸었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어서 그런지 두산이 데려간 식당에는 빈자리가 있었다. 경양식집이었다. 외식을 나온 가족도 있고, 데이트하러 나온 커플도 있었다. 종업원이 물을 내오자 두산은 수일의 몫까지 알아서 주문했다. 곧이어 모닝빵과 샐러드, 크림 수프가 먼저 나왔다.
좀 전에 먹은 팝콘과 콜라 탓에 입 안이 달았던 수일은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떠먹고 모닝빵을 뜯었다. 빵도 나쁘진 않았지만, 수일은 역시 밥이 좋았다. 두산이 빵을 집자 모닝빵이 아니라 미니 빵으로 보였다. 그걸 반으로 찢어서 수프에 적셔 먹었다. 수일도 두산을 따라서 빵을 적셨다. 촉촉하니 맛이 더 좋은 것도 같았다.
“햄버거 먹을라 카다가 니 안 좋아할 거 같아서 일루 왔다.”
“나두 햄버거 먹어.”
“누가 먹을 줄 모른다카나. 빵도 밸로 안 좋아한다 아이가.”
“건 그렇지만.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
수일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빵 하나를 입 안에 다 넣고 우물거렸다. 샐러드는 소스만 맛있었다. 이런 풀떼기를 돈 주고 파는 건 양심도 없다며 속으로 구시렁댔다. 앞치마를 두른 앳된 여종업원이 빈 접시와 그릇들을 치우고 곧 음식을 내왔다. 수일은 함박스테이크 옆에 딸려 나온 밥부터 스테이크 양념에 적셔 먹었다. 두산이 웃었다.
“아가씨, 여 밥 좀 더 주이소.”
그 아가씨와 나이 차도 안 날 게 분명한 두산은 중년 아저씨처럼 종업원을 불러 밥을 추가했다. 물론 수일은 부끄러워 점원을 부르지 못했을 터라 두산이 시켜 줘서 고마웠다. 스테이크 위에 올려진 반숙 계란프라이를 터트리고 고기를 노른자에 발라 먹었다. 느끼함은 김치와 단무지로 잡아 주었다.
“더 시키 주까?”
“아냐. 배불러.”
한주먹 거리라 부족할 줄 알았는데 극장에서 이것저것 먹어서 그런지 배가 불렀다.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며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오는 손님들을 흘끔거렸다.
탁탁. 테이블 치는 소리에 돌아보자 두산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니는 내하고 있는데 와 자꾸 딴 데 쳐다보노?”
“아니, 그냥.”
“내는 니밖에 안 본다. 니도 내만 바라.”
“알았어. 별걸루 다 시비야.”
“시비가 아이고, 행팽썽이 안 맞다 아이가.”
“거기서 형평성이 왜 나오니?”
수일은 어이가 없어 두산을 흘겨보았다. 뭐가 형평성이 안 맞는지 몰랐지만, 두산은 계속 씩씩댔다. 하는 수 없이 수일이 지고 들어갔다.
“알았어. 앞으론 너만 볼게.”
“약속했다.”
그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칸막이가 있기는 해도 옆자리 손님이 바로 보였다. 두산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도장은 난중에 받으께.”
두산은 수일에게 뜯겨서 멍까지 든 아랫입술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입술은 안 아프니?”
“아프지. 아픈데 좋다.”
이러면서 눈을 휘어 웃었다.
“변태.”
수일도 따라 웃었다.
“물떼는 기 밴태지.”
두산은 끝까지 제 할 말을 다 하고, 수일의 손을 잡았다. 마르고 앙상한 손가락 사이에 크고 투박한 손가락이 들어와 깍지를 끼었다.
“내 억수로 좋았다.”
“나두.”
둘만 아는 은밀한 대화를 하며,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다. 서로를 응시하며 웃었다.
오늘도 한 시간 일찍 가야 하는데 벌써 30분이나 늦어 수일은 허둥댔다. 밥을 먹는 게 아니었는데. 영화 시간도 애매했고 주말이라 차도 막혔다. 두산이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수일은 혼자 급해 뽀뽀는커녕 뒤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행님! 고마 가나?”
두산이 큰소리로 외쳤지만, 수일은 대충 뒤를 향해 손만 흔들었다. 대기실에 옷을 던져두고 홀로 달렸다. 제 몸 상태는 생각지 않고 뛰다가 한번 자빠질 뻔했다.
은아 씨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삼락 형님은 수일을 보자마자 제 쪽으로 오라 눈짓했다. 혜선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영희에겐 무시를 당했다. 그 몇 발 뛰었다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아팠다.
“수일이 니 으데 아프나? 얼굴이 와 그래 파리하노?”
삼락 형님은 기름이 도는 건강한 얼굴로 수일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빨간색 소파를 짚고 서서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픈 건 아니구요, 어제 술 마신 게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그래. 맞다. 니도 슬슬 나이 생각할 때지.”
형님의 말에 억지로 웃으며 열이 오른 얼굴을 쓰다듬었다. 만취 상태로 길바닥에서 뒹굴고 바로 다음 날 밤새 섹스를 하다니, 제가 생각해도 미친 짓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다시는 술 마시지 말아야지, 다시는 먼저 하자고 덤비나 봐라.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도 요즘 먹는 거 하난 잘 먹고 다니는데, 그게 티가 안 나서 좀 안타까웠다. 괜히 두산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기껏 비싸고 좋은 걸 사 먹여도 수일은 어디 아프냔 소리만 들었으니 말이다. 혼자 생각에 빠져 있던 수일의 팔꿈치를 치며 삼락 형님이 나지막이 물었다.
“니 담주에 시간 쫌 있나?”
“다음 주요?”
“그래. 둘이서 오붓하이 밥이나 묵자꼬.”
“네. 괜찮아요. 형님 편한 시간에 불러 주세요.”
“오야.”
안 그래도 월급을 받으면 숙소 동생들과 삼락 형님에게 밥 한 끼 대접하려 했었다. 월급이 깎이더라도 저를 챙겨 주고 신경 써 준 고마운 이들에게 사람 노릇은 하고 싶었다.
수일은 서 있는 게 힘들어 몸을 기댔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영화 볼 때는 몰랐는데 허리 아래가 몹시 욱신거렸다. 약을 바르긴 했지만, 구멍도 붓고 이물감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제 배 속을 넘나들던 것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쓸었다. 얼굴이 또 화끈거렸다.
은아 씨가 다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숨을 고르는 사이 병태의 고함이 들렸다. 씨발롬, 안방, 죽고 싶나. 험악한 단어마다 짝짝 소리가 이어졌다. 홀에 섰던 가수들은 처음 짝, 하는 소리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소리가 계속 반복되자 다들 바닥을 보거나 딴청을 부렸다.
“저 새끼 저거는 여 사람 패러 왔나?”
삼락 형님의 빈정거림은 워낙 소리가 작아서 수일에게만 들렸다. 저들 일에 끼어들면 안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가수나 밴드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수일은 맞는 사람이 현철은 아니었으면 했다. 숙소 동생 중 제일 나이가 많기도 했고 환하게 웃던 정애 씨 얼굴도 생각나 더 그랬다.
특별 손님을 위한 2차 리허설은 어제보다 수월했다. 수일이야 어려울 게 하나 없었고, 삼락 형님도 겨우 음정 박자를 잡아 나갔다. 영희의 무대가 끝날 즈음 사장이 나타났다. 사장은 무대를 끝내고 물을 마시는 혜선의 옆에 딱 붙어 허리를 끌어안았다.
“수고 많았데이. 여 돈 넣었으이까 고기 사묵고 해라.”
혜선의 손에 봉투를 꼭 쥐여 준 사장은 음흉스레 웃으며 혜선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빵빵 하네.”
홀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말한 사장은 싱글벙글 좋아 죽었다. 돈 봉투를 그러쥐며 억지로 웃던 혜선은 사장이 사라지자마자 더러운 게 닿은 양 제 엉덩이를 부지런히 털었다.
“저 씨발롬이 죽을라꼬.”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은아 씨가 옆에서 같이 욕을 하며 혜선을 위로했다. 혜선은 곧장 봉투 입구에 후 하고 바람을 넣었다. 은아 씨도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얼마나 들었는지 같이 확인했다. 분명 회식이라 들었는데, 봉투에는 만 원짜리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성인 아홉이 고기를 먹고 술도 마시려면 턱도 없었다. 5천 원짜리 밥을 먹기 딱 좋은 금액이었다.
“짠돌이 새끼. 5만 원을 누구 코에 붙이노? 씨팔, 드러버서. 고마 밥이나 묵자.”
잘 차려입은 삼락 형님이 씩씩대며 먼저 나갔다.
고깃집을 가긴 갔다. 거기서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수육 두 접시를 시키고, 비싼 맥주 대신 소주만 세 병을 주문했다. 저녁을 먹고 온 수일을 빼고 밥은 여덟 개를 시켰다. 다들 여윳돈이라곤 없는지라 시키기 전에 열심히 돈 계산부터 했다. 수일은 저녁을 먹고 와 다행이라 생각했다.
“수일이 니는 와 안 묵노?”
수일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은아 씨는 수육 한 점을 입에 넣고 소주잔을 비우며 캬아 소리를 냈다. 소주가 쓴지 눈을 찌푸렸다.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해서 아무 말 안 하려는데, 은아 씨가 다시 물었다.
“와 안 묵노? 먹을 건 없어도 뭐라도 묵어야 난중에 노래를 부르지.”
“좀 전에 먹구 왔어요.”
“머 묵었는데?”
“그게… 함박스테이크요.”
은아 씨 옆에 앉은 마스터가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대답하고 보니 괜히 눈치가 보였다. 오늘도 리허설에 30분이나 늦었는데, 밥까지 먹고 왔으니 말이다.
“데이트 했는가베?”
“아니에요. 데이트는 무슨.”
은근히 묻는 은아 씨의 말에 수일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라고 했지만, 이름을 붙이자면 영화관 데이트였다. 배뜨매애애앤을 외치던 두산의 바보 같은 모습이 떠올라 속으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캣우먼의 이름을 몰랐다. 두산이 영화 전단을 챙겼으니 이따 보여 달래야지.
“수일이 오빠는 서울 토박이라예?”
가만 대화를 듣고 있던 혜선이 발랄하게 물었다.
“네.”
“아. 그래서 목소리가 그래 좋으시구나. 내 얼마 전에 폰팅했던 오빠야 생각이 나가지고. 그 오빠야도 목소리가 억수로 좋았거든예.”
폰팅한 오빠 얘기를 꺼낸 김에 혜선은 뒷이야기까지 풀었다. 그 오빠가 대학생이라고 해서 3개월을 폰팅했고 기어이 서울까지 찾아갔지만, 남자는 대학생이라기엔 나이가 많아 보였다. 게다가 자꾸 혜선을 데리고 여관으로 가려고 했단다.
열이 받은 혜선은 남자에게 쌍욕을 해 주고 혼자 부산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소리는 억수로 좋았는데…. 말끝을 흐리며 혜선이 한숨을 쉬었다. 혜선인 실연이라도 당한 표정을 했다.
“가시나가 겁도 없다. 험한 일 당하믄 우짤라꼬 그랬노?”
삼락 형님이 혀를 차며 나무랐다. 수일도 그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혜선은 삼락 형님이 싫은 건지 아니면 야단을 들어 기분이 상했는지 입을 삐죽이며 형님을 흘겨보았다.
“으이그, 혜서이 니는 별거를 다 한다. 폰팅 그기 전화세가 얼만데?”
“안 그래도 전화세 마이 나왔다꼬 엄마한테 억수로 맞았다.”
전화세 얘기를 하며 혜선은 해맑게 웃었다. 은아 씨는 술 한 잔을 또 비우고는 혜선에게 잔을 채우라고 일렀다. 오늘따라 은아 씨가 술잔을 빨리 비웠다. 마스터가 옆에서 은아 씨의 등을 쓰다듬는 게 자꾸 보여 수일은 신경이 쓰였다. 수일도 술이 마시고 싶었지만, 금주 결심을 하루 만에 어기고 싶지 않아 서비스로 나온 사이다를 홀짝였다.
“요새는 펜팔 안 하나?”
키보드 웅이가 물었다. 웅이는 혜선에게 관심이 많았다. 조금 전에도 옆자리에 앉으려고 애를 썼지만, 눈치 없는 마스터와 은아 씨가 혜선의 옆과 앞에 앉고 그 바로 옆자리에 삼락 형님이 앉는 바람에 대각선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하지, 왜 안 해예? 요새는 해외 펜팔도 마이 합니다. 어디 협회에 돈 주고 가입하면 미국 아도 소개시키 주고 일본 아도 소개시키 준다카대예.”
“이야, 세상 마이 좋아짔네.”
과장되게 반응하며 웅이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혜선에게 술을 따라 주려 아까부터 대기하던 웅이는 기회다 싶었는지 조심성 없이 팔을 움직였다. 그 바람에 웅이의 팔꿈치가 옆에 앉은 수일의 사이다 잔을 넘어트렸다.
“어어어. 행님 죄송합니다.”
“으이그, 니 조심 안 하나?”
“괜찮아요. 닦으면 돼요.”
수일은 얼른 화장지를 들어 젖은 바지를 닦았다. 마스터가 조심성 없다고 웅이를 나무라던 중 삼락 형님이 큰소리로 동생 왔나, 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세 명의 덩치 뒤로 강재욱이 고깃집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삼락 형님은 벌떡 일어나 슬리퍼도 신지 않고 마루를 내려갔다. 강재욱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반갑게 인사했다. 강재욱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잘생긴 얼굴에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이었다.
치마를 입은 은아 씨와 혜선을 제외한 남자들은 방석에서 반쯤 일어나 강재욱에게 고개를 숙였다.
“일 나지 마십시오. 오늘 회식한다케서 왔드이만 뭐 이런 걸 묵고 있습니까?”
“박 사장이 5만 원 뿌이 안 주서 그렇다.”
“에헤이, 그 양반 참. 회식하라꼬 돈 쫌 주라 켔드만은. 쯧, 사장님, 여 삼겹살 12인분하고 맥주 다섯 병 주이소.”
강재욱은 삼락 형님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 가운데에 앉았고, 덩치 셋은 바로 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덩치 셋이 고기 9인분에 사이다를 시키는 소리가 들렸다.
웅이 옆, 구석에 자리 잡은 수일은 강재욱과 거리가 멀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이다로 끈적거리는 손을 물수건으로 닦았다. 원래는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을 생각이었으나, 강재욱이 오자마자 일어나기엔 눈치가 보였다.
아껴 먹던 수육은 강재욱의 등장에 금세 동이 났고, 불판에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 갔다. 밥으로 배를 채우던 손이 멈추고 모두의 시선은 불판에 집중되었다.
“내일 오실 특별한 손님을 위해 따로 시간까지 내서 연습한다고 들었습니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재욱은 예의 듣기 편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다들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고개만 주억거렸다. 혜선과 영희는 홍조 띤 얼굴로 황홀한 눈을 하고 강재욱을 쳐다보았다. 자기들을 고용해 준 사람이니 어련하겠냐만, 그래도 묘하게 그들 눈엔 애정이 엿보였다.
“뭐 그런 말을 다하노. 섭하게. 이래 밥도 사주고 뽀나스도 주고. 오성관에서 전속 계약을 한기야 말로 우리 복이다 복.”
삼락 형님이 목청껏 복이라고 외쳤다. 틀린 말이 하나 없어 수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일이야말로 형님 덕에 돈도 벌고 배도 곯지 않았다. 더군다나 두산도 만났으니 복이 아닐 수 없었다. 은아 씨는 눈이 풀린 채로 입술을 실룩이며 소주를 털어 넣었다. 저런 모습은 또 처음이라 수일은 걱정이 되었다.
“자자, 술 한 잔씩 받으이소.”
올해 마흔하나인 강재욱은 삼락 형님 다음으로 여기서 나이가 많았지만, 마흔인 마스터보다 몇 살은 더 젊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수일과는 고작 다섯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저 남자를 어디서 봤을까.
수일은 다시 젊은 날의 강재욱을 떠올렸다. 처음보다 기억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여전히 잘생기긴 했어도 어려 보였고 지금처럼 점잖거나 무게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두산이나 현수 정도의 무게였다. 당시 조직이나 누군가의 꼬리였을 확률이 높았다. 수일은 멍하니 술을 받는 강재욱을 쳐다보며 기억을 더듬었으나 또 실패했다.
강재욱은 여자들부터 시작해서 한 명씩 돌아가며 맥주를 따랐다. 절대 무릎을 꿇거나 엉거주춤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제 차례가 되면 알아서 강재욱의 앞으로 가서 술을 받고 따라 주었다. 수일도 차례가 오자 하는 수 없이 맞은편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잔을 내밀었다. 금주고 뭐고 거절할 자리가 아니었다.
“수일이 니는 얼굴이 마이 상했네.”
다른 사람에겐 정중하게 ‘고생 많습니다. 내일 잘 부탁드립니다’ 하던 강재욱이 수일에게는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삼락 형님이나 은아 씨가 제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강재욱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기분 나빴다. 마치 두산이 고생을 시킨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대꾸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 수일은 그만두었다. 두 손으로 술을 받고, 다른 사람들처럼 몸을 돌려 한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잔을 돌려주고 술을 따랐다.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강재욱은 한 모금을 마신 뒤 맥주잔을 한번 보고 수일에게 시선을 던졌다.
“요새는 사고 안 치나?”
“…네?”
“사고 안 치냐꼬?”
“아… 네.”
“아인데. 내 듣기로는 밀레니엄에서 사고 칬다 카든데?”
이리 말하며 웃었다. 수일은 눈을 크게 떴다. 두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냥 술에 취해 밖으로 기어 나간 줄로만 알았다. 갑자기 불안했다. 혹시 못 볼 꼴을 보인 건 아닌가 싶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산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우리 행님’이라고 소개까지 했는데, 고주망태가 되어 진상이라도 부렸을까 봐 수일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강재욱은 입꼬리를 올리며 맥주를 반쯤 들이켰다. 자기는 모르는 일을 앞에 앉은 남자가 알고 있다는 생각에 이 자리가 불편해졌다. 얼른 두산을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수일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익어 가는 삼겹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사님! 이라는 기 으데 있습니까? 예? 내 월급 와 깎았는교?”
은아 씨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엔 화가 서려 있었다. 마스터와 삼락 형님이 ‘니 와 그라노?’ 하며 동시에 말렸지만, 은아 씨는 두 남자의 팔을 뿌리쳤다.
“놔라. 박정배 사장은 이유도 말 안 해주고. 내 억울해서 몬 살겠습니다. 이유나 들어봅시다, 예?”
시뻘건 얼굴로 삿대질까지 하며 은아 씨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강재욱은 코웃음을 치더니 마시던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그리고 차분한 얼굴로 은아 씨를 돌아보았다.
“정은아 씨, 여 오성관에 정은아 볼라꼬 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방으로 부르는 손님도 없지예? 한마디로 정은아 씨가 우리 오성관에 도움 되는 기 하나도 없다 이 말입니다. 내 계약 파기할까 하다가 사정이 딱해서 월급만 깎았습니다. 그기 그래 마음에 안 들면 위약금 안 받을 테이 나가든가 하이소.”
격앙된 은아 씨와 달리 강재욱은 목청조차 높이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고 미리 준비라도 해 둔 듯 말을 술술 뱉어 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비수가 되어 은아 씨뿐 아니라 앉아 있는 모든 가수와 밴드에게 꽂혔다.
다들 삼류들이었다. 이렇게 전속 계약을 맺고 일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성관이 아니었다면, 이제 막 생긴 변두리 나이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전국 팔도 중 시골만 떠돌았을 사람들이었다. 모두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은아 씨도 알고 있을 터였다.
“회갑연이고 갱로당 잔치고 실컷 댕기 보이소. 여서 받는 월급 벌 수 있는가? 내 말이 틀렸습니까?”
강재욱이 쐐기를 박았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은아 씨는 대꾸하지 못했다. 술 때문에 벌게진 얼굴에 창피함을 숨기고, 은아 씨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오늘 쫌 마이 마싰습니다. 먼저 일어나 보께예. 술이 깨야 무대에 서든가 하지.”
기가 죽은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마스터가 따라 일어나며 은아 씨를 부축했다. 은아 씨는 이번에는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키가 작은 은아 씨는 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몇 센티는 커 보이게 만드는 하이힐을 신었다. 또각또각 불규칙한 소리를 내며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분위기 와 이라노? 다들 고기 묵자 고기. 이거 억수로 맛있네.”
삼락 형님이 호들갑스레 박수까지 치며 분위기를 바꿨다.
“이사님, 제 술 한잔 더 받으십시오.”
말이 없던 영희가 유독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강재욱 옆으로 와 술을 따랐다. 표정이 어찌나 밝은지 다른 사람 같았다. 혜선도 지지 않고 강재욱의 앞으로 와 앉았다.
“다음은 제 차례라예.”
어린 데다 눈치도 빠른 두 사람은 서슴없이 강재욱에게 잘 보이려 애썼다. 삼락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아부하는 동안 밴드와 수일은 구석에서 고기를 먹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들끼리 합석한 모양새가 되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입을 다물고 고집스레 고기를 먹었다. 참 맛있었다. 수일은 상추에 쌈 싸 먹고, 소주도 한 잔 마셨다. 딱 한 잔만 마시기로 했다. 속상한 은아 씨를 대신해 한 잔만 마시기로 했다.
회식이 끝날 무렵 강재욱이 일어났다. 같이 삼겹살을 먹고 맥주와 소주를 마셨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빈틈이 없었다. 뒤에 앉아 고기 9인분을 다 먹은 덩치들도 따라 일어섰다.
삼락 형님이 마루 아래로 내려가 공손히 구두를 놓아주고 구둣주걱을 내밀었다. 강재욱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걸 받아 들고 신발을 신었다.
수일은 피식 웃음이 났다. 삼락 형님이 살아남는 방식을 비웃는 게 아니었다. 강재욱이 별수 없는 깡패라서 웃었다. 아무리 점잖게 굴어도 결국은 남들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남자였다. 그게 우스웠다.
수일은 비겁해서 감히 앞에 나서지 못하는 자신도 실컷 비웃어 주었다. 은아 씨의 비틀거리는 작은 몸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주잔에 손을 댔다가 도로 놓고 물을 마셨다.
무대는 여전했다. 부쩍 손님이 늘었지만, 그건 11시 이후의 얘기였다. 10시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많았고 호응도 적었다. 수일은 끊어질 듯한 허리를 겨우 세우고 노래를 불렀다.
이번 섹스는 유난히 후유증이 컸다. 그래도 좋긴 정말 좋았다. 오죽하면 하는 중에 오줌을 다 쌌을까. 새벽의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자 온몸에 열이 올랐다. 수일은 귀까지 벌게져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은아 씨는 짙은 화장으로 술 때문에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평소보다 더 짧고 가슴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수일에게는 ‘수고했다’ 한마디만 할 뿐 입을 꾹 다물었다. 수일도 은아 씨에게 ‘수고하세요’ 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힘내란 말은 정말 힘낼 기운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나 할 수 있었다. 은아 씨나 저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힘을 낼 게 아니라 버텨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한 뒤 바닥이 보이는 스킨과 로션을 꺼냈다. 강재욱의 얼굴 많이 상했다는 말이 여간 맘에 걸리는 게 아니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병든 닭처럼 힘이 없어 보이긴 해도 못 봐줄 정돈 아니었다.
짧게 혀를 차고 스킨과 로션을 듬뿍 발라 얼굴에 두드렸다. 챱챱, 건조하던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월급 받으면 화장품도 새로 사야지. 머릿속으로 얼마 되지 않는 첫 월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 계산했다.
오늘도 두산은 늦으려나 보았다. 윤기 나던 얼굴에 다시 그늘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