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랜만에 술이나 하자며 무대를 끝내고 집에 가려는 수일과 두산을 잡아 세웠다. 두산은 귀찮아했지만, 거절을 못 하는 수일을 위해 남아 주었다. 그렇게 12시가 넘은 시각 오성관 뒤 대폿집에 작은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삼락 형님까지 합류해서 수일은 내심 기뻤다.
“이래 다 모인 기 얼마 만이고? 자자 건배하자.”
제일 연장자인 삼락 형님이 건배를 외쳤다.
“행님은 와 이래 얼굴 보기가 힘듭니까? 호텔 방에 금송아지라도 숨기 났나?”
마스터의 물음에 삼락 형님이 호탕하게 웃었다.
“쌔끼, 금송아지 뿌이겠나? 내 다음 주에 차 한 대 뽑는다.”
“재주도 좋다. 그란데, 그 아지매는 남편 없는교?”
“읍따. 확인했다. 으하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삼락 형님의 입으로 막걸리가 들어갔다.
“삼락 아재, 조심 하이소. 이번에 드가면 골 아프다.”
두산은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드가다이? 씨팔, 두사이 니는 먼 말을 그래하노? ”
감옥 얘기라는 걸 단번에 알아들은 형님은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수일이 작게 왜 그래, 하며 두산을 말렸지만 두산은 그런 형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재가 만나는 아지매 그래 호락호락한 여자 아입니다. 뒷배 있는 아지매 잘못 건드리면 머리에 고속도로 나는 걸로 안 끝난다.”
“이 쌔끼가, 내가 햅박이라도 했나? 내 조타꼬 그 싸모가 사 준다고 한 기다. 알지도 몬 하면서.”
“아이고, 오빠야,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다. 자자, 우리 술이나 한잔 더하자.”
슬쩍 두산의 편을 들며 은아 씨가 빈 잔을 채웠다. 마스터도 삼락 형님의 손에 잔을 쥐여 주며 은아 씨를 거들었다. 수일은 두산이 왜 저런 말을 꺼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 삼락 형님의 일에 무관심한 두산이라 더 그랬다. 형님이 만나는 사모가 누군지 아는 뉘앙스였다.
곱씹을수록 기분이 상하는지, 목까지 시뻘게진 형님은 술잔을 내팽개쳤다.
“두사이 니는 우아래도 읍나? 으데 새파랗게 어린 기 어른한테 훈계질이고? 은아 니도 그라는 거 아이다. 팬을 들 꺼 들어야지.”
하면서, 형님답지 않게 목청을 높였다.
“오빠도 참, 내 뭐 틀린 말 했나.”
은아 씨는 형님의 삿대질에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날 분위기라 수일은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의외로 두산이 지고 들어갔다.
“에헤이, 내가 아재한테 훈계할 짬밥이 되나? 자, 그라지 말고 술 한잔 받고 기분 푸이소. 내가 아재 걱정이 돼서 안 그라나.”
두산이 막걸리 주전자를 들자 마스터가 삼락 형님의 손에 빈 잔을 냉큼 안겼다. 형님은 못 이기는 척 술을 받았고, 이제 막 시작한 술자리는 위기를 넘겼다.
수일은 두산이 참으로 신기했다. 다혈질에 당장 주먹이 나갈 것 같다가도 실실 웃었고, 제 할 말 다 하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이끌었다. 삼락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화가 나도 사과하면 쉽게 받아 주었다. 뒤끝이 없었다. 이 바닥은 뒤끝이 없어야 좋았다. 그래야 언제라도 불러 주는 사람이 생겼다.
수일은 내심 부러웠다. 천성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수일은 죽었다가 깨나도 저렇게 살지 못할 것이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은아 씨가 마스터를 유독 챙겼다. 예전엔 눈길도 안 주던 마스터도 은아 씨를 간간이 신경 썼다. 두산도 질세라 먹을 거는 죄다 수일의 앞에 갖다주었다. 팔을 뻗으면 반대쪽 끝까지 닿을 정도로 테이블이 작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수일의 앞으로 접시를 당겼다.
“그만해.”
입 모양으로 이렇게 말하고 눈치를 줬지만 막무가내였다.
“수일이 니는 와 숙소를 옮깄노? 그래도 같이 살아야 서로 챙기고 할 낀데.”
접시를 밀어내던 수일은 마스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우물거렸다.
“어, 그게 그냥… 그렇게 됐어요. 동생들도 넓게 잘 수 있구요….”
“그래도 그렇지. 두사이 저 새끼랑만 같이 사나? 저 새끼 무서븐 새끼다. 화나믄 말릴 사람도 없다 아이가. 다시 온나.”
“아니, 그….”
수일이 말 한마디 없이 숙소를 옮긴 게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두산이 같은 애가 제일 무섭다, 깡패들이 괜히 깡패냐, 그래도 숙소 동생들은 착하다, 하며 마스터는 5분도 넘게 같은 말을 했다. 누가 들으면 두산에게 맞고 사는 줄 알겠다 싶었다. 가만 듣고만 있던 두산도 슬슬 열이 받는지 탁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았다.
마침 대폿집으로 남자 아홉이 들이닥쳤다. 회사원인지 말끔한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이었다.
“오성관 가시나들 직이네예.”
“그라이. 내 스트립쇼 이래 화끈하게 하는 데는 또 첨이다. 다른 데는 단속 때메 이래까지 안 한다 아이가.”
“물갈이 마이 됐드라. 내 얼마 전에 왔을 때는 가시나들 얼굴 보도 몬 하겠드만은 싹 다 바낐데.”
그러다가 그들 중 하나가 은아 씨와 삼락 형님을 알아보았다.
“여 가수도 있네, 가수도.”
들으라는 듯 이렇게 말하며 저들끼리 속닥였다. 화장발 조명발이라며 은아 씨를 할매라 불렀고, 삼락 형님의 무대를 본 적이 있는지 노래도 더럽게 못하더라 했다. 수일과 마스터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을 물건인 양 품평을 하고 키득거렸다.
하지만 수일의 테이블 그 누구도 들은 체하지 않았다. 저런 식의 험담은 애교 수준이었다. 일부러 시비를 걸어 싸움을 부추기는 족속들이 차고 넘쳤고,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로 희롱하는 일도 숱하게 많았다. 신체 접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싫고 미워도 저들은 나이트 고객이자 밥줄이었다. 사장 또는 사장과 잘 아는 누군가의 친구거나 후배일 수도 있었다. 친척이나 동생일 수도 있었다. 그런 손님과 시비가 붙어 봐야 손해 보는 건 힘없는 종업원과 가수들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 바닥에서 10년 이상 굴러먹은 경험자들이 모인 수일의 테이블은 저런 말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수일은 속으로 다음부턴 여기 오지 말아야지 했다. 그게 다였다.
“써커스단 온다 카드만은 다 나가리가?”
“맞네. 내도 궁금타. 두사이 니 뭐 들은 거 없나?”
“써커스고 나발이고 내는 사회 볼 아나 쫌 불렀으면 좋겠다. 뺀드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은제까지 내가 사회도 봐야 하노?”
삼락 형님과 은아 씨, 마스터가 한마디씩 던졌다.
“저라이 변두리 나이트에서 노래를 부르지.”
잠깐의 정적 사이로 비아냥거리는 말이 또렷이 들렸다.
“거 씨발, 다 들리는데 말조심 쫌 하입시다.”
두산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 그들에게 소리쳤다. 수일은 흠칫 놀랐고, 은아 씨는 두산을 향해 엄지를 올렸다.
“아, 예.”
떨떠름한 대답에 이어 저 새끼는 기도가? 하며 또 저들끼리 속닥였다. 그래도 두산이 덕분에 뒷말은 거기서 일단락되었다.
그들이 뒤에서 회사 얘기를 하는 동안 두산은 은아 씨에게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누야 아들은 잘 있나? 첫째가 몇 살이라 켔지?”
“첫째는 열네 살, 둘째는 열한 살. 그래도 가시나라꼬 첫째 그기 지 남동생 잘 챙긴다. 밥도 해 멕이고.”
“이야, 누님 자식 복 있네.”
“남편 복 없는데 자식 복이라도 있으야지. 그라고 첫째는 공부도 잘한다.”
은아 씨는 자식 자랑에 얼굴이 환해졌다. 저리도 좋을까. 수일은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걸 종종 상상해 보았지만, 진짜 부모 앞에 있으면 그런 상상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마도 평생, 진짜 부모가 되는 심정은 모르고 죽을 것 같았다.
“은아 니 자식들이 벌쌔로 그래 컸나?”
삼락 형님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세월 빠르다. 이어 덧붙인 말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형님은 아이들과 아예 연이 끊겼다. 이유를 들은 적은 없지만, 형님은 늘 자업자득이라고만 했다.
“벌써 그래 크기는? 마스터 큰딸은 스물둘이나 된다.”
“하이고마, 내는 큰 딸래미 그거 때메 팔자가 이래 꼬있다. 지우자꼬 해도 즈그 엄마가 우찌나 낳자코 하던지. 그때 내 겨우 열여덟인데 뭘 알았겠노? 고마 낳자 하니 낳았지.”
“으이그. 그래 말하믄 안되지. 마스터가 사고 친 거를 와 아한테 뒤집어 씌우노?”
은아 씨의 구박에 마스터가 바보같이 웃으며 건 글타, 했다. 이어서 여상을 졸업하고 제 밥벌이를 하는 큰딸을 칭찬했다. 두산에게 들어 세 번 갔다 온 건 알았지만, 이혼한 아내들이 키우는 배다른 아이가 셋이나 더 있다는 건 몰랐었다. 마스터는 생활비 조로 아이를 키우는 두 명의 전처에게 매달 30만 원씩 보낸다고 했다.
“내가 빚 갚고 생활비 주고 나면 남는 기 읍다. 그래도 내 자식들인데 모른 척할 수 있나?”
이리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는 마스터의 입에 은아 씨가 파전을 넣어 주었다.
수일은 마스터를 좋아했지만, 은아 씨와 그가 잘되지 않기를 바랐다. 성인이 된 딸을 포함 아이가 넷이나 있는 남자였다. 돈은 많지 않아도, 적어도 은아 씨가 우선이 되는 남자와 사귀면 좋겠는데 마스터는 수일이 봐도 그런 남자가 못되었다. 게다가 어린 여자를 좋아해서 언제든 눈이 돌아갈 확률도 높았다.
그런 수일의 마음과 상관없이 은아 씨와 마스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 누이도 아닌데 둘의 모습에 착잡했다. 그때 두산의 손이 들어왔다. 툭 하고 턱을 건드렸다.
“행님, 먼 생각을 그래 하노?”
수일이 딴생각하느라 저를 보지 않는 걸 눈치챈 두산은 퉁명스레 물었다. 수일은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산이 한쪽 입술을 실룩해 보였다.
오늘도 잘 차려입은 삼락 형님은 양복에 양념이 튈까 조심하며 삶은 고동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참, 형님은 무대에 언제 다시 서세요?”
“모르거따. 내사 마 밤무대서 노래 부르는 것도 슬슬 질리고, 맘 같아서는 이번 싸모랑 잘돼서 때리치우고 싶다.”
“에이, 왜 그러세요. 전 형님이 무대에 설 때가 제일 멋있는데.”
“으하하하, 수일이 니가 웬일로 알랑방구를 다 끼노? 뭐, 내 자랑은 아니지만서도 무대에서 내가 쪼매 멋지긴 하제.”
수일은 밤무대 가수가 아닌 삼락 형님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무대에서 얼마나 빛나는데 형님이 그만두면 자기가 다 아쉬울 것 같았다. 삼락 형님에게 멋있다는 말을 하자마자 두산의 손이 허벅지를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던지 수일은 아아,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영문을 모르는 삼락 형님이 어디 아프냐 물었지만 수일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리에 쥐가 났다고 말했다.
“니 자꾸 그랄래?”
수일의 귀에 대고 두산이 낮게 으르렁댔다. 질투할 게 따로 있지. 수일은 두산의 손등을 꼬집으며 슬쩍 흘겨보았다.
늘 그렇듯, 옛날얘기로 대화가 흘렀다. 마스터는 풍기 문란으로 삼청 교육대에 끌려갈 뻔한 얘기를 또 하기 시작했다. 그날 수중에 돈이 좀 있었던 마스터는 십 원짜리까지 탈탈 털어 뇌물을 먹이고 훈방 조치 되었고, 다른 날 역시나 풍기 문란으로 잡혔던 삼락 형님은 교육까지 받고 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그 험하다는 연병장으로 끌려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일은 몇 번이고 들었던 얘기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귀 기울였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웃고 떠드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이런 자리가 거의 없었던 수일은 순간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을 술로 겨우 다스리며 시간 가는 게 아쉬워 몇 번이고 벽시계를 돌아보았다.
반면 두산은 고리타분한 옛날얘기엔 관심도 없었다. 당시 겨우 열두세 살의 어린 나이였고, 그에겐 재미없는 술자리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었다. 두산은 온몸으로 지루함을 표시하며 수일의 허벅지를 조몰락대고 술을 마셨다.
대화 주제는 88올림픽으로 바뀌었다. 올림픽 덕분에 정말로 살 만해졌다고, 경기도 좋아서 어딜 가도 밥 먹고 사는 데 문제없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남편이 사업을 크게 말아먹은 은아 씨도 그 덕에 빚이라도 갚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고, 마스터도 세 아이의 양육비를 낼 수 있었다. 삼락 형님은 말할 것도 없었다. 떠돌이였던 형님은 진주에 자기 명의의 집도 샀다고 했다.
올림픽 두 해 전부터였나, 인기 없는 수일조차 불러 주는 곳이 있을 정도로 밤 경기는 호황이었다. 수일이 손에 쥐는 건 쥐꼬리였지만, 그래도 호황 덕에 평생 따라다니던 빚을 겨우 청산했고 쥐꼬리라도 돈을 벌었다. 폐렴으로 석 달을 내리 쉬지만 않았어도, 돈이 없어 굶는 일도 부산까지 내려오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주인 할머니가 막걸리 주전자를 몇 번이나 다시 채웠고, 채우기가 무섭게 술은 사라졌다. 취기가 올라 눈이 흐려졌다. 은아 씨의 몸이 흔들렸고, 삼락 형님의 혀가 꼬였다.
마스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친 것도 그때쯤이었다. 술이 많이 된 마스터는 역시나 술에 취한 회사원들에게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야이, 개새끼들아, 뭐 할매? 화장빨? 이 쌔끼들이 죽을라꼬.”
아까 은아 씨에게 화장발 조명발이라고 했던 걸 술기운을 빌려 이제야 마스터가 걸고넘어졌다.
“하이고, 오빠야, 와 그라노? 앉아라.”
늘 마스터라 부르던 은아 씨가 오빠라 부르며 말려 보았지만, 은아 씨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마스터는 더 목소리를 키웠다.
“밤무대 선다꼬 우습나?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쌔끼들.”
“죄송합니다. 술이 쫌 치해가지고.”
마스터 대신 사과한 은아 씨는 온 힘을 다해 마스터를 앉히려 애썼다. 한심한 새끼, 삼락 형님은 혀를 찼다. 두산은 말 대신 표정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여간 밤무대 년놈들은 근본이 없어요, 근본이. 으데 하늘 같은 손님한테 삿대질이고?”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마스터의 도발에 곧장 반응했다. 업신여기듯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부장님 따봉, 하며 그의 일행들이 동조하고 웃었다. 둘이 연애하나, 꼴에 사내새끼라고 발악하는 거 봐라. 그들은 이제 은아 씨까지 싸잡아 비웃었다.
수일도 마스터가 한심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이번에도 마스터의 모습에서 자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외롭고 소심한 남자. 술의 힘이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비겁한 남자. 마스터는 곧 자기였다.
“뭐어? 밤무대 년놈들? 와, 씨팔, 함 댐비바라.”
마스터는 팔을 걷었지만, 말만 할 뿐 테이블로 다가가진 않았다. 그들은 아홉이었다. 술에 취했어도 아홉은 많아 보이나 보았다. 삼락 형님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는지 욕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폿집을 나가 버렸다.
은아 씨도 질린 표정으로 마스터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수일은 마스터 편을 들고 싶었다. 주제를 모르고 덤빈 건 맞지만, 그래도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했다 싶었다.
일어나려는 수일의 어깨를 누르고 두산이 일어섰다. 당연히 마스터를 말리러 갈 줄 알았다. 설마 저쪽 테이블로 가리라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두산은 성큼성큼 걸어 방금 ‘밤무대 년놈들’이라고 말한 부장이란 남자가 앉았던 테이블을 발로 차서 넘어트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졸지에 쏟아지는 술에 바지를 적신 남자들이 욕을 하며 한마디씩 던졌지만, 곧 가게 안에 정적이 흘렀다. 두산이 부장에게 얼굴을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야이 씨발롬아, 뚫린 입이라꼬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면 쓰나?”
“뭐, 뭐? 씨발롬? 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씨발롬?”
부장의 얼굴은 터질 듯 붉었다. 그의 동료들이 정신을 차리고 한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은 하나고 저쪽은 아홉이니 아무래도 자기들이 우위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이고, 개썅노무 새끼들. 겁도 없이 으데서 일나노?”
두산이 웃었다. 이어 다른 테이블도 발로 넘어트렸다. 그릇이 나뒹구는 소리와 남자들의 욕지거리가 뒤엉켰다. 두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체구도 키도 큰 두산은 가만 서 있기만 해도 위압적이었다.
먼저 시비를 걸었던 마스터가 가만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두산의 도움에 용기가 났는지 으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회사원 중 하나의 멱살을 잡고 손을 올렸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두산은 뒤에서 지켜보다 씨발, 했다. 무리에서 마스터를 끄집어내 뺨을 후려갈겼다. 수일은 제 눈을 의심했다. 두산이 때린 건 회사원 중 하나가 아니라 마스터였다. 헉, 하고 마스터가 쓰러졌다. 뺨을 때렸을 뿐인데도 입술이 터져 피가 났고 코피도 흘렀다. 은아 씨가 마스터에게 달려갔다.
좀 전까지 멱살을 쥐고 마스터와 치고받았던 회사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두산의 시선이 옮겨 가자 정상적인 사람 몇몇이 ‘그만하입시다’ 했다.
“사과해라.”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두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수일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차분하면 안 되었다. 수일은 차분한 두산이 어떻게 사람을 때리는지 두 번이나 목격했었다.
“사과하면 그만하께.”
시비를 건 것도 싸움을 먼저 건 것도 마스터였다. 그런데도 두산은 회사원들에게 사과를 강요했다.
“니 내 눈 줄 아나? 오성관 박 사장하고 국민학교 동창이다. 으데 기도새끼가 겁도 없이 사과하라 마라 하노?”
다른 중년이 두산에게 목청을 높이고 삿대질을 했다. 두산은 성큼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그 손을 꺾어 버렸다. 남자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몸을 비틀었지만, 두산은 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박정배 그 개새끼하고 친구면 우짜라꼬? 불러 주까, 박정배?”
“씨발 새끼야 놔라. 어흐흑, 놔라…. 제발, 아이고 나 죽네, 놔주십시오.”
손이 잡힌 남자는 욕을 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두산아, 그만해.”
수일이 다가가 두산의 팔을 잡았다.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었다. 은아 씨도 수일을 거들었다. 두산의 등을 찰싹 때리며 야단을 쳤다.
“두사이 니 그만해라. 마스터가 잘몬했다 아이가.”
“그만하자, 응?”
“씨발.”
결국, 두산이 남자의 손을 놓았다. 남자는 울면서 바닥을 기었다. 일행들이 서둘러 남자를 에워싸며 상태를 살폈다.
두산은 제 팔을 잡은 수일의 손을 떼 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두산에게 맞은 뺨을 비비던 마스터를 구둣발로 툭툭 건드렸다.
“어이, 마스터, 씨발롬아. 감당도 몬 하면서 머하러 술을 처마시노? 내 다시는 니하고 술 안 마신다. 개새끼, 기분만 드럽꼬로.”
두산은 그대로 수일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은아 누님은 어쩌구?”
“알아서 챙기겠지. 가자.”
“아니 그래두….”
두산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수일은 대폿집을 여러 번 돌아보았다. 가슴 따뜻했던 시간은 마스터의 행패로 그렇게 끝이 나 버렸다.
아쉬우면서도 불안했다. 불안의 이유는 두산이었다. 택시 안에서 수일은 좀 전까지 있었던 일을 정리해 보았다. 마스터가 시작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두산은 한 남자의 손을 부러트릴 뻔했다.
수일이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부러트렸을까? 아니다. 두산은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적당한 선에서 손을 놓았겠지만, 그래도 수일은 겁을 먹었다.
수일은 살면서 폭력이 멋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자기가 맞지 않으면 누군가가 맞았다. 그 누군가가 언젠가 자기가 된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아는 수일은 두산이 아무리 제 편이어도 가끔 겁이 났다.
그래도 오늘은 두산이 멋져 보여야 옳았다. 무작정 마스터의 편을 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작정 남의 편이지도 않았던 두산이 멋져야 옳았다. 적당한 선에서 폭력을 조절하고 멈추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하지만 수일은 불안으로 심장이 아팠다. 겁이 났다.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답답해 수일은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두산이 팔을 뻗어 제 어깨에 수일의 머리를 올렸다.
“그라지 마라.”
낮은 목소리가 경고했다.
“내가 옆에 있는데 다른데 기대지 말라꼬.”
내리누르듯 손에 힘을 주자 두산의 어깨에 수일의 오른쪽 볼이 뭉개졌다. 두산이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두산은 대책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다른 깡패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수일은 두려운 마음을 떨치려 애썼다. 주문을 외듯 두산은 다르다고 자기를 속였다. 설령 사실이 아닐지라도 수일은 두산을 떠나지 못할 터였다. 수일에겐 두산 말곤 아무도 없었다. 수일은 두산을 꼭 끌어안았다.
두산은 웬일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온종일 수일의 옆에 붙어 있었다. 수일이 저를 겁내는 걸 알아서였는지, 밤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고 애무했다. 일어나서는 입술이 부르트도록 키스하고 섹스를 했다.
그러는 동안 쌀 배달이 왔고, 쌀통과 압력 밥솥, 오디오 카세트, 선풍기 3대가 들어왔다. 두산은 물건을 받으러 나갈 때를 빼곤 정말로 수일의 옆에서 꼼짝하지를 않았다.
수일은 사정 후 1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발기하는 두산이 신기할 뿐이었다. 물론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는데 이젠 하얗게 질렸다. 입 안에 한 번, 배 위에 한 번 그리고 몸 안에 두 번을 사정하고도 두산은 자꾸 발기했다. 수일은 두 번 사정하고 그대로 뻗었다.
“…나?”
“…어? …….”
제 가랑이 사이에서 두산이 고개를 들었다. 수일은 무슨 일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렸다. 정신이 돌아오자 그제야 두산에게 펠라티오를 받던 중에 깜빡 잠이 든 걸 깨달았다.
“와, 니 진짜로 잤나?”
두산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하고 수일을 올려다보았다.
“어? 어… 미안. 피곤해서….”
수일은 상체를 약간 세워 두산이 조몰락대고 있는 축 늘어진 제 성기를 내려다보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이상하게 힘이 하나도 없더라니. 갑자기 서운함에 울컥한 수일은 도로 침대에 누웠다.
“너는 왜 밥도 안 먹고 하니? 기계도 때 되면 기름칠은 해 주는데.”
“아! 씨발!”
“점심도 안 먹고 몇 시간째 이것만 하고. 벌써 출근 시간이잖아.”
“내 돌았는갑다. 머 묵고 싶노?”
“짜장면! 탕수육!”
창피한 것도 잊고 수일은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 메뉴를 읊었다. 먹을 걸 생각하자 배에선 아주 난리가 났다. 두산이 벌떡 일어나 중국집에 전화를 걸러 나갔다.
수일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다리를 오므릴 힘조차 없어서 이불로 흉하게 벌어진 하체를 가렸다. 두산이 어찌나 빨았는지 겨드랑이와 젖꼭지는 공기만 스쳐도 따가웠다.
중국집에 전화하는 게 뭐가 그리 흥분되는 일이라고 그새 발기한 두산이 커다란 것을 덜렁거리며 침대로 기어들어 왔다.
“와, 내 진짜로 몰랐다.”
변명이랍시고 이렇게 말하며 수일을 달랬다. 부르튼 입술에 제 입을 비비고 마른 수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수일은 두산의 머리가 무거워서 치우고 싶었지만, 손을 들 힘이 없어 내버려 두었다.
“사과하는 의미에서 짜장면 올 동안 빨아주까?”
“어우, 두산아, 그만하자. 나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수일은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았다. 심각한 수일과 달리 두산은 수일의 어깨에 기댄 채 키득댔다.
“으이그, 엄살은. 내 하루에 일곱 번까지 해봤는데 안 죽는다. 꼬치만 안 아팠으면 더 할 수도 있었다.”
일곱 번이란 말에 수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와? 꼭 말해야 하는 기가?”
두산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말해야지. 너 여태 나 속였니?”
“속이긴 멀 속여. 참은 기지. 니 아플까 봐….”
두산은 이러면서 은근슬쩍 수일의 가랑이 사이에 손을 밀어 넣었다. 수일이 고개를 홱 돌려 노려보아도 실실 웃으며 손을 떼지 않았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두산을 잘못 알고 있었다. 수일이 싫다면 멈추고, 힘들다면 한 번만 하길래 그 정돈 줄 알았는데. 사실 그 정도도 수일의 상식과 경험에 비하면 훨씬 웃돌긴 했었다.
크기만 하면 말을 안 하겠지만, 버티기도 오지게 오래 버텼다. 아랫도리에 감각이 없었다. 밑이 빠질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이 힘드나?”
“응.”
“내 억수로 참았는데.”
두산은 붕대가 감긴 왼손으로 수일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하나씩 떼 주고 뽀뽀를 했다. 두산의 푹신한 아랫입술이 콧대를 타고 내려와 수일의 코끝에 닿았다.
“내 진짜로 마이 참았다.”
“이게 참은 거야?”
“어.”
너무도 단호한 표정에 수일은 할 말을 잃었다.
속았다, 윤수일.
수일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발기한 채 몸을 기대 오는 제 어린 연인을 보았다. 두산은 축 처진 수일의 몸과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했다. 간지럽다는 말을 할 힘도 없어서 수일은 느리게 웃었다.
‘띵동’ 소리에 청바지를 두 다리에 끼워 넣으며 두산이 밖으로 나갔다. 수일도 먹어 보겠다고 벌떡 일어났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침대 밑에 주저앉았다.
“두산아, 나 좀….”
“에헤이, 야가 와 이라노?”
철가방까지 들고 들어온 두산은 혀를 차며 수일에게 다가왔다. 알몸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수일에게 커다란 제 티셔츠를 입히고 그대로 안아 들어 식탁에 앉혔다.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수일은 화장지를 집어 대충 아래를 닦았다. 두산은 그런 수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입술을 혀로 핥았다.
“너 그러지 마, 좀.”
“내 머? 눈이 달리서 쳐다본 기다. 거참, 이상한 아저씨네.”
두산은 되레 버럭 소리를 치더니 제가 배달한 것처럼 철가방에서 그릇들을 꺼냈다. 자장면, 짬뽕, 탕수육에 군만두와 팔보채까지. 수일은 그릇들이 나올 때마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쓰읍, 하고 삼켰다.
음식만으로도 황홀한데, 두산이 움직일 때마다 땀에 젖은 근사한 상체 근육이 수일의 눈을 어지럽혔다. 붕대가 멋진 복근을 조금 가리긴 했지만, 하여간 몸 하난 끝내주게 좋았다.
“니는 와 쳐다보노?”
“내가 뭘?”
너무 빤히 보았는지 두산에게 들켰다. 여태 잘 숨겼는데 하필 이때 들키다니.
“니 내 쳐다봤제?”
“아니거든.”
“맞거든.”
“내, 내 눈이 사시 끼가, 좀 있어.”
수일은 말까지 더듬으면서 되지도 않는 말을 했다. 두산이 지랄, 했다.
“내보다 더 밴태네.”
“누구더러 변태래?”
티격태격하다가 둘은 서로를 보고 웃었다. 두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수일은 몸을 살짝 일으켜 입을 맞추고 혀끝으로 장난하며 키득댔다. 수일의 벌어진 입 안으로 두산의 혀가 들어왔다. 몸만큼 두껍고 힘이 좋은 혀가 수일의 입 안을 싹싹 훑고 지나가자 수일은 안달이 났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두산의 목을 끌어안자, 두산이 서둘러 입술을 떼고 수일에게 다가와 그대로 안아 들었다. 어쩜 이렇게 힘이 좋은지 몰랐다. 수일은 허공에 붕 뜬 채 두산의 허리에 두 다리를 감았다. 청바지가 벗은 수일의 하체에 닿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히 혀를 얽었다. 점막을 훑고 혀를 빠는 젖은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열이 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맨다리에 닿은 두산의 몸이 뜨거웠다. 걸을 힘도 없었던 주제에 허리를 안은 두 다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수일의 등이 벽에 닿았다. 격렬한 키스에 숨을 헐떡이고 끊임없이 혀를 찾고 입술을 찾았다. 쪽쪽 느리게 또는 빠르게, 두산은 온 힘을 다해 수일의 혀와 입술을 빨아올렸다.
“하아, 아….”
수일은 숨이 막혀 몇 번을 고개를 틀었다. 그러면 두산이 쫓아와 수일의 입술에 입술을 꼭 끼워 맞췄다. 이대로 서서 하려는지 두산은 그 큰 손으로 수일의 엉덩이를 거머쥐었다. 구멍이 벌어지면서 남아 있던 정액이 흘렀다. 오일을 거의 한 병이나 들이부었던 구멍 안으로 두산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수월하게 들어왔다.
수일은 매번 들어올 때마다 두산의 크기에 놀랐고, 시작은 여전히 불쾌했다. 수일은 제 입을 물고 있는 두산의 입 속에 앓는 소리를 토해 냈다. 두산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두산의 자지가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두산의 것을 물고 있는 구멍에서 질척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났다.
“윽, 씨발….”
두산은 열띤 눈으로 수일을 보았다. 정욕이 가득한 눈을 번들거리며 수일의 표정을 살폈다. 수일은 그 눈빛이 뜨겁고 낯간지러워 두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라지 말고, 수일아, 씨발, 내 보고.”
두산은 수일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얼굴을 보려 애썼다. 뜨거운 숨이 얼굴에 닿고 코끝에 닿았다. 수일은 두산의 입술을 찾아 제 입술을 비볐다.
“내 니 좋아 미치겠다.”
맞닿은 입술에 두산이 한숨 같은 말을 뱉었다.
“나두 그래.”
두산의 허리 짓이 빨라졌다. 수일은 두산을 안은 팔과 다리에 힘을 주었고, 두산이 인상을 썼다.
“어으, 씨발. 억수로 쪼인다. 이기, 쪼매만, 힘, 빼라!”
“아아!”
힘을 빼라면서 뺄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갑자기 깊게 들어오는 커다란 것에 수일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뒤통수가 벽에 닿으며 쿵 소리를 냈다.
두산은 그런 식으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며 점점 깊게 제 자지를 밀어 넣었다. 자세 때문인지 내장이 밀리는 기분이 오묘했다. 수일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가도 짜릿한 느낌에 입을 헤 벌렸다. 침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수일은 두산에게 매달렸다.
“아흑! 윽, 흐으… 두산, 아, 좋아!”
두산이 수일이 느끼는 곳을 잘게 찌르자 수일은 자지러졌다. 척추뼈를 타고 흐르는 전율에 수일은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두산의 허리를 안았던 두 다리가 맥없이 풀렸다. 빨라지는 허리 짓에 맞춰 풀어진 다리가 두산의 팔 위에서 나풀거렸다. 수일은 흐느끼며 급히 입술을 찾았고 두산은 수일의 혀를 물면서 속도를 높였다.
“아흐흐흐. 나 주글… 것, 하읏, 같애.”
구멍을 드나드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안에 물이라도 들었는지 삽입이 깊어지면서 철벅거리는 소리가 났다. 청바지 지퍼가 엉덩이를 긁었다. 그것마저 자극이 되어 수일은 머리가 하얘졌다. 몸은 땀으로 젖어 들었고, 잘게 찌르다 깊게 들어오는 자지에 허리가 들썩였다.
“씨발, 환장하겠네.”
두산은 숨을 헐떡이며 씨발, 씨발, 했다. 키스하는 것도 멈추고 제 자극에 반응하는 수일의 표정을 집요하게 쫓았다. 수일은 목이 쉬도록 두산의 이름을 부르다 몸을 부르르 떨며 사정했다. 엉덩이와 허벅지, 아니 온몸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움찔댔다. 두산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괴로운지 미간을 찌푸린 채 숨을 헐떡댔다.
“하, 하으… 씨발.”
수일의 떨림이 잦아들자 두산은 수일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땀에 젖어 미끈거리는지 두산은 수일의 골반을 손자국이 남도록 세게 거머쥐었다. 수일은 인상을 쓰며 두산의 목을 안았다. 두산은 수일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뱉고 귀를 삼켰다. 동시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일은 사정한 몸을 자극하는 성기에 전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수일아, 내 쪼매만, 흐읍, 더 하께.”
고통과 쾌락이 한꺼번에 들이쳤다. 제 몸인데도 제 몸 같지 않았다.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거의 기절하다시피 한 수일을 끌어안고 두산은 속력을 다해 쳐올렸다. 이 정도 깊이까지 들어온 적이 있었던가. 순간순간 두산의 고환과 음모가 엉덩이에 닿았고 그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전율이 몰려들었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두산아… 아읏… 나, 죽어….”
쥐어짜듯 겨우 말을 뱉었다. 이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수일은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울 힘도 소리지를 힘도 없었다. 아찔했다. 얼마나 더 두산이 박아 댔는지 기억이 없었다. 끙끙 앓다가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다시 몰아치는 사정감에 허리를 비틀어 난리를 쳤다. 귀두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쪼매만 더, 씨발, 허으!”
“하으으으… 하으, 아윽….”
수일의 입에선 사람 소리가 아니라 짐승이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났다. 미칠 정도로 좋았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고, 근육질의 어깨에 이를 박았다. 자극으로 엉덩이가 절로 펄떡였다.
“씨발!!!”
안이 뜨끈해지며 두산이 사정했다. 두산은 숨을 헐떡이며 수일의 입술을 찾았다. 수일은 정신없이 제 입 안을 탐하는 두산의 혀를 물고 자시고 할 힘조차 없었다. 침을 질질 흘리자 두산이 그걸 핥았다. 두산은 구멍을 몇 번이나 더 드나들었고, 드나들 때마다 구멍 사이로 뜨끈하고 끈적한 것이 빠져나갔다.
“하아, 아….”
“흐… 씨발, 니 개안나?”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좋았지만, 죽을 것 같았다. 좋은데 아팠다. 아픈데 좋았다. 수일이 고갯짓하자 두산의 얼굴에 언뜻 서운한 표정이 비쳤다. 두산은 이마를 콩 찧고 뜨거운 눈으로 수일을 마주 보았다.
“내는 억수로 좋았는데….”
“하… 나도… 좋았어… 힘들어서, 그래.”
수일이 간신히 좋았다고 말하자, 두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땀과 눈물 범벅인 수일의 얼굴을 혀로 쓱쓱 핥아 올렸다. 수일은 내려가고 싶었다. 몸이 아픈 걸 떠나서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도 수일에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 따위 알 턱이 없는 두산은 저 혼자 신나서 수일을 든 채 키스를 했다가 뽀뽀를 했다가 난리였다.
두산은 뽀뽀를 끝내고 수일을 내렸지만, 수일은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수일이 무너지지 않도록 두산은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고 강하게 안았다.
땀에 젖은 흰색 면 티셔츠가 수일의 몸에 살처럼 들러붙었다. 민망해서 셔츠를 잡아당겼지만, 두산이 알아채고 몸을 구부려 셔츠 위로 솟아오른 젖꼭지를 입 안에 넣었다. 쭙쭙 두 번 빨아 당기자 수일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아프고 좋았다. 젖어 미끄러지는 두산의 어깨를 꼭 쥐고 또 쥐었다.
젖꼭지를 희롱하던 두산은 셔츠 밑단을 당겨 위로 올렸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두산을 받았던 음부가 훤히 드러났다. 커다란 손으로 정액이 묻은 아랫배를 쓸고 젖은 음모를 굵은 손가락으로 긁었다. 수일이 허리를 비틀자, 손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애무하듯 쓰다듬었다.
“으음… 하지, 마.”
“좋으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쪽쪽 뽀뽀했다. 수일은 손이 지나갈 때마다 몸을 움찔댔다. 구멍 안도 그랬지만 몸도 예민해져서 공기만 스쳐도 신음이 흘렀다. 두산은 수일의 반응에 흥분되는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수일의 몸을 제 겨드랑이에 끼고 젖은 목덜미를 따라 입을 맞추고 손으론 끊임없이 음부를 희롱했다.
“내 좋아 죽겠다.”
성인 남자 하나를 들고 섹스까지 했으면서, 두산은 진심으로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힘 좋고 어린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수일은 속으로 생각하며 두산에게 몸을 맡겼다. 두산의 입맞춤은 계속되었다. 숨소리가 차분해지자 나른했다. 눈이 감겼다.
그러다 밥 생각이 났다.
“짜장면.”
“씨발, 다 뿔었겠네.”
두산은 서둘러 수일을 의자에 앉혔다.
“배 마이 고프제?”
“응.”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붙은 것 같았다. 티슈 갑에서 티슈를 탁탁 뽑아 제 성기부터 닦은 두산은 수일에게 다가와 수일의 엉덩이 밑으로 크고 두툼한 손을 밀어 넣었다.
“엉덩이 들어바라.”
“힘든데….”
수일은 식탁에 손을 짚고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팔이 덜덜 떨렸다. 두산은 한 손으로 수일의 아랫배를 안고 구멍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구멍에서 제 정액이 빠져나오는 걸 살피며 티슈로 닦아 냈다. 수일은 창피함도 잊고 두산이 뒤처리하게 내버려 두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무젓가락을 쪼개 급히 자장면을 비볐다. 자장면은 불다 못해 저들끼리 들러붙어 펴지지도 않았다. 수일의 손에서 젓가락이 툭 하고 떨어졌다.
“에헤이, 젓가락 들 힘도 없어서 우야노? 기다리바라. 내 비비주께.”
두산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수일을 보며 젓가락을 새로 뜯어 박력 있게 쓱쓱 자장면을 비볐다. 붙어 있던 면발이 먹기 좋게 펴졌다. 수일은 감탄 어린 시선으로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아래가 축축해서 신경 쓰였다. 수일은 살짝 엉덩이를 들었다. 정액이 또 나와 의자를 적셨다.
“두산아, 자꾸 나와.”
말하면서도 민망해 얼굴에 열이 올랐다. 두산은 화장실로 가서 깨끗한 수건을 한 장 가져와 깔아 주었다.
“됐제?”
“응.”
자장면을 마저 다 비빈 두산은 그릇을 수일의 앞에 놓아주었다.
“먹여 주까?”
“아냐, 내가 먹을 거야.”
두산의 손에서 젓가락을 뺏어 들고 수일은 허겁지겁 자장면을 먹었다. 힘이 없어 젓가락이 몇 번이나 식탁 위에 툭 떨어졌다. 두산이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수일은 꿋꿋이 면발을 집었다.
“뿔었제?”
“응. 근데 괜찮아. 맛있어.”
수일이 웃으며 자장면을 입 안에 욱여넣었다. 두산은 손을 뻗어 수일의 입가에 묻은 양념을 제 엄지로 닦아 주고 그걸 빨아 먹었다. 옆자리에 앉아서 수일이 자장면을 삼키길 기다렸다가 탕수육과 팔보채를 번갈아 먹였다.
“너두 먹어.”
“어.”
두산은 수일이 어느 정도 먹자 그제야 짬뽕에 손을 댔다.
“한입 물래?”
“응.”
짬뽕 그릇을 들어 수일의 입에 면을 넣어 주고 국물도 마시게 했다. 서비스로 딸려 온 군만두도 하나 넣어 주었다. 두산은 젓가락질 몇 번에 제 짬뽕을 다 먹고 수일을 가만 보았다. 수일은 아직도 자장면을 해치우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수일은 음식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눈치가 빤한 두산이 자장면 그릇을 가지고 가서 금세 남은 걸 해치우고, 탕수육과 팔보채를 먹었다. 조급한 수일과 달리 두산은 늘 느긋했다.
수일은 웃통을 까고 밥을 먹는 두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에 콩깍지가 꼈는지 오늘따라 두산이 더 멋져 보였다.
몸도 좋고, 힘도 좋고.
수일은 속으로 웃었다.
남은 음식을 모조리 해치웠지만 두산의 배는 여전히 탄탄했다. 그 많은 음식이 어디로 들어갔나 몰랐다. 사이다 한 병까지 마시고 나서야 늦은 점심 겸 저녁이 끝이 났다. 두산은 빈 그릇을 아무렇게나 철가방에 던져 넣었다.
“좀 제대로 넣어.”
“알았다.”
“식탁도 더 깨끗하게 닦구.”
휴지로 대충 식탁을 닦던 두산은 수일의 잔소리에 인상을 썼다.
“내가 해?”
“아이다. 내가 하께.”
두산은 구겼던 인상을 펴고 다시 한번 식탁을 꼼꼼히 닦았다. 시계를 보니 마침 출근 시간이었다. 수일의 시선을 따라 두산도 시계를 보았다.
“오늘 쉴래?”
“아냐. 출근해야지.”
“고마 쉬라. 내 말하께.”
“정말 괜찮아.”
수일은 아래에 감각이 없었지만, 곧 괜찮아지겠지 하고 말았다.
“나 씻을래.”
두산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다 안다는 듯 두산은 망설임 없이 다가와 수일을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수일아.”
“응?”
“우리 매일 이래 하까?”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쳤니? 나 죽어.”
“엄살은.”
두산이 눈을 휘어 웃었다. 수일도 따라 웃었다. 입술을 비비고 쪽 입을 맞췄다. 달콤했다.
***
봉고가 맛이 갔는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두산은 보닛을 열어 이것저것 만지다 제 성에 못 이겨 몇 번 차를 발로 찼다. 하도 씩씩대길래 포기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끈기가 있었다. 운전석 문을 열어 두고 이것저것 만지다 들어와 시동을 걸어 보고 다시 만지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잠깐 사이에 땀에 젖은 두산을 수일은 제가 쓸 수건을 꺼내 닦아 주었다. 두산은 얌전히 얼굴을 들이밀고 앉아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자꾸 뽀뽀하고 키스하려 덤벼들어서 수일은 대충 닦아 주고 말았다. 기운이 없었다. 두산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 그만두면 두산이 아니지. 제 하고 싶은 대로 뽀뽀하고 키스하고 나서야 두산은 운전대를 잡았다. 얄미웠다.
“씨발, 내 차 타고 댕기든가 해야지, 안 되겠네.”
“너 차도 있니?”
“어. 할배가 타던 꼬물차. 아이다. 이참에 한 대 뽑으까? 살림도 차맀는데.”
두산은 ‘살림’이란 단어에 힘을 실으며 은근슬쩍 수일의 표정을 살폈다.
“살림을 차리기는 무슨….”
차를 산다는 건 그냥 해 본 말이려니 했다. 하지만 살림을 차렸다는 말에 수일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조금 전까지 한 몸처럼 붙어 있었으면서, 저 말이 뭐라고 부끄러운지 몰랐다. 수일은 일부러 무심하게 대꾸하며 창문을 내렸다.
우리가 살림을 차린 거구나.
빈말이라도 듣기 좋았다. 수일은 좋은 걸 내색하지 않으려 입술을 말아 물었다. 두산도 제가 말을 해 놓고 쑥스러운지 헛기침을 했다. 옆으로 슬쩍 돌아보자, 두산은 실실 웃고 있었다.
수일은 속으로 웃고 두산은 겉으로 웃었다. 수일과 두산의 차이였다.
두산은 수일의 무대복과 소지품 가방을 직접 들고 나이트 안으로 함께 들어왔다. 수일이 든다고 해도 도무지 손도 못 대게 했다.
“힘들다.”
“괜찮아. 이 정돈 충분히 들어.”
“충분히 들기는. 젓가락 들 힘도 없는 기.”
아까부터 젓가락 얘기로 수일을 놀렸다. 놀리고 저 혼자 재밌다고 낄낄 웃었다.
“웃지 마.”
민망했지만 수일도 웃었다. 건들건들, 뒤로 걷던 커다란 몸이 수일을 향해 다가왔다. 쪽 입을 맞췄다.
“우째 이래 예쁘지?”
다시 쪽 입을 맞췄다. 수일만큼이나 두산도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나 보았다. 수일은 두산의 눈엔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홀 쪽에서 퍽퍽 둔탁한 소리와 고함이 들렸다. 고개를 빼꼼 들이밀자 처음 보는 남자가 손에 야구 방망이를 들고 동생들에게 기합을 주고 있었다. 두산이 인상을 썼다.
“먼저 드가 바라.”
“…응.”
수일은 잠시 머뭇거리다 짐을 받아 대기실로 향했다. 행사를 뛰고 왔는지 무대복 차림의 은아 씨가 있었다.
“수일이 왔나?”
“네. 어디 행사 다녀오셨어요?”
“어. 갱로당 잔치 댕겨 왔다. 거서 용돈도 억수로 마이 받았다 아이가.”
은아 씨의 입이 귀에 걸렸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콜드크림을 잔뜩 묻혀 화장을 닦아 냈다.
“근데 니 목소리가 와 그라노? 감기 들었나?”
“아, 아뇨. 그냥 좀 잠겼어요.”
수일은 두산과의 섹스가 떠올라 목까지 벌게졌다. 은아 씨가 눈치챌까 봐 부산스럽게 무대복을 걸고 소지품 가방을 놓았다. 그러다 대폿집 일이 마음에 걸렸다. 먼저 얘기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치를 보던 수일이 입을 열었다.
“저기, 누님, 새벽에 그렇게 가 버려서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그기 으데 니 잘못이가? 두사이 덕에 그만했기 다행이지.”
좀 전까지 웃던 은아 씨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무슨 놈의 팔자가 이래 남자 복이 없노.”
타령하듯 혼잣말을 하더니 말을 돌렸다. 마스터 얘긴 더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참, 니 홀 봤나?”
“네. 왜 저러는 거예요?”
“와 그라기는? 깡패라꼬 티 내는 기지. 니 오기 전부터 저 지랄이다.”
은아 씨 말에 따르면 홀에서 동생들을 패는 남자는 김병태였다. 강재욱이 데려온 기도로 오성관을 책임질 새 보안 팀장이었다. 그러니까 기도들의 새 대장이었다.
이 후미진 곳에 저런 남자가 왜 필요할까 싶었다. 김병태는 밀레니엄 앞에 서 있던 기도들과 같은 부류였다. 고급스러운 양복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나쁜 기운을 내뿜었다. 오자마자 사람을 못 때려잡아 안달인 걸 보아 성격도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수일은 현철이 안쓰러웠다. 현철인 동생들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않는 순한 남자였는데, 저 남자 밑이라면 앞으로 고달플 게 뻔했다. 숙소에서 함께 생활한 동생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더 그랬다.
화장을 다 지운 은아 씨는 불편한 무대복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서서 분홍색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테이블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렸다. 가방을 뒤집어 털자 구겨진 지폐가 쏟아졌다. 은아 씨는 테이블 위에 천 원 오천 원 만 원, 이렇게 나란히 놓고 침까지 발라 가며 구겨진 걸 펴서 가지런히 정리했다. 동네 경로당 잔치치곤 수입이 제법 좋았다.
“보이제? 내 이래 팁 마이 주는 갱로당은 또 첨이다.”
“누님이 잘하니까 주셨겠죠.”
“머 내 자랑은 아인데, 오늘 쪼매 잘하긴 했다.”
“거봐요.”
은아 씨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수일은 자기가 받은 돈인 양 기분이 좋았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두산이 들어왔다.
“행님, 내 이제 간다.”
“두사이 니는 내는 안 보이나? 인사라도 쫌 해라, 짜슥아.”
“에헤이, 행님한테 인사하고 누님한테도 인사 할라 켔지. 그새를 몬 참나?”
“말은.”
은아 씨가 두산을 흘겨보았다. 둘은 새벽의 일은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행님, 내 쫌 보자. 누야, 수고 하이소.”
“오야. 니도 수고해라.”
수일은 두산을 따라나섰다.
“내 11시에 오께.”
“응.”
“그라고, 영희 글마 신경 쓰지 말고. 그거 별거 아이다.”
“알아서 할게.”
“알아서 몬 하께나 이래 말하지. 또 화장실로 쫓기 났단 소리 들리면 내 영희 그 새끼 족칠끼다. 진짜로 알아서 해라.”
대기실에서 쫓겨난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걸 또 전달한 사람이 있었다.
“인상 피고.”
두꺼운 검지로 수일의 미간 주름을 폈다. 제 딴엔 장난이라고 했겠지만, 손가락 힘이 어찌나 센지 수일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렸다.
“얼른 가기나 해.”
수일은 두산의 손이 지나간 미간을 긁적이며 퉁명스레 말했다.
“내 진짜로 간다. 근데 뭐, 빼묵은 거 읍나?”
“뭐?”
“요거.”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하여간 능글맞은 건 알아줘야 했다. 수일은 뽀뽀 대신 손으로 두산의 입술을 툭 쳤다. 두산이 인상을 팍 쓰며 에헤이, 했다. 수일이 짧게 웃었다. 그리고 발끝을 들어 뽀뽀를 해 주었다. 쪽쪽 두 번 해 주자, 입꼬리가 한껏 치솟더니 두산의 눈이 사라졌다.
“난중에 보자.”
“응.”
수일은 두산의 검은 정장 깃을 한번 만져 주고 가슴을 쓸었다. 두산은 별것도 아닌 수일의 행동에 올라가는 광대를 주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봐?”
“예쁘니까 보지.”
“못 말려 정말.”
수일도 좋으면서 괜히 핀잔을 주었다.
“어서 가. 나도 들어가서 준비해야 해.”
“어. 드가 바라.”
가라고 하면서 누구도 먼저 발을 떼지 않았다. 두산은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수일을 내려다보았고, 수일은 그런 두산의 재킷 끝자락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쪽 뽀뽀를 하고 웃었다.
“두산아, 니 지금 가나?”
현철의 등장에 수일은 얼른 두산의 몸에서 손을 뗐다.
“어. 와 행님?”
“내하고 얘기 쫌 하자.”
“어. 알았다.”
현철을 보고 답하던 두산이 서둘러 수일을 돌아보았다. 큰 손을 들어 수일의 볼을 한번 쓸고 등을 돌렸다.
“참, 수일이 행님, 모레 저녁 개안습니까?”
복도 끝에서 현철이 큰 소리로 물었다. 정애 씨와의 저녁 약속인가 보았다.
“네. 전 괜찮아요.”
수일은 이렇게 답하며 두산을 보았다.
“내도 개안타.”
두산의 말에 수일이 웃었다. 현철은 수일에게 꾸뻑 인사를 하고 두산과 함께 사라졌다. 두산이 사라진 복도로 작고 탄탄한 영희가 나타났다. 영희는 수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대기실로 향했다. 수일이 뒤따랐다.
“사람을 보고도 인사도 안 하고.”
은아 씨가 빈정거렸지만 영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거울 중앙에 놓아둔 은아 씨의 짐을 옆으로 밀고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은아 씨는 눈이 돌아가도록 영희를 노려보다가 수일의 옆자리로 짐을 옮겼다. 수일이야 늘 그랬지만, 여태 할 말 다 하던 은아 씨는 강재욱과의 면담 이후 유독 눈치를 보았다.
“수일이 행님, 지금 리허설인데예?”
키보드 웅이가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다. 시간대가 바뀐 걸 까맣게 잊었던 수일은 지금 가요, 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홀에는 병태라는 남자가 지배인 성룡과 처음 보는 종업원들을 모아 놓고 얘기 중이었다. 아까와 달리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기존에 있던 종업원들 몇 명은 멀리서 이 광경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마스터는 터진 입술에 딱지가 졌고 볼이 부었다. 마스터는 수일을 반갑게 맞았지만, 대폿집에서의 일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수일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
“저기 얘기 중인데 노래 불러도 돼요?”
“곧 끝날 끼다.”
마스터의 말대로 5분쯤 지나자, 다들 일어서서 테이블 중앙으로 손을 모았다. 큰 소리로 ‘화이팅’ 하고 박수를 쳤다. 자기들끼리만 잘해 보자 하는 것 같아 보기가 좀 그랬다. 바로 근처에서 정수와 기존 종업원들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기실에서 밀려난 자기를 보는 듯해서 수일도 씁쓸했다.
마스터가 걱정할 정도로 목이 쉰 수일은 리허설 때 겨우 두 곡만 부르고 내려왔다. 배탈이 났는지 배도 살살 아렸다. 수일은 대기실에 혼자 남아 뜨거운 물로 채운 물병을 배에 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온 은아 씨가 식은땀까지 흘리는 수일에게 자기가 마시려고 가져온 인삼차를 양보했다. 인삼차가 들어가자 한기가 조금 가셨다.
“진짜로 감기 아이가?”
“아니에요. 배탈 났나 봐요”
“으이그, 조심하지. 요새 날씨가 더버서 배앓이 마이 한다 카드라.”
“네.”
은아 씨가 소지품 가방에서 소화제까지 건네주었다. 수일은 배탈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일단 약을 받아먹고 무대복으로 갈아입었다.
10시엔 홀이 거의 비었다. 수일의 노래가 끝났지만, 부끄러울 정도로 박수 소리가 작았다. 그래도 감사하다며 수일은 몇 번을 90도로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식은땀으로 젖은 몸에 한기가 들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쉬고 싶었지만, 오늘도 수일의 짐이 대기실 문 앞에 덩그러니 나와 있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이번만은 화장실로 갈 수가 없었다.
“영희 씨, 문 좀 열어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대기실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더라. 당장 사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수일은 포기하고 짐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혹여나 누가 볼까 봐 밖을 기웃거리면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웠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생기 없는 얼굴은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창백했다. 배탈이 나서 그런 거라고 애써 위로하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곧 두산이 데리러 올 시간이었다. 화장실에 있는 걸 들키면 안 되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근처 슈퍼에라도 나가야 하나 생각하면서 화장실 앞을 서성이는데 현수가 모습을 나타냈다.
“행님, 오랜만입니다.”
까닥 고개를 숙인 현수는 습관처럼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두사이가 일이 있어가지고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아….”
차라리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면 좋았을 걸,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근데 와 거 있습니까?”
현수는 화장실 안에 걸린 수일의 무대복을 보더니 대기실로 가 손잡이를 돌렸다. 당연히 문이 잠겨 있었다.
“여 누가 있는데예?”
“영… 희 씨요.”
“와, 이 씨발년이. 안영희, 니 문 안 여나?”
현수가 문을 차며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영희가 고개를 내밀었다. 현수는 그런 영희의 멱살을 쥐고 바로 주먹을 올렸다. 순식간이었다. 수일이 말리러 달려갔지만 그새 대기실 문이 잠겼다.
“현수 씨! 현수 씨, 문 좀 열어요. 왜 사람을 때려요?”
아무리 두드려도 닫힌 문이 열리지 않았다. 홀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 때문에 대기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려웠다. 발만 동동 구르던 수일은 벽에 몸을 기댔다.
수일은 이래서 깡패들이 싫었다. 무작정 욕을 하고 다짜고짜 사람을 팼다. 아무리 다르다고 자기를 속여 봐야 두산도 저들 중 하나였다. 수일은 아랫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배가 아프다 못해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일었다.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고 현수가 개운한 표정으로 나왔다. 수일을 내려다보는 눈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행님, 어데 안 좋습니까?”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현수가 성큼 다가와 수일의 팔뚝을 잡아 일으켰다. 손등에 핏자국이 너무도 선명했다. 수일의 시선을 따라 제 손등을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에 쓱 닦았다.
현수는 그때처럼 검은 자가용을 몰았다. 조수석에 앉은 수일은 속이 뒤틀려서 팔로 배를 감쌌다. 힐끔 수일을 보던 현수가 입을 열었다.
“내가 두사이한테 깜빡하고 말을 안 했는데예, 그 머시고 안에다 싸고 나면 잘 빼내야 합니다. 안 그라믄 배탈난다.”
현수는 거침없이 말을 뱉었다.
“원래 그렇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요?”
생각보다 더 퉁명스럽게 말이 나갔다. 수일은 그런 자신에게 놀랐다. 그래도 제 걱정을 해 준 건데 너무 삐딱하게 굴었나 싶어 후회스러웠다. 다행히 현수는 히죽 웃기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라디오 좀 켤게요.”
“그라이소.”
문득 이 남자도 그쪽인가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도 잘 안단 말인가?
“저기, 현수 씨도… 그러니까… 남자, 좋아해요?”
궁금해서 물었지만, 기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초조해 주먹을 쥐었다.
“으데예. 이쪽 업소 관리하다보이 빠삭하게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브이아이피만 받아서 아들 관리 억수로 빡시게 한다. 지 몸 관리 몬 하는 아들은 칼같이 짜르고, 아프다 하면 병원 보내고. 다 돈덩어리들 아입니까.”
걱정과 달리 현수는 신나서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술술 풀었다. 현수가 말하는 업소가 밀레니엄은 아닌 것 같았다.
“태욱이 알지예? 글마가 우리 업소 에이습니다.”
현수의 입에서 나온 태욱의 이름에 수일은 눈을 크게 떴다.
“글마 그기 두사이 어찌 함 해볼라꼬 밸지랄을 다 떨었다 아입니까. 오죽하면 두사이 따라 오성관 숙소까지 안 드갔나. 미친 새끼라예.”
현수는 재밌는지 낄낄댔다. 수일은 숙소에서 이질적이던 태욱이 왜 거기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몸 파는 아들한테 조직 문신 절대 안 주거든예. 가오가 있지 안 그렇겠습니까? 근데 태욱이 글마는 싸움도 잘하고 그짓도 잘하고 몬 하는 기 읍따. 머라 카드라, 근성이 있다 근성. 행님은 이런 거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조직 문신 받기가 하늘에서 별따깁니다. 근데, 태욱이 그 새끼가 작년에 받아서 난리 났었다.”
자기가 관리하는 업소 에이스가 조직의 눈에 든 게 뿌듯한가 보았다. 태욱 얘기를 하는 동안 현수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문신도 강 이사님이 우기서 태욱이한테 해주따 아입니까. 높으신 분들이 억수로 반대하는데, 그걸 이사님이 다 설득하대. 와 내 그래 말 잘하는 사람 첨 봤다. 재밌지예?”
현수는 신호 대기에 걸리자 수일의 방향으로 몸까지 틀어 가며 말을 이었다. 수일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욕탕에서 본 태욱의 문신을 떠올렸다. 태욱과 같은 위치에 있던 현수의 것과 강재욱의 팔뚝에 있던 것.
두산에게는 없는 그것. 뱀.
수일은 조직 문신 받기가 까다롭다는 현수의 말을 되뇌다 눈이 번쩍 뜨였다. 두산의 몸엔 문신이 없었다. 그 말인즉 두산이 아직은 완전한 조직 사람이 아니란 소리로 들렸다.
그렇다면 서울로 돌아갈 때 같이 가자고 말이라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산만 허락한다면, 흉흉한 소문으로 듣던 손가락을 내놓거나 보복을 당하지 않아도 조직을 떠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수일의 가슴에 조그만 희망이 솟았다.
의외로 말이 많은 현수는 제가 일하는 업소에 관해 세세하게 떠벌렸지만, 수일은 두산과 함께 서울로 갈 생각에 들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생각만으로도 좋아서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왕이면 두산은 세일즈맨이 되면 좋겠다. 아침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일단 검정고시부터 쳐야겠지만, 두산이라면 금방 합격할 것 같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배앓이가 멈췄다.
지척에 밀레니엄 호텔 간판이 위용을 드러냈다.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일은 두산과 함께 거닐지도 모르는 서울의 밤거리를 상상하며 밀레니엄 앞에 줄을 선 젊은이들을 빠르게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