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81)

혼자 집에 있기 싫었던 수일은 제 무대가 끝나고 은아 씨와 영희의 무대까지 보고 나서야 오성관을 나섰다. 현철이 빨간 프라이드로 새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숙소로 오는 동안 막내 영수의 근황도 듣고 다른 동생들의 얘기도 전해 들었다. 조만간 들르겠다는 말을 하고 수일은 차에서 내렸다.

7층에서 내려 대문을 열려는데 열쇠가 없었다. 수일은 대문 앞에 앉아 등을 기댔다.

머리가 아팠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답답했다. 어떻게 젊은 시절의 강재욱이 떠올랐는지 몰랐다. 닮은 사람이었나? 아니면 서울에서 스쳐 지나갔던가? 아니다. 분명히 만났다. 스쳐 지나간 사이는 아니었다. 그때도 강재욱이 이런 곳에 몸담은 조폭이었다면 서울이라고 못 올까 싶기도 했다.

수일은 자신이 일했던 모든 나이트를 기억하지 못했다. 한창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을 시절엔 하루에 겨우 2, 3시간을 잤었다. 그때 만났더라면 강재욱이 아니라 대통령을 봤어도 기억하지 못했을 터였다.

호스트 시절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남자접대부 장사를 하던 술집은 수일이 일하던 곳이 유일했다. 종업원들은 숫자가 적어 기억 못 할 리 없었고, 손님도 여자 손님만 받았으므로 손님일 리도 없었다. 여사장의 지인이었던가?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 이후인가? 수일은 여전히 남은 빚을 갚기 위해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했고 불러 주는 곳이면 어디든 전국 팔도를 떠돌았다. 당시엔 가수 윤수일의 인기가 높아져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이름인 윤창준으로 활동했었다. 그 무렵에 봤을 가능성도 있었다.

수일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앞뒤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젊은 강재욱의 얼굴이 보였고, 느낌으로 분명 만났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모창 가수 윤슈일로 활동하기 전이란 거였다. 모창 가수로 전향한 지 만 5년, 햇수로는 7년이었으니까 시간 범위는 1980년부터 1988년 사이였다. 당장 어제 일도 기억 안 나는 판에 기간까지 너무 길었다. 수일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리 쥐어짜 봐야 다른 단서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수일은 생각해 내기를 포기했다. 강재욱도 수일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니 아마도 중요한 만남이 아니었겠지. 그러니 이렇게 기억이 안 나는 거겠지 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마냥 앉아 두산을 기다리기 싫어 수일은 몸을 일으켰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가 밀레니엄이었고 그곳에 두산이 있었다. 수일은 무대복과 소지품을 대문 앞에 두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오성관과 달리 밀레니엄이 있는 거리는 술집마다 불야성을 이루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무리가 호프집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고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팔짱으로 끼고 수일 곁을 스쳐 갔다. 길거리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말소리로 시끄러웠다. 그들에게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10층짜리 호텔을 끼고 있는 밀레니엄은 세련된 건물 지하에 자리했다. 수일은 위를 한번 올려다보고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입구에는 비싸 보이는 양복을 입은 덩치 둘이 여자들의 얼굴을 보고 안으로 들일지 말지 결정하고 있었다. 저들보다 계급이 낮아 보이는 나머지 둘은 입구 주위를 둘러보거나 줄을 제대로 세우거나 했다.

남자들은 차려입기만 하면 다 들어갔고, 여자들만 얼굴을 따졌다. 두산에게 듣긴 했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 신기해 수일은 저도 모르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뭘 보노, 씨발놈아.”

덩치 중 하나가 수일에게 욕을 했다. 수일은 바로 눈을 깔았다.

구경도 못 하냐.

속으로 구시렁대고 지나가는 행인인 양 밀레니엄 입구를 지나쳤다.

성인 나이트에서만 일했던 수일은 어린 남녀들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모습에 주눅이 들어,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를 맴돌기만 했다. 덩치들의 분위기도 달랐다. 두산을 불러 달랬다가는 저 덩치들에게 들려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 같았다. 오성관을 지키는 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나쁜 기운이 풍겼다. 물론 순전히 수일의 생각이었다. 저들은 손님들과 말을 섞고 잘 웃었다. 수일에게만 욕을 했다.

멀리서 기웃기웃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입구에서 튀어나왔다.

덩치들과 잠깐 수다를 떨고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까와 같은 검은 정장 차림으로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 섰다. 그림자 진 얼굴이 조금 수척해 보였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습관처럼 큰 손을 들어 담배를 가리고 라이터를 켰다.

입에서 늘 박하 맛이나 민트 맛이 나서 골초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담배 태우는 모양새가 딱 골초였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담배를 쥐고 양 볼이 쏙 들어가도록 빨았다가 후 하고 뱉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주위만 적막감이 감돌았다.

수일은 알은체를 하려다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슬쩍 뒤를 돌았다.

“니 내 감시하나?”

언제 봤는지 두산이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수일은 입을 실룩거리며 몸을 돌렸다.

“아냐, 그런 거.”

괜히 민망해 얼굴을 붉혔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머라꼬? 내 감시하고 있었다꼬??”

“아니라고!”

수일이 버럭 소리쳤다. 두산은 어느새 수일의 바로 앞에 섰다.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내 보고 싶어서 왔나?”

목소리가 다정했다. 그림자 졌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응.”

열쇠도 없고 혼자 있기 싫어서 나왔다고 하면 실망할까 봐 수일은 그렇다고 답했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바로 나오께. 5분만 기다리라.”

“응.”

두산이 큰 보폭으로 뛰다시피 걸어 크고 화려한 밀레니엄의 입구로 사라졌다. 수일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웃었다. 조금 전 담배를 피울 땐 멋있어 보였는데 저러니 또 어린애 같았다. 5분이 되기 전에 두산이 나타나 다짜고짜 수일의 어깨를 감쌌다.

둘은 집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더 일찍 나올라 켔는데 할 일이 있어서 몬 나왔다.”

“괜찮아. 나도 조금 전에 왔어.”

“여까지 왔는데 와 밖에 서 있었노?”

“그냥….”

“담부턴 내 이름 대고 들어 온나.”

“응.”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수일은 자신이 밀레니엄 안으로 들어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같은 밤무대 가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숙소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두산이 입을 맞춰 왔다. 혀에서 박하 맛이 났다. 입술을 잡아 무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 번씩 빨아올릴 때마다 입에서 으음, 하고 신음이 흘렀다. 아파서 인상을 쓰다가도 짜릿하고 자극적인 감각에 몸이 움찔댔다.

엘리베이터에 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수일의 입술과 혀를 물고 빨던 두산은 당장 섹스라도 할 기세였다. 발기한 바지 앞섶이 닿았다.

“집에 가서 해.”

수일이 간신히 고개를 비틀었다.

“내가 짐승이가. 당연히 집에 가서 해야지.”

두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입술을 물었다. 수일이 웃었다. 집에 들어갈 생각이나 있는지 몰랐다. 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내렸다. 두산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려다 수일의 무대복과 짐 가방을 보았다.

“내일 대문 열쇠 하나 복사해 줘.”

“머할라꼬. 내가 다 델꼬 다닐 낀데.”

“언제는 집에 먼저 가서 기다리라며?”

“생각해 보이까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 고마 내한테 온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수일이 두산을 흘겨보았다.

두산은 수일의 소지품을 한 손에 챙겨 들고 대문을 닫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체인을 집더니 손잡이에 걸었다. 현관 열쇠가 없으니 이 정도 방범은 해야 하나 싶었다. 수일은 자물쇠를 잠그는 두산을 보고 먼저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옆집엔 사람들 안 사니?”

“어. 원래 살았는데 다 이사 갔다.”

“왜?”

“내도 그건 모르지.”

“건달들 산다고 소문난 거 아냐?”

“뭐 그랄 수도 있고.”

남의 건물이라고 두산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까웠다. 이런 노른자 땅에 집 두 개를 비워 두다니 건물주에겐 큰 손실일 것 같았다. 수일이라면 두산을 내쫓고 모든 방에 세입자를 들였겠지만, 이렇게 가만있는 걸 보면 백사파에서 섭섭지 않게 돈을 쳐주고 있을지도 몰랐다.

집은 여전히 생활감이 없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온기 같은 게 있었다.

“나 먼저 씻으께.”

두산은 언제부터 벗고 있었는지 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알몸이었다. 근육질의 몸으로 성큼성큼 걸어 욕실로 향했다.

“붕대 조심해. 거기 젖어 있으면 나 안 할 거야.”

수일이 등 뒤에 대고 소리쳤지만 대답 없이 문이 닫혔다. 잠시 후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수일은 옷장에 무대복을 넣어 두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져온 추리닝을 입기에 조금 더워서, 목이 늘어난 반팔 티에 팬티만 입었다.

부엌 식탁에 앉아 다시 필요한 물건 목록을 적었다. 첫 번째가 오디오 카세트였다. TV보단 라디오를 듣고 음악을 듣는 게 더 좋았다. 두 번째는 쌀이었고, 세 번째는 압력 밥솥이었다. 보온밥통도 있으면 좋겠지만, 밥은 그때그때 지어 먹는 게 맛있었다. 라면도 적었다. 싫었지만, 그래도 급할 땐 이만한 게 없었다.

이것저것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 나가는데 쿵쿵 발소리가 들렸다. 샤워를 끝낸 두산이 수일의 앞에 섰다.

“바라. 내 붕대 안 젖었다.”

제 복부를 내밀며 와서 수일에게 검사를 맡았다. 발기한 성기가 까딱까딱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야를 가렸다. 올려다보니 표정도 비장했다. 수일은 피식 웃고는 손을 뻗어 붕대를 만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수일의 칭찬에 두산이 웃었다.

“상 안 주나?”

그러면서 수일의 앞으로 배를 더 들이밀었다. 수일은 옅은 미소를 띠고 의자에 앉은 채로 두산의 성기를 혀로 핥았다.

“흡!”

두산의 탄탄한 허벅지 근육이 움찔했다.

“상이야.”

수일은 발기한 것을 한 손으로 쥐고 고개를 숙여 고환을 입 안에 넣었다. 한 알을 넣고 우물거리다 나머지 한 알을 또 넣었다. 두산의 큰 손이 수일의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왔다. 수일은 뿌리부터 귀두까지 혀를 쭉 빼고 핥아 올리다가, 투명한 액체를 하염없이 흘리는 귀두를 혓바닥으로 살살 돌렸다.

“으흑! 씨발!”

수일의 머리카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몇 번을 더 혓바닥으로 눌러 핥다가 대가리를 입에 넣었다. 입 안 가득 차는 그 압박감에 수일은 흥분되었다. 이렇게 크고 단단한 것이 온전히 제 것이었다. 수일은 고개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최대한 깊숙이 목구멍 가까이 넣었다가 뺐다.

“수일이 니가 빨아, 흣, 주는 기 제일 좋다.”

두산은 신음을 뱉으며, 연신 수일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엔 사정시킬 요량으로 수일은 턱이 아파도 멈추지 않았다. 두산도 끝까지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수일의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떨어져 발가락 새가 젖었다. 한참을 빨아 주다가 자지를 빼내고 혀로 귀두를 눌러 핥기 시작했다. 절정에 다다른 두산의 아랫배가 심하게 요동쳤다.

“씨발!”

오랜만에 두산은 수일의 입 안에 사정했다. 사정의 여파로 두산의 허벅지 근육들이 난리를 쳤다. 수일은 진정시키듯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끈끈하고 흰 점액질의 액체가 많이도 나왔다.

두산은 숨을 헐떡이며 제 정액을 받아 삼키는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입 안에서 자지를 빼내자, 턱을 들어 자기를 보게 했다. 엄지로 젖은 입가를 쓸고 입술을 살살 만져 댔다.

“맛있나?”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산이 열기 가득한 눈빛으로 수일을 보았다. 수척해진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엄지는 수일의 벌어진 입을 헤집고 들어와 잇몸과 이를 훑고 혀를 눌렀다. 수일은 커다란 두산의 엄지를 입으로 쪽 소리가 나게 빨고 놓았다. 다시 엄지가 들어왔다. 이번엔 두산을 보며 조금 더 오래 빨았다. 두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내 백 살까지 이거는 안 굶길 자신 있다.”

수일의 입 안에 든 제 정액을 훑으며 두산이 말했다. 수일이 웃었다.

“와? 내 진짜로 자신 있는데.”

“백 살에 어떻게 발기가 되니?”

“내는 된다.”

“살아 보지도 않았으면서.”

“보면 모르나? 당연히 되지.”

박박 우기며 반쯤 선 것을 수일의 앞에 흔들어 댔다.

“알았어요. 얼른 침대에 가 있어. 씻고 갈게.”

자리에서 일어난 수일은 두산의 가슴을 찰싹 때렸다. 두산이 수일의 앞을 막고 서서 엉덩이를 거머쥐었다.

“내 여도 안 굶길 자신 있는데.”

능글맞게 웃으며 엉덩이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우, 징그러.”

“좋으면서.”

“침대나 가 계세요.”

“알았다. 퍼뜩 씻고 온나.”

“응.”

두산은 수일에게 입을 맞추고 엉덩이를 놓았다. 수일은 침실로 향하는 근사한 몸매를 훑으며 침을 꼴깍 삼켰다. 백 살은커녕 중년이 된 두산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저런 몸을 가진 중년이라면 왠지 멋질 것 같았다.

샤워 후 방으로 들어가자 두산은 등 뒤에 쿠션을 여러 개 놓고 반쯤 상체를 일으킨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엔 꽃향기가 나는 오일 병도 두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바로 긴 팔을 뻗어 수일의 허리를 안았다.

“백두산.”

“와?”

“이번에 하다가 상처 터지면 다 나을 때까지 안 할 거야. 알아서 해.”

수일의 협박을 듣기는 했는지, 두산은 제 쪽으로 수일을 당겨 올렸다. 허벅지에 앉히고 키스부터 했다. 닿은 허벅지가 뜨거웠다. 늘 이렇게 몸이 뜨거운데 덥지 않나 몰랐다. 키스는 부드럽다가도 거칠었다. 타액을 섞으며 장난치듯 입 안을 희롱했다.

“니는 우째 이래 예쁘노.”

이마를 맞대고 두산이 말했다.

마음이 달라져서 그런지 수일도 두산의 얼굴이 멋져 보였다. 날카로운 눈매도 뱀이 아니라 표범같이 느껴졌다. 수일은 두산의 표범 같은 눈에 입을 맞췄다. 두산이 입꼬리를 올렸다. 코는 또 어찌나 잘생겨 보이는지, 남자다운 코끝에도 입을 맞췄다.

“니 머하노?”

두산의 목소리에 웃음이 뱄다. 수일은 가장 좋아하는 두산의 시원한 입꼬리 양쪽에 쪽쪽 입을 맞췄다. 웃을 때마다 커다란 입매가 올라가 소년같이 느껴졌다. 윗입술보다 두툼한 아랫입술은 폭신하고 육감적이었다. 침에 젖어 붉어진 입술을 수일이 입 안에 머금고 빨아올렸다.

그리고 다시 두산의 얼굴을 보았다. 보기만 해도 이렇게 좋은 걸 다시는 못 볼 뻔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산아.”

“어?”

“나 이제 안 도망갈게. 니 옆에 꼭 붙어 있을게.”

수일의 다짐에 두산은 급히 입을 맞춰 왔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고개를 틀어 입술을 꽉 맞추고 빈틈없이 서로의 숨을 앗았다. 탐욕스럽게 상대의 입술과 혀를 빨았다. 숨이 차서 헐떡이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했다. 흡입하듯 빨아 대고 타액이 섞이면서 내는 젖은 소리가 음란하기보다 애틋했다.

떨어지기 싫은지 두산은 수일의 얼굴을 봤다가 키스하기를 반복했다.

“내 진짜로 잘하께.”

“응.”

두산이 잘못해서 수일이 도망간 것도 아닌데 두산은 자기가 더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맙고 든든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수일의 마음 한편에 똬리를 틀었다.

강재욱의 말 때문은 아니었다. 누굴 믿든 그건 수일이 결정할 일이었고 이미 두산을 믿기로 했으므로 그 말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기억나지 않는 과거가 자신을 옭아맬까 그게 두려웠다. 그 기억이 별거 아니기를, 그저 노파심이기를 수일은 바랐다.

두산의 혀가 어깨를 간지럽혔다. 혀의 느낌에 수일은 현실로 돌아왔다.

어깨를 간지럽히던 입술이 떨어지고 향긋한 꽃향기가 퍼졌다. 오일을 잔뜩 머금은 손이 수일의 아래로 들어왔다. 수일은 허리를 세우고 두산의 어깨에 턱을 괬다. 두산은 몇 번 했다고 제법 능숙하게 수일의 구멍을 풀었다. 구멍에 손가락을 넣기 전엔 꼭 귀를 애무했다. 수일은 성감대를 자극당하자 불편한 손가락의 감촉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점막을 훑었다.

“흣.”

수일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몇 번 더 드나들던 손가락이 편해지자, 이제 해도 될 것 같았다.

“엎드릴까?”

“아이다.”

두산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니 옆으로 함 누 바라.”

했다.

“옆으루?”

“어.”

수일은 두산을 보며 모로 누웠다. 두산이 피식 웃었다.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뒤로 보고 누야지.”

“아.”

뭘 하려는지 이제야 감이 잡힌 수일은 방향을 틀어 두산을 등지고 옆으로 누웠다. 곧 두산이 수일의 등에 제 가슴을 바짝 붙였다. 두산의 팔 하나가 수일의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와 상체를 단단히 안았다. 다른 손은 수일의 허벅지를 잡아 들었다. 개가 오줌을 누는 자세가 된 수일은 혼자 얼굴이 벌게졌다.

두산이 그 자세로 제 음부를 수일의 구멍에 바짝 붙였다. 아무리 바짝 섰다 해도 좁은 구멍으론 쉽게 들어가지 않아서, 두산이 다리를 놓았다. 먼저 구멍에 억지로 대가리를 밀어 넣고 다시 수일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몸이 더 들어오더니 거칠고 숱 많은 음모가 수일의 엉덩이에 느껴졌다.

두산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그 커다란 것이 밀려 들어오자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시작은 언제나 불쾌했다.

“으으….”

수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불쾌한 기분과 부끄러운 자세가 조금 걸렸지만, 이 자세가 의외로 좋았다. 두산이 뜨거운 숨을 내쉬며 수일의 귓불을 살짝 물었다. 아래는 천천히 들어왔다 나갔다 했고, 두산의 입술과 촉촉한 혀가 수일의 귀를 애무했다.

“하아.”

온몸이 달아올랐다. 입 안 가득 귀를 물고 빨던 두산의 혀가 귀를 타고 목덜미로 내려왔다. 수일은 제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와 있는 두산의 팔을 꼭 쥐었다. 두산이 움직일 때마다 까끌까끌한 음모가 수일의 엉덩이를 쓸었다. 두산은 단순히 삽입만 하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살살 성기를 돌렸다.

“아….”

입에서 뜻 모를 신음이 흘렀다. 귓가에 두산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여 좋나?”

“응. 좋아.”

두산은 다시 성기를 느리게 돌렸다. 어딘가 자극을 받자 수일의 입에서 다시 신음이 터졌다.

“아!”

수일의 얼굴을 보려고 그러는 건지 두산이 수일의 상체를 자기 쪽으로 더 당겨 안았다. 수일은 팔을 뒤로 돌려 두산의 엉덩이를 꼭 쥐었다. 두산이 덮치듯 수일에게 키스했다. 아래의 움직임이 조금 빨라졌다.

“하읏!! 두산아, 좋아.”

“씨발, 내도, 좋다.”

“아윽!”

“수일아, 흡, 내 들어간 거 보이나?”

두산의 말에 수일은 제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들린 다리 사이로 두산의 거대한 것이 드나드는 게 너무 잘 보였다. 저렇게 음란할 줄은 몰랐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여, 하고 말해 주었다. 수일은 제 자지를 손으로 만지작댔다. 좋아 미칠 것 같았다. 저것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에 수일은 밭은 숨을 내쉬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 아으, 흑!”

온몸이 감전된 듯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두산은 숨소리가 거칠어지다 못해 헉헉대며 힘들어했다. 두산이 상체를 거의 덮쳐 안고 수일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수일은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몸이 떨리다 못해 경련이 일었다.

“수일아, 씨발, 이거 니끼다.”

“아아. 죽을 것 같애. 두산아….”

“다 니끼다.”

두산은 다시 허리를 쳐올렸다. 수일은 흐느꼈다. 그러다 제 아랫배가 이상하게 꿈틀거리는 걸 알아차렸다. 두산이 드나들 때마다 아랫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 마치 속에 생명체라도 든 양 아랫배가 끊임없이 요동쳤다. 수일이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두산이 수일의 귀를 입 안에 가뒀다.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수일은 고통과 쾌락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몸을 떨었다. 울었다. 절정에 다다르자 수일의 성기는 손만 살짝 갖다 댔는데도 정액을 쏟아 냈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 대자 두산이 안았던 팔에 힘을 주었다. 수일은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숨을 몰아쉬었다.

“하으, 하아, 하….”

이제 두산의 차례였다. 수일은 벌써 지쳤다. 힘들어서 그만했으면 싶었지만, 자기만 좋을 순 없었다. 두산은 수일이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일은 다시 찾아드는 찌릿한 쾌감에 비명을 질렀다. 두산이 괴로운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수일은 두산의 엉덩이를 더 세게 쥐었다. 손톱을 박았다. 수일의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전율에 몸부림치다, 머리가 하얘질 즈음 안으로 뜨거운 것이 퍼졌다.

“으흡! 씨발!!”

등 뒤로 두산의 몸이 펄떡이는 게 느껴졌다.

“허억.”

숨을 몰아쉬며, 남은 정액을 쏟아 내려 다시 안으로 침범했다 나갔다. 수일은 지쳐서 축 늘어진 채 두산의 자지를 받았다. 입에서 침이 흘렀다. 땀으로 범벅이 된 다리 사이로 아직도 두산의 자지가 들어와 있는 게 보였다. 검붉고 핏줄이 불거진 거대한 것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제 몸에 똬리를 틀려고 들어오는 거대한 뱀 같아 보여 수일은 눈을 감았다.

두산은 수일의 어깨선을 따라 입을 맞추고 등에도 입을 맞췄다.

“수고했다.”

다정하게 말해 주고 수일의 몸에서 성기를 빼냈다.

뜨끈한 것이 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마 두산은 수일의 몸에서 나오는 제 정액을 보고 있을 터였다. 들었던 수일의 한쪽 다리를 놓아주더니, 수일의 몸을 돌려 자기를 보게 했다.

사정을 끝내고도 여전히 발정 난 눈을 했다. 수일에게 입을 맞추고 키스했다. 여전히 숨이 차서 헐떡이는 수일과 달리 두산은 평온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큰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너도 좋았니?”

두산의 눈을 마주 보고 물었다. 자기만 좋았을까 봐 수일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당연하지. 내 억수로 좋았다.”

두산은 입을 맞추고 진짜로 좋았다, 했다. 쪽쪽 소리가 나도록 수일의 온 얼굴을 돌아다니며 뽀뽀했다. 수일이 간지러워 웃었다.

수일은 두산의 가슴에 안겼다. 나른한 온기에 가슴이 뭉글뭉글했다. 손으로 가슴을 쓸다가 붕대를 체크했다. 피가 난 흔적은 없었다. 안심했다. 두산도 누군가를 찔렀을까?

“두산아.”

“어?”

“너도 사람 찔렀어?”

“으데. 내 칼 안 쓴다. 말로 하자케서 갔드만은 저짝에서 칼을 준비해따 아이가.”

두산은 분한 듯 보였다. 말로 하재 놓고 칼을 준비한 저쪽은 누굴까?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다음번엔 운이 안 좋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두산이 누굴 찌르는 건 원하지 않으나 이렇게 찔리는 것도 싫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 몸조심 하께.”

“응.”

두산이 수일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정신이 말짱했다. 수일과 달리 두산은 잠이 오는지 숨소리가 조금씩 옅어졌다.

“두산아.”

“어?”

“자?”

“으데. 안 잔다.”

분명 잠든 것 같았는데, 아니라고 거짓말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수일은 두산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안정감에 마음이 평온했다. 이렇게 늘어져 하루고 이틀이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아까는 그렇게 기억해 내고 싶더니 지금은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으면 했다.

“나 기억력이 나쁜가 봐.”

“개안타. 나이 들면 다 그렇지.”

아니라고는 못 해 줄망정. 수일은 두산이 얄미워서 입술을 꼬집었다.

“아야. 니 억수로 폭력적인 거 아나?”

“몰라. 나이 들어서 기억 안 나.”

“에헤이, 그걸로 또 삐낐나? 이리 온나.”

두산이 혀를 쯧쯧 찼다. 그리고 수일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눌러서 제 가슴에 다시 붙였다.

“자자.”

“나 잠 안 와.”

“온다.”

“안 온대두?”

“온다.”

고개를 들려는 걸 억지로 눌러 제 가슴에서 못 떨어지게 했다. 수일은 몇 번 시도하다 어차피 힘으론 안 되니 포기하고 그냥 누웠다. 억지로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거짓말처럼 졸음이 몰려왔다.

두산이 먼저 잠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았다. 안쓰럽고 미안했다.

“잘 자.”

“그래.”

수일은 두산의 가슴을 일정한 박자로 토닥였다. 속으로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두산의 숨소리가 옅어졌고, 수일의 정신도 아득해졌다.

하루하루가 오늘만 같았으면.

수일은 두산을 꼭 끌어안았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옆이 비어 있었다. 수일은 두산의 자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고개를 뉘었다. 은은한 세제 냄새가 나는 이불과 부드러운 시트, 오일의 꽃 향까지 더해져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한참을 침대에서 미루적거리다 수일은 끙, 하고 몸을 일으켰다. 생각지도 못하게 몸 안에 든 정액이 쏟아져 나와 당황했다. 관계 후 두산이 손가락으로 빼내 주었는데도 남아 있었나 보았다. 어기적대며 일어나 화장지로 허벅지를 타고 내려온 것을 닦고 밤의 흔적이 가득한 하얀 시트를 끄집어냈다. 세탁기에 속옷과 함께 넣어 돌린 뒤 물을 한 잔 마셨다.

가만 보니 두산의 옷은 하나도 없었다. 수일은 고개를 갸웃하고 잠시 생각하다 말았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회색 추리닝 바지를 걸치고 집을 휘 둘러보았다. 식탁 위에 수일이 적어 둔 메모지가 사라진 걸 보니 두산이 가져간 모양이었다.

“하여간 체력도 좋아요.”

시장에 같이 가면 좋으련만 했던 짓이 있어 당분간 그 얘긴 하지 않기로 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집 안의 창이란 창은 모두 열었다. 아깝지만 새 수건을 가위로 잘라 걸레 2개를 만들었다. 소지품 가방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 잘린 부위가 풀어지지 않도록 바느질했다.

한낮이라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바깥 소음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지 ‘김 대리’ 하고 누가 큰 소리로 불렀다. 수일은 자기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지금은 대리일까 아니면 과장일까 궁금했다. 그는 일반 직장인들의 직급 체계를 잘 몰랐다. TV 드라마를 보면 젊은데 높은 직책을 맡은 사람도 있어 더 헷갈렸다.

수일은 양복을 맞춰 입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출퇴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윤 대리 아니면 윤 과장, 누군가 자기를 그렇게 불렀겠지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인 두산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원 버스에서 큰 소리로 ‘씨발’ 하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수일은 혼자 키득댔다. 그래도 두산은 사교성이 뛰어나고 말주변도 좋아서 깡패가 되지 않았다면 근사한 세일즈맨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바느질을 끝내고 수건을 물에 적셨다. 거실부터 걸레질을 했다. 제아무리 짐이 적어도 먼지는 피해 가지 못하는 법이다. 거실과 안방, 옷방 그리고 빈방까지 모두 닦았다. 이게 뭐라고 낡은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집을 보자 뿌듯했다. 얹혀사는 집인데도 자기 집인 양 기분이 좋았다. 수일은 집 안을 둘러보다가 베란다를 빼먹은 걸 알고 다시 걸레를 쥐었다. 그사이 빨래도 끝났지만, 건조대가 없어 걸어 둘 데가 마땅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거실 한가운데에 식탁 의자 네 개를 사각형으로 놓고 그 위에 시트를 펼쳤다.

그렇게 청소와 빨래를 다 끝내고 샤워까지 마치자 안 그래도 없던 기운이 쏙 빠졌다. 배가 고팠다. 또 저를 까먹은 건 아니겠지, 메모지까지 들고 갔으니 뭔가를 사 오겠지. 수일은 소파에 모로 누워 리모컨을 눌렀다. 공중파 방송은 모두 끝나서 유선 방송에서 나오는 드라마를 틀어 두었다.

평온했다. 집 걱정 먹을 걱정 안 해도 되니 이것만으로도 어찌나 풍요로운지 몰랐다. 다들 이러고 살까. 자기만 전전긍긍 살았던 걸까 싶어서 못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우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누군가에게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어 주기는커녕 좋은 애인조차 되지 못했던 수일은 지금도 두산에게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나이만 먹고 돈도 없는 저를 두산이 왜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몰랐다. 줄 게 몸뚱이 하나밖에 없지만, 수일이 보기엔 이 몸뚱이도 영 시원찮아 보였다.

티셔츠를 들어 올리자 두산이 남긴 흔적이 가득했다. 마르고 납작한 배 위로 불뚝 튀어나온 골반에 갈비뼈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 몸이지만 흉했다. 수일은 다시 셔츠를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좋아하는 두산은 정상이 아니었다. 두산이 정도면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아니 태욱도 맞아 가면서까지 좋다 하는 걸 봐선 남자라고 줄을 안 설까 싶었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자길까. 서울말을 써서 그런가. 부산에 서울 사람이 한둘이려고.

그러다 수일은 깜빡 잠이 들었다.

지긋이 미간을 누르는 압박에 눈을 떴다. 두산이 쪼그리고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쪽, 미간에 입을 맞추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잠이 덜 깬 수일은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두산이 개처럼 냄새를 맡게 내버려 두었다.

“나 배고파.”

두산이 웃었다.

“밥 묵자. 내 돈까스랑 비빔국수 사 왔다.”

“응.”

수일은 두산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청소했나?”

“응. 깨끗하지?”

“내 시키지. 힘도 없는 기. 니는 이런 데 힘쓰지 마라.”

투덜투덜, 수일이 청소한 게 마음이 안 드는지 두산은 포장해 온 음식을 식탁 위에 풀면서도 잔소리를 했다.

“빨래는 머하러 했노?”

두산은 식탁 의자에 널어 둔 시트를 걷어 베란다로 가져갔다. 가만 보니 천장에 건조대가 달려 있었다. 레버를 돌려 건조대를 내리고 그쪽으로 시트를 옮겨 널었다. 수일은 처음 본 건조대에 감탄하며 두산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힘은 내가 쓰께.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잠이나 자라.”

의자를 옮기면서 두산이 투덜거렸다. 칭찬을 바란 건 아니지만, 계속 뭐라고 하니 기분이 좀 상했다.

“내가 하기 전에 해 놓든가 그럼….”

아주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대며 수일은 식탁에 앉아 나무젓가락을 들었다.

돈가스와 비빔국수를 각자 하나씩 두고 먹었다. 두산이 비빔국수를 조각 난 돈가스에 돌돌 말아 먹는 걸 보고 수일도 따라 먹었다. 이제 갓 튀겼는지 고기도 튀김도 바삭바삭했다. 소스는 달짝지근해 매운 양념과 조화가 잘 되었다. 맛있는 게 들어가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맛있제?”

“응.”

밥을 먹고 함께 이를 닦았다. 치약 거품을 물고 뽀뽀하다가 마주 보고 웃었다. 가슴이 간질간질, 뱃속이 간질간질했다. 두산도 저와 같을까.

수일은 손을 잡고 병원을 가면서 두산도 저처럼 간질거릴까 궁금했다. 아닐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일로 기뻐하는 건 자기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수일에겐 흔치 않은 일들이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에겐 흔한 일일 때가 많았다.

거울 조각이 깊게 박혔던 한두 곳을 제외하고 수일의 상처는 잘 아물어 딱지가 졌다. 무심결에 딱지를 뗄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며 소독을 하던 간호사가 일렀다. 두산은 따로 배와 손을 치료받았다. 그는 수일에게 제 상처를 도무지 보여 주지 않았지만, 들리는 말로는 회복이 무척 빠르다고 했다. 의사가 감탄하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진료실 밖에서도 잘 들렸다.

치료가 끝났으면 상의는 입고 나올 것이지. 두산은 다른 상처는 꽁꽁 싸매면서 여관에서 자해해서 생긴, 심장 부근의 상처는 꼭 보여 주었다. 당시의 느낌과 달리 정말 스친 수준이어서 붉은 기만 남고 흉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꼭 손으로 짚어 가며 그날의 일을 상기시켰다. 하여간 애가 좀 못됐다.

못됐다 하고 무시하면 그만이거늘 수일은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까지 저를 찾으러 오게 만든 게 미안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커다란 손이 다가와 머리를 찍 눌렀다.

“하지 마. 무거워.”

“놀러 가자.”

“어디?”

“바람 쐬러.”

휴가철도 아니고 평일 낮이라 해수욕장은 한산했다. 그냥 모래사장이나 걷다 가면 될 걸 두산은 굳이 돈을 주고 파라솔에 선베드까지 빌렸다. 수일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고 맥주를 사러 가 버렸다.

수일은 툴툴대며 선베드에 누웠다. 솔직히 좋았다. 그늘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좋은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좋았다. 마침 두산이 시원한 맥주 캔을 따서 내밀었다. 헤벌쭉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방학을 맞아 놀러 온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녔다. 부러운 마음에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다가 두산에게 혼이 났다.

“니는 와 내 안 보노?”

“아니, 그게 니가 옆에 있으니까.”

“씨발, 그라믄 니 앞에 앉아삔다.”

“알았어. 너 보면 될 거 아냐.”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두산이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는 바람에 수일은 꼼지락대며 억지로 자세를 바꿨다. 두산의 뒤로 그때 갔던 고급 호텔과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멀리 그 호텔을 보자 혼자 해변을 헤맸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던 날이라 만감이 교차했다. 저 비싼 호텔을 기쁜 마음으로 추억하지 못하는 게 조금 억울했다. 두산이 저를 버리고 간 줄 알고 얼마나 서운했었는지 몰랐다.

그 남자에게 맞지만 않았어도 기억을 잃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잠깐뿐이라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론 정신도 멀쩡하고 아픈 곳도 없었다.

사실 수일은 언제부터 자기가 기억을 잃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기는 일이야 가끔 있었지만, 명확히 기억을 잃었다고 자각하는 건 그날처럼 심하게 맞았을 때뿐이었다. 뼈가 부러질 만큼 맞은 적이 다섯 번 정도 되었는데, 그때마다 발작처럼 기억을 잃었다.

그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을 잡을 수도 없었다. 수일은 자기 탓만 하기 바빴다.

생각보다 많이 맞고 살았구나, 수일은 혼자 웃었다.

“딴생각하지 마라.”

두산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두산은 뱁새눈을 하고 씩씩거렸다.

“딴생각은 무슨….”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수일은 누웠던 몸을 일으켜 두산을 향해 앉았다. 두산도 일어나 수일을 마주 보았다. 마주 보고 웃어 주자 두산이 못 이기는 척 따라 웃었다.

수일에겐 자기를 보라며 화까지 냈으면서, 두산은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지나가면 아주 대놓고 고개를 돌렸다. 발로 두산의 정강이를 툭툭 건드리며 시비를 걸었다.

“왜, 가서 전화번호라도 물어보시지?”

“갈매기 봤다.”

“그 갈매긴 니 눈에만 보이니?”

“진짜다. 갈매기. 요래 요래 생긴 거.”

여자 가슴 모양을 손으로 그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변태. 저질.”

수일의 구박에도 두산은 좋다고 웃었다.

바람이 불었다. 텁텁하고 습한 바람이지만 그래도 바다라고 시원했다. 맥주는 달고 부드러웠다. 빠지직, 다 마신 맥주 캔을 찌그러트리는 소리에 두산을 보자 캔을 발밑에 던지고 보란 듯 윗도리를 벗었다. 잘 그을린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났다.

“덥지도 않은데 왜 옷은 벗어?”

“내는 더운데.”

수일은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눈살을 찌푸리며 두산의 상체를 훑었다. 안 보는 척, 해수욕장을 둘러보는 척하며 두산의 몸매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캔을 홀라당 다 마셨다. 두산은 검은 봉지에서 맥주를 하나 더 꺼내 주었다. 반쯤 얼었던 게 녹아 시원했다. 아삭한 조각이 씹혔다.

“오랜만에 바람 쐬니까 좋다.”

“여서 하면 기분 직이는데.”

수일이 환하게 웃다가 정색을 했다. 이렇게 달랐다.

“어린 게 발랑 까져 가지구.”

수일은 눈을 흘기며 구시렁댔다.

“다 니한테 쓸라꼬 경험을 안 쌓았나. 그라이까 니가 만날 손도 안 대고 싸지.”

“손댔거든!”

“와, 우길 걸 우기야지. 지금 함 해보까? 손대고 싸나 안대고 싸나?”

두산은 망측하지도 않은지 가슴을 내밀며 큰소리로 반박했다. 하도 목소리가 커서 싼다는 말에 옆자리 파라솔 손님들이 돌아보았다. 수일만 민망해서 모르는 사람인 척, 정면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일은 선베드 위에 발을 올리고 무릎을 세웠다. 맥주 한 모금을 입 안에 머금은 채 바다를 보았다.

“에헤이, 그걸로 삐낐나?”

두산의 상체가 수일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슬쩍 수일의 선베드로 엉덩이를 옮긴 두산은 요리조리 수일의 안색을 살폈다.

“내 할 때 고무도 썼다.”

달래는 방법도 참 두산다웠다. 수일은 피식 웃었다.

수일은 삐지지도 질투하지도 않았다. 두산에게 정조를 바라지도 않았다. 이렇게 삐진 척하고 화난 척하면 받아 주는 이가 있고 달래 주는 이가 있다는 게 낯설면서도 기뻤다. 그러다가도 자기가 너무 추하게 구는 건 아닌지, 주제도 모르고 너무 기어오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수일은 조금 전 두산에게 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으며 속으로 조마조마했다.

맥주가 지나치게 달았다. 수일은 손에 들린 게 정말 맥주가 맞는지 확인하고, 크고 뜨거운 손으로 제 발목을 잡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칠 줄 모르고 수일을 예쁘다 하고, 하고 싶다고 조르는 어린 남자는 자기 팔목보다 가는 수일의 마른 발목을 꾹 쥐었다.

복숭아뼈를 쓰다듬던 엄지가 점점 위로 올라왔다. 창백하고 여린 살들 위로 두산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났다가 사라졌다.

사소한 접촉에 수일도 두산도 흥분으로 숨이 거칠어졌다. 두산이 반쯤 발기했다.

“또 이래 되삤네.”

눈썹 위를 긁적긁적하더니 두산은 벗어 둔 셔츠로 앞을 가렸다.

“할래?”

“응.”

수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산이 환하게 웃었다.

모래사장 위를 기우뚱기우뚱 걸으며 차를 세워 둔 주차장으로 향했다. 맥주 때문에 오줌이 누고 싶었던 수일은 주차장 옆에 마련된 간이 화장실로 가서 볼일부터 봤다. 두산이 기다렸다가 봉고 문을 열어 주었다.

당연히 근처 호텔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입술부터 부닥쳐 오는 두산과의 키스가 깊어지자 두산도 수일도 바짝 달아올라 호텔이고 뭐고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해 버렸다. 두 사람은 급히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으응….”

두산의 허벅다리 위에 벗은 하체를 비벼 댔다. 벌떡 선 성기가 부딪히며 투명한 액을 토해 냈다. 뜨거운 혀가 수일의 입천장을 핥고 지나갔다. 어찌나 간지럽고 아찔하던지 소름이 돋아 흠칫 몸을 떨었다.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켜 뒀지만 숨이 턱턱 막혔다. 맥주라도 술을 마신 데다 흥분해서 뿜어내는 몸의 열기를 차 안의 에어컨이 감당하지 못했다. 지하 주차장에라도 대놓을 것이지 수일도 두산도 땀을 줄줄 흘렸다. 젖은 몸이 부딪히며 음란한 소리를 토해 냈고, 그 소리만으로도 갈 것 같아 수일은 두산의 몸에 더 매달렸다.

두산은 제 어깨를 꽉 쥐고 있는 수일의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움푹 팬 그곳도 땀으로 흥건했다. 더럽지도 않은지 두산은 혀를 바짝 세워 겨드랑이를 할짝대다 입술로 물기를 빨았다. 입에서 히익, 하고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이려 들었지만 이미 파고든 두산의 입술은 더 집요하게 겨드랑이 살들을 물고 늘어졌다.

겨드랑이의 여린 살들이 쭈웁쭈웁 소리와 함께 두산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마다 수일은 자지러졌다.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들썩이고 목을 젖혔다.

“주글… 것… 아흐… 같애. 으으….”

두산을 받았던 구멍이 벌렁거렸다. 부은 걸 잊고 커다란 것을 넣어 주길 바랐다. 미칠 것 같았다. 삽입의 쾌락을 알게 된 수일은 엉덩이를 움찔댔고, 그걸로도 부족해 두산의 허벅지에 제 엉덩이를 바짝 붙여 비볐다.

안달 나서 미간까지 찌푸리며 신음을 흘리는 수일이 두산의 눈에 안 보일 리 없었다. 두산은 그 큰 손으로 수일의 엉덩이를 거머쥐었다. 하얀 엉덩이에 벌겋게 손자국이 날 정도로 세게 쥔 손이 아프기보다 자극적이라 수일은 끙끙 앓았다.

“허윽, 씨발, 수일아, 내 죽겠다.”

두산도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인상을 잔뜩 쓰고 당장 삽입하고 싶어 제 성기를 미친 듯이 비벼 댔다. 삽입 없는 행위가 아쉬워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물어뜯고 혀를 빨고 얼굴을 빨고 입술에 닿는 건 다 빨았다.

참다못한 두산은 손을 써서 두 성기를 한 손에 부여잡고 아귀힘을 잔뜩 주었다. 쥐어짰다. 아래위로 흔들었다가 엄지로 수일의 귀두 끝을 긁었다.

“아윽… 흣, 아흐흐으…. 아!”

몸부림치듯 치덕치덕 서로를 끌어안다가 수일은 갑자기 이는 요의에 당황했다. 차에 타기 전에 오줌을 누고 온 뒤라 더 당황스러웠다. 맥주 때문인가 보았다.

“두사… 아, 나….”

한번 인 소변 욕구는 말도 못 하게 급해졌다. 수일은 두산을 밀어냈지만, 밀릴 두산이 아니었다.

“나, 오줌… 흣!”

“씨발. 환장하겠네.”

두산은 오줌이라는 말에 맞잡은 성기를 더 세게 거머쥐었다. 그 바람에 수일은 쌀 뻔했다. 식겁한 수일이 허리를 튕기며 난리를 쳤다.

“쫌…, 허윽, 나 어떻….”

수일의 얼굴이 벌게지다 못해 새하얗게 질리자 두산은 뭐가 좋다고 웃었다.

“고마 싸라.”

“으으….”

수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비틀었다. 도무지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수일은 퍽퍽 소리가 나도록 두산의 가슴과 머리를 쳤지만, 두산은 맞고도 웃었다.

“알았다. 이번만이다. 다음에는 안 보내 준다.”

“빨리!”

“대답을 해야 보내 주지.”

급한 건 수일이었다. 두산이 다시 성기를 한번 쥐어짰다. 수일은 눈물이 찔끔 났다.

“여서 쌀래?”

“흐윽… 알았… 빨리.”

“뭘 알아?”

“한 번만 보내, 으… 나 ㅂ 내….”

“담에는 내한테 쌀기제?”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끄덕이자 두산이 그제야 성기를 놓았다.

서둘러 몸을 떼고 바지를 입었다. 어찌나 급한지 바지 구멍도 제대로 찾지 못해 넘어질 뻔한 걸 두산이 잡아 주었다. 두산은 상의를 집어 들고 청바지 지퍼도 채우지 않은 채 먼저 나가 뒷문을 열어 주었다. 수일은 사색이 되어 기어 나갔다.

서 있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렇게 급했건만 정작 나오는 건 희멀건 물이었다. 쿠퍼액이라기엔 나오는 모양새도 양도 많았지만, 오줌이라기엔 색이 옅고 기운차지 않았다.

수일은 반쯤 죽은 성기를 쥐고 짜내듯 물을 모두 빼냈다. 사정이라도 하듯 몰려드는 쾌감에 수일은 숨을 헐떡였다. 그러다 조루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래도 수일은 심각한 얼굴로 제 성기를 내려다보았다.

두산은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다가 수일이 나오자마자 셔츠를 내밀었다. 자기가 바지만 입고 나온 걸 그제야 깨달은 수일은 얼른 셔츠에 팔을 끼웠다. 발딱 선 걸 억지로 구겨 넣은 두산의 앞섶이 터질 것 같았다. 건강한 두산의 자지를 보자 수일은 다시 한숨이 나왔다. 조루는 아닐 것이다. 그럴 리 없었다. 수일은 시무룩했다.

단추를 잠그는 수일을 내려다보며 두산은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무슨 상상을 하는지 웃음기가 가득한 눈이 묘하게 번들거렸다. 수일은 목까지 벌게져서 겨우 셔츠 단추를 채웠다. 두산이 갑자기 몸을 구부려 마지막 단추를 잠그는 수일의 손가락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또 크큭 이상한 소리를 내며 혼자 웃었다.

“오줌 쌀 만치 그래 좋았나?”

건들건들 뒤로 걸으며 두산이 물었다.

“뭐래… 맥주 때문인데….”

수일은 중얼중얼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하고 딴청을 부렸다. 너무 창피해서 눈도 맞출 수가 없었다.

“니 약속했다. 담에는 내한테 싸기로.”

두산이 큰 소리로 말하는 통에 수일의 온 얼굴이 붉게 익어 갔다. 어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벌건 대낮에 저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속으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수일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차로 돌아가는 길이 왜 이렇게 먼지, 고작 오줌만 싸고 나왔을 뿐인데 숨이 가빴다.

수일은 잠시 자리에 멈춰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뒤로 걷던 두산이 멈추더니 수일의 앞으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수일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이왕이면 내 꺼 넣고 싸야 안 되겠나?”

두산은 수일과 눈을 마주 보았다. 느긋하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수일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얼굴에 열이 오른 것도 순간이었다. 당장이라도 입을 맞출 듯 가까이 다가오던 두산이 멀어졌다. 잡고 싶었다. 수일은 두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멀어지는 게 아쉬웠다.

두산의 시원한 입매에 보기 좋은 미소가 걸렸다.

<다음 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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