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찾았다.
두산은 특징 없는 5층짜리 여관 건물 앞에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새벽 4시 43분. 드디어 찾았다.
허리춤에 넣어 둔 오토 폴딩 잭나이프를 한 손에 거머쥐고 여관 입구로 들어갔다. 인기척에 카운터 쪽 창문이 열렸다. 여관 여사장은 심드렁하게 2만 원입니다, 했다. 그러다 두산을 올려다보고 얼굴이 경직되었다.
“사장님, 사람 하나 찾으러 왔는데예.”
“예. 말씀 하이소.”
여사장은 침을 꼴깍 삼켰다.
“키는 쫌 크고, 예쁘장하이 잘생긴 남자 여 왔지예?”
“아, 예.”
여사장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장 그렇다고 답했다.
“몇 홉니까?”
“303.”
“열쇠 있습니까?”
“그기….”
망설이다가, 두산을 힐끔 보고 바로 커다란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303호라고 적힌 견출지가 붙은 열쇠를 빼서 내밀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두산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배꼽 아래로 흰색 티셔츠가 붉게 물들었다. 청바지도 셔츠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었다.
“씨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상처 난 곳이 아려 와 두산은 인상을 썼다.
드디어 찾았다.
문 앞에 서자 방문을 열기가 겁이 났다. 문을 열었는데 죽어 있으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손에 칼까지 쥐고 있으면서 혹시 죽었을까 봐 걱정하는 자신이 웃겼다. 두산은 수일이 지 손으로 죽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죽어도 제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씨발.”
그러다 다른 생각도 들었다. 방에 들어갔는데 다른 년놈하고 붙어먹은 게 보이면 두산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아니, 너무도 정확하게 잘 알았다. 생각만으로도 두산은 속이 뒤집혔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은 두산도 수일도 그 새끼 아니면 그년도 모두 제삿날이었다.
두산은 열쇠를 꽂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딸깍’ 하고 허술한 소리가 났다. 은색의 손잡이를 돌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발끝에 소주병이 걸려 나뒹굴었지만 엎드린 남자는 꼼짝을 안 했다. 다행히 혼자였다.
수일은 제가 사 준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종잇장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두산은 가까이 다가가 숨을 쉬나 확인했다. 다행히 숨이 붙어 있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지도 않았다. 숨소리가 일정했다. 보아하니 운 모양이었다. 지 발로 도망간 주제에 수일은 술을 처먹고 울었다.
“씨발년.”
두산은 욕을 뱉으면서도 저 얼굴이 반가워서 씨익 웃었다. 이제야 살 것 같았다. 눈두덩이에 열이 올라 두산은 그 큰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쪽팔리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크게 숨을 한 번 쉬고 방바닥에 앉았다. 셔츠를 들어 올리니 배에 감긴 붕대가 피를 흡수하지 못하고 쭉쭉 뱉어 냈다. 시큰둥한 얼굴로 셔츠를 내리고, 잠깐 숨을 돌렸다.
두산은 수일의 마른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렇게 마른 새끼가 어디서 힘이 나 죽자고 도망을 다니나 몰랐다. 돌아가면 보약이라도 한 첩 해 먹여야지 안쓰러워 볼 수가 없었다.
“하이고, 내 팔자야.”
두산은 이 와중에도 수일의 몸 생각을 하는 제가 우스웠다.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다시는 살아 있는 모습을 못 볼까 봐, 주검으로 발견할까 봐 얼마나 애태웠나 몰랐다.
보아하니 안주도 없이 소주를 세 병도 넘게 마셨다. 당분간은 깨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두산은 엉덩이를 뒤로 밀고 벽에 몸을 기댔다. 손에 든 잭나이프 버튼을 누르자 칼날이 솟아올랐다. 칼집 안에 밀어 넣었다가 다시 버튼을 눌렀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일이 만지기도 아까워 두산은 가만 보고만 있었다.
***
‘사장님, 여 복숭아 만 원어치 주이소.’
두산의 입이 귀에 걸렸다.
‘예쁜 걸로 주이소. 그거 말고, 그거, 예, 토실토실한 걸로.’
‘누구 줄라꼬 그래 예쁜 것만 찾노?’
‘애인 줄라꼬예.’
애인이라 말하면서 두산은 조금 쑥스러워했다. 속으로 내 미칬는갑다, 생각하면서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과일값을 계산하고 복숭아가 든 검은 봉지를 받았다. 손에는 조금 전에 수일이 산 소고기 장조림과 무말랭이도 들려 있었다.
화장실 앞에서 수일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두산은 자꾸 올라가는 광대를 주체하지 못했다. 수일이 직접 쓴 시장 볼 목록을 보고 또 봤다. 생긴 것도 예쁜 게 글도 꼭 저처럼 예쁘게 썼다.
밑반찬은 두 개로 어림도 없었다. 엄마한테 김치도 싸 달라고 하고, 게장도 담아 달라고 졸라야겠다 생각했다. 곰국도 끓여 달라고 해야지. 두산은 수일에게 뭘 먹일지 고민하고 있었다. 수일이 뭐든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어서 좋았다. 그러고 보니 집에 쌀도 보온밥통도 없었다. 당장 마트로 가서 쌀하고 밥통부터 사야지 했다.
앞으로 둘만 살 생각을 하니 간질간질 기분이 이상했다. 두산은 미친놈처럼 히죽히죽 웃다가, 괜히 고개를 숙이고 검지로 코를 쓱 쓸었다.
‘와 이리 안 나오지?’
혼잣말을 하고 느긋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소변기에는 없었다. 고작 두 개 있는 칸 중 하나는 닫혀 있고 하나는 열려 있었다.
‘수일아, 니 안에 있나?’
대답이 없었다. 문을 두들겼다.
‘수일아, 니 여 있나?’
‘내 아입니다.’
안에서 힘을 주고 있는지, 중년 남자가 억눌린 목소리로 아니라 답했다.
두산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길을 잃었을 리 없었다. 두산은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올라와 있었고 덩치도 커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혼자 뭘 사러 갔나 싶어 두산은 주변 상점을 기웃기웃했지만 없었다.
설마, 했다.
그럴 리 없었다. 딴 년들이면 몰라도 수일은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지갑을 열어 봐도 돈 한 푼 없어지지 않았다. 딱 한 번 사라진 건 그 씨발놈한테 맞아서 그랬고, 도망가 봐야 늘 제 손바닥 안이었다. 손 닿을 곳에서 어설프게 도망이랍시고 뛰어다녔다.
그게 좀 귀여워서 두산은 수일을 봐주고 있었다. 수일은 그렇게 도망가 놓고 먼저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 기대어 왔다. 그 맛에 일부러 느슨하게 대한 것도 있었다.
‘씨발.’
두산은 혀로 입 안을 훑었다.
어제 병원에서 놀라긴 많이 놀랐나 보았다. 두산은 병원으로 수일을 부른 걸 조금 후회했다. 피가 흥건한 응급실로 부르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많이 기다릴까 봐 데려왔는데, 차라리 자기가 갈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두산은 한숨을 쉬고 공중전화를 찾아 현철에게 음성을 남겼다.
‘행님, 낸데 수일이 행님 없어지따. 숙소 아들한테만 말해서 좀 찾아도. 삼락 아재한테도 연락해 보고, 나이트, 기차역, 터미널 뒤지바라. 그 근방 화장실, 커피숍, 여관도 쫌 뒤지고. 화장실은 칸칸이 다 열어 보고. 부탁 쫌 하께.’
목소리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두산은 집으로 가자마자 복숭아와 밑반찬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수일의 개인 소지품을 넣어 둔 옷장 서랍을 열었다. 수일의 통장과 도장이 사라졌다. 계획적인 도주였다.
‘와, 씨발년, 제대로 토낐네.’
화가 나기보단 헛웃음이 났다. 제 손바닥 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되레 수일에게 당했다. 나이에 비해 맹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얕잡아 본 모양이었다. 배신감이 들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두산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섹스할 때 썼던 오일 때문에 거실에 옅은 꽃향기가 났다.
그 냄새를 맡자 두산은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좀 전까지 제가 안았던 년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눈썹을 꿈틀했다.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탁 소리가 나도록 꺾었다. 속에서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씨발.’
붕대가 감긴 왼손으로 짧은 머리를 빠르게 앞뒤로 쓸었다. 이를 갈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다 수화기를 들어 현철에게 삐삐를 쳤다. 5분도 안 돼 전화벨이 울렸다.
‘행님.’
- 어. 이기 먼일이고? 싸웠나?
‘아이다. 아들은 다 보냈고?’
- 보냈다. 급하믄 핸수 쪽에도 연락하까?
‘아이다. 강 이사 그 새끼 알면 안된다. 고마, 행님이 다 알아서 해라. 내도 돌아 보께.’
- 오야. 수일이 행님은 멀리 갈 양반은 몬 된다 아이가. 금방 찾으끼다.
‘어. 행님이 수고 쫌 해도.’
두산은 전화를 끊었다. 인상을 잔뜩 쓰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찔린 배가 땅겼다. 옷을 들추니 붕대에 제법 피가 뱄다. 아까 섹스를 하다가 실밥이 터졌나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산은 마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수일도 없는 마당에 금속 체인은 무슨 소용이냐 싶어 대문 앞에 던져두었다.
현금은 좀 있나?
수일이 현금 한 푼 없이 나갔을까 봐 걱정이었다. 일요일이라 은행이 문을 안 열었다. 돈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저러다 또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는 거 아닌지 몰랐다. 차라리 그게 속 편할 것 같았다.
이번엔 진짜로 가둬 버려야지.
두산은 이를 갈았다.
딴 년이었으면 포기했겠지만 수일인 죽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쪽팔리지만 수일은 두산의 첫사랑이었다. 어쩌다가 좆 달린 새끼한테 코가 꿴 것인지 두산도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그저 얼굴에 꼴려서 한번 따먹을 생각뿐이었다. 그랬는데, 되려 자기가 걸려들었다. 지금은 수일의 모든 게 다 꼴렸다. 그 오락가락하는 정신마저 꼴렸다. 이 와중에도 수일의 말간 얼굴을 떠올리자 아래가 묵직해졌다.
‘씨발, 좆같네.’
상황이 정말 좆같았다.
두산은 재래시장을 돌았다. 사람이 차고 넘쳤다. 그 많은 점빵8)들을 뒤지고, 물류 창고까지 갔다. 수일이 숨을 수 있다 싶은 곳은 똥통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무지 찾을 길이 없어 근처 골목을 헤매고 그 골목에 있는 가정집이며 가게들을 모두 들어가 봤다. 눈에 보이는 여관마다 들어가 수일의 인상착의를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요’ 였다.
배에선 자꾸 피가 났다. 그래도 두산은 멈출 수가 없었다. 정신이 반쯤 나가 시장통을 몇 번이나 헤맸다. 금방 찾겠지 하며 느긋했던 마음이 갈수록 조급해졌다. 분노가 치밀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제 병원으로 부르는 게 아니었다. 멀쩡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겁을 먹을 상황이었다. 칼에 찔려 피범벅인 사람으로 넘쳐 나는 응급실을 보고 도망치는 건 당연했다. 두산은 제 머리를 퍽퍽 소리가 나도록 쳤다.
안 그래도 수일은 정신이 약했다. 그 작은 대가리로 뭔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수일은 불안정했다. 아주,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어제 그렇게 울고불고 자기가 재수가 없다느니 하며 서울로 가겠다는 걸 허투루 듣는 게 아니었는데. 두산은 씨발, 씨발, 하며 멍청한 제 머리를 퍽퍽 치고 다녔다. 위압적인 남자가 피가 밴 셔츠를 입고 머리를 때리며 가니 다들 슬슬 도망갔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두산은 마음이 급했다. 그러다 문득 어디 가서 콱 죽어 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수일이라면 뭐든 가능했다. 생각보다 또라이였고, 가끔 보면 이 세상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
‘씨발, 내 진짜 돌아삐게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산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를 악물고 다시 시장 통을 이 잡듯 뒤졌다.
현철에게선 찾았다는 연락이 없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음성이 들어왔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는 말뿐이었다. 숙소에 있는 사람들만으론 인원이 부족했다. 현철의 음성을 확인하고 두산은 큰길로 나갔다.
그러다 눈앞에서 택시 타는 여자를 보는 순간 수일도 택시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짧은 시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려면 일단 택시를 탔을 게 분명했다.
근처를 돌아다니는 택시 운수 회사 이름을 기억했다. 하지만 운수 회사도 여러 개였고, 개인택시라면 또 말이 달라졌다. 이럴 땐 운수 회사와 개인택시 조합에 연락해서 알아보는 게 제일 빠른데 두산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두산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직은 무리였다.
영 내키지 않았지만,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행님, 내 쫌 도아도.’
두산은 결국 강재욱을 찾아갔다. 번듯한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은 조폭이 아니라 어디 사장님쯤 되는 것처럼 보였다. 우스웠다.
‘먼일이고?’
밀레니엄 바로 옆 건물에 있는 강재욱의 사무실엔 강재욱을 모시는 덩치들 셋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두산을 보고 경계를 했다. 두산은 속으로 씨발, 했다.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데.’
‘다들 나가 바라.’
강재욱의 말에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동작으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소파로 자리를 옮기면서 강재욱은 두산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다 두산의 피 묻은 셔츠로 시선을 돌렸다. 수일을 찾느라 상처가 터진 채로 돌아다녔더니 어느새 흰 셔츠가 붉게 물이 들었다. 두산은 쓱쓱 배를 문질렀다. 손바닥에도 피가 묻어났다. 아픈 줄도 몰랐다.
‘수일이 행님 쫌 찾아도.’
‘도망갔나?’
‘어.’
강재욱이 웃었다.
‘두사이 니도 으지간하다. 여 에리고 예쁜 아들 천진데 머할라꼬 그런 다 늙어빠진 새끼한테 목을 매노? 그래 좋나?’
두산은 대답 대신 눈썹을 꿈틀했다. 도움을 청하러 왔지만, 제 성격은 남 못 주는 법이었다.
‘얼마나 됐는데?’
‘한 일고여덟 시간 됐다.’
‘터미날하고 다 뒤짔고?’
‘어. 거는 여즉 지키고 있는데 코빼기도 안 보인다. 지금은 택시밖에 답이 읍따.’
‘기다리 바라.’
강재욱은 차분한 얼굴로 사무실 수화기를 들었다. 커다란 수첩을 열어 택시 운송 사업 조합과 개인택시 조합에 연락했다. 그리고 주로 근방을 다니는 택시 운송 회사에도 따로 연락을 넣었다. 수일의 인상착의를 말하고 거기서 일하는 기사 중에 비슷한 인상의 남자를 태웠는지 수소문해 달라고 했다. 사람 좋은 척 웃으며 상대방과 점심 약속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산은 입이 말랐다.
‘니 병원 안 가봐도 되겠나?’
‘어.’
‘찾을라믄 시간 쫌 걸릴 낀데 갔다 온나.’
‘됐다.’
‘새끼, 니 맘대로 해라.’
강재욱은 두산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두산은 그제야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볼이 쏙 들어가도록 빨았다가 후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이거 영감님한테는 말 안 한다.’
‘그래서 내가 행님 찾아왔다 아이가.’
두산의 말에 강재욱이 짧게 웃었다.
지금은 호형호제하며 웃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 웃는 낯을 찢어 버리리라.
두산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 모금 빨았다.
얼른 수일을 찾아야 할 텐데. 성한 모습으로 찾아야 할 텐데. 두산은 입이 바짝 말랐다. 심장이 타들어 갔다. 죽어도 제 손으로 죽이고 살려도 제 손으로 살려야 하는 남자였다.
‘내 미리 말해두겠는데, 니 수일이 들앉힐 생각은 마라. 내 이렇게 찾아주는 거는 계약이 남아있어서 그란 기다. 알겠나?’
‘먼 소리고?’
‘니 무슨 생각하는지는 아는데, 계약은 계약이다. 여도 규칙이란 게 있다.’
‘씨발, 내는 그런 거 모르겠는데?’
‘저나해서 찾지 말라카까?’
강재욱은 협박했다.
그는 두산이 수일을 집에 들여앉히고 싶어 하는 걸 잘 알았다. 강재욱이 아니라도 누구든 다 알았다. 두산이 하도 티를 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지만, 그래도 계약금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 저러나 몰랐다.
‘내가 계약금, 위약금 다 주께.’
두산의 말에 강재욱이 코웃음을 쳤다.
‘그라믄 안되지. 여 우찌 돌아가는지 니도 잘 안다 아이가. 우짤래 찾지 말라카까?’
‘에이, 씨발, 알았다. 출근만 시키면 되제?’
‘그래.’
두산은 짜증이 치밀었다. 수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 미치겠는데 이 와중에 계약 얘기가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재욱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면 대체로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
개새끼.
속으로 욕을 했다.
출근이고 뭐고 집에다 가두고 수갑을 채워도 모자랄 판에, 저 정신도 없는 남자를 나이트로 출근시켜야 했다. 차라리 돈에 환장한 박 사장이 계속 운영했다면 계약금에 위약금까지 주고 퉁 칠 수 있었는데 상황이 좆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의 두산으로선 어쩔 수가 없었다. 수일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나머진 찾고 나서 천천히 풀어도 됐다.
머리가 아팠다. 수일에 대한 분노보다 빨리 찾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먼저였다. 혼자 어디 가서 죽었을까 봐 두산은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답지 않게 다리를 달달 떨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연락은 없었다. 강재욱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난 양 두산을 지켜보았다. 일하는 척 나이트라도 나가 볼 것이지 소파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웠다.
1분 1초가 다르게 두산의 마음이 변했다. 다급함은 다시 분노가 되어 두산을 덮쳤다. 수일을 찾게 되면 저를 속이고 도망간 건에 대해서 꼭 벌을 주리라. 두산은 이를 갈았다.
사람 잘못 건드렸다, 윤수일.
두산은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았다.
후 하고 연기를 내뿜자, 눈앞이 연기로 뿌예졌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
수일은 무언가 딸깍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울다 잠이 들어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있는 것 같아서 수일은 억지로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러다 금속이 스치는 느낌에 수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강도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문도 안 잠그고 잔 모양이었다. 하다 하다 이젠 강도까지 만나다니, 아무리 다 포기한 수일이라도 자기 인생이 너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일났나? 얘기 쫌 하까?”
‘딸깍’ 소리에 칼이 올라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수일은 눈을 번쩍 떴다. 후다닥 일어나 벽 뒤에 등을 바짝 붙이고 앉았다. 이렇게 빨리 찾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수일은 앞에 있는 남자가 정말 두산이 맞는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어, 어떻게 찾았어?”
목이 잠겨 한 번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우찌 찾기는. 택시회사 다 뒤짔지.”
싱글싱글 웃는 낯에 눈빛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목소리가 잠긴 건 수일만이 아니었다. 수일은 고개를 숙였다.
“에헤이, 고개 들으라.”
목에 칼이 들어왔다. 수일은 금속의 차가운 감촉에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최대한 벽에 붙였다. 눈을 크게 뜨고 제 앞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하루 사이에 핼쑥해졌다. 그게 꼭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수일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찾아오지 말지.
왜 자기 같은 걸 찾으러 왔나 몰랐다.
“두산아.”
“와?”
“나 그냥 보내 주면 안 되니?”
수일은 지쳤다. 아직 마음이 다 정리된 건 아니었지만, 그만 자길 놓아줬으면 했다. 수일의 말에 두산은 고개를 삐뚜름히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빛이 이상했다. 저 눈빛이 수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씨발, 니 보내줄 꺼면 내 여 안 왔지. 머할라꼬 힘들이가 니를 찾았겠노? 그쟈?”
칼이 다시 턱 끝에 닿았다. 수일은 칼이 닿아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니 내 갖고 놀았나?”
“아냐, 그런 거.”
“근데 와 도망칬노?”
이렇게 묻는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칼을 들이밀었으면 찌르는 시늉이라도 하든가. 아니면 두산이 때리기라도 해야 수일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두산은 칼을 들이밀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두산아, 너 화 풀릴 때까지 맞아 줄 테니까 그러고 가 줄래? 나 너랑 같이 살기 싫어.”
수일은 두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을 했다. 이번엔 목소리를 떨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마음에도 없는 말이지만, 두산을 돌려보내려면 이렇게 해야 했다. 수일의 말에 두산은 칼을 치우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한숨을 쉬고 칼끝으로 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씨발, 좆같네.”
고개를 든 두산은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왜 내하고 살기 싫은데?”
“너 깡패잖아. 너하고 살면 내가 겪을 일이 너무 뻔해서 그래. 어제 응급실 같은 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수일은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두산은 이를 악물었다. 이를 갈았다.
“내가 아무리 하찮아두 너 같은 깡패하곤 안 살고 싶어. 너랑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고 세 번은 더 쉬웠다. 수일은 더는 문드러질 속도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두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잔인한 말에 두산은 그 사나운 얼굴을 구겼다.
수일이 아니라 두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산은 갑자기 피로 물든 흰색 폴로 티를 벗어 던지고, 무릎을 꿇어 수일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복부에 감긴 붕대는 피로 엉망이었다. 피가 뚝뚝 여관 장판 위로 떨어졌다. 수일은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아나, 칼. 고마 내를 직이라.”
두산은 진심이었다. 시시각각으로 표정이 변했다. 눈빛도 변했다. 광기가 비쳤다가 연민이 비쳤다가 후회가 비쳤다가, 두산은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을 쏟아 내고 있었다.
“내는 니 없으면 몬 살겠으니까 내를 직이라.”
수일의 왼손을 억지로 잡아 칼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자기 심장으로 수일의 손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두산을 살리려고 도망쳤는데, 정작 두산은 자기 가슴에 칼을 들이댔다.
“여 꽂아삐믄 피 좀 쏟다가 바로 저세상 간다. 내 여서 죽으께.”
죽이라는 말에 수일은 눈을 번뜩였다. 평소 같으면 울며 매달렸겠지만 화가 났다. 기껏 저를 생각해서 죽을 생각으로 도망쳤는데,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되레 자기를 죽이라는 말이었다.
“하지 마!”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고작 20여 일을 만났는데 자기 따위가 뭐라고 생명을 내놓겠다고 저 지랄인지 몰랐다. 어린 새끼가 목숨 귀한 줄을 몰랐다. 수일은 손을 빼려고 했지만, 두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바위 같았다.
“하지 말라고, 씨발!”
안 하던 욕까지 해 대며, 수일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화를 내는데도 두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몬 하겠나? 내가 하까?”
수일의 손을 잡은 두산이 힘을 주어 당겼다. 가슴에 바짝 들이댄 칼끝이 살에 들어갔다. 수일은 깜짝 놀라 손을 잡아 빼려 했다. 그 바람에 칼이 움직여 두산의 가슴을 스쳤고 바로 붉고 선명한 피가 났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피가 나는데도 두산은 힘을 빼지 않았다. 더 깊이 칼을 가져갔다.
“으아악! 하지 마, 씨발, 하지 말라구!”
수일은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쳤다.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무서워 미칠 것 같았다. 손을 움직이면 두산이 다쳤다. 수일이야말로 죽고 싶었다. 저 칼을 제 심장을 도려내고 싶었다. 그런데도 두산은 도무지 칼을 잡은 손에 힘을 뺄 생각을 안 했다.
“야이 미친 새끼야, 하지 좀 마!”
수일은 남은 손으로 퍽퍽 소리가 나도록 두산을 때렸다. 어깨를 때리고 머리를 때렸다. 얼굴을 쳤다. 두산은 한 대도 피하지 않고 다 맞았다. 칼을 쥔 손이 다시 움직였다. 정말로 심장으로 들어가는 느낌에 수일은 무너졌다.
“하지 마, 두산아. 하지 마.”
꺼이꺼이 울었다.
“제발 하지 마. 너 죽는 거 싫어.”
두산은 여전히 칼을 제 가슴에 들이댄 채 수일의 턱을 움켜쥐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두산이 보였다. 자기의 잔인한 말에 상처 입은 눈빛을 보자 수일은 참담했다.
“니 내하고 진짜로 살기 싫나? 씨발! 말해 바라.”
“하지 마.”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두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수일아, 내는 하루를 살아도 니랑 같이 살다 죽고 싶다.”
두산의 말에 수일은 차라리 죽고 싶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는데, 자기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말에 수일의 굳은 마음이 무너졌다. 제 평생, 하루를 살아도 자기와 함께 살다가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을 줄을 몰랐다. 이런 말을 해 줘서 두산이 정말 고마웠지만, 수일은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저런 말을 들을까 싶었다.
“내하고 살기 싫으면 지금 여서 내 직이라. 나는 니 없이는 몬 산다. 차라리 죽는 기 낫다.”
두산은 다시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냐. 나두….”
너랑 살고 싶어.
“나두 너랑 살고 싶어.”
수일은 어렵게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수일의 말에 두산은 칼을 바닥에 던지고 수일을 와락 끌어안았다. 으스러지도록 온 힘을 다해 안았다.
“내하고 살자. 제발 내하고 살아도.”
수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두산이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목을 타고 흘렀다.
언제나 두산이 수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이번엔 수일이 두산의 머리를 안아 주고 쓰다듬었다. 착하다고, 자기에게 이렇게 빨리 와 줘서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아이처럼 안겨 울던 두산이 큰 몸을 떼고 수일의 입술을 더듬었다. 눈물 때문에 짠맛이 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포개고 보듬었다.
한참을 입을 맞추고 끌어안고 있다가 손에 축축하게 묻어나는 피 때문에 수일은 몸을 뗐다.
두산의 찔린 가슴과 터진 배에서 피가 나와 수일의 흰옷을 적시고 여관 장판도 적셨다. 수일은 화장실로 기어가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었다. 손에 돌돌 말아 일단 조금 전 상처 난 가슴을 닦았다. 두산이 인상을 썼다.
“아. 따가바라. 긁힜는데 먼 피가 이래 마이 나노?”
수일은 두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울어서 눈가가 붉었다. 마른 손가락을 들어 두산의 눈가를 쓸었다.
“너도 울 줄 아네?”
“내 안 울었그든?”
쑥스러운지 두산은 안 울었다고 박박 우겼다. 그게 너무도 애 같아서 수일은 피식 웃었다.
“빨리 병원 가자.”
“어. 가자. 배도 터지삐고 가긴 가야겠다.”
두산은 제가 벗은 피에 젖은 티셔츠를 한 손에 들고, 칼은 고이 접어 바지 뒤춤에 넣었다. 먼저 일어나 발끝에 닿는 빈 소주병을 툭 쳤다.
“니 이래 깡소주 마시다가 골로 간다.”
이 와중에도 잔소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수일은 망설임 없이 그 크고 뜨거운 손을 잡았다. 자기를 살게 해 준 손을 잡았다.
“진짜로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에 또 이라믄 그날은 우리 둘 제삿날이다. 알았나?”
“응.”
“내 장난하는 거 아이다. 알았나?”
“응.”
수일은 좋아서 웃다 울었다. 눈물을 닦았다.
“울지 마라.”
“응.”
어둡고 좁은 여관방을 나오자 밝은 햇살이 수일을 맞았다. 수일은 연신 눈물을 닦으며 두산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배에도 가슴에도 선명한 피를 흘리며 걷는 두산과 그런 남자의 손을 잡고 울며 따라가는 수일을 보고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누가 봐도 깡패 새끼가 사람 하나 족치러 가는 것처럼 보였을 터였다.
“뭘 보노, 씨발놈들아.”
두산은 눈이 마주치거나 돌아보는 남자들에게 욕을 했다. 저러니 더더욱 그렇게 보였을 터였다.
“저 죽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살러 가는 거예요.”
수일은 제 울음 때문에 들리지도 않는데도, 울음 사이사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게 하늘이든 땅이든 지나가는 똥개든 뭐든 간에, 자기도 사랑하는 사람과 살러 가는 거라고 자랑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 빈 침대에 앉아 있자 의사가 다가왔다. 이제 서른이나 됐을까 싶은 얼굴의 의사는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니는 대기실이든 어디든 나가서 기다리라.”
“왜? 같이 있고 싶은데.”
“치료하는데 걸거친다9).”
“옆에 비켜서 있을게.”
“고마 나가 있으라.”
두산은 자꾸 수일을 내보내려 했다. 의사는 둘이 대화하는 중에 무심한 얼굴로 배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두산은 수일이 보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상처를 가렸다.
“내 개안으니까 쫌 나가라.”
조금 짜증이 섞인 말투에 수일은 입을 실룩거리며 침대와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있는 빈 의자에 앉았다. 낮 시간대라 병원 응급실은 한산했다. 수일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하고 치료를 받는 두산을 가만히 보았다. 가까이 있을 땐 그렇게 멀어 보이더니, 이젠 이렇게 멀리 있어도 가깝게 느껴졌다.
치료가 끝난 두산은 규정상 반출 불가지만 특별히 내준다는 환자복을 받고 값을 치렀다. 피가 묻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까만 봉지에 옮겨 담고 환자복을 입었다.
“배고프제?”
“응.”
“어제 점심만 먹고 내내 굶었나?”
“응.”
“으이그. 밥이라도 묵고 술을 마시든가 안 하고.”
“너는 밥 먹었니?”
수일의 물음에 두산이 고개를 저었다.
“니가 도망치삤는데 밥이 드가나? 내 쏙이 타들어가 고마 쌔리 죽고 싶드라.”
수일은 두산을 꼭 끌어안았다.
“진짜로 이번이 마지막이다. 같은 날 제삿밥 묵고 싶으면 또 도망치라. 알았나?”
“응.”
두산은 수일을 데리고 병원을 나와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빔밥 2개와 선짓국 하나를 시켰다.
“나 선지국 못 먹어.”
“그래? 사장님, 여 갈비탕 됩니까? 그거 하나 더 주이소.”
수일에겐 갈비탕을 주고 두산은 선짓국에 비빔밥을 먹었다. 수염이 까맣게 올라온 두산의 얼굴은 여태 본 중에 제일 초췌했다. 인상이 더 날카로워 보였다. 거기다 환자복까지 입고 있으니 꼭 정신 병원에서 탈출한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이 웃겨 웃다가, 갑자기 또 눈물이 났다. 수일은 울면서 밥을 먹었다.
“울지 마라. 사람들이 내를 멀로 보겠노.”
수일은 ‘흐윽’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식당 주인뿐 아니라 손님들의 시선이 한 번씩 머물다 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한 얼굴이었지만, 두산을 보고 다들 외면했다.
“여 비빔밥 억수로 맛있네.”
“응.”
“목 멕힌다. 갈비탕 국물도 좀 떠먹고.”
수일은 두산의 말대로 갈비탕도 먹고 비빔밥도 먹었다.
“두산아.”
“어?”
“나 많이 밉지?”
“으데. 내 니 한 번도 미워한 적 읍따.”
두산은 수일을 보고 씨익 웃었다.
수일도 두산을 향해 씨익 웃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혼자 왔던 길을 이번엔 두산과 함께 돌아가는 중이었다.
수일이야 술을 먹고 잠이라도 잤지만 두산은 한숨도 자지 않았는지 택시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수일은 제 어깨에 두산의 머리를 기대게 하고 싶었으나 워낙 무거워서 그냥 좌석에 머리를 기대게 했다. 대신 자기가 두산의 어깨에 기댔다.
두산이 하루 만에 자신을 찾아 줘서 기뻤다. 수일은 정말로 죽을 생각이었다. 그냥 죽으면 폐가 될까 봐, 일단 서울로 가서 친한 동생 상엽에게 유서라도 써 놓고 전 재산 80만 원을 화장 비용으로 남겨 두고 죽을 생각이었다.
상엽이라면 제 시체를 치워 줄 거라고 믿었다. 환생은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화장한 재는 다대포 앞바다에 뿌려 달라고 하려 했었다.
그랬는데 두산이 찾아와서 같이 살자고 했다. 하루라도 늦었으면 이 말을 못 듣고 죽을 뻔했다고 수일은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불안한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헤어져도 죽어도 같이 사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수일은 마음으로 빌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살랑살랑 바람이 수일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마음을 흔들었다.
수일은 두산의 어깨에 기대 스르륵 잠이 들었다.
택시에서 간신히 깬 두산은 비몽사몽 걸어 집에 가자마자 다시 잠이 들었다. 피를 많이 흘린 데다 잠도 못 잔 두산은 긴장이 풀리자 거의 실신하다시피 했다.
수일은 그런 두산의 옆에 가만 누웠다. 두산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두산이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눈가는 언제 울었냐는 듯 붉은 기조차 없었다. 덩치는 산만 해도 아직은 애였다. 수일은 손가락으로 두산의 눈가를 만졌다.
까칠하게 올라온 수염을 쓱 쓰다듬어 주고 입을 맞추었다. 한쪽 팔을 두산의 상체에 두른 다음 가슴에 귀를 갖다 댔다. 심장은 여전히 크고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 소리를 음악 삼아 수일은 몇 시간을 누웠다.
어제만 해도 자신을 어지럽히는 생각으로 괴로웠는데, 지금은 의외로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도 없었다. 수일은 그저 두산의 숨소리에 집중하고 온기에 몸을 맡겼다.
두산이 깰 기미를 보이지 않자, 수일은 조용히 일어나 나이트 출근 준비를 했다. 깨끗하게 몸을 씻고 푸른빛 도는 옥스퍼드 셔츠에 남색 정장 바지를 입었다. 수일은 그냥 나갈까 하다가 메모를 남겼다.
나 도망간 거 아냐. 출근해 - 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