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굳이 이 새벽에 숙소로 가 수일의 짐을 쌌다. 말릴 수가 없었다. 숙소는 여전히 텅 비었고, 수일은 왜 다들 안 돌아오는지 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근데 너 옷 좀 입으면 안 되니?”
수일은 팔에 수일의 옷들을 하나씩 올려 두는 두산에게 한마디 했다. 두산은 병원에서부터 내내 상의를 입지 않고 있었다. 병원에서야 옷이 없다 치고, 여긴 옷장만 열면 티셔츠가 있었다.
“더운데.”
두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도 입어. 피 보여서 싫어.”
수일은 두산의 옷장을 열어 티셔츠를 건넸다. 두산은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수일이 주니까 또 마지못해 받았다. 팔을 들어 입으려다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 숙여 봐. 내가 입혀 줄게.”
두산은 얌전히 머리를 숙였고, 수일은 옷을 입혔다. 두산이 입꼬리를 올렸다. 뭐가 좋다고 웃나 몰랐다. 수일은 두산의 팔을 때리려다 말았다. 다친 사람을 때릴 순 없었다.
“손 많이 다쳤어?”
“으데. 살짝 글키따.”
“배는?”
“스크래치.”
그래도 아플 텐데 두산은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수일은 티셔츠를 들어 올려 스크래치 난 복부를 살폈다. 아까보다 핏빛이 더 진해진 것 같았다.
“상처 터진 거 아냐?”
수일의 말에 두산이 슬쩍 배를 내려다보았다.
“아인데. 아까랑 똑같은데.”
수일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두산은 셔츠를 내리며 말을 돌렸다.
“빼묵은 거 없제?”
“한번 돌아볼게.”
이 숙소도 이제 안녕이라 생각하니 왠지 쓸쓸했다. 수일이 부산을 떠나면 여기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였다. 작별 인사라도 하듯 수일은 자기가 상주하던 거실과 부엌, 욕실을 둘러보았다. 곰팡이가 슨 세면대를 보자 동생들 없을 때 욕실 청소라도 해 둘 걸 하고 조금 후회가 되었다.
조만간 동생들 없을 때 와서 청소해야지.
수일은 이렇게 생각하고 두산을 따라 집을 나섰다. 현관문도 안 잠그고 그냥 가려는 걸, 수일이 열쇠를 꺼내 잠갔다.
“현철 씨랑 동생들한테 말 안 하고 가도 돼?”
“또 볼 꺼 아이가. 그때 말하면 된다.”
“응.”
“저기, 현철 씨랑 숙소 동생들 다 괜찮은 거지?”
“어.”
두산은 짧게 답하고 수일의 옷을 뒷좌석에 넣었다. 운전석에 오르면서 두산이 살짝 인상을 썼다. 몸을 구부려야 하니, 다친 데가 아픈 모양이었다.
“내가 운전할까?”
“됐다. 운전은 남자가 해야지.”
“나도 남자야.”
두산은 수일을 흘끔 쳐다보고 시동을 걸었다.
“내한테는 아인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차를 움직였다. 수일은 두산의 말에 성적인 뉘앙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여자 취급하지 마.”
소심하게, 겨우 들릴 정도로 수일은 중얼거렸다.
차는 지금의 숙소나 오성관이 있는 변두리가 아닌 시내로 달렸다. 대낮처럼 환한 유흥가 골목을 지나쳐 가자, 평범한 건물이 하나 나왔다. 주위가 적막했다. 어디까지가 사무실이고 어디부터 주거용인지 불분명했다. 잠잘 시간이 훨씬 지나 건물은 캄캄했다.
지하에 차를 주차한 뒤 두산은 수일의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가 들게.”
“됐다. 무겁도 안 하는데.”
다친 사람 생각해서 그런 건데, 곧 죽어도 자기가 들겠다는 바람에 수일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엘리베이터는 7층까지만 운행했다. 7층이 끝인 줄 알았더니 두산은 8층에 산다고 했다.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쇠로 만든 튼튼한 대문이 하나 있었다. 대문 손잡이엔 두툼한 금속 체인이 휘감겨 있었다. 두산은 체인에 걸린 맹꽁이자물쇠를 열어 체인을 푼 다음 대문에도 열쇠를 끼워 넣어 열었다.
숙소라더니 문이 꼭 감옥 같았다. 오성관 동생들과 살던 숙소는 문도 잠그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더 위험한 덩치들이 사용하는 곳이라 그런가 보았다.
두산은 수일을 올려 보내고 대문을 닫았다. 자동으로 잠긴 대문에다 방금 푼 금속 체인을 다시 걸고 자물쇠를 잠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수일이 투덜거렸다.
“여 개나 소나 다 들어와서 그라는 기다. 도둑도 몇 번 맞았다.”
“거짓말.”
수일의 말에 두산이 짧게 웃었다.
8층엔 문이 세 개 있었다. 세 가구가 사용하나 보았다. 그중 제일 안쪽 문을 열고 두산이 들어갔다.
혼자 사는 곳이라고 해서 원룸일 줄 알았는데, 숙소처럼 일반 가정집이었다. 구조도 숙소와 같았다. 방 하나는 옷방으로 쓰였고, 다른 방은 쓰는 사람이 없는지 텅 비어 있었다. 안방은 커다란 침대와 거울, 화장대만 달랑 있었다. 거실엔 4인용 소파와 제법 큰 TV가 있었다.
“여길 너 혼자 써?”
“어.”
“왜?”
“원래 여럿이 썼는데 누구는 살림차리서 나가고 누구는 싸워서 나가고. 하나둘씩 나가다 보이 내 혼자 남았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큰 집은 세도 비쌀 텐데, 두산이 혼자만 쓰게 두는 걸 보니 조직에서 두산의 서열이 아주 낮진 않은가 보았다. 새로 도배를 했는지 벽지도 장판도 새것처럼 깨끗했다. 좋은 냄새가 났다.
두산은 옷방으로 들어가 수일의 옷을 하나씩 걸었다.
“내가 할게.”
“아이다. 내가 하께. 니는 쉬라.”
“다친 건 넌데 니가 쉬어야지.”
“하던 거니까 내가 하께. 가서 쉬라.”
이번에도 옷에 손도 못 대게 해서, 수일은 하는 수 없이 거실로 갔다. 시계는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정말 피곤했다. 수일은 소파에 기댔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발소리가 들렸다.
“자나?”
“응.”
“눈 쫌 떠 바라.”
두산이 수일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수일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방에 가서 자야지 와 여 있노?”
“그냥.”
수일은 안방에 들어가기가 미안했다. 떠나기로 해 놓고 아무렇지 않게 두산의 옆에서 잘 자신이 없었다. 두산은 수일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가만 수일의 얼굴을 보았다. 피부도 갈색에 덩치까지 크니 꼭 주인을 기다리는 셰퍼드 같았다. 수일은 웃었다. 두산이 입을 맞췄다.
“그만 자자.”
이렇게 말하는 두산이 너무 피곤해 보여 수일은 얌전히 일어났다. 두산은 붕대를 감지 않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수일도 멀쩡한 왼손으로 그 큰 손을 잡았다. 수일은 오른손에 두산은 왼손에 붕대를 감아 하나씩 손이 모자랐지만, 성한 손을 맞잡으니 완전해졌다.
***
어젠 둘 다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두산도 수일도 잠이 들었다. 꼭 끌어안고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눈을 떴을 때 당연히 두산이 옆에 있을 줄 알았는데, 수일은 혼자였다. 혹시나 해서 조용히 귀 기울여 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몸까지 성치 않으면서 두산은 어딜 갔는지 몰랐다.
언제 벗겼는지 수일은 알몸이었다. 수일은 피식 웃으며, 침대 시트를 돌돌 말고 거실로 나갔다. 옷방으로 가서 갈아입을 속옷과 추리닝을 챙겨 들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을 보고 수일은 눈을 크게 떴다. 새것처럼 깨끗했다. 욕조도 있고, 샤워 부스까지 따로 있었다. 꼭 호텔 같았다. 수일은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씻어야 했던 숙소를 떠올리고는 괜히 기분이 좋아 웃었다. 붕대를 감은 손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며 몸을 씻었다.
씻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지금쯤 동생들은 점심을 먹고 있을 텐데, 수일은 커다란 집에 혼자 남았다.
두산에게 삐삐를 치려고 수첩을 열었다.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입력하는데, 번호가 낯익었다. 너무 낯이 익어 수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삼락 형님 번호와 비슷했다. 하지만 수첩을 뒤져 보니 번호가 달랐다. 수일은 그제야 자기가 외우는 유일한 삐삐 번호가 두산의 번호였다는 걸 알았다.
받아 적기만 했지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는 두산의 번호를 자기가 외우고 있다는 것에 수일은 놀랐다. 수일이 빵을 먹다 경찰서에 잡혀갔던 날, 두산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삼락 형님이 두산에게 연락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수일이 음성을 남긴 사람이 두산이었다.
두산은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수일은 멍하니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가만 내려놓았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집을 나섰다. 두산이 열쇠를 주지 않은 게 생각났지만, 대문이 따로 있으니 괜찮겠거니 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문제는 대문이었다. 대문은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도 열리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밖에 어제처럼 굵은 체인이 칭칭 감겨 있었다. 수일은 꼼짝없이 갇힌 신세였다.
수일은 집으로 도로 들어가 두산의 번호를 눌렀다.
“두산아, 나 집에 갇혔어. 얼른 와. 배고파.”
음성을 남긴 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엔 맥주와 물, 오렌지 주스, 우유 등 마실 것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 우유를 컵에 부어 마셨다.
라면이라도 있나 찬장을 모두 열어 보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생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수일은 실망한 채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소파에 앉았다.
거실은 해가 잘 들어 밝았다. 수일은 베란다로 나가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건물 앞에 다른 큰 건물이 없어 주변이 다 보였다. 고개를 빼고 쭉 둘러보다 밀레니엄 간판을 보았다. 밀레니엄은 어제 수일이 지나쳐 온 유흥가 중심부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오성관처럼 위로 호텔이 있었다. 손 닿을 곳에 두산의 직장이 있었다.
수일은 괜히 기분이 상했다. 강재욱도 현수도 혜숙도 모두 떠올랐다. 다 싫었다. 서둘러 거실 커튼을 치고 TV를 켰다.
전화벨이 울렸다. 수일은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두산일 것 같아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일났나?
“어디야? 나 갇혔어.”
- 갇히기는. 내 지금 볼일 보고 있으니까 한 시간 뒤에 가께.
“배고파.”
- 아! 씨발. 내 까무따. 기다리 바라. 사람 하나 보내께.
“대문 체인만 풀어 주면 안 되니? 나가서 사 먹고 올게.”
- 안 되는데. 쪼매 기다리라. 사람 보내께.
두산은 이러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수일은 수화기를 바라보며 입을 실룩거렸다. 사람 누굴 보낸다는 건지, 두산은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게다가 수일이 안에 있는데 체인을 거는 건 또 무슨 심본지 몰랐다.
수일은 TV를 끄고 일단 계단에 나가 앉았다.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건물에 사람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가정집은 8층만 있고 다 사무실인가 보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수일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강재욱과 면담이 있을 예정이었다. 면담 전이지만 두산은 수일의 계약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수일은 잘리더라도 돈을 당장 줄지 어떨지, 그걸 몰랐다. 일자리야 나중에 찾아도 되지만 돈이 궁했다. 도망가서 숨어 지내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80만 원으로 어림도 없었다.
무작정 짐을 싸서 터미널에 갔다간 두산에게 바로 잡힐 것 같았다. 수일은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눈치 빠른 두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당장은 서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야지 싶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결심을 했다 해도, 두산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누군가를 제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줄은 수일도 몰랐다. 수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띵’ 하고 엘리베이터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내렸다. 수일은 계단에서 일어나 대문에 바짝 붙었다.
현수였다.
“행님, 와 나와계십니까? 들어가 있지.”
“…그냥요.”
수일은 대문에서 비켜섰다. 현수는 체인에 걸린 자물쇠를 따고 대문을 열었다. 손에는 음식이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이거 드이소. 제육볶음하고 계란말이하고 이것저것 쫌 샀습니다.”
“저기, 저 그냥 나가서 먹고 올게요.”
“에이, 이래 사 왔는데 안 드시고 버리실라꼬예?”
현수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수일을 향해 다시 한번 봉지를 내밀었다. 듣고 보니 그렇긴 했다. 얼마 전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서 쫄쫄 굶어 놓고,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깝게 음식을 버릴 순 없었다.
수일은 다가가 봉지를 잡았다. 현수는 일부러 수일의 손을 만지며 봉지를 건네주었다. 수일은 흠칫 놀라 쳐다보았다.
“재미 좋습니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수일은 기분이 나빴다. 현수는 정말 기분 나쁜 남자였다.
그래도 먹을 걸 갖다주었으니 이번은 참자.
수일은 눈을 내리깔았다.
“근데, 제 열쇠는 없어요? 저도 하나 갖고 있어야….”
“죄송한데예, 열쇠는 아무한테나 몬줍니다. 저희도 규율이란 게 있다 아입니까.”
현수는 대문을 닫았다.
“체인은 걸지 마세요.”
다급히 외쳤지만, 수일의 말을 무시한 현수는 체인을 걸고 맹꽁이자물쇠를 잠갔다. 다시 갇혔다. 사람이 안에 있는데 도대체 왜 체인을 거나 몰랐다.
현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수일은 대문을 노려보다 계단을 올랐다. 현관이 세 갠데 나머지 두 집에도 사람이 없나 보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체인을 걸어 둘 리가 없었다. 수일은 혼자라는 생각에 조금 쓸쓸했다.
배가 고팠다. 식탁에 음식을 펼쳐 놓고 밥을 먹었다. 이제 막 샀는지 반찬도 밥도 국도 다 뜨끈뜨끈했다. 어제 아침 이후 첫 끼라 그런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밥을 다 먹고 일회용 용기라도 씻어 두려 싱크대에 갔지만 세제도 수세미도 아무것도 없었다. 두산은 여기서 잠만 잤나 보았다.
시장 볼 것투성이였다. 수일은 수첩 한 장을 찢어 필요한 걸 적었다. 밑반찬도 하나도 없으니 사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수일은 요리를 할 줄 몰랐다. 제일 싼 라면이 주식이었고, 가끔 밥에 김치나 얹어 먹었다. 그러다 돈이 좀 생기면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다 먹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때는 기사식당이 주요 끼니 해결 장소였다.
수일이 돈도 잘 벌고 잘 먹고 다녔을 때는 호스트바에서 일할 때였다. 그때를 그리워한 적은 없지만, 자기도 빛났을 때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무협지도 <드래곤볼>도 없었다. 라디오도 없었다. 수일은 TV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적막강산이라 어쩔 수 없이 TV를 틀어 놓았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즈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수일은 쪼르르 달려 나갔다.
“왔어?”
수일은 두산이 반가워 환하게 웃었다. 두산이 두 팔을 벌렸다.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보는 사람이 없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수일은 두산에게 안겼다.
“마이 기다맀나?”
“응.”
“뽀뽀.”
두산은 능글맞게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좀 얄미워서 입술을 꼬집었다.
“아아.”
“너 체인은 왜 걸어 놓고 갔니?”
“도둑때메 그라지. 니 봤제? 근처에 술집이 천치빼까리 아이가. 또라이들이 술 처먹다가 여 들어와서 훔치 가고 그란다. 아래층에는 강도도 들었었고.”
두산이 정색하고 말하는 통에 수일은 알았어, 하고 말았다. 강도가 들었다는 말이 왠지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두산은 수일을 꼭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내 보고 싶었나?”
“아니.”
수일이 웃었다.
“그라지 말고. 내 보고 싶었나?”
묻는 눈이 진지했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두산은 씨익 웃고 다시 입을 맞췄다. 키스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과감하게 혀를 밀어 넣고 일부러 소리 내 입술을 빨았다. 쭙쭙 빨아들이는 소리가 장난스럽게 들렸다.
“근데 집에 아무것도 없어.”
“머 필요하노? 내 사오께.”
“그러지 말구, 같이 사러 갈래? 내가 살 거 적어 놨는데.”
수일은 추리닝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내밀었다. 두산이 그런 수일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왜?”
“좋아서.”
정말 좋은지 두산은 눈을 휘어 웃었다. 쪽쪽 소리를 내며 온 얼굴에 입을 맞췄다. 간지러웠다.
“왜 그래?”
“이래 좋을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델꼬 사는 긴데. 내 평생 니한테 잘 하께.”
두산은 들뜬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입을 맞췄다. 입을 맞추면서도 올라가는 광대와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평생 잘하겠다는 말에, 두산의 들뜬 표정에, 수일은 심장이 얼어붙었다. 수일은 어제부터 도망갈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두산은 자기와 평생 살 생각을 했다. 두산에게 크나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돈이고 뭐고 당장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두산에게 괜한 기대를 심어 주고 싶지 않았다. 겨우 20일 만난 것 가지고, 평생의 사랑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 떨 필요가 없었다.
두산은 아직 어렸고, 얼마든지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마 처음에야 제 성격을 못 이겨 분해하겠지만 곧 수일을 잊고 자기 또래의 멋지고 빛나는 사람을 만나리라.
수일은 80만 원이 든 통장만 챙겨서 오늘 당장 떠나기로 했다. 설마 굶어 죽기야 할까. 아니 굶어 죽어도 상관없었다. 여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고, 당장 죽는다 한들 슬퍼할 사람도 없었다.
수일에겐 좋은 추억이 하나 생겼고, 그걸로도 충분했다.
두산은 수일의 마음도 모르고 이마를 맞대고 싱글싱글 웃었다.
“내 진짜로 니한테 잘 하께. 내가 호강시키 주께.”
철부지 두산은 수일의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코끝에 입을 맞췄다. 입술을 더듬어 키스했다. 최대한 부드럽게 수일의 입술을 비비고 입을 열었다. 혀끝으로 입술 모양대로 핥았다.
“내 하고 싶다.”
“나두.”
수일은 마지막으로 두산에게 안기고 싶었다. 두 팔로 두산을 꼭 끌어안았다. 어깨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았다.
고개를 들어 두산의 얼굴을 보았다. 손끝으로 두산의 짙은 눈썹을 쓰다듬었다. 뱀 같던 눈이 휘어지며 소년같이 변했다. 긴 눈꼬리를 만지고, 잘생긴 코를 더듬고, 크고 도톰한 아랫입술을 쓸었다.
수일은 환하게 웃었다. 두산에게 제일 예쁜 모습을 남겨 주고 싶었다. 우는 얼굴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기억되고 싶었다.
안녕히 계세요. 잘 살아요.
수일은 마음속으로 두산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수일은 꼼꼼히 몸을 씻었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눈물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고 또 참았다. 두산이 알아챌까 봐 수일은 울지도 못했다. 일부러 밝은 생각, 좋은 생각만 하려고 했다. 이도 두 번이나 닦고, 구멍 안으로도 손가락을 넣어 여러 번 뒷물을 했다.
샤워를 끝내고 거울 앞에 섰다. 더운 김으로 뿌연 거울을 멀쩡한 손으로 쓱쓱 닦아 냈다. 참으로 복 없게 생긴 남자가 퀭한 눈을 하고 서 있었다.
이렇게 생겼으니 인생이 안 풀리지.
수일은 자조 섞인 웃음을 웃었다.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 젖은 머리를 닦았다. 그리고 알몸으로 침실로 향했다. 두산은 침대에 앉아 있다가 벗은 수일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수일을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급하게 입술을 열어 혀를 밀어 넣었다.
자세를 바꿔 수일의 위에 올라타고는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흥분한 혀는 수일의 입 안을 휘젓고 다녔다. 입천장부터 잇몸, 입 안 점막, 혀 아래까지 안 닿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수일의 혀를 입술로 물어 당겼다가 빨았다. 잡아먹을 듯 ‘츄릅’ 하고 온 압력을 다해 빨아 당겼다.
“내도 씻고 오께.”
“괜찮아. 다친 데 물 들어가니까 그냥 해.”
“꼬치라도 씻으야지. 기다리라.”
두산은 수일에게 입을 맞추고 방을 나섰다. 급하게 바지를 벗고 팬티를 내리면서 나가는 모습에 수일은 웃었다.
꼬치만 씻고 온다더니 두산은 온몸이 젖은 채로 들어왔다. 다친 왼손도 배에 새로 감은 듯 보이는 붕대도 모두 젖어 있었다. 몸에선 자기와 같은 비누 냄새가 났다.
“바보. 상처에 물 닿으면 안 되는 거 모르니?”
수일은 인상을 쓰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수건 갖고 올게.”
“개안타. 하고 나서 병원 가면 된다.”
두산은 수일을 못 나가게 막고, 싱글벙글 웃으며 화장대 서랍장을 열었다. 거기서 예쁜 병에 담긴 무언가를 꺼냈다. 오일이었다. 뚜껑을 열어 수일의 코에 갖다 댔다.
“냄새 직이제? 특별히 부탁해서 산기다.”
꽃향기가 났다.
“니 기분 좋으라꼬.”
두산은 이러면서 오른손에 가득 오일을 부어 건조한 수일의 몸에 쓱쓱 발랐다.
“간지러워.”
수일이 몸을 피하며 웃었다.
두산은 침대밖에 선 채로 잔뜩 발기했다. 수일은 몸을 엎드렸다. 꽃향기가 나는 커다란 손이 수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수일은 두산을 올려다본 다음 고개를 숙여 발기한 성기를 손도 대지 않고 뿌리부터 살살 핥아 올라갔다.
“헙!”
두산은 몸을 떨었다. 커다란 손이 수일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수일은 개처럼 엎드려 귀두를 할짝댔다. 그럴 때마다 스프링처럼 자지가 앞뒤로 심하게 흔들렸고, 갈라진 틈에선 투명한 액이 사정이라도 하는 양 쏟아져 나왔다. 어찌나 발딱 섰는지 배를 감싼 붕대 위까지 바짝 붙어 흔들렸다.
수일은 두산의 허리를 안고 입 안에 귀두를 밀어 넣었다. 입 안 가득 빈틈없이 꽉 찼다. 입 안으로 쿠퍼액이 흘러들었다. 이로 긁지 않으려 입술을 잔뜩 오므렸지만 워낙 커서 소용이 없었다.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져 압박감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수일은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입 안으로 넣고 또 넣었다. 턱으로 침이 줄줄 흘렀다.
“수일아, 흐읍! 억수로 좋다.”
수일의 머리카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헉헉대는 두산의 숨소리와 신음이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씨발, 내 진짜로, 니밖에 읍따.”
자기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어떤 눈을 하고 있을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수일은 턱이 아리도록 펠라티오를 했고, 두산은 쉽게 사정하지 않았다.
입 안에서 더 커지는지 수일은 숨도 쉬기 어려워 결국 성기를 뱉었다. 질질 흐르는 침을 닦기도 전에 두산은 거칠게 수일을 뒤로 밀고 바로 올라탔다. 수일에게 입을 맞추면서 손으론 구멍을 찾았다. 건조한 구멍에 오일을 찾아 들이부었다. 향긋한 꽃향기가 방 안에 가득했다.
두산은 수일의 엉덩이에 얼굴을 묻었다. 입술로 엉덩이 살을 물고 힘차게 빨아들였다. 어찌나 세게 빠는지 수일은 아파서 인상을 썼다. 두산은 혀를 내밀어 엉덩이 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끊임없이 핥았다. 혀를 세워 잔주름을 간지럽혔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연 다음, 그 안으로 혀를 비집어 넣었다.
“읏!”
수일의 허리가 튕겨 올랐다. 두산은 수일의 두 다리를 위로 밀고 팔로 내리눌렀다. 제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수일의 다리가 들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덩이를 깐 채 두산의 애무를 받았다. 주름을 문지르던 혀 대신 손가락이 들어오자, 손끝을 타고 미끈한 액체도 함께 들어왔다. 손가락이 주름 안 점막을 훑었다.
“하윽. 으, 으응!”
수일의 몸이 자극에 움찔했다. 두산은 몸을 일으켜 수일에게 키스했다. 수일은 한숨 같은 신음을 뱉으며 다리를 더 벌리고 입으론 두산의 혀를 받았다. 아래로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왔다. 농밀한 키스 때문인지 아니면 예민한 점막이 자극을 받아선지 수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일의 입에선 연신 신음이 흘렀고, 두산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두산이 무릎을 세우고 수일의 엉덩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멀쩡하던 붕대에 피가 맺혔다.
“상처 터졌나 봐.”
수일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안 아프니?”
“어. 한 개도 안 아프다. 내 드간다.”
수일을 보고 씩 웃고, 구멍에다 제 자지를 들이밀었다. 구멍에 억지로 대가리를 끼워 넣고 몸을 구부리자 수일의 가슴에 두산의 가슴이 맞닿았다. 저런 자세라면 상처가 더 벌어질 것 같아 걱정되었다.
“내가 할게. 너 그냥 누워 있어.”
수일의 말에 두산이 눈을 번뜩였다. 격렬하게 입술을 비비고 키스를 했다. 그러더니 옆으로 발라당 드러누웠다.
“빨리 온나. 내 급하다.”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누워 있던 수일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등을 돌려 두산의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일단은 두산의 하체를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무릎을 세운 자세로 쪼그려 앉았다. 한 손으로 두산의 성기를 잡아 내린 다음 엉덩이에 갖다 댔다. 두산이 상체를 조금 세웠다.
“내 도아주까?”
“응.”
올라타긴 탔는데, 해 본 적이 없어서 헤맸다. 유연성도 없어서 허리를 돌려 뒤를 보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두산은 몸을 앞으로 당겨 수일의 등을 안다시피 했다. 그리고 성기가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손으로 잡아 주었다.
“앉아라.”
“지금?”
“어.”
“안 들어가는데?”
“쑥 앉아야지.”
수일은 몸을 내려 앉았지만, 커다란 귀두가 입구에서 헛돌았다.
“겁먹지 말고, 옳지. 더 쑥 앉아야지.”
수일은 두산의 말에 눈을 질끈 감고 앉았다. 순간, 대가리뿐 아니라 성기까지 한꺼번에 안으로 들어왔다. 몸 안의 장기들이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해 난리가 났다. 구멍도 미친 듯이 움찔거렸고, 수일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아아!”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두산이 슬쩍 어깨를 밀어 못 올라오게 했다.
“아파, 누르지 마.”
수일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두산의 손이 앞으로 들어와 수일의 자지를 조몰락댔다.
“이제 쫌 개안체?”
두산은 수일의 귀두 끝을 엄지로 쓸면서 압력을 가해 몇 번 쳐 냈다. 고통에 풀이 죽어 있던 수일의 성기가 조금씩 부풀었고, 수일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
수일은 엉덩이를 조금씩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파서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터졌다. 아픈 수일과 달리 두산은 좋다고 난리였다. 수일의 등과 어깨에 쪽쪽 입을 맞췄다. 상체를 당겨 두 팔로 수일을 꼭 끌어안았다.
수일은 쪼그린 자세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조금씩 조금씩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하자, 안에 있던 두산의 것이 밀려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구멍에 대가리가 닿을 때쯤 다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허읍!”
엉덩이를 움직일 때마다 두산은 앓는 소리를 냈다. 두산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아쉬웠다. 근육질의 팔로 수일의 허리를 잡고, 한 손으론 수일의 것을 끊임없이 만졌다. 수일은 제 다리보다 튼튼한 두산의 팔을 꼭 쥐었다.
“씨발, 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읍따.”
팔십 먹은 노인네처럼 말을 하는 통에 수일은 아픈 와중에 웃었다.
“웃지 마라, 흐읏! 내 진짜로 좋아서 그란다.”
두산의 신음이 더 깊어졌다.
수일은 아무리 움직여도 아프기만 했다. 두산이 해 줄 땐 좋아서 삽입만으로도 절정에 올랐건만, 뭘 잘못하고 있는지 도무지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서는가 싶던 제 성기도 다시 시무룩해졌다.
“두산아, 근데 나 너무 아파.”
수일은 엉덩이를 움직이다가 멈췄다. 정말 아팠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프면 빼야지. 니 몸 상한다.”
두산은 제 손으로 수일의 구멍에 있던 자지를 빼냈다. 수일은 힘들어서 두산의 허벅지를 짚었다.
“애썼다. 이리 온나.”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두산은 상체를 일으켜 수일을 돌려 앉혔다. 다시 한번 애썼다며 수일을 안아 주었다. 위에 올라가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장하다는 듯 수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수일을 눕히더니 위에 올라탔다. 올라타자마자 곧장 수일의 엉덩이를 거머쥐었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찾아 바로 삽입했다.
“…으으….”
수일은 두 다리로 두산의 허리를 안았다. 발에 붕대가 닿았다.
“이러다 너 상처 터져.”
“개안타. 트지면 또 꼬매면 된다.”
두산은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을 하고, 몸을 숙여 수일의 상체를 빈틈없이 안았다. 그러더니 허리를 움직였다. 침대가 들썩이며 수일의 안으로 성기가 빠른 속도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아!!!”
수일은 갑자기 들이치는 성기의 압박에 비명을 지르며 두산의 목을 끌어안았다. 더 깊이 들어오지 못하게 몸을 틀어 보았지만, 두산은 두 팔로 더 세게 안았다. 꼼짝없이 두산의 품에 갇힌 수일은 연신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가 이로 깨물었다.
점점 삽입이 깊어지더니 성기가 순식간에 수일이 느끼는 곳을 찔러 왔다. 수일은 뜨거운 것에 데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 히익 소리를 냈다. 그대로 목을 뒤로 젖혔다. 수일이 느끼는 걸 알자마자, 두산은 잘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가 출렁댔다. 수일의 몸도 출렁거렸다.
“수일아, 좋나?”
“응!! 좋아, 아읏! 좋아, 죽을 것 같애.”
“내도, 씨발, 억수로 좋다.”
수일은 두산의 얼굴을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이제야 얼굴이 보였다. 발정이 난 두산의 얼굴과 뱀같이 번들거리는 눈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아직도 자기를 이토록 원하는구나 싶어 안도했다.
절정에 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깐 서지도 않던 수일의 것이 이번엔 손도 안 댔는데 정액을 쏟아 냈다. 두산은 조금 더 버티다 사정했다. 사정 후에도 두산은 몇 번이고 수일의 안으로 깊게 들어왔다 나가며 제 것에 남은 정액을 흩뿌렸다.
수일은 하염없이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허리를 안았던 다리가 힘없이 벌어졌다. 두산은 뜨거운 손바닥으로 수일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살살 달랬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꼭 끌어안았다. 입을 맞추고 키스를 했다. 두산이 다정한 눈으로 수일을 바라보았다.
“우째 이래 속궁합이 잘 맞지? 내 열네 살 때부터 가시나들 따묵고 댕깄는데, 수일이 니가 제일이다. 제일 좋다.”
“저질.”
다정한 눈을 하길래 뭔가 근사한 말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고작 속궁합 얘기였다. 수일은 그게 너무 두산다워서 피식 웃었다.
수일은 아직도 숨이 가빠 간간이 신음을 뱉었다. 그런 수일을 빤히 쳐다보던 두산은 볼에 뽀뽀를 했다. 눈에도 하고 코끝에도 하고 입술에도 했다. 수일은 간지러워 고개를 피하며 웃었다. 두산이 입을 맞췄다. 수일도 쪽 소리가 나게 두산에게 입을 맞추었다. 혀를 얽고 섞으며 키득거렸다.
두산은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워 보였다. 수일은 마지막 섹스가 기분 좋게 끝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두산의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입을 맞췄다.
스물다섯의 두산을 기억하려 오래도록 얼굴을 보고 또 봤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볼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울고 싶더니 수일은 이제 웃었다.
잘 살아요.
하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우리 시장 보러 가자.”
“마트 가까?”
“아니. 재래시장. 거기서 밑반찬도 좀 사구, 과일도 좀 사구. 구경도 하고 싶어.”
“어. 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
두산은 먼저 일어나 티슈로 쓱쓱 정액을 닦아 내고, 수일의 몸에 남은 흔적도 제 손으로 직접 닦아 주었다. 수일의 안에서 정액이 흐르는 걸 보는 게 좋은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일은 얼굴을 붉히며 두산의 손에서 티슈를 뺏어 직접 밑을 닦았다.
두산이 먼저 옷방으로 가 옷을 입었다.
“내 삐삐 쫌 확인하께.”
“응.”
두산은 청바지에 흰색 폴로 티셔츠를 입었다. 그 모습에 수일은 두산을 빨아 주고 사장에게 받은 용돈으로 목욕하고 이발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부산에 내려온 이튿날이었다.
돈이 없었던 수일은 그 돈조차 감사해서 기분이 좋았었다. 두산은 그날 지금과 똑같은 옷을 입고 혼자 걸어가던 수일을 불러 세웠다. 수일에게 처음 보는 초록색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그날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땐 정말 이럴 줄 몰랐다. 이렇게 이 남자에게 빠질 줄을 몰랐었다.
수일은 두산이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는 동안 두산이 사 준 셔츠 중 얌전한 걸 하나 입고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었다. 바지 뒤춤에 통장을 넣고 도장도 주머니에 넣었다. 삼락 형님에게 소개비를 주려 현금을 넣어 둔 봉투도 챙겼다.
수일이 거실로 나가자 음성을 확인하고 있던 두산이 수일을 훑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거 말고, 했다.
“응?”
“딴 거 입으라.”
“뭐 입어?”
“내 꺼랑 똑같은 거.”
두산이 입은 것과 같은 걸 입으려니 좀 그랬다.
“그냥 다른 거 입을까?”
“내 꺼랑 똑같은 거 입으라.”
수일은 하는 수 없이 흰색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우겨서 100 사이즈로 산 셔츠는 남의 옷처럼 컸다.
“난중에 내 꺼 함 입어볼래?”
은근한 눈을 하고 수일을 보던 두산이 말했다.
“내가 니 껄 왜 입니? 지금 이것도 큰데.”
“그라니까. 내 꺼 입어보라꼬. 팬티는 벗고.”
무슨 상상을 하는지 두산은 두툼한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능글능글 입꼬리를 올렸다. 수일은 입을 실룩이며, 두산을 흘겨보았다.
“변태.”
“그게 와 변태고. 레이스 브라자 이런 거 입으라는 것도 아인데.”
두산은 수일의 뒤를 쫓으며 구시렁댔다.
“안 입어.”
“내가 입히끼다.”
“싫어.”
현관문을 열고 먼저 집을 나섰다. 두산은 뒤쫓아 오며 웃었다.
“안 입으면 브라자 입히삔다. 알아서 해라.”
말투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수일은 체인이 걸린 대문 앞에 서서 두산을 돌아보았다. 두산은 느긋하게 자물쇠를 열고 체인을 풀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쇳소리에 수일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기 시작했다. 점점 박동이 빨라졌다. 어찌나 빨리 뛰는지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산은 수일을 데리고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일요일이라 무척 붐볐다. 수일은 두산에게 메모지를 넘겨 주고 하나씩 필요한 걸 샀다.
“넌 무슨 반찬 제일 좋아하니?”
“내는 아무거나 잘 묵지. 니 좋은 거로 사라.”
머리가 복잡해 뭘 사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수일은 눈에 보이는 소고기 장조림과 무말랭이무침을 샀다. 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두산은 수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가 허리를 잡았다가 했다. 워낙 사람이 많아 나란히 걷기 힘들어지자, 수일의 뒤를 바짝 따라왔다.
“두산아, 나 화장실 좀.”
“어 갔다 온나.”
“거기 서 있지 말구, 과일 좀 살래? 나 먹고 싶은데.”
“복숭아 사까?”
“응. 복숭아 사 줘.”
“알았다.”
두산은 과일상이 있는 곳으로 갔고, 수일은 화장실로 향하는 척했다.
두산이 등을 돌리는 순간, 수일은 두산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수일은 뛰고 또 뛰었다. 큰 도로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타자마자 몸을 숙였다.
수일은 진주로 가자고 했다. 삼락 형님의 고향이란 것 말곤 하나도 몰랐지만 부산에 있는 터미널은 위험했다. 갑자기 그곳이 떠올랐다. 5만 원에 기사와 합의를 보고 진주로 향했다.
수일은 시트에 바짝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숨을 고르고 나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았다. 슬픔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수일은 헉헉대며 가슴을 쳤다.
“손님, 개안습니까? 먼 일 있어예?”
“아니요. 아무 일, 없어요.”
수일은 겨우 그렇게만 말했다.
택시 기사는 수일을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백미러로 흘끔 쳐다보다 안타까운지 화장지를 내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예, 세월이 약입니다.”
기사의 말에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일은 세월이 약이란 말을 믿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무뎌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속이 곪아 터지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수일은 여태 그렇게 살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 죽을 테지만, 그래도 기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수일은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입에서 미처 쏟아 내지 못한 울음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왔다.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며 자신을 달랬다. 평생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라며 슬픔을 삼켰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려 택시는 진주시로 들어섰다. 수일은 봉투에서 5만 원을 꺼냈다.
“기사님, 혹시 근처에 여관이 있나요?”
“그라믄 내리지 말고 타이소. 내 그까지 공짜로 태아주께.”
친절한 기사는 숙박업소가 밀집한 골목에 수일을 내려 주고 갔다.
수일은 근처 슈퍼에서 소주 다섯 병을 샀다. 그리고 아무 여관이나 발 닿는 곳에 들어가 값을 치르고 방문을 닫았다.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엎드려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보다 더 슬피 울었다. 짐승같이 비명을 지르고 방바닥을 굴렀다. 한참을 울다가 지쳐 겨우 숨만 쉬었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수일은 컥컥댔다.
그러다 소주를 깠다. 한 병을 마시고 두 병을 마셔도 정신이 멀쩡했다. 제 안에 여전히 남은 두산의 냄새와 감각에 수일을 무릎을 끌어안았다. 다시 술을 한 병 더 마셨다.
조금씩 취기가 올랐다. 수일은 네 병째 소주를 들이켜다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대로 죽었으면.
수일에겐 더는 썩어 문드러질 속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