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81)

급체했는지 아니면 열사병에라도 걸린 건지 수일은 토할 것도 없는데 계속 구역질을 했다. 몸에 열이 올랐다. 병원에 가자는 두산을 겨우 말리고, 아스피린과 소화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익숙한 장미 무늬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수일은 안도했다. 그러다 어제 일을 나가지 않은 것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마 위에서 축축이 젖은 수건이 떨어져 내렸다. 옆엔 세숫대야가 있고, 두산은 수일의 발밑에서 대자로 잠이 들었다.

밤새 간호를 한 걸까?

수일은 젖은 수건을 치운 뒤, 두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집에만 오면 옷을 다 벗는 게 습관인지 와중에도 두산은 팬티 차림이었다. 수일은 피식 웃었다.

두산의 배 위에 이불을 덮어 주고,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동생들도 꿈나라였다. 방이 있어도 늘 거실에서 같이 엉켜 잠이 들었다. 하나하나 너무 익숙하고 정겨운 얼굴이었다. 수일은 가만 서서 그 얼굴을 내려다보다 욕실로 향했다.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추리닝 대신 면바지에 낡은 셔츠를 걸치고 수첩을 들었다.

곤히 잠든 두산은 그새 더 타서 얼굴이고 몸이고 건강한 구릿빛이었다. 수일은 슬쩍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섰다.

공중전화로 가 지난번 걸다 만 번호를 눌렀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수일은 볼펜으로 연락처에 선을 그었다.

이번엔 수확이 적었다. 열 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은 사람은 둘밖에 없었다. 11시 반이라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닌데 날을 잘못 잡았나 보았다. 수일은 전화 받은 사람 옆에 작은 동그라미를 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한숨을 쉬고 뻐근한 다리를 톡톡 두들겼다.

숙소로 돌아가니 두산이 일어나 있었다.

“어데 갔다 오노?”

“요 앞 슈퍼에.”

“필요한 거 있으믄 내 깨우지.”

“뭐 하러.”

“몸은 개안나?”

“응.”

두산은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했다.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두 팔을 벌렸다. 수일은 웃으며 두산의 품 안에 안겼다. 두산은 무릎 위에 수일을 앉히고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주고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수일은 얼굴을 붉혔다.

“왜?”

“어데서 이른기 나왔으꼬?”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지만, 나이도 어린 게 자꾸 영감님 같은 소리를 했다. 수일은 검지로 두산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

“정말 버릇없어.”

“내는 입으로 때리는 기 좋은데. 엉댕이로 때리도 좋고.”

능글능글, 하여간 못 하는 말이 없었다.

두산은 씨익 웃으며 입을 맞춰 왔다. 촉촉하고 뜨거운 입술이 느껴지자 마음이 뭉클해졌다. 수일은 고개를 살짝 틀어 입을 벌렸다.

부드러운 키스를 예상했는데, 두산이 덤볐다. 물어뜯듯 거친 키스에 수일은 당황했다. 두산은 입술을 삼키고 혀를 깨물었다. 입술을 꼭 맞추다 못해 힘으로 밀어붙여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수일이 고개를 비틀면 곧장 쫓아왔다. 침이 흘렀지만 삼킬 여유조차 없었다.

“으음….”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새 나왔다. 수일은 두산의 어깨를 꼭 쥐었다. 두산은 만족할 때까지 수일의 입술과 혀를 탐했다. 간신히 입술이 떨어지자, 삼키지 못한 침이 턱으로 흘러내렸다. 두산이 길게 혀를 빼고 쓱쓱 턱을 핥아 올렸다.

두산은 숨을 몰아쉬는 수일을 훑었다. 쪽쪽 마무리하듯 가볍게 입을 맞췄다. 고개를 숙이려는 수일의 턱을 잡고 눈을 마주 봤다.

“혼자 어데 가지 마라. 알았나?”

“응.”

공중전화에 간 걸 또 들킨 듯해서 심장이 마구 뛰었다. 수첩이 든 주머니가 무겁게 느껴졌다.

“대답은 잘한다.”

두산은 이마를 콩 찧고 웃었다. 수일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어제 그렇게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 배고파.”

“내 퍼뜩 가서 죽 사오께.”

“흰죽 말구.”

“알아따. 전복죽 사오께.”

수일은 두산의 무릎에서 내려와 옷 입는 걸 올려다보았다.

“두산아. 너 나랑 한 뒤에도 혜숙 씨랑 잤니?”

무슨 용기에 이런 걸 물었나 몰랐다. 말을 뱉자마자 바로 후회를 했다.

“안 잤는데. 와?”

두산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니, 그냥.”

“씨발, 꼴리드나?”

언성이 높아졌다. 두산은 옷을 입다 말고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눈빛이 사나워 수일은 두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정말 그런 거 아냐. 너랑 사귀었다길래 궁금해서….”

수일은 잔뜩 기가 죽어 말꼬리를 흐렸다. 왜 일을 사서 만드는지 한심했다.

“핸수 행님한테 들었나?”

화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두산이 물었다.

“응.”

“씨발, 그 새끼는 와 그라노?”

“…….”

“그 행님 말 다 믿지 마라. 내 니 만나기 전에 혜숙이랑 자기는 잤는데 그 가시나 강재욱이 깔이다.”

두산은 윗도리를 입고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내 갔다오께.”

“응.”

수일은 혜숙이 강재욱의 애인이란 말에 놀랐다. 강재욱의 애인이라면 거기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왜 현수는 수일에게 그런 거짓말을 한 걸까? 그는 마치 두산과 혜숙의 관계가 진행형인 것처럼 말했었다.

혜숙도 이상했다. 제 애인을 앞에 두고 겁도 없이 두산에게 애정을 드러냈다. 당장 두산만 해도 누가 자기 걸 건드리거나 뺏는 걸 싫어했고 질투가 많았다. 하물며 강재욱이라고 다를까? 두 사람은 닮았다. 혜숙인 그러고도 괜찮은 걸까?

수일이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머리가 아팠다.

그러다 수일은 위에서 저를 보며 웃던 현수의 얼굴이 생각나 어깨를 움츠렸다. 소름이 돋았다. 현수는 수일이 만난 그 누구보다 기분 나쁜 남자였다.

동생들이 한둘 일어나 점심을 준비했다. 수일은 동생들 틈에 끼어 보다 만 <드래곤볼>을 펼쳤다. 지난주부터 숙소엔 스포츠 신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현철이 웬일로 집에 있었다.

“행님, 은제 시간 되십니까? 정애가 식사 대접 하고 싶다꼬 난린데.”

현철은 수일의 옆에 바짝 붙어 나지막이 속삭였다.

“전 아무 때나 괜찮아요.”

“정애가 그날 느무 긴장해가꼬 한마디도 몬 해따고 억수로 미안해합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말주변이 없어서. 제가 더 미안해요.”

“아이고, 아이라예. 행님, 그라믄 두사이랑 상의해서 날짜 잡겠습니다.”

“네. 그르세요.”

그러고 보니 현철의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다. 머리를 기르는지 앞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정말 결혼 준비 중인가 보았다. 수일은 작고 얌전하던 정애 씨를 떠올렸다.

두산이 죽을 사 왔다. 수일은 동생들과 한 상에서 전복죽을 먹었고, 두산은 동생들이 차려 주는 밥을 먹었다. 어제 야유회보다 백배 천배는 편하고 즐거웠다.

요즘 들어 밥상엔 야구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어제는 롯데가 오비베어스에 6점을 내고 완승을 했다며 흥분했다. 올핸 가을 야구를 하는 거 아니냐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저마다 떠들었다. 괴물 신인 염종석은 추앙을 받았고, 빙그레 송진우와 장종훈 얘기도 늘 화제에 올랐다.

롯데는 오늘부터 빙그레와 원정 3연전이 있었다. 야구광인 영수는 내일 휴가를 내고 청주 구장까지 경기를 보러 간다고 했다. 하지만 야구보단 애인과 1박을 할 생각에 더 들떠 보였다.

“영수 니 사고 치지 마라. 니 아직 열아홉이다. 알았나?”

최고참인 현철이 한마디 했다. 영수는 입이 귀에 걸려 건성으로 네, 하고 답했다.

밥을 먹고 수일은 병원에 가서 실밥을 뽑았다. 의사 선생님은 수일의 발을 보고 얼굴도 살폈다.

“다친 데는 더 읍네예.”

멍들고 찢어진 것만 보다 멀쩡한 수일을 보니 신기한지 의사는 요리조리 수일을 보았다.

“네. 덕분에.”

“몸조심 하이소. 병원은 안 오는 기 제일 좋습니다.”

의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수일은 감사 인사를 했다. 의사는 마지막까지 두산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골목을 걸었다.

“은아 누님이랑 삼락 형님이랑 같이 저녁 먹을까?”

“그라고 싶나?”

“응. 은아 누님이랑은 한 번도 먹은 적 없잖아. 삼락 형님도 딱 한 번이었고.”

“알았다. 내가 알아서 하께.”

“고마워.”

수일은 두산의 손을 슬쩍 잡았다. 두산이 손깍지를 꼈다.

“머 무까?”

“너 좋은 걸루.”

“족발 무까?”

“응.”

두산은 엄지로 수일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간질간질 기분이 좋았다. 수일은 두산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두산이 바로 입을 맞췄다. 수일은 당황해 두산을 밀어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낮 시간대라 인적이 드물었다.

“왜 그래? 누가 보면 어쩌려고?”

“보믄 또 어떻노?”

“그래두.”

수일은 얼굴이 벌게진 채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두산은 입꼬리를 올려 웃고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엔 키스였다. 도망갈 수 없게 깍지 낀 손을 꽉 그러쥐고, 한 손으론 수일의 얼굴을 잡았다.

두산은 과감하게 혀까지 넣었다. 그만하라는 소리가 두산의 입에 막혔다.

“…하아….”

대낮에, 그것도 탁 트인 공간에서 두산은 발정 난 눈을 했다. 수일은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평범한 키스인데도 더 짜릿하고 흥분됐다. 수일도 이제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발끝을 올려 두산에게 입을 맞췄다. 두산은 피하는 척하더니, 수일의 몸이 휘청거릴 때쯤 입술을 맞부딪혀 왔다. 과감하게 혀를 내밀고 쪽쪽 소리까지 내 가며 키스했다. 몸이 달았다.

“내 하고 싶다.”

“나두.”

두산은 씨익 웃고 수일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서둘러 제일 가까운 호텔로 향했다. 이름만 호텔인 곳이었지만 근처엔 이것밖에 없었다. 여관이라도 상관없건만 두산은 싸구려라도 호텔로 수일을 데려갔다.

두산은 여느 때처럼 몸을 닦지 않고 바로 수일에게 달려들었다.

귀부터 목덜미까지 짧은 키스와 애무를 하고, 입술을 내려 납작한 가슴을 쪽쪽 빨아 유두를 세웠다. 유륜 주위를 혀로 세워 돌리고 유두를 쪽 빨아올리자, 수일은 야릇한 자극에 몸을 비틀었다. 여자도 아닌데 왜 이리 가슴을 빨리는 게 좋은지 몰랐다. 수일은 여자의 몸은 알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가슴을 빨던 두산이 두 팔을 위로 올리고 겨드랑이에 입술을 묻었다. 혀로 쭈욱 핥아 올리자 전율이 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

수일은 발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두산의 등을 안고 견갑골 아래 움푹한 곳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두산이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탄탄한 근육에 몸이 달았다.

두산은 수일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입술을 비빌 때마다 여린 살들이 수염에 자극을 받았다.

“비비지 마. 따가워.”

“내 수염 깎았다.”

“그래도 따가워.”

“딴 가시나들은 조타꼬 난린데 와 니만 따갑다 카노?”

두산이 아래에 얼굴을 묻은 채 구시렁댔다.

“거기서 말하지 마, 좀.”

“하지 말라는 것도 많다.”

두산은 일부러 더 세게 얼굴을 비벼 댔다.

“아아, 아파.”

수일이 다리를 오므리자, 두산은 발목을 잡아 양쪽으로 크게 벌렸다. 음흉하게 웃으며 가랑이 사이에서 고개를 올렸다.

“살살하께.”

그러더니 수일의 골반을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수일은 공중에 뜬 하체가 부끄러워 무릎을 세우고 발바닥을 붙였다. 수일의 가랑이 사이에 몸을 숙이고 있던 두산은 침대에 드러눕더니 그 상태로 수일의 엉덩이 아래로 기어들어 왔다.

엉덩이에 두산의 얼굴이 닿았다.

“어, 너 뭐 하는 거니?”

수일은 당황해 몸을 비틀었다. 민망해서 죽을 것 같았다. 제 엉덩이가 두산의 얼굴에 닿는 게 너무 부끄러워 발끝으로 침대를 짚고 하체를 더 높였다. 그런 노력이 허무하게 두산은 수일의 골반을 잡아 제 얼굴로 내리눌렀다.

불안한 자세에다 힘도 없어서 수일은 그대로 두산의 얼굴로 무너졌다. 천장을 보고, 벗은 하체를 버둥거렸다. 두산은 그 상태로 수일의 엉덩이를 혀로 핥고 입술로 빨아 당겼다. 온 얼굴로 여린 살들을 비벼 댔다.

곧 혀를 세워 구멍을 애무했다. 흥분으로 허리가 절로 올라갔다. 허리를 세우면 두산이 잡아 내렸다. 아예 올리지 못하게 아랫배를 두 팔로 둘렀다. 수일은 두산의 단단한 두 팔을 꼭 잡았다.

“읏!! 두산아, 자세가 좀. 으흡!”

어느새 신음이 흘렀다. 몸이 달아올라 미칠 것 같았다. 얼른 두산이 들어왔으면 했다. 두산은 그 자세로 끈질기게 수일의 구멍을 풀고 아래에서 빠져나왔다. 두산의 붉은 입술이 침으로 번들거렸다.

눈이 정욕으로 가득했다.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억수로 맛있네.”

이렇게 말을 하고 씨익 웃었다.

두산은 수일의 다리 사이에 몸을 끼우고 두 다리를 하나씩 어깨 위로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내려 눌렀다.

“아아, 다리 아파.”

유연성이 없는 수일은 두산이 체중을 싣자 종아리와 허벅지가 너무 땅겼다. 두산이 웃었다.

“니 체력장 때 앞구르기 뒷구르기 안 했나?”

“그때도 빵점 맞았다, 왜? …아야.”

“엄살은. 그라믄 니 편한 대로 함 해바라.”

“어떻게?”

두산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누운 수일은 낑낑대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두산의 도움으로 어깨 위에 있던 두 다리 중 하나를 내리자 그나마 편해졌다.

“이제 됐나?”

“응.”

“한다.”

“응.”

두산은 피식 웃고, 구멍에다 제 성기를 갖다 밀었다. 대가리가 들어가자 수일은 인상을 썼다. 처음은 늘 아팠다. 아프긴 두산도 마찬가진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두산이 상체를 수일의 가슴과 맞닿을 정도로 숙였다. 인상을 쓰고 고개를 트는 수일의 얼굴을 잡고 자기를 보게 했다. 이마를 맞대고 뜨거운 숨을 뱉어 냈다.

“윽. 니 힘 쫌 빼바라.”

“누르지 마… 무거워.”

수일은 두산이 체중을 실어 내리누르는 바람에 몸이 아팠다. 자세가 불편해 버둥거리자 두산이 베개를 집어 등 아래 놓아 주었다.

“개안나?”

“응.”

숨을 헐떡이고 신음을 뱉으면서도 수일이 괜찮은지 두산은 묻고 또 물었다. 두산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수일은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오늘따라 힘들었다. 잔뜩 열이 올랐는데 몸이 마음만큼 따라 주질 못했다.

수일이 힘들어할 때마다 두산은 키스를 했다. 입을 맞추고 목덜미를 빨아올렸다. 수일이 좋아하는 귀를 애무했다. 혀를 내밀어 눈물을 핥아 주고 입술을 핥았다. 수일은 두산의 어깨를 꽉 쥐었다가 목을 끌어안았다가 했다.

자세 때문인지 아니면 몸 상태 때문인지 두산의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래가 꽉 차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다.

수일이 쩔쩔매는 걸 두산도 느꼈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뽀뽀를 해 주며 달랬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니 안 열릴 것 같던 것이 열리기 시작했다.

두산이 천천히 안으로 깊게 들어왔다. 몸 안의 장기들이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돌아왔다.

“흐응.”

드디어 그곳에 다다르자, 수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열이 오르다 못해 온몸이 펄펄 끓어올랐다.

“눈 감지 말고. 내 바라.”

두산은 발정 난 눈으로 수일을 마주 보고 숨을 헐떡였다. 두산이 잘게 찧기 시작했고 수일의 목이 뒤로 넘어갔다. 두산이 자극하는 이곳이 도대체 몸 안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은 끊기고 쾌락에 몸을 맡겼다.

“흐읍! 씨발, 니 억수로, 맛있다. 니도 맛있나?”

“맛있어. 으응, 두산아… 맛있어.”

수일은 절정에 올랐다. 제 구멍이 먹고 있는 두산의 자지가 맛있다며 소리를 질렀다.

“아흑!”

수일은 사정했다. 온몸을 바르르 떨며 두산의 입술을 급히 찾았다. 구멍이 사정없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두산이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썼다. 수일은 잔류하는 감각에 낑낑댔고, 두산은 열심히 수일의 안을 휘저으며 혀를 빨았다. 입술을 잘근 씹어 먹었다. 두산의 숨소리가 다급해졌다.

“씨발, 수일아, 내 억수로 좋다.”

땀으로 범벅이 된 두산이 수일을 잡아먹을 듯 번뜩이는 눈으로 내려 보았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안고 키스를 했다. 혀로 입천장을 핥고 입 안 점막을 죄다 핥아 나갔다. 싸구려 침대가 삐걱거리며 소음을 냈고, 그 소리에 맞춰 제 구멍에서도 질꺽이는 소리가 났다.

“아흣! 씨발!!!”

두산이 몸을 떨며 사정했다. 뜨끈한 것이 안을 적셨지만 안에 있는 자지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몇 번 더 찧다 빠져나갈 줄 알았던 자지가 한참을 더 안에 머물렀다.

수일은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 안 뺄 거야?”

숨을 고르며 물었다.

“쪼매만 더 있다가.”

“아파.”

“마이 아프나?”

“응.”

두산은 아쉬운 듯 조금 더 머물다가 성기를 빼냈다. 주르륵 구멍에서 정액이 흘러 허벅지와 시트를 적시는 게 느껴졌다. 두산이 몸을 일으켜 앉아 그걸 지켜보았다. 수일의 몸 안에서 제 정액이 나오는 게 좋은 모양인지 입꼬리를 올렸다.

두산은 수일의 옆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침대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모로 누워 수일을 보았다.

“우째 니는 내가 첨이고?”

수일의 젖은 머리카락을 올려 주며 두산이 물었다.

“응?”

“지금도 이래 예쁜데 에릴 때는 더 했을 거 아이가. 근데 우째 내가 첨이냐 이 말이지.”

수일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두산은 정말로 예뻐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수일은 그게 웃겨 피식거렸다.

“니가 이상한 거야.”

“아이그든. 그 새끼들 고자 아이가? 내는 니 보자마자 꼴맀는데.”

두산은 꼴렸다는 말을 하며 수일의 엉덩이를 쓸었다.

“바보. 나 정말루 인기 없었어.”

“와?”

“말도 없고 뻣뻣하고, 도무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들 싫어했어.”

수일은 씁쓸하게 웃었다.

말 그대로 수일의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수일은 제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사람이었고, 표현이 서툴렀다. 잘 웃지도 말하지도 않으니 안 그래도 피곤한 밤무대 생활을 하며 이런 수일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가끔 삼락 형님같이 좋은 사람 한두 명이 수일을 챙겼다. 수일은 그것도 그저 운이 좋았다고 여겼다.

수일을 알아보고 마음속까지 읽은 사람은 두산이 처음이었다. 아버지조차 수일을 잘 몰랐는데 어떻게 두산이, 한참 어린 남자가 자기를 꿰뚫어 보는지 수일은 신기했다.

고작 20일 만에 자신이 변한 걸 수일도 느꼈다. 전보다 잘 울고 잘 웃었다. 감정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했다. 남들에게 서운한 티를 내 본 적도 없는 수일은 두산에겐 서운한 티를 냈고, 싫으면 싫다고 말했다.

뭐가 먹고 싶어도 돈 생각에 지레 포기했는데, 이젠 염치도 없이 비싸고 맛있는 걸 얻어먹었다.

섹스할 때 소리를 낸 것도 두산이 처음이었다.

수일에게 섹스를 가르친 호스트 여사장은 남자가 경박스럽게 신음을 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고객을 즐겁게 해 줘야지 돈 받는 니가 즐거우면 안 된다고 했다. 수일은 그때부터 제대로 된 신음을 낸 적이 없었다. 상대에게 좋았냐고 물은 적은 있어도, 수일 자신이 좋았다고 먼저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두산은 수일에게 좋았냐고 물었고, 자기도 좋았다고 말해 주었다. 늘 괜찮냐고 물었다. 수일이 신음을 흘리면 더 흥분했고 예뻐해 주었다. 수일은 음란한 말들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뱉어 냈다.

두산은 수일을 가만 내려다보다가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내야 그 새끼들한테 감사하지. 니 처녀로 따묵게 도아주고.”

“웃겨. 너두 내가 따먹었거든?”

남자가 처음인 건 두산도 마찬가지였다. 수일의 말에 두산이 인상을 썼다.

“에헤이, 머라카노. 낭군님한테 몬 하는 소리가 읍따.”

노인정에서나 들음직한 말을 두산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수일은 풉, 하고 웃었다. 두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수일의 등을 쓰다듬던 두산이 슬쩍 상체를 일으켰다.

“내꺼 잘 있나 함 보까.”

두산은 무슨 생각인지 씨익 웃었다. 큰 손으로 수일의 등을 쓰다듬고 척추뼈를 따라 허리를 쓸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거머쥐었다. 아직 두산의 정액이 남아 젖은 그곳에 손가락을 문질렀다.

“한 번만 더하자. 내 몬 참겠다.”

수일의 허락은 기다리지 않았다. 두산은 바로 수일의 몸을 타고 올랐다. 발목을 잡아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제 몸쪽으로 확 잡아당겼다. 언제 사정했냐는 듯 발딱 선 거대한 자지가 수일의 가랑이 사이에서 흔들렸다.

수일은 한숨 같은 신음을 뱉었다. 몸을 활짝 열어 두산을 받았다.

두산은 삐삐를 받고 밖으로 나갔고 수일은 호텔에 남아 잠을 청했다. 영 잠이 올 것 같지 않더니, 연이은 섹스에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그러다 두산의 체온에 눈이 떠졌다.

두산은 수일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깼나?”

“응.”

“더 잘래?”

“지금 몇 시야?”

“일곱 시.”

수일은 몸을 일으켰다. 섹스의 여파로 몸이 아팠다. 아직도 제 안에 두산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출근해야지.”

“개안켔나?”

“응.”

두산은 다정한 눈을 하고 수일을 보았다. 수일은 도톰한 두산의 아랫입술을 머금어 쪽 하고 빨아 당겼다.

두산이 웃었다.

“빨라믄 더 세게 빨아야지. 이기 머꼬?”

하더니, 수일의 입술을 앙 하고 물어 온 압력을 다해 쭈우욱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수일은 미간을 구겼다.

“아파.”

“아프기는. 이래 엄살만 늘어가꼬 으데 쓰겠노.”

두산은 수일의 이마를 제 이마로 찧고 키스했다. 부드럽게 입술을 어루만져 주다가 수일의 혀를 삼켰다. 츄룹, 하고 소리를 내며 가볍게 빨아올렸다.

그러다 수일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수일아, 근데 내 한 번만 더하면 안 되겠나?”

수일은 인상을 썼다. 두산을 있는 힘껏 뒤로 밀었다. 물론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싫어. 지금도 아파 죽겠는데, 넌 내 생각은 안 하니?”

“하지. 니 생각하니까 이래 물어보는 거 아이가. 아니었으믄 벌써 열 번도 더 덥칬다.”

두산은 펄쩍 뛰며 수일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수일은 그게 더 얄미워서 한껏 노려보았다. 두산은 수일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 입술을 떼고 수일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삥 둘러 만졌다.

“내는 니캉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하고 싶은데, 니는 와 그게 안 되노?”

두산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고 수일에게 입을 맞췄다. 하고 싶어 죽겠는데 하지 못해 안달이 난 두산은 입맞춤도 아쉬운 듯 쉽게 수일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을 탓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수일은 두산에게 미안했다. 마음속으론 모든 걸 다 줄 수 있다고 해 놓고, 정작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귀한 몸도 아닌데 아프다고 투정이나 했다.

“그렇게 하고 싶어?”

수일은 풀이 죽어 물었다. 두산이 피식 웃더니 수일을 꼭 껴안았다.

“내끼 좀 크나? 하다 보면 니도 안 편해지겠나? 그때까지 내가 쪼매 참으께.”

수일은 두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두산이 큰 손으로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마음껏 응석 부리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는 줄 몰라 수일은 얌전히 안겨만 있었다.

그렇게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낡은 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수일을 두산이 가만 내려다보았다.

“니는 와 내가 사준 거 안 입노?”

“다음에 입을게.”

“다음에 은제?”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아니, 그게 지금 입는 옷도 멀쩡하니까….”

수일은 기가 죽어 웅얼거렸다.

“내 꺼 입으라. 한 번만 더 서울서 가져온 옷 입으면 내 다 찢어삐기다. 알았나?”

“…응.”

“두 번 말 안 한다. 알았나?”

“응.”

수일이 고개를 숙이려 하자 손이 들어왔다. 두산은 검지를 구부려 수일의 턱을 올렸다.

“내 니를 우째야 쓰겠노?”

두산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수일에게 눈을 맞추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놓았다.

수일은 허름한 옷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같이 다니기 창피한 건가 싶었다.

수일은 두산이 사 준 옷을 입기가 너무 아까웠다. 나중에 서울 가서 꼭 필요할 때만 입을 생각이었다. 백화점 영수증이 든 나이키 운동화도 그렇고, 지금 수일이 입고 신기에 마냥 아까웠다. 부산을 떠나면 수일에게 남는 두산의 흔적이라곤 그거밖에 없어서 더 그랬다. 안 입는 게 아니라 차마 못 입는 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두산은 수일을 나무랐다. 수일은 그게 또 서운했다.

나이트에 수일을 내려 준 두산은 리허설이 끝날 때쯤 다시 오겠다고 하고 차를 몰고 나갔다.

수일은 대기실에 무대복을 놓고,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사장실을 찾았다. 노크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안에 없나?

문을 살짝 열었다.

“들어오지 마라.”

사장이 다급히 외쳤다. 사장의 가랑이 사이에 누군가가 있었다. 수일은 당연히 미스 리라 생각했다. 펠라티오를 받고 있었던지 사장은 숨을 헐떡였다.

수일은 얼른 문을 닫고 사장실 앞 벽에 섰다. 밴드의 연주 때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곧 문이 열리고 뜻밖에도 영희가 나왔다. 영희는 수일을 흘겨보고 미간을 구겼다.

“씨발년.”

하고,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욕을 했다. 순간 태욱이 겹쳐 보여 수일은 고개를 숙였다.

안에서 들어온나, 하는 소리에 쭈뼛거리며 걸어갔다. 들어가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무슨 일이고?”

사장은 수일이 보는 앞에서 화장지로 성기를 닦고 테이블 위에 던졌다.

“어제 출근 못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난 또 머라꼬.”

바지 지퍼를 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어제 강 이사한테 얘기 들어따. 니 야유회에서 술을 쫌 마이 맥있는데 탈이 났다카대. 다 지 잘못인께나 하루 이틀 결근해도 머라하지 말라 카드라.”

수일은 사장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강재욱이 전화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두사이 그 새끼는 버릇떼이 업끄로 수일이 니 아프다 딱 이 말만 하고 끊어삤는데, 우리 강 이사는 매너가 우째 그래 좋은지 내가 다 감격해따 아이가. 영희도 강 이사가 붙이주고. 요새 믿음직한 동생이 생기가 내 마음이 든든하다.”

사장은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수일을 쳐다보았다. 수일은 이런 상황이 어색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영희도 강재욱이 붙여 줬다는 말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 남자는 누구길래 갑자기 오성관 일에 관여하는 걸까? 의문은 계속 깊어만 갔다.

“오늘은 일할 수 있겠나? 아프면 하루 더 쉬어도 되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라믄, 수일아, 내가 마이 생각해 봤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사장은 뜸을 들였다.

“수일이 니 피크 타임 함 맡아 볼래? 영희 글마도 잘하긴 하는데 니도 쫌 한다 아이가.”

사장은 수일을 그렇게 못마땅해하더니, 갑자기 황금시간대를 주려 했다.

지금은 영희에게 뺏겼지만, 11시 반은 삼락 형님의 시간이었다. 두산의 입김으로 11시로 옮겨 간 것도 수일은 부담스러웠다. 하물며 황금시간대는 말이 안 됐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근데 저는 11시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최대한 정중하게,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수일의 거절에 사장이 인상을 썼다. 못마땅하다는 듯 수일을 위아래로 훑으며 혀를 찼다.

“니 내 무시하나?”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졌다.

“아닙니다, 사장님.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수일은 고개를 숙이고 연신 아닙니다, 했다.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건만, 사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댔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빨간색 테이블을 발로 찼다. 수일에게 욕을 퍼부었다.

“남들은 내 바짓가랭이 붙잡고 아양을 떨어쌌는데, 니는 머시 그래 잘났노? 좆같은 년, 그 쌍판떼이 믿고 어데 함 설치바라. 두사이 새끼 빨아주고 니가 좋은 꼴 볼 줄 아나? 그 아래 달린 기 보진지 똥구녕인지 잘 모르나본데, 그거 다 찢기바야 니가 정신을 차릴끼다.”

수일은 사장의 폭언에 어쩔 줄을 몰랐다. 도대체 자신의 대답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 저렇게 흥분하고 화를 내는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으악, 씨발! 기분 개 좆같네.”

사장은 다시 테이블을 발로 찼고, 테이블은 반동으로 수일의 앞까지 밀려왔다. 수일은 벌벌 떨었다. 눈물을 참으며 주먹을 꼭 쥐고 이를 악물었다.

“머하노? 나가라.”

“죄송합니다, 사장님.”

“나가라꼬, 씨발년아.”

수일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뒤로 걸어 사장실을 나왔다. 떨리는 몸을 두 팔로 끌어안고 대기실로 가는 대신 뒷문으로 나갔다.

공터엔 사장의 포텐샤 한 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밖은 환했고 뒷골목으로 사람들이 오고 갔다.

부산에 내려온 그 이튿날도 이 공터에 발을 디뎠었다. 두산이 포텐샤에 얽힌 얘기를 했던 게 오래전 일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일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장에게 맞지만 않았다 뿐이지, 그날처럼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수일은 남들처럼 살아 보려 발버둥 쳤다. 자신이 처음부터 바닥에서 시작한 줄도 모르고,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다. 바보같이. 그래 봐야 바닥인데.

눈물이 핑 돌았다.

두산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제 표정을 누구보다 잘 읽는 남자가 가까이 없어 안도했다. 그러다가도 보고 싶었다. 지금은 수일을 창피해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자기를 예쁘다고 말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수일은 뒷골목 슈퍼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었다. 그러다 오성관 식구들이 생각났다. 자기 걸 다 먹고 동생들과 은아 씨, 삼락 형님 그리고 밴드들 몫까지 아이스크림을 샀다.

검은 봉지에 든 걸 하나씩 꺼내 동생들을 주고 홀로 들어갔다. 은아 씨가 이제 막 무대를 끝내고 밴드들과 수다를 떨었다. 수일은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나눠 주었다. 은아 씨는 내려가서 먹겠다며 손을 저었다.

삼락 형님은 홀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수일이 건네는 아이스크림을 반갑게 받았다. 형님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매일 출근을 했다. 꼬박꼬박 사장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당당하던 형님은 이번 일로 많이 위축되어 보였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내? 으데. 어제 술을 마이 마시가꼬 숙치가 와서 그란다.”

형님은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니는 맞은 데는 좀 개안나?”

“안 맞았어요, 형님. 정말이에요.”

“니가 그렇다믄 그런 긴데 너무 참지 마라. 그거 참는다꼬 상 안 준다.”

수일은 네, 하고 힘없이 웃었다.

“누님 이것 드세요.”

“오야. 잘 무께.”

무대에서 내려온 은아 씨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환하게 웃었다.

“오빠 니도 힘 쫌 내라. 세상 다 끝났나?”

“내가 억울해서 그란다. 하필이면 자가용 받는 날 들킸다 아이가. 그거 받고 나서 들킸으면 오죽 좋았겠노.”

“으이그. 자랑이다, 자랑이야.”

은아 씨는 삼락 형님의 등을 세게 때리고 테이블에 앉았다. 삼락 형님은 엄살을 부리며 웃었다.

“두사이가 저녁 묵자 카든데. 니도 오제?”

수일을 보며 은아 씨가 물었다.

“네.”

“글마 그기 돈은 잘 쓴다. 오랜만에 포식 좀 해야그따.”

마스터도 내려와 테이블에 합석했다. 마스터는 벌써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막대를 빨았다.

“두사이 그 새끼 억수로 잘 산다 카든대.”

“맞나? 옷 입고 댕기고 돈 쓰는 거 보이 그래보이드마는. 내는 가가 제일 궁금타. 하는 일도 없는데 사장도 찍 소리 몬 하고. 머 성격이 보통 드러운 기 아이다만.”

“다 헛소문이다. 그래 부자가 만다꼬7) 이런 데서 기도를 하긋노? 생각 쫌 해라 생각 쫌.”

“그것도 글네.”

“그라믄 사채 쓰나? 싹 다 메이커만 입고 댕기든데. 가시나들한테도 돈도 잘 쓰고.”

“사채는 무신. 백사파가 돈이 많다 카드라.”

세 사람은 저들끼리 두산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누구도 두산에 대해 잘 몰랐다. 주워들은 소문을 말하다 어느새 대화 주제가 사장으로 바뀌었다.

수일도 두산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저 밀레니엄이 두산의 일터라는 것과 그곳에 강재욱을 비롯해 뱀 문신을 한 덩치들이 서식한다는 것 정도가 어제 야유회를 통해 알아낸 전부였다.

수일은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딱지처럼 작게 접어 나란히 놓았다. 그사이, 대화는 영희 얘기로 옮겨 갔다. 수일이 어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영희와 은아 씨가 한판 붙은 모양이었다.

“내 진짜 그런 새끼는 또 첨이다. 강 이산지 먼지 그 새끼 빽이 으마으마 한갑대. 지 혼자 있고 싶다꼬 대기실 문 걸어 잠그고 들어가도 몬 하게 했다 아이가. 사장도 그 새끼 편만 들어가, 내 어제 화장실에서 무대 화장하고 옷 갈아입으따.”

수일은 사장실에서 나오던 영희를 떠올렸다. 수일을 보자마자 욕을 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걸 들켜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수일은 태욱처럼 영희도 안쓰러웠다. 이 바닥에서 빽을 잡으려면 삼락 형님처럼 돈 많은 사모를 잡던가 아니면 돈 많은 사장 또는 조폭을 잡아야 했다. 잡는 방법은 몸 로비가 최고였다.

수일은 울적했다. 조금 전까지 사장에게 폭언을 듣고 벌벌 기었다. 저를 꽂아 준 삼락 형님은 이제 눈도장을 찍으려 출근을 했고, 새로 온 영희는 강재욱이란 빽이 있음에도 사장에게 펠라티오를 해 주었다. 누가 더 바닥인지 서로 내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근데 수일이 니 요새 먼 일 있나? 얼굴이 쫌 변했다.”

마스터가 수일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수일은 마른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그렇게 보기 흉해요?”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제 몸이고 얼굴이고 죄다 자신이 없었다. 어제 그 어리고 싱그럽던 두산과 직장 동료들을 본 뒤론 더 그랬다.

마스터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게 아이고, 더 잘생기 짔다꼬.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파리 하이 피죽도 몬 얻어 묵은 거 맨키로 추욱 처져있드마는, 지금은 기름끼도 돌고 보기 좋다 이 말이다.”

수일은 마스터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빈말이라도 듣기 좋았다.

“연애해서 그라지 와 그라겠노?”

“수일이 니 연애하나?”

은아 씨의 말에 마스터와 삼락 형님이 동시에 물었다.

“하모. 여즉 몰랐나? 두사이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 아이가.”

“은아 니 지금 제정신이가? 으데 붙일 데가 없어서 두사이 글마랑 붙이노. 수일이 앞길 막을 일 있나. 하여간 여자들은 안 된다 안돼.”

삼락 형님은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은아 씨는 억울해하며 수일을 보았지만, 수일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괜히 미안했다.

수일은 자신이 두산에게 느끼는 감정이 연애 감정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누가 자기를 예쁘다 하며 원한 적이 없어서 두산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는 건지도 몰랐다. 스스로의 감정조차 이런데 하물며 두산의 감정은 어찌 알겠는가.

사실 물어보기도 겁이 났다. 아니라고 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 날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냥 모른 척 계약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이렇게 잘 지내면 좋겠다고 수일은 바랐다.

수일의 리허설 차례였다. 조금 늦게 와 화장도 못 하고 평상복 차림으로 올랐다. 헐렁한 낡은 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두산의 말이 떠올라 옅은 한숨을 쉬었다.

“수일이 니, 윤수일 노래 말고 따른 것 쫌 불러 바라. 내 그 <동백 아가씨> 참 듣기 좋드라.”

삼락 형님의 요청에 수일이 웃었다. 우울한 형님을 위해 한 곡 뽑는 거야 문제없었다. 마스터가 연주를 시작했다.

은아 씨가 잔치에 놀러 온 할머니처럼 반주에 맞춰 어깨춤을 추었고, 삼락 형님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자에 어긋나는 박수를 치며 은아 씨 주위를 돌았다. 수일은 소리 내 웃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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