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81)

두산은 또 아침부터 부지런히 왔다 갔다 했다.

수일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더 자고 싶었다.

“그만 일나라. 야유회 늦겠다.”

“더 잘 거야.”

“야유회 가서 자라.”

“넌 야유회 갈 거면서 왜 두 번이나 했니?”

수일은 이불을 젖히며 짜증을 냈다.

“야유회하고 두 번 하는 거하고 먼 상관이고?”

“내가 힘들잖아.”

“업어 주께.”

“싫어.”

“와 싫은데?”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업혀?”

“그기 머 어때서. 내 잘 업어 주께.”

두산은 뭐가 문제냐는 듯한 얼굴을 했다. 달래 보겠다고 슬쩍 옆에 누웠지만, 수일은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가자. 늦겠다.”

덩치도 큰 두산이 수일에게 체중을 싣고 몸을 흔들었다. 수일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다리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는 별문제가 못 됐다.

얼굴이 형편없었다. 어제 울고불고 그 난리를 쳤으니 이 정도인 것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얼굴로 두산의 동료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두산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이 닦는 걸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꾸 샤워 가운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수일이 몸을 비틀고 팔꿈치로 쳤지만 밀려나지도 않았다.

“하지 마.”

“한 번만 하자.”

“늦었다며?”

“한 번 할 시간은 있지.”

야유회 가자고 사람을 흔들어 깨울 땐 언제고 그거 할 시간은 있나 보았다. 수일은 거울 속으로 두산을 잔뜩 노려보았다.

“싫어!”

분명 싫다고 했는데, 두산은 어느새 무릎을 꿇었다. 샤워 가운을 젖히고 수일의 엉덩이를 애무했다. 수일은 이를 닦다 말고 세면대를 두 손으로 꽉 쥐었다.

거울 속의 남자가 흥분으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수일은 그 남자가 꼴도 보기 싫어 눈을 감았다.

“흐음….”

두산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몇 시간 전에 거대한 것이 헤집고 다녀서인지 구멍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손가락이 주름을 훑고 가자 수일은 몸을 떨었다.

두산은 열린 그곳을 혀로 입술로 열심히 애무한 뒤 수일의 뒤에 섰다. 샤워 가운이 욕실 바닥에 떨어졌다. 한 손으론 수일의 마른 어깨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론 제 발기한 성기를 구멍에 맞춘 다음 바로 들어왔다.

“아….”

아무리 쉽게 열렸다 한들 아픈 건 똑같았다. 두산의 그 큰 자지가 작아질 리도 없었고.

수일의 몸이 두산의 품에 모두 들어갔다. 뒤에서 덮친 거나 다름없는 자세였다. 두산은 수일의 다리만큼 두꺼운 팔 하나를 가슴에 휘감아 단단히 붙잡았다.

수일은 고개를 돌려 키스를 요구했다. 혀를 길게 빼물고 장난을 치듯 희롱하던 두산은 수일의 옆얼굴에 제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뜨거운 숨결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천천히 해.”

“천천히 한다 아이가.”

“빨라.”

“이기 머시 빠르노?”

두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아아, 천천히.”

“내 천천히 한다.”

말과 달리 두산의 허리 짓이 빨랐다.

안 그래도 세면대 앞이라 어디 도망갈 데도 없는데, 두산이 가슴까지 꽉 잡고 눌러 수일은 정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흣! 깊… 어.”

“안 깊다. 씨발, 내 반도 안 들어, 흐윽, 갔는, 데.”

두산은 평소보다 빠르게 안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일은 전기가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허벅지부터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구멍이 사정없이 조여들었다. 두산이 헐떡이기 시작했다.

몸이 얼마나 뜨겁던지. 안 그래도 제 안을 휘젓고 다니는 것 때문에 열이 오른 수일은 두산의 몸 때문에 델 것 같았다. 섹스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수일도 두산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키가 큰 두산 탓에 수일은 자꾸 다리가 들려 발가락 끝으로 간신히 섰다. 언제 봤는지 두산이 수일의 키에 맞추려 몸을 구부렸다. 다리를 굽히고 더 바짝 성기를 들이밀었다.

“으응… 흑!”

“억수로, 조타. 수일아, 씨발, 내, 죽겠다.”

두산은 금방 그곳을 찾아냈다. 잘게 찧을 때마다 수일은 힘이 풀려 몇 번이고 주저앉을 뻔했다. 두산은 수일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 두산이 조금 더 깊게 안으로 침범했고, 순간 수일의 허리가 그대로 튕겨 올라갔다.

“아흐흐흣. 두산아… 죽을 것 같애.”

수일은 두산에게 거의 눕다시피 하며 뒤로 넘어갔다.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고 사정했다. 사정감과 어디서 오는지 모를 흥분에 발발 떨며 앓는 소리를 냈다. 두산은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수일을 꼭 붙들고 부지런히 자지를 휘둘렀다.

두산도 한계에 도달했는지 가슴을 안은 팔을 풀고 수일의 골반을 잡았다. 속도가 더 빨라졌다. 구멍과 성기가 맞닿는 음란한 소음도 격해졌다. 수일은 세면대 앞으로 엎어졌고, 두산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수일의 두 다리가 들려 허공에 붕 떴다.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정도로 몸이 반응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수일이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울부짖는 순간, 두산은 깊은 신음을 뱉었다.

“하읍!! 씨발!!”

움직임이 멈췄다. 몸 안에 뜨끈한 것이 퍼져 나갔다.

사정 후에도 두산은 서너 번 더 수일의 안으로 쳐들어왔다가 나갔다. 수일은 세면대에 처박힌 꼴로 낑낑대며 버둥거렸다. 허벅지를 타고 정액이 흘렀다.

두산이 세면대에 엎어진 수일을 일으켜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이까지 덜덜거리며 떨어 대는 수일에게 키스하고 귀를 할짝거렸다. 수일이 숨을 고르는 동안 어깨선을 따라 쪽쪽 키스를 해 주었다.

수일의 눈물을 혀로 핥고 땀을 혀로 핥았다. 두산은 핥을 수 있는 건 죄다 핥으며 수일을 애무했다.

“개안나?”

뒤에서 얼굴을 바짝 붙이고 두산이 물었다.

“응.”

“수일아, 내 억수로 좋았다.”

‘억수로 좋았다’고 말하는 두산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두.”

몸의 떨림은 쉬이 멈추지 않았고, 헐떡이는 숨소리도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일은 제 등을 꼭 끌어안은 두산의 온기에 몸이 달았다. 그게 전해졌을 리 없건만, 되는대로 핥던 두산이 이번엔 되는대로 뽀뽀를 퍼부었다. 수일은 간지러워 키득거렸다.

두산이 수일을 돌려세웠다. 둘은 마주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키스를 했다. 혀를 섞고 입술을 빨다가 웃었다.

두산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수일을 욕조에 앉히고 몸을 씻겼다.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남은 정액을 빼 주었다. 다시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혀 키스하고 성기를 비벼 댔다.

샤워까지 하고 나자, 수일은 나른했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야유회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일나라.”

자신을 깨우는 두산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수일은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다 겨우 눈을 떴다. 두산이 씨익 웃으며 입을 맞췄다. 피곤하고 귀찮아서 수일은 두산의 머리를 밀었다. 정말 자고 싶었다. 사람을 좀 재우고 야유회를 데리고 와야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일나라, 가자.”

마구 몸을 흔드는 바람에 수일은 하는 수 없이 눈을 떴다.

바다였다.

“어디야?”

오고 싶지 않았던 야유회라 어디서 하는지 묻지도 않았었다.

“송정.”

들어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드넓은 백사장을 보자 졸리던 눈이 번쩍 뜨였다.

수일은 모래를 밟은 생각에 양말부터 벗었다. 다친 발바닥엔 굳은살이 박였고, 이틀 뒤 실밥을 뽑으러 가기로 했다. 신경 쓸 땐 그렇게 덧나더니 잊고 사니 어느새 아물었다.

걸어 보려 했지만 모래사장이라 걷기가 여의치 않았다. 두산은 수일을 업었다. 아침에 섹스만 안 했어도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을 텐데, 수일은 두산이 얄미워 어깨를 깨물었다.

“내려 줘.”

“은다.”

“내려 줘. 사람들 다 보잖아.”

“머 어떻노?”

수일이 위에서 버둥거렸다.

“가만 쫌 있으라.”

어차피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신경질이었다. 수일은 포기하고 얌전히 업혔다.

어제 개장했다는 해수욕장은 한산했다. 아직 휴가철이 아니었고, 이제 겨우 12시였다. 수영하는 사람도 인적도 드문드문했다.

두산이 일하는 나이트는 밀레니엄이란 곳이었다. 주로 2, 30대 젊은이들이 춤추러 가는 곳으로, 규모가 제법 컸다. 일하는 종업원만 스무 명 가까이 됐다. 부킹은 필수라 웨이터마다 명함을 따로 파서 다녔고 단골은 별도로 관리했다. 기도들은 물 관리를 한다며 입구에서 사람들을 줄 세웠다.

성인 나이트에서만 일했던 수일은 다 처음 듣는 내용이라 두산이 하는 말을 경청했다.

직원들이 모두 젊었다. 각자 애인이나 친구를 끼고 와서 40명이 넘는 인원이 송정 해수욕장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천막을 두 개 치고 테이블을 기다랗게 붙여 놓았다. 어디서 빌려 왔는지 푸른색의 플라스틱 의자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중년의 주방 이모님들은 대여한 파라솔 밑에 썬베드를 펴고 누웠고, 종업원 중 서열이 낮은 일곱 명이 돌아가며 요리를 전담했다.

수일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천막 아래 의자에 앉았다. 두산은 수일에게 맥주 한 잔을 건네주고 동료들을 만나러 갔다.

다들 두산을 반겼다. 분명 어제도 봤을 텐데 오랜만에 본 양 인사를 하고 제 애인이나 친구를 소개하며 반갑게 떠들었다. 두산도 그들도 어리고 싱그러워 수일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나이에 여기서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수일은 맥주를 홀짝이며 모래를 발가락으로 건드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두산의 옆에 키가 크고 글래머인 여자가 서 있었다. 친한 사이인지 웃으며 서로 몸을 만졌다.

여자는 미스 코리아들처럼 풍성한 파마 머리에 화려한 스카프를 헤어밴드처럼 둘렀다. 유행하는 벽돌색 립스틱을 바르고, 비키니 상의에 짧은 팬츠를 입은 몸이 반짝였다. 두산은 대놓고 여자의 가슴을 훑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괜히 따라왔다고 후회했다.

맥주를 거의 다 마셨을 즈음 반바지만 입은 남자 하나가 수일의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윤수일 행님 맞지예? 저는 박핸수라꼬 합니다.”

남자의 이름을 듣자마자 수일은 두산이 호텔에서 전화를 건 남자라고 확신했다. 두산에게 남자와 어떻게 섹스하는지 가르쳐 준 그 남자였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몸이 큰 현수는 태욱과 같은 위치에 뱀 문신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윤수일이라고 합니다.”

수일은 현수를 너무 빤히 쳐다본 것 같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수는 파란색 의자를 수일의 옆에 놓았다.

“맥주 한 잔 더 드리까예?”

“네. 감사합니다.”

현수는 맥주뿐 아니라 구운 소시지와 삼겹살이 담긴 접시까지 내왔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빈속이었다. 두산이 아침 먹고 가자는 걸 피곤해서 거절했었다.

수일은 창피한 것도 잊고 열심히 소시지와 삼겹살을 먹었다. 옆에서 가만 지켜보던 현수가 웃었다.

“잘 드시네예.”

“아….”

수일은 입 안 가득 음식을 씹고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게걸스레 먹었나 싶어 젓가락을 놓았다.

“복스럽게 먹는 기 보기 좋아서예. 마이 드이소.”

현수는 맥주를 마시면서 간간이 수일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현수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수일은 소시지를 베어 물며 그 시선을 쫓았다.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여자는 계속 두산과 함께였다. 두산을 올려다보며 그의 팔을 쓰다듬고 어깨를 찰싹 때렸다.

“저 가시나는 혜숙이라꼬 두사이랑 잠깐 사깄습니다. 사기는 중에도 두사이 저 새끼가 가시나들만 보믄 정신을 몬 차리가 금방 헤어졌어예. 뭐 말이 헤어진 기지, 저래 만나믄 또 호텔이야 여관이야 자러 댕긴다 아입니까.”

현수는 묻지도 않은 걸 읊더니, 수일의 눈치를 살폈다. 수일은 고개만 끄덕이고 맥주를 마셨다.

“근데 진짜로 절마랑 잤습니까?”

만난 지 10분도 안 됐는데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잤다고 한들, 친한 사이도 아닌 제게 왜 이런 걸 묻는지 몰랐다. 수일은 기분이 상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대답 없이 맥주만 마셨다.

수일의 반응에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현수는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말 읍네. 그런 소리 마이 듣지예?”

“…네.”

혜숙이란 여자와 얘기가 다 끝났는지 두산이 성큼성큼 수일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오는 길에도 동료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했다.

“내도 배고픈데. 행님, 더 갖다 주까?”

두산은 수일의 비어 가는 접시를 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니 와 이리 늦었노? 우리 11시에 다 모있는데.”

현수의 질문에 두산은 씨익 웃었다.

“그란 기 이따. 행님도 가따 주까?”

“니나 무라. 내는 벌쌔로 다 무따.”

현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산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 주고 제 무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일은 동료들에게 소개할 것도 아니면서 저를 데려온 두산이 야속했다. 야속하다가도 따라온 스스로가 더 한심해 한숨을 쉬었다. 맥주를 마시며 바다를 보았다.

건들건들 소시지와 삼겹살을 굽고 있는 곳으로 간 두산은 또 한참 수다를 떨었다. 양손에 접시를 들고 오더니, 현수가 앉았던 의자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일의 맞은편에 파란색 의자를 놓고 턱 앉았다.

“안 보여.”

“머가?”

“바다.”

“난중에 바라.”

두산은 퉁명스럽게 말하고 수일의 손에 새로 내온 음식을 들려 주었다. 수일은 접시에 코를 박고 소시지와 삼겹살을 먹었다.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허기가 졌다. 두산은 그런 수일을 보며 맥주부터 마셨다.

“그래 배고팠으면 아까 내가 묵자고할 때 묵지.”

“괜찮아. 지금 먹잖아.”

“꼭꼭 씹으라. 체한다.”

“응.”

“입에 다 묻으따.”

두산이 손을 뻗었다. 수일은 괜히 심술이나 만지지 못하게 몸을 뒤로 뺐다. 순간 두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두산은 다시 손을 뻗었고, 수일은 이번엔 가만있었다. 두산이 손가락으로 수일의 입 주위를 쓱 닦아 주고 그걸 쪽 빨았다. 그리고 수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가만 쳐다보았다.

“내 손 피하지 마라.”

“응.”

“내 니가 좋아서 참는 기지 다른 아였으면 벌써 손 올라갔다. 알긋나?”

“응.”

수일은 숨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산은 뱀 같은 눈을 번들거리며 묘한 표정을 했다. 수일을 보면서 음식을 집어 천천히 삼켰다. 수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수일이 먹는 동안 두산은 종종 손을 뻗어 입가를 닦아 주고, 턱이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맥주잔이 비면 맥주를 채워 주었다. 하나하나 제 손으로 수일을 챙겼다. 수일은 그게 좋기도 했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러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남자들이 일제히 한쪽으로 달려갔다.

강재욱이었다.

남자는 짙은 색의 반소매 티셔츠에 흰색의 리넨 바지를 입고 있었다. 부유한 사업가처럼 보였다.

강재욱이 천막으로 다가오자 파라솔 밑에 누워 있던 주방 이모님들도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다. 종업원들이 서둘러 천막 안에 자리를 마련했고, 바다 근처에서 놀던 여자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강재욱의 시선이 두산과 수일에게 잠깐 머물다 갔다.

수일은 두산을 돌아보았다. 두산은 표정 없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강재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만 까딱하며 인사를 했다.

인상을 쓰고 있겠거니 했는데, 수일이 보이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 두산은 의외로 웃고 있었다. 강재욱과 친한 형 동생 사이라도 되는 양 대화를 주고받았다. 강재욱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큰소리로 웃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가 밝았다.

사장 어머니의 팔순 잔치 때 강재욱에게 적대감을 보였던 두산은 온데간데없었다. 수일은 의아하기만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긴팔 셔츠를 입었을 땐 몰랐는데, 강재욱도 상박에 뱀 문신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재욱과 두산을 둘러싼 덩치들이 모두 같은 뱀 문신을 한 게 눈에 들어왔다. 두산만 없었다.

두산도 백사파인 줄 알았는데 아닌 걸까? 아니면 문신을 할 서열이란 게 따로 있는 걸까?

수일은 이제야 두산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누군가 마이크를 잡았다. 밀레니엄 나이트의 야유회를 알리는 멘트와 함께 강재욱이 소개되었다. 강재욱은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했다.

“밀레니엄 나이트 식구 여러분, 길게 말 안 하겠습니다. 마이 묵고 마이 웃고 즐기다 가이소.”

오성관 사장과 달리 강재욱은 짧게 한마디만 했다. 다들 환호했다.

저 얼굴과 체구로 정치를 했다면 당선은 떼 놓은 당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투는 거침없었지만 부드러웠고, 표정도 온화했다. 사람을 휘어잡을 줄 아는 남자였다.

언제 왔는지 두산은 수일의 옆에 서서 휘파람을 불었다. 강재욱에게 반감을 내비치던 두산이 왜 저리 호감 어린 시선을 보내는지 수일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이들 세계를 잘 몰라서 그러는 거겠거니 했다.

“난중에 게임 하끼다. 내 상타서 니 주께.”

두산은 신이 난 얼굴로 아까 먹다 만 접시를 들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20대 남자였다.

“나도 해야 해? 게임 말야.”

“으데. 니는 요 얌전히 앉아만 있으라. 내 응원하고.”

“응. 근데, 두산아, 나 저기 방파제에 가고 싶은데….”

멀리 방파제와 등대가 있었다. 낚시터인지 해변보다 방파제에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걸어서 가도 충분한 거리였고, 가만 앉아만 있는 것보단 덜 지루할 것 같았다.

“오늘은 고마 여 있으라. 담에 데꼬 가주께.”

두산의 단호한 말에 수일은 씩씩댔다.

수일은 여기 온 뒤로 꼼짝도 하지 않고 천막 아래서만 있었다. 해변을 걸어 볼까 했더니 두산이 말렸고, 화장실만 가도 문신한 남자가 따라왔다. 어디 도망갈 것도 아닌데 화장실 안까지 들어와 지키고 서는 바람에 수일은 오줌을 참다가 한계에 도달할 즈음 한 번 더 다녀왔다. 물론 이번에도 남자가 따라왔다.

감옥도 아니고, 이럴 거면 왜 데려왔나 몰랐다.

삐삐가 울렸고 두산은 번호를 확인했다.

“행님, 핸수 행님.”

강 이사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현수는 두산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와?”

“내 잠깐 갔다 올 낀데 수일이 행님 쫌 보고 있으라.”

“두산아, 나 혼자 있을 수 있는데….”

수일은 자기가 어린아이도 아닌데 자꾸 곁에 사람을 붙이는 것이 못마땅했다. 거기다 상대가 두산이 잠자리에 대해 물었던 현수라 불편하기도 했고.

“내 퍼뜩 갔다오께.”

“알았다.”

두산은 혼자 있겠다는 수일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모래를 벗어나 도로 위로 올라갔다. 현수는 수일의 옆에 앉는 대신 근처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따라오지 말걸. 뜻하지 않게 두산의 옛 애인도 보고 강재욱까지 만났다. 거기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였다. 몸도 마음도 불편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발로 모래 장난을 하며 멍하니 바다를 보았다. 맥주를 홀짝이고 다시 발가락을 모래 사이에 넣었다가 발을 들었다. 스르륵,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현수가 앉으려는지 인기척이 나 슬쩍 돌아보니, 제 옆에 현수가 아닌 강재욱이 있었다.

너무 놀라 넘어질 뻔한 수일을 강재욱이 잡았다. 팔을 수놓은 뱀이 꿈틀거렸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머 이래 놀라노?”

강재욱이 웃었다.

수일은 얼음이 된 채 강재욱을 빤히 쳐다보았다.

“니는 인사도 안 하나?”

“아, 안녕하세요.”

수일은 꾸뻑 인사했다.

“머 쫌 뭇나?”

“네.”

“술 한잔했는갑지?”

“네.”

“잘 마시나?”

“아뇨….”

“기회 봐서 내캉 한잔하자.”

그냥 해 본 말인지 진심인지 몰랐다. 강재욱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수일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저도 모르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모래를 건드렸다. 강재욱이 몸을 숙여 빼꼼히 발을 들여다보았다. 수일은 움직임을 멈췄다. 강재욱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수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불안으로 가슴이 뛰었다.

다행히 강재욱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수일에게 협박을 하지도 다짐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잘 놀다 가라. 회도 시킸으이 마이 무꼬.”

했다.

이번에도 수일의 어깨를 꽉 쥐었다 놓았다. 강재욱이 일어나자 주위에 있던 덩치들도 같이 움직였다. 수일은 참았던 숨을 쉬었다. 다시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두산이 봤을까 봐 수일은 겁이 났다. 혹시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현수가 뒤에서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현수가 입꼬리를 올렸고, 가슴에 있는 뱀도 함께 웃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등골이 오싹했다. 수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잠시 다녀온 두산은 회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무슨 심보인지 이번에도 수일의 앞에 버티고 앉아 시야를 모두 가렸다.

“왜 자꾸 내 앞에 앉니? 옆에 앉지.”

“내만 볼라꼬 그란다. 와?”

두산은 퉁명스럽게 내뱉고 회를 집어 내밀었다. 수일은 뒤를 돌아보았다. 두산의 동료들 몇이 서 있을 뿐 여자도 없었다. 뭘 자기만 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일은 심술 한번 고약하다고 생각하며 회를 받아먹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비치 발리볼, 족구, 피구, 림보에 풍선 터트리기까지 끝도 없이 게임이 이어졌다. 수일은 천막 아래 앉아 맥주를 마시고, 먹을 걸 주면 먹었다. 바로 갈 줄 알았던 강재욱도 다른 천막 아래서 덩치들과 얘기를 나누고 웃고 떠들었다.

누군가가 기타를 쳤다.

새파란 (아니 새빨강) 수평선 (아니 지평선) 흰구름 (아니 먹구름) 흐르는 (아니 멈추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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