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잠도 없나 보았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단장을 한 다음 부지런히 들락날락했다.
겨우 눈만 뜨고 있는 수일의 이를 닦아 주고,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을 닦아 주었다.
“넌 안 피곤하니?”
수일이 한숨을 쉬었다.
“피곤할 끼 머가 있노.”
두산은 침대 위로 올라와, 이마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수일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씨익 웃었다.
“니만 갠찮으면 내는 열 번도 더할 수 이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능글맞은 소리나 하는 게 얄미워 수일은 입을 실룩거렸다. 두산은 그래도 좋다고 입을 맞추어 왔다. 쪽쪽 입을 맞추다 혀를 밀어 넣고 제 입인 양 휘젓고 다녔다.
피곤한데도 키스는 좋아서 수일은 두산의 목을 끌어안았다. 고개를 틀어 입술을 꼭 맞추었다.
“룸서비스 시킸다. 여 지배인한테 옥상 열쇠도 받아나꼬.”
“나 더 누워 있어도 돼?”
“어. 더 누 있으라. 내도 드가까?”
아니,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두산이 말릴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벗었다. 순식간에 홀딱 벗은 두산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수일은 웃을 힘도 없었다.
“룸서비스 오면 어쩌려구 그래?”
“아. 맞네.”
맞네, 하면서 꼼짝도 안 했다. 대신 제 쪽으로 수일을 당겨 안고 등에서 엉덩이까지 손바닥으로 쓸었다. 뜨거운 손바닥이 훑고 가자, 수일은 흠칫했다.
“하지 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데도 몸에는 열이 올랐다. 하지 말라는 말이 꼭 해 달라는 말로 들렸는지, 두산은 수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수일은 제 목을 혀로 핥고 입술로 빨아올리는 두산이 너무 좋아 신음을 흘렸다.
도어벨이 울렸다. 눈치 없이 룸서비스가 왔나 보았다. 귀를 애무하던 두산의 입술이 떨어졌다.
“아, 씨발. 괜히 시킸네.”
두산은 투덜대며 옷을 입었다. 아쉬운 건 수일도 마찬가지였다.
수일은 문이 열리기 전에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무래도 저쪽도 남자와 남자가 있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목소리의 호텔 종업원이 나가자, 수일은 이불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하얀색 테이블 보 위에 보기 좋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커다란 접시에는 스크램블에그와 소시지, 베이컨이 보였다. 그 옆으로 빵과 버터와 잼이 담긴 조그만 바구니가 있고, 수일의 앞에는 갈비탕이 있었다.
두산은 커다란 유리병에 담긴 오렌지 주스와 은색 커피포트를 들어 각각 한 잔씩을 따라 내려놓았다.
수일은 시트를 둘둘 만 채로 테이블 앞에 앉았다.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먹을 걸 보니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전복 든 기다.”
“응.”
밥을 좋아하는 수일을 위해 갈비탕을 시켜 준 게 고마웠다. 수일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고 전복부터 먹기 시작했다.
두산은 모닝빵에 버터를 잔뜩 바르고 한입에 해치웠다. 소시지도 한입에 해치우고, 스크램블에그도 몇 번 포크가 왔다 갔다 하자 없어졌다.
“배고팠니?”
“어. 내 아까부터 일나 있었다.”
“뭐라도 먹지 그랬어?”
“머할라꼬? 니랑 같이 무야지.”
이렇게 말하며 이번엔 크로아상을 한 번에 해치웠다.
수일은 피식 웃고는 갈비탕에서 고기를 하나 집어 두산에게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던 두산은 냉큼 받아먹었다.
“맛있네.”
두산은 결국 전화기를 집어 들고 갈비탕을 하나 더 갖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침을 든든히 먹고, 옥상으로 올라가 용두산 공원과 부산 타워를 보았다.
오늘도 날은 흐렸다.
어제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쉽고 서운했던 용두산 공원을 봐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수일은 두산의 품에 안겨 한참을 남포동 시내와 부산 타워를 보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두산은 수일을 연신 흘끔거렸다. 쳐다보면서 어찌나 싱글벙글 웃는지 민망할 정도였다.
“내 오늘 나가면 아예 몬 들어온다. 내일 저녁이나 돼야 들어올 낀데 개안체?”
“응.”
“할 꺼 없나? 내 같이 가주께.”
“없어. 나중에 이발소 가서 머리만 자르면 돼.”
“머할라꼬? 지금이 딱 좋은데.”
“길잖아. 단정하게 잘라야지.”
“그냥 다음에 짜르지.”
두산은 수일이 머리를 정리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부산에 내려온 다음 날인가 잘라서, 곧 앞머리가 눈을 찌를 것 같았다. 이마 위로 머리를 올릴 때도 왁스를 많이 발라야 해서 불편했다. 아무래도 자르는 편이 나았다.
결국, 두산은 차를 이발소 앞에 세우고 수일과 함께 이발소로 들어갔다.
“어. 잘생긴 총각 왔네.”
이발소 사장은 수일의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 맞았다.
“와 나는 아는 체 안 합니까?”
“두사이 니는 오든가 말든가.”
이발소 사장은 심드렁하게 말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두산의 어깨를 툭 쳤다.
“밸일 없제?”
“머 밸일 있겠습니까?”
“느그 아들 여서 만날 이발하고 간다. 고마 바리캉 한 개 사라. 머할라꼬 돈 주고 깎노?”
“그래야 아재도 돈을 벌지.”
“듣고 보이 그렇네. 으하하하하.”
이발소 사장은 두산에게 주스를 한 잔 따라 주었다.
수일에게도 한 잔 주며,
“참말로 잘생깄다.”
했다.
수일은 얼굴을 붉혔고, 두산은 자기 칭찬이라도 들은 양 목에 힘을 주었다.
“아재요, 바리깡 쓰지 말고. 아이다아이다, 짧다, 쪼매 길게. 에헤이, 길게 짜르라 카이. 어어, 가세 조심하이소, 그라다 아 얼굴 다치그따.”
두산은 수일이 이발하는 동안 이발소 사장 옆에 딱 붙어서 감 놔라 배 놔라 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던지 수일은 귀가 다 아팠다.
“하, 그 새끼 드릅게 말많네. 아나, 니가 짤라라.”
이발소 사장은 가위를 두산의 손에 들려 주고 홱 돌아섰고, 두산은 그런 사장을 달래고 있었다. 목에 커트용 보를 두르고 앉아 있는 수일만 난감했다.
5분이면 될 걸, 두산 탓에 20분을 넘게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간신히 이발하고 왁스까지 발라 앞머리를 위로 올리자 속이 다 시원했다.
두산은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수일의 얼굴을 보고 또 봤다.
“니는 우째 이마도 이리 똥그라이 예쁘게 생깄노?”
“왜 그래? 민망하게.”
“숱도 많고, 보자, 대머리는 안 될라나? 뭐, 내는 니 대머리 돼도 상관없기는 한데.”
“우리 집에 대머리 없거든?”
이마를 처음 본 것도 아니면서, 두산이 대머리 얘기까지 꺼내자 수일이 버럭 소리쳤다.
“있으면 또 어떻노?”
“없어, 대머리.”
“사람 일은 모르는 기지. 내는 니가 대머리가 돼도 조타, 이 말 할라꼬 한 기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는 두산이 웃겨 수일은 결국 피식거렸다.
문득, 정말로 대머리가 되어도 두산이 자기를 좋아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닐 것이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대머리가 될 때까지 두산이 자기를 만나 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두산은 수일을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그길로 바로 차를 몰고 나갔다. 물론 가기 전에 어찌나 입술을 물고 빨던지 차에서 내릴 땐 입술이 부르터 손만 대도 아팠다.
아직도 동생들은 꿈나라였다. 발끝으로 조심히 걸어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이불을 깔고 수일도 부족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언제 잠들었는지, 밥을 먹으라고 깨우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행님 이발 하셨네예?”
영수가 수일이 머리 자른 걸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아이다, 하며 수일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행님, 밥 무꼬 비디오방 갈 낀데 뭐 빌리다 드리까예?”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뭐 있나 한번 보게.”
“예. 알겠습니다.”
영수는 밥과 국을 내려놓고 수일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와 가장 가까이 있던 동생이 밥을 먹다 말고 수화기를 들었다.
“수일이 행님, 삼락 행님 전화 왔습니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그러고 보니 그 일 이후 삼락 형님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남들 보는 앞에서 그런 망신을 당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수일은 형님에게 제대로 된 위로조차 해주지 못한 것이 이제야 마음에 걸렸다.
“여보세요.”
- 수일이가?
“네. 형님.”
- 니 점심 아직이제?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이었어요.”
- 그라몬 지금 호텔 뒤에 우리 전에 갔던 대폿집 있다 아이가. 글루 온나. 거서 낮술 한잔하자
“네.”
- 빨리 온나.
걱정과 달리 삼락 형님의 목소리가 밝았다. 수일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동생들을 물리치고, 택시를 타고 삼락 형님을 만나러 갔다.
대폿집으로 들어가자 삭발한 삼락 형님이 반갑게 맞았다.
“수일아, 어서 온나.”
그리고 그 옆에 그 남자가 있었다. 옆 테이블엔 그 남자와 함께 있던 덩치 셋이 자리를 차지했다.
“인사해라, 여는 내 동향, 강재욱 이사님.”
사장의 팔순 잔치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수일을 보고 웃었다.
남자는 넥타이 없이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단추는 한 개만 풀었고, 두 팔은 걷어붙여 그때의 그 딱딱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조폭이라 말해도 믿지 않을 만큼 인상이 좋고 잘생긴 남자였다.
동그란 테이블이라 별 의미는 없었지만, 수일은 삼락 형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윤수일이라고 합니다.”
수일이 인사를 하자 강재욱이란 남자는 수일을 빤히 쳐다보았다.
“술 한잔 받아라.”
강재욱은 인사 없이 수일에게 막걸리를 한 잔 따라 주었다.
“건배.”
삼락 형님이 건배를 외쳤다.
수일은 양은그릇에 담긴 막걸리를 한 모금만 마시고 내려놓았다. 강재욱의 시선이 수일의 손끝에 따라붙었다.
“내 국민학교 때 우리 아부지가 사업 말아무가, 엄마 친정인 기장으로 쫓기가따 아이가. 기장 그 촌구석에서 미역 딴다고 우리 엄마가 억수로 고생했다.”
삼락 형님은 고생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 보였다.
“강 이사님이 기장 출신인 거를 내 어제 알아따. 진즉에 알았으믄 이래 안 당했을 낀데.”
삼락 형님은 삭발한 머리를 앞뒤로 거칠게 쓸었다.
“행님, 말씀 편하게 하이소. 강 이사님이 머꼬? 내 불편하다.”
“그래도 맹색이 이사님인데, 내가 그래도 되긋나?”
삼락 형님은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라믄요. 기장 촌놈 둘이 이래 만났으이 이것도 인연 아입니까.”
“으하하하, 건 글타. 기장 촌놈 둘이 출세 했다 출세했어.”
남자는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삼락 형님과 소리 내 웃었다. 멍이 든 얼굴에 삭발까지 한 형님은 든든한 백이라도 생긴 양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왜 삼락 형님은 이 남자와 함께 있을까? 자기는 무슨 일로 부른 걸까?
팔순 잔치 때 남자를 향한 두산의 날 선 반응이 떠올라, 수일은 마음이 더 불편했다.
“야가 이래 말이 읍따.”
제 소개 말곤 한마디도 안 하는 수일을 보고 삼락 형님이 혀를 찼다.
“이래 숫기도 없고 말도 없는 기 밤무대 뛴다꼬 을매나 고생을 했겠노? 으이?”
이렇게 말하며 형님은 수일을 보며 등을 쓰다듬었다.
남자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형님 취하셨어요.”
“내? 내 한 개도 안 치해따.”
혀가 슬슬 꼬여 가는 삼락 형님은 안 취했다며 빠르게 잔을 비웠다. 반면, 남자도 비슷한 속도로 막걸리를 들이켰지만 멀쩡했다.
“니 머 좋아하노?”
남자가 물었다.
“아무거나….”
“할매요, 여 고동 한 접시 주이소.”
수일은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해 테이블 끝에 시선을 두었다. 남자가 얼굴을 훑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때, 삼락 형님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강 이사님, 아니 강 이사. 내 억수로 억울타. 그 개새끼가 내 머리 이래논 거 보이제? 이래 가꼬 무대에 우째 스겠노? 사모들이 내를 만나나 주겠나?”
“행님, 걱정 마이소. 내가 다 알아서 하께.”
“그래, 고맙다. 참말로 고맙다. 내 강 이사만 믿는다.”
삼락 형님은 눈물을 닦고 다시 막걸리를 들이켰다. 어제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형님은 울다 웃다 했다. 막걸리가 턱으로 흐르는데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만취 상태였다.
수일은 자꾸 옆으로 쓰러지려는 삼락 형님을 잡았다.
“머하노? 여 와서 잡아라.”
강재욱이 주어 없이 말을 하자,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덩치 하나가 벌떡 일어나 수일 대신 삼락 형님을 잡았다.
“호텔에 모시다 드리라.”
“예, 이사님.”
덩치들은 삼락 형님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우고 밖으로 나갔다.
수일은 강재욱과 단둘이 남았다.
고동 한 접시가 나오자, 남자는 하나를 집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맛있네. 니도 함 무바라.”
수일을 너라고 부르는 남자의 말에 수일은 젓가락을 들었다. 왠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맛있제?”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니 여 을매나 있노?”
“3개월이요.”
“9월이면 가나?”
“네.”
“그래. 그때 꼭 가라.”
남자의 말에 수일이 고개를 들었다.
“니 빰떼기 때린 사람이 내가 존경하는 행님인데, 두사이 그 새끼가 팔목을 다 뿔라삐따.”
수일은 분질렀다는 게 어떤 의민지 이해하지 못했다. 과장인지 아니면 정말 분지른 것인지 몰랐다. 수일의 표정을 읽었는지 남자가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뿔라삐따꼬. 그나마 왼손은 신갱이 쫌 남아 있어가 재할하믄 된다 카는데, 오른손은 완전히 나갔다. 졸지에 손 병신 됐다 아이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안 죽은 게 용하다고 했던 현철의 말이 떠올랐다. 수일의 눈이 커지자 남자가 웃었다.
“니 돈 받고 그 방 간 거 아이가? 돈을 받았으믄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안 글나?”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뭐, 니가 그래 만든 건 아이다만은, 그래도 니 때문에 일이 이리 크지따 아이가. 맞제?”
남자는 더없이 차분한 눈을 하고 말을 이었다.
수일은 순간 남자에게서 두산을 보았다. 태욱을 때릴 때의 그 한없이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이 겹쳤다. 남자는 두산과 같은 과였다.
“다 지난 일이니까 내사 마 더는 말 안 하께. 그라이까 서울 갈 때까지 얌전히 있다가 조용히 가라. 알았나?”
수일은 다시 시선을 떨구고 가만있었다.
“머시 이래 말이 없노? 두사이 그 새끼도 치향 한 번 독특하다.”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더 묵고 싶은 거 있으믄 묵고 가라.”
남자는 팔을 뻗어 수일의 어깨를 꽉 쥐었다 놓았다. 남자의 시선이 잠깐 수일에게 머물렀다. 그렇게 남자는 덩치들과 사라졌고, 수일은 혼자 대폿집에 남았다.
그저 멍했다.
아침만 해도 두산의 품에 안긴 채 용두산 공원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부산에 남고 싶다고 생각했다. 계약이 끝나도 어떻게든 다른 일자리를 잡아야지, 안 되면 막노동을 해서라도 여기 남아야지 했다. 두산이 싫다고 내칠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수일에게 가라고 했다.
꼭 가라고 했다.
수일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고 싶지 않은데, 정말 남고 싶었는데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가야 할 것 같았다.
수일은 양은그릇에 남은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할머니, 여기 막걸리 좀 더 주세요.”
주전자 한가득 막걸리를 받아 혼자 마셨다. 안주도 없이, 마시고 또 마셨다. 몇 번이나 빈 주전자를 채웠다. 삼락 형님처럼 수일도 술이 턱을 타고 내릴 때까지 마셨다.
부산은 수일이 있으면 안 되는 곳인가 보았다.
괜히 왔다고 후회하며, 수일은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