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 끙끙대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두산이 깨웠다. 수일은 떠지지도 않는 눈을 하고 차에 실렸다.
어딜 가나 했더니 새벽 자갈치 시장이었다. 새벽이라고 해 봐야 6시가 넘은 시간이라 밖은 훤했고, 사람도 무척 많았다.
자기 전까진 괜찮았는데 허리 아래로 둔탁하고 기분 나쁜 감각이 남았다. 수일이 엉거주춤 걷자 두산은 수일을 들쳐 업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오늘따라 비린내가 역겨워 수일은 두산의 어깨에 코를 박고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두산은 시장 안에 자리한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많은 수족관 중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옆에 자리한 노란색 평상 위에 수일을 내려놓았다.
물론 수일을 내려놓기도 전에,
“사장님, 여 짱어구이 5인분 주이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일은 연신 하품을 하고 졸린 눈을 비볐다.
“그래 잠이 오나?”
“응.”
“어제 일찍 재았는데.”
“일찍 재우면 뭐 하니?”
수일은 두산을 살짝 흘겨보았다.
“피곤해 죽겠어.”
“그래서 내가 여 와따 아이가. 짱어 먹고 힘내라꼬.”
두산이 씨익 웃었다.
장어집 주인은 숱을 넣고 불판을 올렸다.
“사이다도 마실래?”
“응.”
“여 사이다도 두 병 주이소.”
두산은 능숙한 솜씨로 장어를 구웠다. 큰 손에 들린 집게가 젓가락처럼 작아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 수일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두산이 구워 주면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너두 좀 먹어.”
“내 묵고 이따. 입 벌리라.”
“아.”
수일을 몇 조각 먹이면 자기는 한 조각 먹을까 말까 했다. 그렇게 5인분을 거의 수일이 혼자 먹은 것 같았다.
“더 시키까?”
“아니. 밥 먹을래.”
두산은 서비스로 나오는 장어탕에 밥을 말아 수일을 먹였다. 직접 먹겠다는데도 굳이 커다란 국그릇을 들고 수일의 입에 한 입씩 떠먹여 주었다. 무료하게 앉아 있던 횟집 사장이 두 사람을 흘끔거렸다.
“넌 왜 안 먹어?”
“내? 배불러서.”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무따.”
“집에서 뭐 먹고 왔니?”
“그기 아이고, 그른기이따. 밥이나 무라.”
두산은 뭐가 쑥스러운지 목 뒤를 쓸며 얼굴을 붉혔다.
집에서 밥을 먹었을 리는 없는데.
수일만큼 잘 먹는 두산은 배부르다며 제 몫으로 나온 장어탕을 남기고 목이 말랐는지 사이다만 마셨다.
수일은 그러는 두산을 가만 바라보았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모르던 남자였다. 그 남자와 어젠 몸을 섞고 오늘은 같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남자와 이러는 날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 남자가 두산이라서 그런 건지 너무 좋았다. 평생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었다.
수일은 지금의 두산과 자신을 기억하고 싶었다. 이날을 기억하고 싶었다.
“와?”
수일이 빤히 쳐다보다 두산이 물었다.
“용두산 공원, 지금 가도 사진사 있을까?”
“지금? 지금은 없을 낀데. 가고 싶나?”
“응. 거기서 사진 다시 찍고 싶어서.”
“알아따. 니 한숨 자고 일나면 그때 가자.”
“꼭.”
수일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두산이 피식 웃었다.
안 줄 것처럼 실실 웃으며 쳐다만 보고 있더니, 결국 큰 손을 올려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도장도 찍어.”
“얼라도 아이고. 아나, 여 있다.”
선심 쓰듯 엄지를 내밀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도 받았겠다, 배까지 부르니 수일은 절로 하품이 났다.
두산은 얼른 계산을 마치고 다시 수일을 업었다. 수일은 이번엔 두산의 등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깐 몰랐는데, 언제 씻었는지 몸에선 코오롱 냄새가 났다.
하여간 부지런했다.
날이 잔뜩 흐렸다. 비가 올 건지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어. 도나츠다.”
주차장 가는 길에 설탕이 잔뜩 묻은 꽈배기 도나츠를 보고 수일은 군침을 삼켰다.
“묵고 싶나?”
“응.”
“할매요, 여 도나츠 열 개 주이소.”
“너무 많아. 여기 두 개만 주세요.”
두산은 설탕이 잔뜩 묻은 꽈배기 도나츠를 받아 수일에게 올려 주고 자기도 하나를 입에 물었다. 수일이 먹는 동안 도나츠에 묻은 설탕 가루가 칼라 없는 검은 면 티셔츠 위에 툭툭 떨어지는데도 두산은 잔소리 한번 안 했다.
“잠깐만, 내가 먹여 줄게.”
수일은 자기 걸 다 먹고 나서야 두산의 입에 물린 걸 빼 주었다. 입에 갖다 대 주자 두산이 한입 베어 물었다.
“억수로 마싰네.”
“그지?”
“더 물래?”
“아냐, 배불러.”
그렇게 두산이 다 먹을 때까지, 수일은 제 손에 도나츠를 쥐고 한 입씩 한 입씩 먹여 주었다. 손에 묻은 설탕을 입으로 쪽쪽 빨았다.
두산의 목 뒤엔 어제 수일이 긁은 자국이 나 있었다. 짧게 자른 손톱이라 상처는 없었지만, 어찌나 긁었는지 회초리라도 맞은 것처럼 벌겠다.
수일은 목덜미에 난 붉은 줄을 따라 쪽쪽 소리를 내며 뽀뽀를 했다. 두산이 웃는 게 등을 타고 느껴졌다.
봉고에 오르자마자 둘은 아무 거리낌 없이 키스했다. 밖에서 누가 볼까 그런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혀에 단맛이 느껴졌다.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입술을 비볐다.
“설탕 떨어졌어.”
수일은 두산의 티에 묻은 설탕을 툭툭 털어 주고 목에 남아 있는 설탕을 혀로 핥았다. 두산이 간지러운지 몸을 움찔했다.
“너도 간지럼 타는구나?”
수일은 덩치 큰 두산이 간지럼 타는 게 재밌었다. 소리 내 웃자 두산이 그대로 달려들었다. 입술을 너무 세게 부딪혀 와서 아플 정도였다.
두산은 고개를 돌려 수일의 입에 입술을 빈틈없이 맞추고 입술을 갈랐다. 급하게 수일의 혀를 찾아 물었다. 너무 세게 빨아 당기는 바람에 혀가 아팠다.
수일은 숨이 막혀 입을 떼려 했지만, 두산이 따라와 빈틈을 메꿨다. 고개를 틀어 겨우 입술을 떼 내고 수일은 가쁜 숨을 쉬었다.
두산은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입술을 삼켰다. 펠라티오라도 하듯 혀를 옭아매고 올려 빨았다. 평소보다 더 거칠고 탐욕스러워 입에선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두산의 키스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버둥거렸다. 수일은 두산의 어깨를 꽉 쥐었다.
“하아…!”
입술이 떨어지자 수일은 저도 모르게 아쉬운 한숨을 뱉었다.
힘들긴 했지만 정말 좋았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수일은 너무 아쉬워 두산의 어깨를 꼭 쥐고 얼굴을 묻었다.
두산이 입꼬리를 올렸다. 수일의 고개를 들고 쪽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췄다. 두산이 가쁜 숨을 고를 때마다, 탄탄한 가슴 근육이 오르내렸다.
“짱어 맛있었제?”
“응.”
“그기 스테미나에 억수로 좋은 기다. 알제?”
“…응.”
수일은 키스하다 말고 왜 장어 얘길 꺼내는지 몰라 눈을 굴렸다.
“내는 일부러 안무따.”
이렇게 말하는 두산의 눈이 능글맞았다.
“뭐야 징그럽게.”
수일은 어젯밤 일이 갑자기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먼 생각하는데?”
“몰라.”
“야한 생각 했제?”
“아니거든.”
“아인데, 했는데? 먼 생각 했는데? 내한테만 말해도. 어?”
도망치는 수일의 고개를 끌까지 따라오며 두산이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수일에게 입을 맞췄다.
“니 내하고 같은 생각 했나?”
이렇게 묻는 두산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수일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
삐삐가 울렸다.
두산은 바지춤에 걸린 삐삐를 들어 번호를 확인하더니,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내 삐삐 쫌 확인하고 오께.”
“응.”
두산은 천천히 공중전화로 걸었다.
탄탄한 등 근육과 허리 근육이 두산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티셔츠 위로 드러났다. 정말 몸이 좋았다.
무슨 운동을 하면 저런 몸이 될까?
수일은 크게 감탄하며 두산의 각지고 넓은 어깨와 두툼한 허리 아래로 뻗은 길고 튼튼한 허벅지를 훑었다. 넋을 잃고 훑어보다 변태 같은 자신이 부끄러워 ‘미쳤어’ 하고 두 손으로 볼을 감쌌다.
공중전화에서 머물던 검은 옷이 잠시 후 차를 향해 걸어왔다.
“비가 올라나?”
차에 오르며 두산이 말했다. 수일도 창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 오면 안 되는데. 용두산 공원 가야 되는데….”
수일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가 오면 사진 못 찍는데.
수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딴 걸 바란 것도 아니고 사진 한 장 찍고 싶다는데 이것조차 안 도와줄까 봐 수일은 조금, 아주 조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좀 전까지 싱글벙글하던 두산은 말이 없었고, 수일도 비 걱정에 입을 닫았다.
차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사진 찍자.”
두산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사진 얘길 꺼냈다.
“여기서?”
“어. 여서도 찍고 용두산 가서도 찍고.”
“나 세수도 안 했어.”
수일은 이렇게 말하면서 서둘러 손가락에 침을 묻혀 눈을 비볐다.
두산이 웃었다.
“그래 안 해도 예쁘다. 여 있으라.”
두산은 안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영수를 불렀다.
수일은 부산스럽게 머리를 정돈하고 손바닥을 비벼 열을 내 얼굴을 만졌다. 그래야 추레한 얼굴에 조금은 생기가 돌 것 같았다.
아직 8시도 안 된 시간이라 한창 자고 있던 영수는 손에 자동카메라를 들고 팬티 바람으로 현관 밖으로 나왔다.
숙소를 배경으로 서서 두산은 수일의 어깨를 안았다. 왠지 쑥스러워 수일은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내려 맞잡았다.
“찍습니다. 하나, 둘, 김치.”
찰칵, 하고 소리가 났다.
“한 장 더 찍으라.”
“예.”
이번엔 용기를 내 두산의 허리를 안았다.
“하나, 둘, 김치.”
수일은 환하게 웃었다.
너무 환하게 웃어 눈이 안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슬쩍 두산을 올려다보니 두산이야말로 너무 환하게 웃어 눈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그게 뭐라고 수일은 눈물이 핑 돌았다. 혹여 영수 보는 앞에서 울까 봐, 수일은 서둘러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두산이 카메라를 챙겨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수일은 두산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팬티만 입은 채로 이불속에 들어가 누웠다.
두산도 곧 옷을 벗고 들어왔다. 팔을 뻗어 수일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수일은 두산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다.
“와?”
“뭐가?”
“삐낐나?”
“아니거든.”
“근데 와 내 안 보노?”
수일은 눈물을 꾹 참고 얼른 돌아누워 두산의 가슴에 안겼다. 두산이 슬쩍 내려다보더니, 팔로 꼭 당겨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산의 심장이 어찌나 빠르고 강하게 뛰는지, 제 심장은 죽은 것 같이 느껴졌다.
일정한 박자로 뛰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 같았다.
눈이 스르륵 감겼다.
자고 일어났더니 두산은 없었다.
오늘은 있을 줄 알았는데.
수일은 두산의 자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밖에선 동생들이 점심을 준비 중인지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침을 많이 먹고 바로 자서 밥 생각은 별로 없었다.
수일은 끙, 하고 몸을 일으켜 추리닝을 걸쳤다.
부엌에 있던 영수가 거실로 나오는 수일을 보고 손에 든 <드래곤볼>을 흔들었다.
“행님, 이거 뒤편 빌리왔습니다.”
“정말요?”
지난번 빌려 본 이후 편들을 누가 죄다 빌려 가서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행님은 앉아서 보고 계십시오. 밥 쪼매만 있으믄 다 됩니다.”
수일은 그대로 거실에 앉아 영수가 빌려 온 <드래곤볼>을 읽었다. 연차가 있는 동생들은 무협지와 성인 만화를 뒤섞어 보고 있었고, 연차가 낮은 동생들은 영수를 도와 점심을 만들었다.
“현철 씨는 어디 갔어요?”
“행님 어제 안 들어왔다 아입니까.”
이 말을 하는 동생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흘렀다. 아침부터 데이트를 나갔나 했더니, 아예안 들어온 모양이었다.
“핸처리 행님 장개가는 거 아이가?”
“살람차릴 낀지 방 보러 댕긴다 카든데.”
수일은 가만 동생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현철인 첫사랑과 잘되어 이제 동거까지 할 모양이었다.
좋겠다.
수일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내용도 잘 들어오지 않는 <드래곤볼>을 읽고 또 읽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영수의 정성을 봐서 밥 반 그릇 정도를 비우고 커피도 한 잔 얻어 마셨다.
그리고 세탁소에 가려 옷장을 열어 무대복을 꺼냈다.
제 것만 가져가려다, 민망한 관장약과 오일이 가득 든 두산의 옷장도 슬쩍 열었다. 두산이 됐다고 했지만, 수일은 파우더를 묻힌 두산의 재킷도 맡길 생각이었다.
언제 가져갔는지 그 재킷이 보이질 않았다. 두산도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가 보았다.
수일은 눈으로 한 번 더 훑으며 천천히 옷장 문을 닫았다.
“저 세탁소 좀 갔다 올게요.”
“행님, 제가 댕기오겠습니다.”
영수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에요. 산책도 할 겸 그냥 제가 갈게요.”
현관 앞까지 따라 나오는 영수를 뒤로하고 수일은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저렇게 구름이 많은데 비는 오질 않았다. 마른장마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았다. 지금이라도 두산이 온다면 용두산 공원에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일은 신이 나서 서둘러 세탁소에 옷을 맡겼다.
언제 두산이 올지 몰라 집에 오자마자 세수를 하고, 무대 화장 할 때 빼곤 바르지 않는 스킨로션도 발랐다. 찹찹 얼굴을 두드리니 이제 좀 볼만해졌다.
멍은 거의 다 빠졌고 갈아 버린 입에도 딱지 몇 개만 붙어 있었다.
이발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수일은 그새 긴 머리를 손질하며 시계를 보았다. 어느덧 3시가 다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두산은 오질 않았다.
도장까지 찍어 놓고 끝내 오질 않았다.
수일은 그게 못내 서운해 저녁도 건너뛰고 이불을 펴고 누웠다.
숙소 앞에서 사진을 찍긴 했지만, 그래도 용두산 공원에서 찍고 싶었다. 두산과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곳이었다. 그때처럼 멍이 들고 부은 얼굴이 아니라 좀 더 사람다운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물론 사진은 다음에도 찍을 수 있었지만, 그날은 오늘이 아니었다. 두산과 처음으로 몸을 섞고 처음으로 아침을 먹은 날이 아니었다.
수일은 모로 누워 제가 뭘 잘못한 것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모든 게 다 걸렸다.
스무 살 꽃다운 처녀도 아니면서 몸 하나 내준 거로 생색낸 것처럼 보였나, 아니면 어젯밤 너무 헤퍼 보였나, 아니면 장어구이를 돼지처럼 혼자 먹어서 그랬나, 그것도 아니면 업혀 놓고 도나츠를 먹겠다고 설탕 가루를 떨어트려 그랬나.
어제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생각해 내자, 모든 게 다 마음에 걸렸다.
자책하는 동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수일은 밥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고픈 배를 안고 눈만 꼬옥 감고 있었다.
오늘은 정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이트에 도착했다.
은아 씨가 무슨 일인지 대기실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 옆에 무대복과 화장품 가방이 있는 걸 봐선 안에 다른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문이 잠겼나 보았다.
“누님, 왜 안 들어가세요?”
“수일이 왔나? 안 들어가는 기 아이고 몬 들어가는 기다.”
“잠겼어요?”
“아니. 지금 삼락이 오빠하고 해운대 싸모 남편하고 들어가 있다 아이가. 문을 잠가가 드가도 몬 한다.”
수일은 당연히 해운대 사모가 남편 없는 싱글인 줄 알았다. 수일이 부산에 내려오기 전부터 만났다고 들었고, 이후에도 두 사람은 내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았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수일은 대기실 문에 귀를 대 보았다. 하지만 밴드가 연주 중이라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혼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뚱뚱하고 키가 작은, 못생긴 남자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나왔다.
“씨발 새끼, 내가 니 간통제로 안 쳐넣은 거를 감사하게 생각해라. 알았나?”
문 쪽을 돌아보며 소리를 지르고 칵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수일이 서둘러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삼락 형님의 몰골이 처참했다.
형님은 흰 팬티 차림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있었다. 주위엔 까만색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해운대 사모의 남편이 삼락 형님의 숱 많은 머리 한가운데를 바리깡으로 밀어 버린 모양이었다. 온몸은 구둣발에 맞았는지 붉고 검은 멍이 들었고 비싼 정장은 갈가리 찢겨 있었다.
은아 씨도 따라와 수일을 도와 삼락 형님을 일으켰다. 나이 마흔둘의 삼락 형님은 동생들 앞에서 연신 훌쩍거렸다.
“하이고, 오빠야, 이 무슨 일이고? 으이? 할 짓이 없어서 또 유부녀를 꼬싰나?”
은아 씨는 삼락 형님의 등을 소리 나게 찰싹 때렸다.
“이쯤에서 끝난 기 천만다행이다. 오빠 니 이런 일로 콩밥도 무따 아이가. 제발 정신 쫌 채리라.”
“형님, 이거 좀 드세요.”
수일은 정수기에서 물을 떠 삼락 형님에게 갖다주었다. 뺨도 맞았는지 뺨 한쪽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형님은 물을 한 번에 들이켜고 개새끼, 했다. 화장지를 집어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그러다 팬티를 슬쩍 들여다보며 제 물건이 잘 있나 확인했다.
“꼬치를 우찌나 밟아 싸턴지, 내 병원부터 댕기오께.”
삼락 형님은 대기실 안에 여분으로 넣어 둔 흰색 상하의 추리닝을 꺼내 입었다. 하지만 머리 한가운데에 고속도로가 나 있어 그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은아 씨가 쓰고 온 분홍색 야구 모자를 벗어 주었다. 겨우 머리 반만 들어가는 모자를 억지로 쓰고, 삼락 형님은 터덜터덜 대기실 밖을 나섰다.
수일은 삼락 형님을 따라갔다.
“형님, 괜찮으세요?”
수일의 물음에 형님은 호탕한 소리로 웃으며 개안타, 했다.
“이기 잘생긴 싸나이의 운맹 아니겠나? 내 걱정은 말고 들어가 바라. 내일 보재이.”
“네. 형님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수일은 그렇게 하얀 추리닝에 여자용 분홍색 야구 모자를 쓴 삼락 형님을 배웅했다.
삼락 형님은 간통죄로 1년 정도 교도소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게 한 번은 아닐 거라고 은아 씨가 혀를 끌끌 찼다.
대기실에 수일은 혼자 남았다.
배가 고파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이래서 노래나 부를 수 있을까 싶었다.
대기실 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두산이 손에 까만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떡볶이와 순대 냄새가 확 끼쳤다. 음식 냄새에 수일의 배가 요동쳤지만, 수일은 침만 꼴깍 삼키고 두산을 보지 않았다.
일부러 화장하는 척, 화운데이션을 손에 짜서 얼굴에 찍었다.
“보골1)났나?”
“…….”
수일은 두산이 말하는 ‘보골’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어차피 알았어도 대답할 마음도 없었지만.
“용두산 몬 가서 그라나?”
“…아냐.”
“내일 가자.”
“안 가도 돼.”
수일은 두산이 보고 싶지 않았다. 도장까지 찍었으면서 오지도 않고, 거기다 손가락이 부러진 것도 아니면서 못 온다는 전화 한 통 없었다. 눈도 안 마주치고 열심히 화운데이션을 펴 발랐다.
딸깍, 두산이 대기실 문 잠그는 소리에 수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속으로 조마조마하며 돌아볼 용기도 없어서 눈만 내리깔았다.
“와 오늘 가고 싶었는데?”
두산은 동그란 의자를 가져와 수일의 옆을 보고 앉았다. 거울 속에 두산의 옆모습이 비쳤다. 화가 나 있는 것도 같고 표정이 없는 것도 같고,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수일은 기가 죽었다.
“말을 해 바라.”
“그냥… 다음에 가자.”
수일은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두산이 한숨을 쉬었다.
“니가 와 그라는지 내 알겠는데, 수일아, 잘 생각해 바라. 한 번만 하고 다시는 몬 하는 기 좋나 아이면 맨날 하는 기 좋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맨날 하는 거.
수일은 속으로만 대답했다.
“한 번 자따꼬 사진 찍고 염병 떨어바야 헤어지면 그만 아이가? 천년만년 그 사진 바가 머 하긋노? 대신에, 이래 맨날 얼굴 보고 맨날 같이 자고 그라는 기 좋지. 안 글나?”
묘하게 설득력 있는 두산의 말에 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해노코 몬 가서 진짜로 미안타.”
두산은 검지를 굽혀 수일의 턱을 제 쪽으로 돌렸다.
“내 쫌 바라. 에헤이, 눈 깔지 말고.”
수일은 두산의 눈을 마주 봤다. 수일을 보는 두산의 눈이 참 다정했다.
두산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수일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퍼뜩 밥 묵자. 그래야 노래도 부르지.”
두산은 테이블로 수일을 끌었다. 떡볶이와 순대, 오뎅이 들어 있는 까만 봉지를 뜯어 수일의 앞에 놓아주었다.
못 이기는 척 나무젓가락에 꽂혀 있는 오뎅부터 베어 물고 젓가락을 들어 떡볶이를 먹었다. 정말로 배가 고팠던 수일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두산은 벌떡 일어나 밖에서 사이다 두 병을 들고 왔다. 그 자리에서 이빨로 뚜껑을 따 종이컵에 따라 주었다.
수일은 입 안 가득 음식을 물고, 사이다를 마셨다. 빵빵한 볼을 하고 우물우물 씹고 있는 수일을 보고 두산이 웃었다.
“오늘 삼락이 형님 안 좋은 일 있으셨어.”
배가 조금 차자 수일은 삼락 형님의 일을 전했다.
“들었다. 그 아재 간통으로 빵도 여러 번 갔다 왔는데 또 그라네.”
“너도 형님 잘못이라고 생각해?”
“당연하지. 돈 많고 외로운 아지매만 골라가 꼬시는 기, 그기 사람이가?”
“그래두. 꼭 삼락 형님 잘못만은 아니잖아. 남편이 잘했으면 그 사모가 넘어가지도 않았겠지. 얼마나 외로웠으면.”
“윤수일이.”
두산이 사나운 얼굴을 하고 이름을 불렀다.
“…왜?”
“니 바람피는 순간, 부산 바다 피바다 되는 줄 알아라. 알았나?”
“내가 왜 바람을 피우니? 니가 피우면 모를까….”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나? 아무 새끼한테 구멍 대주는 거 하고 같냐꼬?”
두산은 마치 수일이 바람난 지 마누라라도 되는 것처럼 열을 올렸다. 게다가 누굴 여자 취급하고 난린지 몰랐다. 수일도 한 소리 하려는데,
“하이고 시끄러버라. 두사이 느그 집이가? 시끄러버 몬 살게따.”
은아 씨가 리허설을 마치고 들어왔다. 오자마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엄마야, 맛있는 냄새.”
“누님도 같이 드세요.”
수일은 두산을 흘겨보며, 나무젓가락 하나를 집어 은아 씨에게 주었다.
“누야, 그거 묵을라꼬?”
“와, 안 되나? 내도 입인데.”
“내가 새로 사다 주께. 저거는 수일이 행님 묵게 냅두라.”
“머할라꼬? 남았는데.”
“리허설 끝나고 또 무야지. 행님 저녁도 안 무따.”
두산이 하도 강하게 나오는 통에 은아 씨는 오야, 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괜히 민망해진 수일은 조용히 사이다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두산은 수일이 먹던 걸 봉지에 꼼꼼히 싸서 수일을 뒤따랐다.
***
웬일로 다른 데도 가지 않고 내내 수일과 함께 있던 두산은 무대가 끝나자마자 수일을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피닉스 관광호텔이었다.
호텔 방 안에서 남포동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시설은 조금 낡았지만, 운치가 있었다.
“여 옥상 가면 부산 타워도 보인다. 내 지배인하고 잘 아니까, 아침에 옥상 가서 함 보자.”
“응.”
수일은 호텔 창에 붙어 서서 시내를 구경했다.
“먼저 씻을래 아이면 내가 먼저 씻으까?”
“어? 어… 근데 그거….”
수일이 머뭇거리자 두산은 들고 온 까만 일수 가방을 흔들었다. 수일은 기가 차 두산을 슬쩍 흘겨보고, 가방을 뺏어서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안 도와주도 되나?”
“나 혼자 할 거야.”
쾅 소리가 나도록 욕실 문을 닫고, 수일은 세면대 위에서 가방 지퍼를 열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진통제와 소염제가 들어 있었다. 거기다 박카스와 피로 회복제는 왜 챙겼나 몰랐다. 파스까지 있었다.
수일은 피식 웃었다. 서운했던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온전히 사랑만 남았다.
몸을 씻고 뒷물을 하는 동안 슬쩍 구멍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볼 수가 없으니 상태가 어떤지 몰랐지만 조금 부어 있는 것 같았다.
괜찮으려나.
수일은 이런 걱정을 하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사정했던 당시가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몸 안에 뭐가 있길래 그랬던 걸까? 혼자 궁금해하며 구석구석 부지런히 씻었다.
한참을 씻고 샤워 가운을 걸치고 나가자, 알몸으로 서서 욕실 앞으로 왔다 갔다 하던 두산과 마주쳤다.
“머 이래 오래 걸리노?”
“…….”
“니 어데 아픈 줄 알고 식겁했다 아이가.”
“그게, 시간이 좀 걸리니까….”
“앞으로 혼자 씻을 생각 하지 마라. 내 진짜로 문 뿌사삘2) 뻔했다.”
두산은 얼굴이 벌게져 혼자 씩씩댔다.
그런데 걱정했다면서 왜 자지는 벌떡 서서 흔들거리고 있나 몰랐다.
수일은 입을 삐죽하고 씻어, 했다.
“와 대답이 없노? 니 낼부터 혼자 할 생각 하지 마라. 알았나?”
“누가 낼 또 한대?”
수일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두산은 대답 없이 욕실 문을 닫았다.
두산은 샤워를 마치고 또 몸도 닦지 않은 채 그대로 달려와 수일을 침대에 눕혔다. 어찌나 빠르게 덮쳐 안아 올리던지, 수일은 두산이 프로 레슬링 선수라도 된 줄 알았다.
몸이 튕겨 오르듯 침대에 눕혀지자마자 두산은 급하게 수일의 가운을 벗겼다. 쪽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부터 온몸에 되는대로 키스했다. 어지간히 하고 싶었나 싶어 수일은 웃음이 났다.
다시 입술이 다가와 키스했다. 서로 입술을 열고 가볍게 혀를 얽고 빨았다. 쪽 소리를 내며 입맞춤을 하고 웃었다.
“넌 왜 물을 안 닦고 나오니?”
“어차피 젖을 낀데 머 하러?”
“그래도 감기 들면 어쩌려구.”
“내 평생 감기 든 적 없는데?”
평생이라고 해 봐야 겨우 스물다섯 해를 산 두산이 의아한 눈으로 수일을 보았다. 오늘따라 왜 이리 어려 보이나 몰랐다.
“두산아.”
“어?”
“약속 안 지켜도 괜찮으니까 꼭 전화해. 나 진짜 많이 기다렸어.”
이런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다.
두산은 수일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고 이마에 쪽 뽀뽀를 했다. 마주 보는 눈이 다정했다.
“내 이런 일로 저나해 본 적이 없어가꼬 생각도 몬 해따. 앞으론 꼭 저나 하께. 니 절때로 기다리게 안 하께.”
다짐하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리고 수일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꼭 눌러 비볐다.
“도장찍으따.”
수일이 피식 웃었다.
겨우 두 번짼데도 능숙하게 수일의 구멍을 전부 풀어 준 두산은 엎드려 있던 몸을 돌려 다리를 벌린 다음 상체를 세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등을 구부려 수일의 겨드랑이에 팔을 하나씩 끼워 넣었다. 수일의 등 뒤로 두산의 팔이 닿았다.
“내 목 안아라, 허리에 다리도 감꼬.”
“응.”
두산은 천천히 제 무릎 위로 수일을 올려 앉혔다. 등을 조금 구부리고, 수일을 안은 채 침대에 바짝 붙어 앉았다.
“단디 안꼬 기대라.”
“응?”
수일은 두산이 뭘 하려는지 몰라 의아한 표정을 했다.
“떨어진다, 단디 안으라꼬.”
지금 충분히 안정되게 안고 있는데 자꾸 단단히 안으라는 말에 수일은 시키는 대로 힘을 주어 안았다.
“옳지. 꼭 잡아라.”
그 말을 끝내자마자, 두산은 등을 안던 손을 떼고 수일의 양 허벅다리를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렸다.
몸이 붕 떴다.
수일은 떨어질까 봐 두산을 안은 팔과 다리에 몸에 온 힘을 실었다.
두산은 전혀 버거워하는 기색 없이 수일을 안은 채 천천히 상체를 세워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였지만, 높이가 점점 높아졌다.
두산의 몸에 안겨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너무 이상해 수일은 낑낑댔다. 커다란 두 손이 양 허벅다리를 꽉 쥐자 엉덩이도 같이 벌어졌다. 손가락으로 충분히 풀어 준 곳에 두산은 그 자세로 발기한 성기를 갖다 댔다.
설마 이 자세로 하는 건 아니겠지.
수일은 혼자 얼굴이 벌게져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 바람에 두산의 것이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산은 한 손으로 수일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제 성기를 잡아 구멍에 대고 문질렀다.
“수일아, 힘 쫌 빼 바라. 이기 안 들어간다 아이가.”
두산의 몸에서 땀이 났다.
“힘들어.”
“머가 힘드노? 내가 다 바치고 있는데. 쪼매만, 옳지, 쪼매만 힘 빼자.”
수일은 체중을 두산에게 싣고 시키는 대로 힘을 뺐다. 그러자 대가리가 쑥 들어왔다.
“아!”
아팠다. 수일은 인상을 썼다.
역시 제 몸엔 들어와선 안 될 물건이었다. 그 이물감에 수일은 숨도 못 쉬고 벌벌 떨었다.
“으으….”
“개안나?”
이렇게 묻는 두산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두산은 다시 수일의 양 허벅지를 꽉 거머쥐고 수일을 좀 더 제 몸 가까이 안았다. 마치 갓난아이를 안듯 가슴에 수일은 붙여 안았다. 상체가 딱 달라붙어 빈틈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편했다. 수일은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쉬었다.
수일의 얼굴을 살펴보던 두산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조금씩 대가리가 구멍 입구에서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그 큰 것이 주름을 건드릴 때마다 이상야릇한 느낌에 수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두산은 수일과 이마를 맞대고 수일의 모든 표정을 읽고 있었다.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다.
수일은 이런 자세로 섹스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무도 안정되게 자신을 안아 들고 허리를 움직이는 두산의 강한 신체에 몸이 달았다. 열꽃이 피었다. 수일을 안고 있는 단단한 상체와 팔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수일은 발정 난 두산의 눈을 마주 보았다. 뜨거운 숨을 뱉으며 키스하고 혀를 섞었다.
“하아….”
아래가 꽉 들어차 미친 듯이 조여들었다. 거대한 것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장기들이 서로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다시 모였다.
“흐응, 너무 좋아.”
수일은 저도 모르게 들릴 듯 말 듯 말을 뱉었다. 두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렇게 느끼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여자도 아닌데 남자의 성기에 이 정도로 느끼는 게 가능한 걸까?
수일은 머리가 하얘졌다.
“하읏! 앗. 두산아, 아흑, 좋아 죽을, 것 같애!”
“내도! 내도 씨발, 좋아. 흡, 죽겠다.”
살끼리 맞닿고 성기가 들어왔다 나가면서 아래에선 끊임없이 질꺽거리는 소리가 났다. 씨발 씨발 뱉는 두산의 신음과 좋아 죽겠다고 두산의 이름을 부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수일의 신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성기가 점점 안으로 들어오더니, 다시 그 지점에 도달했다.
수일의 목이 뒤로 넘어갔다. 바들바들 몸을 떨며 자지러질 듯 높은 비명을 질렀다. 두산은 어제처럼 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지점을 몇 번이나 찧었을까?
“아으!!!!”
수일은 상체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몸을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사정했다.
어제보다 쾌락의 강도가 더 높았다. 부들부들 떨다 못해 안았던 두 팔과 두 다리마저 풀렸다. 허공에 팔다리가 흔들렸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두산은 수일이 넘어가지 못하게 두 팔로 단단히 허리를 안아 들었다.
수일의 구멍이 미친 듯이 움찔거렸고, 두산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닥거리는 수일을 안아 들고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만은 두산도 그리 오래 참지 못하고 사정을 했다.
“씨발!!”
몸 안에 뜨거운 것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 사정감에 마구 떨었다. 숨을 헐떡이고 급하게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입술을 물고 빨고 혀를 물고 빨고, 입에 닿는 건 그게 얼굴이든 코든 어깨든 다 물고 빨았다.
수일의 몸이 축 처지자, 두산은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히 수일을 침대에 눕혔다.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수일의 머리칼을 쓸어 주고 입을 맞추었다.
숨을 몰아쉬는 두산의 단단한 몸이 그렇게 야할 수가 없었다. 수일은 겨우 손을 뻗어 두산의 젖은 상체를 쓰다듬었다.
수일은 좋아 죽을 것 같았다. 정말로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두산은 수일에게 입을 맞추고 입술을 비볐다. 도톰한 아랫입술로 수일의 입을 가르고 촉촉한 점막을 건드렸다. 젖은 소리를 내며 몇 번이고 수일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짱어 안 묵길 잘했제?”
두산은 이렇게 말하며 능글맞게 웃었다. 사정한 지 얼마나 됐다고 두산의 성기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수일의 시선이 머물다 가자, 두산도 제 것을 내려다보고 씨익 웃었다.
“눈치 없게 벌써 서삤네.”
수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두산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일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수일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입 안에 넣고 쪽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여자들한테도 이렇게 잘했니?”
얼마나 비명을 질렀던지 그새 목이 쉰 수일이 물었다.
갑자기 두산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아!”
입에 넣고 있던 수일의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 수일의 손가락을 빼고 그 큰 손으로 깍지를 꼈다.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어찌나 주는지 아팠다.
수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니한테만 이란다. 그라니까 니도 내한테만 이래라. 알았나?”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한테만 다리 벌리고 내 좆만 빨아라. 알았나?”
수일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도 이제 니만 볼 끼다. 딴 년들 안 볼 끼다.”
수일은 물끄러미 두산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두산이 너무 어려 보였다. 앞으로 수일만 보겠다고 다짐하는 두산이 너무 어리고 미숙해 보였다.
그리고 슬펐다.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녀에게 수일도 두산과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거짓말이라도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수일은 여자에게 몸을 팔았고, 그녀는 남자에게 몸을 팔았다. 마음속으로만 빌었을 뿐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수일이 울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 주고 보낸 것이 사무쳤다.
잘 살라는 말이라도 해 줄걸.
두산은 수일이 왜 우는지 몰라 당황했다. 급히 수일을 안고 달랬다.
“내 때문이가?”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리가 되어 나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