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81)

일찍 자니 일찍 눈이 떠졌다. 두산은 언제 나갔는지, 또 옆이 비었다.

좀 더 같이 누워 있어 주면 좋으련만.

수일은 괜히 서운했다.

두산이 누웠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다가, 끙, 하고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황달이라도 걸린 것처럼 노랬다. 멍이 빠지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참 흉했다.

두산이 자꾸 예쁘다고 해 줘서 제 얼굴이 어떤지 잊고 있다가, 이렇게 거울을 보면 그 말이 거짓말인 걸 알았다.

바보같이 믿을 걸 믿어야지.

수일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두산은 매일 아침 어디를 가는지 몰랐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와도, 어느새 일어나 보면 없었다.

수일은 거실에서 자는 동생들을 깨울까 봐 방 안에 가만 앉아 있었다.

그 남자에게서 받은 20만 원이 아직도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어디든 써 버리고 싶었다. 이왕이면 동생들에게 먹을 걸 사 주고 싶었다.

오늘은 동생들을 위해 고기라도 좀 사야지.

맷값이든 뭐든 돈은 돈이니까, 수일은 그 돈을 좋은 데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병든 닭처럼 벽에 기대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얼마나 그랬을까? 몸이 옆으로 넘어가려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니, 두산이 쪼그리고 앉아 웃고 있었다.

“언제 왔어요?”

“지금.”

“어디 갔다 왔어요?”

“염소 잡으러.”

두산의 싱거운 농담에 수일은 피식 웃었다.

두산은 손가락으로 수일의 멍든 얼굴을 툭 건드렸다. 수일은 일부러 인상을 썼지만, 이제 두산이 건드려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잠 좀 깨고 있어라. 내 밥 챙기오께.”

염소 잡으러 갔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두산은 새벽에 나가, 어디서 흑염소 한 마리를 고아 왔다.

“행님 빨리 싸는 거 보이 영 안 되겠데. 내 한 세 번 빨았나? 그래 순식간에 싸삐믄 문제 있다 아이가. 뱀이고 머고 다 쓸데없다. 기력회복에는 염소가 체고다 체고.”

자기가 맞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사정을 너무 빨리해서 새벽부터 부랴부랴 염소를 고아 왔다는 말에 수일은 얼굴이 벌게졌다.

“행님, 빨리 무라. 고기 식는다.”

여자와 할 땐 문제없었다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차마 말하진 못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니, 두산이라면 나이 탓으로 돌리며 더 놀릴 것 같았다.

두산은 흑염소 고기를 수일에게 먹이고, 자기는 염소탕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오래 버티면서 왜 먹어요?”

괜히 토라져 수일이 한마디 했다.

“국물만 묵는다. 국물만.”

국물에 온갖 영양분이 다 들었을 텐데. 수일은 입을 삐죽이며 자기도 고기 말고 국물을 달라고 했다.

“거참, 성격 이상하네. 고기가 더 좋다.”

“밥 말아 줘요.”

“고기 다 묵으면 말아 주께요.”

수일이 고기를 깨작깨작 먹자 두산이 구시렁댔다.

“빨리 쌌으니까 빨리 쌌다카지, 그걸로 삐끼면 우짜노.”

수일은 두산을 흘겨보았다.

염소고기가 처음인 수일은 두산이 시키는 대로 수육처럼 생긴 고기에 부추를 더해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두산은 혹여나 수일이 목이라도 막힐까, 염소탕을 옆에 놓아 주었다. 고기 한 점에 국물 한 숟가락을 먹으면 우리 행님 잘 묵네, 하고 두산이 칭찬했다. 수일은 그 말이 괜히 쑥스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티격태격 평소보다 이른 점심을 먹은 두 사람은 방 안에서 부둥켜안았다. 수일의 눈에 든 멍을 달걀로 살살 돌려 주며, 두산은 쪽쪽 입을 맞추었다.

“우찌 이래 눈이 예쁘노. 누구 닮았습니까?”

“어머니요.”

“어머니가 억수로 미인인갑네.”

“사진밖에 못 봐서 잘 모르겠어요. 사진에서도 아파 보이셔서.”

“언제 돌아가셨는데예?”

“다섯 살 때요.”

“이래 예쁜 아를 두고 우째 눈을 감으셨을꼬.”

동네 노인분들에게 듣던 소리를 두산에게 들으니 수일은 웃음이 났다.

“와요?”

“스물다섯 맞아요?”

“그라믄. 내가 그래 들어보이나?”

“그게 아니고 말투가.”

“아. 내가 우리 할배랑 같이 살았거든예. 우리 엄마가 억수로 고생 많았다. 할배 성격이 보통이 아이라서, 시집살이가 말도 몬 했다 아입니까.”

두산이 가족 얘길 한 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만큼 다혈질일 것 같은 두산까지 키우느라, 어머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듯했다.

“형제가 몇이나 돼요?”

“행님만 셋이요. 내 막내 아입니까. 막내 티 마이 난다 카던데.”

수일은 풉, 하고 웃는 바람에 침을 뿜을 뻔했다. 두산의 어깨에 고개를 대고 키득키득 웃었다.

“진짠데. 내가 막낸긴 그래 웃깁니까?”

“아니요.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공갈도 몬 치면서 또 또.”

수일의 뻔한 거짓말에 두산이 혀를 찼다.

“형들이랑 닮았어요?”

“큰행님만 엄마 닮고, 나머진 다 아빠 닮았지. 하필 내가 할배랑 똑같이 생깄거든예. 우리 엄마가 억수로 구박했다. 행님은요?”

“난 혼자예요.”

수일은 혼자라는 말이 쓸쓸했다.

형이든 누나든 아니면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나 외롭지 않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혼자셨다. 수일은 의지할 친척도 하나 없었다.

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셨을까?

“먼 생각을 그래합니까?”

“아니에요. 그냥.”

“난중에 우리 엄마 함 보여주께요. 우리 엄마도 억수로 미인이다. 성격이 더러버서 그렇지.”

두산은 실실 웃으며, 수일의 노랗게 뜬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어머니께 성격이 더럽다가 뭐예요?”

“와요? 진짠데.”

“하여간, 못 말려.”

수일은 어이없어 웃었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두산은 정말 버릇이 없었다.

그 제멋대로이고 버릇없는 게 두산의 매력이긴 했지만, 아들이었으면 한 대 쥐어박고도 남았다.

그렇게 둘이서 방 안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즈음, 삼락 형님이 소고기와 과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숙소로 찾아왔다.

“여 머시 이래 복잡하노? 찾는다고 욕봤다.”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투덜댔다.

거실에서 자던 동생들이 놀라 일어나 형님을 맞았다.

방에서 껴안고 있던 둘은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오셨습니까?”

이미 거실에 들어와 앉은 삼락 형님을 두산이 반갑게 맞았다.

수일이 그 뒤를 따라 나오며 인사를 했다.

“하이고야, 수일이 니 얼굴이 그기 머꼬? 내가 니 볼 면목이 없다.”

사장에게 맞고 간 날처럼, 삼락 형님은 미안해했다.

“괜찮아요, 형님.”

“갠찮키는. 부산서 밥 좀 묵꼬 쉬다 가라꼬 불렀는데, 이래 맞아가 되겠나. 내가 속이 말이 아이다.”

“자꾸 왜 그러세요. 저 진짜 괜찮아요.”

수일이 민망해하자, 삼락 형님은 더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안쓰러운지 내내 수일의 마른 등을 쓰다듬었다.

“소고기는 수일이만 주라. 느그들은 알아서 잘 챙기 묵는다 아이가.”

삼락 형님의 말에 막내 영수가 예, 하고 고기를 냉장고에 넣었다. 사실 딱 수일이 분량만 사 온 거라 같이 나눠 먹을 수도 없었다.

형님은 요즘도 해운대 사모님을 보필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사모님이 많이 부자인지, 삼락 형님이 입고 있는 양복에 윤기가 흘렀다. 손가락에도 전에 없던 굵은 금반지가 걸려 있었다.

잘하면 다음 주에는 차를 한 대 선물 받을지도 모른다며 목에 힘을 주었다. 참으로 능력 좋은 남자였다.

“갱자 누님은 제비 하나를 문 거 같은데, 내 보기에 영 불안타. 이제 서른도 안 된 젊은 새끼가 돈을 억수로 밝히싸테. 내캉 같이 함 만났는데 영 버릇떼이가 없어. 어른을 보고 인사도 안 하드라꼬.”

경자 씨의 근황을 전하면서 경자 씨가 잡은 젊은 제비를 험담했다.

지배인 말에 따르면 경자 씨는 현금 부자 땅 부자라 했으니, 그 남자도 잘만 하면 팔자가 펼지도 몰랐다.

삼락 형님과 그 젊은 남자 중 누가 더 나쁜 걸까?

수일은 문득 두산에게 험한 소리를 들은 경자 씨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수일에게 심하게 군 적은 없었다.

손님을 받겠다고 한 건 수일이었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경자 씨는 자기를 때린 남자보다 돈도 넉넉하게 줬다.

“수일이 니는 은제부터 무대에 슬끼고? 사장이 써커스단인가 먼가 또 알아보러 갔다 카든데.”

삼락 형님의 말에 수일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손님에게 맞아서 쉬는 거긴 했지만, 그래도 써커스단에게 자리를 뺏길지도 몰랐다. 사장은 원하면 언제든 계약을 파기할 수 있었다.

수일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삼락 형님이 손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

“니 계약은 걱정하지 마라. 사장님이 3개월은 무조건 채운다 캐서 내가 니 부른 기다.”

가만 듣고 있던 두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일은 삼락 형님의 말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얼굴은 엉망이지만 화장으로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나이트에 나가 봐야지.

수일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삼락 형님은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자리를 떴다. 길 찾는 데 애를 먹은 형님을 두산이 큰길까지 배웅하러 갔다.

두산이 나간 사이, 수일은 동생들에게 밥을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총총 뛰어서 근처 정육점으로 갔다. 남자에게서 받은 20만 원으로 미국산 소고기를 사고, 근처 마트에서 상추와 깻잎 등 쌈 채소까지 샀다.

기다리라던 말에도 점심 준비 중이던 동생들은 수일이 사 온 소고기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준비하던 것들을 다 치우고, 커다란 상 두 개를 펴 바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행님, 잘 먹겠습니다.”

단체 훈련이라도 나온 운동부 학생들처럼 큰소리로 합창을 했다.

그 소리에 괜히 쑥스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열흘 남짓 함께했지만 별 볼 일 없는 자기를 챙겨 주고 꼬박꼬박 형님 대접을 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벌써 샀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먹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수일도 동생들 옆에 끼어 앉아 고기를 집어 먹었다.

소고기라 입에 들어가는 속도가 빨랐다.

두산도 얼른 들어오면 좋으련만, 수일은 고기를 먹으면서 연신 현관문을 흘끔거렸다.

다행히 얼마 안 가 현관문이 열리고 두산이 들어왔다. 수일은 벌떡 일어나 두산의 팔을 끌었다.

“고기 먹어요.”

“이거 수일이 행님이 사는 기다. 니도 얼른 와서 무라. 소고기다 소고기.”

현철이 상추에 고기를 싸 먹으며 말했다.

소고기란 말에 두산은 눈썹을 꿈틀했다.

“돈이 어데서 나서?”

두산의 물음에 수일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경자 누님이 주신 돈으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수일은 거짓말을 했다.

들킬 걸 알면서도 두산의 굳은 얼굴을 보고 차마 자기를 때린 남자가 준 돈으로 샀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수일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씨발!”

눈치 빠른 두산은 욕을 뱉으며 수일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러다 밥상 위에 놓인 소고기 더미를 들더니,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행님, 와 그랍니까? 비싼 고기를.”

“두사이 니 머 하는 짓이고?”

현철과 덩치 하나가 소고기를 버린 두산에게 한 소리 하는 사이, 막내 영수가 쓰레기통에 직진한 고기를 잽싸게 꺼냈다.

두산이 그러는 걸 멍하니 지켜보던 수일은 순간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가 동생들을 위해 산 고기였다. 매를 맞고 번 돈으로 산 고기였다.

그걸 두산이 쓰레기 취급하고 있었다.

수일의 눈이 돌아갔다. 처음 보는 이상한 번득임이 스쳤다.

“씨발 새끼야!! 왜 니 맘대로 고기를 버려, 니가 뭔데?”

수일이 소리를 질렀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에 핏대를 세웠다.

욕은커녕 반말도 하지 않던 수일이 두산을 향해 소리치자, 사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두산은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표정으로 수일을 노려보았다.

“다 나가라.”

“아들 밥 묵고 있는데 와 이라노?”

최고 연장자인 현철이 말렸지만, 두산은 다 나가란 말만 했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현철은 가스버너의 불을 끄고 동생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두산이 수일을 어쩔까 싶은지, 현철인 끝까지 현관 앞을 지키고 섰다가 두산의 고함에 한숨을 쉬고 나갔다.

“그래도 행님은 건드리지 마라.”

나가면서도 수일을 걱정했다.

수일은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수일과 마찬가지로, 두산의 얼굴도 붉으락푸르락했다. 어찌나 눈을 부라리던지 얼굴 근육이 마구 움직였다.

“왜? 너도 그 새끼처럼 나 때리게?”

평소라면 절대 입에 담지 않을 말을 뱉었다.

귀에 삐이이, 하고 이명이 들려 수일은 손바닥으로 귀를 쳤다.

그 돈으로 고기를 산 게 뭐 어때서. 두산이 저러는 게 싫었다. 수치스러웠다.

수일의 말에 두산은 코웃음을 쳤다.

“와? 때리면 맞을라꼬?”

“그래. 20만 원 내놓고 때려. 맞아 줄 테니까.”

수일의 입에서 20만 원 소리가 나오자, 두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만해라.”

“뭘 그만해? 너도 내가 우습지? 너한테 빌빌대면서 좆이나 빨아 주니까 우스워 죽겠지?”

“그만하라꼬!”

두산이 낮게 으르렁댔다.

한마디라도 더 하면 정말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수일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미 이성의 끈이 끊겨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사장님한테 가서 말해. 나 손님 받을 거라고, 매 맞아도 손님 받아서 돈 벌 거니까 누구든 방으로 불러 달라고 다시 말하라고. 내 기둥서방인 척 오지랖 떨지 말고.”

수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산은 수일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수일은 끌려가지 않으려 바닥에 주저앉아 버텼지만, 힘으로 당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두산에게 질질 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두산은 방바닥에 수일을 내동댕이치더니, 지갑을 꺼내 1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수일에게 던졌다.

그리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지랄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수일이 얌전히 돈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웠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손님에게 하듯 수일은 두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무릎으로 기어가 두산의 자지를 잡았다.

두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지다 못해, 울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도 수일은 왜 손님이 자기를 향해 저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수일은 이제 제 앞에 서 있는 게 누군지도 몰랐다. 좀 전까지 누군가 앞에 서 있었는데, 눈을 한번 깜빡이고 나니 아무도 없었다.

밖에선 밥상을 엎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그릇들이 깨졌다. 두사니 짐승같이 고함을 질렀다. 씨발, 씨발, 연신 욕을 뱉으며, 바닥을 발로 찼다.

수일은 벽에 기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왜 그랬는지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튀어 나갈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개새끼, 지가 뭔데. 내가 번 돈은 돈도 아냐? 씨발 새끼.”

수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친 사람처럼 중얼중얼 욕을 했다. 처음엔 두산을 욕하다가, 곧 자기 자신에게 욕을 쏟아부었다.

“미친 새끼, 어디 기댈 게 없어 조폭 새끼한테 기대고. 몸이나 주고. 더러운 새끼. 평생 빌어먹다 뒤질 새끼.”

어찌나 떨리는지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수일은 두 팔로 제 몸을 안고, 떨리는 몸을 막아 보려 애를 썼다.

난장판이 된 집으로 들어온 동생들이 거실을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불평불만이 터졌다. 사람 먹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저들끼리 욕을 했지만, 현철의 그만하란 소리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현철이 방으로 들어와 수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이고, 행님아. 와 이랍니까? 두사이 성격 다 알면서 살살 달래지. 어데 다친 데는 없습니까?”

수일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질렸다.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드는지 오들오들 하도 떨어 대는 통에, 현철은 수일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랬는데도 수일은 딱딱 이를 부딪쳐 가며 몸을 떨었다.

현철이 보기에도 수일이 이상했는지, 쉽게 방을 나가지 못했다.

사람이 있는데도 중얼중얼 평소 하지 않는 욕을 하는 것도 이상했다.

“개새끼. 죽어.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사람은 무슨. 개새끼도 너보단 낫겠다.”

“행님, 개안습니까? 수일이 행님, 저 좀 보이소. 예?”

현철이 다급하게 수일의 이름을 불렀지만, 수일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자기를 보고 형님이라고 불렀다.

수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행님! 수일이 행님, 정신 좀 차리 보이소. 행님요!”

마치 꿈속 같았다.

아니, 귀가 먹었나?

도무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수일은 손바닥으로 퍽퍽 소리가 나도록 귀를 쳤다.

현철이 그러지 못하게 수일의 손을 잡았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일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눈을 뜨니 페인트가 벗겨진 천장이 보였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원이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던 수일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현철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수일의 팔에 커다란 바늘이 꽂혀 있었다. 링거병에서 노란 호스를 타고 약이 들어왔다. 몸을 일으키려다 머리가 핑 돌아, 다시 누웠다.

현철이 수일의 기척에 깼다.

“행님, 정신이 좀 듭니까? 간호사님! 여 사람 눈떴습니다.”

현철이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잠시 후 중년의 간호사가 다가와 유니폼 상의에서 작은 플래시를 꺼내 수일의 동공 반응을 확인했다.

그 옆에서 현철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수일을 내려다봤다.

“개안네예.”

“이상 없습니까?”

“예. 고마 기절한 거 뿌입니다.”

“내진탕 이런 거 아니지예?”

“예. 아까 의사 선생님이 아이라 켔다 아입니까. 지금 바늘 빼 드릴 테니까, 한 5분 있다 계산하고 가이소.”

“예. 감사합니다.”

수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동생들과 소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7시가 다 되어 갔다.

도대체 몇 시간째 이러고 있었던 걸까?

간호사는 수일의 팔에 꽂힌 바늘을 빼고 피가 나는 자리에 알코올 솜을 대 주었다. 팔을 가슴 쪽으로 구부려 1분 정도 지혈을 하라고 알렸다.

현철은 수일이 지혈하는 동안 계산을 하러 갔다.

몸을 일으키자 눈앞이 핑핑 돌았다.

수일은 눈을 꼭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숨을 한 번 더 들이쉬는데, 두산이 소고기를 버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자기가 뭐라고 말을 했고, 두산이 화가 났던 일도.

두산은 왜 아까운 고기를 쓰레기통에 버렸을까?

그 고길 누가 샀더라?

맞다. 삼락 형님이 나 먹으라고 사 온 고긴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퍼즐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행님, 개안습니까?”

계산을 마친 현철이 수일에게 물었다.

“네.”

“업어 드리까예?”

“아니에요. 걸을 수 있어요.”

어지러웠지만 수일은 이를 악물고 현철의 뒤를 따랐다.

어쨌거나 수일이 잘못한 게 분명했다. 늘 자기 탓이었다.

수일은 자책할 기운도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화가 난 두산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쨍그랑 그릇이 깨지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렇게까지 두산이 화가 났다면, 분명 자기가 입에 담지 못할 이상한 말을 했겠지.

무슨 말을 했을까?

수일은 몇 년에 한 번씩 이렇게 이성을 잃었고, 그러고 나면 기억이 사라졌다. 기억이 사라지면 곁에 있던 사람도 함께 떠나갔다. 다 수일의 잘못이었다.

수일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물도 말랐다.

차창에 기대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데, 뺨이 욱신거렸다. 두 손으로 만져 보니 부어 있는 것도 같았다. 화가 난 두산이 뺨을 때린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침까지 괜찮았던 뺨이 아플 리가 없었다.

그래도 두산이 이 정도에서 끝낸 게 다행이라고 수일은 안도했다.

적어도 무대에 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수일은 무대복을 챙겼다.

어지러워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극구 만류하는 현철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동생들과 함께 은색 봉고차에 올랐다.

계약하고 겨우 세 번밖에 무대에 서질 못했다. 낮에 삼락 형님이 써커스단 얘기를 꺼낸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제 자기를 두둔해 줄 두산도 없었다.

수일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혹시라도 월급에서 돈이 깎일까 걱정이 앞섰다. 석 달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대기실로 들어가자, 송이와 은아 씨가 자매처럼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수일이 왔나? 하이고, 얼굴 바라.”

은아 씨는 반가움과 걱정이 섞인 얼굴로 수일을 맞았다. 송이도 반가워했다. 수일의 얼굴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나두 서울에서 일할 때 숱하게 맞았잖아요. 개새끼들이 얌전히 싸고 갈 것이지, 어찌나 때리던지. 미친놈들투성이야, 정말.”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송이의 얼굴이 순간 나이 들어 보였다. 은아 씨도 뺨 맞는 건 일도 아니라면서 수일을 위로했다.

“10년 전인가. 내 아는 언니는 손님이 맥주병으로 얼굴을 그었다 아이가. 지캉 사귀자 켔는데 거절했다꼬. 개새끼. 그은 새끼는 돈 몇 푼 안 내고 금방 풀리났는데, 그 언니는 얼굴이 엉망이 돼서 일도 몬 하고 술만 처묵다가 죽었다.”

“난 칼 맞는 것도 봤는데, 뭐. 오빤 남자니까 그걸로 끝난 거예요. 여자들은 정말 말도 못 해요.”

험한 경험담이 오가는데도 수일은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며칠 전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더니, 지금은 사이가 좋다 못해 친자매처럼 합이 잘 맞았다. 보기 좋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웃지 마라, 정든다. 내 리허설 갔다오께.”

은아 씨는 수일의 등을 툭 쳐 주고 대기실을 나갔다.

송이는 얼굴에 든 멍을 화운데이션으로 가리고 있는 수일의 옆으로 와 앉았다.

“오빠, 근데 두산이 오빠 엄청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날 오빠 없어진 날이요, 그때 지배인 죽이는 줄 알았잖아.”

송이는 그날 일이 떠오르는지, 몸을 떨었다.

“오빠도 조심해요. 괜히 시비 걸지 말구.”

어린 송이가 변변치 못한 자기를 걱정해 주는 게 고마웠다.

수일은 부지런히 화장으로 멍이 든 얼굴을 가렸다.

송이 다음으로 리허설에 참석한 수일을 보고 마스터는 혀를 찼다.

“머할라꼬 이래 빨리 나왔노? 사장이 쉬라 안 카드나?”

“쉬면 뭐 해요.”

“그래도 얼굴이 그기 머꼬? 화장을 해도 다 보인다.”

“보이기는 머가 보인다카노? 행님은 오바쫌 하지 마라.”

마스터가 수일에게 핀잔을 주자, 키보드 웅이가 수일을 편들었다.

수일은 억지로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어지러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귀도 먹먹했다.

다행히 무대 밖은 텅 빈 테이블만 있었다.

수일은 눈을 꼭 감았다.

노래를 겨우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수일의 안색이 안 좋은 걸 눈치챈 마스터가 술을 한 병 건넸다.

“이거라도 마시라. 니 벌벌 떠는 기 영 심상치가 않다. 그날 일 생각나서 그란 거 같은데, 술 마시면 좀 갠차나 질끼다.”

수일은 싸구려 양주병을 보고 웃었다. 마스터의 말대로 술이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수일은 독한 술을 그 자리에서 반이나 마셨다.

그러자 한기가 들었던 몸이 따뜻해졌다.

“그래 힘드나?”

수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두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도 밸의 밸일 다 겪었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 꺼도 아이다. 니도 안다 아이가.”

“네.”

“몇 년 했다 켔노?”

“18년이요.”

“그라믄 니도 산전수전 다 겪었겠네.”

수일이 흐리게 웃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 보았다.

삼락 형님 바로 직전 무대라 손님들이 많았다.

수일은 무대에 올라 첫 곡으로 <아파트>를 불렀다. 열심히 가수 윤수일을 흉내 냈고, 사모님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노래인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전주가 흘렀다.

부산에 내려와 첫 리허설 때, 두산이 보는 앞에서 부른 노래였다. 수일이 노래 부르는 동안 두산은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었다.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만은 만나지나 말 것을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