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땐 두산의 품 안이었다.
어제도 12시간을 내리 잤는데, 오늘도 거의 열몇 시간을 잠만 잤다.
수일은 그래도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두산이 자는 줄 알았는데 깨어 있었다.
멍이 들어 더 볼 것도 없어진 흉한 얼굴을 가만 보고 있었다.
“깼습니까?”
어젠 내내 반말이더니.
수일은 속으로 괜한 트집을 잡았다.
“네.”
“어지럽진 않고예?”
“네.”
“어데 이상한 데도 없고?”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산이 수일을 안은 팔을 풀었다.
아무리 수일이 말랐다 해도 178이나 되는 성인 남자였다. 그런 수일에게 밤새 팔베개를 해 주었으니, 덩치 큰 두산이라도 팔이 안 아플 리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두산은 수일이 벴던 오른팔을 빙빙 돌리며 아이고 팔이야, 했다. 들으라는 듯 연달아 앓는 소리를 내더니, 누워 있는 수일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수일이 아무 반응이 없자 팔을 내렸다.
“얼굴이 컬러풀하네. 올림픽 오륜기라 케도 믿겠다.”
실없는 농을 던지고 씩 웃었다.
“내 오줌 좀 싸고 오께요. 행님때메 억수로 참았다 아이가.”
두산은 팬티만 입은 채로 방문을 열어 두고 나갔다.
수일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추리닝 바지와 윗도리를 주워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두산의 말대로 어디는 푸르고 어디는 붉고 어디는 노랬다. 정말 인간 오륜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나마 억지로 약을 먹고 잤더니 아픔을 버티기가 좀 수월했다.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들이 파전을 굽는지 고소한 냄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행님, 찌짐에 막걸리 한잔 하까예?”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 안이 퉁퉁 부었지만 그래도 먹는 건 문제없었다. 어차피 안 먹어도 아프고 먹어도 아프니, 차라리 먹는 게 나았다.
그제 일이 생각날까 봐 수일은 라디오를 켰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 한결 나았다. TV를 볼까 했지만, 동생들 보기가 민망했다.
두산은 여전히 팬티 바람으로 거실과 방을 왔다 갔다 했다. 수일이 괜찮은지 내려다보고, 파전이 잘 되어 가나 간섭을 했다. 세숫대야에 얼음물을 담아 와 수일의 부은 얼굴에 차가운 물수건을 갖다 대 주었다.
혼자서 바쁘게 왔다 갔다 했지만, 수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젠 그렇게 눈물이 나더니, 지금은 그저 멍했다.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맞은 적이 있었던가?
수일은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조폭이었고, 수일이 설령 대들었다 해도 더 나아질 게 없었다.
그래도 적어도 도망이라도 나왔어야 했는데, 수일은 겁에 질려 벌벌 떨기만 했다.
당하기만 한 자신이 병신 같았다.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수일은 자꾸 그 방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생각 안 하려 해도 라디오를 듣다가, 밥을 먹다가, 또는 이렇게 앉아 있다가 문득, 그 방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자신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수일은 머리를 흔들고 다시 라디오를 경청했다.
그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너무 기운을 썼더니 금세 피곤해졌다. 수일은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았다.
“또 자나?”
두산이 따로 상을 차려 와 발로 방문을 닫았다.
수일은 침을 닦고 아니에요, 했다.
졸린 눈으로 두산이 찢어 주는 파전을 받아먹었다.
입 안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자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래도 수일은 아픈 내색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먹었다. 막걸리도 마시고.
두산도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내는 암만 마시도 안 취한다.”
이렇게 말하는 두산의 표정이 아파 보였다.
이틀 내내 자기를 찾으러 다니고, 온종일 수발드느라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다. 수일은 너무 미안해 고개만 숙였다.
막걸리가 참 달았다. 설탕이라도 탔는지, 꿀떡꿀떡 잘도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수일도 두산도 말없이 술잔을 비웠고, 주전자 하나가 30분도 안 돼 동이 났다.
“더 마실랍니까?”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산이 밖으로 나가 동생들이 먹던 걸 뺏어 왔다.
막걸리를 따르다가 두산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곧 눈썹을 꿈틀하더니, 수일의 발목을 잡았다.
다친 발이 곪아서 엉망이었다.
아픈 줄도 몰랐는데 언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수일은 노랗게 고름이 차 있는 발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두산이 수일의 술잔을 뺏었다. 상을 물렸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씩씩거렸다.
“가자, 병원.”
수일은 얌전히 두산의 등에 업혔다.
두산은 수일을 빨간 프라이드에 태우고, 전에 갔던 동네 의원으로 갔다.
수일의 얼굴을 보고 의사가 놀랐는지 헛기침을 했다. 간호사는 동료 간호사와 귓속말을 했다.
“보호자 분은 나가 계십시오.”
의사는 갑자기 두산을 내보냈다.
“와요?”
“병균에 감염 된 기라 격리 치료가 필요합니다.”
전염병도 아닌데 의사는 격리라는 말을 썼다.
두산은 인상을 쓰고 방을 나갔다.
의사는 두산을 내보내자마자, 수일에게 속삭였다.
“경찰에 신고해드리까예? 아이면 여 뒷문이 있는데 글로 도망가실랍니까?”
수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웃었다.
아야.
누가 봐도 두산이 때린 것처럼 보였나 보았다.
의사는 의외로 용감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어제 갔던 대형 병원에선 수일의 얼굴을 보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게다가 현철을 보고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전전긍긍하며 진료실에서 빨리 내보내고 싶어 했었다.
수일이 웃자, 의사가 궁금한 눈을 했다.
“저 사람이 때린 거 아니에요.”
“진짭니까?”
“네. 저 보호해 주는 사람이에요.”
수일의 말에도 의사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내일도 오이소. 이기 상처가 마이 곪아서 클 날 뻔했습니다. 매일 와서 소독 받고 항생제 주사도 맞으시고예. 아시겠습니까?”
“네.”
의사는 김 간호사를 방으로 부르더니, 발바닥의 고름을 짜내고 터진 곳을 다시 꿰맸다. 소독하고 칭칭 둘러 붕대를 감았다.
수일이 엉덩이에 주사 맞는 것까지 끝내자, 의사는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저 사람 아니지예?”
“네. 아니에요.”
“내일도 내가 물어볼 테이까, 잘 생각하고 대답 하이소.”
의사는 마지막까지 수일의 안위를 걱정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니 고마웠다.
두산은 영문도 모르고 밖에서 서성이다가, 수일이 나오자마자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수일이 괜찮은지 묻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수일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두산을 기다렸고, 잠시 후 두산이 안심한 표정을 하고 나와 수일을 등에 업었다.
“두산 씨, 우리 비디오 대여점 갈까요?”
수일이 두산의 등에 업힌 채 물었다.
“그라입시다.”
빨간 프라이드를 비디오 가게 앞에 세우고 두산은 또 수일을 업었다.
비디오방 주인은 두산을 알아보고 환하게 웃다가, 수일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행님, 요새 재밌는 거 있습니까?”
“어? 어. 야, 야한 거 찾나? 야한 거는 밸로 안 들어왔는데.”
주인은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조금 전 그 의사처럼 두산이 수일을 때린 줄 아나 보았다.
수일은 두산의 등에서 내려와 한 발로 총총 뛰면서 비디오테이프를 훑었다. 뛸 때마다 부은 얼굴이 흔들려 아팠지만, 그렇다고 내내 업혀 있을 순 없었다.
두산이 말했던 <배트맨>을 먼저 집고, 그리고 미키 루크가 나오는 <와일드 오키드>를 집었다. 뒤에서 수일을 가만 지켜보던 두산은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거 한 개도 안 야한데.”
수일은 두산의 말에 얌전히 비디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총총 뛰어서 소년 만화가 있는 칸으로 이동했다. 두산은 수일이 넘어질세라, 어슬렁거리며 수일의 뒤를 살폈다.
“행님, 요새 야한 만화 없습니까? 해적판이면 더 좋고.”
“그거? 잠시만 기다리 바라.”
비디오 가게 사장은 창고 문처럼 생긴 곳을 열고 들어가 박스를 뒤졌다. 단골들에게만 주는 특별 서비스라며, 조잡하지만 제법 야한 일본 만화 해적판을 꺼내 왔다.
“숙소 갖고 가믄 난리 나겠네.”
두산은 휘리릭 페이지를 넘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수일은 그 옆에서 <드래곤볼>을 집었다.
까만색 비닐봉지에 비디오와 만화책들을 담아 준 가게 사장은 웃으며 문밖까지 배웅했다.
밖에 나오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수일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비가 흩날리는 걸 가만 바라보았다. 얼마 멀지 않은 길이라 금방 숙소에 도착했지만, 두산은 수일이 비를 보게 내버려 두었다.
그때, 검은 세단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저거 사장님 찬데?”
두산은 프라이드를 옮겨 세단이 주차할 수 있도록 했다.
두산의 말대로 사장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하이고, 무슨 비가 이래 오노?”
수일은 얼른 차에서 내려 90도로 인사를 했다.
“니 개안나? 아이다. 들어가자.”
사장은 괜찮냐고 물었다가, 수일의 얼굴을 보고 아니다 했다.
두산은 수일의 발이 또 덧날까 수일을 부축했다. 아니, 수일의 허리를 한 손으로 안아 들었다. 참 힘이 좋았다.
사장은 아직 진행 중인 술자리에 끼어들어 동생들에게 막걸리를 받았다.
“두사이하고 수일이도 여 온나. 한잔 받아라.”
두산은 사장의 맞은편에, 수일은 두산의 옆에 앉았다.
한창 잘 마시고 놀던 동생들은 사장의 등장에 김이 팍 샌 모양인지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두사이가 신신당부를 안 했나. 니 손님 안 받는다꼬. 사실 두사이 말이 아니더라도, 내도 그 조폭 새끼는 받지 말라 켔다. 가가 전적이 있단 말이다. 근데 그 지배인 개새끼가 그 조폭 새끼한테 밉보인 기 있는지 지멋대로 올리보낸 기다. 수일이 니가 고생이 많았겠지마는 그래도 내는 원망하지 마라. 알겠제?”
사장은 지배인이 제멋대로 한 짓일 뿐 자기가 시킨 건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하는 내내 어찌나 두산의 눈치를 보던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들추는 사장이 싫었지만, 수일은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두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사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사장은 연신 막걸리에 파전을 먹었다.
그러다가 지갑을 열어 자기 젊었을 적 사진을 내밀었다.
“함 바 바라. 내는 몰랐는데, 갱자가 그라대. 수일이 니가 내 에릴 적하고 닮았다꼬.”
사진 속의 사장은 숱이 풍성한 검은 장발을 하고 있었다. 햇볕에 잘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짙은 쌍꺼풀을 한 남자.
지금의 수일보다 백배는 더 건강하고 잘생겨 보였다.
두산이 옆에서 빼꼼 들여다보더니 아인데? 했다.
“수일이 행님하고 사장님하고 한 개도 안 닮았다.”
“머가 안 닮아? 잘 바 바라. 야가 그 머시고 윤수일이처럼 화장하면 내캉 진짜 마이 닮았다.”
“사장님이 훨씬 잘생기셨어요.”
수일이 이렇게 말하자 사장이 으하하하, 하고 몸이 뒤로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내가 에릴 적엔 배우 하란 소릴 진짜 마이 들었다 아이가. 근데 사내새끼가 배우 해서 머 하겠노? 건실하게 돈을 벌어야지.”
사장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수일이 니도 잘생깄다’ 하면서, 수일의 부어서 엉망인 오륜기 같은 얼굴을 칭찬했다.
그렇게 사장은 한 시간여를 혼자 떠들다 갔고, 동생들은 일제히 욕을 뱉었다. 사장에게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반응이 사나웠다.
두산은 사장을 배웅하고 돌아와, 비디오방에서 빌려온 야한 만화책을 풀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수일은 그 옆에서 <드래곤볼>을 꺼내 읽었다. 막내 영수가 야한 만화와 <드래곤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드래곤볼>을 집었다. 작은 목소리로 이거 억수로 재밌습니다, 했다.
수일은 피식 웃고는 책장을 넘겼다.
다른 동생들은 두산이 빌려 온 성인 만화책에 흠뻑 빠졌다. 다들 마른침을 삼키며 직인다, 를 외쳤다.
정작 두산은 자기가 빌려 와 놓고 관심이 없는지 모로 누워 볼 것도 없는 TV만 봤다.
수일이 그런 두산을 발로 슬쩍 건드렸다. 두산이 돌아보았다. 아닌 척 만화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치한 장난이지만, 그러고 싶었다.
두산이 씩 웃더니,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수일은 만화책을 좀 더 보다가 두산을 뒤따랐다.
방문을 여니, 두산은 벌써 요를 깔아 놓고 옷을 다 벗은 채 수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일도 옷을 벗었다.
몸은 태욱한테 맞아서 멍이 들었고, 얼굴은 손님에게 맞아서 다 터졌다. 게다가 발바닥은 덧나 고름을 짜내고 붕대까지 감았다. 성한 곳이 없는 수일을 보고도 두산은 하고 싶은지, 수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일은 두산의 무릎 위에 앉았다.
두산이 입을 맞춰 왔다. 입술을 조금 세게 비비자 아팠다. 수일이 인상을 쓰면서 입술을 떨어트렸다.
“밥은 잘도 묵드만은.”
두산이 투덜댔다.
“밥이랑 같아요?”
“다를 건 또 머꼬? 그냥 밥 묵는다 생각하면 되지.”
두산은 이렇게 말하며, 수일의 입술을 살짝 빨았다.
“맛있다. 내 밥 여 있었네.”
수일도 두산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물어 살짝 빨았다.
“맛있어요.”
제 입으로 말하고도 부끄러워, 더할 색깔도 없는 컬러풀한 얼굴을 붉혔다.
두산은 입꼬리를 올리며 수일의 입술을 자기 입술로 갈랐다. 수일은 잘 벌어지지도 않는 입을 벌리고 두산이 혀를 넣을 수 있도록 했다.
두산은 길게 혀를 빼물고, 좁은 입술 사이로 비집어 넣었다. 수일이 쪽, 하고 혀를 빨자 두산은 두 팔로 단단히 수일을 안았다.
혹시라도 힘으로 수일을 아프게 할까 두산은 갖은 노력을 하며 수일의 입을 이리 물고 저리 물었다. 혀를 얽었다가, 수일이 인상을 쓰면 다시 뺐다. 깨지기 쉬운 유리라도 다루듯, 수일을 어루만졌다.
두산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차갑던 수일의 몸이 뜨거워졌다.
동생들이 나가는 소리에 수일은 두산의 품에서 벗어나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갑니까?”
“아뇨. 우리 비디오 봐요.”
“먼 비디오?”
“<배트맨>.”
두산은 다른 걸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수일이 보고 싶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배트맨> 말고 야한 비디오 안 볼랍니까?”
“그냥 <배트맨> 봐요.”
“<배트맨>은 난중에 봐도 되는데. 그냥 야한 거 보지?”
“본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들리지도 않게 중얼거리며, 수일은 기어서 거실로 나갔다.
“알아서 안아다 줄 낀데 그새를 몬 참고 기어간다.”
뒤에서 두산이 구시렁댔다. 수일은 입을 삐죽거리며 <배트맨>을 비디오테크 안에 밀어 넣었다.
영화사 오프닝이 나오는 동안, 두산이 방 안에서 요와 이불을 가져와 깔았다.
“행님은 몸이 찹아서 고마 있으믄 탈난다. 이거 덮고 있어라.”
얌전히 시키는 대로 이불로 들어가자 두산이 뒤로 와 앉았다.
수일은 자연스레 두산의 몸 위로 올라갔고, 두산은 그런 수일의 마른 어깨에 턱을 괴었다.
억수로 재밌다던 <배트맨>이 그렇게 재밌는 줄 모르겠던 수일은 연신 하품을 했다. 그러다 괜히 두산의 몸에 체중을 싣고 손으로 장난을 쳤다.
제 다리보다 두꺼운 팔에 난 털을 잡아 뜯자, 두산이 웃었다.
“재미없습니까?”
“네.”
“쪼매만 참으면 억수로 재밌는데.”
“쪼매, 언제요?”
“10분?”
“그냥 야한 비디오 볼래요?”
두산이 웃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내 좀 일나께요.”
수일을 조심히 내려놓고, 두산은 TV장 서랍을 열었다. 야한 비디오, 아니 포르노를 꺼내 <배트맨>과 바꿔 틀었다.
“현관문 잠가요.”
“와요?”
“갑자기 누가 들어올 수도 있고….”
수일의 말에 두산은 잔말 않고 현관문을 잠갔다.
선 김에 입었던 옷을 모두 훌러덩 벗어 버린 두산은 수일이 입고 있던 옷도 하나씩 벗겼다.
옷을 벗자 여름인데도 한기에 소름이 돋았다. 두산이 손바닥으로 수일의 팔을 쓱쓱 문질러 열을 내 주고, 뜨거운 몸으로 안았다. 그렇게 둘은 알몸인 상태로 마주 보고 앉아 서로를 껴안았다.
TV 화면에서 노골적인 애무 장면이 나왔다. 많이도 돌려 본 모양인지 화질이 좋지 않았다.
두산은 TV는 쳐다보지도 않고, 수일의 멍들고 앙상한 몸을 하나하나 입술로 더듬었다. 조심스럽던 두산의 입술이 조금 거칠어졌다. 이틀째 껴안고 가벼운 키스만 했으니 안달이 날 만도 했다.
두산은 혀로 수일의 쇄골을 가르고, 그 혀를 가슴으로 내렸다. 살살 유륜 주위를 돌려 핥자 수일은 이를 앙다물고 두산의 어깨를 잡았다.
얼른 빨아 주면 좋으련만 두산은 계속 혀를 돌려 가며 장난을 쳤다.
수일이 못 참고 낑낑대며 두산의 등을 손톱으로 긁어내리자, 그제야 두산은 입꼬리를 올리며 수일의 가슴을 쪽쪽 빨기 시작했다.
“읏!”
자극에 몸을 떨었다. 츄릅, 소리 나도록 번갈아 가슴을 빨아올리니 몸이 절로 비틀렸다. 수일은 두산을 등을 마구 긁어 댔다.
두산은 가슴에서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어 입을 맞췄다. 수일은 밭은 숨을 내쉬며 입을 벌려 두산의 뜨거운 혀를 받았다. 좀 전까지 잘 벌어지지도 않던 입이 어찌나 쉽게 열리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키스하는 동안 수일은 한 손으로 두산의 발기한 성기를 잡았다. 당장이라도 빨아 주고 싶은 걸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애쓰는 수일을 두산이 말렸다.
“내가 알아서 하께.”
“그래두.”
수일이 미안해하자, 두산은 입을 맞추며 수일을 달랬다.
두산의 입술은 목덜미를 타고 내려갔다. 쪽쪽, 젖은 소리를 내며 목덜미와 어깨를 애무하던 두산은 몸을 굽혀 수일의 허리를 단단히 안았다. 이번엔 배꼽부터 아랫배를 핥아 내렸다.
순간 수일의 등이 휘어 꺾였다. 입술 새로 신음이 절로 흘렀다. 수일은 앓는 소리를 냈다. 두산은 멈추지 않고 혀와 입술로 아랫배를 애무하다가, 숱이 적은 음모를 갈랐다. 이로 잡아 뜯고 입술을 비볐다.
수일은 뒤통수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등을 휘었고, 바르르 몸을 떨었다. 자극에 연신 신음을 뱉으며 간신히 뒤로 팔을 짚어 몸을 지탱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제 아랫배를 핥아 내리는 두산을 보고 싶어 눈을 감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때, 두산이 수일의 성기를 입 안에 넣었다. 그 감촉에 놀란 건 수일이었다.
절대 입으로 해 줄 것 같지 않던 두산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일의 성기를 입에 물고 사탕을 빨 듯 압력을 다해 빨아올렸다. 수일은 두 손으로 이불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두산이 빨아올릴 때마다 아랫배가 요동쳤다.
세 번 빨아올렸을까, 수일은 몸을 마구 비틀다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사정했다.
너무 빨리 사정하는 바람에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수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은 정액을 모두 뽑아내겠다는 듯 두산은 사정한 수일의 성기를 몇 번 더 빨아 주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두산은 흥분으로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일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살살 달래며, 입 안에 든 정액을 삼켰다.
“무슨 맛이 이렇노?”
이렇게 말하며 미간을 구겼다.
뱉어 낼 줄 알았는데, 두산은 보란 듯 혀로 싹싹 핥아 꿀꺽 삼켰다.
그러다 수일을 향해 능글맞게 웃으며,
“근데, 머 이래 빨리 쌉니까? 문제 있는 거 아이가?”
했다. 그 말에 수일은 얼굴을 붉혔다.
“그런 말 하지 마요. 창피해 죽겠으니까.”
“창피하기는. 내가 억수로 잘 빨았는가베.”
놀리는 건지 달래는 건지 모를 말에 수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두산이 소리 내 웃으며,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일의 손을 잡았다.
“그라지 말고. 얼굴 안 보인다. 내 쫌 보고.”
자기 좀 보라고 하는 두산의 말투가 더없이 다정했다.
“키스해 줘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수일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두산은 수일의 말에 당장 가슴으로 당겨 안고 입술을 맞댔다. 입술을 맞대고 혀를 강하게 얽어 물었다. 두산의 혀가 수일의 입 안 구석구석을 핥았지만, 거짓말처럼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혀가 수일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그 뜨거운 것이 상처를 훑고 갈 때마다, 수일은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수일은 제 입 안으로 깊게 들어온 두산의 혀를 뿌리까지 물었다. 마치 펠라티오를 하듯, 길게 빼문 두산의 혀를 입술로 잡고 리듬을 줘 가며 아래위로 빨았다. 두산이 못 참겠는지 수일의 입술을 삼켰다. 큰 입 안에 가두고, 쪽쪽 빨아올렸다.
숨이 찼던 수일은 고개를 비틀었고, 두산은 수일의 입술을 쫓아와 다시 물었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두산의 입술을 이로 물어뜯었다.
두산이 아아, 하고 맞닿은 입술 새로 신음을 흘렸다.
놀란 수일은 두산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아랫입술에 피가 맺혔다.
“많이 아파요?”
수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두산은 대답 대신 키스를 했다.
쪽쪽 몇 번이고 수일의 입술을 머금었다가 빨아올렸다. 혀에 피 맛이 났다. 수일은 자기 입 안이 터져 그런 건지, 아니면 두산의 입술이 터져 그런 건지 몰랐다. 한참을 입술을 맞대고 서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수일은 손가락으로 자기가 물어 피가 나는 두산의 입술을 슬쩍 건드렸다.
“강새이 새끼도 아이고, 우찌 이래 물어쌌노?”
키득거리며 두산은 이를 드러내고 멍멍, 하고 짖었다.
그러고 보니 어깨의 문 곳도 수일의 잇자국이 나,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수일은 괜히 미안했다.
멍든 어깨를 쓰다듬다가 뽀뽀를 했다.
두산이 웃었다.
TV에선 여자가 절정에 올라 고양이처럼 울었다. 두산은 화면을 슬쩍 돌아보더니 가시나 시끄럽네, 했다. 리모컨을 들어 비디오를 끄고 나자 삐이이, 하는 화면 조정 소리와 빗소리만이 들렸다.
빗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두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잇자국을 손가락으로 지분거리며 가만히 빗소리를 들었다.
두산이 손을 뻗어 땀으로 젖은 수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니는 와이리 얼라같노?”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두산이 말했다.
거의 띠동갑만큼 어린 남자에게 애 같다는 소리를 듣자, 수일은 웃음이 났다.
“나 그렇게 철없는 사람 아닌데.”
“그게 아이고, 물가에 내논 아 맨키로 불안타꼬. 눈에만 안 보이면, 어데 가서 주터지가5) 온다 아이가.”
“…내가 때리고 싶게 생겼나 봐요.”
수일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앞으로 니 몸에 손대는 새끼들 내가 다 직이삐끼다.”
말이라도 그래 주는 게 고마워, 수일은 두산을 꼭 껴안았다.
슬슬 눈이 감겼다.
이러다 거실에서 잠이 들지도 몰랐다.
수일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먼저 옷을 입었다. 두산은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누워 수일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두산의 삐삐가 울렸다. 출근할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삐삐를 확인하고도 안 가고 버티는 두산을 수일이 떠밀었다. 괜히 자기 때문에 일을 못 하는 게 싫었다.
“어데 아프다 싶으면 삐삐 치고. 머가 묵고 싶어도 삐삐 치고. 알았습니까?”
“네. 얼른 가요.”
“아이다, 그냥 같이 있으까?”
“나 괜찮아요. 두산 씨 가면 바로 잘 거란 말야.”
“내가 재아주께요.”
“애도 아니고. 혼자 잘 수 있어요.”
수일은 아무리 밀어도 안 밀리는 두산을 겨우 밖으로 내보냈다.
“운전 조심해요.”
“이라니까 꼭 부부 같네.”
두산이 씩 웃었다.
“뽀뽀는 안 해 주나?”
두산은 능청스레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아무리 건물이 골목에 있어도 밖이었다. 지나가다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두산은 기어코 수일에게 뽀뽀를 받았다.
멍이 들고 부어오른 얼굴은 제아무리 미스 코리아라도 예쁠 리 없건만, 두산은 수일에게 예쁘다고 말하고 차에 올랐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관 앞을 지키고 섰던 수일은 집으로 들어와 문단속부터 했다. 거실에 펼쳐 놓은 요와 이불을 질질 끌어 방으로 들여놓고, 비디오테크에서 포르노를 꺼내 서랍에 넣어 두었다.
집 안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찢어진 발바닥과 맞아서 터진 입 안과 얼굴이 아팠고, 아픈 줄도 몰랐던 태욱에게 맞은 전신마저 아팠다.
수일은 혼자 남아 훌쩍훌쩍 울었다.
가지 말라고 할걸.
후회하며 눈물을 훔쳤다.
두산이 나가고 20분쯤 지나 집으로 전화가 왔다.
수일은 울어서 잠긴 목을 가다듬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머 이리 늦게 받노?
세 번 만에 받았는데, 늦게 받았다고 투덜대는 두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수일은 목이 멨다.
대답도 못 하고 울고만 있으니 수화기 너머에서 지금 간다, 했다. 수일은 두산이 보지도 못할 텐데,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화를 끊고 바로 밖으로 나가 두산을 기다렸다.
비는 흩날리듯 내렸고, 수일은 벽에 붙어 서서 두산의 차가 들어올 골목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이트와 집은 차로 10분 거리였지만, 이제 막 출근했으니 볼일도 있을 터였다. 그래도 집 안에 혼자 있기 싫었던 수일은 새벽에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렸던 그 골목을 떠올리며 두산을 기다렸다.
참 신기했다.
왜 자꾸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걸까? 전혀 닮지 않았는데.
수일은 다 늙어 주책이라며, 혼자 웃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빨간색 프라이드가 골목 어귀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커다란 두산이 작은 차에서 내리자 차가 출렁거렸다.
내리자마자 밖에 나와 선 수일을 보고, 두산은 인상을 찌푸렸다.
“머 하러 나와 있노? 감기든다.”
그러다가 눈물을 닦는 수일을 보고 웃었다.
“하이고, 우리 윤수일 씨, 이래 눈물이 많아서 우짜겠노?”
큰 손으로 수일의 마른 몸을 꼭 끌어안았다.
수일은 그대로 두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두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을 휘어 웃으며, 수일의 적극적인 입맞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수일은 입술을 떼고 두산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두산이 오자 안심이 된 수일은 갑자기 허기가 졌다. 배에 거지가 들었는지,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 배고파요. 짜장면 먹고 싶은데.”
“드가입시다. 나는 짬뽕 먹을란다.”
두산은 수일을 안고 들어가 바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참 삼락 아재가 내일 낮에 병문안 온다 카드라.”
“그냥 오시면 되는데.”
“내가 오지 말라 켔거든. 행님 몸도 안 좋고 하니까 난중에 오라꼬.”
그러고 보니 사장을 제외하곤 아무도 숙소를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뻔질나게 1층으로 와서 밥을 얻어먹고 가던 정수도, 수일을 그렇게 챙기던 마스터도 없었다.
수일은 두산이 고마웠다.
그게 누구든 보여 주기 싫은 모습이었다. 싸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남자 손님을 받으러 갔다 맞은 거라, 더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두산 씨.”
“와요?”
“나 좋아하는 거 맞죠?”
수일의 물음에 두산이 씨익 웃었다.
“우찌 알았지?”
수일은 그 말에, 저 웃음에,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말아 물었지만 톡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너무 맞아서 눈물샘이 고장 난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눈물이 나올 리가 없었다. 수일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에헤이, 또 운다. 울지 말고 이리 온나.”
두산이 팔을 벌렸다.
고작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두산이 멀게 느껴졌다. 수일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울고만 있자, 두산이 와서 수일을 안았다.
“이래 우니까 배가 고프지.”
수일은 두산에게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왜 자기에게 이렇게나 잘해 주는지 몰랐지만, 두산이 너무 좋았다.
두산에게 첫 번째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부산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수일은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