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81)

악몽을 꿨다.

수일은 여전히 문신한 남자의 방에 있었다.

남자가 침을 뱉고 수일을 사정없이 때렸다.

꿈에서조차 너무 아파서, 수일은 남자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다.

맞아서 죽는 게 이런 거구나, 꿈에서조차 수일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수일은 끙, 하고 몸을 일으켰다.

겨우 눈을 뜨고 시계를 본 수일은 깜짝 놀랐다. 오후 4시였다. 12시간을 내리 잠잔 모양이었다.

대기실 거울에는 사람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진 검푸른 감자가 서 있었다.

어제 맞은 얼굴이 시커멓게 부어오르고 눈까지 멍이 들었다. 얼굴은 손댈 수도 없을 만큼 아팠고, 어찌나 부었는지 입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맞았는데 신기하게도 찢어진 곳은 없었다.

물이 마시고 싶었던 수일은 손바닥에 물을 담아 혀로 겨우 목을 축였다.

더 있으면 오픈 준비하는 직원들을 만날 것 같아, 수일은 서둘러 무대복을 챙겨 들고 비상구를 통해 1층으로 나갔다.

길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수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돌아보며 저들끼리 귓속말을 했고, 누구는 뚫어지게 쳐다봤다. 못 볼 걸 본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하늘도 파랬다.

수일과 상관없이 세상은 잘도 돌아갔다.

터벅터벅 어딘지도 모르고 걷다가,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수일에게 말을 걸려다가, 얼굴을 봤는지 입을 닫았다.

라디오 소리가 커졌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숙소에 내렸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동생들이 수일의 얼굴을 보고 난리를 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고.

수일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잠겨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숙소는 텅 비어 있었다.

또 쌈질이라도 하러 갔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입도 안 벌어지는데 무얼 먹을 것이며, 먹을 만한 걸 찾는다 한들 다 터지고 찢어진 입 안에 음식을 넣을 수도 없었다.

오늘뿐 아니라 한 삼 일은 무대에도 설 수 없을 것 같았다. 손님이 이렇게 만든 거니, 사장도 뭐라고 하진 않을 터였다.

수일은 이렇게 생각하며 피 묻은 셔츠를 까만 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세탁소가 어딘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무대복 재킷은 검은색이라 티는 안 났지만, 그래도 피가 묻었다. 드라이를 줘서 깨끗하게 만들고 싶었다.

수일은 당장 세탁소로 가려다 피곤해서 말았다. 배가 고파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이불을 깔고 누워 라디오를 들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몰골로 어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라디오 DJ들이 사연을 읽어 주며 낄낄대고 웃었다. 재밌는 사연이 나오면 수일도 같이 웃었다. 웃으면 터진 얼굴이 또 아파서 수일은 아야, 하고 얼굴을 잡았다.

그러고 있는데, 사람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일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다.

쿵쿵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당연히 두산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자기를 보고도 무시했던 새끼.

“행님!! 언제 들어왔습니까?”

현철이었다. 수일은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현철이 이불을 들쳤다. 수일의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지만, 대신 근심이 가득했다.

“하이고야, 십년감수했다. 가입시다, 병원.”

수일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을 달싹일 수가 없었다.

현철은 수일을 힘으로 일으켜 세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거실에 있던 동생들이 수일을 보고 웅성거리면서 눈으로 뒷모습을 쫓았다.

현철은 수일을 빨간색 프라이드에 태운 뒤 잠깐만예, 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 골목 끝에서 정수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러다 프라이드에 사람이 타고 있는 걸 보고 멈춰 섰다. 정수는 두 손을 눈썹에 올리고 차창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댄 채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모른 척하기 뭣해서 수일은 창문을 내렸다.

수일을 보자 정수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더니, 곧 반가운 얼굴을 했다.

“와, 행님! 어데 있었습니까? 어제부터 밤새 찾아댕깄다 아입니까. 진짜 사람 죽겠다.”

그러고 보니 정수의 얼굴이 퀭했다.

왜요, 라고 물어보려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두사이가요, 아이다. 찾았으니 됐다. 어데 가십니까?”

“병원 간다. 니도 그만 드가서 자라. 수고했다.”

현철이 대신 대답하고, 차에 올랐다.

“조심히들 다녀오이소.”

“오야.”

현철은 병원으로 가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숨을 푹푹 쉬며, 수일을 슬쩍 돌아보기만 했다.

터진 곳만 치료하면 되는데, 굳이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뇌진탕은 아닌지, 어디 부러진 데는 없는지. 엑스레이에 머리 CT까지 찍었다.

돈이 많이 드는 검사에 수일은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상처만 빼곤 다 괜찮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나왔다. 의사는 입원 치료를 권했지만 수일이 고개를 저었다. 의사도 딱히 잡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얼굴만 치료하고 그냥 가라고 했다.

수일을 담당했던 의사와 간호사 모두 수일의 얼굴과 현철을 번갈아 보며 조금 귀찮아하는 표정을 했다. 꼼꼼하게 상처를 소독하고 소염제와 진통제가 든 약 일주일 치를 받았다.

“행님, 전화 한 통만 하고 오겠습니다. 잠깐 의자에 앉아 계십시오.”

현철은 수일을 병원 대기실에 앉혀 두고 공중전화로 향했다. 등을 돌리고 서서 한참을 통화했다.

수일은 병원에서도 인기인이었다. 다들 한 번씩 쳐다보고 갔다. 나이 드신 노인들은 혀를 차고 어데가 아픈교? 하고 물었고, 마이도 맞았다, 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얼른 현철이 통화를 끝내고 자기를 여기서 데리고 나갔으면 싶었다. 그런데 전화를 끝내고도 현철은 수일을 대기실에 그대로 앉혀 두었다.

“행님,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이번엔 화장실이었다.

수일은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약이 든 봉지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 누군가 손을 잡아채는 바람에 수일은 고개를 들었다.

“가자.”

두산이 어떻게 여길 왔나 몰라 수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파서 헛것을 본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어제 자기를 외면한 두산이 얄미워 잡은 손을 쳐 냈다.

화를 낼 줄 알았더니, 두산은 말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표정이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갔던 현철이 언제 나왔는지, 수일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행님, 집에 가입시다.”

두산이 말했다면 따라나서지 않았겠지만, 현철이 부탁하니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달리 갈 곳도 없었고.

수일은 앞에 선 두산을 슬쩍 밀치고 일어나 현철을 쫓아갔다. 뒤에서 따라오는 게 느껴지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

혹시나 두산이 앉을까 봐, 현철이 빨간 프라이드에 오르는 것을 보고 수일은 그 옆자리에 앉았다. 현철인 뭐가 그리 답답한지 크게 한숨을 쉬더니 창문을 내렸다.

차창 밖으로 두산이 은색 봉고로 향하는 게 보였다.

“숙소에서 보자.”

두산은 대답 없이 은색 봉고에 올랐다.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현철은 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혼자 아이다, 하고 말았다. 그러길 여러 차례, 수일을 흘끔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행님, 어제 난리났었습니다. 행님 없어져가지고.”

“…….”

“두사이가요, 행님 올리보낸 거 알고 지배인을 우찌나 뚜까팼는지 실리갔다 아입니까. 다리도 뿔라지고 팔도 하나 뿔라지고. 그라고, 행님 그렇게 만든 그 새끼도예. 말해 머하노. 그 새끼 안 죽은 기 다행이다.”

현철은 여기까지 말하고 또 한숨을 쉬었다.

수일은 현철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다. 원래도 말에 과장이 심한 지역이 아니던가.

아마 때린 건 맞겠지만, 어디를 부러트리거나 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던 두산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차분한 그 표정. 두산은 그때 수일을 때린 남자가 있는 호텔 방으로 올라가던 중이었나 보았다.

그것도 모르고 병원에서 손을 쳐 냈다. 자기를 무시하는 줄 알고, 맞아도 싼 놈이라고 생각하는 줄 알고 괜히 서럽고 얄미웠다.

현철의 말에 비참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뭐가 좋다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야.

수일은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것도 아팠다.

“그랬는데 행님은 안 보이제, 두사이는 미치삤제. 하이고, 마. 내하고 동생들하고 나이트 아들까지 전부 행님 찾으러 안 댕깄습니까. 말도 몬 한다.”

아까 달려오던 정수도 지금 옆에 앉아 있는 현철도 수일을 찾으러 다닌 모양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현철에게도 동생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잇값도 못 하고 나이트 골방에서 자빠져 자는 저 하나 때문에 밤새 고생했을 생각을 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수일은 현관 앞에서 두산이 탄 봉고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10분을 기다려도 20분을 기다려도 봉고가 오지 않았다.

아까 손을 쳐 낸 것 때문에 화가 났나?

수일은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 안에 침이 고였고, 배에선 꾸르륵 난리가 났다. 수일은 아픈 것도 잊고 일단 동생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앉았다.

막내가 수일의 앞에 밥과 수저를 놓아 주었다. 계란말이에 참치 김치찌개였다. 수일은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입 안이 아파 죽을 것 같았지만, 목구멍으로 잘도 밥이 넘어갔다. 그렇게 밥을 먹고 김치찌개를 퍼 넣자, 아물지 않은 입 안에서 다시 피가 났다. 피 맛이 느껴졌지만 수일은 숟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식욕이란 게 참, 사람을 우습게 만들었다.

손님이 뱉는 침을 입으로 받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죽을 만큼 맞아 놓고도 밥 생각이 나다니.

수일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이런 생각이 언뜻 스치자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 급히 욕실로 뛰어가 먹은 것을 도로 게워 냈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눈앞이 흐려졌다.

수일은 괜찮냐고 물어 오는 동생들을 뒤로하고 방으로 가 누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수일은 어머니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에도 없었고, 밤무대 밴드 멤버인 아버지 탓에 중학교 때까진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수일에겐 다정했고 꼭 친구 같았지만, 정작 아버지 노릇은 못 했다.

항상 돈이 궁했고, 생활이 궁핍했다.

할머니와 살 땐 적어도 굶진 않았는데, 아버지와 살면서 수일은 늘 배가 고팠다. 누가 밥을 사 주면 언제 굶을지 모르니 급하게 숟가락을 들었다. 없어 보일까 봐 걱정하는 건 진짜로 굶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수일이 여기 부산에 내려온 것도 배고픔 때문이었고.

수일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원망했다.

자기를 이렇게 망쳐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밥만 제대로 먹였더라면, 수일이 이런 곳까지 내려와 이런 수모를 겪지는 않았을 텐데.

흐느껴 울다가 혹시나 소리가 새어 나갈까 이불을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입에서 피가 나든 말든 상관없었다. 얼른 울음이 그치길 속으로 바라며, 더 들어갈 자리가 없을 때까지 입 안에 이불을 밀어 넣었다.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현철이려나.

제발 이불만은 들추지 말았으면 했다.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일 나라. 죽 사 왔다.”

두산의 목소리를 듣자, 서러움이 더 깊어졌다. 아무리 참으려 노력해도 울음소리가 커지기만 했다.

누군가 죽었어도 이리 울까 싶을 만큼 수일은 통곡을 했다.

두산은 이불을 들추지도, 그렇다고 방을 나가지도 않았다. 수일이 울게 두었다.

목이 쉬고 눈물도 마를 때쯤 두산은 이불을 획 채 갔다.

수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미안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두산이 사과했다. 수일은 다시 울음이 터졌다.

“어데서 그래 눈물이 나오노? 그만하고 일 나라. 내 밥 채리오께.”

두산은 이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떠지지도 않는 눈을 하고, 수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제 입에 들어갔던 이불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핏물은 빨기 어려울 텐데.

수일은 이불 빨래 걱정을 하며 눈물을 닦았다.

두산은 작은 밥상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발로 문을 닫고, 수일의 앞에 밥상을 내려놓았다. 죽이라더니, 삼계탕이었다.

“단백질 보충.”

두산이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반가워 수일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아프던 얼굴이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두산은 손으로 닭을 찢어 후후 불고 수일의 입 안에 넣어 주었다. 목이 막힐까 봐 국물을 먹이고 물을 먹였다.

수일은 아이처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그러다가 또 울었다.

두산은 그 큰 손으로 수일의 눈물을 닦아 주고, 밥도 먹이고 물도 먹였다. 손이 바빴지만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약까지 먹고 나자 졸음이 몰려왔다. 수일은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두산은 그런 수일을 눕히고 새 이불을 꺼내 덮어 주었다.

“자라. 내 밖에 있으께.”

방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두산이 내도 밥 좀 주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수일은 잠이 들었다.

이번엔 악몽 대신 돌아가신 할머니 꿈을 꿨으면 했다.

이 세상에서 수일을 제일 아껴 주고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

꿈에서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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