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물에서 물고기들과 어울려 놀았다.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모양이 꼭 인어 같았다.
물속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따뜻하고 귀가 먹먹했다.
멀리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겨우 잠에서 깬 수일은 기어서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행님, 먼 전화를 이리 늦게 받노?
두산의 다급한 목소리에 수일은 피식 웃었다.
“잠깐 졸았나 봐요.”
- 먼 일 있는 줄 알았다 아이가.
나이트에서 전화를 거는지 수화기 너머가 시끄러웠다.
- 내 지금 드가낀데 머 먹고 싶은 거 있습니까?
수일은 문득 복숭아 생각이 났다.
“복… 숭아요.”
- 머요? 안 들린다. 머라꼬?
주위에 누가 있는 모양인지, 두산은 수일과 통화하면서 저쪽 상대와도 얘기 중이었다.
“복숭.”
- 잠시만, 행님.
두산은 수일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누군지 몰랐지만, 너머로 두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 통닭 사 가까? 통닭?
“네. 통닭 사 와요.”
두산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제 할 말만 하고 뚝 끊기는 전화가 조금 야속했다.
두산과의 통화로 정신이 들자 고통이 밀려왔다.
발바닥이란 게 참 신기했다. 고작 세 바늘 꿰맸을 뿐인데, 온몸이 아팠다. 찢어진 상처가 욱신거렸고, 치통이 온 듯 이가 아팠다.
입고 잤던 반팔 티셔츠가 땀에 젖어 축축했다.
수일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한쪽 발만 짚고 다친 발은 뗀 채 껑충거리며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보리차를 한 잔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새벽 1시, 시계에서 종이 울렸다.
뻐꾸기는 없었지만, 참으로 오래된 시계였다.
수일은 거실 바닥에 앉아 낮에 읽다 만 무협지를 읽으려다 옆에 놓인 야한 만화에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무협지였지만, 여긴 여자와 섹스하는 장면이 더 많았다.
동생들 있는 앞에선 왠지 나잇값 못하는 것 같아 손도 안 댔으나 수일도 조금 궁금했다.
아무도 없는데도 수일은 주위를 먼저 둘러보고, 슬쩍 책을 집어 폈다.
두산이 좋아하는 가슴 큰 여자들이 나와 남자만 보면 아래를 열었다. 무림의 고수들이 여자만 보면 아랫도리를 휘둘렀다.
이게 뭐라고. 수일은 책을 도로 덮고 자신이 읽던 무협지를 다시 폈다.
갖은 고생 끝에 정상 궤도에 오르려던 찰나, 사부의 배신을 알게 된 주인공이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주인공은 사부가 자기를 죽이려 보낸 자들을 모두 처치하고 피 칠갑을 한 채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다들 저 정도 부상이면 죽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주인공은 살았다.
수일은 가슴을 졸이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겼다.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에헤이, 행님, 혼자 있는데 문단속 안 하나? 여 동네에 또라이들 꽉 찼다.”
제일 또라이 같은 두산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자 수일은 웃음이 났다. 여기 조폭들 숙소라고 소문이 나서 좀도둑도 안 온다고 동생들이 말했었는데.
수일이 자기를 보고 웃자 두산도 씨익 웃었다.
“내 보이 그래 좋나?”
능글맞게 웃으며 신발을 벗어 던진 두산은 수일의 옆으로 와 앉았다.
손에 통닭이 들려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이 할매가 통닭 하나는 기가맥히게 튀깁니다.”
두산은 종이봉투를 찢어, 안에 든 통닭을 꺼냈다.
“근데 복숭아는 와요? 이 시간에 다 문을 닫아서 몬 샀다 아이가. 낮에 말하지.”
수일의 말을 듣긴 들었나 보았다.
“손만 잡고 잤는데, 우찌 아가 들어섰지?”
능글맞은 소리를 하며, 두산은 수일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배를 만졌다. 수일은 소리 내 웃었다. 간지러워 몸을 비틀며 두산의 손을 찰싹하고 때렸다.
늘 뜨겁던 두산의 손이 웬일로 차가웠다.
두산이 인상을 썼다.
“행님, 열 있나? 몸이 와 이리 뜨겁노?”
두산이 차가운 게 아니었구나.
수일은 제 이마를 짚었다.
두산은 수일의 손을 치우고, 자기 손을 수일의 이마에 올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론 제 이마를 짚었다.
“머꼬? 열이 있는 기가 없는 기가.”
확실하지 않은지, 두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발바닥 때문에 그래요. 나중에 약 한 첩 더 먹고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
수일의 말에 두산이 금방 수긍했다.
그러다가 다시 인상을 썼다.
“태욱이 그 개새끼를.”
“그러지 말구.”
“진짜로 내 이번 한 번만 참는 깁니다.”
“네. 통닭 먹어요. 배고프다.”
수일의 말에 두산은 그 큰 손으로 통닭의 두 다리를 잡아 뜯어 반 토막 내 버렸다. 그리고 다리를 수일에게 건네주었다.
“날개는 내가 무께요. 행님 바람나면 안 된다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두산은 날개를 잡아 뜯었다.
좋은 기름에 튀겼는지 기름 냄새가 나질 않았다. 튀김옷도 얇아 껍질이 바삭했다. 두산의 말대로 제대로 튀기는 집인가 보았다.
두산과 먹어서 더 맛있는 건지 아니면 배가 고팠는지, 수일은 손에 기름을 묻혀 가며 야무지게 닭 다리를 뜯었다.
잘 먹는 수일을 뱀 같은 눈으로 훑어보던 두산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아 먹던 두산은 수일의 입 안에 남은 씹다 만 닭까지 모두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끌어안았다.
더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의 입 안에 남은 음식 찌꺼기를 옮겨 가며 혀를 물고 빨았다.
쪽쪽 젖은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밭은 숨을 내쉬며 입술을 떨어트리고도 두산은 쪽쪽 몇 번을 더 수일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씨익 웃다가 예뻐 죽겠다, 했다.
수일은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통닭을 먹으며 키스하기를 반복했다.
통닭을 먹는 건지 두산에게 먹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수일은 기분이 좋았다.
몸이 달아 미칠 것 같았다.
차갑던 수일의 몸이 뜨거운 게 두산은 걱정인 모양이었다. 병원에 안 가 봐도 되겠냐고 재차 물었지만, 수일은 괜찮다고 말했다.
대신 낮에 병원에서 받아 온 약과 아스피린을 함께 먹었다.
두 사람은 팬티마저 벗고, 한 이불에 들어가 잠을 잤다. 수일의 몸이 좋지 않은 걸 안 두산은 발기해 커진 성기를 두고 잠을 청했다. 수일이 손으로라도 해 주겠다는 걸 굳이 말렸다. 나중에 제 손으로 하는 편이 훨씬 간편하다고 했다.
수일은 두산의 가슴에 안겨 잠이 들었다.
***
눈을 떠 보니 혼자였다.
밖이 훤했다.
몸에 열도 사라졌고, 머리도 몸도 한결 가벼웠다. 정말 발바닥 때문이었나 보았다.
수일은 빈 옆자리를 보며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그러다 알몸인 게 생각이 나, 서둘러 옷을 입었다. 태욱이 때린 곳은 멍이 시퍼렇게 들다 못해 검게 변했다. 보기 흉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목욕탕에 벗어 두고 나온 옷이 생각나, 수일은 밥 먹고 슬쩍 목욕탕에 갔다 와야지 생각했다.
거실로 나가자 언제나처럼 동생들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했다. 누구는 TV를 보고 누구는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현철은 시집을 쥐고 열심히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이고 행님아, 글씨가 그게 뭐꼬? 그래 쓰면 가시나들이 다 도망간다.”
연애편지라도 쓰나 보았다.
수일은 엷게 미소를 띠며 욕실로 향했다.
멍하니 오줌을 누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두산은 쾅 소리가 나도록 욕실 문을 닫고, 그대로 수일을 등 뒤에서 안았다. 갑자기 실려 오는 무게에 오줌은 변기가 아닌 욕실 바닥으로 흘렀다.
수일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몸을 돌리려 했지만, 두산이 너무 꽉 껴안고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두산은 수일의 어깨에 턱을 괴고 수일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오줌을 내려다보았다.
“행님, 볼일 보이소.”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한 두산은 수일의 귓불을 입술로 빨아 당겼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귓불을 물던 두산이 이번엔 입 안에 귀 전체를 넣고 오물거렸다. 뜨겁고 축축한 것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하아.”
한숨 같은 신음을 뱉었다.
그렇게 오줌 소리가 멎을 때까지 수일의 귀를 물고 빨던 두산은 소리가 멎자 다시 수일의 것을 내려다보았다.
“팬티에 오줌 다 튀었겠네.”
자기 때문에 그런 건데, 두산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수일은 목까지 벌게져 오줌으로 젖은 바지와 팬티를 내려다보았다.
“놀랬습니까?”
“네.”
“행님 꼬치 잘 있나 볼라고 그랬지.”
능글능글 말은 잘도 했다.
두산은 쪽 하고 볼에 입을 맞추고, 욕실 바닥에 흐른 수일의 오줌을 물로 씻어 냈다.
“대충 씻고 나오이소. 내 복숭아 사왔다.”
복숭아란 말을 뱉으면서 수일의 엉덩이를 살짝 거머쥔 두산은 실실 웃으며 욕실 밖으로 사라졌다.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수일은 젖은 팬티와 바지를 화장지로 닦아 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변태.”
수일은 비누로 손부터 씻고, 달아오른 얼굴을 차가운 물로 달랬다.
회색 추리닝에 젖은 자국이 선명해서 민망했다. 동생들 틈에 끼어 있던 두산은 욕실에서 나오는 수일을 눈으로 훑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수일은 껑충껑충 뛰어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팬티와 바지를 갈아입고, 젖은 옷들을 둘둘 말아 손에 쥐었다.
동생들이 점심상을 차렸다.
수일은 세탁실 옷을 쌓아 둔 곳에 제 옷을 던져두고, 두산의 옆에 가 앉았다.
“수일이 행님, 행님은 중졸이십니까 고졸이십니까?”
“고졸이요.”
“그라믄 핸처리 행님 편지 좀 써주이소. 보도 몬 하겠다.”
막내 영수가 안타까운 얼굴로 큰형인 현철을 보았다.
“와? 먼데?”
“아이다. 밥 묵자.”
현철은 막내를 째려보며 밥을 퍼먹었다.
두산이 눈짓으로 묻자 영수는 연애, 라고 입 모양으로 답했다.
“아. 근데 행님 고졸이가?”
두산은 수일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
“이야, 여서 가방끈 제일 기네. 내는 국졸이라 군대도 안 간다 아이가.”
두산은 국졸이라고 말하며 싱글거렸다.
“내가 중학교 때 아들을 쫌 뚜들겨 패고 댕깄거든요. 어차피 공부에 관심도 없었는데, 중3 때 소년원 안 갔다 왔습니까. 거서 공부하라 카던데 하기 싫대. 그래서 때리치았지.”
두산은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뱉었다. 두산이라면 왠지 그럴 것 같았던 수일은, 그다지 놀랍지 않아 고개만 끄덕거렸다.
“니는 그기 글러먹었다. 내는 소년원에서 검정고시 봐 가, 중학교 졸업장은 땄다 아이가.”
“글도 읽을 줄 알고 셈도 할 줄 알면 됐지. 졸업장이 무신 소용이고?”
두산은 현철의 핀잔에 지지 않고 말을 받았다.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밥을 먹고, 수일은 현철을 대신해 연애편지를 썼다.
“이야, 행님 맹필이네 맹필이야.”
다른 덩치가 수일의 글자를 보고 감탄을 했다.
연애편지를 쓰는 동안 막내가 복숭아를 씻어 내왔다.
수일은 편지를 쓰다 말고 얼른 복숭아를 집었다. 껍질을 대충 손으로 까서, 한 입 베어 물자 단 과즙이 입 안 가득 들어왔다.
수일만큼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동생들은 복숭아를 보고도 본체만체했고, 두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과일은 먹지 않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러다가 수일에게 눈짓을 했지만, 수일은 왜 그런지 몰라 빤히 쳐다만 봤다. 눈치 없는 수일이 야속한지 두산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이고, 내가 앓느니 죽지.”
들릴 듯 말 듯 이렇게 중얼거린 두산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기 전 또 한 번 수일을 돌아보았지만, 수일은 복숭아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일은 과즙이 묻은 끈적한 손을 싱크대에서 씻고, 연애편지를 완성했다.
현철인 별거 아닌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현철의 볼이 발그레해졌고, 수일은 동생들을 위해 뭔가를 해 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렇게 다 써 주고 방으로 들어가니, 두산의 입이 한 발이나 나와 있었다.
“왜 그래요?”
수일은 두산의 앞에 앉았다.
두산은 토라진 것처럼 수일을 쳐다보지도 않고 거실에서 들고 온 야한 만화를 읽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요?”
이렇게 묻는 수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일은 두산을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일의 불안을 눈치챈 두산은 금방 고개를 들어 수일과 눈을 마주했다.
“그게 아이고, 우째 그리 눈치가 없노?”
“…….”
“됐다. 됐고. 이리 온나.”
두산은 수일을 안아 제 무릎에 앉혔다.
다 큰 어른을 어린아이 앉히듯 늘 무릎에 앉히는 두산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 다 큰 어른인 수일은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두산이 안아 주는 게 너무 좋아 수일은 두산의 목을 안았다.
두산은 이제 당연하게 입을 맞춰 왔다. 입을 열어 두산의 혀를 받자, 두산이 기다렸다는 듯 쪽쪽 빨아 댔다.
“복숭아가 이래 다나?”
입 안에 복숭아 과즙이 남았을 리 없는데도, 두산은 계속 달다 하면서 수일의 혀를 빨았다. 입 안을 훑었다. 수일은 신음을 흘리며 두산의 목에 매달렸다.
열이 내리자 두산의 몸이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었다. 그 몸을 안고 키스를 받았다.
자연스레 옷을 벗고 알몸이 되자, 수일은 두산에게 안기는 대신 무릎을 꿇었다.
“다 나았어요.”
들릴 듯 말 듯 속삭이고 두산의 거대한 성기를 거머쥐었다.
두산의 몸이 떨렸다.
그저 손만 닿았을 뿐인데도, 배꼽까지 발기한 성기는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검붉은 뱀 같은 그것이 수일의 손에서 끊임없이 액을 쏟아 냈다.
“니 얼굴 안 보인다. 입에 넣지 말고 올라 온나.”
두산은 입으로 해 주는 게 그렇게 좋다더니, 수일의 몸을 끌어 제 무릎에 올렸다. 초라한 자기 얼굴이 보고 싶다고 말해 줘서 수일은 고마웠다.
두산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머금고 쪽쪽 소리 내어 빨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요?”
“예뻐서.”
“거짓말.”
“진짠데.”
능글맞게 웃으며, 두산은 수일의 입술을 물었다.
장난스럽던 키스는 농밀하게 바뀌었다. 두산은 수일의 얼굴을 그 큰 손으로 꽉 잡고 입술을 겹쳐 물었다.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입술을 꽉 맞댔다. 수일을 삼킬 듯 혀를 물고 빨아 댔다.
수일의 입술 새로 신음이 터졌다. 자기 입에서 나온 소리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음란했다. 밖에 있는 동생들이 들을까 걱정조차 되지 않았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끌어안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저녁을 다 먹고, 또 두산과 방에 들어와 함께 뒹굴었다. 땀으로 젖은 몸을 서로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는데 현철이 노크를 했다.
“두사이 니는 안 나가나? 우리 먼저 가까?”
“어. 행님아, 먼저 가라. 내는 쫌 이따가 가께.”
시계를 보니 출근할 시간이었다.
두산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수일이 몸을 일으켰다.
“더 있지?”
“나도 출근 준비해야죠.”
“하루 더 쉬세요.”
“안 돼요.”
수일은 두산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팬티를 주워 입었다.
두산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옷 입을 생각이 없는지, 가만 앉아 수일의 마른 등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래 잘 묵는데 우째 살이 안 찌노?”
“빨리 옷이나 입어요. 나 먼저 씻을게요.”
“잠깐 있어보이소.”
두산은 무슨 생각인지 수일을 잡아 앉혔다.
팬티만 입은 채로 밖으로 나간 두산은 곧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왔다. 수건을 물에 적셔 수일의 몸을 닦아 주었다. 차가운 줄 알았는데 몸에 닿은 수건이 따뜻했다.
“물 닿으면 다친 데 덧난다 아이가.”
무심하게 툭 던지고, 꼼꼼하게 몸 구석구석을 닦아 주었다. 수일은 두산이 하는 대로 가만 몸을 맡겼다.
팔을 닦던 수건이 겨드랑이에 닿자, 수일은 몸을 떨며 웃었다.
“성감대가?”
이렇게 말하고 씩 웃는 모습이 능글맞기 그지없었다.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어데 함 확인해 보까?”
두산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수일의 겨드랑이에 입술을 묻었다. 수일이 몸을 비틀었지만, 어느새 혀가 닿았다. 살살 달래듯 여린 살들을 핥아 가자, 수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감각에 힉, 소리 나는 입을 막았다.
수일의 반응에 신이 난 두산은 이번엔 혀 대신 입술로 겨드랑이 살을 물고 쭉 빨아 당겼다. 쪽쪽 빨아 당기는 소리와 압력에 수일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너무 좋아 죽을 것 같았다.
두산은 다시 수일의 몸을 안아 들었다. 방바닥에 급하게 눕히는 바람에 세숫대야가 엎어져 물이 쏟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산은 상관도 하지 않고 젖은 바닥에 수일을 눕히며 팬티를 벗었다. 그래도 발바닥에 물이 닿을까, 제 어깨 위에 상처 난 수일의 다리 한쪽을 올렸다.
이런 자세는 처음인 수일의 몸이 뻣뻣하게 굳자, 두산이 웃었다.
“이래 통나무 맨키로 뻣뻣해서 우짜겠노?”
놀리듯 말하면서도, 수일이 불편할까 봐 다리를 어깨에서 내려 제 허리에 둘렀다.
“단디 붙잡고 있으이소. 물에 발 안 닿그로.”
수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한쪽 다리마저 두산의 굵은 허리에 두르자, 두산은 수일의 등을 두 팔로 단단히 거머쥐었다.
두산의 거대한 것이 아랫배를 살살 긁었다. 수일은 다시 열이 올랐다.
남자에게 몸을 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줄 몰랐지만, 두산이라면 내주고 싶었다. 둘이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은아 씨에게 말했지만, 그런 사이가 되어도 좋았다.
두산이 그럴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끌어안았다.
안은 두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발가락을 곱꺾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두산의 거친 숨소리와 뜨거운 몸을 꼭 안고 수일은 자극에 몸을 맡겼다.
사정을 끝내자, 젖은 방바닥이 신경 쓰였다.
요가 물에 젖어 축축했다.
“내비두세요, 내가 치우게.”
수건으로 닦으려 하자 두산이 말렸다.
두산은 젖지 않은 곳으로 수일을 옮겨 앉히고, 마른 수건을 가져와 수일의 몸부터 닦아 주었다. 그리고 바닥의 물 때문에 젖은 수일의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렸다.
따뜻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행님, 내 오늘은 늦어서 무대 몬 본다. 끝나면 내 기다리고 있으이소. 데리러 가께예.”
“네.”
“근데 행님, 진짜로 궁금한데요, 와 존대하는데?”
여태 한 번도 묻지 않더니, 이제야 궁금한 모양이었다.
두산의 물음에 수일이 웃었다.
“아버지 때문에요. 나이트에서 일하다 보면 무시당하기 일쑤니까, 너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 존중해 주라고 그러셨거든요. 뭐 지금은 습관이 들어서 이게 더 편한 것도 있고.”
“와, 아버님 억수로 멋진 분이시네.”
두산은 수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별말도 아닌데 감탄 어린 눈으로 보는 바람에, 수일은 괜히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항상 느긋하던 두산도 서둘러 옷을 입었다.
두산은 수일의 무대복을 대신 챙겨 봉고에 실은 다음, 보는 눈이 없다는 핑계로 공주님 안기로 수일을 안아 차에 태웠다.
나이트에 도착하고 나서도 두 사람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끌어안은 채 키스를 했다. 다시 못 볼 것도 아닌데,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그렇게 두산의 품에 안겨 있는데, 은아 씨가 봉고 창문을 톡톡 두들겼다. 수일은 다급히 두산에게서 떨어져 차에서 내렸다.
“수일이도 있었나?”
은아 씨는 이렇게 말하며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수일을 아래위로 훑었다.
“두산아, 내캉 얘기 쫌 하자.”
은아 씨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또 두산을 찾았다. 수일은 두산에게 조심히 다녀와요, 하고 나이트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뒤에서 은아 씨가 조심히 다녀와요, 하고 수일의 말투를 흉내 냈다. 수일은 괜히 부끄러워 총총거리며 뛰어 들어갔다.
“행님, 이따 데리러 오께요.”
두산이 주차장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뭐라고 수일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대기실엔 송이가 와 있었다. 송이는 수일을 보더니 반가운 척을 했다.
“오빠, 다친 덴 괜찮아요?”
“네.”
수일은 송이 옆에 화장품 가방을 풀고 앉았다. 송이는 톡톡 얼굴을 두드리며 화운데이션을 바르다가 수일을 돌아보았다.
“나 마스터 아저씨 때문에 불편해 죽겠어요.”
투정 부리듯 이렇게 말하고, 다시 얼굴을 두드렸다.
“어제, 오늘 어찌나 들들 볶던지. 내가 지 애인이야 뭐야.”
고운 목소리로 마스터의 험담을 하는데, 수일은 달리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송이는 참 예뻤다. 주름 하나 없는 탱탱한 볼에 살결도 희고 부드러워 보였다. 반면 거울 속의 자신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창백해 보이는 마른 얼굴에 퀭한 눈. 이런 몰골로 두산에게 안겼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러다 문득, 두산도 송이처럼 저렇게 자신을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수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빠, 근데 두산이 오빠랑 정말 그렇고 그런 사이예요? 은아 언니가 그러던데.”
“아니에요. 그런 사이.”
수일은 순간 아니라고 말했다.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었다. 황당한 소릴 다 듣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죠? 아무리 그래도 오빠랑은, 좀. 오빠가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나이 차도 있구. 그리고 두산 오빠가 여자 엄청 밝히잖아요. 어제도 여기 댄서들이랑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송이의 말에 수일은 더 기가 죽었다.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쉬고 수일도 무대 화장을 했다. 오늘따라 화장이 잘 안 먹었다. 수일은 제 피부보다 몇 배는 어두운 화운데이션을 바르고 눈 화장을 했다.
좀 나아 보이려나 했더니, 거울 속엔 짙은 화장을 한 추한 남자가 있었다.
은아 씨가 대기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송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니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했다. 하룻밤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수일이 니는 이래 설렁설렁해도 욕도 안 묵고 좋겠다.”
두산과 얘기가 잘 안 됐는지, 은아 씨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송이는 저 먼저 나가 볼게요, 하고 불편한 자리를 피했다. 송이가 나가자 은아 씨는 문을 보며 혀를 찼다.
“저 가시나도 난 년이다. 마스터 꼬시가 가수 자리 얻자마자 바로 차삤대. 아이다, 저년이 문제가 아이고 마스터가 돌은 새끼다. 지 딸보다 어린 아를 여자라꼬 생각하는 기 돌은 기지. 내 같이 살림도 잘 살고, 성숙한 여자를 두고 드릅게 저기 머꼬?”
은아 씨는 수일이 대답하든 말든 상관없이 계속 말을 했다.
“누님은 마스터 어디가 좋으세요?”
수일의 질문에 은아 씨가 입을 삐죽했다.
“누가 좋다쿠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기지.”
은아 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현철도 마스터도 은아 씨도 모두 사랑에 빠졌다.
수일은 엷게 미소 지었다.
***
11시 무대를 끝내고 대기실에 들어가자, 지배인이 팁과 열쇠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이번엔 사장님이시다.”
경자 씨 때처럼 길게 말하지 않고, 딱 이 한마디만 했다.
지배인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홀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수일은 그저 이렇게만 생각했다.
수일은 봉투를 받아 들고 잠시 망설였다.
“와?”
“그게….”
“니 두사이가 쫌 봐 준다꼬 기어오르지 마라. 퍼뜩 가라! 손님 기다리신다.”
수일이 망설이는 게 마음에 안 든 모양인지, 지배인의 말투에 노기가 서렸다.
손님을 받지 말라던 두산의 말이 생각났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사장에게서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두산이 사장에게 말했다면 지배인에게도 말을 넣었겠지만, 이렇게 봉투를 갖다주는 걸 보니 그냥 해 본 소린지도 몰랐다.
수일은 3만 원을 지배인에게 주고 열쇠를 꺼냈다. 돈이 든 봉투와 팁은 입고 온 바지에 쑤셔 넣었다.
조금 번진 무대 화장을 손본 뒤, 매무새를 고쳐 호텔 방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수일은 90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중요 부위만 흰색의 타월로 가린 남자의 온몸엔 문신이 가득했다.
수일은 마른침을 삼켰다.
수일을 보자, 남자가 손을 까딱했다.
침대 발치에 걸터앉아 있던 남자는 수일이 다가가자 몸을 일으켰다.
“잘 빠나?”
“…네.”
“함 빨아 바라.”
남자는 타월을 벗어 던지고 수일에게 무릎을 꿇으라 손짓했다.
수일은 무대복 재킷 단추를 풀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 크지 않은 자지에 안심하고, 손으로 먼저 살살 만졌다.
“올리다 보고.”
수일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못생기고 살찐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갑자기 수일에게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수일이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침을 닦으려 하자 손이 날아들었다.
“어데서 손을 올리노?”
수일은 바닥으로 넘어졌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손등으로 피를 닦자, 무대복 흰 셔츠에 피가 스며들었다.
“일나라.”
덜덜 떨며 수일은 일어나 앉았다. 무릎을 꿇고 남자의 자지를 거머쥐었다.
“올리다 보고.”
수일이 고개를 들자 남자는 다시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수일의 얼굴을 타고 침이 흘렀지만, 이번엔 손을 올리지 않았다.
“입 벌리라.”
수일은 차마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수일이 망설이는 사이 다시 손이 날아들었다. 어찌나 세게 때리던지 머리가 다 흔들렸다. 억, 하고 소리를 내고 수일은 옆으로 넘어졌다. 터진 입술과 입 안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일나라.”
감정 없는 말투로 남자는 일어나라 말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고, 다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올리다 보고.”
벌벌 떨리는 손을 꽉 쥐고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이번에도 침을 뱉었다.
“입 벌리라.”
수일은 입을 벌렸다.
남자는 고개를 바짝 들이대고, 수일의 입 안에 계속 침을 뱉었다.
구역질이 났다.
남자는 잠시 멈춰, 침대 발치에 놓아둔 물병을 들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벌린 수일의 입 안으로 쪼르륵 물을 뱉었다.
터진 입에 물이 닿자 소름 끼치도록 따갑고 아팠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고, 다시 남자의 손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얼굴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뺨을 맞았다.
남자는 제 자지 빨리는 덴 관심조차 없었다. 수일의 입 안에 침을 뱉고 뺨을 때렸다. 생수병 2병을 모두 수일의 입 안으로 흘리면서도, 수없이 뺨을 후려갈겼다.
수일은 어떻게 방에서 나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가 바라, 하는 소리에 사정없이 떨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인사하고 방에서 나왔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서 벽을 짚고 간신히 복도를 걸었다.
울음이 터졌다.
터진 입술이 아파 입술을 깨물 수도 없었다. 발바닥 상처 따위 생각도 나지 않았다.
수일은 피가 묻은 무대복으로 입을 틀어막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하 1층 문이 열리자, 앞에 두산이 서 있었다.
수일의 얼굴을 보고도 두산은 놀란 기색조차 없었다. 두산은 수일의 팔을 잡아 엘리베이터에서 끌어내고 자기가 탔다. 문을 닫는 두산의 얼굴이 무표정했다.
수일은 갑자기 서러웠다.
호들갑을 떨며 욕을 하고 자기를 달래 줄 줄 알았는데, 두산은 남 보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 버렸다. 손님을 받지 말라고 했는데 받아서 화가 났나 보았다.
수일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물을 틀고 거기에 머리를 박았다. 엉엉 소리 내 울다가, 터진 입 안을 물로 헹구고 피를 뱉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에 아무 감각이 없었다. 이가 흔들리는 느낌에 수일은 손가락을 집어넣고 이를 점검했다. 그러다 또 서러워 세면대에 고개를 처박고 울었다.
간신히 피가 멎고 정신이 들었다.
수일은 무대를 준비 중인 댄서들이 볼까, 대기실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청소 도구를 넣어 둔 골방에 들어가 앉았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싸구려 시계를 보며 댄서들이 무대로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이 말랐는지 이젠 눈물도 나지 않았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수일은 노래를 불렀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