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은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목이 말라 눈을 떠 보니 집이었고, 물 주전자가 제 옆에 놓여 있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2시였다.
동생들은 밥을 다 먹고 쉬고 있을 시간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만화책을 보던 동생들이 수일을 보고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했다. 현철과 영수를 제외하면 이름을 몰랐지만, 일주일 정도 되니 얼굴이 어느 정도 익었다.
영수는 수일을 보자 물어보지도 않고 부엌으로 달려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수일은 욕실로 가서 볼일을 보고 이를 닦았다.
어제 두산과 함께 마스터와 송이를 만나러 간 것까지밖에 기억이 안 났다.
아니, 두산과 송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었다. 그건 기억이 났다.
둘이 같이 가고 마스터가 나를 데리고 왔나?
기억해 내려 애쓰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세수를 하고 나가니 식탁에 수일의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수일은 영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해장하기 좋은 북엇국에 밥을 척척 말아 먹었다. 잘도 넘어갔다.
반쯤 먹었을까,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마스터가 뛰쳐 들어왔다.
“백두사이 이 개새끼 어데 있노? 야이 새끼야 니 나와 바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쳐들어오자, 마룻바닥에 누웠던 동생들이 벌떡 일어났다.
수일도 깜짝 놀라 숟가락을 놓쳤다.
마스터는 이제 일어났는지 어제 술자리에서의 그 차림 그대로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화려한 무대복을 입은 채 두산을 찾아 이 방 저 방 다니며 문을 벌컥 열었다.
수일의 예상이 맞았나 보았다.
두산은 송이랑 가고, 저를 여기로 데려온 건 마스터였나 보다. 아니면 수일이 마스터를 데리고 왔던가.
수일은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도로 주워 추리닝 바지에 쓱 닦았다.
“행님, 와 그라십니까?”
제일 연장자인 현철이 마스터를 잡았다.
“놔라 새끼야, 백두사이 이 개새끼 어데 갔노? 당장 불러온나.”
“에헤이, 무슨 일인지 알아야 부를 거 아입니까. 행님 진정하시고예 여 쫌 앉으이소. 식사는 하셨습니까?”
“치아라. 이 손 치우라꼬.”
마스터는 현철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그러다 식탁에 앉은 수일을 보고 그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일은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 묵나?”
“예. 형님도 식사하세요. 북어국 있어요.”
수일의 말에 마스터는 숨을 씩씩거리다 수일의 옆에 앉았다.
영수가 다가가려 하자 마스터가 욕을 하며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마스터는 두산과 관련된 덩치들 누구와도 대면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수일은 직접 국과 밥을 퍼서 마스터 앞에 놓아주었다. 마스터는 식탁 위에 있는 수저통을 열어 숟가락을 꺼냈다.
“니는 속은 좀 개안나? 어제 나보다 마이 마시싸트만은.”
“북엇국 먹으니까 속이 좀 풀려요. 형님도 얼른 드세요.”
“내가 밥은 묵어서 머 하겠노? 콱 죽어삐야지. 그 개새끼 죽이고 내도 죽을 끼다.”
이렇게 말해놓고 마스터는 국에 밥을 말아 잘 먹었다.
그냥 해 본 소린가 보았다.
“캬아아, 시원, 하다.”
마스터는 국을 두 그릇이나 해치우고, 수일이 타 준 커피까지 마셨다.
부엌에 고립된 채 마스터와 단둘이 앉은 수일은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는 동생들을 힐끔거리며 마스터의 하소연을 들었다.
“송이 그 가시나 그기 일편단심이다. 내만 좋다코 하던 아를 두사이 그 새끼가 꼬여서 델꼬 갔다 아이가.”
“…….”
“아침에 눈 떠보이까, 어제 그 술집 앞에 내 혼자 누워있더라. 두사이 이 개새끼가 송이를 델꼬 갔구나, 딱 그 생각이 들어서 내가 여까지 뛰어 안 왔나.”
수일은 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는 집에 어떻게 온 걸까?
그때, 현철이 부엌 앞으로 와 말을 했다.
“행님, 먼가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예, 어제 두사이는 수일이 행님하고 집에 와 가지고 바로 자고 아침에 나갔습니다. 송인지 누군지 그 가시나는 코빼기도 몬 봤는데.”
“공갈치지 마라! 니들 다 한통속인 거 내 모를 줄 아나.”
“진짜라카이. 수일이 행님, 말 좀 해보이소.”
현철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수일을 보았다. 하지만 수일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일단 마스터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수일은 현철의 말이 사실이라고 얘기를 해 주었다. 마스터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일을 무척이나 신뢰했다.
그저 현철이 맞다 얘기했을 뿐인데도,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잘 무따.”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마스터는 현관 밖으로 사라졌다.
“하이고, 저 행님도 나이 처묵고 꼴값이다 꼴값이야.”
덩치 중 하나가 마스터가 나간 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수일은 한숨을 쉬며 식탁을 정리했다.
“막내야 머하노?”
현철이 막내를 불렀고, 만화책을 보던 막내가 헐레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수일의 손에서 빈 그릇을 뺏었다.
“이 정도는 해도 되는데.”
“안됩니다. 제가 죽습니다. 행님은 드가서 쉬세요.”
수일은 미안한 마음에 옆에서 알짱거리다가 거실로 가 앉았다.
동생들이 수일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고, 어떻게 기억을 했는지 수일이 읽다가 만 무협지를 넘겨주었다.
“근데 어제 두산 씨가 저 데리고 온 거 맞아요?”
“예. 제가 어제 일이 쫌 있어 가지고 숙소에 일찍 왔는데, 두사이가 행님 업고 들어오드라고예. 으찌나 땀을 마이 흘맀는지 오자마자 씻고 바로 잤다 아입니까.”
“아.”
수일은 현철의 말에 그제야 두산에게 업혔던 기억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했다.
송이랑 간 게 아니라 자기를 업고 집에 왔었구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수일은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미소를 띠며 무협지를 넘겼다.
그러다 4시쯤 목욕탕에 갔다.
벌써 복숭아 철인지, 목욕탕 가는 길에 있는 슈퍼 앞에 먹음직스러운 복숭아가 진열되어 있었다. 복숭아를 좋아하는 수일은 반색하며 진열대 앞에 섰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조금 더 있으면 싸질 테니 그때 사 먹자.
눈으로 복숭아를 쫓으며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수일은 온탕 냉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빈둥빈둥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손가락이 쪼그라들 때까지 탕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고 바나나 우유를 샀다.
목욕탕 평상에 앉아 쪽쪽 우유를 빨아 먹고 있는데, 이제 막 들어오는 태욱과 눈이 마주쳤다.
태욱은 아직도 멍이 남은 얼굴로 수일을 무시했다.
수일은 죄라도 지은 양, 어깨를 움츠리고 남은 우유를 급하게 마셨다.
“씨발년아, 니 안 가나?”
갑자기 제 귓가에 들리는 말에 수일은 화들짝 놀랐다.
태욱이 수일의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마르기만 한 줄 알았더니 태욱은 잔 근육으로 다져진 멋진 몸을 하고 있었다. 왼쪽 어깨를 타고 가슴까지 문신이 있었다.
뱀이었다.
“멀 쳐다보노? 눈깔 뽑아 삐기 전에 가라.”
태욱이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주위에 앉았던 아저씨들이 수일과 태욱을 번갈아 보았다.
수일은 목까지 벌게질 정도로 열이 올랐다. 뭐라고 대꾸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벗어 둔 옷을 찾으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두 발자국도 못 가 태욱의 발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고, 그때부터 태욱의 발길질이 시작됐다.
퍽퍽 소리가 나도록 수일을 때리는 발이 심상치 않았다. 주위 아저씨들이 태욱을 잡아 보았지만, 밀리지 않고 발길질을 계속했다. 수일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니 여서 와 이라노? 갱찰 부르까?”
주인아저씨의 말에 발길질이 멈췄다.
수일은 그 틈을 타 태욱의 발밑에서 기다시피 빠져나왔다. 옷은 챙겨 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치듯 달려 나갔다. 신발장이 밖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 와중에도 수일은 안도했다.
너무 당황해 아픈 줄도 몰랐다.
터벅터벅 숙소로 향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을 넘어트리고 때린 태욱이 괘씸했다.
그나저나, 앞으론 목욕탕에도 못 오게 생겼다.
태욱이 이 근처에 살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수일은 눈물을 닦으며 숙소로 향했다.
언제 왔는지 두산이 거실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두산은 현관을 들어서는 수일을 보고 눈을 번뜩였다. 이럴 땐 두산이 싫었다. 눈치가 너무 빨랐다.
수일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고, 두산이 바로 쫓아왔다.
“목욕탕 갔다드만 먼 일 있었습니까? 얼굴이 와 그라노?”
“더운 탕에 오래 있었더니….”
“개소리 하지 말고. 먼 일 있었습니까?”
“아니요.”
수일이 입을 닫자, 두산이 인상을 구겼다.
“누구 만났노?”
수일은 고집스레 입을 닫고 벽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라디오를 틀었다.
두산은 방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밖에서 내 좀 나갔다 오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산이 어디를 가든, 수일이 태욱을 만난 건 절대 모를 터였다. 태욱이 말할 리도 없었고.
그러다 수일은 두산이 목욕탕으로 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탕 안에 갔다간 태욱을 만날 게 분명했다.
수일은 곧장 일어나 급하게 뛰어나갔다. 두산을 잡아야 했다.
누구 신발인지도 모르고 그냥 신고 나온 슬리퍼가 자기 발보다 커서 뛰기 불편했다. 수일은 슬리퍼를 벗어 들고 목욕탕 방향으로 달렸다.
두산의 등이 보이자 수일은 두산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냥 가게 둘 수가 없었다.
태욱을 또 때리게 둘 수가 없었다.
수일이 맨발로 서 있는 걸 본 두산은 인상을 썼다.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면서, 수일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수일도 발을 내려다봤다.
날카로운 데 찔리기라도 했는지, 발에서 피가 났다. 돌아보니 핏자국이 저쪽에서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수일은 숨을 몰아쉬며 피가 나는 발바닥을 들었다. 초록색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다.
“니 머 하는 짓이고?”
두산은 수일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유리 조각이 박힌 발을 잡아 이리저리 보는 통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수일은 간신히 두산의 어깨를 잡았다.
“깊이 박힜다 아이가. 돌았나?”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에 수일은 기가 죽었다.
“병원부터 가자.”
“유리 빼고 약 바르면 돼요”
두산의 눈빛이 사나웠다.
“태욱이가?”
두산은 수일의 발을 잡고 물었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 두산은 그대로 수일을 업고 동네 의원으로 갔다.
의사는 조심성 없이 유리 조각을 빼냈고, 수일은 너무 아파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하지만 마취 주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처 나 벌어진 곳에 바늘을 끼우고 주사를 놓자, 정말 기절할 것처럼 아팠다.
수일의 입에서 아야, 하고 짧은 비명이 터졌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두산의 구겨진 표정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 바늘을 꿰매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받아 나왔다.
“내가 어제 오늘, 니 업고 댕기느라 허리가 다 아프다. 진짜 와 그라노?”
“죄.”
죄송해요, 하려다가 수일은 입을 닫았다.
수일은 두산에게 업힌 채 숙소로 갔다.
멀쩡히 걸어 나갔던 수일이 업혀 오자 현철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라도 당한 줄 안 모양이었다.
“유리가 박힜다.”
두산이 별일 아니란 듯 이렇게 말하고 수일을 방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일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시선을 마주했다.
“니 어데 모지라나?”
“…….”
“태욱이 그 새끼가 우쨌노? 때맀나?”
수일은 눈을 굴리며, 두산의 시선을 피했다.
“그래 당하고도 그 새끼 편드는 이유가 머꼬?”
“…어리잖아요.”
“그게 머?”
“어리니까, 어른인 내가 참아야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수일은 제가 말하고도 한심했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두산도 어이가 없었는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하이고, 행님아. 니도 참 정상은 아이다.”
두산은 수일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약 발라 주께요. 입이나 벌리라.”
수일은 얌전히 입을 벌렸고, 두산은 연고를 바른 손가락을 수일의 입 안에 우악스럽게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스치자 따끔거렸다. 그래도 훨씬 참기 수월했다. 거의 다 나은 모양이었다.
“11시 타임으로 바까줐더만은, 이래가꼬 무대는 스겠나?”
투덜거리면서, 두산은 연고 뚜껑을 닫았다.
두산이었구나. 수일은 제 무대 시간을 바꿔 준 게 누군가 했었다.
“왜 그랬어요?”
따지듯 물은 건 아니었다. 수일은 그냥 궁금했다.
“와 그라긴요? 내 볼라꼬 바까 달라 켔지.”
두산은 별소리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답했다.
노래야 듣고 싶다고 말만 하면 방에서라도 불러 줄 수 있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는데.
수일은 두산을 가만 쳐다보았다.
“와? 또 반했나?”
두산이 씨익 웃으며 싱거운 농담을 던졌다.
그 말에 수일은 피식 웃었다.
“요새 내가 좀 바빠 가, 행님 델꼬 어데를 몬 간다. 7월 되믄 한가해지니까, 그때 좋은데 마이 델꼬 가주께요.”
“네.”
두산은 손가락을 들어 수일의 아픈 볼을 살짝 건드렸다.
“여는 다 나아갑니까?”
“네.”
수일의 대답에 두산은 도톰한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눈을 번뜩이며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내는 행님이 빨아주는 기 제일 좋더라.”
수일은 얼굴을 붉혔다.
예전 같았으면 정색했을 말을 듣고도 얼굴을 붉혔다. 일주일 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랐다.
두산은 수일의 목덜미에 코를 갖다 대더니 킁킁 냄새를 맡았다.
“목욕해서 그른가 좋은 냄새 난다.”
몸에 열이 올랐다. 두산은 붉게 물들어 가는 수일의 목덜미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행님도 하고 싶은가베.”
이러더니 시계를 쓱 올려다봤다.
“아직 시간도 있는데, 우리 봉고에서 한 거 하입시다.”
두산은 이렇게 말하며, 수일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훌러덩 옷을 벗었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드러내고 알몸이 된 두산은 수일을 안아 들었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어어’ 했고, 그 소리에 두산이 웃었다.
“발 조심하이소. 잠깐만, 내 좀 앉고.”
두산은 수일을 마주 안은 채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수일은 다리를 어째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결국 두산의 굵은 허리를 두 다리로 안았다.
바로 밖에서 동생들이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들어오면 어떡해요?”
“내 있으믄 노크한다.”
“그래도.”
“보면 또 어떻습니까?”
두산은 능글맞게 웃으며 수일의 옷을 하나씩 벗겼다.
그저 옷만 벗길 뿐인데도 수일은 숨이 가빠졌다. 곧 수일도 알몸이 되었다. 벗은 몸에 두산의 살이 닿자, 그 열기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두산은 수일의 몸에 난 멍을 보고 인상을 썼다. 태욱이 때린 곳이 벌써 멍이 든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보기엔 이래도, 하나도 안 아파요.”
수일의 말에 두산이 헛웃음을 웃었다.
“이번 한 번만 참는다. 알았나?”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산은 손을 들어 수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 잘 듣는 아이에게 하듯,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도 빼꼼히 쳐다보는 통에 수일은 민망해 죽을 것 같았다.
“내는 벌써 섰는데 행님은 우째 안 서노?”
두산은 놀리듯, 실실 웃으며 수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하아….”
수일은 깊은숨을 내쉬며 두 팔로 두산의 목을 안았다. 온몸이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 두산이 뜨거운지 제 몸이 뜨거운지 알 수가 없었다.
두산의 입술이 목을 타고 귀로 향했다. 수일의 도톰한 귓불을 이로 깨물다가 혀로 핥았다. 두산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귓바퀴 주변을 살살 돌던 혀가 구멍 속으로 들어오자 수일은 흡,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었다.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두산은 수일의 귀에서 입술을 떼고 열에 들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니가 해라.”
발기한 두산의 성기와 반쯤 발기한 수일의 것이 맞닿았다.
수일은 손을 뻗어 두 성기를 잡았다. 이번엔 두산이 낮게 신음을 뱉었다. 고개를 숙이고 성기를 쓰다듬자, 두산이 이마로 콩 찧었다.
“내 보고.”
수일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 주기 싫어, 그 말에도 계속 고개를 숙였다. 그게 답답했던지, 두산은 안고 있던 팔 하나를 풀어 수일의 얼굴을 잡았다.
“내 쫌 보고.”
숨을 헐떡이며 수일을 탐하는 눈이 정욕으로 가득했다. 그 눈빛이 너무 강렬해 수일은 감히 쳐다도 못 보고, 두산의 이마에 머리를 갖다 댔다.
자기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괜히 겁이 났다. 두산만큼, 아니 두산보다 더 열띤 얼굴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리고 어린 송이를 향한 마스터의 얼굴이 제 얼굴과 겹쳐 보였다.
그 초라하고 추한 나이 든 남자의 얼굴이.
수일은 도저히 자기 얼굴을 두산에게 보여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수일은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손짓이 성에 차지 않는지, 두산은 수일의 허리를 두 팔로 단단히 잡은 다음 그대로 안아 올렸다. 그리고 뒤로 밀어 넘어트렸다. 방바닥에 수일을 눕힌 채로 다리를 잔뜩 벌려 잡은 다음, 무릎을 꿇어 성기를 바짝 밀었다. 압박하며 비벼 대기 시작했다.
손으로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자극에 수일은 목을 뒤로 젖혔다.
“하읏!”
절로 신음이 터졌다.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발끝을 오므리고 두산의 어깨를 거머쥐었다.
두산도 못 참겠는지 몸을 구부려 수일의 등을 바짝 안아 들었다. 하체는 더 밀착되었고, 얼굴이 맞닿은 상태로 섹스를 하듯 두산은 허리를 움직였다.
두산의 뜨거운 숨결이 입술에 느껴졌다.
수일은 눈도 뜨지도 못하고 제 몸을 강하게 안은 팔과 아래를 자극하는 마찰에 헐떡였다. 등을 안고 있는 단단한 근육질의 팔이 방바닥과 맞닿아 움직일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수일은 신음이 새어 나갈까 이를 악물었다.
두산의 움직임이 빨라지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아, 수일은 두산의 어깨를 깨물었다.
“윽!”
어찌나 세게 깨물었던지 피가 나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절정에 다다른 수일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두산의 어깨를 깨물고 또 깨물었다.
두산을 안은 팔과 두 다리에 힘이란 힘을 다 주어 견디던 수일은 마침내 사정했다.
수일이 사정하고도 두산은 끊임없이 하체를 움직였다. 수일은 하릴없이 흔들리는 몸을 어쩌지 못하고 두산이 주는 자극에 다시 몸부림쳤다.
그렇게 한참을 수일의 아랫배를 긁어 대듯 비비고 나서야, 두산도 깊은 신음을 뱉으며 사정했다.
땀으로 미끈거리는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두산은 수일의 귓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니 때메 미치겠다.”
한숨 같은 신음을 뱉었다. 수일은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몇 번을 미치겠다 환장하겠다 하던 두산은 몸을 일으켰다. 제 아래에 누운 수일을 내려다보며, 손을 뻗어 젖은 머리카락을 쓱 쓸었다. 손가락은 머리카락에서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크고 굵은 엄지가 수일의 입술 사이를 갈랐다. 수일은 입을 벌려 손가락을 물었다. 눈을 내리깔고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수일이 마치 제 성기라도 빨고 있는 양, 두산의 숨소리가 다시 거칠어졌다.
삐삐.
알림 소리에 그제야 수일은 정신이 돌아왔다.
이 집 안에 오로지 두 사람만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삐삐 알림음 이후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귀를 때렸다.
거실에서는 동생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고, 아까 켜 둔 라디오에선 수다가 이어졌다.
수일은 입에 물고 있던 두산의 손가락을 빼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쉬워하는 두산을 앞에 두고, 수일은 화장지를 들어 배와 허벅지에 묻은 정액을 닦아 냈다.
밖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옷 입을 생각조차 안 하는 두산을 보자 수일은 애가 탔다.
“얼른 옷 입어요.”
“싫은데.”
“누가 들어오면 어떡해요?”
수일의 말에 두산이 픽 웃었다.
“빨리.”
수일은 바닥에 널브러진 두산의 팬티와 바지를 집어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
똑똑.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수일은 화들짝 놀랐다.
“두산아.”
현철의 목소리였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수일은 조마조마했다. 숨까지 죽여 가며 방문을 쳐다보았다.
그런 수일과 달리 두산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느긋하게 팬티를 주워 입었다.
“와?”
“사장님이 좀 보잔다.”
“알았다. 행님, 들어오지 마라. 내가 나가께.”
상기된 얼굴로 문을 쳐다보던 수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팩 돌려 아직도 팬티만 입은 두산을 흘겨보았다.
두산은 수일이 이러는 게 뭐가 좋다고 소리 내 웃었다.
느긋하게 옷을 다 입은 두산은 수일의 몸을 당겨 제 무릎 위에 앉혔다. 흘겨보면서도, 수일은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안겼다.
“아까 어깨 깨물었는데….”
수일은 두산의 티셔츠를 슬쩍 당겨 보았다.
깨문 곳엔 잇자국이 선명했다. 자국이 너무 붉게 보여 혹시 피라도 났나 걱정이 되었다. 수일이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자 두산은 ‘아이고 나 죽네’ 하고 노인네 같은 소리를 했다.
“덩칫값 좀 해요.”
수일은 미안해서 괜히 핀잔을 주었다.
“강새이 맨키로 좋다고 낑낑댈 땐 언제고, 다 끝났다고 내 구박합니까?”
빈정거리는 투였지만 두산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수일은 능글맞은 두산이 좋았다. 마주 보고 웃는 눈이 오늘따라 그렇게 다정할 수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라, 수일은 저도 모르게 두산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순간, 두산의 표정이 굳었다.
당황한 건 수일이었다.
자기가 왜 뽀뽀를 했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두산이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다. 수일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창피해 눈물이 핑 돌았다.
벌게진 얼굴로 두산의 무릎에서 내려오려는데, 두산이 입술을 부딪쳐 왔다. 너무 세게 부딪친 바람에 딱 소리가 나도록 이가 닿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두산의 폭신한 아랫입술이 느껴지자 수일은 안도했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수일은 두산의 목을 안고 입을 열었다. 뜨거운 몸만큼 뜨거운 혀가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혀를 얽고 물고 빨았다. 젖은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고, 한번 시작된 키스는 끝날 줄을 몰랐다.
두산은 탐욕스럽게 수일의 혀를 뿌리까지 물어 삼켰다. 입 안을 구석구석 핥았다. 그러다가 입술을 떼고 수일의 눈물을 핥았다. 무슨 맛있는 거라도 되는 양, 혀를 길게 내밀어 쓱쓱 얼굴 구석구석을 핥아 올렸다.
좀 전까지 울던 수일은 흐응, 하고 불분명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소 같아요.”
수일의 말에 두산이 키득거렸다.
“내 소 아인데. 발정 난 개새낀데.”
그러면서 멍멍, 하고 짖었다.
수일은 미소를 머금고 두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쪽쪽 소리를 내어 가며 뽀뽀를 하자, 두산은 그 입술이 멀어질세라 다급하게 쫓아와 다시 키스를 했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비비고 물고 빨았다. 그저 좋아서 서로 눈을 맞추고 키득거렸다.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두산아, 안 나오끼가? 사장님이 또 저나했다.”
“간다. 지금 나간다.”
두산은 말만 이렇게 하고, 수일을 안은 팔을 놓지 않았다.
“가요, 그만.”
“내 꺼 서삤는데 우째 갑니까?”
“아까부터 섰으면서.”
“그래도 해결은 하고 가야지, 이래는 몬 가는데.”
능글맞게 웃으며, 수일의 입술을 쪽 빨았다.
“손으로 해 줄게요.”
수일은 이렇게 말하고, 두산의 바지 지퍼를 내려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살살 달래듯, 아래위로 움직이자 두산이 웃었다.
“입으론 쫌 하드만은 우째 손은 이래 엉성하노.”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두산은 제 손을 넣어 성기를 잡은 수일의 손을 겹쳐 잡았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빠르고 거칠게 잡아 뽑듯 움직이자, 두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성기에서 액이 흘러 수일의 손바닥을 적셨다. 잡은 것이 축축하고 뜨거웠다. 정욕으로 번들거리는 두산의 뱀 같은 눈이, 이젠 좋았다. 수일은 입술로 얼굴을 더듬어 두산의 입을 찾아 겹쳤다.
두산은 제 무릎에 앉은 수일의 몸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성기를 괴롭히고 나서야 사정했다. 절정에 몸을 떨다가 수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뜨거운 입김을 뱉어 내며, 두산은 찬찬히 숨을 골랐다. 수일은 손을 뻗어 두산의 등을 쓰다듬었다.
수일이 무릎에서 내려가려 하자, 두산은 몸을 조금 세워 직접 수일을 방바닥에 앉혔다.
“발 조심하고.”
혹시라도 다친 발바닥이 닿을까, 두산은 수일의 발목을 잡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다시 밖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두산은 느긋하게 정액을 닦아 내고 바지 지퍼를 올렸다.
이번에도 사장인 모양인지, 방문이 부서지도록 현철이 문을 두들겼다.
“니 안 나오고 머하노?”
“간다.”
두산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현철이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자, 등 뒤로 문을 닫았다.
그러다 다시 방문이 열리고 두산이 고개만 들이밀었다.
“내 갔다 오께예. 오늘 무대 쉰다고 사장님한테 말할 테니까 행님은 집에서 쉬세요.”
“아니에요. 무대에 서도 괜찮은데.”
“안 된다. 발 덧나믄 우짤라꼬예?”
“진짜 괜찮은데.”
“고집 피우지 말고.”
“그래도.”
두산은 수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래도.
어떻게 잡은 무댄데.
수일은 혼잣말을 했다.
거실에선 동생들이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소한 냄새가 수일의 방 안까지 들이쳤다.
그러자 방금 방 안에서 있었던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렸다. 꿈이라면 조금 더 오래 꾸고 싶었다.
수일은 바보같이 웃으며, 조금 전까지 두산의 입술이 닿았던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원해서 한 키스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애인 이후 숱한 손님들을 만나고 원나잇 상대와 섹스를 했지만, 키스가 하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랬던 수일이 두산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도 자기가 먼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두산이 기분 나빠 피하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지. 그 순간이 떠올라 수일은 몸서리를 쳤다.
라디오에선 진추하와 아비가 부른 <한여름 밤의 꿈(one summer night)>이 흘러나왔다.
가사가 서글펐다.
수일은 노래처럼 그저 한여름 밤 꿈을 꾸는 건지도 몰랐다.
어쩌면 수일의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달콤한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