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81)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당연하다는 듯 두산은 수일과 한 이불을 썼다. 꼭 팬티 한 장만 걸쳤고, 수일에게 이상한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등을 꼭 껴안고 잠을 잤다.

수일은 온갖 무서운 상상을 하며, 제 등을 안고 있는 남자의 체온을 느꼈다.

다리만큼 두꺼운 팔이 주는 무게에 수일은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다. 깊게 잠이 든 두산은 꼼짝도 하지 않고 새근새근 잘도 잤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한 수일은 새벽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혼자였다.

수일은 그대로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거실에선 동생들이 점심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 오는 날이라고 김치전을 부치고 있는지, 고소한 냄새가 방 안까지 들어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수일은 서둘러 옷을 입고 거실로 나갔다.

동생들이 인사를 하며 수일이 앉을 자리를 알려 주었다. 칼국수와 김치전에, 언제 샀는지 막걸리도 있었다.

현철이 수일의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행님, 어제 마이 놀라셨지예? 두사이하고 사장님하고 만날 저라고 논다 아입니까.”

수일은 아, 하고 짧게 답하고 막걸리를 마셨다.

터진 입 안이 따갑긴 했지만, 술이 뭐라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젓가락을 들어 제 몫의 칼국수를 먹고 김치전을 찢어 입에 넣었다. 여기 오고 나서 입맛이 돌았다. 동생들이 알아서 잘 챙겨 줘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어제의 일 같은 거, 새벽의 밑도 끝도 없는 공포 같은 거, 수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 생각하자. 수일은 속으로 다짐하며 대낮부터 막걸리를 홀짝홀짝 받아 마셨다.

비가 추적추적 잘도 내렸다.

점심이 끝나도 두산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일은 막걸리에 술이 오른 채 방 안에서 뒹굴었다. 벽지의 장미 개수를 세다 관두었다. 라디오에서는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수일은 노래를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검은 봉지가 수일의 옆에 툭,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수일은 몸을 일으켜 봉지를 열었다.

“운동화. 행님 꺼 마이 낡았길래 한 개 샀다.”

두산은 이렇게만 말하고 방문을 닫았다.

동생들이 두산 몫으로 남겨 둔 김치전을 내오자 내 밥무따, 하고 도로 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키라 적힌 상자에 수일에게 맞는 사이즈의 흰색 운동화가 들어 있었다. 시장통에서 파는 짝퉁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산 정품이었다. 두산이 보란 듯 넣어 둔 백화점 영수증이 있었다.

수일은 운동화가 든 상자를 그대로 닫아 옷장에 넣었다. 운동화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아직 신을 만했다.

나중에 서울 가서 신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도로 누우려는데 다시 방문이 열렸다. 두산은 방문을 막고 서서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행님 술 마이 자싰다면서예?”

“그게, 그냥….”

술기운에 벌게진 얼굴을 수일은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두산이 수일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잡았다.

“으이그, 뽈떼기도 부었는데 술을 그리 마시믄 우짜노?”

“괜찮아요.”

“갠찮키는. 함 보입시다.”

“괜찮은데….”

두산은 수일의 턱을 잡아당겨 입을 벌리더니, 입 안으로 그 굵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고개를 틀었지만 손가락이 쫓아오면서 터진 곳을 건드렸다.

“아아!”

수일은 너무 아파 인상을 썼다.

“거 바라. 여 다 터지삔네.”

자기 손가락 때문에 더 아픈 걸 모르는지, 두산은 손가락으로 터진 상처를 훑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따갑고 소름이 돋았다. 수일이 몸을 떨자 그제야 손가락을 빼냈다.

두산은 수일의 침 범벅인 손가락을 제 입에 넣고 쪽 빨았다.

“행님, 앞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요, 그래도 혹시라도 사장님이 내 없을 때 때리믄 그때 내한테 꼭 말해야 합니다.”

“…….”

“와 대답이 없노?”

“네.”

“입 안 터진 거 이거 오래간다. 밥 물 때도 을매나 아픈데. 내 퍼뜩 가서 약 좀 지아가꼬 오께예.”

“괜찮아요.”

“또 그란다.”

“며칠 지나면 정말 괜찮아져요.”

“내가 안 갠찮다. 갔다오께예.”

두산은 씩 웃더니, 수일의 부어오른 볼 반대편을 손가락으로 툭 치고 방을 나갔다.

수일은 닫힌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령 사장이 뺨을 다시 때린다 해도 수일은 말해 줄 마음이 없었다.

어제 그 광경을 목격했는데,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수일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술기운에 몸이 뜨거웠다.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고 싶어 수일은 끙, 하고 몸을 일으켰다.

“행님, 어데 가십니까?”

막내가 뒤따라 나오며 물었다.

“그냥 한 바퀴 돌다 오려구요.”

“두사이 행님 약국 갔는데….”

“네?”

“두사이 행님 약국 갔다가 금방 오실 낀데….”

두산이 돌아왔을 때 수일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뉘앙스였다. 머리를 긁적이던 영수는 수일의 팔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행님, 두사이 행님 오시거든 그때 나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막내의 말에 오기가 나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너무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어 수일은 도로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맘대로 밖에도 못 나가게 하는구나.

수일은 답답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벽지만 바라보는데, 밖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곧 수일의 방문이 열렸다.

“행님, 삼락이 형님이 보자십니다. 호텔에 계시다니까 델따 드리께예.”

“거긴 나가도 괜찮아요?”

수일의 말에 현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삼락이 행님이 불러서 간 거니까 뭐 안 갠찮겠습니까? 옷 입으이소.”

“네.”

수일은 형님의 전화가 이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콧노래까지 불러 가며 옷장을 열었다. 자기가 가져온 세 벌밖에 없는 옷 중에 하얀색 와이셔츠와 남색 정장 바지를 꺼내 입었다.

거울을 보니 꼭 출근하는 회사원 같았다.

볼이 많이 부어올랐지만, 못 봐줄 정돈 아니었다. 입술이 안 터진 게 어딘가?

수일은 현철이 모는 빨간 프라이드를 타고 나이트 호텔 로비로 갔다.

로비 커피숍에 앉아 있던 삼락 형님이 손을 들어 수일을 반겼다.

“수일아, 여. 이리 온나.”

수일은 반가워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삼락 형님을 향해 걸었다.

테이블이 가까워지자, 수일의 눈에 삼락 형님 맞은편에 앉은 경자 씨와 경자 씨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수일은 걸음을 멈췄다.

이것 때문에 자기를 부른 거였구나.

삼락 형님과 둘이서 차 한잔하며 얘기를 하고 싶었던 수일은 풀이 죽었다. 절로 굳어지는 표정을 숨기려 수일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경자 씨가 반갑게 수일을 맞았다.

삼락 형님 옆으로 앉으려는 수일의 팔을 잡아 제 옆으로 당기며,

“수일 씨, 일로 온나. 가시나야, 니는 절로 가고.”

했다.

가시나라 불리는 경자 씨 또래 여자가 삼락 형님 옆자리로 이동했다.

경자 씨의 작은 손이 수일의 등을 쓱쓱 쓰다듬었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더니, 수일과 눈을 마주치고 작은 눈을 접어 환하게 웃었다.

“니 오늘 보이까 딴 사람 같다. 우찌 이리 이쁘장 하노?”

“누님, 우리 수일이가 인물 하나는 어데 내놔도 안 딸립니다.”

경자 씨의 말에 삼락 형님이 자랑하듯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내는 경자 친구 미자라꼬 합니다.”

삼락 형님 옆에 앉은 여자가 자신을 미자라고 소개하며 수일의 손을 잡았다.

경자 씨가 미자 씨의 손을 소리 나도록 쳐 내며 눈을 흘겼다.

“가시나야, 니는 니 꺼만 챙기라. 내 꺼한테 눈독 들이지 말고.”

“아이고, 알았다. 손도 함 몬 잡나.”

서로 입술을 실룩이며 핀잔을 주고받다가 까르르 웃었다.

삼락 형님은 주문을 받으러 온 여종업원에게 수일 몫의 커피를 시켜 주고 담배를 태워 물었다. 그러다가 눈썹을 치켜떴다.

“수일이 니 얼굴이 와 그라노?”

수일의 부어오른 볼을 본 모양이었다.

“아, 이거요. 그게….”

“머꼬? 정배가 때맀나?”

다짜고짜 경자 씨가 사장의 말을 꺼냈다.

“정배 그 새끼가 손버릇이 나쁘다. 개새끼, 내가 한마디 하끄마. 어디 쫌 보자.”

경자 씨는 억센 손길로 수일의 턱을 잡아 이리저리 얼굴을 살폈다.

삼락 형님의 표정이 굳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수일을 보며 담배를 뻑뻑 피웠다. 옆에 앉은 미자 씨가 삼락 형님의 눈치를 보며 허벅지를 슬슬 쓰다듬어 달랬다.

“하이고, 수일아. 내 니 볼 면목이 읍따. 두사이 그 개새끼, 내가 그리 니 챙기라 켔는데.”

“괜찮아요, 형님.”

“갠찮키는. 그기 갠찮은 얼굴이가.”

검붉은 얼굴로 인상을 잔뜩 구기던 삼락 형님은 커피가 나오자 얼른 마시라고 수일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수일은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타서 휘휘 저었다. 별것 아닌 행동에도, 경자 씨는 뭐가 그리 좋은지 흐뭇한 표정으로 수일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째 이리 잘생깄노. 말가이, 얼굴에서 빛이 다 나네. 앞으로 어두컴컴한 나이트 말고, 이래 훤한 대낮에 보자. 밤에 보기엔 얼굴이 느무 아깝다 아이가.”

연신 수일의 초라한 얼굴을 칭찬하는 경자 씨 덕에 삼락 형님의 굳은 표정이 풀렸다.

이 셋은 원래는 드라이브를 나갈 예정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비가 와서 급 일정을 취소하고 할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수일이 생각나 불렀다.

“담에 드라이브 갈 때 니도 같이 갈래? 원래도 내가 니 부를라꼬 했다. 근데, 삼락이 이기 니 불편하다꼬 죽어도 몬 부르게 해가꼬 내가 을매나 쏙이 아프던지. 어떻노. 담에 같이 가자.”

자기가 불편할까 봐 여러 번 거절했다는 얘기를 듣자 삼락 형님이 고마웠다. 호텔 로비에 부른 것도 아마 경자 씨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불렀나 보았다.

수일은 삼락 형님을 쳐다보았다.

형님은 눈을 찡긋해 보이며 허락하라고 알렸다.

“네. 담엔 같이 가요.”

“진짜로?”

“네.”

“하이고, 계 탔네 계 탔어. 수일 씨, 드라이브 가몬 내가 손만 잡으께. 딴짓 안 하고.”

경자 씨의 말에 미자 씨가 까르르 웃었다. 경자 씨도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수일의 허벅지를 쓸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그들 사이에 껴서 억지로 웃고 묻는 말에 대답했다.

경자 씨의 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숙이 들어왔다.

허벅지를 만지던 손은 일부러 수일의 성기를 슬쩍 건드렸고, 수일이 흠칫할 때마다 경자 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일은 당황했지만 손을 밀어낼 수도 쳐 낼 수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한창 얘기 중이던 삼락 형님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자 씨의 스킨십에 수일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때, 삼락 형님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어! 니 여 웬일이고?”

삼락 형님의 말에 미자 씨도 경자 씨도 돌아보았다. 물론, 수일도.

경자 씨의 손이 떨어져 나간 것도 그때였다. 두산이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수일은 억지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반가워 두산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두산은 특유의 씨익 웃음을 웃으며 여사님들과 삼락 형님에게 큰소리로 인사했다.

“다들 여 있었네. 한참 찾았다 아입니까?”

능청스러운 말투로 ‘누님 우째 더 예뻐지노?’ 하며 경자 씨에게 한마디 했다.

두산은 옆 테이블 의자를 당겨 와 수일의 옆에 앉았다.

“행님은 말도 없이 나가몬 우짭니까? 걱정했다 아이가.”

현철에게 들어서 다 알고 왔을 거면서 아닌 척 굴었다.

피식 웃으며, 수일은 두산과 눈을 마주쳤다.

두산이 검지로 수일의 안 아픈 볼을 툭 하고 건드렸다.

“그래 웃지 마세요. 정든다.”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두산은 뱀 같은 눈으로 수일을 훑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말이 뭐라고, 수일은 얼굴을 붉혔다.

두산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남자였다.

“아재요, 어제 왜 안 오셨습니까? 회식한다고 사장님이 삐삐도 여러 번 칬다카든데.”

“아. 그기… 내가 쫌 바빴다.”

두산의 물음에 삼락 형님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만 말하고 싶다고 눈치를 줬건만 두산은 실실 웃으며 무슨 일로요? 하고 물었다. 옆에 있던 미자 씨가 도끼눈을 뜨고 삼락 형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난감해진 형님이 대화 화제를 수일에게로 돌렸다.

“야이 새끼야, 니 수일이 얼굴 우찌 된 일이고? 회식을 했는데 쟈 얼굴이 와 저 꼬라지냐꼬.”

두산을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며 화를 냈다.

수일은 당황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면 삼락 형님도 이런 말을 꺼내지 못할 거였다.

“그리됐습니다.”

“새끼, 내가 니한테 수일이 부탁했나 안 했나?”

“죄송합니다. 사장님 손버릇 나쁜 거 깜빡한 사이에 이리 됐다 아입니까.”

두산은 전혀 죄송하지 않은 말투로 삼락 형님에게 대꾸했다.

두산의 표정을 읽은 삼락 형님은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입을 다물었다.

“가시나야, 여 커피 한잔.”

호텔 로비가 떠나갈 듯 두산은 커피를 주문했다.

호텔 지배인이 급히 뛰어왔다.

“지배인님, 여는 아들 관리 안 합니까? 우째 손님이 들어왔는데 주문도 안 받으러 오노?”

“죄송합니다. 시정 하겠습니다.”

“됐고, 커피나 주이소.”

“죄송합니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의 겁먹은 얼굴에, 두산은 손을 휘휘 저으며 파리 쫓듯 그를 쫓아냈다.

두산이 오기 전까지 잘만 떠들어 대던 미자 씨도 경자 씨도 입을 다물었다. 삼락 형님이 어색한 분위기를 띄우려, 아까 말했던 10년 전 모셨던 사모님과의 일화를 다시 읊었다.

여종업원이 커피를 내오자 두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여자의 얼굴과 몸을 훑었다.

“제대로 해라. 두 번 말 안 한다.”

감정이 실리지 않았지만, 여자는 손을 벌벌 떨었다.

“죄송합니다.”

“가 바라.”

“에헤이, 두사니 니도 참. 내가 말하고 있다 아이가, 그래가꼬, 내가 그 사모 보지를 빨라꼬 고개를 처박았는데.”

삼락 형님은 일부러 음란한 단어들을 섞어 가며 아까보다 더 과장되게 말을 이었다. 이 상황에서 주눅 들지 않고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저런 재주라면 수일도 갖고 싶었다.

두산은 수일처럼 프림과 설탕을 넣은 커피를 후루룩 마시며, 삼락 형님의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정말 재밌어했다. 눈치를 보던 경자 씨도 미자 씨도 까르르 웃었다.

수일만 이 상황이 어색해, 웃지도 못하고 가만히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얘기는 돌고 돌아 수일의 외모 얘기가 또 나왔다.

“내가 첨에 수일이가 무대에 딱 스는데 하이고야 절마 참 잘생깄다,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 몸이 쪼매 말랐지만 그게 어데 흠이가. 그라고 낮에 보이까 우찌 이리 곱상하이 생깄는지, 얼굴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다.”

경자 씨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수일의 얼굴을 훑었다.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두산은 경자 씨의 말에 피식 웃었다.

“누님도 예쁜 거 드릅게 발키쌌네. 어데 얼굴만 예쁩니까? 다 예쁘지.”

“맞다. 그기도 예쁘드라. 이래 말 나온 김에 한번 또 봐야겠네.”

경자 씨가 말하는 ‘그기’가, 제 자지를 일컫는다는 걸 알고 수일은 얼굴이 벌게졌다. 수일의 반응에 두산을 빼고 다들 큰 소리로 웃었다.

“가시나, 밝히기는.”

“우리 갱자 누님, 그래 안 봤는데 청춘이네 청춘이야.”

두 여자는 서로 은밀한 시선을 주고받았고, 삼락 형님도 호탕하게 웃으며 경자 씨를 놀렸다.

“누님. 근데예 이제 수일이 행님 방으로 부르지 마소.”

두산이 싱글싱글 웃으며 경자 씨에게 한마디 했다.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고 삼락 형님이 혀를 찼다.

“에헤이, 두사이 니는 먼 말을 그래 하노? 갱자 누님이 수일이 예뻐서 그란 거 아이가. 방에 불러서 손만 잡고 있는다.”

“아재요, 내 지금 농담 아인데.”

두산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삼락 형님을 향해 이렇게 답했다.

순간 경자 씨의 표정이 사나워졌고, 삼락 형님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와? 와 부르믄 안 되는데?”

기분이 상한 듯, 왜냐고 묻는 경자 씨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삼락 형님은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모양인지,

“아이고, 오줌이야. 내 화장실 쫌 다니오께.”

하고 불편한 자리를 피했다.

미자 씨가 내도, 하고 삼락 형님 뒤를 따랐다.

두산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흘끔거리다가, 수일의 가슴을 손으로 밀어 의자 등받이에 붙여 앉혔다. 그리고 경자 씨에게 몸을 가까이 가져가 낮게 으르렁댔다.

“씨발년아, 부르지 말라카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부르지 마라.”

두산의 말에 경자 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니 사장 친구라꼬 내 마이 참는 거 알제? 아가리 찢어삐기 전에 말 잘 들어라.”

두산은 제 엄마뻘인 여자에게 서슴없이 욕을 했다.

수일은 두산의 말에 숨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니 경자 씨는 오죽했을까?

두산을 사납게 쳐다보던 경자 씨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두려움도 언뜻 보였다. 아니면 수치심이던가. 통통한 볼살이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경자 씨는 몸을 떨었다.

두산은 입꼬리를 올려 경자 씨를 쳐다보다가, 몸을 제자리로 하고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누님도 참 마이 늙었다. 주름 관리 안 합니까?”

“…내? …야 이, 새, 새끼야. 니 빼고 다 30대 후반으로 본다.”

경자 씨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두산의 말을 받아쳤다.

“에이 뻥이 느무 심하다. 40대 초반.”

“그기나 그기나. 내가 올해 오십둘 아이가.”

“벌써 그리 됐습니까? 이야, 우리 누님, 진짜 동안이네. 내는 누님 여즉 40댄 줄 알았지.”

“내가 쫌 마이 동안이제?”

좀 전까지 자기 입을 찢어 버리겠다고 협박한 남자와 경자 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농을 주고받았다. 삼락 형님이 때맞춰 미자 씨와 자리에 앉았고 다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어제도 오늘도 수일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수일만 모르는 저들만의 공감대가 있겠지만, 그래도 수일이 보기엔 두산의 행동과 말은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두산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운데 끼인 수일만 매번 놀라고 당황했다. 표정 관리조차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들릴 듯 말 듯, 옅은 한숨을 쉬며 멀리 비 오는 통유리를 힐끔거리던 수일은 그만 일어나자는 말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계산은 두산이 했다.

삼락 형님은 두 여자를 양쪽에 끼고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두산은 수일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행님 마이 힘들었지예? 아지매들 비위 마차주는 기 보통 일이 아이다.”

굳어 있는 수일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고생 많았다고 위로를 했다. 그리고 이번엔 수일의 허리를 안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일은 두산이 무섭다가도 반가웠고, 두렵다가도 고마웠다. 불편하다가도 친근했다. 싫다가도 좋았다.

지금은 불편하기만 했다.

두산은 숙소로 가는 대신 번화가로 차를 돌렸다.

“행님 옷 좀 사러 백화점 가입시다. 비도 오는데 할 일도 없다 아이가.”

“괜찮은데.”

“어제 사장님 말 못 들었습니까? 안 사주믄 내가 욕 듣는다.”

“그럼 백화점 말고 시장에 가요.”

백화점은 비쌌다.

지금 수일이 입고 있는 옷들 중 메이커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남대문이나 동대문에서 사다 입은 거였다. 백화점엔 수일을 예뻐하던 사모님들을 따라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죽은 옛날 애인과 한 번 갔었고.

두산은 시장에 가자는 수일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백화점으로 데려갔다.

서울에 비하면 조금 허술해 보이는 매장엔 사람들이 많았다.

두산은 폴로 매장에 들어가, 자기가 입는 것과 같은 티셔츠 두 장을 집었다. 빨간색과 흰색이었다. 수일은 빨간색보단 남색이나 검은색을 사고 싶었지만, 말을 못 했다.

“행님한테 100은 좀 크겠다. 95로 사까예?”

“그냥 100으루.”

나중에 살이 쪄도 입을 수 있게 이왕이면 큰 게 나았다.

수일은 그 생각을 하며 100 사이즈를 고집했다.

웬일로 두산은 수일의 말대로 100 사이즈 티셔츠를 사고 리바이스 매장으로 향했다. 굳이 청바지를 10만 원 돈 주고 사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엔 두산의 고집대로 청바지를 샀다. 지퍼로 된 평범한 거면 좋으련만, 굳이 바지 앞섶이 단추로 된 걸 골랐다.

그렇게 시작된 쇼핑은 남성복 판매대까지 돌며 셔츠와 구두, 혁대까지 모두 새로 장만했다.

백화점을 나올 땐 두산의 양손이 쇼핑백으로 꽉 들어찼다. 도대체 돈을 얼마를 썼는지, 수일은 감도 오질 않았다.

“행님. 내 바지 주머니에서 차 키 쫌 꺼내주라.”

수일은 두산의 앞주머니를 뒤졌다. 두산의 자지가 만져져 급하게 손을 뺐다.

두산이 낄낄 웃으며 몸을 틀었다.

“자지를 만지믄 우짭니까?”

하도 큰 소리로 말하는 통에 쇼핑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두산은 그런 시선 따위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수일은 얼굴을 붉히며 겨우 차 키를 꺼냈다. 이번에도 손에 닿았다. 안 닿을 수가 없는 크기였다.

하필 차 열쇠를 그쪽 주머니에 넣어 둘 건 또 뭐람.

수일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차 문을 열었다.

두산은 뒷좌석에 쇼핑백을 던져두고, 운전석에 앉았다.

“행님때메 섰다 아이가.”

돌아보니, 정말 그새 앞섶이 커져 있었다.

“입만 안 터졌어도 당장 빨아달라꼬 했으 낀데. 다 나을 때까지 내가 참으께요.”

선심 쓰듯 한마디 하고 두산은 시동을 걸었다.

“행님, 내 쫌 보이소.”

무슨 말을 하려는지 뜸을 들이던 두산은 픽 웃더니 아이다, 했다.

아니다 아니다 하며, 차를 움직였다.

비가 봉고 지붕을 때리는 소리에 수일은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라디오에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흘렀고, 두산은 입꼬리를 올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목소리는 좋으면서, 어째 음정도 박자도 하나 맞지 않았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웃었고 두산은 그런 수일을 돌아보며 와요, 했다.

그게 또 웃겨 수일은 입을 막았다.

두산은 더 크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어찌나 노래를 못하던지, 수일은 처음으로 두산을 향해 소리 내 웃었다. 두산이 묘한 눈을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참 예쁘다.”

두산이 수일을 보고 속삭이듯 말했다.

“행님.”

“네.”

“앞으로요 누가 방으로 부르면 가지 마이소. 갱자 누님이 불러도 가지 말고. 누가 불러도 가지 말란 말입니다. 받은 돈은 도로 돌리주고.”

수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산에 내려오기 전에 삼락 형님이 제일 먼저 물었었다.

손님 받는 거 가능하냐고.

수일은 동의했고, 사장도 그걸 알고 있었다.

“와 대답이 없습니까?”

“그게, 계약이….”

“내가 하지 말라 안 합니까? 하지 마세요.”

“그래도.”

수일은 곤란했다.

수일도 손님 받는 건 정말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노래만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두산이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수 있을까?

두산의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만약 수일이 손님들의 잠자리 요구를 거절한 걸 알면 사장은 뺨을 갈기는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였다.

“진짜 말 안 듣네. 하지 마라.”

두산이 화를 억누르는 게 느껴졌다.

“대답 안 하나?”

언성이 높아졌지만, 수일은 차마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수일은 서열에서도 제일 끄트머리였고, 시키면 다 해야 했다. 그렇게 계약을 했다.

수일이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자 두산은 한숨을 쉬었다.

뭔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닫고 씨발, 하고 욕을 뱉었다.

분위기가 냉랭해진 채 숙소로 돌아갔다.

두산은 수일에게 사 준 쇼핑백을 모두 들고 방으로 먼저 들어갔고, 수일은 차마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내리는 비를 보았다.

기분이 울적했다.

비 때문이리라.

수일의 습관이었다. 울적한 기분이 들 때마다, 수일은 술이나 날씨 핑계를 댔다.

손님 핑계를 대면 손님을 받을 수가 없었고, 비루하기 그지없는 제 처지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살 수가 없었다.

자조 섞인 웃음을 짓고 있는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행님, 거서 머하노? 들어온나.”

두산은 한풀 화가 꺾인 목소리로 수일을 불렀다.

수일은 쪼그린 채로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조금만 더 있다 갈게요.”

“내 때메 그랍니까?”

“아니요. 그냥 비 내리는 거 보고 싶어서요.”

수일은 거짓말을 했다.

두산은 현관문을 닫고, 수일의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수일을 쳐다보았다.

“공갈도 제대로 몬 치고, 큰일이다.”

수일의 얼굴에서 거짓말을 읽었나 보았다.

두산은 혀를 차며 피식 웃었다.

“행님, 내는 욕심이 많아 가 누가 내 꺼에 손대는 거 억수로 싫어한다.”

“…….”

“사장님한테 말할 테니까, 손님 받지 마세요. 두 번 말 안 합니다.”

수일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두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5분만 더 있다 들어 오이소. 입에 약 발라주께.”

수일은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 두산이 들어간 현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밴드와 은아 씨가 리허설을 하는 모양인지 나이트 주차장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다, 가만 들어 보니 다른 목소리였다.

고개를 갸웃하고 대기실로 들어가자 은아 씨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수일이 왔나?”

“네. 지금 노래 부르는 사람 누구예요?”

“누구긴? 마스터가 델꼬 온 가시나지.”

은아 씨는 이렇게 말하며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여자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고운 음성에 부드러운 저음이 매력적이었다.

“여가 어데 가라오껜 줄 아나. 저기 머꼬? 저기 노래가?”

수일은 나쁘지 않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사장도 와 있다 아이가. 가시나 쌍판떼이 보러 왔지 노래 들으러 왔겠나. 스무 살이란다.”

마스터가 어제 스무 살짜리 얘길 꺼낸 이유가 여기 있었나 보았다.

“하이고, 내가 제일 불쌍타. 빽도 없제 저리 끌어 줄 아빠 같은 사내가 있기를 하나, 니처럼 조폭 애인이 있기를 하나.”

은아 씨의 한탄은 계속 이어졌다.

조폭 애인이란 말을 한 뒤 은아 씨는 한쪽 입술을 끌어 올리더니 수일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둘이 언제부터 그랬노? 첫날?”

“네?”

“니캉 두사이캉.”

“그런 사이 아닌데요.”

“지랄하네. 그런 사이 아인데 두사이가 사장한테 그 지랄을 떨었다꼬? 귀신은 속이도 내는 몬 속인다.”

“정말 아니에요.”

은아 씨는 입술을 실룩이며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했다.

정말 아닌데.

목이 탔다.

수일은 목청을 가다듬는 척하며 물을 마셨다.

수일의 옆에서 두껍게 분을 바르던 은아 씨는 연신 수일을 힐끔거렸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거울 속에서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제 일로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던 수일은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근데 니도 재주가 용타. 그 이쁘고 어린 태욱이도 몬 꼬신 아를 우째 니가 다 꼬싰노? 니 여 내려온 지 오늘로 육 일째 아이가? 참말로 용하다.”

“누님, 정말 그런 사이 아니에요.”

“하이고, 우리 수일인 좋겠네. 내는 은제 그런 자지를 함 넣어 보노.”

은아 씨는 둘이 사귄다고 단정 짓고 수일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지 얘기까지 꺼내는 통에 수일은 그냥 입을 닫았다.

정리할 것도 없는 무대복을 매만지는데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사장이 들어왔다.

은아 씨는 사장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고 수일도 뒤늦게 인사를 했다. 사장은 수일을 못마땅한 눈으로 훑고 은아 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은아 니는 오늘부터 제일 첫빠따로 노래해라. 새로 온 가시나가 두 번째로 부르끼다. 그라고, 수일이 니는 이제부터 11시다. 알겠나?”

갑작스러운 통보에 은아 씨가 이유라도 알자며 하소연을 했지만, 사장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니가 사장이가? 맘에 안 들면 때리치우든가.”

“그게 아니라예, 와 그라는지 이유라도 말해주시면 제가 싹 다 고칠게용, 네? 사장니임.”

“야가 와 이라노? 징그럽고로.”

사장은 은아 씨의 애교에 정색을 하고 대기실 문을 나가 버렸고 은아 씨는 큰소리로 사장님, 하고 뒤따라 나갔다.

수일은 자기가 왜 피크 타임으로 이동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은아 씨보다 인기도 없었고 삼락 형님처럼 사모님들을 불러들이지도 못했다. 안 그래도 두산과의 관계를 의심받고 있는데 이런 일로 이상한 소문이 돌까 괜히 걱정이 앞섰다.

수일은 은아 씨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대기실을 나와 홀로 향했다. 무대는 비었고 처음 보는 여자와 마스터가 무대 앞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더듬고 있었다.

마스터가 인기척에 돌아보았다.

“수일아 일로 와 바라. 여는 우리 나이트에 새로 온 가수.”

스무 살은커녕 열여덟은 먹었나 싶은 어린 여자가 수일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한송이라고 해요.”

여자는 서울 말씨를 썼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수일이라고 합니다.”

“어머? 정말 이름이 윤수일이에요?”

송이는 두 손을 마주 잡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가만 보니, 눈이 좀 닮은 것도 같구. 그래두 오빠가 더 잘생기셨어요.”

송이의 칭찬에 수일은 쑥스러워 괜히 목덜미를 쓸었다.

“오빠는 서울서 왔다면서요? 저는 경기도에서 왔어요.”

“네.”

“내 말 맞제? 쟈가 저리 말이 읍따.”

송이는 밤무대 가수가 말이 없는 게 신기한지 고개를 갸웃하며 수일을 쳐다보았다.

키가 제법 큰 송이는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을 얼굴이었다. 마스터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송이의 가슴을 대놓고 쳐다보았다.

“오빤 여자 안 좋아해요? 다들 내 가슴만 쳐다보는데 오빤 안 그러네?”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이렇게 묻는 송이의 얼굴이 너무 해맑았다.

그나저나, 참 이상했다. 부산에 내려온 6일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저런 질문을 수일에게 했다.

여자 안 좋아하냐, 그쪽이냐, 안 서냐.

수일은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지쳤다.

사장의 말대로 수일은 11시에 노래를 했다.

11시 무대치곤 반응은 미적지근했지만, 언제 왔는지 두산이 맨 앞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수일은 그게 또 쑥스러워 얼굴을 붉혔다.

어두운 커튼 뒤 무대를 내려가자 두산이 수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님, 오늘 와이리 노래를 잘합니까? 내 감동 먹었다 아이가.”

두산은 과장되게 말하며 수일의 어깨를 안았다.

“그러지 마요. 꼭 놀리는 거 같잖아요.”

“에헤이, 비싼 밥 묵고 내가 머할라꼬 공갈을 칩니까?”

두산은 정색을 하며 수일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 상태로 대기실을 들어가자 한 시간 전에 무대가 끝난 은아 씨가 아직도 안 가고 앉아 있었다. 수일은 두산의 팔을 슬쩍 밀어냈다.

“두산아, 내 할 말이 있다. 수일이 니는 잠깐 자리 좀 비키도.”

“무슨 말?”

두산은 귀찮은 표정을 하고 귀를 후볐다.

그러다 수일을 내보내는 게 영 마뜩잖은지 우리가 나가입시다, 했다.

“머할라꼬? 한 사람이 나가는 기 맞다 아이가. 수일아, 자리 좀 비키도.”

“누님. 수일이 행님 이제 막 무대 끝났다. 물도 쫌 마시고 쉬어야지. 우리가 나가자.”

두산은 단호했고, 아쉬운 은아 씨가 두산을 따라 나갔다.

수일은 곧장 무대복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웠다. 화장 때문에 건강해 보이던 얼굴은 창백하고 초라해 보였다. 수일은 옅은 한숨을 쉬며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화장을 지웠다.

거울 속에서 송이가 대기실로 고개를 빼꼼 들이미는 게 보였다.

“오빠. 혹시 백두산 오빠, 그분 어디 있는지 아세요?”

“방금까지 여기 있긴 했는데. 잠시 얘기하러 나갔어요.”

“그래요? 그럼 저 여기서 기다려도 되죠?”

“네.”

송이는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와 수일의 옆에 앉았다.

“아까 은아 언니랑 둘만 있었는데 너무 무서운 거 있죠? 그렇게 사나운 여잔 첨 봤어요.”

송이는 은아 씨 얘기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안 봐도 어떻게 했을지 상상이 갔지만, 솔직히 은아 씨가 피해자였다.

송이는 수일이 화장을 닦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오빠가 그렇게 크다면서요?”

수일은 흠칫했다.

그제야 새 식구만 오면 사장이 빨라고 시킨다는 두산의 말이 떠올랐다.

“난 큰 것도 좋지만, 오빠처럼 잘생긴 남자랑 하고 싶어요. 두산이 오빤 오빠처럼 잘생기진 않았죠?”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며 송이는 수일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너무 어려 여자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수일은 벌떡 일어나 짐짓 딴청을 부렸다.

“오빠는 진짜 여자 안 좋아하나 봐요.”

뭐가 재밌는지 송이는 소리 내 웃었다.

잠시 후, 두산과 은아 씨가 함께 대기실로 들어섰다.

은아 씨는 송이를 못 본 척했지만, 송이는 그래도 무서운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수일의 뒤에 붙어 서서 두산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빠. 저는 한송이라고 해요. 사장님이 오빠 불러오래요.”

“와?”

“다 알고 계실 거라고 하던데.”

두산의 사나운 얼굴을 보고 겁을 먹은 송이가 말꼬리를 흐렸다. 은아 씨가 헛웃음을 웃었다.

“가 바라. 저 가시나가 니 좆 빨아줄 낀가 보네.”

대놓고 이렇게 말한 은아 씨는 팟 소리가 나도록 가방을 챙겨 들고 대기실을 나갔다.

두산은 인상을 구겼다.

씨발, 하고 욕을 뱉더니 수일의 뒤에 선 송이를 잡아 대기실 밖으로 밀어냈다.

“행님, 내 잠깐 갔다 오께. 어데 가지 말고 여서 기다리세요.”

서둘러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두산의 뒷모습을 보자 조금 안쓰러웠다. 아무리 사장에게 대들어도 이건 거절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일이 틀렸다.

한참 후에 돌아온 두산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송이의 펠라티오가 마음에 들었나 보았다. 좀 전까지 두산을 안쓰러워했던 게 민망할 지경이었다.

수일은 제 바보 같은 오지랖에 한숨이 났다. 왜 이렇게 사람을 볼 줄 모르나 싶었다.

“행님, 한송인지 두송인지 하는 가시나요, 장난 아이다. 살살 웃어가면서 억수로 잘 빨대. 내 웃으면서 빠는 아는 또 처음이다.”

수일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을 하다가 급히 안 해도 될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 진짜로 안 할라꼬 했는데, 행님이 입이 터지삐서 내 꺼 못 빨아준다 아입니까. 참으면 병 된다케서 억찌로 했다. 억찌로.”

전혀 억지로 한 것 같지 않았지만, 수일은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참, 마스터 행님이랑 송이랑 술 한잔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입시다.”

“전 그냥 집에 가서 쉴게요.”

“딱 한 잔만 하고 가자. 새 아가씨도 왔는데 행님이 빠지면 서운타 아이가.”

마지못해 수일은 두산을 따라 마스터와 송이를 만나러 갔다.

마지막 무대를 마친 마스터는 화장을 지우지도 않고 무대복을 입은 채 가게로 들어왔다. 송이가 마스터 뒤를 따랐다.

두산의 눈은 송이의 가슴에 머물렀고 마스터는 그게 못마땅한지 헛기침만 했다. 눈치를 안 보는 두산은 마스터가 그러든가 말든가 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술이 들어가자 송이는 자기 얘기를 술술 했다. 이천 출신의 송이는 섹스가 좋아 제 발로 업소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했다. 그때가 열일곱이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부산 남자를 만났고 부산에 오면 공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선뜻 자리를 옮겼다.

“송이야, 이 오빠야가 공주 대접이 아이라 공주 시키주께.”

오빠가 아니라 아빠뻘인 마스터는 말끝마다 오빠라는 말을 썼다.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송이를 보면서 짧은 스커트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리허설 때만 해도 마스터와 과감한 애정 행각을 벌였던 송이는 마스터의 손을 쳐 내고 두산을 향해 미소 지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지만 수일은 이쪽이 훨씬 보기 편했다.

둘 다 어리고 둘 다 건강했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당연히 이상한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마스터는 미간을 잔뜩 구기며 술을 들이켰다. 송이를 향한 마스터의 욕정은 질투심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수일을 옆에 두고 두산은 송이와 마주 보고 앉아 눈빛을 교환했다. 술을 마시면 송이가 두산의 입에 안주를 넣어 주었다. 연상이 좋다던 두산은 20년이 아니라 하루 만에 자기 또래 여자에게 눈을 돌렸다.

서운할 만도 한데 아무렇지 않았다.

두산이 의도했든 아니든 여관방에서의 일로 수일은 깨달은 게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절실히 느꼈고 감히 제 주제에 인간적인 대접이라도 받는 게 어디냐며 작은 일에도 감지덕지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자 마음이 편해졌다.

수일은 기분이 상한 마스터를 달래 주며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기분 상한 것은 마스터 건만 수일이 더 많이 마셨다. 오늘따라 술이 물처럼 들어갔다.

두산이 무슨 말을 했는지 송이가 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크게 웃었다. 송이의 웃음에 꾹 참고 있던 마스터가 드디어 폭발했다.

“어머, 깜짝이야. 오빠 갑자기 왜 그러세요?”

송이를 향해 마스터가 손을 올렸다. 당장이라도 때릴 듯 분노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수일은 흐린 눈으로 그 광경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마스터는 참 못난 남자였다.

말릴 줄 알았던 두산도 수일처럼 가만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마스터는 결국 손을 내렸고 두산은 술자리의 끝을 알렸다.

“행님, 시마이 하입시다. 여는 내가 계산하께예.”

두산은 술이 남은 소주잔을 비우고 수일의 팔을 잡아 밖으로 끌었다. 팔을 쥔 손이 아팠다. 수일은 두산을 쳐 냈다.

“송이 씨 저대로 두고 가려구요?”

술에 취해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두고 가지. 와요? 관심 있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두산 씨가 있잖아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수일은 뱉었다. 술의 힘이었다.

두산이 헛웃음을 웃었다.

“가자, 니 마이 취했다.”

“안 취했어요.”

“가자.”

두산이 수일을 잡으려 팔을 뻗었고 수일은 그게 싫어 몸을 틀었다. 그러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가지가지 한다.”

두산은 한심하다는 투로 이렇게 말하고 수일의 겨드랑이를 잡아 한 번에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수일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취하긴 취한 모양이었다.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저렇게 두고 갈 거면서 왜 관심 있는 척 굴었니? 나쁜 새끼.”

수일이 앉은 채로 구시렁댔다.

두산은 허리에 손을 짚고 서서 수일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내가 저 가시나 쳐다보는 기 그래 기분 나빴나??”

“그래, 개새끼야…. 아니, 아닌데. 욕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기분 안 나빴는데….”

수일은 횡설수설했다.

두산이 웃었다.

“침이나 쫌 닦고 말해라. 우째 침을 질질 흘리쌌노.”

두산은 몸을 숙여 수일의 턱에 흐르는 침을 손등으로 쓱 닦아 주었다. 그리고 수일을 안아 세우고 등을 돌려 업었다.

얼굴에 닿은 두산의 등이 뜨거웠다.

수일은 자기를 업고 걷는 두산의 목을 세게 끌어안았다.

두산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키득거리며 걸었다. 두산이 웃을 때마다 얼굴에 닿은 등이 들썩였다. 수일은 그럴 때마다 두산의 목을 더 세게 안았다.

목이 졸리는데도 두산은 불평 한마디 안 했다.

두산은 그렇게 수일을 업고 30분도 넘게 걸리는 숙소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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