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81)

전화벨 소리가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짜증이 날 무렵 덩치 중 하나가 겨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예! 예! 아입니다. 다 일나 있습니다. 회식이요? 예. 예. 예~에. 드가십시오.”

“누고?”

“사장님. 나이트에서 회식하잔다.”

“그래? 회식 좋지.”

“몇 시?”

“3시부터.”

“어제 오늘 먹을 복이 터짔네.”

거실에서 덩치들과 밴드 사이에 뒤엉켜 잠이 들었던 수일은 동생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뒤척였다. 수일의 옆에는 키보드 담당 김웅이 누워 있었다.

요도 깔지 않고 딱딱한 바닥에 자서 허리도 아프고 몸도 차가웠다.

수일은 끙 소리를 내고 일어나 앉았다. 삼겹살 기름으로 거실은 미끄러웠고, 머리며 옷에 밴 냄새는 역겨웠다.

시계는 1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는 수일도 덩치들도 피곤한 하루였다. 그 피로를 삼겹살과 술로 때웠으니, 오죽 취했을까? 두산이 은영과 방으로 들어간 걸 마지막으로 기억이 끊겼다.

마지막에 누군가가 소리 내 운 것 같았는데, 그게 덩치 중 하나인지 아니면 밴드였는지 몰랐다.

수일은 소변을 보러 욕실로 갔다가, 토사물로 엉망인 것을 보고 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무도 문단속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2층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오는데, 현관에서 인기척이 났다.

두산은 어디서 씻고 왔는지 멀끔했다. 오른손엔 검은색 일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방에서 자고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았다.

까치집을 한 떡 진 머리에 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던 수일은 괜히 민망해 손을 들어 머리를 정돈했다.

“행님, 해장해야지예.”

평소의 두산이었다.

웃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화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뭔가가 달랐다. 두산이 풍기는 기운이 묘하게 수일을 불안하게 했다.

“뭐 물랍니까?”

“국물 있는 거면 다 괜찮아요. 돼지국밥만 빼고.”

수일은 돼지국밥 얘기를 할 때 말끝을 흐렸다.

“가입시다. 참, 갈아입을 옷 챙기세요. 밥 묵고 목욕해야지.”

“네.”

수일은 1층으로 가 갈아입을 속옷과 옷가지를 비닐봉지에 넣었다.

방바닥엔 어젯밤의 흔적인, 두산이 쓴 걸로 보이는 콘돔이 있었다. 묶어서 버릴 것이지 대충 던져 놓은 바람에 정액이 바닥으로 흘렀다.

그래도 콘돔은 쓰네.

수일은 이렇게 생각하고 두산을 따라나섰다.

두산은 수일을 데리고 골목골목을 돌아 시장통으로 향했다.

쇼윈도에 비친 모습은 비렁뱅이가 따로 없었다. 동네 백수도 수일보다 깨끗할 거였다. 수일은 까치집을 한 떡 진 머리를 연신 손으로 만졌다.

“그만하이소. 그란다꼬 될 머리가 아이다.”

두산이 나란히 걷다가 부산스러운 수일에게 한마디 했다. 수일은 얌전히 손을 내리고 조금 뒤에서 걸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볐다. 건조한 얼굴에 기름이 돌았다. 수일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 눈곱을 떼고 눈을 비볐다.

“사장님, 여기 물국수 두 개, 비빔국수 하나, 만두 한 개.”

습관처럼 자리에 앉기도 전에 두산은 음식을 주문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수일은 제 뒤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평소라면 수일에게 핀잔을 주고도 남았을 두산이 오늘은 말없이 보기만 했다.

수일은 두산의 눈치를 살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어색했다.

아까 느꼈던 미묘한 불안감이 다시 수일을 엄습해 왔다.

술이 덜 깨서 그런가?

수일은 애써 괜찮은 척하며 물을 마시고 멍하니 TV를 보았다.

얼마 되지 않아 여사장이 주문한 음식들을 내왔다.

물국수는 두산과 수일이 앞에다 하나씩 놓고, 나머진 가운데 올렸다. 그전까지 입맛도 없었는데 음식을 보자 허기가 졌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수일은 또 먼저 젓가락을 들고 고개를 처박고 국수를 먹었다. 늘 그렇듯 두산은 먹는 수일을 보다가 느긋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국물을 몇 번 들이켜자 속이 풀렸다. 수일은 그때부터 만두도 집어 먹고 비빔국수도 한 입 먹고 했다.

항상 수일이 먼저 먹기 시작하지만, 빨리 다 먹는 건 두산이었다. 자기처럼 급하게 먹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 보면 그릇이 항상 비어 있었다.

“밥 묵고 여관 잡아 줄 테니까 거서 씻으세요. 목욕탕은 쫌 글타 아이가.”

계산하던 두산이 수일을 돌아보고 말했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낮에 두산이 남긴 자국이 오늘 없어질 리 없었다.

두산은 국수 가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여관으로 향했다.

수일이 따라오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두산은 3시간 비용을 낸 뒤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여관 주인이 수일을 흘끔 보더니, 돈을 받던 작은 쪽문을 닫았다.

여관방은 낡은 것 치곤 깨끗했다. 샤워기에 변기만 딸랑 있는 욕실도 나쁘지 않았다.

“씻고 오이소. 내는 여 있으께.”

두산은 TV를 켰다. 수일은 두산의 등을 잠깐 보다가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머리를 감으니 살 것 같았다. 가슴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젖꼭지야 따갑긴 해도 어두운색이라 티도 안 났고, 유륜 주위의 흰 살만 조금 붉었다. 마치 모기에 물려 손으로 벅벅 긁은 듯도 보였다.

몸에 난 자국을 더듬자, 어제 일이 떠올랐다.

뜨거운 봉고 안에서 두산에게 느꼈던 그 친밀감과 성적 긴장감이 오롯이 기억나자, 몸에 열이 올랐다. 이러다 발기라도 할까 걱정되어 수일은 찬물로 몸을 식혔다.

다 씻고 나오니 방이 어두웠다.

들어올 때 열려 있던 노란색의 여관방 커튼이 쳐져 있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두산이 검은 일수 가방에서 테이프를 하나 꺼냈다.

“뽀르노.”

특유의 씨익 웃음을 웃을 줄 알았으나 두산은 무표정했다.

TV와 연결된 비디오테크에 테이프를 넣자, 선명한 화질의 포르노 회사 로고가 떴다.

수일은 두산의 옆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시작은 SM이었다. 여자는 훌러덩 벗은 채로 온갖 성기구로 고문하듯 그곳을 헤집는 남자들에게 연신 혀 짧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 묶이고, 들리고, 오줌을 쌌다.

수일은 눈을 감았다.

“행님, 호스트바에서 일했다면서예?”

두산의 물음에 수일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몰랐다. 삼락 형님도 모르는 일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고, 당시 나이트에서 함께 일하던 몇 명만 알고 있었다.

“저런 거 안 해 봤습니까? 가시나들 중에도 저런 거 좋아하는 아들 많다카든데.”

두산은 수일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수일은 그제야 자신이 느낀 불안의 정체를 알았다.

거리감이었다.

지금 자기 옆에 앉아서 호스트바 일을 묻는 두산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마치 모르는 사람 같았다.

수일은 그때 일을 물어서 기분이 상한 게 아니라, 두산이 자기에게 거리를 두는 게 서운했다. 어제 두산이 다쳤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런 수일의 마음은 몰라주고 이러는 게 너무 서운했다.

왜 이렇게 차갑게 구는지 이유라도 알면 좋겠다고, 수일은 생각했다.

“와 대답이 없습니까?”

두산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제가 받은 손님 중엔 없었어요.”

수일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더 이상한 걸 물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두산은 거기서 멈췄다. 수일은 한숨을 쉬고 TV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속 여자는 한 번에 두 남자의 성기를 입에 넣었다.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 수일은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수일이 그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두산의 손이 무릎과 얼굴 사이로 들어왔다. 그리고 수일의 턱을 굽힌 검지로 탁탁 소리가 나도록 쳐올렸다.

“안 보고 머하노?”

두산의 손짓에 기분 나빠야 하건만, 수일은 바보같이 서운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아 입술을 말아 물고 얼굴을 찡그렸다. 수일은 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자가 묶인 채로 남자 셋에게 강간당하듯 섹스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고문 같던 섹스 장면이 끝나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이번엔 다른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산이나 정수가 말한 게 이거인 모양이었다.

얼굴이 소녀같이 예쁜 마른 여자는 가슴이 컸다. 음모가 무성한 그곳을 카메라를 향해 벌리고 앉은 여자는 손가락으로 자위를 했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여자의 성기와 손가락을 훑었다.

두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화면 속 예쁜 여자가 신음을 흘리는 동안에도 목석같이 앉아 있었다.

화면에선 남자가 여자의 성기를 혀로 핥다가 입술을 묻었다. 여자는 쌀 것 같다고 일본어로 징징댔고, 그곳을 핥는 젖은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 남자가 이제 손가락을 넣고 그곳을 쳐올리자, 여자가 허리를 활처럼 휘며 물을 쏟아 냈다.

동시에, 두산은 수일을 뒤로 밀어 눕히고 몸에 올라탔다. 그리고 무릎으로 기어 수일의 얼굴 앞까지 오더니, 청바지 지퍼를 내렸다.

체중을 조금 실어 가슴에 내려앉는 통에 수일은 숨이 막혔다.

수일을 내려다보는 눈이 차가웠다.

두산은 바로 성기를 잡고 수일의 입으로 들이밀었지만, 수일은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입 벌리라.”

두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입을 다물고 있자, 가슴 위에 앉은 몸이 점점 체중을 실어 왔다. 마치 수일의 뼈를 으스러트리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제야 무서워진 수일은 고개를 조금 들고 두산의 자지를 삼켰다.

잠깐 수일을 내려 보던 두산은 시선을 TV 쪽으로 돌렸다. TV에선 예쁜 여자가 남자의 검붉은 성기를 잡고 뿌리부터 대가리까지 혀로 핥고 있었다.

수일은 저 여자의 대타인가 보았다.

두산은 어제처럼 강제로 밀어 넣지 않고 수일이 하는 대로 두었지만, 절대 수일을 보지 않았다.

점차 두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자신을 보지 않고 TV 속 여자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두산을 보자, 수일은 비참해졌다. 여관방 장판 위에 누워 턱이 아리도록 두산의 자지를 빨아 봤자 포르노 배우보다 못한 존재였다. 그저 같은 남자 좆이나 빠는 한심한 새끼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흘렀다.

수일은 울면서 두산의 것을 부지런히 빨았다.

속으로 네 존재가 이 정도로 하찮은 걸 이제야 알았냐고, 누군가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바란 자기를 탓했다.

병신. 쪼다. 빌어먹을 새끼.

이 나이 먹도록 이 짓이나 하면서 밥 벌어먹는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수일이 우는 걸 알면서도 두산은 절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제 위에서 한참을 신음하던 두산이 사정하자 수일은 고개를 돌려 성기를 뱉어 냈다. 정액도 같이 딸려 나왔다. 이번엔 삼키는 대신, 조금 고개를 돌려 침을 뱉듯 방바닥에 쏟아 내고 급히 눈물을 닦았다.

두산이 숨을 헐떡이며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벌이다.”

낮고 엄한 목소리로 두산이 말했다.

수일은 무슨 말인지 몰라,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자꾸 흘렀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꼴랑 좆 몇 번 빨아 줬다고, 그새 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벌이라꼬. 니 어제 은영이 그 씨발년 보고 웃었다 아이가. 와? 그년 보이 꼴리드나? 보지가 빨고 싶어 미치겠드나?”

수일은 그제야 어제 일이 떠올랐다.

은영을 보고 웃은 것과 두산이 화가 났던 일이.

“내 지금 억수로 참고 있다. 니 목구멍에 박아삘라다가 참았다. 알겠나?”

눈물을 닦으며, 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싫어서 이렇게 한 건 아니구나.

수일은 바보같이 안도했다.

두산은 애초부터 여기 올 생각으로 수일을 불렀나 보았다. 수일에게 밥을 먹이고, 목욕을 빙자해 여관방으로 데려와 포르노를 트는 것까지. 어디까지 할 요량으로 왔는지는 몰랐다. 다만, 수일의 몸에 온 체중을 싣지 않은 것도, 목구멍에 박아 넣지 않은 것도 두산의 배려였다.

씨발, 하고 욕을 뱉은 두산은 수일에게서 몸을 일으키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집었다. 손에 돌돌 말아 수일에게 던져 주고, 제 성기를 닦았다. 수일은 화장지로 입과 턱을 닦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 방바닥에 뱉어 낸 두산의 정액도 닦았다.

두산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수일의 발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얼굴이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두산은 수일의 앙상한 맨발을 엄지로 살살 쓰다듬으며, 인상을 썼다.

“니 때메 환장하겠다.”

한숨 같은 말을 뱉고, 두산은 잡았던 수일의 발목을 놓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에 쳐진 커튼을 젖히고 그만 가입시다, 했다. 수일은 어제 입은 옷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그새 방을 나간 두산의 뒤를 따랐다.

숙소 가는 길에 두산이 슈퍼에서 멜론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수일에게 안겼다. 뱉어 내긴 했지만, 입 안에 남아 있는 끈적한 정액이 역했던 수일은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창피한 것도 잊고 열심히 먹었다. 두산이 그런 수일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행님은 우째 그래 잘 우노?”

두산은 검지로 수일의 빨간 콧등을 툭 치더니, 앞서 걸었다.

“두산 씨.”

수일은 두산을 불렀다.

두산이 돌아보았다.

“…같이 가요.”

수일의 말에 두산이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을 보자,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일은 두산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

회식이라고 나이트 홀 안의 불이 모두 켜져 있었다. 테이블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이 가득했고 맥주와 소주, 음료수 등이 세팅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잡채와 갖은 반찬들이 먹음직스럽게 윤기를 내고 있었다.

덩치들도 댄서들도 모두 입이 쩍 벌어졌다.

사장은 직원들의 반응에 별거 아니라는 듯 애써 표정 관리를 했지만, 좋아하는 게 다 보였다.

그러다 수일과 함께 있던 두산을 보더니, 사장은 두산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야이 새끼야, 니 태욱이 얼굴을 그리 묵사발로 만들면 우짜노?”

“아야야! 그기 내 잘못입니까? 그 새끼가 자꾸 덤비니까 그라지.”

두산은 인상을 찌푸리고, 손을 등 뒤로 올려 맞은 데를 긁적였다.

“일을 몬 한다 아이가, 일을.”

“남아도는 기 사내새끼들인데 아무나 보내면 되지.”

“이 자슥이! 니 다시는 건드리지 마라. 알겠나?”

“그 새끼 하는 거 보고.”

죽어도 안 그런단 소릴 안 하는 두산을 사장은 입술을 실룩이며 노려보았다.

그러다 옆에 수일을 보고 한마디 했다.

“수일이 니는 지낼 만하나?”

“네. 덕분에.”

“그래, 마이 무라.”

이렇게만 말하고, 사장은 수일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니 옷이 그거밖에 읍나?”

“네?”

“옷 말이다.”

수일은 고개를 숙여 제 옷차림을 보았다.

칼라가 달린 줄무늬 티셔츠에 황토색 면바지였다.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생각한 수일은 조금 의아한 눈을 하고 사장을 보았다.

“두산아, 니 수일이 입을 야시꾸리한 옷 쫌 사다 주라. 저거를 보고 누가 나이트 가수라 카겠노. 어데 시장통 장사꾼도 아이고.”

사장은 정말 마음에 안 찬다는 듯, 미간을 잔뜩 구겼다. 자리를 옮기는 와중에도 수일을 훑어보던 사장은 댄서들과 밴드들에게도 한마디씩 잔소리를 했다. 특히 여자들은 가슴까지 쥐어 가며 야단을 쳤다.

그렇게 테이블마다 말을 걸던 사장은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오성관 나이트 식구 여러분, 사장 박정배 인사 올립니다.”

사장의 인사에 덩치들이 홀이 떠나가라 환호를 올렸다.

“우리 나이트가 문을 연 지 삼 개월이 다 돼 갑니다.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손 봐야 할 것도 많지만은, 여러분들 덕에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뒤끝이 없는 남자 아입니까. 쓴소리를 들어도 너무 가심에 담아 두지 마시고 내가 뭘 하면 사장님이 좋아하실까, 손님들이 좋아하실까, 그런 생각을 해 주십시오. 그래야 우리 나이트가 발전 하는 기 아니겠습니까. 그라믄 연설은 이만하고, 차린 거는 없지마는 마이 드십시오.”

사장이 90도로 인사를 하자, 다들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수일도 열심히 박수를 쳤다.

사장의 테이블은 홀 정 가운데에 있었다. 여자 댄서들은 모두 사장 테이블에 앉았고 수일은 두산과 현철, 지배인과 마스터 이렇게 넷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삼락 형님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삼락이 형님은 어디 가셨어요?”

“그 행님 해운댄가 어데 호텔 잡아서 놀고 있다 아이가. 돈 많은 아지매 하나 꼬싰는데, 그 아지매가 그 머꼬, 섹스중독 머 그거 맨키로 삼락이 행님 자지를 잡고 안 놔준다 카드라.”

“삼락이 행님도 비위 좋다. 내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지매는 꼴리도 안 하던데. 여자는 어릴수록 좋은 기라. 스무 살이 제일로 좋다 아이가.”

부러운 표정을 하는 지배인에게 마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야 마스타 행님, 이제 보이 양심도 없네. 행님 첫째 딸래미가 스물두 살 아이가? 우째 지 자식보다 어린 가시나랑 하고 싶은 생각이 드노?”

두산이 한 소리를 하자 마스터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사이 니도 나이 들어 바라. 내 말이 무신 말인지 잘 알게 될 끼다.”

“택도 없다. 행님아, 내는 내보다 나이 많은 가시나가 좋다.”

이 말을 하며, 두산은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수일의 허벅지를 쥐었다.

“새끼야, 20년 뒤에도 니 입에서 그 소리 나오나 함 보자.”

마스터가 이를 갈며 두산을 노려보았다.

수일은 제 허벅지를 쥐고 허튼소리를 하는 두산이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했다. 20년이 아니라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제 또래 여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터였다.

수일에겐 없는 가정을, 두산은 누구보다 빨리 만들 것 같았다.

“두산아, 일로 쫌 온나.”

사장이 손짓을 하며 두산을 불렀다.

“행님, 내 쫌 갔다 오께. 잘 챙기 묵고 계세요.”

두산은 수일에게 이렇게 알리고 자리를 떴다.

수일은 두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수육을 집어 먹었다. 사장 테이블에 불려 간 두산은 술을 받고 고기를 먹었다. 댄서들이 돌아가며 사장과 두산에게 쌈을 싸서 먹이고 술을 따랐다.

수일은 그쪽 테이블이 신경 쓰였다. 은영이 두산의 옆에 붙어 앉아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다가, 혹여 두산이 어제처럼 오해라도 할까 싶어 수일은 제 접시에 코를 박았다.

“수일이 니는 여자 없나?”

“네? …네.”

“와? 안 서나, 아이믄 태욱이처럼 그짝이가?”

“그쪽은 아니고….”

“그란데 와 없노? 니보다 몬생긴 나도 가시나들 잘만 꼬시는데. 얼굴이 아깝다.”

마스터는 수일이 애인이 없는 걸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안 외롭나? 여 가시나 중에 맘에 드는 아 있으믄 내가 연결시키 주께. 말만 해라.”

“괜찮아요.”

“행님은. 쟈가 말이 없다 아입니까. 저래 벙어리 맨키로 말이 없는데 누가 좋다 카노?”

지배인의 말에 수일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마스터는 수일의 이상형을 꼬치꼬치 캐물었고, 수일은 그저 네, 아니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뭐가 좋다고 마스터는 계속 수일에게 말을 걸었다.

부산에 내려오고 5일 내내 포식만 하는 수일은 그럴 수만 있다면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외롭지도 않았고, 먹을 걱정 돈 걱정 안 해서 좋았다. 게다가 사람들도 다들 좋았다.

수일은 홀 안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행복이지만, 제 인생에 앞으로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었다. 두고두고 이날을, 이곳에서의 생활을 가슴에 담아 두고 싶었다.

회식이 무르익어 가자, 사장은 자기 테이블에 앉아 시중을 들던 여자들을 모두 무대로 올렸다. 댄서들뿐 아니라 여종업원들과 애가 둘 있는 은아 씨까지 무대로 올라갔다.

수일은 무슨 일인지 몰라 두산을 돌아보았다. 수일을 보고 있었던지 두산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두산은 씨익 웃고는 눈을 찡긋해 보였다.

“여 누구 빨통이 제일 큰지 함 보자. 다들 벗어 바라.”

사장이 고함을 치듯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여자들은 똥 씹은 표정이었고, 무대 밑 남자들은 난리가 났다.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환호를 올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춤까지 췄다.

여기서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수일밖에 없었다. 수일은 다시 두산을 돌아보았고, 이번엔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사장의 눈이 번뜩였다.

두산에게 귓속말을 하던 사장은 수일에게 그 테이블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수일은 엉거주춤 일어나 사장이 있는 테이블로 갔다. 사장은 두산과 자기 사이에 수일을 앉혔다.

“빨리 안 벗고 머하노? 1등 한 가시나는 10만 원, 2등은 7만 원 3등은 5만 원. 안 벗을라믄 내한테 100만 원 도.”

단호한 사장의 요구에 남자들은 어서 벗으라고 난리를 쳤다. 벗어라, 벗어라, 구호라도 되는 양 입을 맞췄다.

수육 기름에 번들거리는 입술을 한 사장은 수일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니 오늘 일등 한 가시나 젖가슴 빨게 해 주께. 특별히 니한테만 주는 선물이다.”

“아, 아뇨, 사장님… 저는 정말, 아니….”

사장의 말에 당황한 수일은 손을 저어 가며 아니라고 했다.

사장은 소름 끼칠 정도로 매서운 눈을 하고 수일을 노려보았다. 수일은 죄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도, 참. 우리 수일이 행님이 좀 순진하다 아입니까. 행님, 너무 겁먹지 마세요. 내도 같이 빨낍니다.”

두산의 큰 손이 수일의 등을 쓰다듬었다.

수일은 두산도 사장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이 절망스러웠다.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수일은 좌절했다. 이 바닥의 생태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또 바보같이 희망을 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조차 맘에 안 들었는지, 사장이 욕을 했다.

“이 개새끼가, 어데서 고개를 숙이고 있노? 고개 안 처드나?”

사장의 욕에 두산이 인상을 썼다.

“사장님, 그라지 마세요.”

“백두사이, 니가 먼데 나서노? 가마 있어라.”

“가만 있다 아입니까. 수일이 행님한테 그라지 마시라꼬요.”

“니 지금 누구 편드노?”

“편을 드는 게 아이고, 하지 말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두산은 지지 않고 사장에게 말대꾸를 했다.

“야 이 새끼야, 서울물은 위아래도 읍나? 고개 쳐들어라.”

두산이 하지 말라는 데도 사장은 수일에게 욕을 했다.

사장은 수일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 이토록 잔인하게 구는 걸까?

홀이 소란스러워졌다. 수일에게 꽂혔던 사장의 사나운 시선이 소음과 함께 사라졌다.

서른아홉의 아이가 둘 있는 은아 씨가 먼저 브래지어를 무대 밖으로 벗어 던졌다. 스트립쇼라도 보는 양 테이블에 앉았던 남자들이 그걸 받겠다고 무대 밑까지 뛰어갔다. 은아 씨의 브래지어를 받은 덩치가 그걸 머리에 쓰고 냄새를 맡았다.

그렇게 은아 씨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가슴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눈을 감았다.

순간, 사장의 손이 날아와 사정없이 수일의 뺨을 갈겼다.

두산은 갑자기 날아든 사장의 손에 큰소리로 이 씨발 새끼가,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사장을 죽일 듯 내려다보았다.

무대도 홀 안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두산이 맥주병을 쥔 것도 그때였다. 당장이라도 내려칠 듯 어깨까지 맥주병을 들어 올린 두산을 현철과 동생들이 달려와 말렸다.

한두 명으로는 도무지 말릴 수 없어서, 여섯 일곱이 동시에 두산을 붙잡고 끌고 가듯 빈 테이블로 데려갔다. 몇 번이고 두산이 사장에게 달려들려는 걸, 덩치들이 겹겹이 에워싸서 겨우 말렸다.

참아라, 참으세요, 두산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자들은 주섬주섬 제 브래지어를 찾아 입고 벗었던 상의도 도로 걸쳤다.

“저 새끼, 성격 바라. 수일이 뺨 좀 때맀다꼬 맥주병을 처 들어싸코. 아이고 무서버라.”

사장은 장난스럽게 반응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겼다. 눈치가 있는 덩치들이 부러 큰 소리로 웃고, 누구 가슴이 제일 크네 작네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아무도 사장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두산에게 야단을 치지도 않았다.

“수일이 니 마이 아프나? 자 내 술 한잔 받아라. 미안타.”

수일은 너무 놀라 맞은 뺨이 아픈 줄도 몰랐다.

입을 벌리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던 수일에게 사장은 맥주잔을 내밀었다.

“안 받고 머하노?”

사장이 이를 악물고 다그쳤다.

그제야 정신이 든 수일은 머리를 조아리며 잔을 받았고, 다들 보는 앞에서 한숨에 다 들이켰다. 그러자 박수가 터졌다.

뭘 했다고, 홀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 시끌벅적해졌다.

동생들에게 떠밀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산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곁을 지키고 섰던 덩치들이 슬슬 두산을 말릴 준비를 했다. 두산은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으로 알리고, 성큼성큼 사장의 테이블로 걸어와 수일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사장한테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사장님, 한 번만 더 야한테 손 올리면 내 진짜 가만 안 있습니다.”

“알았다. 내 미안타꼬 사과도 했다 아이가. 그쟈, 수일아?”

수일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 수일이도 사과받았다 안 카나?”

“그래도 사장님요, 야한테는 손 올리지 마소.”

“에헤이, 알았다카이. 그만 화 풀고 니도 앉아라.”

사장은 두산의 팔을 잡아당기며 억수로 미안타, 했다.

당장이라도 수일을 끌고 나갈 것 같았던 두산은 사장의 간청에 수일의 옆에 털썩 앉았다. 사장이 따라 주는 술을 받고 자기도 사장에게 술을 따랐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둘은 다시 희희낙락하며 술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들 사이에 낀 수일은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맞아서 터진 입 안에서 피가 났다. 뺨이 얼얼했고 머리가 울렸다. 수일은 피를 뱉지도 못하고, 소주와 맥주로 따가운 입 안을 헹구듯 술을 마셨다.

두산은 사장과 얘기하는 와중에 수일의 상태를 확인했다.

“개안습니까?”

“네.”

“내 쫌 보자.”

“괜찮아요.”

괜찮다는 수일의 얼굴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보던 두산이 씨발, 하고 다시 사장을 노려보았다.

“야 얼굴 다 터짔다 아입니까?”

“미안타, 내가 손버릇이 쫌 나쁘다 아이가.”

“씨발, 사장님요, 야한테 다시는 손대지 마소.”

“아이고, 알았다. 알았다꼬 내가 몇 번을 말하노. 으이?”

사장은 두산에게 절절맸고, 두산은 맥주잔에 소주를 콸콸 붓더니 물을 마시듯 들이켰다. 사장은 두산의 옆으로 여자들을 불러 앉혔다.

“행님은 저짝으로 가 계세요.”

두산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수일을 마스터와 현철이 있는 테이블로 돌려보냈다.

시키는 대로 원래 테이블로 돌아와 앉은 수일은 마스터가 내미는 술잔을 받았다. 잔을 받은 손이 덜덜 떨렸다.

수일은 자기가 누구와 얽히고 있는 건지, 덜컥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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