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81)

수일이 눈을 떴을 땐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어제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거실로 나가자 누군가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했다.

다들 점심을 먹은 뒤였지만 수일이 나가자 막내가 달려왔다.

“행님, 식탁에 밥 차리 났습니다. 국 데파 드리까예?”

“아… 아뇨.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아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행님 시킸다간 두사이 행님한데 저 죽습니다.”

막내는 부엌으로 가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수일은 대충 눈곱만 떼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남자들끼리 있어도 국이며 반찬이며 부족한 것 없이 잘도 해 먹었다. 오늘은 계란국에 오이소박이, 두부조림이었다.

막내가 차려 주는 점심을 먹고 그릇을 치우려고 하자 언제 봤는지 또 막내가 달려왔다. 치우는 것만이라도 했으면 싶은데 손도 댈 수가 없었다. 늦게 일어난 저 때문에 막내는 무슨 고생인가 싶어 미안했다.

내일부턴 시간 맞춰 일어나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두산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수일은 덩치들이 빌려 온 무협지를 같이 보며 시간을 죽였다. 쨍한 하늘에 습도가 높았다.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현철이 두산 대신 수일을 신경 썼다.

“저기 현철 씨, 혹시 근처에 목욕탕 어딨는지 아세요?”

“막내야, 행님 목욕탕 모시다 드리라.”

“알려만 주시면 제가 알아서 갈게요.”

“아입니다. 막내야 머하노?”

하는 수 없이 수일은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 들고 막내를 따라나섰다.

막내 김영수는 올해 19살이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다 소년원에 다녀온 뒤로 운 좋게 나이트에 자리를 잡았다. 오성관에 오기 전에 있던 나이트에선 형님들에게 맞기만 했는데 여긴 그런 게 없어서 좋다 했다. 애인도 있다고 수줍게 말했다.

목욕탕 앞에 수일을 데려다주고 영수는 뛰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목욕비가 1,500원이었다. 1,900원인 대림동에 비해 400원이나 싸서 수일은 괜히 횡재한 기분이었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오랜만에 세신도 받았다. 목욕을 끝내고 바나나 우유를 하나 사 마시고 바로 옆에 있는 이발소에서 이발도 했다.

사장 말이 생각나 너무 짧지 않게 다듬기만 했다.

이발소 주인은 처음 온 수일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손님들도 있는 데서 잘생겼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되풀이했다. 민망했던 수일은 억지웃음을 웃으며 감사합니다, 했다.

그렇게 이발까지 끝내고 기억을 더듬어 숙소로 가는 길을 찾았다.

“목욕했습니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산은 몸에 잘 맞는 흰색의 폴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탄탄하고 잘 그을린 팔뚝과 근육질의 상체에 잘 어울렸다.

“이발도 했는가베. 머리가 쫌 짧다.”

“그래요? 조금만 다듬었는데.”

수일은 그리 짧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아이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긴다 아입니까.”

“네.”

두산은 손에 들고 있던 봉지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냈다.

“무 바씁니까? 내 먹어 본 하드 중에 야가 체고다. 우째 이런 걸 다 만들었으꼬.”

수일은 두산의 손에 들린 초록색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 한 번도 본 적도, 먹어 본 적도 없는 거였다. 색깔은 맘에 안 들었지만, 두산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하드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도 좋았다.

“맛있지예?”

“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일을 가만 보던 두산이 같이 웃으며 자기도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수일은 옷을 갈아입었다. 사장님과 계약하는 날이라 단정한 하늘색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었다.

“행님, 무대복이랑 화장품도 챙기세요. 계약서 쓰고 나면 바로 나이트 갈깁니다. 행님은 오늘 10시 타임이라 카데예. 뺀드 만나서 인사도 하고 리허설도 하고 밥도 묵고.”

“네.”

두산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수일이 무대복과 화장품 챙기는 걸 지켜보았다.

봉고는 나이트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사장이 말한 남포동 사무실인 모양이었다.

사장의 사무실이 있다는 빌딩은 5층짜리 건물로 1층에서 3층까진 가게가 있었다. 1층엔 커피숍이, 2층엔 호프집이, 3층과 4층엔 마사지숍이 있었다.

그리고 사장의 사무실은 5층 501호였다.

이 건물도 사장의 소유라고 했다.

수일은 그저 아, 했다.

사무실엔 미스 리가 한창 사장에게 펠라티오를 해 주고 있었다.

“에헤이, 사장님요! 사람을 불러 노코 그거 하고 있으면 우짭니까?”

두산이 짜증을 내며 수일을 문밖으로 밀어냈다.

“이 가시나가 해 준다꼬 해서. 쫌만 기다리라.”

“내 몬 산다.”

두산은 쾅 소리가 나도록 사무실 문을 닫았다.

“저 양반이 저래 허술하다. 밑에 내리 가서 차나 한잔하고 있을랍니까?”

“아뇨.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맞다. 저 양반 얼마 몬 버틴다.”

두산은 수일을 향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무실 문이 열리며 미스 리가 고개를 까딱했다. 사장은 바지 지퍼를 채우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 넘기며 수일을 맞았다.

“이 양아. 여 계약서 쫌 가꼬 온나.”

미스 리는 말없이 사장의 책상 위에 있던 노란 봉투를 집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껌을 짝짝 소리 나게 씹었다.

사장은 봉투에서 계약서를 꺼내 수일 앞에 내밀었다. 계약서는 형식적인 거였다. 그 누구도 계약서를 읽지 않았다. 수일은 옆에 있는 인주 통을 열어 사장이 가리키는 곳에 지장을 찍었다.

지장을 다 찍고 나자 사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자, 계약금. 들고 댕기다 이자뿌지 말고, 여 근처 은행 가서 입금해라.”

“네. 감사합니다.”

수일은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라고 이거는 용돈. 어제는 미안했데이. 내가 쫌 다핼질이라 가꼬 순간을 몬 참는다. 미안타.”

“아닙니다, 사장님. 이 돈은 안 주셔도.”

“어허. 내 손 부끄럽꼬로. 퍼뜩 받아라.”

사장은 수일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어 10만 원짜리 수표를 쥐여 주었다. 수일은 이 돈이 혹시 펠라티오 값일까 봐 두산을 돌아보았다. 두산은 고개를 저었다.

“니 오늘 첫날이제? 뺀드랑 밥도 쫌 묵고 친하게 지내라. 두사이 니가 회식비 대신 내주고. 알았나?”

“걱정하지 마이소. 어데 첨 해 보나?”

“알았다. 그만들 가 바라.”

수일은 사장에게 90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 밖을 나왔다.

“은행부터 갈랍니까?”

“네.”

“어데 은행입니까?”

“조흥은행이요.”

“여 조흥은행이 어데 있드라….”

생각이 났는지 두산은 수일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남포동은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10대 20대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었다. 수일은 저들의 젊음이 부러웠다.

이런 생각을 하면 늙은 거라더니 정말 자신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았다.

그러다 앞서 걷고 있는 두산과 저들이 또래라는 생각에 갑자기 웃음이 났다.

덩치는 산만 해도 이제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행님, <배트맨> 봤습니까? 7월에 <배트맨2> 개봉하는 갑다.”

두산이 벽에 붙여져 있는 영화 광고를 보고 수일에게 물었다.

“아뇨.”

“억수로 재밌는데. 개봉하면 같이 보러 가입시다. 난중에 비디오방에서 빌리다 주께예. 2편 보기 전에 1편은 보고 가야 안 되겠습니까?”

“…네. 그래요, 그럼.”

단답형의 대답에도 두산은 짜증 내지 않고 여전히 말을 잘 걸어 주고 잘 받아 주었다. 수일은 점점 두산이 참을 만해졌다. 아니면 돈이 생겨 마음이 여유로워졌을 수도 있고.

수일은 은행에 80만 원만 입금하고 20만 원은 봉투에 따로 넣었다. 삼락 형님에게 소개비라도 줘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장한테 받은 10만 원은 숙소 동생들 고기라도 사 줄까 싶었다.

두산은 수일이 돈을 봉투에 나눠 담는 것을 쓱 보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나이트로 바로 갈 줄 알았는데 두산은 수일을 데리고 남포동을 빙빙 돌았다.

오뎅을 사 먹고 호떡도 먹었다. 옷 가게에도 들러 수일이 입기엔 지나치게 화려하고 야해 보이는 셔츠 두 장과 반바지를 사 주었다. 수일은 손목에 쇼핑백을 걸고 두산을 따라다녔다.

두산은 또 골목 골목을 돌다 쇼윈도에 ‘수입 란제리’라고 적힌 속옷 가게가 보이자 성큼 걸어 들어갔다.

“누님, 내 왔다.”

아는 집인 듯 속옷 가게 여주인을 향해 누님이라 불렀다. 여자 속옷만 파는 곳이었고 마네킹에 입혀진 것들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수일은 따라 들어가는 대신 입구에서 기다렸다. 웬일로 두산이 들어오라 강요하지 않아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두산은 10분 정도 그곳에 머물다가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나왔다.

“오래 기다맀지예? 저 누님은 다 좋은데, 말을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모른다.”

두산이 이렇게 말하며 수일의 어깨를 안았다.

“행님, 이따가 밤에 뽀르노 보입시다.”

두산은 대낮 번화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포르노 얘기를 꺼냈다.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지나가는 여자 둘이 돌아보았다.

“씨발년들아, 와?”

두산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돌아본 여자들에게 험한 말을 뱉었고 여자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듯 빨리 걸었다. 그게 재밌는지 두산이 소리 내 웃었다.

수일은 얼굴을 붉혔다. 제가 뱉은 말도 아닌데 괜히 민망하고 여자들에게 미안했다. 어깨에 걸린 두산의 손을 밀어내고 조금 멀찍이 걸었다.

“행님, 갑자기 와 그라는데?”

“…….”

“와요?”

“그, 그러니까, 왜 여자들한테 욕을 해요. 굳이 안 그래도 됐는데.”

수일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처음으로 말대꾸를 했다. 두산은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수일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장난 아입니까. 장난.”

누가 장난을 그런 식으로 하냐고 대꾸하려다 수일은 입을 닫았다. 두산의 표정이 굳었기 때문이었다. 눈빛도 사나워졌다.

수일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 그 자리에 섰다. 두산의 발이 움직이자 바삐 두산을 따랐다. 화가 난 걸 온몸으로 표현하며 성큼성큼 앞서 걷는 두산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종종걸음으로 겨우 두산을 쫓아간 수일은 은색 봉고차가 주차된 곳으로 가자마자 두산에게 팔이 잡혔다. 두산은 패대기치듯 수일을 주차장 벽에 밀어붙였다. 어찌나 세게 밀던지 등이 아팠다. 수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산을 올려다봤다.

차라리 화가 나 있는 게 나았다. 두산은 무표정하고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욱을 때릴 때 그 표정이었다.

수일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제발 얼굴은 때리지 말았으면 했다. 오늘 무대에 서야 하는데 멍이 든 얼굴로 첫 무대에 서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두산은 수일을 때리는 대신 벽을 쿵쿵 두 번 쳤다.

“밤에 함 빨아 주라. 가자.”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뜨거운 숨을 뱉으며 두산이 말했다. 수일을 잡은 팔을 놓고 두산은 봉고로 먼저 들어갔다.

꽉 쥔 주먹이 덜덜 떨렸다. 수일은 천천히 눈을 뜨고 운전석을 돌아보았다. 운전석에 앉아 자신을 보는 두산의 눈은 섬뜩하리만치 차가웠다. 수일이 느낀 건 모멸감이나 수치심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안 오고 뭐 합니까?”

두산의 고함에 수일은 재빨리 차에 올랐다.

라디오에서 다섯 시 정각 뉴스가 흘렀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괜히 그랬다고 수일은 후회했다.

그냥 잘해 줄 때 가만있을걸.

늘 이랬다.

나이트 조폭이나 삐끼들, 밤무대 가수 형님들이 여자들에게 함부로 하면 수일은 참지 못했다. 여자들이 없는 데서야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었지만, 그녀들을 앞에 두고 저런 식으로 욕하는 게 수일은 싫었다.

평소 말이 없던 수일이 꼭 저럴 때만 나서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통에 욕을 먹었다. 따돌림을 당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당장 입에 풀칠할 것도 없어 빌빌대던 새끼가 돈 몇 푼 받았다고 그새 기어올랐다.

수일은 자신을 질책하다 곧 비참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짓씹었지만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수일은 급히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두산이 차를 세웠다.

“내가 빨아달라케서 그랍니까?”

수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라믄, 내가 썽내서 그랍니까?”

수일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연신 눈물을 닦았다. 두산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행님, 와, 내 진짜 억울하다. 핸처리 행님한테 함 물어보이소. 내 진짜로 썽나면 우짜는지.”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표정을 하고 두산은 수일을 보았다. 수일은 두산의 눈치를 살피며 손등과 손바닥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 냈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던 두산은 콘솔 박스에서 티슈를 꺼냈다. ‘팟팟’ 소리가 나도록 두 장을 뽑은 다음 수일의 턱을 잡아 제 쪽으로 얼굴을 당겼다.

수일은 두산이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에헤이, 가만 있으라.”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수일은 어쩔 수 없이 가만있었다.

미안한 기색이라곤 없는 얼굴을 어찌나 가까이 들이밀던지 두산의 뜨거운 숨결이 코끝에 느껴졌다.

두산은 굳이 제 손으로 수일의 눈물과 콧물을 닦고 심지어 코까지 풀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수일의 눈을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행님 참 예쁘게 생깄다. 속눈썹도 우째 이리 기노?”

뱀 같은 눈으로 얼굴을 훑는 것이 싫었지만, 수일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달리 눈 둘 곳도 없어 두산의 어깨에 시선을 두었다.

“이제 개안치요?”

“…….”

“너무 오래 삐끼지 마세요. 내도 사장님처럼 성격 급하다.”

수일이 삐졌다고 단정 짓는 두산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신호 대기가 걸릴 때마다 수일을 보며 웃는 얼굴이 거슬렸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리 웃는 걸까.

수일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이트에 도착하자마자 수일은 물부터 마셨다. 목이 잠겨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두산이 밴드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끌어 주는 동안 수일은 따듯한 물을 마시고 가글을 했다. 아, 에, 이, 오, 우, 하고 목을 풀었다. 방광이 터질 정도로 따뜻한 물이 들어가자 그제야 목이 제대로 돌아왔다.

두산은 수일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 어깨를 주물러 주고 환호를 질렀다.

수일은 밴드 마스터로부터 밴드 멤버를 소개받고 인사를 했다. 수일이 늦게 오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얘기는 저녁 회식 때 하기로 하고 바로 리허설로 들어갔다.

수일은 가수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부터 불렀다.

나중에 있을 무대를 위해선 모창을 해야 했지만, 그냥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젤 앞 테이블에 앉은 두산은 팔짱을 끼고 수일의 노래를 들었다. 수일이 노래하는 동안 시선 한 번 떼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을 꼼짝 않고 앉아 있던 두산은 리허설이 끝나자 예약해 둔 식당으로 모두를 데리고 갔다.

공연도 있고 하니 소주는 각 일 병씩만 하자는 마스터의 말에 정말로 다들 한 병씩만 마셨다. 울어서 까끌까끌한 눈 때문인지, 담배 연기 자욱한 식당에 앉아 있는 것도 수일에겐 고역이었다.

결국, 수일은 몸이 안 좋다고 양해를 구하고 소주 한 잔만 마셨다. 그 한 잔도 두산이 흑기사를 자처하며 러브샷을 강요하는 바람에 두산과 팔을 끼고 마셔야 했다.

흑기사 두산은 수일의 몫까지 두 병을 마셨다.

두산은 뭐에 그리 꽂혔는지 회식 내내 수일을 돌아보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테이블 밑으로 손이 들어오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잡을 것 없다던 수일의 허벅지는 어찌 그리도 조물조물하는지 나중엔 아프기까지 했다.

짧은 회식이 끝나고 수일의 첫 무대가 시작되었다.

수일은 여느 때처럼 진한 화장에 단정한 무대복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오성관에서의 첫 무대 반응은 역시나 그저 그랬다. 두산이라도 있었다면 환호가 좀 더 컸을지 몰랐지만, 리허설과 회식 때 같이 있던 두산은 정작 본 무대 때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공연을 본 사모 중 몇몇이 수일을 마음에 들어 한 모양이었다. ‘이주일’이란 이름표를 단 나이트 지배인이 사모들이 준 팁을 수일에게 전달했다. 그중 10만 원 수표가 든 봉투에 호텔 열쇠가 포함되어 있었다.

수일은 사모님들에게 받은 돈 중 3만 원을 지배인에게 주었다.

“이야, 수일이 니 개시일에 월척 물었네. 이 열쎄 준 싸모가 땅 부자 현금 부자 아이가. 사장님하고 친군데 일주일에 몇 번씩 손님들 모시고 온다. 저 싸모한테만 잘하믄 니 인생 피는기다. 잘해 바라.”

수일은 화장을 지우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무대복을 입은 채로 호텔 방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붉은색 실크 가운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여자는 사장의 친구라기엔 훨씬 젊어 보였다.

수일은 90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이리 온나. 가까이서 함 보자.”

침대 발치까지 다가가자 여자는 올라 온나, 했다.

수일은 침대 위로 기어올라 여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까이서 보이까 더 잘생깄네. 나이가 몇이고?”

“서른여섯입니다.”

“무대에선 쫌 돼 보이드만 고마 알라네. 여는 우째 왔노?”

“최삼락 형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왔습니다.”

“엄마야, 니 서울아가? 목소리 느무 좋다.”

사모는 수일의 서울 말씨에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자꾸 말을 더 해 보라는 통에 수일은 난감했다.

김경자 여사는 올해 52살로 사장과 국민학교 동기동창이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수일의 말에 경자 씨는 까르르 소녀처럼 웃었다.

“근데 니 에릴 때 정배랑 쫌 닮았다. 니가 훨 예쁘장 하이 생깄다마는 딴 건 모르겠고 눈이 영판이네3). 난중에 사진 함 보이주께.”

경자 씨의 말에 수일은 사장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쌍까풀 진 큰 눈에 햇볕에 그을린 검붉은 피부를 한 사장은 머리가 벗어져서 그렇지 잘생긴 남자였다. 나이에 비해 관리도 잘해 배도 나오지 않았다. 화장을 짙게 한 지금의 수일이 조금은 비슷해 보일지도 몰랐다.

수일과 수다를 좀 떨던 경자 씨는 빨간색 가운을 젖히고 다리를 벌렸다.

수일은 털이 무성한 여자의 음부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이 호스트바에서 배운 대로, 여태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해 경자 씨를 모셨다.

입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경자 씨는 수일의 바지를 벗겼다.

오랜만의 섹스라 잘 설지 걱정되었지만, 경자 씨의 능숙한 펠라티오에 수일은 문제없이 발기했다. 섹스는 일방적이었다. 늘 그랬지만, 특히 오늘은 더 그랬다.

그렇게 섹스하고 함께 샤워까지 했다. 화장을 지운 수일의 얼굴이 더 맘에 든다며 경자 씨는 다시 수일의 자지를 쥐고 흔들었다.

수일은 두 번의 사정을 하고 경자 씨에게 추가로 10만 원을 더 받았다. 돈을 받지 않겠다고 정색을 했지만, 누가 사장 친구 아니랄까 봐 우악스럽게 수일의 팔을 잡고 돈을 쥐여 주었다.

수일은 돈을 손에 쥔 채로 90도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래야 건방져 보이지 않는다고 호스트바 여사장은 항상 일렀었다.

호텔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가는 대신 수일은 비상구로 향했다. 계단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이것보다 더 해 주고도 5만 원을 받아 나오며 좋다고 웃었던 수일이건만 왜 그런지 지금은 눈물이 났다.

이 바닥에서 닳고 닳았으면서, 동정이라도 떼인 양 울고 있는 자신이 꼴사나웠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혹여나 울음소리가 새어 나갈까, 수일은 소매에 입술을 묻었다.

수일이 무대복 차림에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자 두산의 짙은 눈썹이 꿈틀댔다. 어디 갔다 왔는지 눈치챈 두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두산은 거칠게 수일의 턱을 잡아 올렸다.

“울었습니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두산이 물었다.

화장실에서 몇 번이고 세수했는데, 티가 나나 보았다.

“아니요.”

수일은 거짓말을 하고 두산의 손을 쳐 냈다.

“그 씨발년이 행님한테 머라 했습니까? 아이면 때맀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인데 와 울었습니까?”

“두산 씨. 나 피곤한데 그만하면 안 될까요?”

수일은 두산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애원했다.

정말 피곤했다.

다행히 수일의 말대로 두산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빨간 프라이드에 수일을 태우고 숙소로 향했다. 수일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어제는 두 번이나 맞고 오늘은 두 번이나 울었다.

3일을 내리 굶은 적도 있으면서 그 궁핍함을 3일도 안 돼 잊었다. 누구보다 쉬운 돈을 벌고 눈물을 쏟았다.

밤무대 가수로 활동한 세월이 무색하게 왜 이렇게 등신같이 구는지, 수일은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수일은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숙소에 도착한 두산은 수일을 집 안에 들여놓고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나가려 했다. 두산의 등을 본 순간 나중에 후회할 걸 알면서도 수일은 두산을 붙잡았다.

빈집에 혼자 남겨지는 게 싫었다.

“같이 있을래요? …빨아, 줄게요.”

말을 뱉자마자 수일은 후회했다.

두산은 제 팔을 잡은 수일의 손을 한번 쳐다보고 몸을 돌려 수일의 얼굴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을 내려다보던 두산이 씩 웃었다.

“내일 용두산 공원 갈랍니까? 볼 꺼는 없는데 그래도 부산에 왔으니 함 가 바야지예. 아이면 바다 보러 가까요?”

수일이 부끄럽지 않게 말을 돌려 거절하는 두산이 고마웠다.

“바다 보러 가요.”

“그라입시다. 호텔에서 씻고 왔으니 행님은 잠만 자면 되겠네.”

“네.”

“가서 주무세요. 피곤할 땐 잠이 체고다.”

“네. 조심히 다녀와요.”

수일은 힘없이 웃으며 두산을 배웅했다.

“행님, 그 소리요.”

“…….”

“조심히 다녀오란 말이요, 그거 내한테만 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수일은 영문을 몰라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꼭이요.”

두산은 이렇게만 말하고 현관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수일은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구두를 벗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 누가 깔아 뒀는지 방바닥에 요와 이불이 펴져 있었다. 무대복을 벗고 팬티 차림으로 누웠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더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수일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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