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81)

심한 갈증에 눈을 뜨니 밖이 훤했다.

방 안엔 수일 혼자였다.

누가 옷을 벗겼는지 팬티와 러닝 차림이었다.

베갯머리에 물 주전자와 컵이 놓여 있었다. 목이 말랐던 수일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수일은 인상을 쓰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1시 23분.

숙취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옷장에 넣어 둔 추리닝 바지와 점퍼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거실엔 덩치 몇몇이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었고, 부엌에선 요리하는 중인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수일을 보고 덩치 하나가 행님 일났습니까, 했다. 수일은 작게 네, 하고 욕실로 향했다.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닫힌 문에 노크를 하고 대답이 없어 문을 열었다.

두산이 팬티 차림으로 서서 이를 닦고 있었다. 두산은 수일을 보더니 눈을 휘었다.

입 안에 가득 담긴 치약 거품을 뱉어 내며 ‘와요?’ 했다.

“소변 좀….”

“보이소.”

두산은 나갈 생각은 않고 슬쩍 몸을 움직여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고 이를 닦았다. 수일은 잠시 망설였지만, 옷에 쌀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등을 지고 서서 소변을 봤다.

얼마나 참았는지 오줌이 멈출 생각을 않았다.

“참 마이도 싼다. 자다가 이불에 안 싼 게 용타.”

이렇게 말하는 두산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수일은 간신히 볼일을 다 보고 물을 내렸다. 손을 씻으려고 쭈뼛쭈뼛 세면대로 다가가자 두산이 웃었다.

“똥도 안 쌌는데 손 씻을라꼬예? 그 머꼬, 갤백쯩, 그거가?”

뭐가 재밌는지 실실 웃으며, 수일의 옆에 바짝 서서 손 씻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수일은 거울 속에서 두산과 눈이 마주쳤다. 두산은 치약이 묻은, 두툼한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행님 업고 오느라 고생 쫌 했다 아이가. 삐쩍 골아서 얕봤는데, 행님도 사내새끼라고 무겁데예. 내 허리 뿔라지는2) 줄 알았습니다.”

“어제 두산 씨가 저 업고 오신 거예요?”

수일은 민망했다. 술김에 욕이라도 했을까 봐 걱정도 됐고.

“미안해요. 조금만 마신다는 게 그만.”

“행님, 내한테 두산 씨라고 하지 마이소. 기분이 쪼매 이상하다.”

수일은 두산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웃음기 가득하던 얼굴이 무표정했다.

“미안해요.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수일은 난감했다. 두산에게 직책이 따로 있었던가. 어제 종일 같이 있었지만, 직책 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았다. 사실 수일은 두산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두산은 고개를 삐뚜름하게 하고 수일을 가만 내려다봤다.

“아이다. 고마 두산 씨라고 하이소. 간지럽기는 한데 듣기는 좋다.”

좀 전에 부르지 말라더니 다시 부르라고 했다. 두산은 표정 없이 입 안을 헹구고 먼저 욕실을 나갔다.

수일은 지저분한 세면대에 서서 이를 닦고 대충 세수를 했다. 욕실을 나가자 태욱이 그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눈에 화가 가득했다.

“그 안에서 둘이 머했습니까?”

“네?”

“두사이하고 머했냐꼬요?”

“아무것두.”

수일은 당황스러웠다. 어제부터 자신에게 까칠하게 구는 이유를 몰랐다. 태욱이 수일에게 바짝 다가와 올려다보며 낮게 속삭였다.

“씨발년아, 니 두사이한테 꼬리치면 내한테 죽는다. 알겠나?”

수일은 그제야 태욱이 왜 이렇게 적대적인지 알 것 같았다. 태욱인 두산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둘이 연인 사이거나.

“거서 머하노? 밥 무러 온나.”

두 사람을 향해 두산이 소리쳤다. 태욱은 수일을 잔뜩 노려보다가 돌아서서 거실로 향했다.

점심 밥상은 북엇국에 계란프라이였다. 술 때문에 속이 쓰렸던 수일은 좀 전에 태욱과 있었던 일 따위 잊고 밥상으로 다가갔다.

두산이 옆자리를 비워 두고 수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여기 앉으라는 듯 손바닥으로 바닥을 쳤다. 수일은 다른 밥상에 앉아 있던 태욱의 눈치를 보다 그 자리에 앉았다.

저녁과 달리 다들 조용히 밥만 먹었다. 국을 떠먹고 쩝쩝거리며 음식을 씹는 소리 중간중간 한둘이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보통 이쪽 바닥은 위계질서가 뚜렷했다. 이 집에서 가장 연장자는 서른한 살 조현철이었으나 분위기로 봐선 두산의 서열이 더 높은 듯했다. 고작 스물다섯인 두산은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무얼 가져오라 시키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덩치들이 오고 갈 때마다 두산에겐 꼭 인사를 하고 갔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그랬다.

18년간 전국 팔도를 돌며 숱한 덩치와 조폭을 봐 왔지만, 이런 경우는 수일에겐 또 처음이었다. 방도 수일을 포함 셋이서만 쓰는 것도 그랬고.

쓰렸던 속이 좀 괜찮아지자 수일은 태욱의 경고가 떠올랐다. 괜히 두 연인 사이에 낀 꼴이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두산이 첫날부터 수일의 자지를 쥐긴 했어도 동성연애자란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그쪽인가 보았다.

밥을 다 먹고, 수일은 방에 들어가는 대신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척했다. 방엔 태욱과 두산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조금 눈치가 보였는데, 다행히 거실에 있는 덩치들은 수일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현철은 수일이 궁금한 모양인지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이 일을 한 지 얼마나 됐는지, 결혼은 했는지, 애는 있는지 등 두산이 벌써 물어본 것들이었다. 그러는 동안, 막내가 형님들을 위해 커피를 타 주길래 수일도 한잔 얻어 마시며 질문에 짧게 답했다.

“행님, 슬슬 준비 하이소. 사장님이 3시까지 오라 켔다.”

두산이 방문을 열고 나오며 수일에게 말했다. 수일은 남은 커피를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처리 행님. 내 지금 나가면 숙소 안 들어올 끼다. 행님이 아들 잘 챙기라.”

“오야.”

“그라고, 저 우에 가시나들도 함 디다 보고. 어제 먼일인지 막 싸워 싸테. 내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이니까 행님이 알아서 좀 해도. 알겠제?”

“걱정 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하끄마. 니는 니 볼 일 바라.”

“어. 내 행님만 믿는다.”

수일은 두 사람의 말소리를 들으며 다시 이를 닦고 빨간 대야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같이 받았다. 목욕탕에 가면 좋으련만, 수일의 수중엔 백 원이 전부라 갈 수가 없었다.

욕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비누칠하는데 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두산이었다.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등 쫌 밀어주까예?”

“아뇨. 괜찮아요.”

“머가? 등 밀어주께.”

두산은 욕실 문도 안 닫고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수일의 손에 들린 때수건을 뺏었다. 손이 얼마나 큰지, 때수건 안에 세 손가락도 겨우 들어갔다.

“등 돌리 보이소.”

수일은 어쩔 수 없이 등을 보이고 앉았다.

두산은 때수건에 비누를 쓱쓱 묻힌 다음 수일의 등을 살살 밀었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론 수일의 마른 배를 잡았다.

“행님, 우째 이리 말랐습니까? 보도 몬 하겠다. 거 어데고, 아프리카 얼라들 맨키로 삐쩍 골았네.”

욕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두산의 큰 음성에 수일은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고 돌아보지도 못해서 가만 앉아 두산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두산은 요령껏 엉덩이 골까지 꼼꼼하게 밀었다. 마냥 아플 것 같았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두산의 손길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누군가가 등을 밀어 준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배를 잡고 있던 두산의 손이 슬슬 아래쪽으로 이동하던 찰나, 갑자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손에 수일은 욕실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아팠다. 어찌나 세게 머리카락을 쥐던지, 누군지 돌아볼 수도 없었다.

“아야, 이것…. 아, 이것 좀 놓구….”

“이 씨발년이, 내 니한테 머라 켔노? 꼬시지 말라 켔제?”

태욱이었다.

“개 같은 년. 어데서 좆 빨다 왔는지는 몰라도 여서는 안된다. 함만 더 해 바라. 니 똥구녕을 다 지져 버릴라니까는.”

태욱은 그 예쁜 얼굴로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뱉었다. 두산이 태욱의 손목을 움켜쥐지 않았다면 수일의 머리카락이 다 뽑혀 나갔을지도 몰랐다.

두산이 있어서 다행이라 안심한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태욱이 욕실 문턱으로 쓰러졌다. 그때부터 두산은 사정없이 태욱을 때리기 시작했다. 태욱의 멱살을 쥐고 턱을 쳐올렸다. 태욱은 억 소리를 냈고 입에선 피가 흘렀다.

덩치들이 달려와 두산을 말렸다.

이런 식의 폭행은 수도 없이 봤지만, 두산은 달랐다.

두산이 덩치가 크고 힘이 세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을 때리는 모습 때문이었다.

태욱을 때릴 때 두산은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우리만치 차분했다. 사정없이 때리면서도 정확하게 언제 어디를 때릴지를 알고 주먹을 놀렸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언뜻 미소가 비친 것도 같았다.

두산은 스물다섯 먹은 치기 어린 건달이 아니었다.

수일은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얼은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살이 떨렸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덩치들이 달려와 태욱을 끌고 가는 걸 보면서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두산이 고개를 돌려 수일을 보았다.

“행님, 개안습니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였다.

수일은 괜찮다고 대답해야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머리카락 바라. 행님이 숱이 많아 다행이지, 우리 사장님이었으면 난리 났다 난리 났어.”

두산은 욕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맨발로 툭툭 건드리며, 누워 있던 수일을 잡아 세웠다. 수일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두산이 무서웠다. 그런 수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산은 미안한 얼굴을 했다.

“우짜노? 갠찮은 거 맞나? 절마 저기, 내를 좋아하거든예. 기어올라도 갑이라꼬 참아줐드마는 결국 저 사달을 낸다.”

두산은 혀를 끌끌 차며 거실로 시선을 잠깐 두었다가 다시 수일을 보았다.

“마저 씻고 나오세요.”

욕실 문이 닫히는 걸 보고 수일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비누를 헹궈 내고 머리를 감았다.

두산은 거실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무협지를 읽고 있었다. 두산의 옆에서 같이 무협지를 읽던 막내는 뭐가 재밌는지 낄낄댔다. 아무도 태욱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갔는지 태욱은 보이질 않았다. 심하게 다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수일은 어제 입었던 것과 똑같이 챙겨 입고, 저를 기다리던 두산을 따라 사장을 만나러 갔다.

***

오성관 나이트 사장 박정배는 나이트 한편에 마련된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사장실에는 제법 비싸 보이는 가죽 소파와 그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 싸구려 테이블이 있었다. 그 오른편엔 대리석으로 된 커다란 책상이 있었고 책상 뒤 장식장엔 비싸 보이는 양주들이 쭈르륵 진열되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어린 여자를 만지고 있던 박 사장은 수일이 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는 앉은 채로 껌을 짝짝 씹으며 수일을 올려다보았다.

“가시나야, 안 일나나? 커피 좀 타 온나.”

여자는 입을 삐죽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스커트를 손으로 내린 다음 두산에게 오빠야, 하고 알은체를 했다.

“윤수일 씨. 반갑습니데이. 내는 오성관 사장 박정배라꼬 합니다. 서울에서 여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지예?”

키가 수일만 한,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사장은 지나칠 정도로 정중하게 말하며 수일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수일은 허리를 굽혀 가며 두 손으로 사장의 손을 맞잡았다. 사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악력이 세고 손이 큰 남자였다.

“그라믄 내 말 편하게 하께. 두사이 니는 나가 있고 수일이는 여 앉아 바라.”

따라 들어온 두산은 건성으로 고개만 까닥하고 방을 나갔다.

길쭉한 4인용 소파가 문을 마주 보았고 그 좌우로 1인용 소파가 하나씩 있었다. 사장은 1인용 소파 대신 넓은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수일에게 제 오른쪽에 앉으라고 권했다.

여자가 수일과 사장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니도 나가 바라. 참, 야는 미쓰 리. 이미선이라꼬 내 비서다. 앞으로 자주 볼 끼다. 인사들 해라.”

사장의 말에 수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스 리에게 인사를 했다. 미스 리는 입꼬리만 올려 웃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방을 나갔다.

이제 박 사장과 수일 둘만 남았다.

“삼락이한테 얘기 마이 들었다.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깄다 카드만은 공갈친 건 아이네. 나 쫌 바 바라.”

수일은 사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건방지게 눈을 마주 볼 순 없어서 수일은 사장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장은 수일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손만 뻗어 커피 잔을 쥐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셨다.

“일단 석 달만 전속하고, 그 뒤는 니 하는 거 바서 계약 연장을 하든 하자. 알겠제?”

“네.”

“여 말고 내 사무실이 남포동에도 있다. 내는 주로 거 있다 아이가. 내일 거서 계약서 쓰고 도장 찍자. 알았나?”

“네.”

“계약금은 100만 원이고, 달에 180, 계약 다 채우면 뽀나스 30, 이래 할 끼다. 불만 없제?”

“네. 불만 없습니다.”

“결코 짝은 돈이 아이다. 니 먹고 자고 하는 거 한 푼도 안 낸다 아이가. 맞제? 여는 깡패들한테도 돈 낼 필요 읍따. 을매나 좋노? 그라고 니가 잘해서 사모들 잡아가 용돈 받고 이라믄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할 끼다.”

“네.”

수일은 단답형 말고 좀 더 길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늘 이랬다. 이래서 뻣뻣하다, 건방지단 소릴 들었다. 박 사장도 그렇게 생각할까 봐 수일은 조마조마했다.

“삼락이가 말이 없다 카드만은 진짜 말 없네. 내 밤무대 띠는 아 중에 니처럼 말 없는 아는 또 첨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그기 내는 맘에 든다. 딱 내 쓰따일이다. 내는 말 많은 거는 가시나든 머시마든 딱 질쌕이다. 알랑방구끼고 이라는 것들도 다 실코.”

“감사합니다.”

수일은 사장이 말 없는 것을 좋게 생각해 줘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사장은 수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거기서 10만 원짜리 수표 2장을 집더니 수일의 앞에 턱 하니 놓았다.

“이거는 용돈 해라. 삼락이 말이 니 차비도 없다 켔다매. 이걸로 목욕도 쫌 하고, 이발도 쫌 하고. 내는 쪼매 긴 머리가 좋으니까 너무 짧게는 깎지 말고. 알았나?”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수일은 테이블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수표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사장은 눈으로 수일의 동작을 지켜보다가 다시 커피를 홀짝였다.

“이제부터 불편할 수도 있는 얘기 쫌 하자.”

“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께. 니 보지만 빠나 아이면 자지도 같이 빠나?”

사장은 ‘단도직입적’이란 단어를 말할 때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주로 여자만.”

“그래? 자지도 빨 준 알제?”

“네.”

“뒤도 대주고?”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정리를 하자면, 니는 빨기는 둘 다 빠는데 대주기는 여자한테만 대준다 이기가?”

딱히 정리할 것도 없는 얘기를 사장은 천천히 반복했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네, 했다.

“그래, 내도 그기 좋다. 뒤 대주는 새끼들 골 아프데이. 여도 그런 아들 많다 아이가. 손님들이 찾으니까 내도 우짤 수 없기는 한데, 가시나들 보다 더 속시끄럽다.”

사장은 콧등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그러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수일의 얼굴을 훑었다.

“니도 겪어 봐서 알겠지마는 노래 부르는 것보다 방으로 부르는 손님이 돈이 쫌 된다 아이가. 맞나?”

“…네.”

“특히 우리 나이트는 아지매들도 마이 오지마는 빨아 주는 거 좋아하는 사장님들도 마이 오신다. 을매나 마이 오시면 방에 보낼 아가 다 부족하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사장은 뜸을 들이며 말꼬리를 늘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니 지금 함 빨아 바라. 우찌 빠는지 바야 내가 손님을 붙이 주든가 할 꺼 아이가.”

수일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결국, 이건가 싶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수일이 만난 나이트 사장 중에 열에 한둘은 이랬다. 처음에야 수일도 펄쩍 뛰고 난리를 쳤지만, 돈이 궁해지자 그렇게라도 자신을 고용해 주고 써 주는 사장에게 감사했다.

수일은 입술을 말아 물고 천천히 사장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사장은 파안대소하며 손을 저었다.

“니 머하노? 내 말고. 거 밖에 두사이 있나? 가 쫌 델꼬 온나.”

사장의 반응에 수일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설마, 두산을 시켜 여자를 부르려나.

수일은 남 앞에서 섹스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무슨 정신에 그랬는지 몰랐지만, 그때는 그랬다. 호스트 여사장은 거금의 계약금을 쥐여 주었고, 신입인 수일의 테크닉을 테스트해 보겠다며 다른 호스트들이 보는 앞에서 수일과 섹스를 했다. 나이도 어렸고 너무 긴장했던 수일은 제대로 세우지도 못해 여사장이 한참 애를 먹었다.

수일은 문을 열러 가는 짧은 순간, 그때 일을 떠올렸다. 사장실 앞에 서서 체조를 하던 두산은 수일을 보자 눈썹을 추켜올렸다.

“사장님이 보재요.”

“내요?”

“네.”

두산은 성큼성큼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일이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이 새끼 별명이 말 자지 아이가. 니도 함 봤나?”

사장은 수일의 눈을 보며 두산의 자지에 대해 말했다.

“에이씨 사장님도. 또 머할라꼬예?”

“수일아, 야 꺼 함 빨아 바라.”

“또또 시작이다.”

두산은 자주 있는 일인지 귀찮은 표정을 했다.

반면, 사장의 말에 놀란 수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라리 사장의 좆을 빠는 편이 나았다. 두산은 수일과 같은 방을 쓰고 같이 살았다. 나이도 열한 살이나 어렸고, 게다가 좀 전엔 태욱을 죽도록 때리기까지 했다. 수일은 마른침을 삼켰다.

“머하노? 야 꺼 함 빨아 보라꼬.”

처음부터 소파의 위치가 이상하다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보았다.

사장은 긴 소파에 몸을 기대고 등받이에 두 팔을 얹었다. 두산이 느린 걸음으로 사장의 정면으로 가 수일을 돌아보았다.

“머하노!”

사장의 짜증 섞인 재촉에 수일은 하는 수 없이 두산을 마주 보고 섰다.

“서서 하끼가? 무릎 딱 꿇고.”

수일은 얼굴에 열이 올랐다.

두산은 별일 아니라는 듯, 뒷짐을 진 채 뱀 같은 눈을 생글거렸다.

“긴장하지 마이소.”

어린놈이 수일을 달래기까지 했다.

수일은 두산의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웠다.

청바지 지퍼를 내리자 하얀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발기하지 않았음에도 크기가 느껴졌다. 수일이 손을 뻗어 팬티 위로 몇 번 쓰다듬자, 두산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커다란 자지가 서서히 위로 솟아올랐다.

“제대로 안 하나?”

소극적인 수일의 태도에 사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수일은 급히 두산의 팬티를 내렸고, 그새 발딱 선 것이 스프링을 단 것처럼 튕겨 나왔다.

수일이 본 것 중에 제일 큰 자지였다. 시커멓고 불그스름한 것에 핏줄이 솟아,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수일의 큰 눈이 더욱 커지자, 사장이 ‘파하하하’ 하고 웃었다.

“거 바라. 말자지 맞재? 입, 안 찢어지게 조심해라. 그라고 백두사이 이 씨발롬아, 니 첨하나? 바지 내리고.”

“사장님도. 바지는 머할라꼬? 어차피 자지만 빨긴데.”

“말대답하지 말고. 바지 내리라.”

사장의 말에 두산은 허리를 숙여 청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발목까지 내렸다. 허리를 숙인 자세로 수일을 보고 살살 하이소, 했다.

“마, 웃도리도 벗고.”

사장은 두산에게 딴마음이 있는 듯 보였다.

두산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위에 입은 것을 모조리 벗었다. 운동화에 걸린 바지도 귀찮은지 발을 척척 들어 팬티까지 모두 벗어 던졌다.

알몸인 두산이 수일의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탄탄한 가슴 근육과 팔 근육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두산은 핏줄이 불거진 커다랗고 투박한 손을 양 허벅다리 옆으로 가지런히 내렸다가 곧 뒷짐을 졌다. 복근을 자랑하는 배꼽 아래부터 음부까지 짙은 배털이 이어져 있었다. 검고 풍성한 음모는 발기된 거대한 성기 주위를 에워쌌고, 두꺼운 넓적다리와 튼튼한 두 다리도 새카맣게 털로 뒤덮여 있었다.

사람이라기보다 짐승과 같은 두산의 몸에 수일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머하노?”

사장의 목소리에 수일은 오른손으로 두산의 자지를 쥐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흥분이 되는지 두산의 자지는 어느새 젖어 있었다. 수일은 눈을 내리깔고 음경 뿌리부터 귀두까지 혀로 핥아 올렸다.

“흣!”

두산이 짧은 신음을 뱉는 순간, 소파 쪽에서 지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흘끔 보니, 사장이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것을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수일은 눈을 감고 귀두를 입 안에 넣었다. 그것만으로 입 안이 꽉 찼다. 입 안 오른쪽 볼에 대가리를 문지르자 짠맛의 액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벌써 사정이라도 한 건가 싶었더니, 오히려 자극을 받아 더 커지고 있었다.

겨우 대가리만 넣었을 뿐인데도 턱이 아려 왔다.

“더 안 넣나?”

사장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질렀다.

수일은 그 소리에 입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반도 안 넣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입은 찢어질 것 같았고, 커다란 것이 입 안을 가득 채워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성기의 압박에 수일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래도 수일은 고개를 부지런히 움직여 목구멍 가까이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턱으로 침이 새어 흘렀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아흑! 씨발. 흣! 씨발.”

두산은 신음 사이사이 ‘씨발’이란 말을 뱉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소파 쪽에서도 사장의 신음이 거칠어졌다. 턱이 아리다 못해 빠질 것 같았지만, 두산은 사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일은 너무 힘들어 성기를 뱉어 냈다. 두산이 흘린 쿠퍼액과 침이 함께 딸려 나와 턱으로 줄줄 흘렀다.

숨을 몰아쉬고 다시 시작하려는 찰나, 거친 발길질이 날아왔다. 수일은 옆으로 나뒹굴었다.

“야이 썅노무 새끼야. 누구 맘대로 하다 마노? 죽고 시퍼 그라나?”

사장이 성기를 덜렁거리며 수일의 앞에 성난 얼굴로 서 있었다. 한 번의 발길질로 성에 안 차는지 다시 발을 들었다. 수일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에헤이, 사장님 와 이라노? 하고 있다 아입니까. 하고 있는데 그라믄 우짜노?”

두산이 사장을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을 막았는지 어땠는지 추가적인 폭력은 없었다. 수일은 급히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죄송합니다.”

턱을 타고 내려온 침을 손등으로 훔치며 수일은 연신 죄송하다 머리를 조아렸다.

“다시 해라.”

사장은 다소 화가 누그러진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고 소파로 가 앉았다.

두산의 성기는 이 사달에도 발딱 서서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수일이 올려다보자 두산은 히죽 웃으며 입 모양으로 ‘개안습니까?’ 물었다. 수일은 대답 대신, 다시 두산의 자지를 손에 쥐고 입 안에 넣었다.

이번엔 두산이 사정할 때까지 성기를 빼지 않고 끊임없이 빨았다. 턱이 빠질 것 같은 고통과 성기의 압박에 수일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사장이 먼저 방정맞은 목소리로 ‘아이쿠야’ 했다. 사정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버티던 두산의 거대한 것이 드디어 뜨거운 액을 뿜어냈다.

“윽!”

두산의 탄탄한 허벅지가 사정없이 떨렸다.

사정했음에도 그 큰 것은 여전히 발기된 것처럼 서 있었다.

수일은 사장의 눈치를 보며 두산의 자지를 입에서 빼냈다. 하얗고 끈적한 정액과 침이 두산의 것과 어지럽게 엉켰다. 수일은 손바닥을 펴 입 안에 든 정액을 뱉었다.

“삼키라.”

수일은 사장을 돌아보았다.

“사람 말 몬 아라 묵나? 삼키라꼬. 니 지금 뱉은 거.”

그 말에 비위가 상한 수일은 헛구역질을 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두 손을 짚는 바람에 바닥은 정액과 침으로 지저분해졌다.

“이 씨팔놈이! 와, 머 저런 새끼가 다 있노? 니 지금 장난하나? 어이? 장난하냐꼬?”

사장이 목청을 높여 욕을 했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지 사장은 앞에 있는 빨간 테이블을 발로 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번엔 발길질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어째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수일을 알몸인 두산이 잡았다.

“행님, 그만 나가 보이소. 여는 내가 알아서 하께.”

이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사장이 다가오자 두산은 한 손으로 사장을 막았다.

“에헤이, 또 그란다. 행님, 얼른 나가 보이소. 얼른예.”

수일은 잠깐 머뭇거리다 기다시피 방을 나왔다. 사장의 고함이 방문을 뚫고 새 나왔지만, 두산의 음성은 멎었다. 수일은 옷소매를 끌어당겨 눈물을 닦고 턱을 닦았다.

밴드가 이제 리허설 준비를 하는지 전자 기타 음과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달리 도망갈 데도 없었다. 사장이 부르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자기 처지였다. 수일은 괜히 서러워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건만, 서른여섯이나 처먹고도 뭐가 서럽다고 울고 있는지 수일은 자신이 한심했다.

그렇게 사장실 앞 좁은 복도 벽에 기대서서 수일은 연신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얼마 안 돼 방문이 열리고 옷을 다 입은 두산이 나왔다. 울고 있는 수일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울었습니까? 뭐 이란 일로 우노? 가입시다.”

별거 아니란 듯,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고 두산은 수일의 팔을 잡아끌었다.

“사장님은… 괜찮으세요?”

“그라믄예. 안 갠찮을 끼 머 있노? 밥이나 무입시다. 배고프다.”

사장실이 있는 복도 끝, 작은 쪽문을 열자 바로 건물 뒤 공터가 나왔다. 공터엔 반짝이는 검정 세단이 서 있었다.

“저기 포텐샤라꼬 나온 지 두 달도 안 된 쌔삥인데예, 사장이 저거 뽑고 바로 사고가 나가지고 쌩쇼를 했다 아입니까. 저 차 박은 새끼 아직도 다리 기부스 하고 있다.”

수일이 차를 보는 걸 어찌 알았는지 두산은 차에 얽힌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사장님 화 많이 나셨어요?”

“에이 으데? 저 양반 원래 저란다. 난중에 보면 화 풀리 있을 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라고, 머 행님 잘못이가. 내 잘못이지. 맨날 엄지만 한 거 빨다가 내 꺼 빨면 다 그랍니다. 입 작은 가시나들은 넣도 몬한다 아이가.”

두산의 위로 아닌 위로에도 수일은 맘이 편칠 못했다. 혹시라도 계약하지 말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뭘 좀 먹고 몸이라도 성해야 노가다 판이라도 갈 게 아닌가? 내려온 지 이틀 만에 서울로 돌려보내질까 봐 수일은 조마조마했다.

“근데, 행님 잘하데? 원래 그짝입니까?”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두산은 큰소리로 물었다.

수일은 얼굴을 붉혔다.

“아뇨. 그런 건 아니구.”

“하다 보이 늘었나 보네. 그지예?”

“네.”

두산을 쳐다보지 않고 수일은 대답했다.

고개를 숙이고 걷던 수일은 두산이 잡아당기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이번엔 삼계탕집이었다.

“단백질 보충.”

수일이 올려다보자 두산은 씽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중간한 시간대라 식당 안엔 손님이 없었다. 두산의 단골인지 중년의 여자들이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온나. 쫌 덥재? 여 앉아라. 선풍기 틀어주께.”

“엄마야, 이 잘생긴 총각은 누고?”

한 명은 두산에게, 한 명은 수일에게 관심을 보였다. 수일을 본 여자는 다짜고짜 수일의 몸을 쓰다듬고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잘생깄다. 어깨는 아인 거 같은데? 이름이 먼교 총각?”

“이름은 알아서 머할라꼬? 우리 나이트 새로 온 가수. 윤수일.”

이름은 알아서 뭐 하느냐더니, 두산은 바로 수일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윤수일? 진짜로? 이래 보이 가수 윤수일하고도 쪼매 닮았네.”

“잘생깄다. 우찌 이리 뽀얗노? 어데서 왔는교?”

“서울.”

수일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두산은 모든 질문에 자기가 답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을 벌컥벌컥 마신 두산은 수일에게 물잔을 내밀었다.

“서울 어데?”

“어데라 쿠몬 아나? 말 그만 시키고 빨리 삼계탕이나 주소. 배고프다.”

“야이 새끼야, 니 말고 이 총각한테 물었다 아이가.”

늘 질문해 놓고 정작 수일의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저들끼리 옥신각신하는 틈에 수일은 물을 마셨다. 입 안에 남은 정액 때문에 혀가 닿는 곳마다 미끈거렸다. 두산은 물을 마시는 수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바닥에 얼마나 있었습니까?”

“18년 정도요.”

“이야, 진짜 오래됐다. 근데 그리 맘이 약해서 우짭니까? 아까 우는데 짠하드라.”

두산은 눈치 없이 수일이 울던 얘길 꺼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수일은 18년이나 이 바닥에서 굴렀지만, 가끔 나이도 잊은 채 울었다. 민망해진 수일은 물잔을 쥐고 있는 두산의 손에 시선을 두고 입을 다물었다.

커다랗고 투박한 손에 들린 물잔은 미니어처처럼 작아 보였다.

“남이 보는 앞에서 해 본 건 처음입니까?”

“…네.”

처음은 아니었지만, 수일은 그렇다고 했다.

“우리 사장님이 변태거든예. 다들 놀랜다.”

“…….”

“그 머시라 카드라, 간엄쩡인가 머 그거라 카든데.”

관음증. 수일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꼭 새 식구만 오면 나를 부른다 아입니까. 가시나든 머스마든 우째 그리 빨라 케쌌는지 내도 돌아뿌그따.”

아무리 식당 여자들이 부엌에 들어가 수다를 떨고 있다 해도, 두산의 목소리라면 들리고도 남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큰 목소리로 이런 얘길 하는 두산이 수일은 신기했다.

“행님, 참 말 없다. 그런 소리 마이 듣지요?”

“죄송합니다.”

수일이 인기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입을 잘 털어야 무대에서 인기도 많고 사모들을 꼬실 수 있는데 수일은 어째 말이 쉽게 늘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돈이 궁할수록 낯짝만 두꺼워졌다. 그 두꺼운 낯짝만큼 입도 잘 털고 입에 발린 소리도 좀 하면 오죽 좋으련만 그게 잘 안 됐다.

수일의 사과에 두산이 픽 웃었다.

“행님, 앞으로 사과하지 마이소. 내니까 이리 받아주지, 다른 새끼들한테 그라믄 당장 얕잡아 보고 댐빈다.”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말로 두산은 이렇게 충고했다. 실실 웃던 얼굴이 무표정했다.

수일은 작게 네, 했다.

무표정한 두산의 얼굴은 삼계탕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졌다.

“총각, 마이 드이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시고예.”

음식을 내려놓은 식당 여자는 수일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살살 웃었다. 수일은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했다.

두산은 수일을 보고 얼른 먹으라는 듯 눈썹을 올렸다. 좀 전까지 빨아 줬던 남자와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게 좀 웃겼지만, 배가 고픈 수일은 창피함 같은 건 잊고 서둘러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었다.

돼지국밥보다 이쪽이 훨씬 나았다.

수일은 일부러 두산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색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고.

아까 두산이 태욱을 때릴 때 느꼈던 그 섬찟함과 두려움은 자기를 도와줬단 이유로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번엔 두산도 얌전히 밥만 먹었다. 먹는 동안 눈으로 수일을 훑고 있다는 건 느낌으로 알았지만, 말을 걸진 않았다.

그렇게 TV 소리와 식당 여자들의 수다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두산이 다 먹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일은 그런 두산을 따라 급히 일어서며 식당 여주인에게 사장에게서 받은 수표를 내밀었다.

“이건 제가 살게요.”

“얼마나 받았습니까?”

두산은 수일의 손에서 수표를 뺏어 들고 자기 돈으로 계산을 하며 물었다.

“네?”

“사장님한테 얼마 받았냐꼬예?”

“야야, 잔돈이나 받아라, 팔 아프다.”

둘 사이에 식당 여자가 끼어들었다.

두산은 거스름돈을 받아 들고 여자들에게 잘 먹고 갑니데이, 했다. 수일도 고개를 꾸뻑하고 두산의 뒤를 따랐다.

“얼마 받았습니까?”

“20만 원이요.”

“잘 받았네. 저 양반이 많이 주야 10만 원인데.”

수일은 무슨 말인지 몰라 두산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두산은 오른쪽 볼을 부풀리고 한 손을 들어 펠라티오를 암시하는 동작을 했다. 그러니까 수일이 사장에게 받은 돈은 용돈이 아니라 일종의 선금인 셈이었다. 자기 앞에서 두산을 빨아 준 대가였다.

두산이 손을 내리고 씩 웃어 보였다.

“가입시다. 내 늦었다. 행님 숙소에 델따 주고 또 어데 가 바야 합니다.”

수일은 기분이 이상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을 두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산의 말대로라면 새로 온 오성관 직원은 모두 사장이 보는 앞에서 두산의 좆을 빨았다는 얘기가 되었다. 삼락 형님도 그랬을까?

수일은 싱거운 생각을 하며 앞서 걸어가는 두산의 커다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또 혼자 남았다.

오늘은 10시쯤 두산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삼락 형님이 무대 끝나고 같이 술 한잔하자며 두산을 통해 말을 전했다.

멍하니 일일 연속극을 보고 9시 뉴스를 봤다. 서울 뉴스가 나오던 중 갑자기 부산 스튜디오로 바뀌더니 곧 부산 뉴스를 전했다.

수일은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태욱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나중엔 사장에게 발길질을 당했다.

그래도 수중에 20만 원이나 생겨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은행에서 만 원짜리로 다 바꾼 다음, 10만 원은 입금하고 10만 원만 주머니에 넣었다. 그중 3만 원은 삼락 형님에게 갚아야 하고 이런 자릴 주선해 줬으니 술을 사야지 했다.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했다. 보너스와 계약금을 제하고도 3개월 동안 월급으로 180만 원을 받는다. 식비랑 숙소비 차비 등도 낼 필요 없으니 그것만 모아도 제법 되었다. 얼마 만의 고정 수입인지 몰랐다.

늘 내일이 불안하던 수일은 오랜만에 안정감을 느꼈다. 덩치들이 쥐뿔도 없는 수일을 형님이라 부르며 밥을 차려 주고 커피를 타 주었다. 수일이 하는 일이라곤 제 방 청소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태욱은 어디로 간 걸까?

수일은 내심 걱정되었지만, 아무도 태욱 얘길 입 밖에 꺼내질 않았다.

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낮에 다른 일을 해서 그런지 어제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덜 지루했다.

9시 50분쯤 되자 현관문이 열렸다.

“행님, 가입시다.”

“네.”

수일은 두산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두산은 셔츠에 정장 바지가 아닌 청바지를 입은 수일을 아래위로 훑었다.

“키가 몇입니까?”

“178이요.”

“제법 크네.”

두산은 수일을 빨간 프라이드에 태우고 나이트로 향했다.

“머 하고 있었습니까?”

“TV 봤어요.”

“요 앞에 우리가 대놓고 보는 비디오 대여점 있거든예. 정 심심하면 거 가서 비디오 빌리 보고 그라이소. 내 이름 말하고 보고 싶은 거 아무거나 빌리면 된다.”

두산은 내일은 비디오 대여점 위치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포르노 얘길 꺼냈다.

“행님도 뽀르노 보지예?”

“예전에 몇 번.”

“예전 언제?”

“…4, 5년 정도 됐어요.”

“으아, 행님 진짜 문제 있다. 여는 없어서 몬 보는데. 가시나들도 뽀르노에 환장한다 아입니까.”

두산은 운전 중에 고개까지 돌려 가며 수일을 보았다. 몇 년간 포르노 안 본 게 뭐가 어떻다고 저리 호들갑을 떠는지 몰랐다.

“행님 그 머꼬, 불감쩡 아이가?”

불감증. 수일은 속으로 말을 고쳐 주었다.

“우리 행님이 뽀르노 수입하는데, 아래 일본에서 억수로 센 거 들여왔다 케서예. 관심 있습니까?”

두산이 말하는 형님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이런 얘길 꺼낸 것부터가 보여 주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수일이 대답이 없자 두산이 웃었다.

“낼 같이 보입시다.”

두산은 주차하며 이렇게 말했다.

밴드 연주 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렸다. 지금은 <서핑 USA> 간주를 연주 중이었다.

먼저 갈 줄 알았던 두산이 수일을 기다렸다.

수일이 다가가자, 두산은 예의 그 뱀 같은 눈으로 집요하게 수일의 마른 몸을 훑었다. 입은 것이래 봐야 스판덱스 재질의 흰색 면 티셔츠에 평범한 청바지였다. 그게 뭐라고 만면에 미소까지 띠며 수일을 훑던 두산은 슬슬 뒤로 걸었다.

수일은 두산의 시선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두산이 어느 취향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남자에게 성적으로 관심이 없어 보이다가도 또 자신에게 하는 걸 보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닌 듯했다.

솔직히, 수일에게 보이는 것이 성적인 관심인지 아니면 그저 장난인지도 구분이 안 됐다. 두산이 하는 짓은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어린 남자였다. 호기심도 많고 짓궂었다. 지금 저를 보는 눈빛은 나이 많고 별 볼 일 없는 밤무대 가수를 향한 조롱일지도 몰랐다.

“행님, 이래 보이까 진짜 동안이다. 내캉 갑이라 케도 믿겠네.”

수일이 대답이 없자 두산은 그제야 등을 돌리고 걸었다.

“우째 저리 말이 없을꼬.”

아! 하고 두산이 큰 소리를 내며 다시 뒤를 돌았다.

“참 행님, 오늘 내 빨아준 거요, 그거 삼락이 아재한테는 말하지 마이소. 그 아재 알면 난리 난다. 사장님한테 신신당부했거든예. 행님한테는 그런 거 시키지 말라꼬.”

“네.”

“20만 원 받았단 소리도 하지 말고.”

“네.”

사장의 변태 짓을 모르는 사람이 없나 보았다. 수일은 일자리만으로도 고마운데 그런 말까지 넣어 준 삼락 형님이 정말 고마웠다.

“그라고, 담 번엔 삼키세요. 뱉는 거 싫어한다, 우리 사장은.”

다음 번이란 말에 수일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손님은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그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두산이 하는 말이 다음에 두산과 또 한다는 얘긴지 아니면 손님 받을 때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장이 행님 마음에 든다 카드라. 내한테 따로 얘기할 정도면 담 번이 안 있겠는교?”

실실 웃으며 두산은 이리 말했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산을 향해 수일은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나이트 입구로 들어가자, 덩치 동생들이 알은체를 하며 두산과 수일을 반겼다.

나이트 안은 밴드의 연주가 한창이었다. 이번엔 WHO의 노래가 흘렀다.

수일은 두산이 삼락 형님이 있는 대기실로 안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제와 같은 테이블에 수일을 앉혔다. 테이블에는 지난번처럼 맥주 다섯 병과 소주 두 병이 놓여 있었다.

제법 좋은 자리라 손님이 아닌 자기가 앉아도 될까 망설였다. 밤무대 가수에게 테이블을 하나 주고 술도 안주도 공짜로 내주는 나이트는 없었다.

“여 앉아 계세요. 30분 뒤에 삼락이 아재 무대 있거든예.”

“저기, 여기 말고 대기실에 있어도 되는데.”

“머할라꼬예? 아재 바쁘다. 난중에 무대 끝나고 보이소.”

“아, 네.”

삼락 형님을 보러 가자는 말이 아니었지만 두산은 그렇게 알아들었다. 수일은 하는 수 없이 테이블에 앉았다. 두산은 일도 없는지 또 수일의 옆에 앉아 맥주병을 땄다.

“어제처럼 맥주에 소주 써까 드리까예?”

“아뇨. 그냥 맥주만.”

“와? 잘 묵드만.”

“머리가 아파서요.”

수일의 말에도 두산은 수일의 잔에 맥주와 소주를 섞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서 왜 물어봤나 몰랐다. 수일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건배.”

무대를 보던 수일에게 두산이 잔을 내밀었다. 수일은 잔을 받아 작은 목소리로 건배하고 술을 마셨다. 분명 소주를 섞는 걸 봤는데 맥주 맛만 났다.

두산을 돌아보자 씩 웃으며 제 손에 들린 잔을 흔들었다. 그 잔이 소주와 맥주를 섞은 수일의 잔인가 보았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남은 술을 한숨에 비운 두산은 캬, 소리를 내고 빈 잔을 내려놓았다.

“어제보다 손님이 많지요? 삼락이 아재가 먹어 준다 아입니까. 노래는 몬해도 아지매들이 으찌나 좋아하는지. 저 바라. 다 아지매들 아이가.”

두산은 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같은 시간대에 1/3도 차지 않았던 어제와 달리 거의 반 정도 테이블이 차 있었다. 두산의 말대로 대부분 중년의 여자들이었다.

곱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수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행님도 웃기는 웃네. 억지로 웃는 거 말고 이래 웃는 거 첨 본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산의 손이 수일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왔다. 눈을 휘어 웃으며 수일의 마른 허벅지를 쥐었다 놨다 했다.

“먼 허벅지가 한 손에 잡히노? 이기 종아리지 허벅집니까? 에이 재미없다.”

마른 허벅지가 영 탐탁지 않은지 두산은 손을 뗐다.

“내는 글래머가 좋거든예. 엉덩이도 빨통도 빵빵해야 할 맛이 안 납니까. 행님은 어떤 스타일 좋아합니까?”

“글쎄요, 잘….”

“이상형 없습니까? 내는 왕조현 억수로 좋아하는데.”

수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탤런트도 영화배우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릴 땐 분명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자기 타입의 여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지도 5년이 넘었다. 애인이 있을 때 야한 비디오를 틀어 놓고 섹스를 했었으니 포르노를 마지막으로 본 시기와도 비슷했다.

“행님 그짝 아이라 카드만은. 공갈칬나?”

“저 남자 안 좋아해요.”

“근데 와 이상형이 없습니까?”

“그냥, 지금 생각이 안 나서.”

“그기 생각하는 게 아이라요, 척하면 착 하고 떠오르는 기지. 참 답답다.”

답답하긴 수일도 마찬가지였다.

두산과 이상형 얘기를 하는 동안 밴드의 음악이 멎고 삼락 형님 차례가 되었다.

여자들의 환호와 비명이 홀 안을 가득 메웠다. 수일은 저런 반응을 끌어내는 삼락 형님이 부러웠다.

삼락 형님은 비싸 보이는 무대복을 입고 무대 한가운데로 와서 섰다. 잘생긴 남자였다. 살이 좀 붙어 보였지만, 오히려 더 보기 좋았다.

“여사님들, 잘 지냈는교? 넘진 인사올립니데이.”

간드러진 말투로 인사를 하고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갈수록 얼굴과 몸짓, 표정은 가수 남진과 판박이였다. 첫 곡 <님과 함께>의 간주가 흐르자 앉아 있던 여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삼락 형님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더 난리가 났다.

“저 아재 노래 진짜 몬한다. 저게 무슨 남진이고?”

두산이 옆에서 투덜댔다.

삼락 형님도 노래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모창 가수라기엔 많이 부족했다. 일단 가수 남진보다 톤이 하나에서 하나 반 더 높았다. 그래도 손짓 눈짓 몸짓까지 남진과 똑같았다. 수일은 삼락 형님의 무대만 봐도 재밌고 신났다. 아마 여기 온 중년의 여자 손님들도 같은 생각일 터였다. 노래야 테이프로 들으면 되니까.

30분간의 짧은 공연을 끝내고 삼락 형님이 호들갑을 떨며 사라졌다.

홀에 있던 여자들은 밴드 마스터가 마이크를 잡자 그때부터 술을 마시고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종업원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배인은 이주일, 부지배인은 최민수. 그리고 손님들에게 인기 많은 막내는 심형래 이름표를 달았다. 심형래 이름표를 단 김정수는 두산과 동갑에 친구였다. 둘은 포르노 얘기에 한참 열을 올리며 다른 나이트에 새로 들어온 댄서 이야기를 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 댄서는 영화배우가 꿈이라고 했다.

그러다 심형래가 불려 갔고 이번엔 수일에게 볼일이 있었다.

“수일이 행님, 넘진 행님이 밖에서 보자캅니다. 여는 아지매들 때메 있기 힘들다꼬예.”

“네.”

네, 라고 대답은 잘만 해 놓고 정작 만나자고 한 밖이 어딘지 몰라 수일은 나이트 입구에서 오도 가도 못 했다. 지하 입구인지 지상 입구인지도 몰랐고.

“행님! 여서 머하노? 이리 오이소.”

두산이 수일을 찾으러 왔다. 자기 쪽으로 오라는 두산의 손짓에 수일이 걸음을 빨리했다.

가까이 갈 때까지 꼼짝 않던 두산은 수일이 다가가자 어깨에 팔을 둘러 자기 몸 쪽으로 당겼다. 팔은 억세고 무거웠다.

“아이고 행님도 참. 어덴지 모르면 물어바야 할 꺼 아입니까. 사람이 와 그라노?”

“죄송합니다.”

수일은 습관적으로 사과했고, 두산의 굳어지는 표정에 아차 했다.

사과하지 말라고 했는데.

“행님, 진짜 하지 마이소. 담에도 그라믄 내 썽낼 끼다.”

“네.”

“가자. 삼락이 아재 목 빠지겠다.”

삼락 형님은 나이트에서 5분 거리의 허름한 대폿집에 앉아 있었다. 요즘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연속극에서나 보던 술집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는 빨간색 루주를 칠하고, 마스카라까지 하고 있었다. 멋쟁이였다.

수일이 가게로 들어서자 삼락 형님이 달려 나와 와락 껴안았다.

“수일아, 이게 얼마 만이고? 잘 지냈나? 근데 머시 이리 말랐노? 고생이 많았드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수일은 멋쩍어 웃기만 했다.

“앉아라. 할매요, 여 막걸리 잔이나 내 주소. 두사이 니도 앉고.”

“형님 얼굴 좋아지셨네요.”

“나? 살이 좀 찠다. 근데 니 와이리 말랐노? 어데 아프나?”

“아뇨, 몇 달 감기로 고생했더니….”

“지금은 개안코?”

“네. 다 나았어요.”

수일이 아팠다는 말에 두산이 인상을 썼다. 삼락 형님이 건배를 권하기도 전에 혼자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수일은 괜히 눈치가 보였다.

“두사이랑 인사 했나?”

“네.”

“수일이 니 야한테 잘 보이라. 야가 나이는 어리도 우리 나이트 실세 아이가.”

삼락 형님은 두산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내가 먼 실세고? 사장 꼬봉이지. 아재 말 믿지 마이소. 내 실세 아입니다.”

“으데? 사장이 니한테 찍소리도 몬 한다 아이가.”

“그기야 내가 사장한테 변태짓 하게 냅두이까 그라지.”

“아, 맞다. 수일이 니 혹시.”

“아이고, 그런 일 없었다. 사장님도 아재 소개로 온 사람한테 그래는 안 하지.”

수일이 대답하기도 전에 두산이 말을 가로챘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은 없던 일이었다. 사장한테 받은 20만 원도.

수일의 표정을 보고 아이다, 하며, 삼락 형님이 건배를 권했다.

오랜만에 유쾌한 남자를 보자 수일은 기분이 좋아졌다.

거의 2년 만이었다. 여전히 재밌었고 여전히 사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잘 웃지 않는 수일도 삼락 형님과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났다.

수일이 소리 내 웃을 때마다 두산이 묘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두툼한 아랫입술을 혀로 핥을 때마다 두산의 입술이 붉어졌다.

“어이 백두사이. 내 25년째 이 짓 하는데, 수일이만 한 아를 몬 밨다. 야가 진국이라. 말이 없어서 그러치, 꿍꿍이도 없고 뒷말도 안 하고 남한테 알랑방구도 낄지 모르고. 여자한테 고함을 치기를 하나, 술 치하면 고마 처 자뿌지. 니한테도 존대하재? 맞나 아이가? 지보다 한참 어린 아들한테도 꼭 존대한데이.”

“그러면 뭘 해요? 사장님들이 절 안 좋아하는데.”

“그건 글타. 으하하하하.”

수일이 자조적으로 한마디 뱉자 삼락 형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수일의 등을 쓰다듬었다.

말이 많던 두산은 술자리에서 몇 마디 안 하고 술만 마셨다. 처음에 눈치를 보던 수일도 분위기에 취해 삼락 형님과 웃고 떠들다 막걸리를 제법 마셨다.

새벽 2시쯤 되자 삼락 형님의 혀가 꼬부라졌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자꾸 옆으로 넘어가려는 통에 두산이 결국 형님을 업었다.

수일이 술값을 계산하려는데 두산이 말렸다.

“바지 뒷주머이. 지갑.”

수일이 머뭇거리자,

“빨리, 내 무겁다.”

했다.

수일은 두산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현금이 제법 많았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술값을 계산한 수일은 삼락 형님을 업고 가는 두산을 졸졸 따랐다.

호텔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자 8층, 했다. 삼락 형님은 호텔 꼭대기 층에서 머무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머이리 무겁노. 허리 다 뿔라질 뻔했네.”

침대에 삼락 형님을 내다 꽂으며 두산이 투덜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수일은 미니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두산에게 내밀었다.

“두산 씨, 여기요.”

두산은 물을 받는 대신 양 허리에 두 손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수일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무표정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일은 물병을 한 번 더 내밀었다.

그러자 두산은 그 크고 투박한 손으로 받아 들었다.

“행님도 마이 자싰는데 개안습니까?”

“네. 괜찮아요.”

“가입시다. 숙소에 델따주께예.”

“저기, 술 마셨는데 운전 괜찮겠어요?”

“내 한 개도 안 치했는데?”

“그래두. 많이 안 멀면 걸어갈래요?”

수일이 용기 내 물었다.

두산은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수일을 보더니 그라입시다, 했다.

두 사람은 어두운 새벽길을 함께 걸었다.

외진 곳인 데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어 혼자서는 절대 갈 길이 못 됐다. 골목길에서 취객이 튀어나오기도 했고, 불량 청소년들은 담배를 뻑뻑 피우며 두산과 수일을 노려보았다. 본드를 부는 남자, 노상에서 붙어먹는 남녀, 그리고 남남.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수일은 만나는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으려 되도록 땅을 보고 걸었다. 두산의 발이 늘 앞서 있었고 수일이 조금 늦으면 그 발이 멈췄다.

초여름이라 새벽 날씨는 좀 쌀쌀했다. 술기운에 추운 줄 몰랐다가 술이 어느 정도 깨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수일은 두 팔을 겹쳐 안고 손바닥으로 빠르게 비볐다.

두산이 성큼 다가와 수일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머가 춥다 그라노?”

두산의 가슴팍에 닿은 팔에 열이 느껴졌다. 수일은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얌전히 앞으로 모으고 걸었다. 두산은 수일의 반대쪽 팔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 손은 거칠고 뜨거웠고 어느새 추위가 사라지고 몸에 온기가 돌았다.

데이트라도 하는 커플처럼, 그렇게 두산은 수일을 껴안고 걸었다.

큰길이 나오자 수일은 두산을 밀어냈다.

“사장님한테 호텔 방 하나 달라꼬 하까예? 여 길이 좀 험합니다. 이상한 새끼들도 많고.”

“아니에요. 저는 숙소가 편해요. 여럿이 함께 사는 것도 좋고.”

수일은 혼자 있기 지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늘 혼자였다. 어색한 사이라도 두산과 있는 게 좋았고 이왕이면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고 싶었다.

수일의 말에 두산은 다시 수일의 어깨를 안았다. 대로변에서 그러는 게 싫어 수일은 두산의 팔을 밀어냈다.

“와요?”

“그냥….”

“아까는 잘만 안기싸트만은.”

기분 나쁜가 싶어 두산을 올려다보자 투덜거리면서도 눈은 웃고 있었다.

30분쯤 걸었을까? 낯익은 동네가 나왔다. 아직도 비슷한 골목을 돌아야 해서 혼자 집을 찾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대림동 달세방으로 가는 길보다 더 반가웠다.

“저기, 태욱 씨 말인데요. 괜… 찮아요?”

“안 갠찮을 끼 머 있습니까?”

“그래도 많이 맞아서.”

“맞아도 싸지. 가가 동성연애자거든예. 사장님이 데꼬 있으라 케서 있기는 한데, 이 새끼가 내를 좋아해서 맨날 그 지랄 아입니까. 자고 있는데 만지싸체, 어떤 날은 일나 보면 내 좆 빨고 있제. 진짜 돌아뿐다.”

두산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갈 데는 있대요?”

“지 친구 집에 있을 끼라 카든데, 하루 이틀 지나믄 알아서 기 들어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근데 행님도 참 성격 좋다. 머리끄댕이 잡히노코 글마 걱정이 됩니까?”

두산은 피식 웃으며 수일은 집 안에 들여보냈다.

“내는 다시 나이트 나가 볼랍니다.”

“오늘 고마웠어요. 조심해서 다녀와요.”

수일은 여기까지 걸어오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도 아니고 이 시간에 심야 택시가 잡히려나 몰랐다.

두산은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고 현관 앞에 서서 수일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혹여 자신이 태욱 얘길 물어 기분이 나쁜가 싶었다.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주무시소.”

두산은 그냥 이렇게만 말하고 문을 닫았다.

수일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신발을 벗으려 현관 문턱에 앉았다.

취기가 올라왔다. 수일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원목의 천장엔 꽃 모양의 등이 달려 있었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뜨면 대림동 달세방이고 수일은 그저 이상한 꿈을 꾼 건지도 몰랐다. 수일은 눈을 감았다가 한참 만에 다시 떴다. 여전히 꽃 모양의 등이 보였다.

주머니에 넣어 둔 3만 원이 생각났다.

내일은 삼락 형님에게 돈을 갚아야지.

술도 꼭 사야지.

수일은 이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