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베르사체 풍의 화려한 셔츠를 입고, 담배를 물고 있었다.
한 손엔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윤수일’이란 이름이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서.
너는 쭉 찢어진 사나운 눈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귀찮은 일을 맡은 양, 인상을 잔뜩 쓰고서.
너는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지나가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쳐다보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씨발년, 하고 욕을 뱉었다.
너는 어찌 알았는지 크고 두툼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내 이마에 ‘윤수일’이라고 새겨져 있기라도 한 듯, 거침없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게 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
수일은 일요일 새벽 6시, 부산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안 그래도 후텁지근한 날씨에 담배까지 피워 대니 버스 안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큰 창 아래 난 조그만 창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어 바람을 맞았다.
성인 나이트, 밤무대 가수인 수일은 가수 ‘윤수일’과 동명이인이었다.
생긴 것도 조금 비슷했고, 목소리도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어서 7년 전부터 아예 모창 가수 ‘윤슈일’로 활동했다. 그러나 진짜 가수 윤수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동안 밤무대 가수 윤슈일의 인기는 별로였다.
그나마 사모님들이 멀끔한 외모와 제법 큰 키를 한 수일에게 반해 나이트크럽 호텔 방으로 불러 주었다. 수일은 다른 건 몰라도 빨아 주는 거 하난 끝내주게 했다. 수일의 서비스에 감명받은 사모님들은 나이트에서 허접한 노래를 듣는 대신 지배인을 통해 수일을 바로 호텔 방으로 불렀다.
그렇게 받은 용돈 몇 푼으론 생활이 어려웠다.
수일이 전국 팔도를 돌며 노래를 불러도 손에 쥐는 건 쥐꼬리만 했다.
나이트 사장과 조폭들에게도 돈을 줘야 했고, 사모님들과 연결해 주는 지배인에게도 돈을 지불해야 했다. 거기다 교통비에 숙박비, 식대를 제하면 겨우 담뱃값 정도만 남았다.
이제 서른여섯 살이 된 수일은 몸도 좋지 않았다.
목감기에 폐렴이 겹쳐 석 달이나 일을 쉬는 바람에 3일을 내리 굶었다. 이러다 정말 굶어 죽겠다 싶어 성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공사판을 나갔지만, 일주일도 안 돼 잘렸다. 그래도 그렇게 일하고 받은 돈으로 몇 주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때, 부산의 한 나이트크럽에서 연락이 왔다.
넘진 형님이었다. 넘진 형님의 본명은 최삼락으로 진주 출신이었다.
몇 년 전 전국을 돌다 만난 삼락 형님은 모창은 못했지만, 가수 남진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게다가 밤일도 잘해 사모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당시 같은 여관방을 쓴 인연으로 넘진 형님은 수일에게 밥을 사 주고 술을 사 주고 여자를 사 주었다.
그 형님이 최근 부산의 한 나이트크럽과 전속 계약을 맺은 모양이었다.
신생 나이트라 가수가 부족하다며 3개월 정도 함께할 생각이 없냐 물었다. 모창 말고도 너 부르고 싶은 곡이 있으면 얼마든지 부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도 했다.
수일은 노래고 뭐고 숙식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말에 뒤도 안 돌아보고 무조건 하겠다고 답했다.
버스비가 없었던 수일은 넘진 형님에게 차비까지 빌렸다.
그렇게, 달세로 살던 방을 비우고 여행 가방 하나에 옷과 무대용 화장품만 달랑 챙겨 부산 가는 버스에 올랐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번 쉴 때 오줌을 누고 오뎅을 두 개 먹었다. 배가 고팠지만,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었다.
자다 깨다 졸다 깨다 장장 6시간 만에 부산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터미널 위에 백화점이 있었다. 일요일이라 터미널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과 쇼핑객들로 상당히 붐볐다. 만일을 위해 전화비로 남겨 둔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만지며 수일은 자신을 마중 나온 남자를 찾았다.
남자는 베르사체 풍의 화려한 셔츠를 입고 한 손엔 담배를, 한 손엔 수일의 이름이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여자들의 몸을 어찌나 훑던지 알은척하기 부끄러웠다.
나이는 스물대여섯 정도 되어 보였고 유도 선수라도 되는 양 근육질의 두 팔뚝과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 있었다. 키도 컸다. 178센티인 수일이 올려다볼 정도였다.
남자는 어떻게 알아봤는지 수일을 향해 크고 두툼한 입을 올려 웃었다.
사납던 인상이 소년같이 변했다.
“안녕하십니까, 행님. 윤수일 행님 맞으시지예?”
남자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수일입니다.”
“이야, 맞네. 행님, 말 편하게 하십시오. 저는 백두산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백두산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수일의 손에 들린 가방을 뺏어 들고 성큼성큼 출구를 향해 걸었다. 수일은 두산의 뒤를 쫓았다.
터미널 앞은 택시와 자가용들이 뒤엉켜 빵빵대고 쌍욕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두산은 은색 봉고차로 가 짐을 싣고, 수일이 조수석에 앉자마자 연신 클락션을 울리며 차를 움직였다. 열린 창문으로 끊임없이 욕을 뱉었다.
“씨발 새끼들, 차를 저따 쎄우면 우짜노? 땡크로 밀어뿌든가 해야지. 아저씨요, 거따 차를 세우면 되나? 머라꼬? 니 내 손에 함 죽어 볼래? 그래 개새끼야. 함 덤비 바라.”
누구와 싸우는지 두산은 창문 밖으로 목을 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수일은 남자의 험한 말투에 얌전히 입 다물고 앉아 있었다.
“맞다. 행님! 부산에 와 본 적 있습니까?”
“네. 몇 년 전에 두 번인가 세 번 정도 온 적 있어요.”
“엄마야. 서울 말씨 바라. 간지럽다 간지러버. 여 가시나들한테 인기 쫌 끌겠네.”
반말인지 존대인지 모를 말로 남자는 수일을 보며 능청스레 웃었다.
“숙소는 내하고 같이 쓸 겁니다. 참, 밥은 묵어꼬예?”
“아뇨, 아직.”
“잘댔다. 내도 아직인데.”
두산은 수일을 보고 씨익 웃었다.
표정이 많지 않은 수일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 다음 서둘러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참 자알 생깄다. 윤수일보다 쪼매 딸리긴 하는데, 그래도 잘 생깄네. 그런 소리 마이 듣지예?”
그만했으면 싶은데 두산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6시간을 버스에서 시달린 수일은 안 그래도 두통 때문인지 멀미 때문인지 어지러웠다.
그렇게 두산이 데려간 숙소는 3층짜리 낡은 다세대 주택이었다. 나이트크럽 사장의 소유라고 했다. 3층에 댄서 아가씨들이 묵었고, 2층엔 남자 종업원들과 밴드가 묵었다. 1층은 크럽을 지키는 일명 기도, 그러니까 건달들이 함께 지냈다.
30평 남짓한 1층엔 방 3개에 화장실 1개 그리고 거실과 부엌이 있었다.
수일은 두산과, 지금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이는 동갑내기 태욱과 한방을 쓰기로 되어 있었다. 작은 방 한쪽 벽면을 차지한 짙은 원목 색상의 옷장엔 수건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행님, 올해 연세가 우찌 되십니까?”
“서른여섯이요.”
“진짜요? 이야.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마이 뭇네. 내는 스물다섯입니다. 어디 보자, 행님이 제일 연장자시니까 제일 큰 장 쓰이소. 저짝에 있는 거.”
두산이 가리킨 ‘저짝’은 제일 안쪽 장이었다.
수일이 가져온 옷이라고 해 봐야 무대복 두 벌과 추리닝 세트, 그리고 사복 서너 벌이 전부였다. 팬티와 러닝은 입고 있는 것을 포함해 세 장씩 가져왔다.
방 안은 쓰레기장이었다.
곰팡이가 핀 빈 사발면 그릇에 먹다 남은 빵 봉지며 담배꽁초까지.
냄새는 또 어찌나 나던지 수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행님, 밥 무러 가입시다. 여 돼지국밥 끝내주는 데 있다.”
수일은 무슨 메뉴든 상관없었다. 허기가 져 위산이 분비되다 못해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두산이 데려간 시장통 허름한 국밥집엔 점심시간이라 제법 사람이 많았다.
“할매, 국밥 두 개.”
할매는 두산이 주문하자마자 커다란 솥뚜껑을 열었다. 엄지를 넣어 잡은 뚝배기 두 그릇을 던지듯 놓고 갔다. 수일은 바로 숟가락을 들었다. 너무 배가 고파 손까지 떨렸다. 두산이 뱀 같은 눈으로 수일이 먹는 걸 보더니 느긋하게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지예?”
“네.”
고기 누린내가 났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위장에 라면이 아닌 쌀밥과 고기가 들어간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수일은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이 까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입 안에 밥을 밀어 넣었다.
반면 두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깍두기 한 접시를 직접 가져왔다. 그리고 그대로 국밥 안에 들이부었다.
수일이 쳐다보자, 이리 묵으야 진짜 맛있는데, 했다.
진짜 맛있든 아니든 수일은 비위가 상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제가 먹던 걸 조용히 먹어 치웠다.
수일은 밥알 한 톨, 국물 하나 남김없이 모두 비웠다.
언제 다 먹었는지 수일을 지켜보던 두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일의 몫까지 계산했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수일은 고개까지 숙여 가며 저보다 열한 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주머니에 100원밖에 없던 수일은 말없이 밥값을 내준 두산이 고마웠다. 두산은 뭐가 그리 이상한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더니 묘한 눈을 하고 수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특유의 ‘씨익’ 웃음을 웃었다.
“숙소에 델따 드릴 테니까 한숨 주무이소. 내는 볼일이 있어서 어데 가 바야 하거든예.”
“나이트 안 들러도 괜찮을까요?”
“예. 사장님하고 다 얘기된 거라 개안습니다. 어어어어, 오도바이.”
얘기하는 중에 수일 곁을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봤는지, 두산은 급히 수일을 자신의 몸쪽으로 잡아당겼다. 수일은 두산에게 안기다시피 했다.
“저 씨발롬이, 야이 개새끼야. 니 운전 단디 안 하나?”
수일을 안은 채로 두산은 오토바이가 사라지고 없는 골목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 다음 수일을 내려다보며 ‘행님 개안습니까?’ 했다.
수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두산에게서 떨어졌다.
“근데 행님, 억수로 말랐다. 뭐 이리 말랐노?”
자신의 한 품에 안기는 수일을 보고 두산은 제 일인 양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일은 대답 대신 두산을 앞서 걸었다. 원래는 체격이 좀 있었는데, 최근 몇 달을 굶다시피 하는 바람에 삐쩍 말라 볼품이 없었다.
골목골목을 돌아 숙소로 가는 동안 두산은 청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수일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그러다 두산은 수일의 주위를 한 바퀴를 뺑 돌았고 다시 수일의 앞에 섰다. 아직 어려 그런지 장난기가 많았다.
“서울 어데서 왔습니까?”
“대림동이요. 신도림이랑 가까워요.”
“그래 말해 아나. 내는 서울역이랑 남산 한번 가 밨다 아입니까.”
“아.”
수일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수일도 부산 지리를 몰랐으니 서로 비슷한 처지였다.
“행님도 쌍까풀 수술했습니까?”
“아, 아뇨. 원래 눈이….”
“진짜요? 안 했는데 무슨 눈이 그리 크노? 튀기는 아인 거 같은데. 넘진 행님은 쌍까풀 수술했거든예. 나도 거서 할라다가 말았다.”
튀기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수일은 묻지 않았다.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을 한 두산은 엄지와 검지로 두 눈을 아래위로 벌렸다.
“어떻습니까? 쌍까풀 하면 좀 낫겠습니까?”
수일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쌍꺼풀이 없다 뿐이지 그렇다고 눈이 아주 작은 편은 아니었다. 수일은 처음으로 두산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투박하고 각진 턱에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사나워 보이긴 했지만, 그리 못난 얼굴은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남자다워 보이는 얼굴. 딱 그랬다.
수일의 시선에 두산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바람에 눈이 작아졌다.
“내한테 반했습니까? 뭘 그리 쳐다봅니까, 쑥스럽끄로.”
두산의 농담에 수일은 얼굴을 붉히며 어딘지도 모르면서 앞서 걸었다.
“거 아인데요. 행님, 이짝인데.”
수일을 부르는 두산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수일은 뒤를 돌았다. 두산은 그 자리에 서서 씨익 웃으며 수일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잔뜩 흐린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다 했다.
숙소로 돌아온 수일은 더러운 방 한편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이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새벽같이 일어나느라 피곤했는지 금세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자신을 때리는 느낌에 눈을 떠 보니, 모르는 남자가 수일을 발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행님, 밥 무러 오이소.”
초면인 남자는 수일을 형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제 할 말만 하고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수일은 몇 시간을 잤는지 몰랐지만, 피곤하지 않은 걸 보니 제법 오래 잔 모양이었다.
수일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거실엔 커다란 밥상 두 개가 TV를 가운데 두고 삿갓 모양으로 차려져 있었다.
그 앞으로 두산만큼 큰 사내들이 TV를 보며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었다. 누구 하나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뭘 저리 보나 했더니, 야구 중계가 한창이었다.
야구에 관심이 없던 수일은 이 기이한 광경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렸다.
야구를 보던 덩치들은 수일의 등장에 눈은 여전히 TV를 향한 채 건성으로 반가운 척했다. 수일은 알아서 빈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두산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행님은 엠비씨 청룡 팬입니까, 오비베아스 팬입니까?”
“새끼, 언제 적 엠비씨 청룡이고? 엘지 트인스.”
“청룡이든 트인스든 먼 상관인데? 우리 팀도 아인데.”
수일에게 질문을 던져 놓고 덩치들이 저들끼리 묻고 답했다.
수일은 얌전히 앉아 흰 쌀밥을 숟가락 가득 퍼서 입 안에 넣었다. 여기 있는 동안은 매일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반찬이고 국이고 하나같이 짜고 매웠지만, 상관없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했던 수일은 그저 이 밥상이 감사했다.
“두사이가 그라던데 행님 서른여섯이라믄서예? 여서 제일 큰 형님이네. 서울 어데서 왔습니까?”
이들 중 그나마 작은 남자가 두산과 같은 질문을 했다.
“대림동이요. 신도림 근처.”
“신도림이 어데고?”
“대림동은 어덴 줄 알아서?”
“서울도 몬 가 본 새끼가. 니 가 밨나?”
“수학여행 때 가 밨거든? 육쌈삘딩하고 자연농원!”
“자연농원은 서울 아이그등?”
또 시작이었다.
수일은 덩치들끼리 언쟁하게 내버려 두고, 고개를 처박고 밥을 먹었다. TV에선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과 경기중이었다. 스코어를 보니 롯데가 이길 모양새였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두산이었다.
“밥 무라.”
아무도 현관문 쪽으로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수일만 유일하게 고개를 돌렸다.
두산은 수일을 보자 씨익 웃었다.
“이깄나?”
“거이 다 이깄다. 7회에 3점이나 냈다 아이가.”
두산은 수일의 옆자리에 앉은 덩치를 발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밥은?”
두산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들 중 제일 막내로 보이는 남자가 빨간색 보온밥통에서 밥을 퍼다 내려놓았다.
두산은 팔꿈치로 수일을 툭툭 치더니, 잠은 잘 잤습니까? 하고 물었다. 수일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산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밥으로 시선을 돌렸다.
막내가 두산의 앞으로 제육볶음 한 접시를 새로 내왔다. 돼지비계와 양파만 먹고 있던 수일은 그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두산이 수일 쪽으로 접시를 밀었다.
“행님도 드세요. 많다.”
수일은 염치 불고하고 냉큼 젓가락으로 고깃덩어리를 집었다. 왼손잡이인 두산과 팔이 부딪히자 수일은 엉덩이를 움직여 공간을 만들었다. 두산은 그런 수일을 힐끔 보고는 아까처럼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덩치들은 야구가 끝나고 나서야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밥만 먹은 게 미안해 수일이 도와주려 했지만,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다들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굴은 웃고 있어서 화를 내는 건 아닌 것 같았으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들은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그릇을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TV 앞에 대자로 누워 TV를 봤다. 설거지 당번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막내였다.
수일은 설거지라도 돕고 싶어 부엌으로 향하다가, 누군가 팔을 잡아끄는 통에 근처도 가지 못하고 도로 끌려 나왔다. 두산이었다.
“행님, 하지 마세요. 아 버릇 나빠집니다.”
“그래도 먹기만 해서.”
“다 그라고 큰다 아입니까.”
방으로 들어가자 수일을 발로 차 깨우던 남자가 벌써 들어와 엎드려 있었다. 덩치라고 하기엔 체구도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였다. 앞으로 같이 방을 쓰게 될 태욱이었다.
태욱이 켜 뒀는지 라디오에서 최신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사 했나?”
“어.”
태욱은 거짓말을 했다. 인사는커녕 수일에게 알은체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비키라, 새끼야.”
두산은 가만 엎드려 있던 태욱을 사정없이 발로 찼다. 태욱이 억, 하더니 떼구루루 굴러 옆으로 이동했다.
“행님, 일로 앉으이소.”
두산이 수일을 챙기자, 태욱이 눈을 치켜뜨며 수일을 노려보았다.
수일은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이 오늘은 나이트 구경시키 주라카데예. 테이블 하나 줄 테이까 거서 스트립쇼하고 뱀쇼 하는 가시나들 어떤지도 함 보라꼬.”
“인사는 언제 하러 가면 되나요?”
“인사요? 무슨 인사?”
“사장님이요. 아직 얼굴도 못 봬서.”
“나중에요. 나중에 데꼬 갈 테이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두산은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고 보니 수일은 자신이 일할 나이트 상호도 몰랐다. 숙식 제공이란 말에 흥분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삼락이 형님은 어디서 지내세요?”
“아이고, 간지러버라. 행님, 요 닭살 돋는 거 보이나?”
두산은 벌떡 일어나 수일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왜 그런지 영문을 몰라, 수일은 그저 다리처럼 두껍고 까만 두산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행님, 말투때메 안 그랍니까.”
“아… 그렇게 듣기 싫으세요?”
“씨발, 내 죽는다.”
두산은 실실 웃으며 수일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지랄하네.”
가만있던 태욱이 심드렁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자 두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씨발롬이, 어데 행님들 말하는데 끼어드노? 죽고 싶나?”
두산의 거친 반응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던 태욱이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어찌나 방문을 세게 닫던지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수일은 괜히 미안했다.
“저 새끼가 성격이 지랄 맞아예. 내 아이믄 쟈 성격 받아 줄 사람이 없다 아입니까.”
수일은 대꾸할 말이 생각 안 나 고개만 끄덕였다.
“맞다. 삼락이 아재는 나이트 호텔에 방 얻어 삽니다. 사장님이 전속이라꼬 억수로 신경 쓴다.”
“아….”
“그라고 아지매들이 그렇게 찾아싸서 밤낮이 없다 카대.”
여기서도 삼락 형님은 사모님들에게 인기가 많은가 보았다.
지금도 호텔 방에서 여자 하나 끼고 희희낙락하고 있을지 몰랐다.
“행님은 잉끼 없습니까?”
“저는 별로.”
“얼굴도 잘생깄고 키도 큰데 와 그라지? 거가 마이 짝나?”
두산은 이리 말하며 수일의 아랫도리에 손을 갖다 댔다. 갑자기 들어오는 손에 수일은 급히 몸을 뒤로 뺐다. 수일이 이렇게 반응하면 그만할 만도 하건만, 두산은 수일의 발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기어이 가랑이 사이에 손을 밀어 넣고, 자기 것처럼 수일의 것을 꽉 쥐었다.
“그래 나쁘지 않은데?”
수일은 저도 모르게 두산의 손을 밀어냈지만, 힘이 센 두산은 꼼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뱀 같은 눈을 접어 웃었다. 기분이 상한 수일은 손바닥으로 두산의 팔을 때렸다.
“에이, 그래 때리 가꼬 되겠습니까? 한 개도 안 아프다.”
두산은 장난스레 말하며 그제야 쥐었던 수일의 것을 놓았다. 수일은 목까지 벌게져 두산을 노려보았다.
“말씨도 그렇고, 우째 성질부리는 것도 꼭 가시나 같노.”
수일이 들으라고 한 소리 한 뒤, 두산은 다시 벌러덩 천장을 보고 누웠다.
어색했다. 수일은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았다가, 벽 쪽으로 엉덩이를 밀고 가 등을 기대고 앉았다. 두산이 수일의 움직임에 고개를 틀어 올려다보았다. 수일이 화낸 것도 잊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행님 뱀쇼 하는 거 본 적 있습니까? 내는 이번에 첨 밨거든예. 와, 가시나가 겁도 없더라.”
질문 뒤에 항상 말이 따라붙어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수일은 난감했다.
“뱀쇼 밨습니까?”
“네. 서울에서 몇 번.”
“아 밨구나. 거도 가시나가 비키니 입고 합니까?”
두산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삐삐 알림음이 울렸다. 두산은 허리춤에 걸어 둔 검은색 삐삐를 꺼내 숫자판을 읽었다.
“태욱아! 김태욱!”
두산은 밖을 향해 목청이 터져라 태욱의 이름을 불렀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와?”
“준비해라.”
두산의 말에 태욱은 온몸으로 짜증을 내며 방문을 닫았다.
두산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어나 앉아 벽시계를 쳐다봤다. 시계는 이제 막 저녁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행님은 여서 쉬고 계세요. 12시 쫌 넘어서 데리러 오께예.”
“벌써 가게 나가시게요?”
“예. 볼일이 쫌 이써 가지고.”
“…조심해서 다녀와요.”
수일의 말에 두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수일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쪼매 간지럽기는 한데, 듣기는 좋네.”
수일을 향해 중얼거리듯 이리 말한 두산은 창문에 걸린 수건 하나를 집어 방을 나갔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수일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부산에 내려온 지 겨우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따듯한 밥이 있고 살 집이 있었다. 혼자 있는 것도 아니라 외롭지도 않을 것 같았다.
삼락 형님께 따로 감사 인사라도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수일은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8시가 되자 집 안이 텅 비었다. 덩치들은 까만색 정장에 흰 셔츠를 입고 떼를 지어 나갔다.
집 안에 혼자 남은 수일은 9시까지 TV를 보았다. 이른 저녁을 먹어 조금 출출해지자, 수일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오렌지 주스와 부산 우유가 몇 개씩 들어 있었다.
수일은 먼저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물로 컵을 헹군 다음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쓰레기를 치웠다. 언제 닦았는지 모를 방바닥도 쓸고 닦았다.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방바닥을 물걸레로 닦았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수일은 아까 두산에게 예민하게 군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랬다. 두산은 자신을 마중 나오고 밥까지 사 주며 수일을 챙겼다. 아무리 사장 명령이라 해도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고작 자지 한 번 잡았다고 때리기까지 했다.
수일은 옅은 한숨을 쉬며 욕실로 향했다.
세면대와 거울엔 여기저기 금이 가고 곰팡이가 슬어 더럽기 그지없었다.
도저히 거기서는 씻을 수가 없었던 수일은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욕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세수하고 이를 닦았다.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닦으며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창백하고 볼품없었다.
수일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연습을 했다.
어릴 때부터 표정이 많지 않아 욕을 먹었다.
뻣뻣해 보이면 다들 싫어한다고, 차라리 웃기라도 하라며 많이도 맞았었다. 그런데 수일은 웃는 게 힘들었다. 그게 잘 안 됐다.
쥐뿔도 가진 것도 없으면서 왜 그런지 몰랐다.
차라리 비굴하게 웃으며 설설 기기라도 했다면 지금처럼 발붙일 데 없지는 않았을 텐데.
수일은 한숨을 쉬었다.
무대복을 제외하고 가져온 옷 중에 제일 단정해 보이는 하늘색 셔츠에 남색 정장 바지를 입었다. 셔츠야 그냥저냥 입을 만했는데, 몇 달 새 살이 너무 빠져 바지가 컸다.
집 안을 뒤져 송곳을 찾은 수일은 라이터로 송곳을 달궈 혁대에 구멍을 하나 더 뚫었다.
그렇게 바지까지 다 챙겨 입고 거실에 덩그러니 앉았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수일은 볼 거 없는 TV 대신 거실에 있는 오디오 카세트를 틀었다. 트로트 메들리가 흘러나왔다. 한 사람이 부른 메들리는 일 절씩만 부르고, 바삐 다른 노래로 바뀌었다.
수일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
성인 나이트 밴드에서 전자 키보드를 쳤던 아버지를 따라 수일도 어릴 때부터 키보드를 배웠다. 고등학생이 되자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몇 번 무대에 섰고, 그러다 목소리가 좋으니 노래를 해 보지 않겠냐는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노래를 불렀다. 그때 수일은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미성년자였지만, 제법 어른스럽고 키도 컸던 수일은 아버지가 연주하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는 수일을 밤무대 가수가 아니라 진짜 가수로 키우고 싶어 하셨지만, 수일에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주 아프던 아버지는 알고 보니 간암 말기였고 여기저기 빚을 내 수술을 했지만 한 달도 안 돼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병원비를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된 수일은 진짜 가수의 꿈같은 건 버리고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걸로 부족해 나이트 삐끼부터 밴드 키보드, 청소에 노가다까지 돈 되는 건 다 했다.
그러다 스물세 살 땐가, 나이트에서 노래를 부르던 수일을 보고 중년의 여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지금으로 치면 호스트바였던, 여자 손님만 받는 술집 여사장에게 스카우트되어 몇 년간 호스트로도 일했다. 거기서 잘 빠는 기술을 익혔고 사랑하는 여자도 만났지만 잘 안됐다.
수일은 한 3년 거기서 일하다 여자들에게 술을 받고 몸을 파는 데 지쳐 다시 밤무대로 돌아갔다.
일이 하나도 안 풀리던 수일과 달리, 동명이인에 나이도 비슷한 가수 윤수일은 대인기를 끌었다. 그 바람에 정작 수일은 자기 이름으로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다들 가수 윤수일이 온 줄 알았다가, 수일이 무대에 서면 오징어나 땅콩을 집어 던지고 야유를 퍼부었다. 술잔이 날아오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몇 년을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인 윤창준으로 활동하다 도저히 밥벌이가 안 되어 가수 윤수일의 모창 가수가 되기로 했다.
제 피부보다 몇 배는 어둡게 무대 화장을 하고, 윤수일처럼 깊은 눈을 표현하기 위해 눈화장도 했다. 운동도 해서 몸도 좀 키웠더니 제법 불러 주는 곳이 생겼다. 본명임에도 그 이름은 쓸 수가 없어서 ‘윤슈일’로 활동했다.
그렇게 모창 가수로 지낸 지 7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트로트를 따라 부르던 수일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12시에 데리러 온다던 두산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10시 반이었다.
“행님, 가입시다.”
“네.”
안 그래도 무료하던 수일은 왜 빨리 왔는지 묻지 않고 두산을 따라나섰다.
은색 봉고차 대신 빨간색 프라이드가 집 앞에 있었다.
수일과 두산이 거의 동시에 차에 올랐다. 작은 프라이드는 두 사람이 한꺼번에 타자 심하게 출렁거렸다. 게다가 체구도 큰 두산에겐 너무 작은 차였다. 두산은 씨발, 거리며 시동을 켰다.
“머하고 있었습니까?”
“그냥 TV 보고 노래 듣고.”
“빨리 오길 잘했네.”
두산은 수일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터미널에서부터 지금까지 두산은 수일만 보면 웃었다. 웃으면 사나운 인상이 변해서 좋긴 하지만, 조금 부담스러웠다. 특히, 웃을 때마다 눈을 맞추는 바람에 수일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원래도 표정이 많지 않은 수일이라 억지로 웃어 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산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앞으로 수일이 일할 나이트는 숙소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나이트와 호텔이 붙은 8층짜리 건물로, 번화가에서 조금 외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오성관이라는 간판이 화려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두산을 따라 나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홀로 들어가자 나이트 밴드와 트로트 여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서른 개도 넘는 테이블 중 겨우 10개 남짓한 곳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중년의 남녀들이나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끼리 앉아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공연을 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두산은 맥주 다섯 병에 소주 두 병이 세팅된 테이블로 수일을 데려갔다. 홀 정 가운데에서 약간 좌측에 있는 자리로 무대가 가까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맥주병을 따 수일의 잔과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러브샷 하까예?”
싱거운 농담을 하며 두산은 잔을 들어 큰소리로 건배, 했다. 수일도 입 모양으로 건배, 하고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돈이 없어 맥주 대신 강소주만 마셨던 수일은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에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은 사람이 밸로 없는데, 11시 반만 넘으면 그때부터 막 들어온다 아입니까. 요새 사람들은 시간 낭비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딱 시간 마차 들어와 가지고 스트립쇼하고 뱀쇼만 보고 술 한잔 걸치고 그라고 바로 집에 가삐데예. 머 개중에 맘에 드는 가시나 있으면 호텔로 따로 부르기도 하고. 근데 여 아들이 몸매는 직이는데 쌍판떼기가 밸로라. 행님보다 몬한 아들 수두룩하다 아이가.”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두산은 수일의 귀에 대고 얘기를 했다. 얘기라기보다 소리를 질렀다. 수일은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두산에게서 떨어졌지만, 눈치 없이 계속 따라와 귀에 대고 말을 이었다.
수일의 몸이 기울어 옆에 있던 의자를 짚을 때까지 쫓아오던 두산은 결국 제 할 말을 다 하고 맥주를 마셨다.
나이트 종업원들이 한가한 홀 주위를 맴돌며 여가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연령대가 다양한 남자 종업원들 사이에 간혹 여자도 한둘 보였다.
수일은 맥주를 홀짝이며 홀 안을 두리번거렸다. 빨간 카펫이 깔린 나이트 안은 현란한 사이키 조명으로 정신없이 번쩍거렸다. 홀 바로 옆에 댄스 플로어가 따로 있었지만, 춤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산의 말로는 12시에 시작하는 스트립쇼와 뱀 쇼가 끝나면 댄스 타임이라고 했다. 쇼를 보고 나면 손님들이 후끈 달아올라, 그때부터 활발하게 종업원들을 불러 부킹을 하고 애정 행각을 벌인다고 했다.
가수들은 10시부터 12시까지 비는 시간을 책임졌다.
종업원들은 오다가다 두산에게 꼭 알은척을 했다.
누구에겐 형님이었고 누구에겐 동생, 또 누구에겐 친구인 두산은 넉살 좋게 큰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수일의 등을 쓰다듬으며 ‘새로 오신 가수 행님’이라 소개했다.
“아 맞다. 행님은 결혼했습니까? 아는 있고예?”
“아뇨. 아직.”
“한 번도 안 갔다 왔습니까?”
“네.”
“우째 그라지? 거가 안 섭니까? 아이면 동성연애자?”
이리 물으며 두산은 수일의 가랑이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구.”
“안타깝다 안타까워. 내가 행님이었으면 서울 가시나들 싹 다 후리고 다닜을 낀데. 그 얼굴 내나 주지.”
두산은 혀를 차며, 어디 모자란 사람을 보듯 수일을 쳐다봤다.
수일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맥주를 마셨다.
여가수의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단발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어, 밴드 마스터가 마이크를 잡고 이번엔 자기 밴드가 메들리를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신나는 팝송 전주곡이 흐르자 무관심하던 손님들이 하나둘 반응했다.
“저 행님이 올해 마흔인데예, 세 번 갔다 왔다 아입니까. 어린 가시나들만 보면 환장을 한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밴드 마스터를 보며 두산이 말했다. 이어 키보드와 베이스, 드럼을 치는 남자들의 사소한 개인사를 일러 주었다. 아마 저들에게도 비슷한 스타일로 제 얘길 할 거란 생각을 하며 수일은 두산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두산의 말대로 11시 반이 넘어가자 테이블이 하나둘씩 차기 시작했다. 어디서 술을 퍼마시고 꽐라가 되어 들어온 남자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마 무대 앞 좌석은 일찍 온 점잖은 중년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은 적어도 무대를 향해 술병을 던지지는 않았다.
“잘 보이소. 가시나들 상태가 어떤지. 서울에 비하면야 마이 딸리겠지만, 그래도 몸매 하난 직입니다.”
두산은 의자를 당겨 수일의 옆에 붙었다.
드디어 홀뿐 아니라 무대 조명까지 모두 꺼졌다.
무대를 정리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둠에 익숙해지려는 순간, 무대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보통 사회자가 나와 어마어마한 소개를 하는데, 여긴 그런 게 없었다.
신나는 댄스 음악이 흐르고 무대 양옆에서 여자들이 나왔다.
그저 나오기만 했을 뿐인데도 홀이 떠나갈 듯 박수갈채와 휘파람이 쏟아졌다.
총 일곱이었다.
화려한 깃털 장식과 반짝이가 달린 비키니에 모자를 쓰고 짙은 무대 화장을 한 여자들이 무대를 줄지어 돌며 손을 흔들고 웃었다. 마치 미스 코리아 경연 대회라도 되는 양, 한 명씩 무대 정중앙에 나와 무릎을 굽히고 인사를 했다.
무대 조명이 휘황찬란하게 바뀌더니 신나는 음악이 흘렀다. 음악에 맞춰 여자들은 똑같은 율동을 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적극적인 환호와 박수에 홀의 열기가 달아올랐고, 무대에 선 무희들의 얼굴도 한층 밝아졌다.
두산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무대를 보았다.
반면 수일은 심드렁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이제 수일은 여자들이 홀딱 벗고 춤을 추든 뱀이랑 놀든 관심이 없었다. 칠십 먹은 노인조차 이런 쇼를 보면 흥분하고 발기하는데도 수일은 뭐가 문젠지 그저 무료하고 무관심했다.
두산은 수일의 반응을 보려 힐끔거리다 의외의 반응에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첫 노래가 끝나고, 여자들이 비키니 위에 걸치고 있던 깃털 장식과 천 조각을 벗어 던지자 손님들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스트립쇼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그때, 사타구니 쪽으로 들어오는 손에 수일이 놀라 두산을 보았다.
두산은 뱀 같은 눈을 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이야, 행님. 진짜 문제 많다. 내는 벌쌔로 섰는데 우째 행님은 그대롭니까? 불감쩡이가?”
순간 두산의 손을 쳐 내려다 수일은 그만두었다. 아까 같은 어색한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두산이 자신에게 이상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 생각했다.
무대 조명이 다 꺼지고 정 가운데 한 곳만 동그랗게 비추기 시작했다.
끈적한 음악이 흐르자 그 동그란 원에 여자들이 하나씩 들어와 브라를 벗었다.
홀에선 휘파람과 박수갈채, 환호가 터졌다.
그리고 두산은 그 억세고 큰 손으로 수일의 그곳을 조몰락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일이라도 성기를 자극하는 악력에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일은 벌어졌던 허벅지를 오므리며 두산의 손을 잡았다.
“이러지 마세요, 두산 씨.”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두산은 수일의 말에 묘한 눈을 했다.
두산은 수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무대에 선 여자들은 모두 젖가슴을 흔들고 있었고, 수일은 두산의 손을 치우려 안간힘을 썼다. 입에서 신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은 수일은 애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마세요.”
“그라믄 딴 데서 할랍니까?”
두산이 능청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수일은 수치스러움에 열이 올랐다. 자신의 처지만 아니었다면 벌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새끼 조폭에게조차 눈 밖에 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결국, 수일은 두산의 말에 대꾸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에이, 장난입니다, 장난. 행님도 남자는 맞네.”
왜 그런진 몰랐지만, 수일의 것을 잡고 있던 두산이 손을 뺐다.
마지막 남은 맥주병을 따서 자신의 빈 잔에 술을 따른 두산은 반쯤 남아 있는 수일의 잔에는 소주를 채웠다. 두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일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수일은 맥주보다 소주가 더 많이 든 잔을 들어 한숨에 모두 들이켰다.
두산은 다시 1/3 정도 맥주를 따르고 잔이 넘치도록 소주를 부었다. 수일은 두산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세 잔째 마시자 술기운이 확 돌기 시작했다. 온몸에 열이 올랐다.
수일의 몸에 열이 오른 만큼 무대도 뜨거워졌다.
일곱이던 여자들이 둘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중 하나가 동그란 조명 아래 서서 지렁이처럼 몸을 흔들며 몸을 쓸었다. 여자는 무대를 등지고 서서 천천히 비키니 팬티를 벗었다.
홀은 아주 난리가 났다.
그때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욕설과 함께 앉으라는 고함이 들렸다.
당장 싸움이 날 것처럼 분위기가 험해지자, 종업원 중 하나가 일어난 손님에게 다가가 그를 자리에 앉히려 했다. 잔이 깨지는 소리에 비명까지. 홀이 난장판이 되었다.
수일은 술이 올라 흐릿한 눈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 손님이 술병으로 종업원의 머리를 가격한 모양이었다. 종업원은 머리를 부여잡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여태 가만 보고 있던 두산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고, 언제 들어왔는지 다른 어깨들도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무대에서 팬티를 벗었던 댄서는 사라지고 없었다.
“손님, 잠깐 저 좀 따라오시겠습니까?”
“은다1), 씨발롬아. 내가 니를 와 따라가노?”
“아이고, 우리 손님 마이 치하셨따. 그라믄 제가 터치 쫌 하겠습니다.”
두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깨들이 양옆에서 그 손님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손님의 친구들이 욕을 하며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들을 막고 선 어깨들을 보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두산은 자리를 비우는 게 미안하다는 듯, 수일의 얼굴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죄송합니다, 행님. 제가 일이 좀 있어 가지고 먼저 일어나께예. 혼자 쫌 있으이소.”
그리고 종업원 중 하나를 불러, 수일의 테이블에 술과 안주를 더 갖다주라고 일렀다.
수일은 어두운 안으로 사라지는 두산의 거대한 뒷모습을 보며 강소주를 들이켰다.
“씨발 새끼.”
저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개새끼. 내가 병신 핫바지로 보이냐?”
중얼중얼 수일은 두산의 앞에선 하지도 못할 욕을 해 대며, 자신의 한심한 처지에 한숨을 쉬었다.
“윤수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넌 이렇게 살고 싶니?”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고, 수일은 하염없이 술을 들이부었다.
어떻게 집에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