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소원우는 스페인에서 가져온 짐들을 다 풀지도 못하고, 이사 준비에 매달렸다. 소원희의 이삿날이 앞당겨지면서 소원우도 덩달아 바빠졌다.
부모님은 소원우가 원한다면 이 집에 계속 살아도 된다 했지만, 소원우도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살기에 집은 너무 넓었고, 아직 2년 더 다녀야 하는 대학교와도 멀었다. 소원희의 대학에 맞춰 구했던 집이니 굳이 소원우가 이 동네에 계속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소원희는 어차피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가지고 나갔다. 남은 가재도구들을 처리하는 건 소원우의 몫이 되었다.
“원우야, 이건?”
“어, 그건 과 선배가 가져가기로 했어. 현관 근처에 놔주라.”
쓸 만한 물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잔뜩 나눠 주었는데도 이삿짐은 끝이 없었다. 이 집에 들어올 때는 짐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불어났는지 의아했다. 1년도 채 살지 않은 스페인의 집을 정리하는 것도 며칠 걸렸으니, 6년을 산 이 집은 더 오래 걸릴 터였다. 군대와 스페인에 간 기간을 빼면 정작 2년 정도밖에 살지 않았지만.
소원우는 부지런히 물건을 나르는 권차경을 흘긋 쳐다보았다. 권차경이 얼마나 부지런한가 하면, 오죽하면 소원희가 소원우에게 권차경이 너무 수고한다고, 일당을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
“차경아, 좀 쉬어. 아까부터 계속 일만 했잖아.”
“괜찮아. 별로 안 힘들어.”
권차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사귄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권차경은 한결같았다. 사람 마음이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권차경은 소원우의 의심을 물리치듯 변함없이 사랑을 표현했다.
권차경은 비자 만료가 넉 달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소원우의 일정에 맞춰 미련 없이 짐을 꾸렸다. 스페인에 온 이유도 소원우였고, 스페인을 떠나는 이유도 소원우였다.
권차경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다는 말에 소원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걔는 너 쫓아다니는 거 말곤 아무 계획이 없대? 한국에 오면 한번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해. 내가 졌다.’
사귀는 것까지는 받아들여도 권차경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딱 잘랐던 소원희는 그 후로 가끔씩 권차경의 안부를 물었다. 소원우는 괜히 쑥스럽고 어색해서 딱딱한 목소리로 권차경의 소식을 전하곤 했다.
소원희가 같이 밥을 먹자더라고 전했을 때 권차경은 환하게 웃었다. 너무 기분 좋은 얼굴을 하기에 소원우는 저도 모르게 뾰로통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원희 만나는 게 그렇게 좋아?’
아마도 질투였을 것이다. 권차경은 소원우에게 그랬듯 소원희에게도 다정했다. 권차경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소원우의 얼굴에 다 드러났다.
‘원희잖아. 네 누나.’
‘그러니까. 내 누나 만나는 게 그렇게 좋냐고.’
‘네 가족이 드디어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데 당연히 좋지.’
권차경은 소원우의 마음을 다 알겠다는 듯 소원우를 껴안으며 말했다.
‘원희는 네 가족이고, 윤찬희는 네 친구고, 전영재도 네 친구고, 서은나도 네 친구야. 그리고 제이든도.’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가만히 듣고 있던 소원우는 권차경의 마지막 말에야 그 뜻을 이해했다.
권차경의 스페인의 삶은 소원우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소원우는 그게 늘 염려됐다. 스페인에서의 삶은 권차경에게도 특별할 경험일 터였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스페인에서 더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지 않은 걸 후회할까 봐 소원우는 걱정이 됐다.
‘네 옆에 있는 모든 날들이 다 특별해.’
낯간지러운 말로 권차경은 소원우의 걱정을 일축시켰다.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는 거 아니냐고 웃어넘겼는데, 그런 지나가는 말들이 다 진심이었다.
‘제이든도 네 친구야.’
권차경이 오랫동안 소중히 지켜 온 관계까지도 소원우가 중심이 됐다. 권차경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삶도 소원우와 분리시켜 볼 수 없다는 듯이 단호한 말투였다.
어쩌면 별 고민이나 걱정 없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권차경 때문일지도 몰랐다. 소원우가 어딜 가든, 무엇을 선택하든 권차경이 옆에 있을 것이다. 그럼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원우야, 테이프는 어디 있어?”
“테이프? 내 책상 위에 있을 거야.”
잠깐 쉴 겸 소원우는 커피를 끓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권차경은 선반 앞에 서 있었다. 권차경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소원우도 눈을 돌렸다.
몇 개의 사진이 꽂혀 있는 액자에 권차경은 없었다. 오래전에 권차경과 함께 찍은 사진을 빼고 윤찬희와 찍은 사진을 넣어둔 채로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다.
권차경은 한참을 사진을 바라보다가 낮게 읊조렸다.
“아쉽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뭐가?”
소원우가 의아한 눈으로 묻자 권차경이 미소 지었다.
“이사 가는 거. 추억이 많은 집이잖아.”
권차경은 그렇게 말하고서 한 문장을 덧붙였다.
“나쁜 기억은 더 많겠지만.”
소원우는 물끄러미 권차경을 바라보았다. 권차경은 정면만 계속 보고 있었는데도 소원우가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권차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보탰다.
“한국에 돌아오면 이곳에서의 나쁜 기억들을 전부 좋은 기억으로 바꾸고 싶었거든. 더는 마음에 걸리지 않게.”
권차경이 이 집을 마지막으로 왔던 게 2년 전이었다. 방 문턱을 사이에 두고 소원우는 소리를 질렀다. 네가 이 집에서 한 짓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소원우는 권차경의 고백을 무참히 밟아 대고 권차경을 돌려보냈다. 그때만 해도 권차경을 다시 자신의 방에 들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친구라는 관계도 완전히 끝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권차경은 과거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소원우가 그때처럼 권차경의 마음을 의심하게 될까 봐, 어렵사리 쌓은 관계가 한순간에 또 무너질까 봐. 항상 당당하게 사랑을 말해 놓고도 권차경은 과거에서 완전히 멀어지지 못했다.
소원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 내 방 들어가면서 무슨 기억부터 떠올렸어?”
권차경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너 머리 좋잖아. 내가 이 방에서 한 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걸. 맞지?”
소원우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엔 앨범에 넣어 두지 못한 사진이 수십 장 들어 있었다. 모두 권차경과 같이 찍은 사진들이었다. 스마트폰 덕분에 사진은 넘치게 많았다. 메시지로 받은 사진은 화질이 떨어져 흐릿하게 보이는데도 그런 것까지도 소원우는 전부 인화해 놓았다. 권차경과 함께한 시간들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이 함께하고 싶었다. 늘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사진들은 서랍 속에 수북이 쌓여 갔다. 충분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욕심만 부렸다.
소원우는 책상 서랍을 탁, 닫았다.
“나는 지금도 잘못했다고 생각해. 너한테 키스한 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잘 거야.”
“원우야.”
“근데 이런 생각도 또 들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냥 그 밤을 아무 일 없이 보냈으면 우린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을까. 혹은 간간이 연락만 오가는 애매한 사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휴가 나왔다고 따로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권차경과 만날 일이 없으니 생각보다 더욱 간단하게 관계가 끊어졌을 가능성도 컸다.
“너에게 나는 좋게만 기억될 거고, 나에게도 너는 아련한 첫사랑으로 남았을 거야.”
그러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서로를 떠올릴 일도 차츰 줄어들 테고, 또 나이를 하나둘 먹으면 오래전에 좋았던 추억들을 떠올릴 여유도 없이 바쁜 삶을 살면서 새롭게 쌓은 기억들로 살아갈 터였다.
“우린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줬지만,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소원우는 머그컵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권차경의 손에 들린 것도 빼앗아 옆에 놓았다.
소원우는 권차경의 앞에 바짝 붙어 섰다. 권차경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천천히 얼굴을 권차경의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댔다. 입술은 아주 살짝 스친 정도였다. 오래전에 그랬듯.
“좋아해.”
나직하게 속삭이고는 소원우는 권차경의 눈을 가린 손을 조심스럽게 뗐다. 소원우의 손 아래에서 감겨 있던 눈꺼풀이 느릿하게 올라갔다.
“나도.”
화답이 들려왔다.
소원우는 씨익 웃었다.
“이불 안 들여놓길 잘했다.”
소원우는 침대에 누워 옆자리를 퉁퉁 손바닥으로 쳤다.
“올라와.”
“짐 정리는?”
“섹스 안 하고 싶어?”
“하고 싶어.”
“그러면서 딴소리하긴.”
권차경이 피식 웃으면서 소원우의 옆자리에 누웠다.
소원우는 침대에 누워 권차경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셈을 할 수 없을 만큼 함께 보낸 밤이 많은데도 권차경의 가슴이 매번 빠르게 뛰는 탓에 버릇처럼 소원우는 권차경의 심장박동을 체크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젠 적응됐을 거 아냐.”
“적응은 했지.”
“그럼 좀 차분해져 봐.”
“노력은 해 보겠는데 장담은 못해.”
장난스러운 응수에 소원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권차경이 자신에게 이렇게 반응하는 게 좋기만 했다. 싫을 리가 없었다.
소원우는 팔을 들어 권차경이 옷을 벗기기 쉽게 거들며 말했다.
“이 집에서 하는 건 처음이다.”
“응.”
소원우는 권차경의 입술에 입을 쪽, 맞췄다. 그대로 물러나려는데, 권차경이 도로 입술을 부딪쳐 왔다. 쪽쪽쪽, 연이어 입술이 가볍게 부딪쳤다. 입술이 부딪치는 마찰음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퍼져 나갔다. 그 사이에 입고 있던 바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몸에 걸친 거라곤 속옷 하나가 전부였다.
“손이 더 빨라진 것 같다?”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권차경의 입술은 소원우의 견갑골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여기 뼈 아래, 작은 점이 있어.”
“그래? 몰랐어.”
권차경이 어느 한 지점에 길게 입을 맞췄다. 아마 점이 있는 부분인 듯했다. 그러더니 소원우의 온몸을 헤집으며 점이 있는 곳곳마다 입을 맞췄다.
소원우는 새삼 방 안이 환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점들을 그리 잘 찾나 했더니 아직 대낮이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적나라하게 맨몸이 드러났다. 소원우가 몸을 살짝 움츠리자 권차경이 소원우의 목덜미에서 입술을 떼고 물었다.
“부끄러워?”
“아니……, 뭐, 부끄럽다기보다는…….”
이렇게 자신이 섹스를 좋아했나 놀랍기도 하고, 정확히는 섹스가 아니라 권차경이 좋은 것 같은데 지금 그렇게 말했다가 이삿짐 싸는 건 완전 무리일 것 같아서 소원우는 사실을 숨겼다.
전희가 퍽 길었다. 평소 권차경은 전희를 길게 하는 편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길었다. 전희만으로 소원우는 두 번이나 사정했다. 배에 튄 정액을 권차경은 머뭇거리지 않고 혀로 핥았다. 열이 올라 정신없는 상황에도 권차경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안 먹어도 될 땐 먹지 좀 마.”
소원우는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로 부탁을 했다.
권차경이 입꼬리를 올리며 성기에 콘돔을 씌웠다. 항상 소원우를 먼저 사정시킨 후에 권차경은 자신의 욕망을 풀었다. 소원우를 위해 그러는 것 같은데, 소원우는 나름대로 불만이 있었다. 사정을 하고 탈력해서 숨을 헐떡일 때에 권차경은 묵직해진 성기를 소원우에게 넣었다. 비좁은 구멍에 커다란 성기가 들락날락하는 건 아무리 여러 번을 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권차경은 사정이 빠른 편도 아니고, 한 번 토해 내고도 바로 연이어 발기하곤 해서 권차경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갑자기 둔부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젤은 둔부를 축축하게 다 적시고 이불로 흘러내렸다.
“원우야, 넣을게.”
촉촉이 젖은 구멍으로 손가락이 들어왔다. 검붉은 성기는 단숨에 제 일을 끝마치고자 할 텐데도 권차경은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구멍을 넓히며 소원우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
소원우는 이불을 꽉 붙들었다. 어딘가를 붙잡지 않고 커다란 성기를 받아들이는 건 힘겨웠다.
“날 잡으라니까.”
권차경은 매번 소원우의 주먹 쥔 손을 풀고 자신의 팔이나 어깨를 짚게 했다. 손바닥이 손톱에 긁혀 상처 난 걸 본 후로부턴 무조건 자신의 몸에 기대게 했다. 손톱이 짧은 데도 워낙 강하게 누르다 보니 권차경의 어깨나 팔, 등에 소원우의 손톱자국이 사라질 일이 없었다.
“너 수영장 갔다가 한 소리 들었잖아.”
“애인과 사이가 좋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한 것뿐이야.”
“자국 거의 다 없어졌는데 새로 또 생긴 거 들키면 민망하잖아.”
“난 안 민망해.”
“내가 민망하다고. 그 형 말이야, 실실 웃으면서 나보고 부럽지 않느냐고 하는데 표정 관리하느라 완전 힘들었어.”
소원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권차경과 함께 수영을 하는 건 좋은데, 손톱자국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다른 수영장으로 옮길까?”
“우리 거기 며칠 안 다녔거든? 나 이제 막 수영에 재미 들렸어. 이참에 제대로 해 볼 생각이야.”
“수영 재밌지?”
권차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하던 날, 소원우는 권차경에게 숨기고 있던 사실 하나를 말했다. 바다와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는지 권차경은 눈을 크게 뜨고 소원우에게 재차 물었다.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바다를 이틀에 한 번 꼴로 갔다. 권차경이 바다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바다 주변 경관이 예쁘고 아름다워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노을을 바라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동안 나에게 맞춰 준 거야?’
권차경과 함께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권차경은 거짓말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맞춰 준 거냐고 물었다. 권차경은 알지 못할 것이다. 소원우는 권차경의 그 질문 때문에 바다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
“거 봐. 수영하니까 체력이 좋아졌잖아.”
“벌써? 어떻게 알아?”
권차경은 피식 웃으며 성기를 좁은 구멍에 쑥 밀어 넣었다. 젤 덕분에 안이 흥건하게 젖었고, 손가락으로 잘 풀어두어 아프지는 않았지만, 느닷없는 시작이었다.
“전보다 잘 받아들이고 있거든.”
권차경은 태연스레 소원우의 질문에 답하고선 성기를 안까지 밀어 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마찰음이 권차경의 움직임에 따라 거세졌다. 엉덩이와 성기가 닿을 때마다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에 소원우의 귀는 점점 빨개졌다.
권차경이 허리를 뒤로 빼고 다시 깊게 찔렀다. 소원우가 흥분하는 지점을 정확히 아는 움직임이었다.
“아…….”
소원우의 입에서도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극을 받은 내벽은 권차경의 성기가 찌르는 곳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권차경의 목을 둘러 안은 팔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소원우의 몸은 권차경에게 완전히 끌려갔다. 제대로 힘을 주고 있는 곳은 권차경에게 매달린 팔밖에 없었다. 온몸에 저릿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읏! 아윽…….”
조그마한 유두도 제 존재를 과시하듯 단단해져서 권차경이 손끝으로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허리가 비틀거렸다.
흥분에 젖은 건 권차경도 마찬가지였다. 검붉은 성기는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소원우의 안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권차경은 소원우의 눈두덩이에 입을 맞췄다.
“원우야, 힘들어?”
“말, 시키지…… 마…….”
대화할 시간에 하던 일에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소원우의 몸의 모든 곳이 권차경에게 예민하게 반응했다. 권차경은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한 번 핥고는 박차를 가했다. 질퍽한 소리도 절정에 달했다. 빠르게 삽입하던 권차경이 만족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안을 꽉 메우던 존재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권차경은 희뿌연 정액이 들어찬 콘돔을 벗겨 냈다. 콘돔에서 나온 정액 몇 방울이 소원우의 몸에 떨어졌다. 권차경이 손바닥으로 정액이 묻은 소원우의 허벅지 안쪽을 슥 닦아 냈다.
“흐흣.”
야릇한 신음소리에 권차경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한 번 더 해도 돼?”
“……뭐?”
“방금 네가 낸 소리 때문에 또 섰어.”
나른해져서 눈만 끔뻑대던 소원우는 어느새 또 고개를 든 권차경의 성기를 보고 황망한 얼굴을 했다.
권차경은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체력적으로 월등히 힘든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너무해도 너무했다. 소원우는 자신의 엉덩이를 무방비하게 내주면서 아무래도 근력 운동도 따로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 * *
큼직한 상에는 빈틈이 없었다. 남자 넷이 먹는다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이걸 혼자 다 만들었어?”
“그럼. 내가 멀리서 온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솜씨 좀 부렸지.”
전영재가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나을 거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긴 잡채와 찜닭, 불고기가 젓가락을 불렀다. 잘 익은 김치와 콩나물무침, 멸치볶음도 소담히 상 한편을 차지했다.
“원우야, 이건 안 먹어 봤지?”
전영재가 상 가운데에 놓인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칼집을 낸 표고버섯을 고기와 배추, 깻잎이 둘러쌌다. 냄비 모양 따라 동그랗게 겹겹이 쌓인 속재료들이 마치 꽃처럼 보였다.
“밀푀유나베라는 건데, 나도 오늘 처음 해 봤어.”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선 맛있는 냄새가 났다. 전영재는 속재료를 찍어 먹을 소스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고기나 배추가 적당히 익었을 즈음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소미 못 만나서 아쉽다.”
“다음엔 소미랑 채현이랑 다 같이 보자. 너네 준다고 마카롱 챙겨 놨으니까 이따 먹어.”
강소미는 얼마 전에 마카롱 가게를 차렸다. 유동 인구가 꽤 많은 대학가라 금방 입소문이 났다. 오픈한 지 서너 시간이면 꽉 찼던 쇼케이스가 텅 빈다고 했다.
“둘 다 한국에 완전히 들어온 거 맞지?”
소원우는 복학 일정에 맞춰 한국으로 들어왔다. 권차경은 비자가 만료되려면 몇 달 남았지만 미련 없이 스페인 생활을 접고, 소원우를 따라나섰다.
“차경이가 회사 관두고 스페인에 갔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소원우는 괜히 뜨끔해져서 어색하게 웃었다.
“안 놀란 사람 없을걸.”
윤찬희가 혼잣말처럼 툭 말했다. 퍽 불만스러운 말투였다. 권차경이 낮게 웃었다.
“넌 스페인 왜 간 거야?”
전영재가 물었다. 전영재로선 궁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는데도 소원우는 말문이 막혔다. 권차경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소원우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윤찬희는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권차경을 빤히 쳐다보았다. 권차경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원우가 보고 싶어서.”
쿨럭.
이 대화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말없이 음식만 집어먹던 소원우는 헛기침을 토해 냈다. 권차경이 바로 물을 건넸다. 소원우는 컵에 담긴 물을 단번에 비웠다.
전영재는 권차경이 농담하는 줄 알았는지 푸하하, 웃다가 미묘한 분위기에 슬쩍 눈치를 살폈다. 같이 비웃을 줄 알았던 윤찬희는 지나치게 조용했고, 소원우는 목이 타는지 물만 연달아 마셨고, 권차경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솔직하네.”
윤찬희가 한마디를 내뱉고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 말 진짜야? 농담 아니고?”
전영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정말 원우가 보고 싶어서 간 거라고?”
권차경은 소원우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복작하던 집 안에 왠지 모를 침묵이 감돌았다. 윤찬희가 음식을 집어먹으며 맛있다고 연신 중얼거렸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분위기를 전화시켜 볼 요량으로 전영재는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정도 좋지만 이제 서로에게서 독립해야 되지 않겠냐? 너네 그러다 연애 못 해.”
푸흡.
어디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윤찬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웃어 댄 후에 전영재에게 말했다.
“그런 걱정 부질없다.”
“왜 부질없어. 애인보다 친구만 챙긴다고 차인 애가 내 주변에만 셋이야. 너네 둘 다 애인 없이 지낸 지 2년 되지 않았나?”
소원우는 난감한 낯으로 윤찬희를 흘긋 쳐다보았다. 전영재에게 거짓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사실은 애인이 있고, 그 애인이 옆에 있는 권차경이라고 넙죽 털어놓기도 그래서 눈치만 보았다.
“얘들은 알아서 연애 잘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너 요리학원 다녔다더니 실력이 장난 아닌데?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
소원우의 시선을 알아챈 윤찬희가 뒤늦게 화제를 돌렸다. 칭찬을 들은 전영재는 가슴을 쫙 펴며 으스댔다.
“이 요리 솜씨 덕분에 우리 소미한테 사랑받고 있지. 너네도 결혼하기 전에 요리나 살림 좀 배워 놔. 그냥 하는 말 아니고, 집안일 하잖아? 손 안 가는 데가 없더라, 진짜. 의외로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더라고.”
며칠 전 이사를 한 소원우는 전영재의 말에 완전히 동의했다. 혼자 사는 집이라 넓지도 않은데 청소할 데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데 하루를 꼬박 보냈다. 권차경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며칠 더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페인에선 음식 다 해 먹었어?”
“차경이가 했어. 차경이한테 도움 많이 받았지.”
권차경이 바르셀로나에 온 이후론 요리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간단한 식료품들도 권차경이 항상 넉넉히 사서 넣어 두었기 때문에 두 손 무겁게 장 볼 일도 많지 않았다.
“차경이가 원우한테 참 지극정성이야. 연애할 때 원우한테 하는 것처럼만 해도 차경이가 차일 일은 없겠다. 안 그러냐, 원우야?”
또 어디에선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났다. 보나마나 윤찬희일 터였다.
소원우는 대충 대답을 넘기려다가 권차경과 눈이 마주쳤다. 소원우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듯 권차경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뭐……. 그럴지도.”
소원우는 말을 얼버무렸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답하기에 너무 머쓱한 질문이었다. 게다가 내막을 알고 있는 윤찬희가 옆에 있으니 더 민망했다.
“야, 차경아. 너도 연애할 때 싸우기도 하고 그래?”
전영재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안 싸우는 커플이 어딨냐. 말다툼 정도는 다 하겠지.”
권차경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찬희가 불쑥 비집고 들어왔다.
“아니, 왠지 권차경은 애초부터 싸울 일을 안 만들 것 같은데.”
“연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우리야 모르지. 권차경. 너도 고민이 있냐?”
윤찬희는 실룩실룩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로 질문을 던졌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놀려 대려는 목적이 더 커 보였다.
“그래, 차경아. 너도 고민이 있어? 뭐든 말해 봐. 나 결혼했잖아. 쓸 만한 조언 하나 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전영재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맞아. 영재한테 한 번 물어나 보지? 고민이 아예 없진 않을 거 아냐.”
윤찬희는 건수를 잡은 사람처럼 잔뜩 흥분했다.
윤찬희와 전영재는 욕과 핀잔과 불평이 오가는 사이였지만 둘이 마음 맞을 땐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소원우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게?”
“화장실.”
윤찬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갔다 오라는 손짓을 했다.
“천천히 볼일 보고 와라.”
그럴 생각이었다. 소원우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 커버를 내리고 앉았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내 게임을 실행했다. 두 판 정도면 대화가 얼추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었다.
문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소원우는 문을 열고 상황을 파악하는 대신 묵묵히 게임만 했다.
소원우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예상대로 대화는 마무리되어 있었다.
전영재가 방방 떨며 소원우가 일부러 피한 대화 내용을 전달해 주지만 않았더라면 소원우는 아무것도 몰랐을 터였다.
“원우야. 차경이 존나 대단한 사랑꾼이야.”
“어?”
“고민이 뭔지 알아? 애인이랑 한시도 떨어지기 싫대. 매일 붙어 있고 싶은데 혹시 자길 귀찮아할까 봐 걱정이랜다.”
윤찬희가 경악스런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아오, 이딴 고민일 줄 알았으면 안 물어봤지. 이 망할 놈의 호기심. 남의 연애에 관심 갖는 게 아니었는데.”
윤찬희와는 달리 전영재는 감동한 얼굴이었다.
“차경이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었어. 얘도 그냥 사랑에 빠진 한 남자야.”
혼자 두 손을 마주 잡고 감동에 젖어 있던 전영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근데 차경이 너 지금 연애해? 뭔가 고민이 현재 진행형인데?”
정적이 흘렀다. 순식간에 냉랭해진 분위기에 전영재는 말이 없어진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나 뭐 잘못했냐? 분위기 왜 이래?”
윤찬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잘못은 아니고 눈치가 없달까.”
“내가? 나 눈치가 없다고?”
“어.”
“무슨 개소리야. 내가 왜 눈치가 없어.”
“그럼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원우 민망해하잖아.”
“원우가 여기서 왜 나와? 원우가 왜 민망한데?”
또 침묵이 찾아왔다.
소원우는 말없이 상 위의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밥은 아까부터 다 먹었는데 얘기를 나누느라 빈 그릇들을 그대로 방치해 둔 상태였다.
“원우야, 놔둬. 내가 옮길게.”
“괜찮아. 너는 상 좀 닦아 줘.”
“상도 닦고, 그릇도 내가 옮길게.”
권차경과 소원우가 뒷정리를 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영재가 심각하게 말했다.
“쟤네 친해도 너무 친하다. 저러면 여자친구가 힘들어.”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둘이 오붓하게 잘 먹고 잘 살 거야.”
“잘 먹고 잘 살기는 하겠지. 그게 아니라, 난 쟤들 여자친구가 걱정……. 어, 그러고 보니까 차경이 애인이랑 한시도 떨어지기 싫다면서 원우랑은 매일 만나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여자친구는 언제 사귄 거지?”
전영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송했다. 전영재의 질문을 옆에 있는 윤찬희는 물론, 달그락 소리를 내며 그릇을 정리하는 소원우와 권차경도 들었을 텐데도 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남 @중독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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