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발렌시아는 직항이 없어 파리를 경유한 탓에 여정이 길었다. 노곤한 몸으로 발렌시아 시내로 이동했다. 한겨울인데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건물들마다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거리를 밝혔다.
소원우가 살 집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교수의 할머니인 나탈리는 소원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적적하게 살고 있었는데, 손자가 생긴 것 같다며 인자하게 웃었다.
소원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은 넓고 깔끔했다. 방이 네 개나 있어서 나탈리 혼자 살기에는 커다란 집이었다. 나탈리는 햇살이 잘 드는 방을 소원우에게 주었다.
나탈리는 영어를 못해서 스페인어로만 대화를 해야 했는데, 방학 내내 교수를 도우며 공부했기에 간단한 회화 정도는 문제없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소원우는 쓰러져 잠들었다. 열네 시간을 푹 잔 뒤에야 일어났다. 정오가 넘어서 일어난 소원우에게 나탈리는 점심을 차려주었다.
『피곤한 것 같아서 일부러 안 깨웠어.』
『감사합니다. 방이 너무 좋아서 잠이 잘 오네요.』
나탈리는 소원우가 오기 전에 대청소를 하고, 새 매트리스를 사서 깔았다. 이불도, 커튼도 다 새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우리 안드레가 아끼는 아이라던데 그럴 수는 없지.』
나탈리는 소원우의 앞에 바게트와 토르티야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커피? 아니면 오렌지주스?』
『오렌지주스요. 이 맛이 엄청 그리웠어요.』
달콤한 오렌지를 바로 짜서 내린 주스는 한국에서 먹어 보지 못한 맛이었다. 오렌지를 사서 집에서 짜보았지만, 당도가 낮아서 그런지 스페인에서 먹은 것과 맛이 달랐다.
두툼한 토르티야는 따뜻하고, 촉촉했다. 군데군데 박힌 감자와 양파가 아삭아삭하게 씹혔다.
『맛있어요. 나탈리. 나탈리의 토르티야가 이제까지 먹은 토르티야 중 최고에요.』
『거짓말인 건 알겠지만, 기분은 좋구나.』
나탈리는 싱긋 웃으며 소원우의 접시에 토르티야를 하나 더 올려 주었다. 소원우는 토르티야를 큼직하게 썰어 입에 넣었다. 소원우의 접시가 비워질수록, 나탈리의 미소도 커져 갔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니?』
『은행 가서 계좌 만들고, 시내 한 바퀴 쭉 돌아볼까 해요.』
『대성당 옆에 있는 미겔레테 탑에 올라가면 발렌시아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니까 거기도 한 번 올라가 보렴.』
『그럴게요. 나탈리,』
나탈리는 소원우에게 집 열쇠를 건넸다.
『아무 때나 편하게 들어와. 나는 밤귀가 어두우니까 늦게 들어와도 된단다. 대신 언제 들어올지 연락은 꼭 해 줘야 한다.』
『그럼요. 나탈리. 너무 늦게 들어오진 않을 거예요.』
소원우는 먹은 접시를 설거지하려 했지만, 나탈리는 자신이 하겠다며 소원우를 밀어냈다. 첫날은 잘 먹고 잘 놀아야 한다는 게 나탈리의 주장이었다. 발렌시아는 아직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지만, 나탈리 한 사람만으로도 이미 발렌시아에 대한 애정이 차올랐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서 햇살은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한국의 건물들과는 전혀 다른 건축물들이 즐비한 거리를 걸으니, 스페인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은행에서 계좌를 만든 다음 나탈리의 추천한 대성당에 올랐다. 좁은 계단을 꼬불꼬불 돌았다. 종탑 전망대에 오르자 발렌시아 시내가 펼쳐졌다.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지와 발렌시아의 중심 레이나 광장, 저 멀리 축구장도 내다보였다.
소원우는 한참을 서서 발렌시아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온 만큼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잘 도착했다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권차경에게는 이번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소원우에게서 답이 오지 않자, 권차경은 전화를 했을 것이다. 한국의 번호는 해지하고 왔기 때문에 권차경은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걸 보고 소원우가 스페인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괜찮을 거다. 괜찮지 않았더라도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 소원우의 빈자리에도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권차경을 위로하듯 소원우는 조용히 속삭였다.
* * *
발렌시아는 바르셀로나보다는 관광객이 적었다. 그만큼 볼거리도 적은 것일 수 있지만, 아름다운 도시임은 분명했다. 발렌시아에 자리잡고 며칠은 정류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버스를 타고 도시를 구경했다. 눈길을 끄는 풍경을 보면 바로 내려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또 며칠은 나탈리와 교수가 추천해 준 숨은 명소들을 찾아다녔다. 부지런히 쏘다니다 보니 발레시아에 온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웬만한 곳들을 한 번씩은 발도장을 찍었다.
『오늘도 바르헨 광장에 가니?』
『네. 이 책, 마저 읽으려구요.』
『오늘 저녁 메뉴는 빠에야니까 늦지 않게 들어와라. 원우가 좋아하는 닭고기와 오징어를 듬뿍 넣을 거야.』
『정말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아, 와인 한 병 사가지고 올까요?』
『그럼 더 근사한 저녁이 되겠구나.』
소원우는 나탈리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소원우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책을 들고 단골 카페로 향했다. 맛있는 커피와 친절한 직원, 그리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 소원우는 카페에 방문한 지 두 번 만에 그 카페의 단골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바르헨 광장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했다. 바르헨 광장의 분수대 주변은 늘 북적북적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그쪽으로 으레 눈길을 보냈다가 다시 정면을 보았다.
어?
소원우는 기묘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분수 쪽으로 돌렸다. 사람들 사이로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라서 소원우는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쳐다보았다.
분수대에 걸터앉아 앞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 남색 코트를 입은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의 시선이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권차경이었다. 놀란 소원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리고 걸음을 빨리했다. 아직 권차경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저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몸을 숨길 수 있을 거였다. 본능적으로 권차경을 피해 골목으로 꺾어 걷던 소원우는 우뚝 멈춰 섰다.
권차경이 발렌시아까지 온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오로지 소원우 때문일 터였다. 소원우의 전화번호도, 집 주소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 권차경은 발렌시아까지 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장에 우두커니 앉아 소원우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권차경은 언제 발렌시아에 도착했을까. 언제부터 광장에 나와 있었을까. 한낮의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소원우는 몸을 돌렸다. 천천히 분수대로 걸어갔다. 소원우의 모습이 권차경의 시야 안으로 들어갔을 때, 권차경은 무심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소원우!”
단번에 소원우의 앞까지 뛰어온 권차경은 소원우를 덥석 껴안았다.
“원우야. 원우야.”
소원우의 이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불렀다. 소원우의 등을 꽉 껴안은 팔은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소원우는 마주 안아 주진 않았지만, 권차경의 품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권차경은 10분이 넘도록 소원우를 껴안고 있었다.
“계속 안고만 있을 거야?”
권차경이 놓아주길 기다리다간 해가 지도록 이대로 안겨 있을 듯해서 소원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널 놓으면 네가 또 사라질까 봐.”
“안 사라져. 그러니까 그만 놔. 사람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잖아.”
대수롭지 않게 보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소원우와 권차경을 보며 흥미진진한 눈을 했다. 남자끼리 포옹이나 키스하는 모습을 흔하지 않게 볼 수는 있긴 해도 사람들이 많은 광장 한복판에서 10분이 넘게 절절하게 껴안고 있으니 무슨 사연인가 궁금할 법도 했다.
권차경은 천천히 소원우를 안고 있는 팔을 풀었다. 양손이 가벼워지자 또다시 불안해졌는지 머뭇대며 물었다.
“네 옷, 잡고 있어도 돼?”
“뭐?”
“뭐라도 잡고 있어야 내가 살아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
손은 못 잡게 할 테고. 권차경의 뒷말에 소원우는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당연히 안 잡지. 권차경과 손을 왜 잡고 다닌단 말인가.
“나 도망 안 간다니까.”
“도망가도 쫓아갈 거야. 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거야.”
각오가 대단했다. 소원우는 다 내려놓은 얼굴로 권차경을 밀쳐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디로든 좀 가자. 낯부끄러워서 여기 못 있겠어.”
소원우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재빨리 소원우의 뒤를 쫓아온 권차경이 소원우의 코트 밑자락을 잡았다. 엄마 옷을 꽉 붙들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도 아니고. 소원우는 황당해서 권차경이 붙잡고 있는 손을 탁 떨어트렸다.
“네가 애야?”
금세 권차경의 표정은 시무룩해졌다. 소원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원래 가기로 했던 카페에 앉았다. 소원우를 보고 친근한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오늘로 책을 다 읽으려 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 할 듯했다. 권차경이 소원우만 뚫어져라 보고 있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왜 여기까지 왔어?”
“네가 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
“정신 차려 보니 비행기 안이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권차경에게 발렌시아로 간다는 말도 하지 말 걸 그랬다. 어느 도시로 가느냐는 질문에 별 생각 없이 답했는데,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참아 보겠다고 했잖아.”
“못하겠어. 원우야. 너무 힘들어.”
며칠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눈이다. 생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지친 눈은 소원우를 놓지 않으려 힘겹게 꿈틀거렸다.
“못하면 어쩔 건데.”
“원우야.”
“나는 네가 친구로밖에 안 보이는데 어떡하냐. 나는 너한테 떨리지 않아. 네가 날 껴안고 있어도 심장이 잠잠해.”
소원우가 차분하게 말을 할수록 권차경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뒤덮였다.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절망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권차경은 또다시 소원우에게 빌었다. 큰 빚을 진 사람처럼 소원우에게 기회를 내려 달라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소원우는 권차경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권차경은 소원우의 입이 열리기를, 소원우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소원우가 무슨 말을 하든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몸을 소원우에게 고정했다.
“내가 좋아?”
소원우의 질문에 권차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회사 다니게 되면 지금처럼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없어. 보고 싶다 해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야. 적어도 반년은 못 봐. 네가 휴가 때 스페인에 오지 못하면 1년은 못 보겠지. 시차 때문에 연락도 바로바로 안 될지도 몰라. 넌 회사원이고 난 학생이니까 대화 주제도 많이 다를 거고 상대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나와 상관없는 얘기처럼 느껴져서 점점 지루해지겠지, 그러다 보면 시들해질 거야.”
소원우는 현실적으로 말했다. 장거리 연애는 모든 게 불확실했다. 상대의 마음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고, 변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들어도 무력하게 있어야 했다.
“안 시들면? 조금도 식지 않으면? 그럼 내게 기회를 줄 거야?”
그런데도 권차경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을 거라고 장담하듯 도리어 되물었다.
“그래. 1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를 좋아하면, 그럼 기회를 줄게. 근데 그 사이에 나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어. 그래도 기다릴 거야?”
소원우는 일부러 권차경을 자극했다.
“……나는 그럼 또 기다릴 거야. 네가 혼자가 될 때까지.”
소원우는 말문이 막혔다. 막연한 기다림을 감당하겠다는 권차경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기다림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다.
“좋아. 1년이 지나도 네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만나 보자. 친구가 아니라, 다른 관계로.”
“정말이야?”
권차경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처사였다. 자신만만하게 기다릴 수 있다 해도 1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권차경도 모른다. 권차경에게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다. 권차경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너도 하나 약속해 줘. 1년 동안 만나러 오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마. 다시 남남처럼 지내자.”
“뭐?”
권차경은 제 귀를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단숨에 굳은 채 소원우의 입술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른 말이 흘러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시선이었다.
“솔직히 네가 날 좋아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네가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볼 때마다 당황스럽고 얼떨떨해. 감격스러운 게 아니라, 날 속이는 게 아닌가 두려워.”
소원우의 말에 권차경은 답답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진심이야. 원우야. 널 좋아해. 매일 과거의 나를 원망해.”
“그럼 증명해 봐. 1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면 그때는 믿을게.”
권차경은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로 한참을 말을 하지 못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던 커피가 차게 다 식어 버릴 때까지도 권차경은 굳게 닫힌 입을 열지 못했다. 덩달아 소원우도 잠잠해졌다. 적막함에 잠긴 테이블을 햇살만이 환히 밝혀 주었다.
“원우야, 네가 아는지 모르겠는데.”
권차경이 오랜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난 너한테 아주 약해.”
권차경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지. 네가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권차경은 소원우를 응시했다. 소원우의 얼굴을 오랫동안 눈에 담아 두고 싶었다. 보고 싶을 때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소원우의 얼굴은 언제나 생생했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언제야?”
“언제 널 만날지 몰라서 편도로 끊었어.”
소원우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소원우와 마주칠 때까지 매일 광장에 나와 있을 셈이었나. 게다가 비행기표는 편도로 끊으면 훨씬 비쌀 텐데. 자신을 만나려고 직항도 없는 발렌시아까지 온 권차경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자신도 권차경을 좋아할 때 저렇게 처절했었을까. 앞뒤 분간 못하고, 제 할 일도 내팽개치고 권차경만을 좇았었나. 어쩌면 소원우가 권차경을 좋아했던 것보다 권차경이 자신을 더 좋아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돌아가.”
그래도 소원우는 냉담하게 말했다. 권차경은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이대로 한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권차경은 그러겠노라고 바로 말하지 못했다.
소원우는 한숨을 크게 쉬고 뒤돌아섰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꺼내 나탈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페인어로 말하는 소원우를 권차경은 묵묵히 쳐다보았다. 권차경은 스페인어를 못했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어가 유일하게 소원우가 권차경보다 잘하는 거였다.
“일어나. 와인 사러 가야 돼.”
“와인?”
“나탈리가 빠에야 만들고 있거든. 그리고 남는 방 있으니까 하룻밤 묵어도 된대. 호텔 예약해 놓았겠지만, 만약 네가 원하면 우리 집에서 자도 돼.”
권차경의 눈썹이 올라갔다. 굳은 안색도 조금씩 펴졌다.
소원우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이제 갈 건데 너 따라올 거야?”
권차경이 서둘러 일어났다. 다른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소원우는 뒤따라오는 권차경의 걸음소리를 들었다. 두 다리는 소원우의 뒤에 바짝 붙어 있다가 천천히 앞으로 오더니 소원우의 옆에 나란해졌다.
소원우는 오래 전에 그랬듯 고개를 숙여 네 개의 나란한 다리를 쳐다보았다. 1년 뒤에 어떤 사이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터였다. 소원우는 뜨거운 햇살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권차경의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권차경과 또다시 남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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