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 1권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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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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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VC3 / 뉴토끼 / 공금
0.
수능이 코앞이었다. 중요한 것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을 위한 시간 배분이 필요한 때였다. 모의고사 점수가 나올 때마다 미래가 뒤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모두 예민해졌다. 잠도 쪼개고, 밥 먹을 시간도 쪼개 가며 공부하다가 그래도 수능 100일 전날은 그냥 넘어가면 아쉽겠다며 술판이 벌어졌다.
소원희에게는 진작 권차경의 집에서 자고 간다고 연락을 남겨둔 덕에 소원우는 마음 놓고 술을 마셨다. 처음 마셔 본 술은 생각보다 달았고, 수능 탓에 내내 얼음장 같던 분위기도 달아올랐다. 그러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소원우가 정신을 차렸을 땐, 한 잔 두 잔 기분 좋게 나눠 마시던 친구들은 다 사라진 뒤였다. 거실은 엉망이었다. 나동그라진 술병과 맥주 캔, 먹다 남은 음식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아직 밖은 캄캄했다. 새벽 4시쯤 되었을까. 못 봤으면 모를까, 거실의 판국을 확인했으니 도로 눈을 붙이는 것은 무리였다. 소원우는 굴러다니는 소주병들을 한쪽에 가지런히 세워 놓고, 남은 음식부터 치웠다. 한데 모아 음식물 쓰레기 비닐에 넣고, 분리수거할 것과 아닌 쓰레기들을 적당히 분류해 놓았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던 소원우는 어딘가로 향했다. 술기운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다. 헤실헤실 풀어진 몸은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욕구를 분출하기 원했다. 완전히 취하지는 않아 소원우도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권차경은 곤히 잠들었을 시간이었다. 빛 한 줄기에도 잠을 설친다는 예민한 잠버릇 때문에 권차경의 방은 어둠에 잡아먹힌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침대까지 걸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집을 자주 들락날락했으니 방 구조야 눈에 훤했다.
소원우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숨죽여 침대까지 걸어갔다. 권차경은 바로 누워 자고 있었다. 한쪽으로 기대어 자는 소원우와는 달리 권차경은 언제나 반듯한 자세로 잠을 잤다. 그걸 알고 있던 게 문제였다.
소원우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규칙적으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에 소원우는 안심했다. 어둠에 익숙해진 소원우의 눈은 권차경의 얼굴을 또렷이 주시했다. 소원우의 시선이 시원하게 뻗은 콧대 아래로 향했다. 저 입술에 닿은 사람이 몇 명이었을까. 물어보면 아마도 권차경은 솔직하게 알려 줄 것이다. 소원우는 몇 명인지가 알고 싶은 게 아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소원우도 그곳에 닿고 싶었다. 따뜻한지, 차가운지 혹은 부드러운지, 거친지 따위의 입술 감촉을 느끼고 우정일 수 없는 그 선 위에서 권차경을 만나고 싶었다.
소원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입술 틈새로 숨결이 나올까 봐 입술을 꽉 다물었다. 긴장을 그대로 머금은 채로 소원우는 허리를 더 숙였다. 몸이 기울어지지 않게 한 손을 침대 옆 서랍에 지탱하고, 조금씩 얼굴을 가져다 댔다. 코가 부딪치지 않게 얼굴을 살짝 돌리고 입술을 댔다. 입술이 닿은 것 같기도 하고, 권차경의 숨결만 느낀 것 같기도 한 그 오묘한 거리에서 소원우는 더 물러날 곳 없는 사람처럼 비장한 각오로 한 번 더 입술을 가져다 대려던 참이었다.
“진짜 할 거야?”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에 소원우가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뒷걸음질 치다 서랍에 올려놓은 손을 휘두르는 바람에 서랍 위에 있던 알람시계와 조명이 바닥에 구르며 큰 소리를 냈다.
분명히 곤히 잠든 숨소리가 났다. 혹시 몰라 소원우는 권차경의 방 안에 들어와서 바로 움직이지 않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나 권차경의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 잠들어 있던 사람 같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안 나온다는 게 맞는 듯했다. 소원우는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나랑 키스하고 싶어?”
권차경에게선 놀란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던 사람처럼 느긋해 보였다. 권차경의 태연한 태도에 소원우의 머리는 마비가 됐다.
소원우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자 권차경은 질문 대신 선택권을 주었다.
“이대로 네가 방을 나가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난 아침에 너를 깨우러 갈 거고, 네 잠투정을 달래 줄 거고, 같이 밥을 먹을 거야.”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권차경은 그리해 주겠다는 거다. 권차경은 평소대로 소원우를 대할 거고, 소원우만 그에 맞춰 주면 둘의 사이는 변하는 게 없을 터였다.
“그렇지만 네가 나와 키스하고 싶다면.”
권차경은 말을 끊었다. 소원우의 반응을 보려는 것처럼 일부러. 소원우는 침대에서 몇 걸음 물러선 뒤였지만 소원우를 바라보고 있는 권차경의 시선이 똑똑히 느껴졌다.
“해도 돼.”
소원우는 눈을 크게 떴다.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이 됐다.
“해도 되는데 대신 앞으로 우리는 완전히 달라지겠지. 연락도 하지 않을 거고, 만나지도 않을 거야.”
권차경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소원우는 조금씩 냉정을 찾았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칼자루는 소원우가 쥔 셈이었다. 권차경과 계속 우정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우정을 깨트릴 것인지. 선택은 소원우의 몫이었다. 권차경의 제안은 소원우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징벌이 아니었다. 소원우가 생각하기에도 이것은 굉장히 너그러운 처사였다.
그러니 여기에서 소원우가 택할 것은 당연히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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