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9 서진아, 강서진
탁, 강서진이라는 이름을 부를 틈도 없이 기욱은 서진의 손을 붙잡았다. 마침 윤성과 헤어지고 혼자 남아 잠시 의국에라도 들러 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서진은 기욱에게 잡힌 손과 함께 기욱의 몰골을 살폈다. 체형과 맞지 않은 가운에는 인턴인 듯한 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범생 안경에 머리는 싸움박질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왜, 왜요?”
“너 왜 여기 있어?”
“지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내가, 경고했을 텐데.”
“그건…….”
“따라서 와.”
기욱이 서진의 팔을 잡아당기며 비상계단 쪽으로 들어갔다. 어딜 가든 로비 쪽으로 가면 될 텐데 일부러 뒤로 돌아가는 것이 유독 기욱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차마 반박할 틈도 없이 서진은 기욱의 연구실로 끌려왔다. 한 손으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고, 서진을 집어넣은 기욱 또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성큼성큼, 기욱이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서진 또한 뒷걸음질 치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진은 기욱의 커다란 책상에 몸을 약간 기댔다. 기욱의 책상에 있는 디지털시계를 흘끗댄 서진이 입을 열었다.
“저 십 분 뒤에 들어가 봐야 해요.”
“그쪽 행사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일이 그렇게 됐어요.”
“강서진!!”
“어쨌든 할 말 없으면 가 볼게요.”
인턴의 맞지 않은 가운을 벗은 기욱이 자신을 지나치려는 서진의 팔을 잡아 뒤로 꺾었다. 인상을 찌푸린 서진이 발버둥을 쳤지만, 그 상태로 안쪽 창고로 끌고 가는 기욱을 뿌리칠 힘이 되지 않았다. 서진은 몸을 확 틀었다. 팔을 더 꺾은 기욱이 서진의 등 뒤에 바싹 달라붙었다.
“넌 못 가.”
“미쳤어요? 으읍….”
기욱의 다른 손이 서진의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 그깟 행사, 대단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가지 말라고 집착을 하는 건지 서진은 알 수가 없었다. 박기욱은 언제나 제멋대로다. 한 번도 서진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말해 준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그게 단순히 자신의 나이가 어리고 말해 줘 봐야 아무것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서진이 기욱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를 훌쩍 지나 기욱과 같은 시선에 서면서 느낀 것은 달랐다. 처음부터 기욱은 서진을 자신과 같은 수준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서진이 나이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욱에게 강서진은 설령 몇 년이 지나도 강서진이었다.
서진의 입을 틀어막은 기욱은 다시 강제로 서진을 창고로 집어넣었다. 유일하게 있는 창문은 커다란 선반에 가려져 있었고, 온갖 서류들과 매트릭스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창고는 서진이 들어가기 싫어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여기서 기욱에게 당한 지 아직 이 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서진은 요즘 들어 기욱과의 섹스가 더욱 험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매트리스 침대 위에 내동댕이쳐진 서진은 다가오는 기욱의 발에 매달렸다.
“아, 안 갈게요! 여기 가만히 있을게요! 다, 당신도 오후에 발표 있잖아요! 저, 저도 그렇고. 섹스 같은 거…….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서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기욱을 설득했다. 솔직히 심포지엄 쪽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오전에 이미 도와줄 만큼 도와줬고, 잔소리는 좀 듣겠지만 잘 사과하면 끝날 일이다. 허나 몇 달 동안 준비한 세미나는 달랐다. 기욱이 침대 위로 올라와 서진과 눈을 마주쳤다. 기욱의 커다란 손이 훅, 하고 허공을 갈랐다.
“윽….”
서진은 맞을 거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눈을 질끔 감았다 떴다. 기욱의 손은 서진의 뺨 바로 근처에서 멈춰 있었다. 손찌검 대신 한 번 멈춘 손이 서진의 뺨을 가볍게 건드렸다. 화가 잔뜩 났지만, 서진의 얼굴을 건드려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기욱은 서진을 눕히며 몸 위로 올라탔다.
“여기 이, 있을게요.”
“거짓말하지 마! 강서진, 너 내 말 제대로 들은 적 없잖아.”
“오후에 발표 있다고 했잖아요!”
기욱이 또다시 손을 허공으로 들었다. 뺨을 맞지는 않았지만, 그 움직임만으로도 서진이 깜짝깜짝 놀라기에는 충분했다. 기욱의 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맞지도 않은 뺨이 아려 오며 눈물이 났다. 기욱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서진의 팔을 위로 올린 뒤 서진의 다리를 강제로 벌렸다.
“싫어… 싫다고! 으읍….”
몇 번이나 발버둥을 쳤지만, 기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내 서진이 입고 있던 바지가 아래로 내려가며 서진의 손이 힘없이 침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 * *
행사 준비가 한창인 대회의실, 첫 번째 순서였던 우민은 가장 먼저 도착해 팀원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흐름이 끊긴 것은 수술복 차림의 서윤이 다가오면서였다. 대충 이야기가 끝난 의사들을 돌려보낸 우민이 서윤과 함께 옆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죄송해요. 바쁘신데.”
“아닙니다. 무슨 일이세요?”
“아, 혹시 서진이 못 보셨어요?”
강서진? 확실히 오늘 종일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같은 과라 해도 이 넓은 병원에서 작정하고 돌아다니면 얼굴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서진도 발표 팀이니 알아서 하지 않을까 싶은 우민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는데요. 전화 안 받아요?”
“아, 네네. 잠시만요.”
서윤이 우민의 앞에서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뭔가 답장을 보낸 서윤이 이내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서진이, 오빠랑 있나 봐요. 괜찮을 거 같아요.”
“하하, 그렇군요. 들어가 보세요.”
“네. 방해해서 죄송해요. 이따 저녁에 봬요.”
서윤이 떠난 우민은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에 휴대폰을 열었다. 강서진이 박기욱이랑 있다고? 이 시간에 왜? 서진에게 연락을 보내려던 순간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들은 연태가 우민에게 다가왔다.
“박 교수님, 강서진 찾았대요?”
“무슨 말이야 그게?”
타자를 중간에 멈춘 우민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고개를 돌렸다. 괜히 말했나? 아무렴 박기욱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에 뺨을 긁적인 연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걔가 오늘 하는 심포지엄 도와주기로 했는데, 박 교수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찾고 다니시더라고요. 막 레지들 단톡에까지 올리고. 아까 박 교수님이랑 복도에서 한 번 마주쳤었고요.”
“그래서?”
“네?”
“그래서 너 기욱이한테 뭐라고 대답했냐고.”
“그게……. 서진이 말예요. 제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박 교수님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그냥 모른다고 했어요. 찾긴 찾은 모양인데…….”
“서진이 고 교수님네 팀이지? 발표 몇 시야?”
“어…… 잠시만요.”
연태가 공지 방에 들어가서 일정을 확인했다. 서진의 발표는 행사 가장 마지막에 있었다.
“무조건 밀리는 거 생각하면 한 다섯 시쯤 되지 않을까요?”
“그래, 알았어.”
연태를 보낸 우민은 벽에 기대 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길한 기분이 맞지 않으면 좋을 텐데, 서진은 끝내 우민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 * *
“……이상으로 발표를 마칩니다.”
PPT가 끝나고 Q&A 화면이 뜨자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진행 요원이 마이크를 가져다주는 모습이 보이자 우민이 먼저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깐만. 교수님?”
갑작스러운 우민의 선언에 주변이 술렁였지만, 우민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단상을 내려왔다. 우민의 돌발 행동에 잠시 장내가 술렁거렸다. 눈치가 빠른 연태가 대신 단상으로 올라가 사회자에게 멋대로 말을 건넸다. 이내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연태가 시키는 대로 급한 환자라는 핑계를 대며 방송을 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온 우민은 뒤이어 나온 연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고생했다.”
“네, 근데 Q&A 진행은 왜 안 하신 거예요?”
“……그런 게 있어.”
우민은 나중에 얘기하자며 손을 흔들고 무작정 대회의실을 나왔다. 혹시나 발표하는 도중에도 박기욱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을 했다. 고 교수님네 팀과 마찬가지로 기욱의 발표는 비교적 후반부에 있었다. 우민의 예상대로 기욱의 팀원들은 와 있었으나 우민이 발표가 끝나기 전까지 기욱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곧장 연구동으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유독 싸늘한 복도가 우민을 반겼다. 기욱의 연구실 앞에 선 우민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머리를 긁적였다. 일이 있어 찾아온 척 박기욱을 불러 볼까 고민하던 중 옆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강서진?”
거리가 좀 멀어 얼굴을 확인하기는 힘들었지만, 우민은 본능적으로 그게 서진임을 확신하고 뛰어갔다. 늘어진 수술복과 눈물을 흘린 듯한 자국,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하며 상처만 나지 않았을 뿐 서진의 몰골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우민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서진의 손을 붙잡았다.
“너, 너 괜찮아?”
“교수님…… 흐윽….”
설마 우민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서진은 그 자리에서 참아 왔던 눈물을 흘렸다. 발표 때문에 기욱이 자리를 뜬 틈을 타 나오긴 했지만, 차마 당장 대회의실로 돌아갈 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허락을 받고 발표 20분 전에는 오겠다고 한 서진은 정처 없이 발 닿는 데로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우민은 서진을 달랜 뒤 인근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왔다. 시간이 시간인 데다 오늘따라 유독 어수선한 행사에 신경을 쓰고 있는 터라 옥상은 한가했다. 서진은 난간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제가 달래는 것보다 이대로 울게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한 우민은 울고 있는 서진과 조금 거리를 벌려 연신 줄담배를 피웠다. 한참 만에 울음을 그친 서진이 우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흐윽, 으… 끅윽…… 저도 줘요.”
“니 거 피워.”
“안 가져와… 끅, 어요.”
“딸꾹질 그만하고. 자.”
우민이 제 담배 케이스를 서진에게 던졌다. 담배 케이스 안 라이터와 담배 한 개비를 꺼낸 서진이 담배를 입에 물며 연기를 내뱉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쉰 숨에서 진한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지만, 개운한 기분 대신 착잡한 마음만 들었다. 진정이 됐다고는 해도 서진의 몰골은 여전히 정상이 아니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우민이 서진의 얼굴을 대충 닦아 준 뒤 자리로 돌아왔다. 난간에 몸을 기대 아래를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박기욱이야?”
“그렇죠. 뭐. 그게 그…….”
멋대로 얼마 남지 않은 담배 하나를 더 입에 문 서진이 바닥에 앉은 채 눈을 위로 뜨며 우민을 올려다봤다. 일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숨긴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짓일까? 서진도 이젠 다 지겨웠다. 요즘 들어 없던 자살 충동까지 생기는 걸 보면 진짜 미쳐 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결국, 자포자기 심정으로 서진은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응급의학과에서 하는 심포지엄 쪽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기욱의 경고와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친한 의사에게 고기를 얻어먹는 대가로 일을 도와줬다가 걸렸다는 정말 별거 없는 이야기였다. 서진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우민도 기욱의 행동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지 말라고 그랬다고? 왜?”
“그걸, 하아… 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은 저한테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해 준 적이 없거든요.”
서진은 짧아서 못 피우는 담배꽁초를 바닥으로 내던지며 다시 담배를 물었다. 제 담배도 아닌데 줄담배를 피우는 게 눈치가 보였던 서진이 불을 붙이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우민이 마음대로 하라며 허공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지금은 그깟 담배가 중요하겠는가? 서진이 줄담배를 피움으로 인해 기분이 나아진다면 오히려 그게 더 다행이었다. 서진이 담배 연기를 옆으로 내뱉었다. 더 이상 박기욱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에서야 하기 시작한 사랑한다는 말도 서진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와 닿지 않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본인이 한 일을 생각하고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수 있을까?
윙― 서진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다른 의사에게서 온 전화로 전화를 받지 않아도 슬슬 들어오라는 연락임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는 걸 깨달은 서진이 담배를 끄고 얼마 남지 않은 담배 케이스와 라이터를 우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내밀었다. 여전히 머리는 아프고, 다리는 후들거리는 데다 눈은 쓰라렸지만 그래도 말을 들어주는 우민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저 슬슬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우민은 담배와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려는 서진의 등을 안았다. 갑작스럽게 뒤를 안긴 서진이 걸음을 멈췄다.
“서진아, 사귀자.”
“교, 교수님 그걸 지금 얘기하면 어떻게…….”
왜 제 고백은 매번 이렇게 갑작스러워야만 하는 걸까? 하긴, 그걸 말하기에는 제가 우민에게 한 고백도 만만치는 않았다. 서진이 몸을 돌리며 우민을 바라봤다. 일부러 꺼내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민의 목에는 보란 듯이 서진이 선물했던 줄이 긴 목걸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저는, 교수님이 그…….”
“너랑 시헌이 얘기도 다 알아.”
“그걸 알면 더…!!”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민이 시헌과 있었던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시헌에게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헌과 사귄 사실을 걸린 서진은 아직도 그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 대학교에 들어가서 여자를 사귀었을 때도 그랬다. 이젠 그런 열정적인 사랑을 할 기운도, 거기에 맞서 기욱과 싸울 용기도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우민이라면 어떻게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우민이라고 해서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모순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럴 바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우민이 상처를 받지 않는 편이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우민에게 이런 말을 했나 하고 후회가 들었다.
“강서진, 나 똑바로 봐. 무슨 생각 하는 줄 아는데.”
“알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서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우민은 그러면 그럴수록 얼굴을 가까이해 서진과 눈을 맞췄다.
“내가 그 녀석 같은 줄 알아? 입장부터가 틀리잖아.”
“아, 알아요! 아는데……. 그래도 아, 알면 가만히 안 있을 거라구요!! 박기욱이…….”
“…….”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요!!”
“강서진, 서진아 진정해!!”
잔뜩 흥분하는 서진의 입술을 맞추며 우민이 서진을 진정시켰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할까 놀란 서진이 우민을 밀어내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우민이 한 걸음 서진의 앞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한테 목걸이 선물하고, 먼저 좋아한다고 했던 게 누군데!”
“그건 맞는데……. 저, 저도 교수님이 좋은데…….”
“근데?”
“제 사랑은 저, 저주받은 게 틀림없어요.”
이걸 저주라는 단어 말고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진이 사랑하는, 그리고 서진을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늘 불행에 빠졌다. 사랑과 얽힌 일에 있어서 그 끝이 행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박기욱도, 박시헌도 그랬고, 눈앞에 있는 우민도 그러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 이런 사랑은 그저 짝사랑으로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우민은 그런 서진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데. 그럼 나는? 그런 널 보는 나는 생각 안 해?”
“저, 저는 교수님을 생각해서…….”
“너나 잘해. 누가 내 생각 해 달라 그랬어?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데!!”
“…긋지긋해요.”
서진이 주먹을 꽉 쥐며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었다. 서진의 눈가가 다시 시큼해졌다. 언제, 누군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 줬던 사람이 있던가? 시헌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서진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헉, 지긋지긋해요! 이제… 윽… 더 이상 못 하겠다구요!!”
“발표하러 가야 되잖아. 울지 말고.”
우민이 서진의 등을 토닥이며 재빨리 눈물을 달랬다. 고개를 든 서진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며 서진을 안았다. 서진의 손이 우민의 가운을 꽉 쥐었다.
“박기욱에게, 한 방 먹이자.”
우민이 생각한 것이 있다는 듯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마침 두 사람을 가리던 구름이 지나가며 햇빛이 둘을 비췄다.
<『너를 위한 랩소디』 10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