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1 그 자식이랑 잤어? (2)
서진의 병원 생활은 평소와 같았다. 동기인 연태가 서진을 대신해 고생한 것만 빼면 말이다. 서진은 사과의 의미로 치킨을 돌린 상태였다. 서진이 채 계산을 마치기 무섭게 당직조와 귀신같이 치킨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의사들이 치킨을 챙겼다. 서진 또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출근을 했기에 치킨은 거의 첫 끼나 다름이 없었다. 자기네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치킨을 먹고 있던 터라 서진은 치킨을 들고 동기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연태는 서진의 수술복 사이로 보이는 검은 티셔츠를 보고는 눈을 깜박였다.
“별일이네. 너 안에 옷 입고 다니는 거 안 좋아하잖아.”
맨살에 수술복이 닿는 게 싫은 연태와 달리 서진은 옷 위에 옷을 껴입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떠들고는 했었다. 솔직히 지금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차마 안에 반소매 티를 껴입은 사연을 말할 수 없었던 서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좀 추워서.”
“이제 여름인데? 너 쪄 죽어 인마.”
“그게……. 한동안 골골댔잖아.”
“하긴, 그럴 수 있지. 몸조심 좀 해라. 진짜 다들 걱정 많이 했어.”
연태와 주변에 동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의 병결 덕분에 서진은 신경외과 내에서도 주의할 인물로 단단히 찍힌 상태였다. 사람 살리겠다고 의사를 해 놓고, 정작 본인은 다른 의사들에게 환자 취급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주말에 술 한잔할 사람! 야, 1년 차! 당직 빼고 올 참석이다!”
“아놔.”
“뭐, 어때?”
“어, 그럼 나랑 당직 바꿀래?”
“미친 새끼 돌았냐?”
술을 먹기 싫어하는 동기와 아무래도 좋다는 동기, 그리고 가기 싫으면 자기가 가겠다는 연태가 한마디씩 했다. 3년 차가 된 선배 레지던트가 동기들 틈에 끼어 말없이 치킨을 먹고 있는 서진에게 다가왔다.
“서진아! 너도 와야 한다?”
“아, 선배님. 서진이는 좀 빼요. 쟤 쓰러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음 날 출근 못 할걸요.”
“야! 한번 쓰러졌으면 됐지 뭘 그러냐? 울 서진이는 적당히 마시게 해 줄게. 적당히 3병!”
“저게 어딜 봐서 적당히야…….”
다른 동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배 레지던트는 불만이 가득한 서진의 동기와 여전히 치킨을 먹으며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서진에게 어깨를 걸었다.
“이 자식들. 하늘 같은 선배가 말하는데 꼽냐?”
“하하하, 그럴 리가요.”
“가, 갈게요…!”
“그럼, 그렇게 나와야지.”
“가, 갈 테니까……. 그……. 파, 팔 좀.”
서진이 어깨에 올라와 있는 손을 밀어냈다. 어딘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서진에 그가 뒤늦게 미안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미안. 내가 좀 심했지.”
그가 당황하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여자라면 모를까, 그는 남자 의사들 사이에서 원래부터 알게 모르게 스킨십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무분별하게 접촉하는 편은 아니었다.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스킨십은 별로라고 말한 연태에게는 가볍게 등을 두드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너, 좀 많이 떨고 있는데? 괜찮아?”
“저기 그……. 제가 갑자기 속이 좀 안 좋아서…….”
서진은 다급하게 먹던 치킨을 비어 있는 종이컵에 내려놓은 뒤 도망치듯 의국을 빠져나갔다.
“어어! 야! 강서진!”
“헐, 선배님. 서진이한테 왜 그러셨어요?”
“내가 뭘? 아놔 서진아! 너 이 치킨 내가 먹는다?”
“사람 먹던 거 먹고 싶어요?”
“아놔, 배고픈데 어쩌라고.”
그는 서진이 적당히 근처의 화장실로 도망갔겠거니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워낙 병에 익숙해져 있는 탓인지 어지간히 아픈 게 아니면 눈 하나 끔벅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먹은 치킨의 뒷정리를 하고 있을 무렵 서진이 기욱과 함께 들어왔다. 의국 입구에 선 기욱은 서진을 의국에 들여보낸 뒤 본인은 등을 돌려 나갔다.
“아씨, 깜짝 놀랐네.”
“왜 그렇게 놀라요?”
서진이 영문을 몰라 하고 있자 서진에게 어깨동무했던 선배 레지던트가 등 뒤에 숨겨 뒀던 맥주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몰래 숨겨 놓았던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무섭게 교수님 끌고 오지 말라고!”
“하하, 네.”
“그래서 무슨 얘기 한 거야?”
“아, 저……. 주말에 회식 못 나갈 것 같아요.”
서진이 곤란하게 됐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기욱의 말로는 그날 우민이 허락했으니 그날 자신과 함께 대전에 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왜 우민이 그런 걸 허락해 줬는지는 몰라도, 그냥 가라면 가야지 서진에게 별 선택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