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35 그들만의 세계 (38/83)

Chapter. 35 그들만의 세계

“오오….”

서진은 별장의 정원을 둘러봤다. 인근에 이런 별장이 몇 개가 있어서 그런지 정원은 서진의 예상보다 훨씬 더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다. 2, 3층 높이 정도 되어 보이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건물이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다.

별장이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오두막집보다 조금 좋은 정도를 생각했던 서진은 최신식 건물로 되어 있는 건물이 약간 낯설기까지 했다. 시헌이 비밀번호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자 서진 또한 시헌의 뒤를 따라 쪼르르 짐을 챙겨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슬리퍼 거기.”

시헌이 현관 벽에 붙어 있는 신발장을 손가락질했다. 고개를 끄덕인 서진은 대충 아무 슬리퍼나 꺼내 신었다. 서진이 슬리퍼를 신는 동안 시헌은 거실에 있는 유리창의 커튼을 반쯤 걷어 냈다.

“어때 괜찮아?”

“이만한 별장에 괜찮고 자시고가 있겠냐.”

“가족 행사 같은 거 있으면 종종 모여.”

“여기서?”

“응. 뭐, 그래 봤자 일 년에 한 번 정도지만. 큰아빠한테 주말 동안은 마음대로 써도 좋다고 허락받았어. 건물 관리는 큰아빠가 하는데 사실 건물은 우리 아빠 이름으로 되어 있거든. 아, 땅은 아니고.”

뭔가 복잡할 것 같은 얘기가 나왔다. 서진은 소파에 앉아 떠드는 시헌의 말을 들으며 주방에 있는 커다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서진이 냉장고를 확인하는 걸 본 시헌이 일어나 서진의 등 뒤로 다가왔다.

“지금부터 사러 갈 건데 갈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 올걸.”

“나도 깜박했어.”

무작정 별장에 가는 것만 생각한 두 사람은 1박 2일 동안 각자의 짐 챙기기에만 바빴다. 정작 음식은 뒷전이었으니 차에 간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서진의 허리를 안은 시헌이 살짝 입술을 맞췄다. 금세 흥분하는 시헌에 서진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아님 하고 갈까?”

“작작 좀 해라.”

“진심인데.”

“됐네요. 난 나중에 배고픈 건 절대 사양이야.”

서진은 시헌을 밀어내며 차 안에 있는 짐을 가지러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것도 잠시뿐 서진은 트렁크 문을 열기 위해 현관 안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박시헌! 트렁크 문 좀 열어 줘!”

“아, 응. 알았어.”

시헌도 남은 짐을 가지러 가기 위해 급하게 차 키를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 짐가방만 던져 놓은 두 사람은 차로 10분이 좀 걸리는 인근의 큰 마트로 향했다. 대충 먹을 걸 전부 산 서진은 계산을 하기 위해 꺼낸 시헌의 카드를 흘끗댔다.

검은색 신용카드.

“너 카드, 형 거 아냐?”

“어? 아, 이거 내 거.”

“니 거라고?”

“응. 형이랑 같은 은행. 우리 집은 K은행만 쓰거든. 그때 이후로 형이 당장 신용카드 하나 만들라고 해서 가족 명의로 하나 만들었어.”

시헌은 계산을 마친 뒤 카드를 지갑에 넣었다. 서진은 봉투에 산 음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때라고 함은 시헌이 기욱의 카드를 가지고 학교 내에서 전설을 찍은 날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서진도 뒤늦게 시헌이 저지른 그날의 일에 대해 동기들에게 건너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500은 심했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이 했던 말이니 얼추 맞겠거니 싶었다. 서진은 쓰란다고 진짜 쓰는 시헌이나, 그걸 입 다물고 넘어가는 기욱이나 참 둘 다 그게 그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 박기욱의 입에서 시헌에게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할 정도면 아무리 박기욱이라도 500만 원은 좀 부담이었는지도 몰랐다.

“어? 어떻게 알았어?”

“소문 다 났잖아. 이제 와서 뭘 숨겨.”

“하긴 그것도 그러네.”

서진과 시헌은 대충 장을 본 음식들을 뒷좌석에 구겨 넣은 뒤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올 때는 펜션밖에 눈에 안 들어와서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 펜션 근처에 유독 차가 많은 기분이 들었다. 서진은 차창을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이 주변 사람이 많지 않아?”‘

“오 분 거리에 해수욕장 있어. 날씨 많이 따듯해졌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아직 피서를 오기에는 좀 이른 감도 있긴 했지만 놀 곳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오는 것이 사람이었다. 시헌의 말대로 멀찍이 해수욕장 관련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서진은 텅 빈 냉장고에 마트에서 사 온 음식들을 집어넣은 뒤 본능적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1층이 차고와 창고로 이용되는 탓에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서 바깥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해수욕장 방면을 보니 사람이 조금 있는 것이 보였다. 시헌은 창밖을 구경하는 서진의 허리를 와락 안았다.

“밖에 보이잖아.”

“여기선 안 보여.”

단정하듯 말하는 말투. 진짜 누굴 닮았나 싶을 지경이었다. 서진은 될 대로 되라며 반쯤 푸념을 했다. 호텔 유리창에서까지 섹스를 한 마당에 펜션 유리창이 대수는 아니었다.

서진의 허리를 안은 시헌은 얼굴을 살짝 옆으로 내밀어 서진이 바라보는 해수욕장을 응시했다. 저야 어렸을 때부터 수십 번은 더 간 곳이지만, 서진은 별개의 일이었다. 어차피 펜션에 오는 것 외에 뭔가의 목적을 정한 건 없었다. 즉, 펜션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정말 무계획이나 다름이 없었다.

“해수욕장 갈까?”

“…아무것도 없는데?”

“찾아보면 되지.”

시헌은 서진이 말리기도 전에 지하실 창고와 별개의 창고로 들어갔다. 장롱이 가득한 그곳에는 온갖 옷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친척들이 많이 오고 가고 하니 아예 별장에 두는 옷들이 꽤 됐다. 구석의 장롱에 있는 상자를 꺼내자 수영복들이 정말 세트별로 있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빨리 와서 맞는 거 찾아봐.”

다행히 수영복 중에는 서진과 맞은 사이즈의 옷이 있었다. 시헌의 말로는 그게 고등학교 시절 기욱의 수영복이라는데. 본의 아니게 기욱의 옷을 입고 만 서진은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걸 입을 수도 없는 것이 유일하게 서진과 딱 맞는 옷이 이 수영복 딱 한 벌이었다.

시헌은 이미 제 수영복을 찾아 입은 상태였다. 수영복과 가벼운 샌들을 신고 별장 밖으로 나온 서진은 약간 추운 날씨에 잠바의 지퍼를 올렸다.

“……야.”

“어? 왜?”

“배 안 고프냐?”

시헌은 깜박하고 그대로 차고 온 소매의 시계를 힐끗거렸다. 엄마가 사 줬다는 시계. 불편하다 불편하다 하면서 노래를 부르더니 요즘 들어서는 이쪽이 더 편해진 모양인지 그냥 아예 차고 다니는 것 같았다. 역시 비싼 게 최고였다. 시계를 본 시헌은 슬슬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짐 정리하고, 식재료 사러 가고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었다. 시헌은 서진을 보며 말했다.

“점심 먹을 때가 되긴 됐지?”

“밥 먹고 가자.”

“해수욕장 근처에서 먹자.”

“뭐든 좋아.”

사실 아침이라고는 강원도에 오면서 휴게소에서 잠깐 들러 먹은 음료수가 다였던 서진은 정말 뭐라도 상관없었다.

* * *

“어? 오빠? 오후부터 출근하는 거 아니었어?”

샤워를 막 하고 나와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던 서윤은 난데없이 열리는 문에 깜짝 놀랐다. 서윤은 문을 열어 준 적이 없었다. 기욱은 서윤에게 받은 스페어키를 흔들며 서윤에게 다가갔다.

“어제 당직이었잖아. 좀 더 쉬지 그래.”

기욱은 서윤의 머리에 있는 수건을 빼앗아 서윤의 머리를 대신 말려 주었다. 머리를 말려 주는 기욱의 손길에 서윤은 고개를 약간 숙였다.

“충분히 쉬었어. 우리 자기 보러 왔는데, 집에 갈까?”

수건 사이로 기욱을 본 서윤이 싫다는 듯 기욱에게 안겨 들었다.

“머리 젖잖아. 가만히 있어.”

“응.”

기욱은 서윤의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말려 주며 반쯤 열린 서진의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진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서진이는 벌써 강원도 갔나 보네.”

“오빠도 알고 있어?”

“H대에서 강의하고 있잖아. 서진이랑 친해.”

기욱은 서윤을 이끌고 큰방의 침대로 간 뒤 서윤을 무릎 사이에 앉혔다. 드라이 선을 잘 잡아당기니 아슬아슬할 정도로 길이가 딱 맞았다. 윙윙거리는 드라이기 소리가 좁은 방 안을 울렸다. 고개를 약간 뒤로 한 서윤이 말했다.

“서진이 학교는 잘 다녀?”

“그럼 당연하지. 누구 동생인데. 고개 숙여 봐. 잘 안 마르잖아.”

“아. 미안.”

서윤의 머리를 약간 누른 기욱은 익숙하게 드라이기로 서윤의 머리를 말렸다. 기욱은 흘러내린 소매에 있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아홉 시가 좀 넘어 있었다.

“아, 서진이는 아침에 일찍 나갔어.”

“아직 아홉 시도 안 됐는데?”

기욱은 먼저 서진의 얘기를 하는 서윤에 살짝 놀랐다. 그렇게 티가 났나? 서윤의 머리 안쪽을 말리는 기욱은 애써 담담한 척 굴었다. 기욱의 앞에 앉은 서윤이 큭큭대며 웃었다.

“시험 끝나더니 애가 살 만해졌나 봐.”

“…….”

“어? 오빠 왜 그래?”

머리를 말리는 손이 멈춘 것을 눈치챈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기욱은 거의 다 마른 머리에 드라이기를 침대 밑으로 내려놓았다. 약간 덜 마른 구석이 있긴 하지만 남은 건 병원에 가면서 충분히 마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기욱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아무것도 아니다. 좀 예민해졌나 봐.”

“무리해서 일어난 거 아니야? 한숨 자고. 꺅!”

기욱은 서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윤을 침대에 똑바로 눕혔다. 기욱의 손이 곧장 솟아오른 서윤의 가슴 부근을 주물럭거렸다. 막 씻고 나온 데다 머리에서 떨어진 물기가 마르지 않은 흰 티셔츠 사이로 보랏빛 속옷 자국이 드러났다. 기욱은 서윤의 머리를 살짝 목 위로 쓸어 넘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자고 갈까?”

“오빠도. 나 밥 먹어야 돼. 출근해야 한다니까.”

계속 출근 얘기를 하는 서윤이지만 시선은 이미 기욱에게 닿아 있은 지 오래였다. 기욱은 팔에 차인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차 태워다 줄게.”

“지각하면…….”

“나랑 같이 출근하는데 누가 뭐라 해?”

“그, 그럼… 쫌만 해야 돼?”

“알았어.”

기욱의 커다란 엄지손가락이 서윤의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비집고 들어갔다.

* * *

“생각보다 사람 많네.”

펜션에서 볼 때는 별로 안 되는 듯 보였지만 막상 안쪽으로 들어가니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해수욕장에 온 것은 좋으나 정작 서진은 수영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건 좋은데 해수욕장의 바닷물은 영 찝찝해서 싫었다.

서진과 마찬가지로 시헌도 수영에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수영복까지 챙겨 입은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래사장 주변을 이리저리 걸었다. 시헌은 목이 마른지 근처에서 대충 산 500ml짜리 생수 물을 마시는 중이었다. 물을 반쯤 마시던 시헌은 갑자기 마시던 물을 내뱉었다.

“크읍. 콜록….”

물이 기도에 걸린 모양인지 시헌은 허리를 숙이며 기침을 했다.

“뭐, 뭐야? 왜 그래?”

어디 아픈 건가? 깜짝 놀라 다가오는 서진에 고개를 튼 시헌은 서진의 잠바 안쪽을 손가락질했다. 지퍼가 애매하게 벌어져 안이 보일 듯 말 듯 하고 있었다. 정작 서진은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목에 걸린 물을 전부 뱉어 낸 시헌은 남은 물을 전부 마신 뒤 인근 쓰레기통에 빈 물통을 버렸다.

“심장에 나빠.”

“도대체 뭐가?”

“네 차림.”

그제야 지퍼가 늘어져 상의가 살짝 벌어진 것을 눈치챈 서진이 옷을 여몄다. 근데 이거 여밀 필요 있나? 어차피 수영복이라고 해 봤자 위에는 아무것도 안 입으니까 말이다. 시헌은 별장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별장으로 돌아갈까?”

“야,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얼마나 있었다고?”

“나 지금 진짜 괜히 나온 것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시헌의 시선은 여전히 서진의 가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인제 와서 저러는 시헌이 서진은 참 어이가 없었다. 계속해서 해안가만 도는 것도 뭐했던 서진은 물 쪽으로 몸을 틀었다.

“너 수영할 줄 알아?”

“생존 수영이라면 할 줄 알아.”

돌려 말하자면 할 줄 아는데 물에는 들어가기 싫다는 뜻이었다. 생존 수영이라니, 참으로 박시헌다운 대답이었다. 모처럼 수영복을 챙겨 입었건만 서진은 시헌의 말대로 정말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욱처럼 대놓고 잘한다고 말은 안 하네. 두 형제는 참 이상했다.

쌍둥이처럼 닮은 것 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 있어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럴 때면 서진은 아, 시헌은 기욱이 아니구나 하고 느끼지만, 역으로 시헌이 기욱 같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형제란 건 참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뭘 그렇게 빤히 봐?”

“네가 그렇게 당당하게 물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니까 뭔가 이상해서.”

서진은 시헌이 물을 싫어할 줄은 몰랐다. 기욱은 제법 수영을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기욱에게 이끌려 수영장에 간 적도 몇 번인가 있었다. 서진의 말에 시헌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말했다.

“못할 수도 있는 거지.”

시헌은 물에 뜨는 것 외에는 수영할 줄 몰랐다. 시헌이 한 말은 기욱이 버릇처럼 내뱉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일까? 뭐든지 잘하는 기욱이 하는 말과 수영을 못하는 시헌이 하는 말의 어감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래,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그 미묘한 차이에 서진은 해탈한 듯 중얼거렸다. 수영은 포기한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반복해서 걸었다.

“난 가족 여행 때도 구경만 했어.”

“이럴 거면 해수욕장 올 필요 없지 않아?”

아무리 제가 가고 싶어 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해안가를 돌 거면 해수욕장을 온 의미가 없었다. 서진의 반박에 시헌은 틀렸다며 고개를 흔들고는 좀 더 안쪽 구석을 손가락질했다. 시헌의 시선을 따라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끄러운 보트 소리가 들렸다. 사실 보트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해수욕장에 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야, 너 설마…….”

“타자.”

“싫어.”

웨이크 보드라니 그건 차라리 수영 쪽이 열 배, 백배는 더 나았다. 시헌은 무척이나 타고 싶은 모양인지 서진의 팔을 이끌고 웨이크 보드가 있는 쪽으로 갔다.

“안 어려워.”

“어렵고 안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할 수 있어, 서진아.”

시헌은 서진의 양팔을 붙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저놈의 시선. 시헌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이기지 못한 서진은 뒷목을 붙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서진은 매번 시헌에게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한 번만이야.”

서진은 초보자 안전 교육을 받는 내내 시헌에게 딱 한 번만 타고 안 탈 거라고 신신당부했다. 앞사람들이 가고 조교가 서진과 시헌에게 다가왔다.

“어느 쪽이 먼저 타실 건가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차례가 오자 막장 긴장이 된 서진은 얼어붙은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서진의 굳은 표정을 본 시헌이 손을 살짝 들었다.

“내가 먼저 탈게.”

“어. 응.”

시헌은 조교와 함께 보드가 있는 쪽으로 갔다. 서진과 시헌의 뒤로는 놀러 온 것 같은 여자들이 네다섯 명이 있었다. 우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헌이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다. 서진은 생각 이상으로 잘 타는 시헌에 이를 갈았다.

난 수영은 못하지만 웨이크 보드는 잘 타지.

“헐, 대박. 완전 잘 타!”

“선수야? 쩐다.”

“너도 저렇게 타 봐.”

“야 죽을 일 있어?”

멀리서 화려하게 움직이는 시헌을 본 여자들과 다른 남자들이 서로 떠들었다. 보드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시헌이 타는 것을 구경하러 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한 바퀴 돌고 온 시헌은 다음 순서인 서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별로 안 어려워.”

“거짓말하지 마! 박시헌.”

서진은 시헌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도 없었던 서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보드에 올랐다.

* * *

“큭큭,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아오씨!! 그만 좀 웃어!!”

“크읍. 큭큭. 근데 니가…… 어떻게 거기서…… 하하하하하!”

“야!! 박시헌!!”

배를 잡고 웃는 시헌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시헌과 서진을 쳐다봤다. 서진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시헌은 웃음을 이기지 못하며 서진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계속되는 시헌의 웃음에 서진은 결국 등을 돌렸다.

“아 진짜. 나 갈 거야!!”

“미안. 미안해. 진짜… 크읍. 미안해.”

“…….”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시헌에 서진은 주먹을 쥐었다. 시헌과 달리 생에 처음으로 보드를 탄 서진은 대부분 시간을 보드에 질질 이끌려 가다시피 했다. 사람이 보드를 타는 게 아니라 보드가 사람을 태우고 가는 꼴이었다. 거기에 시헌은 언제 찍었는지 모를 휴대폰 동영상을 보며 계속해서 웃었다.

“아, 알았어. 미안해.”

“…….”

“갈래?”

시헌은 쪼르르 뛰어가 앞서가는 서진의 옆에 섰다.

“벌써 가?”

“대충 다 돌아봤잖아. 아니면…… 한 번 더 탈까?”

“가자. 그리고 그만 웃어, 박시헌.”

“크읍. 하하. 알았어.”

서진과 시헌은 인근에 있는 수돗물에 모래가 묻은 발을 씻은 뒤 펜션으로 돌아왔다. 펜션 문을 열기 무섭게 시헌은 서진의 턱을 들어 올리며 키스를 했다. 물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이미 웨이크 보드로 바닷물을 뒤집어쓴 두 사람의 몸에는 소금기가 가득한 물기가 묻어 있었다.

키스하며 딱 달라붙는 수영복 안으로 시헌의 손이 비집고 들어왔다. 서진은 그런 시헌의 손을 탁 붙잡았다. 유리창 너머로 바깥이 훤히 보였다. 이제 막 오후 3시를 좀 넘기고 있었다.

“아직 낮이잖아.”

“낮이면 뭐 어때.”

“씻고 하자. 나 찝찝해.”

“그럼 같이 씻을까?”

“몰라, 마음대로 해.”

이놈의 바닷물만 아니었으면 당장에라도 방에 들어갔을 거라는 시헌의 말에 서진은 동의했다. 어쨌든 서진은 마른 소금으로 샤워하고 싶진 않았다. 후딱 샤워하고 나와서 섹스든 뭐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럴 터인데.

“하으읏…… 바, 박시헌….”

“후. 서진아 벽 잡아 봐. 미끄러지면 다쳐.”

“그러니까 왜…!! 아흑!”

머리 아래로 쏟아지는 물과 함께 뒤쪽으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쩐지 순순히 씻으러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수상하다 싶었다. 시헌은 서진이 욕실로 들어와 수영복을 다 벗기 무섭게 덤벼들었다. 머리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서진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벽에 손을 짚었다.

“하윽! 으으응… 응….”

“하아, 여기. 소리 엄청 울린다.”

“……읏. 너 때문에…….”

“흥분할 것 같아.”

쏟아지는 따듯한 물과 안을 넓히는 시헌의 손가락에 서진의 안은 이미 풀릴 대로 풀린 상태였다. 시헌은 서진의 몸을 옆으로 튼 뒤 페니스를 약간 밀어 넣었다.

“으응. 응….”

욕실의 특성상 방 안에 있을 때보다 유독 노골적으로 신음이 울렸다. 서진을 향해 허리를 흔들던 시헌은 사정 직전에 급하게 페니스를 빼냈다. 시헌의 정액이 서진의 배 근처로 튀었지만, 위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빠르게 욕실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자세가 불편했던 서진은 시헌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흐으, 씻자 좀.”

“미안해.”

서진은 시헌의 목을 잡아 누른 뒤 키스를 했다. 머리 위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물이 입안으로 섞여 들어와 서로의 입안을 더욱 질척하게 하였다.

“으응. 응… 아응. 흣….”

“서진아. 강서진.”

“하응. 읏. 응… 흐으….”

조금 지나친 것 같은 느낌에 시헌이 고개를 들어 위쪽에 있는 서진을 올려다봤다. 처음에는 이렇게 섹스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시헌의 페니스를 머금은 채 허리를 흔들던 서진은 체력이 부족한지 움직임을 천천히 멈췄다. 흔들림이 멈춘 틈을 노린 시헌은 서진의 허리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잠… 깐… 으아응… 하으응… 응….”

“먼저… 읏. 올라온 네가 잘못한 거지.”

시헌은 서진을 놓아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시헌은 손을 뻗어 서진의 유두 근처를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그 모습에 간지러운 듯 서진이 허리를 비틀었다.

“이러니 내가 질투를 안 할 수가 없잖아.”

“…으응. 응. 하응… 얘기가… 하… 왜 그렇게 새.”

“너무 야한 네 잘못이야.”

서진에게 책임을 전가한 시헌은 서진의 몸을 눕힌 뒤 서진의 위로 올라탔다. 안쪽 깊숙이 들어오는 시헌의 페니스에 서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거친 섹스에도 불구하고 누구랑 달리 시헌은 틈이 날 때마다 서진의 상태를 계속해서 신경을 써 줬다.

“으응. 읏… 하으… 박시헌….”

“하. 서진아.”

안을 꽉 조이는 서진에 시헌은 서진의 페니스 끝을 살살 긁었다. 시헌이 안을 찌를 때마다 서진의 페니스가 흔들리며 움찔거렸다. 시헌은 서진의 목덜미를 혀끝으로 핥았다. 앞뒤로 이어지는 자극에 서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서진도, 시헌도 한 번으로는 도통 만족이 되지 않았다.

“하으… 지금 몇 시야?”

중간에 한 번 잠이 든 서진은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분명 환했던 방 안이 어느새인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서진이 일어난 것을 본 시헌은 밑에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서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서진은 시헌에 의해 오뚝이처럼 침대 옆으로 쓰러졌다. 시헌은 침대로 누운 서진의 몸을 안았다. 서진의 체격이 조금 더 큰 탓에 시헌이 안기니 마치 커다란 곰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시헌은 서진의 허리 쪽으로 발을 올리며 앞머리를 들어내 이마에 키스했다.

“몇 시야?”

“아직 일곱 시야.”

“언제까지 잘 건데?”

눈을 감은 시헌은 서진의 말에 잠에 반쯤 취한 채로 대답했다.

“한 시간만 더 자자.”

“하아. 그래.”

시헌에게 맞춰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오느라 피곤했던 서진은 저에게 안겨 드는 시헌의 등을 안으며 눈을 감았다. 목이 약간 잠긴 시헌이 중얼거렸다.

“이대로 그냥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시헌의 중얼거림에 서진이 뒤늦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시헌은 이미 잠이 든 지 오래였다.

* * *

삐 거리는 알람 소리에 서진은 번뜩 눈을 떴다. 서진은 침대 옆에 있는 디지털시계를 만져 알람을 껐다.

“으윽….”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 본능적으로 손을 휙휙 허공으로 움직였다. 시헌의 인기척은 없었다. 간신히 팔을 뻗어 침대 옆 조명을 켠 서진은 넓은 침실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뒤쪽에 있는 창문 커튼을 걷자 바깥이 어두웠다. 분명 한 시간만 자자고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문 안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서진은 방의 불을 켰다. 다행히 저번 섹스 때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서진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돌렸다.

“……어?”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잠긴 건가? 서진은 문고리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으나 어디에도 잠금장치를 푸는 곳이 없었다. 잠금장치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열쇠 구멍이 있었다.

잠금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문의 안팎이 바뀌어 있었다. 당황한 서진은 침대 위 이불을 뒤졌다. 다행히 휴대폰이 있었다. 문을 두드려 시헌을 부르는 것도 방법이지만 목이 쉰 상태라 괜한 것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았다.

― 어. 자기야. 왜 전화해쪄?

― 말투 진짜. 맞는다? 됐고, 문 좀 열어 줘 봐.

시헌이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들리더니 탁, 하고 거실 쪽에서 문이 열렸다.

“짜잔!”

“짜잔은 얼어 죽을. 문이 왜 이래?”

서진은 달라붙는 시헌을 밀어낸 뒤 특이한 구조의 문고리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다른 방은 정상인 것 같은데 이 방의 문만 유독 이랬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든 거야?”

“침실이잖아.”

“침실이 왜?”

“가족 모임에 연인 데려와서…… 크읍. 하여튼 그런 일이 좀 있었어.”

웃지 못할 사연에 시헌은 괜히 말끝을 흐렸다. 아, 그건 정말 말하기 민망하겠다. 가족 모임에 연인을 데려온 것까지는 좋은데 그 연인과 굳이 사람들 다 돌아다니는 펜션 안에서 섹스하고 싶을까. 시헌의 친척들도 시헌의 집안 못지않게 유별날 것이 틀림없었다. 서진은 일단 옷부터 입자며 안쪽 방에 두었던 가방에서 편한 옷을 꺼내 입은 뒤 거실로 나왔다.

“야 박시헌 너 거기서 안 나오고 뭐 해?”

시헌은 여전히 침실 안에 있었다. 침대 근처에서 기웃대는 시헌을 이상하게 생각한 서진이 다가갔다. 시헌은 침대 옆쪽 전등 밑을 살짝 들었다. 전등 틈 사이에서 방의 스페어키가 나왔다.

“열쇠는 여기 있엉.”

“뭘 또 알려 주고 그래. 어차피 다시 올 일도 없는 거.”

“울 서진이는 덜렁이라 또 언제 갇힐지 몰라. 이 오빠는 진짜 걱정이얌.”

“지랄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서진은 요즘 들어 시헌이 자신을 놀리는 데 맛이 들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진은 비상 열쇠의 위치를 알려 주는 시헌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넘겼다. 펜션 침실의 비상 열쇠는커녕, 펜션에 다시 올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서진은 반팔티 위로 배를 만지작거렸다.

“배고파.”

“밥 먹자. 고기 사 왔잖아.”

“근데 먹을 데는 있냐?”

펜션에 왔으면 역시 고기지! 하고 자신 있게 고기를 산 것까지는 좋지만, 막상 고기를 먹을 생각을 하니 마땅히 먹을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지간한 요리 도구는 거의 다 있어도 고기는 예외였다. 폼 안 나게 프라이팬에 구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응. 위에.”

서진의 걱정과 달리 시헌은 거실의 천장 쪽을 손가락질했다. 옥상? 서진은 거실을 둘러보다 구석에 계단이 있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추울 거라는 시헌의 말에 서진은 시헌의 잠바를 대충 걸치고 철제 계단을 올라갔다.

2층 복도에는 작은 방 몇 개가 있었고, 그 안쪽으로 커다란 유리문이 눈에 들어왔다. 서진은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서진을 따라 들어온 시헌이 벽 쪽에 있는 불을 켰다. 벽면이며 천장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 데다 밤이라 그런지 내부 조명을 받은 유리가 은은하게 빛났다. 시헌은 유리벽으로 된 옥상의 더 안쪽을 손가락질했다.

“저쪽에 숯불 화로랑 다 있어.”

한 번 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람이 통하는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확실히 조금 쌀쌀했다. 시헌은 바깥 야경을 보는 서진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별로야?”

“별로겠냐. 그만 달라붙고 밑에 가서 고기 가지고 올라와.”

“네네. 알겠습니다.”

시헌은 서진에게 떠밀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서진은 어느 정도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구웠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나무 의자를 가지고 온 시헌이 서진의 앞에 앉았다. 불 근처로 손을 대는 것이 추웠던 모양이었다. 시헌은 서진이 고기를 굽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해서 중얼댔다.

“잘 좀 해 봐.”

“그럼 네가 하든가.”

시헌의 중얼거림을 듣기 싫은 서진이 집게와 가위를 넘겼다. 이런 식으로 고기를 구워 본 적이 있어야 잘하지. 넌 얼마나 잘하나 하는 심정으로 가위를 넘겼지만, 시헌은 서진의 생각보다 고기를 자르는 데 능숙했다. 고기 하나를 좀 빠르게 익힌 시헌은 큭큭대며 웃었다.

“반했어?”

“내가 왜 반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반할 건데?”

집게에 있는 고기를 본 서진은 시헌의 옆에 있는 쌈 채소를 손가락질했다. 이제 보니 밥도 있었다. 밥은 또 언제 한 거야? 시헌은 상추에 고기와 밥, 밑반찬을 싸 내밀었다. 서진은 시헌이 싸준 쌈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안 반할 거야?”

“이미 반했는데 뭘 더 반해?”

서진의 말에 시헌은 얼굴을 붉혔다. 저런 말에 얼굴을 붉히는 시헌이 서진은 참 귀여웠다. 멍하니 있는 시헌을 위해 서진은 불판을 손가락질했다.

“야야, 다 탄다 타.”

“어어. 미안.”

시헌은 급하게 고기를 뒤집었다. 어느 정도 고기가 익어 갈 무렵 시헌은 소주를 꺼냈다. 사실 시헌이 가져왔을 때부터 시선이 닿아 있기는 했다. 문제는 그 소주가 박스라는 거였다. 서진은 마트에 갔을 때 술을 산 기억이 없었다.

“술은 또 언제 샀대.”

“너 잘 때 한 번 더 나갔다 왔어. 고기 먹을 건데 술이 없으면 섭섭하지.”

“맥주는?”

“원래 의사는 소주파라고 엄마가 그랬어.”

“에라이 마마보이야.”

시헌은 익숙하게 병을 흔든 뒤 종이컵에 소주를 따랐다. 아니 왜 또 종이컵인데. 서진은 시헌의 등 뒤로 쌓여 있는 박스를 흘끗대며 고기를 입에 넣었다.

“야 진짜 너무 많은 거 아냐?”

“쫄았어?”

“윽. 무시하냐?”

서진은 시헌을 향해 종이컵을 내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헌한테 술로 지고 싶진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두 사람은 정신없이 술과 함께 고기를 먹었다.

“그래서, 니가 막… 빼앗아 먹었을 때. 지인짜 재수 없었던 거 알아?”

“…니가 맨날 뭘 먹고 있었잖아.”

의자를 가져와 서진의 옆에 앉아 어깨를 기댄 시헌이 고개를 약간 들었다. 서진은 제 밑에 있는 시헌에게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왜인지 술에 취한 중간부터 중학교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시헌의 틀리지 않은 말에 할 말이 없는 서진은 신경질적으로 술을 마시며 말을 돌렸다.

“야, 아직도 그 얘기야? 언제 적 얘길 하는 거여! 아, 아니. 하는 거야!”

“크큭, 풉. 하하하하하하! 너, 큭… 하하하! 말투가 왜…!!”

혀가 꼬인 서진의 말투에 시헌이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평소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시헌이지만 한번 웃기 시작한 시헌은 좀처럼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서진은 시헌이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라는 걸 사귀고 난 이후에서야 실감하는 중이었다. 서진도 자기가 한 말이 웃겼는지 이내 큭큭대며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역시 억울한 건 억울한 거였다.

“사레들린…… 큭큭. 거라고.”

“아, 진짜 미치겠다.”

간신히 웃음을 그친 시헌은 거의 다 먹어 가는 고기의 불판을 바라봤다. 타탁타탁 남은 재들이 튀는 소리가 났다. 시헌은 슬슬 머리가 어지러웠다. 서진은 제 몸을 안는 시헌을 보며 말했다.

“우리 몇 병 마셨냐?”

“음. 많이? 아주 많이?”

“야, 그걸 다 마셨다고? 더 없어?”

“없ㅤㅉㅕㅇ.”

“큭큭, 너 진짜. 크읍. 말투가 왜 그러냐.”

“내 말투가 어때성. 하하, 알았어. 그만할겡.”

그만하고 자시고 술에 취해 단단히 혀가 꼬인 것 같았다. 술에 취한 서진은 시헌의 그런 말투조차 재미있었다. 서진은 시헌이 앉아 있던 자리의 빈 소주 박스를 바라봤다. 소주 박스의 안은 정말 텅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술은 더 없었다. 설마 20병을 다 마실 줄이야.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 할부지가 술이 좀 쎄. 음. 아빠도 쎄고, 고모부랑……. 엄마랑 누나랑. 아. 기욱 형은 의외로 안 쎄다? 작년에 나한테 졌거든.”

서진은 중간부터 배가 불러 거의 술에 입을 안 댔으니 대부분이 시헌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긴 서진은 시헌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시헌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야야, 박시헌 너 어디 가?”

“쫌만 이써 봐.”

서진도 술에 취해 어지러운 상태라 일어난 시헌의 뒤를 차마 쫓을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가던 시헌은 결국 유리문에 쿵, 하고 머리를 박았다. 문을 잘못 찾은 탓이었다. 두리번거리며 바로 앞에 있는 문을 잡아당긴 시헌은 쿵쿵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 내려가서도 요란한 소리가 난 것은 덤이었다.

“…….”

죽은 거 아니겠지?

홀로 남겨진 서진은 괜한 생각이 들었다. 한참 만에 다시 올라온 시헌은 서진의 앞에 검은 봉투를 내밀었다. 서진이 잠든 사이 시헌이 혼자 한 번 더 마트에 다녀온 것은 알고 있지만 혼자 마트에 다녀온 시헌한테는 뭐가 계속 나왔다. 서진은 시헌이 가져온 검은색 비닐봉지 안으로 손을 넣었다.

굳이 손을 넣지 않더라도 봉투 안에 튀어나온 기다란 물체로 인해 내부 물건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폭죽이었다. 폭죽이라고 해 봤자 쏘아 올리는 것은 없었다. 시헌은 라이터를 꺼내 기다란 철사에 불을 붙였다. 선을 따라 반짝이는 것이 예뻤다. 시헌은 불을 붙인 철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쁘지?”

“애도 아니고 무슨.”

서진은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철사를 하나 들었다.

“그러지 말고.”

시헌은 서진에게 철사를 내밀었다. 시헌의 철사에 있던 불이 옮겨붙으며 서진의 것도 점점 빛이 났다. 시헌은 춥다며 폭죽을 챙겨 들고 유리 천장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직 뒷정리를 안 했지만, 상관은 없겠지 싶은 서진은 시헌을 따라 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헌이 미리 온도 조절을 해 놓은 탓인지 유리 천장이 있는 곳은 따듯했다. 서진은 잘 마감된 나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번째 폭죽에 불을 붙였다. 서진의 것 또한 거의 꺼져 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천장 너머로 별이 보였다. 진짜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폭죽처럼 하늘이 반짝거리는 것이 예뻤다.

아아, 하늘을 본 게 얼마 만인지. 시헌과 같이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하늘이었다. 유리 천장 안은 두 사람의 폭죽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 났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잠결에 한 번인가 들었던 서진은 시헌의 말에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차라리 이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서윤의 동생으로, 기욱과의 관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시헌과 있고 싶었다. 서진은 불이 꺼진 폭죽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며 시헌과 입술을 맞췄다.

유리벽 아래가 바로 눈에 보이는 절벽이라 그런지 등을 대고 있는 것이 살짝 무서웠다. 무섭다고 하기보다 여긴 침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세가 참 애매했다.

“이 자세는 좀 그렇지 않냐?”

“들어갈까?”

“안 치워도 돼?”

서진은 테라스에 있는 고기와 음식의 잔재들을 흘끗댔다. 시헌은 그런 서진의 뺨을 틀어 고개를 돌렸다.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내미는 게 또 뭐가 불만인 모양이다.

“넌 진짜 무드를 몰라.”

“윽. 죽을래?”

“시헌이 주거따.”

“개자식.”

내려가는 계단은 술에 취해 가기엔 위험했기에 두 사람은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 * *

“…….”

시헌은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휙휙. 손을 뻗어 침대 주변을 만지작거렸지만, 서진의 느낌은 없었다. 뭐, 뭐야?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는 것도 모른 채 시헌은 서진이 없는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내 거실 안쪽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시헌은 급하게 문을 열고 거실로 뛰어갔다. 서진은 박스에 어제 먹은 음식의 쓰레기들을 담아 내려오는 중이었다.

“강서진!!”

“어, 왜?”

시헌은 서진이 계단을 다 내려오기 무섭게 뛰어가 서진에게 안았다. 박스를 든 채 시헌에게 안긴 서진은 눈을 깜박였다. 시헌의 행동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뜬 시헌이 옷도 입지 않은 채 뛰어와 자기 몸에 얼굴을 비빈다는 것.

“너 지금 뭐 하냐?”

“……어?”

시헌은 그제야 제 상태를 이리저리 살폈다. 옷이 없었군. 서진은 시헌을 밀어내며 박스를 거실 한쪽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단 옷부터 입어.”

* * *

서진과 시헌은 아침으로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먹으며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들은 서진은 이내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읍. 큭큭. 하하하하하! 씨발, 누가 사라지긴 사라져… 하하하하!”

“야, 그만해.”

늘 쪽팔려하는 건 서진의 몫이었지만 이번에는 역할이 바뀌었다. 서진은 얼굴을 붉히는 시헌의 뺨을 꼬집으며 계속 웃었다. 시헌의 말인즉 펜션에 온 게 진짜 꿈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서진이 사라진 거라고. 뭔 그런 꿈이 다 있나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알몸으로 뛰어와 안기는 시헌의 꼴은 정말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가관임은 틀림이 없었다.

“하하하하하! 귀여워 죽겠다 진짜!”

“그만 웃어. 나 정말 쪽팔려.”

“아, 알아… 큭큭.”

서진은 라면을 먹을 틈도 없이 웃었다. 그칠 줄 모르는 서진의 웃음에 시헌은 급기야 서진의 옷을 잡아당겨 입을 막았다.

“잠깐, 나 라면 먹는 중…… 으읍. 큭큭.”

어차피 거의 다 먹은 거긴 하지만. 키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진의 목이며 입가가 떨려 왔다. 시헌의 끈질긴 키스에 짜증이 난 서진이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에 따라 시헌이 휘청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서진은 휘청거리는 시헌의 허리를 잡아당겨 안은 뒤 라면이 없는 유리 테이블 쪽으로 눕혀 팔을 잡아 눌렀다.

“귀엽게 굴지 마라.”

“이, 이건 반칙이야.”

“세상은 원래 반칙이야.”

“어젠 나한테 안기면서 좋다고 한 주제에.”

시헌은 제가 서진의 밑에 깔린 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힘으로 덤빈다면 시헌이 금방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꿈적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시헌도 내심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야, 죽을래? 그건 네가 계속…….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거든?”

시헌의 섹스는 기분은 좋지만 끈질긴 감이 있었다. 시헌은 서진을 밀어낸 뒤 자리로 돌아와 얼마 남지 않은 컵라면의 국물을 들이마셨다. 무슨 소주 마시듯 국물을 들이켠 시헌은 탁, 하고 빈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할래?”

역시 시헌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농담이었던 주제에 갑자기 또 진지 모드로 변하니 서진은 당황스러웠다. 서진이 뒤로 물러나자 시헌은 그런 서진의 팔을 잡아당겨 침대로 내던졌다. 시헌은 곧장 침대 위로 올라와 서진의 츄리닝 바지 허벅지 위를 쓰다듬었다.

“야, 야 나 방금 씻엇……. 어디다 계속 손을 대!”

“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니면서.”

시헌은 서진의 츄리닝 바지를 내린 뒤 브리프 위를 혀끝으로 핥았다. 잠깐 핥는가 싶더니 브리프 위는 영 별로인지 바지와 함께 브리프를 내렸다. 난데없는 시헌의 펠라에 서진은 살짝 당황하며 다리를 오므렸다.

“안 해도 괜찮… 으읏….”

“가만히 있어 봐 자기야. 읍….”

서진은 설마 시헌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안기는 거야 논외로 친다 해도 펠라는 두 사람의 암묵적 불문율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같은 남자 것을 핥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서진은 구석구석 페니스를 핥아 가는 시헌에 본능적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기욱에게 반강제적으로 펠라를 했던 서진이 기욱의 동생인 시헌에게 펠라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으, 읏… 야 진짜 적당…… 흐으!”

본능적으로 시헌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던 서진은 사정 직전에서야 급하게 페니스를 빼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서진의 예상대로 참지 못한 정액이 시헌의 얼굴과 이마 근처로 튀었다. 시헌은 옆에 있는 휴지로 얼굴과 입 근처를 닦으며 서진의 위로 올라탄 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서진의 페니스를 툭툭 건드렸다.

“이래도 안 할 거야?”

시헌의 도발에 서진은 몸을 일으켜 시헌을 밑으로 깔았다.

“내가 위야. 먼저 하자고 한 건 너니까.”

서진의 말에 시헌이 보란 듯 허벅지를 잡아 다리를 벌려 보였다. 이 새끼 이거 안 되겠는데? 항상 시헌에게 깔리는 처지였던 서진은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다짐했다. 서진은 시헌과 키스를 하며 천천히 시헌의 바지를 벗겨 냈다.

서진과 마찬가지로 츄리닝복 차림이라 옷을 벗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헌의 다리를 벌린 서진은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시헌의 안을 지분거렸다. 생각했던 것처럼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에 서진은 몇 번이나 짜증을 내며 시헌의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크윽. 야야! 누가 썅, 섹스하랬지 간지럽… 흐읍… 하랬냐!”

서진의 괜한 화풀이에 몸을 틀은 시헌은 침대 옆 안쪽 선반을 손가락질했다. 서랍을 열자 러브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섹스를 할 때 러브젤이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시헌은 발끝으로 서진의 몸을 밀며 웃었다. 러브젤과 옆에는 콘돔도 있었다.

“원래 있던 거야. 할 거면 사고 치지 말라고.”

“니네 집안 참 가지가지 한다.”

서진은 젤을 충분히 짜낸 뒤 시헌의 안에 비볐다. 서진의 손가락이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시헌에게 그대로 느껴졌다. 여유롭게 큭큭대던 시헌도 손가락이 반이 넘게 들어가자 숨을 들이쉬며 손을 저었다.

“흐읏, 자… 잠깐 이거 존나 느낌이… 하윽! 야야, 서진아? 하윽!”

“시끄러워, 박시헌.”

먼저 도발한 건 시헌이었다. 서진은 제 무덤을 판 시헌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천천히 하라는 시헌의 말을 무시한 서진은 손가락을 푹 하고 끝까지 밀어 넣었다.

“흐으읏! 이건 좀 아닌…….”

서진은 시헌이 힘을 쓰기 전에 시헌의 위로 올라가 시헌의 팔을 누르며 안쪽에서부터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무리 시헌이라 해도 체격 차이와 서진이 주는 쾌락을 쉽게 이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시헌은 이런 안쪽의 자극이 너무나 낯설었다.

“하으, 으읏… 서, 서진아 우리 하… 한 개만… 아윽!”

서진은 시헌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와의 섹스―그래 봤자 기욱밖에 없지만―에서 늘 당하는 처지이었던 서진은 나름 넣는 사람으로서 초긴장, 집중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만하자는 시헌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으흣… 응… 이거 진짜… 으읏!”

개수를 늘리며 꾹꾹 밀어 넣은 손가락이 어느 지점에 닿자 시헌의 몸이 움찔 떨려 왔다. 그 떨림이 시헌의 안에 손가락을 넣고 있는 서진에게도 그대로 전달이 됐다. 시헌은 제가 몸을 떨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급하게 얼굴로 손을 가렸다.

“하윽, 아아악!! 하자고 하는 게 아니었어!!”

얼굴을 가린 시헌은 서진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몸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더욱이 체격이 작아 서진의 손에 더 잘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까짓거 죽기야 하겠어 하고 홧김에 소리를 친 건데. 시헌은 10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돌아가 라면 국물을 마시는 자신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흐으, 응… 으읏… 응….”

“하아, 와. 너 목소리 개야해. 진짜 미칠 것 같아.”

서진은 당장에라도 시헌의 안에 박고 싶을 정도로 갈증이 났다. 같이 다닐 때부터 묘하게 섹시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막상 밑에 깔고 보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묘하게 맛들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으응, 썅, 그… 으으읏! 럴 리가…….”

“녹음해서 들려주고 싶다 박시헌.”

“…어. 후으, 으흐…….”

서진은 시헌의 안에 넣은 손가락을 빼며 제 페니스를 문질렀다. 고개를 약간 숙이자 허벅지 사이로 꼿꼿하게 선 서진의 페니스가 닿았다. 덩치가 크니 저보다 훨씬 클 거라는 건 짐작은 했지만, 시헌은 눈을 질끈 감았다.

“히끅, 진짜 그만… 흐윽… 아으읏!”

서진은 천천히 시헌의 안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시헌의 허리를 약간 든 서진은 시헌의 등을 토닥였다.

“읏, 박시헌. 안 죽어. 힘 빼.”

“흐읏, 응….”

고개를 끄덕인 시헌이 천천히 아래의 힘을 뺐다. 시헌의 안이 느슨해지기 무섭게 서진이 퍽, 하고 시헌의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하으윽! 거, …읏 거짓말쟁이.”

“안 아프잖아.”

“그래도… 으응. 이상해. 빼 줘. 이상해.”

“야, 너 나한테는 막 했잖아.”

“그건… 읏….”

“당해 봐야 함부로 안… 후우. 하지.”

서진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허벅지를 천천히 흔들었다. 안을 가득 메운 서진의 페니스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시헌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생각 이상으로 강하게 조여 오는 시헌의 안에 서진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정을 했다.

“하윽… 으으. 너, 너… 으읍….”

“하하, 미안.”

러브젤과는 다른 물컹물컹한 느낌에 시헌이 인상을 찌푸렸다. 서진은 짧은 사과 한마디와 함께 곧장 시헌의 입을 막았다. 한 번의 사정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서진은 시헌을 엎드리게 한 뒤 위쪽에서부터 시헌의 안을 거칠게 탐했다.

“하응. 응….”

무덤이고 뭐고 반쯤 정신을 놓은 시헌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신음을 흘렸다.

“흐으… 하읏….”

서진의 페니스가 시헌의 안을 빠져나가자 시헌의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아직도 정신이 없는 시헌은 안을 가득 메우던 서진의 페니스가 나간 곳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서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기도 하면서. 시헌은 맘 편한 대로 박아 대는 서진에 몸을 틀었다.

“야 삐지지 마. 먼저 하자고 한 건 너였잖아.”

“으으…. 처음인데. 살살 해도 됐잖아.”

“좋아 죽겠다는 표정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누가 믿냐.”

서진의 말대로 시헌은 입꼬리가 반쯤 올라가 주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진의 말에 흠짓 놀란 시헌은 곧장 얼굴을 침대 시트에 묻었다. 시헌의 반응에 서진은 제가 정말 심했나 하며 뺨을 긁적였다.

“너 진짜 처음이야?”

“뭐? 그러는 너도 마찬가지잖아!”

시헌이 억울하다며 소리를 질렀다. 서진은 약간 찔리는 감이 있었지만, 실제로 당하기만 했을 뿐 넣은 적은 없으니 처음이라면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다, 당연하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시헌은 천천히 서진의 위로 올라탔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하면.”

“…….”

“화낼 거야.”

서진은 시헌의 허리를 잡아당겨 페니스를 다시 밀어 넣었다. 하여튼 단어 선택하는 수준하고는. 서진은 숨을 고르는 시헌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유치하게 굴지 좀 마.”

“누가 으응. 유치하게…… 하으읏….”

시헌은 대답할 틈도 없이 허리를 움직이는 서진에 또 침대 시트를 꽉 쥐었다. 처음 한다는 것치고 그동안 당한 게 있었던 서진은 능숙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시헌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한참 동안 섹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은 아침인지라 여전히 밖은 밝았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가린 서진은 숨을 고르고 있는 시헌의 옆에 누웠다. 시헌은 이불을 덮지 않은 채 서진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아. 평생.”

“죽을 거면 너 혼자 죽어.”

“그게 왜 죽는 거랑 이어지는데?”

시헌은 서진의 유두 근처를 핥으며 고개를 약간 들었다. 서진은 시헌의 엉덩이 근처를 주물럭거렸다.

“평생 움직이지 않으면 그게 죽는 거랑 뭐가 달라? 그대로 죽겠지, 뭐.”

“흐음, 늙어서? 왠지 네가 옆에서 돌봐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죽어.”

“와, 나빴어. 매정해.”

시헌은 서진의 몸을 약간 밀어내며 침대에 앉았다. 나름 시헌이 힘들 정도로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시헌은 서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멀쩡해 보였다. 정작 시헌을 향해 열심히 허리를 움직인 서진은 더 이상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서진은 포지션을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시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진은 이젠 시헌이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겠다며 발밑에 있는 이불을 끌어왔다. 이불이 몸을 덮은 것도 잠시뿐 시헌은 서진의 몸을 덮은 이불을 당겨 침대 밑으로 떨어트렸다.

“야, 너 뭐 하…!!”

시헌은 곧장 서진의 다리를 옆으로 벌리며 손바닥에 서진이 쓰다 만 러브젤을 짰다. 시헌의 손바닥이 천천히 서진의 허벅지부터 다리 안쪽을 문질렀다.

“노, 농담이지?”

“우리 서진이 이젠 내가 기분 좋게 해 줄게.”

“아니, 난 이제 힘들…! 시헌아?”

침대 위 갈 곳 없는 서진이 침대 헤드를 붙잡으며 몸을 숙였다. 시헌은 힘이 잔뜩 빠진 서진의 페니스를 문지르며 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흑! 바, 읏 시헌…! 그, 하지 으읏….”

단단히 작정한 시헌은 서진의 안이 풀리기 무섭게 페니스를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서진의 안에 완전히 들어온 시헌은 귓가에 속삭였다.

“넣게 해 줬잖아. 이젠 내가 넣어야지.”

“너 흐으… 체력이… 하응….”

이미 시헌에게 좋을 대로 할 만큼 하고 난 뒤였던 서진은 시헌을 밀어내거나 반항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시헌도 힘이 부친 모양인지 일부러 더욱 거칠게 서진을 안았다. 안에서부터 깊숙이 찌르는 시헌의 페니스에 서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으응. 하… 으으읏!”

“흐으, 서진아.”

울컥, 하고 시헌은 서진의 안에 완전히 사정했다. 한 번 하면 된 줄 알았는데, 막상 다시 섹스하니 열이 오른 모양인지 시헌은 쉽게 서진의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시헌은 몇 번이고 자세를 바꾸며 서진을 탐했다. 시헌이 만족할 무렵이 되었을 때쯤에 서진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시헌은 페니스를 빼내기 무섭게 서진의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서진의 안으로 시헌이 잔뜩 흘려 넣은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시헌은 서진의 뺨 위로 손을 올려 만지며 목 뒤로 키스했다.

“좋았어?”

“하아, 하… 죽어.”

“네 손에 죽으면 행복할 것 같아.”

시헌은 몸을 돌리는 서진의 입가에 손을 대더니 다시 서진의 위로 올라탔다. 몸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에 서진은 내려오라며 허리를 비틀었다.

“아, 집에 가기 싫다. 난 아직도 꿈 같아.”

몸을 약간 숙인 시헌은 서진과 키스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2박 3일로 잡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펜션에 온 지 몇 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니 아무리 생각도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 시계를 거꾸로 돌려 주지 않을까. 그런 시헌의 말을 서진도 공감했다. 이렇게 일상의 일들을 전부 잊고 마음 편하게 놀아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마 시헌이 아니었다면. 평생 경험할 일도 없었을지도 몰랐다.

“한 번 더 할까?”

“야, 죽을래?”

“아아, 서진아.”

“씨발년아 끼 부리지 말라고. 어디서 앙탈이야?”

“아, 딱 한 번만 더 하자.”

“야, 진짜 체력이…….”

시헌이 서진에게 안겨 들며 눈을 반짝였다. 앙탈이어도 서진은 시헌의 이런 애교를 이기지 못했다. 아마 시헌과 사귀는 내내 이런 식으로 잡혀 살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서진은 한숨을 쉬며 알아서 하라는 듯 뺨에 올라온 시헌의 손을 치워 냈다.

“딱 한 번만이야.”

“당근이지 마이 허니.”

“아오. 저걸! 으읏.”

시헌은 허공으로 뻗는 서진의 손을 낚아채 손바닥을 핥았다. 야릇한 느낌과 함께 금세 서진의 안으로 시헌의 페니스가 들어왔다. 허전했던 안이 시헌의 페니스에 꽉 차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헌의 한 번은 한 번이 아니었다.

“흐으읏… 하으… 개자식….”

안에서 느껴지는 시헌의 떨림에 서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서진의 양팔을 붙잡던 시헌이 손을 놓자 서진의 팔이 힘없이 허리 아래로 툭 떨어졌다. 침대 위로 힘없이 쓰러지는 서진을 본 시헌도 더는 못 하겠다며 서진의 옆에 풀썩, 쓰러졌다.

“하으. 하. 나도 진짜… 하하. 더는 못 해.”

“으읏. 하, 한 번만이라며.”

“더 못 해. 하하하.”

시헌은 하라고 해도 못 한다며 허공으로 손을 흔들었다. 숨을 고른 서진은 해가 반짝이는 유리창을 바라보며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덮었다.

“근데 우리 집엔 언제 가냐?”

“흐으. 나도 몰라.”

서진이 이불을 가져오기 무섭게 시헌은 이불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피곤한 듯 시헌은 이불 속에서 서진의 몸에 찹쌀떡처럼 달라붙어 꼼작도 하지 않았다.

이불을 살짝 들어 안을 보자 시헌은 마치 어린애처럼 색색 잠이 들어 있었다. 이불을 들추자 추운 모양인지 시헌이 더 서진에게 매달렸다. 서진은 시헌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불을 다시 덮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점점 시헌을 닮아 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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